Review BOOK/에세이2013. 8. 13. 12:43


이렇게 된 이상 하루키의 에세이 연작들에 대해서 다 이야기해 볼 작정이다. 지금까지 나온 에세이들을 꽤 읽었으니까 몇 권 안남았다. 아마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양장본 에세이 시리즈 2권만 빼놓고는 다 읽었나보다. 비채가 시리즈로 낸 하루키 에세이는 <저녁무럽에 면도하기>,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이렇게 3권이다. 무라카미 라디오 연작으로 에세이 중, 가장 하루키스럽고 단백하다고 정평이 나있는 에세이들이기도 하다. (휘어지는 표지는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굳이 소개하지 않았어도 하루키 매니아들은 손수 다 찾아 읽었을 것이고 나같이 하루키의 엉뚱하면서도 세련된 문장체가 좋아서 (마치 뇌의 안쓰던 부분을 쓰는 듯한 느낌) 무턱대고 읽었던 독자들로 꽤 있었을 것이다. 


최근 하루키의 에세이들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느낀 점이 있는데 그것은 이 아저씨가 '글은 정말 단백하고 깔끔하게 쓰신다' 였다. 부연과 전제가 질질 끌려서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장황함도 없고 지적이면서 동시에 허영기가 짙게 배인 '잘난척' 단어 나열도 좀 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이 분이 재즈 감상기를 쓰시게 되면 약간 어려운 말들이 등장하기는 한다.). 이렇게 절제와 간단명료를 문장에서 실현하시는 분들도 생각보다 만나기어려운 시절이다. 게다가 생각과 판단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은 대다수의 작가들이 가지지 못한 하루키 특유의 정체서이기도 하다. 많은 에세이들에는 지은이의 신념과 가치관들이 알게모르게 스며들어있기때문에 은근슬쩍 '주장'과 '단정', 그리고 '자기생각에 Sync를 맞춰주길 기대하거나 동의해주길 원한다. 그런 내용이 반복되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고서는 읽는 것자체가 부담스럽고 영 껄끄러워지는데 그런 상태에서는 읽기는 거의 '폭압적' 납득이 되거나 입에 맞지않는 음식을 꾸역꾸역 입에 넣는 것보다 더 괴로운 법이다.  


'에세이든 소설이든 문장을 쓸때 친절심은 중요하다. 상대가 읽기 쉬우면서도 서로 이해하기 쉽게 써야한다. 그런데 시도해보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P23)


하루키표 에세이에는 이런 자기 생각에의 강요가 별로 없다. (약간의 툴툴거림이나 시니컬한 요소들이 있긴 있다.) 이 모든 산물은  레이먼드 카버나 트루먼 커포티, 그리고 존 치버, 업다이크로부터 왔을 가능성 크지만, 사실 카버스럽다는 것도 그렇고, 커포티답다는 것도 쉽게 와닿는 그런 부분은 아니라서 딱히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뭣하다.  책을 읽었어도 애매하고 손에 잡힐듯 잡히지 않는 무형의 아이덴티티와 같은 느낌 같은 것일 뿐이다. 읽다가보면 어 이건 카포티와 비슷하고 저건 카버하고 유사한 느낌인데 라고 되뇌이게 된다고나 할까. 


하루키의 글에는 레이먼드 카버의 문장 단위의 생략에서 드러나는 은밀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암시들, 그리고 트루먼 커포티 특유의 오밀조밀한 디테일함, 이 두사람을 교묘히 이어서 균형감각을 가지고 주제를 적절히 녹이는 존 치버의 장점들이 복합적으로 녹아있다. 결국 하루키는 스스로가 '친절심'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스스로가 추구하는 문장에 대한 완성도에 대해선 자기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작가들의 재능을 대신 표출해주고 있다. (본인은 아니라고 우기지만 어쨋든 그가 글을 편하게 쓴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다보니 선대작가들의  영향력을 빼고서라면 그의 상상력이 어떨까 궁금해질 때가 있다. 수많은 작가들을 오마쥬해서 스타일을 짜깁기했다고해도 하루키는 하루키인 것이니까..그의 발군 묘사실력은 기묘한 상상력, 그리고 세련된 그의 삶의 스타일에 기반한 것이 아닐까하는 것이다. 


 '섹스한 다음날 아침, 침대에는 아직 여자친구가 있고 남자가 티셔츠와 헐렁한 사각팬티 차림으로 주방에 서서 물을 끓여 커피를 준비한다. 그리고 시금치 오물렛을 준비하는 것이다. 가스불에 버터를 녹이고 오물렛을 만들고 여자친구는 스트라이프 면셔츠 바람으로 , 나른한 듯 침대에서 나오고...슈베르트의 아르페 지오네 소나타가 흘러나온다


시금치 오믈렛이니 스트라이프 셔츠니 아르페 지오네 소나타네 하는 것들이 일상에서 등장할 리가 없겠지만 하루키의 글에서는 이런 로맨스 물씬 풍기는 장면들이 영화처럼 자주 등장한다. 이유가 뭘까.  언젠가 평론가의 글에서 이런 대목을 읽었던 걸 기억한다. 하루키의 에세이나 소설에는 현대 자본주의 문화의 전형적인 스타일이 스며들어있다고....따라서 현대인들은 하루키의 글을 보면서 '그러한(?)생활을 은근히 동경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어있다고....나도 역시 마노아 레터스와 쿠라토마노, 쓴맛이 없는 마우이 어니언을 곁들이고 롤빵에 차가운 맥주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가 이런 것일까. 하루키 아저씨처럼...뭘해도 참 분위기 있게 사시는 이 아저씨의 에세이는 그래서 동경할만 한 걸까. 나도 그렇게 살아볼 순 없는 걸까라고 생각했드랬다.  토니베넷의 <샌프란시스코에 두고온 내마음>을 들으면서 랄프샤론의 피아노 인트로가 연상되고 재즈클럽은 뉴욕의 '빌리지 뱅가드'가 최고라는 기억을 되살려 한번 즘 가볼 수 는 없을까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책장을 넘기다가 아주 공감할만한 에피소드를 하나 만났는데..'주유소 사건'에 관한 것이었다. 하루키가 차를 몰고가다가 기름이 떨어져서 주유소까지 통을 들고가 기름을 담아와서 어려움을 벗어났다라는 단순한 이야기였는데 아마도 그때 하루키가 '혼자여서 다행이었다'라고 말한 대목 때문이었을것이다. 그 자리에 여친이 있었다면 '진짜 멍청하다니까.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이 사람하고 사귀는건 잘못된 선택일지도 몰라' 라고 말하게 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대목말이다. 나는 이대목에서 공감백배였다. 나도 역시 혼자다니는 이유중 하나였으니까... 여친이나 애인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건 끔찍하니까..이 외에도 고등학생의 '헌욕수첩' 같은 황당한 에피소드도 좋아한다. 슬그머니 한마디 해줄 뿐이다. 이런 변태같으니라고...^^


'신주쿠역에서 '지금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라는 음성이 녹음되어있어서 원치 않는 전화를 적절하게 커팅하고 싶다고 했을때도 나는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런데 아저씨 이런 기능은 진짜로 특허가 나와 있다는거 아세요? ^^) 소띠 산양좌 A형이라고 고백 할 때..어라 나도 소띠고 A형인데라며 웃었다. 이련 묘한 일치감이라니 하루키 아저씨도 기질적으로 나와 진배 없을거라는 대착각이 근거를 가지는 순간이었다. 다만 하루키가 언급했던 헤밍웨이의 진정한 남자되기 4가지는 동감하기 어렵다. 나무를 심고, 투우를 하고 책을 쓰고 아들을 낳는다라는 것들...이건 뭐 해밍웨이의 몰린 정서나 가치관 때문이지 남자되기와는 별 상관이 없었으니까..그런데도 역시 하루키는 이 부분에 대해 별말 없다. 다만 책을 쓴다는 점에 있어서는 자신도 남자라는 우쭐댐을 슬쩍 흘리고 싶어했으리라..


 '우리는 조류를 거스리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 이 것은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구절이었고 ' 마지막 문을 닫아라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아라. 그저 바람을 생각해라'는 트루먼 커포티의 단편소설' 마지막 문을 닫아라'에 등장하는 말이었다. 그가 결국 삶속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있는 그대로를 두고 무덤덤하고도 쿨하게 저벅저벅 가는 것. 남들이 보고 들었던 수많은 고정관념들속에서 아마 '시스템에 붕괴되어가지 않도록 버티면서도 그 의식들이 거대토끼처럼 되지 않기였나보다. 그래서 독자들이 하루키 아저씨도 이젠 잔소리쟁이가 되버리셨어라고 되지 않기를 은근히 기대하면서... (언젠가 그가 자신이 글을 쓰는 목적에서 밝힌 바 있기도 하다.) 


읽으면서 기대했을 지도 모른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만큼이나 희귀하고 엉뚱하지만 생활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하루키 아저씨가 조근조근 계속 이야기해주기를...그렇게만 되면 점점 더 닮아갈지 어떨지 확신은 못해도 이 에세이들이 내 삶에서 벌어질수도 있다는 동질감은 유지되지 않을까 생각했나보다. 가끔은 나도 덤덤히 무던하고 쿨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치열하고 북적거리고 머리속에 범람하는 수많은 스트레스의 분량들은 내가 찌질하고 구차하게 살아서 생긴 침전물이 아닐까 의심해보게 된다. 좀더 쿨해지고 싶을 뿐이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비채 | 2013-05-04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오하시 아유미의 일러스트와 함께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오리지널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kewell
Review BOOK/소설2013. 8. 6. 23:11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수첩>, 그리고 동시에 읽었던 <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이렇게 두가지의 수첩소설(?)을 동시에 읽을수 있었던 것은 비교적 읽기 쉬운 라이트노벨이어서였다. (라이트 노벨 : ライトノベル 라이토 노베루[*])은 일본의 서브컬처에서 태어난 소설 종류의 하나이다. 영어 단어 Light와 Novel을 조합한 일본어식 영어로서, 현재에는 영어권에서도 일본의 독자적인 소설 장르를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1]. 약어로 라노베(ラノベ), 라이노베(ライノベ) 등으로 불리며, 드물지만 경문학(軽文学)이나 경소설(軽小説, 중국어는 이 단어를 사용함)로 표기되기도 한다.위키피디아 발췌.) 근자에는 라이트노벨의 가벼운 특성때문에 후렌치후라이드보다 못한 소설계의 패스트푸드 취급을 당하고 있지만 깊이가 있든 없든 독서란 읽는 사람의 자유도에 관련이 있는 것이지 절대적인 가치 체계속에서 평가받으면서 선별될 필요는 없다.


