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4.05.23 모비딕 - 허먼멜빌 2
  2. 2013.09.08 모비딕, 거의 다왔어
  3. 2013.08.18 르네상스(민혜련)와 모비딕(김석희옮김)
Review BOOK/소설2014. 5. 23. 16:44


아주 오래전에 '폭풍의 언덕'과 '모비딕'을 읽었었다. 그러니까 이런 고전따위는 유년들의 삶에서 좀처럼 자발적으로 읽히기 힘든 어떤 지루함의 정서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건 내가 '문학'적으로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었던 감성적 부류가 아니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때로는 친구들 중에는 캐서린 언쇼를 지긋한 눈빛으로 이해한다고도 했고 에이허브의 광기어린 하얀고래 집착증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본다고도 했드랬다. 나보다 다들 성숙해 있었던 걸 보면  그 나이, 그 시절, 내 정서의 함량을 넘어서는 퀄리티적인 괴리감이 그 친구들에게 있었던 것 같다. 당시의 나에게는 정신착란의 캐서린, 돌아버린 미치광이 에이허브였을 뿐이었으니까. 


그리하여 멜빌의 다큐같은 '모비딕'을 다시 차근차근 읽어보리라고 책장을 넘겼다. 무수한 세월들의 폭풍우가 가져다준 내 소양의 흔적들은 프랑스 척탄병같다던 피쿼드호을 완벽히 감싸안을 만큼 보호무늬가 되어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과연 나는 지리하게 이어지는 고래 해설서와 같은 대목들을 묵묵히 읽으며 지나갈만큼 동화되어 있었고 무덤덤해져 있었드랬다. 까짓거 2절판 운운하며 참고래와 향유고래 특성을 백과사전처럼 읇조려준다고 해도 난 이게 피쿼드의 생애와 사실적으로 여떻게든 연결되어있어서 갑판위에 이슈메일 뿐 아니라 스타벅스터브, 퀴퀘그에게 모종의 '지식'(?)이 되어줄거라는 착각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그리고 괴이하다고 느꼈던 크레타 문양의 형형색핵 문신을 가진 작살잡이 퀴퀘그를 비롯한 타슈테고와 다구의 투창병들 곁에서 작살날을 빼서 면도라도 하고..경건한 작살잡이는 한푼의 가치도 없다고해서 일부러라도 스스로를 흉포한척 하는 시늉이라도 할 뻔했다. 


이정도면 예전의 모비딕이 아닌거다. 135장 넘는 항해 일지같은 해설서를 관통하는 동안 어디 서고에 보관되어있는 기록지들의 몇 십년 연대사를 추적하고, 중간중간에 있었던 비밀스럽고도 은밀한 비화들을 숨죽여 읽던 후대 기록자의 마음으로 항로를 따라간다는 것, 이슈메일의 묘사대로 고래를 해체하고 작살던지기에 대해서 숙독하며, 기름통에 파묻혀 열병을 앓다가 살아난 퀴퀘그의 관을 옆에서 같이 만들었을 것 같고,  용연향 가로채기같은 고래강탈의 현장에서 같이 낄낄대고 있었던 것 같은 현실감, 다 모비딕을 다시 읽었을 때 생겨났던 보기드문 경험들이었다. 그러고보면 지리하게 서술된 고래에 관련된...바다와 관련된 수많은 백과사전식 해제들은 소설적 스토리와는 별개로 피쿼드호의 리얼리즘, 그리고 다큐적인 현실감들은 '시간의 세례'에 의해서나 드러나는 모종의 비밀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예전에도 읽었지만 그땐 흰고래를 쫓는 광기어린 에이허브말고는 떠오르는 어떠한 이미지도 없었으니까..