물론 고전명작에서 우러나오는 묵직한 성찰이라든지 어디서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찬탄 나올만큼의 문장들이 매 페이지마다 등장해서 점점 읽으면 읽을수록 감동이 밀려오는 그런 작품이 나타나기를 읽을 때마다 기대하긴 한다. (이건 고전명작에서도 보기힘든 감동이기도 하다.) 최근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커포티'티파니에서의 아침을'을 내리 읽고 났더니 삶이 왠지 그냥 흘러가는 것 같지 않고 여러 갈래로 실타래처럼 꼬여서 우연과 불운이 서로 교차해야만 진짜 삶이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소설도 그런 이야기들만 하다니...그래서 비블리아 같은 만화같은 이야기들도 끼어들어야 하는거야라고 혼자 되뇌인게 아닐까. 


아무튼 다행히도 라이트 노벨답게 <비블리아 고서당의 사건수첩>은 가볍우면서도 재밌다. 굳이 비교해보자면 커피점 탈레랑보다 더 재미있고 가끔 더 깊이있다고 생각한다. 읽으면서 의식이 깨어나지 않는 횟수가 늘지않으면 재밌는 소설이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비블리아는 순식간에 읽히면서 의식을 스토리로 끌어내리는듯한 중독성이 있다. 슥슥 넘어가도 머리속에 스냅삿 사진들처럼 툭툭 와서 박혀버린다고나 할까. 다음 장을 재빠르게 넘겨도 고우라 다이스케가 둥글둥글 이야기하거나,  시오리코가 슬며시 얼굴 붉히는 장면도 흔한 애니메이션 일러스트처럼 머리속에 그려질 정도다. (혹시 표지의 일러스트는 나같은 상상력이 읽는 능력보다 더 강한 독자들을 위한 모티브 촉발용 그림이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시노카와 시오리코는 보브스타일의 청순 가련형 미호시보다 매력적이기까지하다. (물론 이건 극중 아야카가 고우라 다이스케에게 말했던 시오리코가 왕가슴(?)이어서 그렇다는 건 절대 아니다.) 그녀가 가진 지적탐구와 방대한 책에 관한 지식들, 그리고 순간순간 번득이는 혜안들 때문이었을것이다. 이런 추리소설에는 캐릭터적 몰입감이 반이상 먹고 들어가게 되어있으니까 시오리코가 홈즈가 된다는 건 보기좋은 징조이자 설정이 된다. 홈즈는 사건의 특이성때문에 인기가 있었던게 아니란 것은 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 책에는 에피소드가 4개 등장한다. 순서대로라면 나츠메 소세키의 '그 후', 고야마 기요시<이삭줍기. 성안데르센>, 비노그라노프쿠즈민 공저 <논리학입문>,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의 <만년>순이다. 각 책을 매개로 해서 여러가지 사건들을 벌어지고 그 사건들을 시오리코가 추리해간다는 역시 너무나도 뻔한 스토리 전개지만 매개체가 책이다보니 책을 소개하면서 드러나는 이면의 이야기들과 중층적으로 엮이면서 책의 이미지를 액자식처럼 이용했다. 게다가 배경이 고서당이라니...책을 좋아하는 많은 팬들의 입장에서는 오래된 고서점, 그리고 차곡차곡 빼곡히 쌓여있는 책들의 칸막이들 틈에서 오래도록 탐닉하고자하는 책벌레의 욕구를 마치 열렬히 응원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다. (고서점에서 쳐박혀서 책을 오래도록 탐닉하고픈 책벌레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굳이 설명해야 하는가)


 다행히도 뻔한 밀실 살인 같은건 배제되어있고 그 흔한 피가 난무하고 시체 절단, 그리고 기괴한 살인방법에 대한 묘사도 이 책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탈레랑도 그랬지만 비블리아도 역시 그런걸 보면 일본소설계에는 이런 생활 밀착형 추리소설의 시대가 도래한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부드럽고 라이트하게 흘러간다. 시리즈가 일본내 4권이상 출간된 듯 보이는데 1권에서만 놓고보면 사건해결을 위한 시오리코의 명석한 해결능력만을 목표로 하고 있진 않아서 1장에서 언급된 나츠메 소세키의 <그 후>에 얽혀있는 고우라 다이스케의 진짜 혈연관계, 그리고 친해지기 힘들고 낯도 가리는 시노카와 시오리코와 순수한 고우라 다이스케 사이의 애정전선 배치가 긴호흡으로 걸려있다. 물론 한 순간에 결론을 낼 성질의 것이 아니고 시리즈를 관통할 것같은 느낌이 드는건 이 소설이 완벽한 범죄소설이 아니란걸 방증한다. 아마  둘이 친해지고 연인이 되고 위기도 맞고 다시 가까워지고 할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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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이런 라이트노벨적 순수함에 긴장감을 주기위해서 택한건 '시오리코'가 모호하고 미스테리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그것을 통해서 다이스케가 예기치 못한 갈등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암시들이다. 이미 책등빼기의 '시다'는 시오리코의 수완이 너무 뛰어나기때문에 마음에 걸린다라고 지적하고 있으며 상황을 설계하는 그녀의 천재적인 두뇌에 다이스케는 우려를 가진다. 그리고 책에 대해 남다른 집착과 중독을 가진 후반부의 악역 오바요조는 그녀를 두고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책을 남겨두려 한다'고 단정짓기까지했다. 이 부분은 고우라 다이스케가 그녀에 대해 크게 오해하고 실망하게 되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렇게 마무리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1권의 후반부가 그렇게 결말이 난 것은 다이스케가 오해했던 시오리코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야만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2권, 3권이 나올 충분한 명분이 있는 것이다. 




드라마 <비블리아 고서당>


아직 보진 못했지만 2권의 사건수준이라는 것이 더 과격하고 잔인해져간다면 이 책의 본연목표가 굉장히 이상해진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지 않길 기대하지만...뭐 작가의 마음이니까..어떻게 될 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어떤점에서 본다면 일본의 라이트노벨 특히 추리쪽은 사건의 괴이함을 말하기 앞서 로맨스를 연결시켜놓고 주변의 이야기를 결합하는 방향으로 유행의 흐름을 정했나보다. 비블리아 고서당, 커피점 탈레랑. 또 뭐가 생길려나..... 모두 다 주인공은 똑똑하고 예쁜 여성이고 남자는 순수하고 착하면서 약간은 바보같은 설정이 덧입혀져있다. 그러다가 위기의 순간이 다가오면 과감하고 용감하게 여자를 구하기위해서 돌진하는 그런 뻔한 히어로적 역할을 남자주인공들에게 부여해놓았다. 라이트 노벨답다는 건 이런것들 아니겠는가. 미리 안다고 해도 재밌다면 그걸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저자
미카미 엔 지음
출판사
디앤씨미디어 | 2013-02-28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2012년 한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히가시노 게이고...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kewell
Review BOOK/경제-경영2013. 8. 6. 18:32


2002년 플레이오프에서 메이저리그역사상 최고의 2루수로 불리웠던 조 모건(Joe Morgan)은 '포스트시즌에는 점수를 짜내야한다고 언급하며 미네소타 트윈스에 맞서는 오클랜드 애틀레틱스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희들은 가난한 구단이기때문에 우승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아라고 비약해서 해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애초부터 세이버메트릭스(Sabermetrics) 방식에 불편함을 느껴왔던 모건의 입장에서는 애틀레틱스가 실패하기를 은근히 바랬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운 정도라고나 할까.  왜 오클랜드 애틀레틱스의 승승장구에 대해 대부분의 야구관계자들이 달가와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리고 오클랜드는 어떻게 '악마의 제국'이라는 양키스의 절반도 안되는 돈으로 월드시리즈 경쟁을 할 수 있었는가. 야구에서 승리를 위해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기위해서 저자는 이 책에서는 오클랜드 단장이었던 빌리 빈의 행적을 쫓는 것으로 이야기를 대신한다.

 (cf. 세이버메트릭스 : 야구에 사회과학의 게임이론과 통계학적 방법론을 적극 도입하여 기존 야구 기록의 부실한 부분을 보완하고, 선수의 가치를 비롯한 '야구의 본질'에 대해 좀더 학문적이고 깊이있는 접근을 시도하는 방법론.) 


아마 일개 개인의 신념과 방식으로 야구판도를 장악할수 있다면이라는 가정하에서는 그게 진실이었든 가설이었든 기존주류로부터 반감을 사기에는 충분하다. 1억 5천만 달러만 자신에게 주면 우승시켜주겠다는 감독들도조차도 고민을 한다. 우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자본과 규모의 논리를 펴는 것은 다른 방도가 없거나 자신의 무능함이 드러날까 두려워하거나 둘중에 하나였을텐데 이도저도 아닌 다른 방법으로 자신들의 꿈에 도달한다면 그 파격스러움에 대한 감상은 '감동'이라기보다 '어떻게 한거야. 뭔가 속임수가 있는 것 아니야' 라는 쪽이 더 가까울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해서 그들이 생각하는 '잘못되고도 위험한 가설의 실험들이 1999년 애틀레틱스가 보여준 '일탈'의 전조들로 나타나게 된다. 빌리 빈이 믿어왔던 빌제임스의 솔직한 <야구개요>의 토로가 없었다고 해도 성향상 그는 기존의 야구통계자료를 믿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양키즈는 하늘높은 줄 모르고 연봉이 치솟았고 오클랜드는 그런 양키즈를 따라갈 능력은 커녕 흉내내기도 어려운 처지였으니까....빌리빈은 그렇게 야구를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빌 제임스 : 야구와 야구와 관련된 데이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록 , 통계화하는 세이버메트릭스의 대부격인 인물. 1977년 이래 야구개요를 통한 기존 야구체계의 허구맹신에 대한 지적을 64페이지짜리 팜플렛으로 제시했으나 기존 야구계로부터 왕따를 당했다. 하지만 이후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주장으로 오클랜드의 빌리빈이 그가 주장한 여러개의 개념들을 실제 응용하기에 이르른다.)  



결과적으로 2002년도에 보여준 오클랜드 단장인 빌리빈의 선택과 행동은 굉장히 정상적이진 않았다고 보여진다. 그런데 야구에 대해서 별반 아는게 없는 나조차도 책을 읽다가 보면 생기는 의구심, 즉 수비적 기여도는 어떻게 측량 가능한가. 그리고 투수가 공을 던지고 난 다음 인플레 되는 상황은 투수의 탓인가..아니면 야수들의 수비능력에 달려있는가라는 부분. 이는 피안타율이라는 측정치에 대한 맹신적인 부분에 대한 경고성이라는 느낌이다. 투수는 방어율로 모든 것을 설명가능한 것일까. 타율, 그리고 출루율과 장타율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에 관해서라면 한번 이상 환기되는 수준이다.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여태 알고 있었던 야구에 대한 맹점. 과연 돈을 들여서 고타율의 선수들을 사들이고 라인업을 구성하고 정통파 강속구투수와 스터프가 즐비한 유명투수들의 등장으로 야구의 성공을 대변한다면 뭔가 억울할 것만 같은 느낌들..이런 것들에 대한 아쉬움들의 정체이면에는 야구의 진실이 왜곡되어있다는 가정이 꽤 매력적일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영화화된 MONEYBALL, 주연은 브래드피트가 맡았다> 


머니볼마이클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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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볼의 이론에는 이런 측면에서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듯한 후련함과 두근거림이 있다. 사실 오클랜드가 보여준 플레이오프에서의 실패는 기존 '야구사교클럽'의 말많은 관계자들의 조롱거리만 잡스럽게 증가시킨 것외에 허탈함만 가중되었다. 특히 빌리빈의 넋두리..'내 이론은 플레이오프 전까지만 유효하다'라는 인정은 그의 머니볼이론이 반쪽짜리라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었으니까. 오클랜드가 트윈스를 제끼고 조모건이 역설했던 '점수를 쥐어짜지 않았어도' 충분히 이기는 2차전과 같은 퍼포먼스가 확률적으로 벌어졌다면 좀더 야구 사교클럽 멤버들께서 시기심어린 표정을 감추고 빠득빠득 거렸을지라도 '경의'를 표하는 척이라도 했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어도 대부분의 구단주와 단장들은 속으로 '돈이 없으면 야구를 관두야 하는건가. 그럼 오클랜드처럼 안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라고 한번정도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가난한 구단은 늘 있기마련이고 승리에 대한 굶주림은 돈의 빈약함과는 상관없이 늘 생기기 마련이니까. 빌리빈이 이뤄낸 성과를 마지막 경기결과하나로 매조지하기에는 다들 죄의식을 가지지 않겠느냐 말이다. 



2002년 지암비와 자니데이먼, 이스링하우젠을 내보낼때, 이제 오클랜드는 끝장이로군이라고 예측하는건 야구 전문 해설가, 분석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중요했던 부분은 빌리빈과 그의 보좌역 폴 디포디스타가 증명했던 '실제 선수가 미치는 가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던 것같은데 그 과정들이 이 책에 세세하게 설명되어져 있다. 강력한 마무리였던 이스링하우젠의 통계적수치에 대해서 허구성이 존재한다는 점, 마무리투수는 키우는 것보다 새로 영입하는 것이 더 낫다는 논리. 그리고 출루율이 장타율보다 3배이상 좋다는 믿음아래 데이먼이 그렇게까지 필요했던 선수가 아니라고 판단내리는 부분. 무엇보다 이 바탕에서 보여준 빌리빈과 디포디스타의 결정에는 '플라톤적 이데아'가 적용된다는 부분은 다소 충격적인 부분 아닌가 ( 야구의 플라톤적 이데아 : 모든 타구는 과거에도 수천번도 넘게 똑같은 방식으로 타격된 적이 있을 것이다라는 주장) 


야구계에서 이렇게 판단했던 적이 과연 있었을까. 물론 제이슨 지암비의 수비적 능력으로 생긴 공백, 데이비드 저스티스스콧 해티버그의 등장, 제레미 지암비로 꿰어맞춘 지암비의 공백메꾸기 전략은 억지스러울 수도 있다.  게다가 오클랜드에는 책에서 충분히 언급하지 않았던 최강투수 3인방이 있었다. (고무팔 마크멀더, 팀 허드슨, 배리지토) 그런 투수들을 가진 빌리 빈은 억수로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평가내리는 전문가 및 팬들의 시각도 만만찮다. 피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고....하지만 이면에는 운영에 대한  야구적 관점이 완전히 다르게 자리잡고 있다는 결론이 중요하다. 해티버그에 있었던 꾹 참고 공기다리면서 투수를 괴롭히고 소모시키는 무형적 능력이 충분히 위력적이라는 판단이나 쑥맥의 청교도적 잠수함 브래드 포드를 사기꾼으로 매도하지않으면서 귀중하게 다루는 모습들은 오클랜드가 3인방 투수만으로 시즌 전체를 성공한게 아니라는 증명이 되기 충분하다. (사실 브래드포드의 등장부분은 한편의 극적인 메이저리그 영화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 


그렇다고 해서 빌리빈이 굉장히 천재적이어서 오클랜드를 한꺼번에 쌈사드실만큼 엄청난 개혁과 존경의 대상으로 치켜세워지지 않았음은 후반부에서 알게된다. 그도 인간이고 2002년 9월 14일의 20연승의 현장에서 엄청난 점수차의 리드를 소비한채 대역전패의 장면에서 장비를 부수고 물건들을 내던지면서 감정컨트롤을 못했다. 그리고 또 그는 스스로 판단내린 제레미 지암비를 폐기처분했으며 매몰차게 '여러방의 총을 가슴에 쏘지 않고 한방에 쏴서 끝내야한다'는 취지아래 매그난테를 방출, 리카르도 링컨을 인터셉트했다. 


도덕성은 결정내리는데 아무래도 별 영향을 못미쳤고 하우감독의 잘못된 판단을 두고 '머저리'라고 놀려댔으며 나중에는 머니볼 이론이 무색할만큼 오클랜드의 총연봉량이 급상승하기도 했다. 저자가 아마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야구가 가지는 지나치게 천편일률적이고 맹신적인 허구적 결함에 대한 용기있는 실행능력이었을 것이다. 후반부 아트티엘이나 더그 크리코리언, 트레이시 랑골스비, 팻길릿 같은 인물들이 빌리빈을 조롱하거나 비아냥 거리는 그 중심에는 하나같이들 스스로를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는 진부함이 있다고 되려 비꼬고 있었으니까...결국 머니볼의 저자는 마이클 루이스였지 빌리빈은 아니었는데도...하나들같이 빌리빈이 스스로 썼다고 생각할 정도라니...그럴만하다 싶긴하다. 


물론 빌리빈의 머니볼이 파격적이라는 부분에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은 비약이다. 파격이 꼭 진실일 필요도 없으며 더군다나 기존체계의 결함을 메꾸고자하는 또 다른 결함의 양성이라면 오히려 경원해야 할 경우의 수일 듯 싶다. 하지만 충분히 야구계에서는 이 정도의 도전을 경이적이라고 할 만큼 효력이 있다고 믿는다. 숫자놀음과 보이지 않는 여려 영향에 대한 부도덕한 사기행각이라는 주장을 빌리빈에게 지우려면 그 주장을 하는 사람역시 해당하는 충분한 증거자료를 내놔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오클랜드의 역사를 무엇이라고 말할수 있을까. 그것은 야구계 있어서는 안되는 흑역사의 한 단편이라고 할텐가..아니면 망상에 젖은 한 단장이 벌인 아주 우연찮은 '일탈'정도로 기억될텐가..현재 LA다저스의 엄청난 비용지불에 대한 효과가 이제서야 나타난다고 말들을 한다. 초반부에서 벌인 매팅리의 무능력한 팀운용방식에 대한 비관적인 기술은 다 어디로 갔을까. 결국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고 하는 논리는 지극히 일반적인 상황일뿐이다. 모두다 양키즈처럼 다저스처럼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왜 계속 오클랜드가 회자되는지에 대한 궁금함은 이 책을 다 읽어본 후에 다시 한번 생각해봐도 늦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머니볼

저자
마이클 루이스 지음
출판사
비즈니스맵 | 2011-10-21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140년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대의 사건으로 꼽히는 '오클랜드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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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BOOK/에세이2013. 8. 4. 19:00


빔벤더스<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을 다시 보게 된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라이쿠더의 이야기는 추억속으로 잊혀진지 오래였을텐데하면서도 누구말처럼 '유락한 잠의 늪'처럼 빨려들고 몇개의 꿈을 거쳐서 특유의 멜로디에 절여져있었던게 아닌가싶을 정도로 옛기억이 되살아나버렸다. 당연히 이 영화를 다시보게 된 이유는 이 책때문이다. '몸전체로 영화를 이야기하게 되었다며 슬며시 언급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첫번째 무라카미라디오' '저녁무렵에 면도하기'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 에피소드가 잊혀진 꿈의 기억조각을 이어주었다면 다른 이야기들도 오래전 서점 한귀퉁이에서 감질나게 읽어대면서 분량 적음에 아쉬워했던 그 에피소드들이었다. 어투는 여전했고 에피소드들도 그 자리에 조용히 숨쉬면서 오랜 세월동안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나보다. 


사실 순서로 보자면 저녁무렵에 면도하기가 1탄이고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순이다. 그러니까 에세이들 연달아 읽을 필요는 없어도 무라카미 라디오시절의 시간적 흐름에는 미묘한 에세이들의 질감 변화에 대한 추이를 살펴보려면 순서대로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쨋든 면밀히 읽으면 그런 변동이 중요한 저자의 심경변화나 가치관의 변화에 대한 힌트가 될 수 있다싶어 꼼꼼하게 읽었다. 의외로 하루키는 감정의 선을 폭군처럼 넘나들지도 파격도 저지르지 않는다고 느껴진다. 에세이에는 일종의 룰이 있는 것이 아닐까. (일전에도 에세이를 쓸때 몇가지 자기만의 규칙이 있다고는 했다.) 어쨋든 순서상으로는 얼추 맞게 읽으면서 '여전하시군 무라카미 하루키는...' 라고 혼자서 중얼거렸나보다. 


무라카미 라디오를 굉장히 잘쓴 에세이의 교본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하고 있는 편인데 그것은 그가 유명작가여서라기 보다는 일상사를 화려한 과장이나 지나친 생략없이 담담히 줄줄 써내려가는 대범함이 좋아서였다. 어떤 가식도 없고 변명도 없고 자기학대적이지도 않다. 하물며 트위터나 페북에서 늘상 하는 은근슬쩍 신념과 가치관 강습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아님말고'식의 고집이 있긴해도 오버페이스하지 않고 선을 유지하면서 긴거리를 조근조근 달리는 마라토너같다고나 할까. 소설은 안그런데 말이다. 소설과 다른 에세이의 하루키는 '슈퍼맨'같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왜 있잖은가 평범한 사람들은 도대체 생각할거리조차 되지 않는 것들도 슈퍼맨 눈 광선처럼 그의 눈을 관통하면 조용한 일상에서 엉뚱하고도 기발한 이야기들로 화학적 변화를 일으켜버리는 그런 느낌 때문이다. 1960년 '브래지어 소각사건'을 보다가 하루키는 변태라고 읇조렸던 친구가 있었지만 리스토란테에서 테이블 한가운데 페로몬을 머금은 안개가 자욱히 떠있는 광경을 묘사하다가 쩝쩝거리는 소리때문에 산통다 깨버린 이야기를 두고는 정말 별거아닌 이야기를 미소짓게 만들만큼 잘쓴다고 동의했던 적도 있으니까 그는 천상 이야기꾼인 것이다. 


그가 썼던 표현 중 장어를 먹으면서 '높은 칼로리에 대한 자책감'이야기하고 '오일드 사딘'(올리브오일에 담겨있는 정어리 통조림)통조림같은 깡통비행기를 타고가다가 프로펠러가 멈춰버리면 '자신이 투명해지다가 끝내 육체를 잃고 오감만 남아 잔업처리하듯 세상을 마지막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했을때, 과연 이런 느낌의 모호한 느낌을 이렇게 묘사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거라고 감탄했던 적이 있었다. 아무튼 에세이는 저자의 삶을 거울처럼 반영한다고 볼때, 에피소드와 이야기들에 그의 정서적 리듬이 그의 생활적 패턴과 모종의 연결을 도모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한다. 어떤 식으로든 일상사을 배제한 에세이는 있을수가 없으니까. 게다가 그는 솔직하지 않은가. 나서기는 싫어하지만 속내를 글로 쓰는 것만큼은 과감하고 직설적이면도 있다. 


하루키도 갑자기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것을 원치 않으며 ('그런 무서운 짓을 두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라고 한바 있다.) 음악에 깊이 관여된 묘한 관점으로 '후렴구가 없는 인간'을 '함께 할 수 없어 묘한...말한마디한마디는 얼핏 옳아보이지만 전체적인 전개에 깊이가 없는 인간'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또 파스타를 이탈리아에서 먹는 것과 국내에서 먹는 것의 차이가 생기는 이유를 '음식이란 공기포함'이란 고개 끄덕일만한 이야기도, 그리고 '현실에서 간과할 수 없는 주머니속에서 3주전 깜박하고 빨지않은 테니스양말을 꺼낸 것처럼..' 이라며 당혹스럽고도 아이러니한 삶의 일면을 단 몇줄로 요약해주기도했다. 아마 그런 그의 시선과 감성이 좋았을 거다. 독자들은 아무래도 안일한 스토리라인에 매몰된 채 깊이라곤 별로 없는 '해설서'같은 것들에 너무 많이 둘러쌓여 있다보면 그리운 감성같은게 있기 마련이다. 


하루키의 이 에세이는 유독 친 생활적인 에피소드를 넘어서 감성적인 단락들이 존재하는데 이걸 읽고 있으면 그 광경이 그대로 옆에 다가와 있는 느낌이다. 게다가 그는 보이지 않는 감수성의 편린들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책속에 박어넣는다. 아마 이런 감수성 미장센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꼼꼼함을 자랑하시고 계시다. "카우아이의 섬읜 노스쇼어는 노을이 너무나 멋있고 아름다웠다. 선명한 오렌지색 덩어리가 산등성이 너머로 지금 막 숨으려고 하고 바다도 구름도 같은 색으로 물들어있다. 석양을 배경으로 정처없이 차를 몰고 브라이언 윌슨의 '캐롤라인노'가 흐른다. " 이 대목을 읽으면서 잠시 광경을 떠올려버렸다. 그리고 그가 묘사한 '따듯한 나이프로 버터를 자를때처럼 부드러웠다는' 수동변속기의 감촉이 그리워 어느날 친구의 오랜차에 앉아서 둑둑거려보기도 했다. 물론 다 쓸데없는 짓이긴하지만 역시 그의 말처럼 글쓰기에는 '감정의 기억'이 중요한 것 아닌가. 그의 감정기억이 유달랐다는 건 인정할수 밖에 없는 셈이다. 


이런 책들은 문학의 탈을 패스트푸드라고 레플러 여사가 힐난했던 모양이다. 하루키의 저작들말이다. 그런 평가에 초연한듯 싶다가다도 에전 읽었던 하루키 전기를 관통하는 그의 시니컬한 뒷끝을 알고 있는터라 어떻게든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만의 길을 갈것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의 영향력이 근자에 이르러 아주 원숙해진 느낌인데 서점에 갔더니 '스콧피츠제럴드포크너, 카포티, 챈들러, 레이먼드 커버' 한쪽 코너에서 '하루키가 좋아하는저작들'이란 타이을을 건채 진열되어 있었드랬다. 그랬던 거다. 그동안 굉장히 연기잘하기로 유명했지만 대중들이 미처 원숙함을 알기도전에 포기했던 배우를 '대세배우'가 몇번 언급해서 다시 세상에 나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정서에 동기화되고 싶은 독자들이 많다는 뜻이겠지 싶다. 




cf. 

그나저나 하루키는 왜 '사랑하기 좋은 나이'를 16~21 라고 말했을까. 생각해보고 있는데 답이 별로 없다. 그저 상대적으로 고민이 적고 상상력이 풍부한 나이여서 그런가. 글라스에 얼음, 보드카와 토마토쥬스를 섞고 리앤페인 우스터소스 한방울과 레모을 가볍게 짠 블러드 메리를 들고 있는 '포켓 트랜지스터 글래머 걸'은 죄다 그 연령대외에는 없을까?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비채 | 2013-05-2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무라카미 하루키식 해피 라이프를 엿보다!《채소의 기분, 바다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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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BOOK/소설2013. 8. 3. 11:00

좋은 커피란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천사처럼 순수하고, 그리고 사랑처럼 달콤하다  - 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



어느날 아오야마 마코토(?)는 우연찮게 '커피점 탈레랑'이란 카페를 들르게 된다.  그리고 그곳의 바리스타인 기리마 미호시의 커피가 남다르다는 것, 또 이 바리스타의 또 다른 재능, 일상에서 여러가지를 추리하고 (그녀표현대로  '잘 갈아서') 결론에 도달하는 특유의 논리적인 설명에 매료된다. 서서히 그녀에게 마음이 끌리는 아오야마는 자기도 모르게 발길을 탈레랑으로 옮기게 되고 조용히 번져가는 커피향과도 같은 미호시의 은밀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수첩>이 의외로 일본에서 베스트셀러의 대열에 올랐었나보다. 의외라는 말은 본격적인 추리계열의 책들중에서 그다지 충격적이라든가 임팩트가 강해서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던가하는 부분은 없다시피하는데도 작가의 초작치고 엄청난 기세로 판매부수를 올렸다는 점에서다. 우선 이 책을 스윽 대충 넘겨보면 라이트노벨스럽다는 의구심을 피할 수가 없다. 스토리위주로 흘러가면서 철저히 가볍고 톡톡튀는 설정을 무기로 삼는 전형적인 소설로. 아무리 봐도 표지는 거의 일본 연애시뮬게임에서나 나올법한 카툰애니 일러스트레이션이니 어떤 측면에서는 소설선택기준의 비주얼부분은 확고하다는 느낌이 들어버렸다. (가벼움을 싫어하는 독자는 표지만 보고 내려놓았을 것이다.)


어찌됐든 이 소설의 전반적인 구성이나 느낌은 표지느낌을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번역으로는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들을 주로 번역하신 양윤옥씨. 물론 1Q84처럼 깊이가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나미야 잡화점같은 치밀한 전개는 애초부터 어려운 것이고 흐름, 전개같은 것들은 후반부로 갈수록 어떻게든 결말을 모두다 챙기면서 매조지하겠다는 의지때문에 어수선하고 정신이 없다. 원래 데뷰작들이 그런거지라며 위로 할 수 있었던 건,  초반부의 신선한 아이디어, 그리고 참신한 전개, 튀는 에피소드와 대화..무엇보다도 기리마 미호시의 매력적인 캐릭터성..뭐 이런 것들 아닐까. 그 좋았던 설정이  점점 먹물을 먹은듯 우려의 어두움이 몰려오더니 그만 흠뻑 소나기를 쫄딱맞고 이건뭐지..왜 이렇게 결말이 가는거지라고 좀비처럼 되뇌이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아 작가님께서 의욕적으로 데뷔하셨지만 여기까지 온 것만해도 다행이다 싶다. 뭐 그럭저럭 나쁘지않은 수준이나 아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닌터라 일일히 거론하기는 어렵다. 차기작에서 향상시켜주세요 라고 좋게 넘어갈수도 있겠지 처음인데 이 정도만 해도 다행이다 싶었는데 우습게도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을 보고 좋게 보려던 마음이 싹 가셔버렸다. 이건 아무리 봐도 비블리아 짝퉁같은데라는 의구심이 스물스물 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런던스타일 책읽기>의 닉혼비는 자기칼럼을 좋아하는 독자 캐롤라인한테 걸으면서 읽다가 가로등에 부딪힐만한 책목록을 알려달라고 하면서 기어코 목록을 받아들었고 그 책을 사서 읽고 한마디했다. '가로등에 부딪힐만큼 대단하지는 않았다'고...탈레랑도 화려한 표지에 못미치는 재미라고 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비블리아 고서당에 비하자면 뭔가 중요한게 빠져버리는 듯한 허전함이 든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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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자체는 나쁘지 않은 이야기들이었다. 그렇다고 여타 일본 추리소설마냥 어느날 주인공이 미호시에게 해결하지 못하는 미궁의 사건을 의뢰하고 그녀는 움직이지도 않고 조용히 커피를 만들면서 사고의 고리를 따라 아오야마에게 숨겨진 사건의 이면을 설명해주고 미궁에 빠졌던 살인사건은 그녀를 통해 모티브를 얻고 이면에 숨겨진 기발하고 놀라운 비밀을 하나둘식 밝혀주는 식었어도 평타수준의 추리소설이 되었을 거다. 좀 에퀴르 포와적이거나 미스 마플적이 된다고 세상에 누구도 캐릭터 재반복이냐고 힐난하지 않는다. 다만 미호시는 비블리아의 시오리코 오마쥬아닌가. 아쉽게도 미스테리한 과거. 조용한 성격. 그리고 치밀한 추리능력. 누가봐도 예쁜 외모. 고서를 다루는 시오리코나 커피를 다루는 미호시나...가히 이정도되면 설정 표절이 되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 든다. 다들 뭐라 안하실려나 모르겠다.  


게다가 읽는내내 의심해봤는데 고우라 다이스케가 시오리코와 묘한 애정관계를 형성하는 것조차 닮아버렸다. 아오야마 마코토가 미호시와 서로 가까워지는 이 플롯의 유사성을 두고 미카미 엔은 뭐라고 할까. 탈레랑의 전략은 나쁘지 않았는데 비블리아 고서당의 레벨과 비교하자니 하자투성이의 소설처럼 느껴진다. 치밀함도 덜하고 캐릭터의 몰입감도 비블리아 쪽이 더 좋다. 아쉽게도 비블리아를 보지 못한 독자들이 탈레랑을 본다고 가정한다면 그나마 좀 나은 평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목까지 이렇게 비슷해서야 동어반복도 어느정도지 비블리아 고서당과 맞붙지 않은게 더 이상한게 아닐까. 그렇다면 비블리아를 봤던 독자들이 탈레랑을 봤을 때 느끼는 기시감은 묘한 불쾌함으로 남을 수도 있다.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것들이 세상에 단 하나뿐이 아닐수도 있겠지만 탈레랑은 아무래도 비블리아를 답습했다는 의혹의 눈초리를 벗어나기 힘들것 같다.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 1

저자
오카자키 다쿠마 지음
출판사
소미미디어 | 2013-07-0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일본 열도를 뒤흔든 커피 미스터리 걸작, 마침내 출간!커피를 좋...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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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BOOK/소설2013. 7. 25. 23:10


다른 소설을 읽는 기간에 비해선 오롯이 줄기차게 읽어댄 덕에 굉장히 빨리 끝장까지 넘겼다. 천천히 매일매일 분량대로 꾸준히 읽으려고 했는데 의외로 스토리가 지루하지 않게 읽히기도 했고 각 에피소드의 이음새가 산뜻해서 끊어서 쉬엄쉬엄가도 기억이 사라지지 않아서 더 좋았드랬다. 아무튼 호흡으로 보자면 이렇게 읽힌다는 건 재미있다라는 것외에 다른 말로 표현하기도 어렵다.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인 것이다. 


이전에도 몇번 짧게 언급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의 정체성과 핵심을 단 한줄로 요약하라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술계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정도만 이야기해도 독자들은 대충 어떤 내용인지 감을 잡기 어렵지 않을텐데, 특이한 점은 엔딩의 뉘앙스가 이질적이라는 점과 이 책의 저자가 스티브 마틴('헐리웃의 배우로도 알려져있는..'신부의 아버지'였던가..코미디쪽으로 알려져있지 않나 싶다.) 이라는 정도? 그리고 이와 더불어 스티브마틴의 소양이 전문가 수준에 육박해있고 그걸 제대로 묘사하고 표현하는 데 있어서 작가라는 타이틀이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는 점이다. 왜 그런 것 있지 않나. 하나만 공부만 잘해도 우와 하는데 갑자기 예체능도 잘해버리면 슬슬 경이와 찬탄의 대상으로 보이게 되고 그런 점이 슬슬 느껴지기 시작하면 읽는 태도가 갑자기 진지해져서 급평가모드로 돌변하는...(얼마나 잘 쓰는지 한번 보자구라고 혼자 되뇌였던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책의 매력적인 부분은 미술계의 소소한 이야기들은 자세하고도 일일히 묘사해 준다는 것이겠지만, 작가가 은근슬쩍 보여주는 미술계와 관련한 세속적인 느낌들의 정체, 그리고 오랜 세월동안 한자리에서 관찰하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통찰력 같은 가치관 같은 것에서 더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사실 초반부에서 이미 스티브 마틴은 주인공 레이시가 어떤 길을 갈 것인지에 대한 미래적 암시를 흘려놓았드랬다. 그러니까 흥미진진한 전개에 대한 주인공의 특별한 마음가짐이라던가 어떤 변화와 계기에 대한 반전이 느닷없이 등장하지 않을 거라는 점, 그리고  일관된 타락과 유혹의 길목위에서 이미 레이시가 자기의 운명을 행동으로 가늠케 해준다. 읽는내내 우와 이게 뭐야하는 충격은 사실 없었던 것 같다. 


"레이시가 소더비에 자리잡아가는 과정은 잔잔한 배경에 은근히 도드라지는 사악한 디테일이 되는 과정이었다 " (p37)


"수집가가 그림을 쫓는 과정이 표면상으로는 낭만적 구애과정처럼 보이지만 , 그 뿌리에는 시퍼런 욕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레이시는 욕정을 이용하면 남자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레이시는 이 원칙이 아트 비즈니스에도 적용될 거라고 생각했다 (p55) 


이 즈음되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눈치빠른 독자들은 감을 잡는다. 아..우리의 레이시가 이렇게 가는 구나. 드디어 본격적인 음모와 모험의 세계, 그리고 치열한 돈과 상업적 성공을 위해서 맨해튼의 갤러리를 쏘다니고 그러다가 자신의 정체성과 본연의 순수함을 잃게 되고 뜻하지 않는 사건과 그리고 잘못된 생각과 판단으로 곤혹을 치루겠구나라고..그리고 여지없이 그 예감은 헐리웃 영화의 플롯처럼 ...별 오차없이 들어맞는다. 어차피 이 책에서 많은 독자들은 갑자기 레이시가 욕조에서 샤워를 하는데 커튼이 젖혀지면서 스크림 가면을 쓴 괴한이 달려드는 스릴러를 원한 것도 아닐테고 자기 집 한복판 앤디워홀의 '오렌지 마돈나' 밑에서 자신의 애인인 파트리스 클레르가 피를 흘린채 얼음송곳에 찔려 죽어있는 추리이야기를 기대하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적게다나 소더비 경매에서 돌아가는 세상사람들이 생각치도 못했던 이면의 은밀하고도 소소한 에피소드정도만 되도 호기심이란 물에 번진 잉크처럼 서서히 독자들의 읽는 몰입도의 컬러를 진하게 만들어줄테니까...


오히려 책 중간에서 의외의 작가의 소양을 가늠하게 되는 문장을 만나게 되는데 오히려 그런게 더 기억에 남는다는 건 이 책이 마냥 스토리에 천착한 에피소드 모음집이 아니란걸 알게 해준다. 레이시가 그림배달을 하는 도중에 그림에 대한 다윈의 진화론적인 해석을 우연찮게 만난 남자에게서 듣게 되는데 그 인물이 또 '존 업다이크'다. 실제 존 업다이크가 어디선가 이런 발언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읽다보면 피식피식 웃음이 나올만큼의 의외성이 있어서 환기가 된다고나할까. 


"그림도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는 겁니다. 두꺼비의 눈이 입체적인 시각으로 진화하는 것처럼, 그림은 돈을 향해 움직여요. 사람들의 탐심을 얻지 못하면 아무리 명작이라도 지하실이나 쓰레기장에서 썩을 수 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스스로를 필효한 존재로 만드는 거죠" (p82) 


게다가 현대미술의 난해함과 젠체하는 현학적인 해석등을 신랄하게 비꼬는 견해도 슬쩍 등장한다. 개념미술에 대해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어려운 미술로 읽히는 이런 것들은 학리적이고 이론적인 미사여구로 치장하지만 결국 1960년대 시작된 '아이러니 미술'의 답습일뿐이라고..일반사람들이 느끼는 묘한 괴리감의 적확한 정체를 전문가적 식견에서 얻게 될줄이야. 그러니까 결국 예술가들이나 일반대중이나 모두가 느끼고 있는 모호함은 같은 것이었나보다. 무식함이 탄로나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애쓰는 딜러들의 애환이 느껴지기도 하고....


아무튼 이 과정에서 레이시는 자신만의 매력을 뽐내면서 스스로의 생존길을 찾는다 싶었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그리고 인생의 '블랙스완' 같은 의외성에 따라 댓가를 치룬다. 물론 여기서 많은 독자들이 현실의 잘나가는 인물들은 이런 행위적 인과에 대한 처절한 '인생학습'같은 걸 안하게 된다고 말할수 도 있겠지만 레이시의 입장에서는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 그녀의 인생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받아들여야할 엔딩이 되고 있다.  서글프지만 애닯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나라도 마찬가지였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어버렸다. 차라리 레이시는 당차고 매력이라도 있었는데 뭐 나같은 범인의 말로는 더 비참하지 않았을까. 의외였던건 진정한 메릴스트립의 빙의버전이라고 생각했던 바튼탤리가 아래와 같은 말을 하면서 레이시의 행적을 정리해줬다는게 놀랍다. 더 세속적일 줄 알았는데...그는 차라리 명인의 범주에서 스스로를 추스리는 현자였을수도 있겠단 생각이..갑자기 든다. 


"아트 비즈니스에 뛰어들면 말이야. 불법적인 지름길이 여럿 있다는 것을 알게 돼.......(중간생략) 그러다 어느날 갈림길에서 서서 내가 어떤 종류의 딜러가 될 지 결정할 때가 오지...똑바로 가는게 훨씬 수월하다는 걸 깨달았지.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뭘했든 잘 끝냈기를 바라네 " p446


레이시가 연옥으로 쫓겨났다지만 그게 오히려 천국일수도 있겠다. 파크스가 은근 슬쩍 이렇게 말했지 않은가. 땅은 현실을 묘사하고 달빛은 꿈과 생각을 표현했고, 물에 비친 달빛은 예술을 표현한 것 같다고..그건 꿈과 현실사이에 있으니까..라고.. 레이시가 꿈과 현실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 뉴욕을 전전하는 동안 독자들은 슬쩍 슬쩍 본인의 속된 욕망과 야망같은 것에 대한 기시감을 느끼지나 않았을까. 모험을 못해서였을 뿐이지..매력이 레이시만큼 없어서 그런게지. 어쩌면 더하고도 질펀한 진하디 진한 소더비의 음모속에서 서서히 침몰해갔을수도 있지 않았을까. 




레이시 이야기

저자
스티브 마틴 지음
출판사
홍시 | 2013-05-0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화려한 미술시장에 뛰어든 여성 아트 딜러의 이야기!뉴욕 미술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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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BOOK/소설2013. 7. 9. 18:07






서른여섯 살, 다자키 쓰쿠루는 철도 회사에서 역을 설계한다. 역을 만든다는 행위는 그에게 세상과의 연결을 뜻한다. 과거의 상실을 덮어 두고 묵묵히 살아가는 그에게 어느 날, 처음으로 사랑이 찾아온다. 그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은 두 살 연상의 여행사 직원 기모토 사라는 고등학교 시절, 다자키 쓰쿠루가 속한 완벽한 공동체(여기서 공통체란 아카,아오,시로,구로,그리고 쓰쿠루로 이루어진 친구들모임을 의미한다.)와 그 결말(어느날 갑자기 친구4명이 쓰쿠루를 외면해버림)에 대해 듣고 불현듯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한 순례의 여정을 제안하는데... 



'대학교 2학년 7월부터 다음해 1월에 걸쳐 다자키 쓰쿠루는 거의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때라면 삶과 죽음을 가르는 문지방을 넘어서는 일 따위 날달걀 하나 들이키는 것보다 간단했는데...'



'1Q84'가 광풍처럼 불어닥친지 얼마되지 않은 듯 싶은데, 어느덧 '공백기를 깨고 질풍처럼 등장한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타이틀이 다시 이곳저곳에 나부낀다. 이 센세이셔널한 인기야말로 굳이 나서서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지 않아도 될 만한 거장들이 가지는 퀄리티 이팩트겠지만 어찌됐든 하루키가 한국에서만큼은 인기작가라는 사실은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여름휴가때 읽어야 할 추천도서'항목에 이 신작이 자리해주시고 계셨다. 과히 이번 여름은 '진격의 소설계'라고 불러야 할 판이다. 


하루키의 이 신작은 1Q84 이후 느닷없긴 했다. 나름대로는 과거작들을 계속해서 re-reading하고 있는터라 개인적인 공백을 느낄 사이가 별로 없었다. (엊그제 1Q84가 나온 듯 싶었는데..) 반가운 쪽이 더 크다는 점에서는 나도 팬의 몫을 다하고 있는 느낌은 든다. 마음속은 늘 하루키를 읽고 있었다고 아부라도 할 만큼.....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도 그렇고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빵가게 재습격,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 해변의 카프카 같은걸 계속해서 읽는 건 싫지 않은 경험이다. 읽은걸 또 읽었다니 대단한 광팬이로군 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것 보다는 그저 읽었던 시절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게 싫어서였다고 보는게 더 정확하다.  다시 읽어보고 그때 못느꼈던 새로운 뭔가를 발견할 수 도 있지 않을까하는....그 와중에 에세이들도 꽤 많이 출간되어서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재출간이다.) 무라카미 라디오라든지 다수의 잡지들에 연재되었던 것을 연작으로 묶었던 책들도 꽤 많이 읽게되었다. 좋은 시절이다. 구하기 어려웠던 에세이들도 죄다 모아서 출간해주다니... 그러다가 덜컥 <색체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이하 색체없는쓰쿠루)가 나와줬다.  


상세보기


결론적으로 봐서 초반부를 읽다가 아...이 분께서 또 이원화된 세계를 오가면서 다소 몽환적이면서도 미스테리하게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엮어보실려나보다라고 생각했드랬다. 쓰쿠루가 친했던 친구들로부터 이유도 모를 배척을 당하게 되고 홀로 동떨어지면서 미스테리하게 전개되고 이윽고 친구들이 밝힌 쓰쿠루를 친구들의 모임에서 몰아내게 된 원인을 이야기할 때, 그 기대치가 절정을 치고 올라가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는 '자신의 등장'으로 인해서 유즈가 강간을 당하게 되고 이 세계에는 자신과 다른 똑같은 자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미심장한 쓰쿠루의 의구심과 맞물리면서 점점 '두개의 달'이라도 떠있는 이질적 공간으로 향하는 문이라도 등장하지 싶었는데 그만 모든걸 접고 쓰쿠루가 다 혼자 망상하는 걸로 매조지하셨다. 또는 이렇게 이야기해야겠다. 현실적인 성찰로 돌아서버리셨다고... 아무래도 이 책이 단행본으로 끝나게 된 원인이 이거 때문이었을까. 상중하로 출간되었다면 분명히 고속도로에 등장하는 계단이든, 섹스를 통한 이공간의 접속이라던지하는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이 나왔을 지도 모르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하루키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해변의 카프카',  그리고 '1Q84'로 오면서 더 적확하고 명료한 리얼리티를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원더랜드쪽이 의식을 또 하나의 세계로..그리고 해변의 카프카와 1Q84를 구분하기 어려운 두 사건의 교묘한 접합점에 판타지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를 꾸려가는게 무라카미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신작도 그럴 것이라는 추측을 피할 수 없는 것일테지만...그래서 쓰쿠루가 원인도 모르고 고등학교 시절 친했던 친구들 무리에서 떨어져나오고 나중에 여자친구 사라에 의해서 다시 과거를 돌아가보기로 했다는 지점에서부터 판타지는 다시 시작될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쓰쿠루이야기는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처럼 전개되었다. 주인공의 무덤덤한 허무주의에 가까운 태도하며 굳이 관계회복을 위해서 애쓰려하지 않는 모습도 그렇고... 그런데도 막판에 가면 쓰쿠루는 굉장히 긍정적이고 의미심장한 표현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대목들...


"그렇지만 그것은 올바른 가슴아픔이며 올바른 숨막힘이었다. 그것은 그가 확실히 느끼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앞으로 그 차가운 중심부를 스스로의 힘으로 조금씩 녹여내야 한다.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동토를 녹이기 위해서 쓰쿠루는 다른 누군가의 온기를 필요로 했다. 자신의 체온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일단 도쿄로 돌아가자. 그것이 첫걸음이다 " (p388) 


"인생은 복잡한 악보같다고 쓰쿠루는 생각했다. 16분 음표와 32분음표, 기묘한 수많은 기호, 의미를 알수 없는 표시들로 가득차 있다. 그것을 올바르게 해독하는 것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고, 설령 올바르게 해독했다하더라도, 또 올바른 음으로 바꿔냈다하더라도 거기에 내포된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평가해주리란 보장이 없다. 사람의 행위는 왜 그렇게 복잡하게 엉켜야만 하는 걸까 " (p404) 


"우리는 그때 뭔가를 강하게 믿었고, 뭔가를 강하게 믿을수 있는 자기자신을 가졌어. 그런 마음이 그냥 어딘가로 허망하게 사라져 버리지는 않아 " (p437) 


그리하여 쓰쿠루는 오랜시절 겪었던 방황으로부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려고 애쓴다. 물론 중간에 등장해버린 하이다와 미도리카와 에피소드때문에 굉장히 혼란스럽긴 했다. (이 즈음에서 기묘한 판타지로의 장치라고 여기지 않았다면 하루키 팬이라고 할 수 없지 않나싶다.) 그건 어쩌면 그가 방황하고 충격적으로 버림받았던 과거로부터 연유한 죽음성찰이었나보다. 그래서 스스로 표현했던 것처럼 '근본적인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 지도 모를...정신의 자연스런 흐름이 장애물을 만나 어딘가에서 멈추고 그때문에 자기라는 인간이 뒤틀리게 되었다고' 생각한 그 지점에서 돌파구를 찾았던 게 아닐까.  아카, 아오, 시로, 구로 사이에서 벌어졌던 묘한 절제와 균형의 관계들...결국 이런 이상적인 관계가 언제인가는 깨질것이라는 두려움은 쓰쿠루를 희생양삼아서 터져버렸지만 쓰쿠루는 원망도 억울함도 없이 대신 '죽음'을 생각하며 지내왔다. 그리고 모든 걸 받아들이고 다시 자신을 버렸던 친구 4명을 만나고자 도쿄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것들이 전부 다 사라져버릴 그런 '마음'들이 아니었을거라고' 읎조리며 서서히 과거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다. 아마도 그래서 하루키의 이 작품이 '노르웨이의 숲'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적어도 여기엔 현실이 붕괴되어서 의식의 세상으로 불사의 세상으로 가버리는 판타지도...두개의 달이 교차하는 이세계의 조직으로부터 쫓기는 스팩타클도 없었지만 '냉정하면서도 언제나 쿨하게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는' 나의 모습이 녹아져있었으니까, 쓰쿠루는 나였고 나는 쓰쿠루같은 측면이 있었으니까..동질감이란 이런 것 아닐까.


과거의 상처로부터 태연하려고 애쓰고 관계지향적이고 밀접한 소중한 무엇인가로부터의 박탈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하는 본능적인 보호감을 감춘채 사는 현대인들은 많다. 다자키 쓰쿠루적이 아니었다고 항변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어느순간에는 정말 쓰쿠루적이었던 시절이 있었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순례의 해 소곡집의 제 1년 스위스에 들어있는 프란츠 리스트의 <르 말뒤페이>에 '전원풍경이 사람의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영문모를 슬픔'이 일상이던 시절. 슬픔은 나를 지배하고 있었고 잠시동안의 암울함과 끊임없는 어두운 터널을 터벅터벅 걷고 있는 자신을 상상한다.  이 정도되면 나 조차도 다자키 쓰쿠루였던 적이 없었다고 감히 말을 못할 지경이다. 책을 다 읽고 느낀건 하루키스럽지 않아서 오는 허망함보다 나도 쓰쿠루처럼 그랬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라는 기시감이 더 강했드랬다. 묘한 느낌이지 않나..과거에 두고온 들추고 싶지 않은 기억들. 추억들..


그나저나 기모토 사라로부터의 전화는 어떤 내용이었을까. 쓰쿠루는 사라로부터 수요일에 원하던 대답을 들었을까.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3-07-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지금, 당신은 어느 역에 서 있습니까?모든 것이 완벽했던 스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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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BOOK/소설2013. 6. 27. 19:00

빅토리아 여왕의 증손녀, 글렌 게리 래녹 공작의 딸. 왕위 계승 서열 34위. 본명 레이디 빅토리아 조지애나 샬럿 유지니.  1930년대 배경의 영국왕실 배경으로 빅토리아 여왕이 증조 할머니. 이복 오빠이자 무능하기 짝이 없는 빙키의 스코틀랜드성에서 살다가 물고기처럼 생겨먹은 지그프리트 왕자와 정략결혼시키려는 조짐을 읽고 탈출. 런던 래녹하우스에서 스스로 자립하려고 애쓰지만 왕족이라는 출신성분으로 여러모로 제약과 거추장스러운 사건들 발생...이윽고 살인사건에 연루되면서 (오빠 빙키가 누명을 쓰게 됨) 사건해결을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로 구성되어져있다. 그다지 복잡한 구성력도 그리고 엄청난 반전같은게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특유의 재기발랄한 문체와 톡톡튀는 주인공 조지애나의 캐릭터성에 기대어 유쾌발랄한 여러가지 일상을 엿보게 해준다. 


아마도 저자인 라이스보엔이 방송국에서 각본작업을 했었던 이력이 있으므로 정통문학계열의 고지식하면서도 따분한 표현들을 뒤로하고 현대적 색체에 조금이나마 발을 맞추는 듯한 스타일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매력적인 점이라면..아무래도 영국왕실주변의 쏠쏠한 이야기들. 왕족들이 현실적으로 어떠한 상황에서 자신들의 근엄함과 명예를 유지하면서 버텨내는지에 대한 묘사에 있다. 아무래도 왕족으로서 계승의 문제에 직면하지 않는 이상, 화려한 배경들은 결국 아무짝에 쓸모없을거라는 저자의 짐작도 그리 틀려보이지 않고, 그리고 거기에서 벗어나려는 주인공 조지애나의 적극성또한 현대여성의 실리적인 사고를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으니...왕족이라고해봐야 별개 없다는 무언의 유머도 섞여있지 않나싶다. 



'그럴만한 재산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왕족답게 행동해주길 기대한다.....'

'헨리8세가 앤블린에게 맥주한잔 마시러 오면서 하이넥 드레스는 절대 입지 말라고 했을 때, 그녀의 기분이 이랬을까' 


같은 표현은 보자면 라이스보엔의 장기는 실생활에 밀착되어있는 감각적인 표현들을 즐겨쓰고 특유의 문화에 베어있는 정통성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충분히 읽는 재미를 이끌어내줄 만큼 현실적이다. 이게 추리소설이자 미스테리로 완전히 빠져들었다면 저자들의 대개의 과도한 설정과 분위기조성에 힘을 들인 나머지 조지애나의 매력이랄수있는 '브리짓존스'의 소탈함같은 '독백'의 미를 잃어버렸을 것이다. 왜냐면 진지한 미스테리물에서 유쾌한 여주인공의 쾌활함이란건 꽤 어울리기 힘든 요소들일테니까... 어찌됐든 보엔의 표현들은 재미난게 많다. 이를테면 '켈트인다운 블그스름한 금발과 주근깨...마치 푹 삶은 커다란 새우같았다' 라는 표현이나...'마리사는 광택이 나는 자주색 배수관 같았다'라는 표현등은 영국식 유머에 근접해있는 재기넘치는 비유들이었으니까...


아마 이 책을 읽게 되는 이유는 겉표지에서 뿜어져나오는 흥미진진한 로맨스 소설같은 뉘앙스. 그리고 왕실가문 출신의 여주인공이 보여주는 좌충우돌식의 모험담. 그리고 엄청나게 쏟아져나오는 영국식 문화와 기기묘묘한 허세들. 진짜 마음가짐이란 사실 조지애나의 어머니에게나 해당될까 ..다들 격식차리고 체면 중시하다가 자기자신을 어쩌지못해서 수동적으로 전락해버리는 주변인물들에 대한 호기심같은 것이었으리라. 그런게 재미난 부분이지 다른 곳에서 재미난 부분을 찾기는 어렵다고 본다. 너무 의미를 크게 부여해봐야 얻을 건 별로 없을 테지만, 그 정도라면 즐거운 한편의 미스테리 모험담 정도 될려나...




탐정 레이디 조지애나

저자
라이스 보엔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2-04-0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1930년대 영국 왕실을 배경으로 정의감과 독립심으로 똘똘 뭉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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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BOOK/에세이2013. 6. 9. 23:30


서평집을 굳이 구매해서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기도 하고..그런데도 '서서비행'을 읽어보자고 서점에서 집어온건 오로지 저자의 재기발랄한 책탐과 내용에 천착하지 않은 채 묘하게 떨어진 관점에서 글을 쓰는 그 스타일 때문이었다. 와서 전체적으로 스윽 읽어봤는데 책의 라인업은 국문학과 출신스럽게 나열되어져 있고 적당히 대중적이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을 약간씩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리스트들이었단 생각이 든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이 책을 굳이 다 읽어볼 필요는 없겠다. 저자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여기에 쓰인 서평들만 가지고 그 책을 구입하는 정서를 찾아헤맨다는 건 그럴듯한 전단지 하나를 들고 거기에 쓰인 몇가지의 문구만으로 '날 믿어볼래요' 하는  빈약하고도 은근한 '강요'비스무리한 설득력에 현혹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물론 서평에 공감이 되면 구입하는 건 인지상정이지만서도..) 


서평집이란 사실 이래서 위험하다. 읽기에는 부담이 없지만 글을 읽은 사람의 관점에서 쓰여진 일종의 감상문인게고 그러다보면 서평 중반부에서 '읽으려면 읽고 말려면 마세요' 라는 마치 관조적인척하는 고고함이 슬쩍쓸쩍 거스릴 수도있다. 저자는 이걸 방지하고자 조금씩 자기학대적인 유명작의 인용구들을 붙여서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표현은 어리둥절하고 너무 뜬금없다. 한참을 뒤적뒤적거려서 얼마나 많은 시절을 MD로 보냈나싶어 찾아봤는데 개인정보가 드러나있지는 않은터라 연령대가 삽십부근을 찍어주시는 연륜의 소유정도란걸 알기는 했다. 표현들은 지극히 개인적이어서 공감과는 거리가 먼 서평들도 좀 있고 읽었던 책 이력과 인용구들의 나열을 보면서 그동안 쌓아온 내공(?)의 힘도 느껴지지만 아쉽게도 '그런가' 결론이 뭐지' 라는 황망한 서평들도 꽤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게 아쉽다. 아무리 개성의 표출이라곤 해도 서평은 '서를 평해야 제맛이니까' 너무 개인적이면 차라리 책일기에 가까운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다행이었던 건, 해당 책의 서평을 쓰면서 언급했던 다른 책들의 인용구들 읽는 재미정도...그리고 본인도 <나는 왜 쓰는가>-조지오엘에서 언급한 '진짜 목적과 겉으로 내세우는 목적이 다른 경우, 본능적으로 긴단어와 진부한 숙어에 의존하게 된다. 마치 오징어가 먹물을 뿜어내듯..' 라는 뉘앙스를 되새기게 만들어주었다는 정도..과용한 인용과 진부한 표현들이란 과연 어떤 건가를 계속 생각하면서 글을 읽었드랬다. 그래도 좋지 않나싶었던 건 저자가 빠듯한 MD생활속에서도 탐닉했던 편력들하며 중독에 가까운 읽기능력, 그리고 쉴새없이 쏟아져나오는 다른 책들의 편린들...그래 이 정도 읽었으니까 이렇게 여러가지 감정들의 물줄기가 형형색색 뿜어져나오는 거겠지. 머리속에 가득찬 표현들, 그리고 사고, 생각들, 견해. 깊이있는 가치관까지 수많은 파편들이 서평에 꽂혀있더랬다. 아마 어안벙벙한 예제들의 스피드와 저자본인이 보유한 굉장히 아웃사이더인듯한 스타일에 그리 손을 들어줄 수 없어서 미안할 따름이지 이 분의 책에 대한 애정을 누가 따라가겠는가. 읽은 세월하며 고뇌한 그 흔적들하며 ....


책 어디즈음에서 그런 내용을 본 듯 싶다. 

좋은 독서가가 될 수는 없어도 좋은 책을 소개해 줄 수는 있다고....

이 책은 이런 저자의 마음이 담겨있는 책이다. 다만 왠지 치기어린 듯한 느낌은 왜 드는지 잘 모르겠다. 혹시 모르지 나도 세대가 달라서 이젠 이런 저자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일수도....





서서비행

저자
금정연 지음
출판사
마티 | 2012-08-17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삶을 바꾸는 독서가 아닌, 자신의 삶을 인정하는 독서의 세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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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BOOK/에세이2013. 6. 7. 00:00

하루키, 하루키 

- 히라노 요시노부 /지학사.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생 히트작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나서 그 쓸쓸함과 뭔가 애닯은 듯한 감정을 가슴에 품은 채 시절을 감내하듯 지내는 것 정도는 당시의 또래들에게 굉장히 유행병 같았다. 그럼 이 쓸쓸함과 거리두기에 독자들은 완전히 몰입했던 것일까. 물론 이런 성향을 두고 하루키의 디태지먼트(물러섬, 관조적, 수동적 태도)로 정의하긴 한다. 시대적 종말론 비슷한 우울함과 맛물려서 90년대 후반은 어수선했으니까.. 그래서 하루키의 타작들도 다 이러했을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사실 다른 연작들의 추상적 스토리에 비하면 굉장히 리얼리틱했다.  아마 <해변의 카프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양을 둘러싼 모험>같은 이야기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난해함이 깃들어 있음을 인정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개인적으론 굉장히 어려웠다. ) 


차라리  동화적이면서도 우화적인 스토리라인에다가 미스테리한 설정, 그리고 조근조근 이야기하듯 펼쳐지는 삶의 독특한 일상들이 더 매력적이었다면 모를까. 그러니까 대다수의 독자들은 하루키 삶의 attitude같은 걸 사랑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구마모토 굴과 차가운 샤블리를 한잔 하면서 호박색 반달을 바라보고, 맥주를 곁들인 생선요리를 가볍게 먹고 콜트레인을 들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었는데 갑자기 노크소리가 나고 구멍을 통해 바깥을 보니 양사나이가 서있었다라는 식의....가벼우면서도 흥미진진하고 뭔가 의미심장한 일련의 사건들이 소리없이 펼쳐지는 이중 구조의 세계...이런게 하루키가 펼쳐놓은 이야기의 프레임들이었다. 



각자의 해석에 기대어서 하루키를 바라보긴 하지만 사실 하루키가 가진 사생활적 편린들은 대체로 소설 그 자체 외에서 찾기가 수월치않다.  수필은 그나마 좀 낫다. 소소한 자기견해를 덤덤히 내뱉어주니까. 평상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건 어떤 것이고 또 꺼려하는 건 어떤 것인지 독자들은 편하게 흡수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진실인지 신뢰성이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 어차피 하루키라고해서 하기 싫은 이야기를 할 리 없을테고 해가 되는 이야기에도 나름의 이유를 붙일 것이고, 어지하다보면 괴이하고 독특한 성격에 대한 기술좋은(?) 변명을 듣고 있는 건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언젠가 1Q84를 해석해놓은 해설서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걸 넌지시 넘겨보면서 이건 어떻게 해서 쓰여진 것일까라고 궁금했다. 정말 저자는 하루키의 의도를 100% 확신이라도 하는 걸까라고...진짜인지 만들어낸 허구인지 아니면 자신만의 독특한 견해인지 알 길 없는 그 해설서의 귀퉁이에서 느낀건 하나, 오히려 '하루키의 진짜 속내를 아는 인간은 없을 거다' 였다. (해설서 별로 안좋아한다.) 

 

그러다가 이 책을 어떨결에 보게 되었다. <하루키, 하루키>라...자전적으로 스스로 이런 책을 내어놓았다면 그동안 <무라카미 라디오>같이 일상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솔직하게 토로하는 고백서정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저자는 하루키가 아니었다.. 읽다보니 굉장히 사적인 이야기들이 등장하고 꺼려할만한 내용도 나오고 있다. 진지한 죽음의 첫경험이 아버지친구 아들의 익사, 그리고 할아버지의 선로위에서 죽음(하루키의 할아버지는 교토의 승려, 술취한 채 선로위에서 자다가 전차에 몸이 절단되어서 사망함) 동갑의 부인과의 만남,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평에서 느껴지다시피 어설픈 미국현대소설 표방으로 평가받았던 아쿠타카와 상과의 악연. 리얼리즘 문체를 재미없어했다는 일화. 일본 출판계의 귀찮고도 짜증나는 번잡스러움. 편집자 야스하라켄과의 설전과 절교. 해외로 전전했던 그의 일본회피적인 여행들.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본인의 입으로 미처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았으나 수많은 인터뷰들과의 미묘한 간극속에서 저자가 잡아낸 심리적 내막들을 읽다보면 그럴수도 있겠다싶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하루키가 '순문학적 어휘'들의 필요성에 대해 그다지 중요하게 보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거리와 , 그 불확실한 벽>, <1973년의 핀볼>같은 과거작들을 실패로 보아서 언급을 그리 자주 안한다는 점, 일본문학계의 숨막히는 정서가 싫어서 해외에서 글을 썼다는 견해등이다. 여기에서 이미 밝힌 바 있었던 <태엽감는 새>에서 떨어져나온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이야기도 재미있고 커트보네거트의 영향력에 관해 인정하지 않는 점, 다만 스콧 피츠제럴드를 좋아하고 그 때문에 프린스턴에 머물기도 했다는 이야기들은 짐작컨대 상상으로 추측만했던 느낌들이 현실화되는 느낌이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라고 혼자 생각했던 것들이 맞아떨어지는 걸 보면 하루키는 가식적 인물은 아닌 듯 싶다. 


하기야 이런 하루키 분석이야기를 읽는다고 해서 그의 저작들이 더 잘읽혀지는 건 아니다. 여전히 읽는 건 변함없을테고 그의 과거이야기가 얼마나 작품에 반영되어서 영향력을 뿜어내는지도 알 수 없는 건 매한가지다. 다만 하루키가 <해변의 카프카>를 내고 예루살렘상 시상을 위해 참석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소감. '벽과 계란'이란 제목의 연설문을 보면 그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했던 부분만큼은 명확했던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본특유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념'같은게 전달되었다고 할까.. 그가 소설을 쓰는 이유로 그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개인의 혼이 가진 존엄함을 드러내어 거기에 빛을 더하기 위해서...우리들의 혼이 시스템에 끌려들어가 멸시당하는 일이 없도록 항상 거기에 빛을 비추고 경종을 울리는 것, 그것이 이야기의 역할이다' 라고 ....그러니까 고정관념과 시스템이 만들어놓은 귀찮고도 더러운 이 세상에 반감을 품고 본질적인 부분에 더 많은 빛을 비추길 원한다라...까달스러운 저자답긴 하다. 주류의 격식같은 을 싫어하는 줄을 알았지만서도..


사실 파파라치마냥 치부를 흔들고 치정극과도 같은 비릿한 숨결을 지면에 토해놓지 않아도 하루키의 정서는 작품으로 이해될 만하다. 그가 와세다 대학 문학부 기숙사생활이 <노르웨이의 숲>의 배경이 되었다는 걸 안다고 해서 그의 작품이 갑자기 다르게 읽혀질리도 없고 그가 아쿠타카와 상 수상 실패로 트라우마있다고 해도 독자들은 신경쓰지 않는다. 더우기 노르웨이의 숲의 미도리가 부인 요코로 읽혀진다고 해도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냐라고 하면 할 말도 없다. 그저 하루키에 대한 남다른 관심들은 그의 작품이 보여준 정서의 궁금함이 벌인 격변의 일기정도...한 여름밤의 스콜성 폭우정도?  이 정도의 책이라면 가볍게 읽을 만하고 그렇군하고 넘어가줄만하다.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이 책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하루키가 스스로 동여맨 자신의 이야기를 들춰라도 줬으니...그나저나 하루키는 이 책을 보면서 뭐라고 할까나..아마 자기멋대로 해석하고 맘대로 썼군' 이라고 생각하거나 '될데로 되라지, 아무렴 그렇게 생각하시든지'...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루키 하루키

저자
히라노 요시노부 지음
출판사
아르볼 | 2012-10-22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진짜 하루키를 만나다!하루키의 인생, 하루키의 문학 『하루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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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