낸터컷물보라 여인숙, 피터코핀에 걸려있는 성난고래가 선채를 뛰어넘다가 돛대머리에 꿰인 그림이나...,  광택이 나는 상아목걸이를 목에 건 야만적인 에티오피아 황제처럼, 적들의 뼈에 돋을 무늬를 새겨서 화려하게 몸치장을 한 솜씨좋은 식인종의 이미지를 뿜어냈다던 피쿼드호의 묘사는 기억조차 나지 않았고 퀴퀘그의 '요조'는 이제서야 그 존재를 눈치챘다고 한다면 가히 '모비딕'을 읽었다는 표식은 좀 더 레벨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한 3 레벨 정도 되려나..요즘으로 치차면 잡설을 위한 잡설일지도 모르는 멜빌의 이런 묘사들은 '광경'에 대한 상상을 부추기고 감정에 대한 풍경을 그리게 된다. 나도 고래잡이를 더럽고 냄새나고 비위생적이고 기껏해야 도살업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다. 도살업을 즐기면서 그저 흰색이 주는 순결함을 어떻게든 더럽혀보자는 잔인한 뱃사람들의 무모한 도전기가 모비딕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몇몇의 독자들은 피쿼드가 모비딕을 만나기전까지 수많은 여정들이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로망의 해양탐험소설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나. 캄비세스 카이사르, 그리고 티모르 잭이라도 만나고 일본왕 모르콴과 칠레고래 돈 미겔을 보면서 고래 수족관에 온 구경꾼마냥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관람하고 열대해역의 문지방으로 들어가 그곳을 영원히 지배하고 있는 키토의 화창한 봄빛 속을 달리면서 향기롭고 넘칠듯한 풍족한 낮시간을  장미향수를 뿌린 눈으로 만든 페르시아 빙과를 수북히 쌓은 수정그릇에 비유할 줄 안다면 잠시나마 모비딕은 로망소설일 거다. 게다가 에이허브는 선원들에게 듣기에도 애매한 고고한 자신의 은유와 비유를 설파하지 않는가. 듣고 있으면 마치 바다를 향해서 자신의 자아를 어떤식으로든 그럴듯하게 포장하려는 고집센 철학자같으니... 고래잡아 죽이기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소설치고는 너무 낭만적인 것이다. 


'나를 모욕한다면 태양이라도 공격하겠어' 대충은 에이허브가 어떤 캐릭터인지 알듯한 구절은 이 구절하나만은 아니다. 물그러미 바다를 내려보면서 '나에게 달아나는거지'라고 미친노인이 지금까지 보여준 것보다 훨씬 깊고 절망적인 슬픔을 띠고 있었다고 했는데 이즈음되면 이 포경스토리가 기어코 해피엔딩으로 가는 일은 배제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듣기에 따라서는 에이허브가 모비딕을 잡던 말던 책의 중간이상을 넘어가면 모종의 안도감같은 것들이 감돈다. 하이델베르그의 술통에 빠져서 생을 달리할 뻔했던 타슈테고와 그를 살려낸 퀴퀘그, 그리고 바다에 자신의 자아를 두고 정신이 나가버린 피핀, 요나와 잡힌 고래와 놓친고래에 대한 작가의 진지한 고찰.. 비록 스쳐지나가듯 정답없는 몇가지의 상념들이었을 지도 모르지만 배위에 있거나 지면위에 있거나 다들 비슷한 생각들을 하면서 살아간다고 보면 이 소설도 나름대로 역할을 다하고 있는 셈이다. 


퍼스를 얽어매고 치솟아오른 모비딕이 데리고 사라진 피쿼드의 영혼들틈에서 살아남은 이슈메일의 엔딩이 너무 단촐해서 시간에 쫓긴 블럭버스터의 가위질이 생각나지만 미친듯한 엔진과열음이 들리다가 기어코 어느순간 엔진은 멈추고 고요가 찾아오면 그때야 말로 꼭대기까지 삼켜진 피쿼드호 처럼 모든게 끝난다고 깨끗이 털어버릴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하여 수많은 여정끝에서 며칠간의 추적, 그리고 모비딕과의 해후끝에는 피쿼드에 실려 같이 항해를 했던 독자들의 지친 고단함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이슈메일이 구조되고 다시 낸터컷으로 돌아오면....잠시동안의 장례식대열을 쫓아가다가 물보라 여인숙으로 아니간다고 장담할 수 잇을까. 다시 퀴퀘그를 만나고 상아 장식의 식인종같은 피쿼드 같은 배에 다시 탑승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이건 다 모비딕이 남긴 후유증이자 향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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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저자
허먼 멜빌 지음
출판사
작가정신 | 2013-08-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포경선을 탄 경험이 있는 특이한 이력의 작가 허먼 멜빌이 격조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kewell

읽을 때는 이걸 언제 다 읽나 했는데 ....

의외로 술술 넘어가는 이야기들과 지루한 듯 하지만 무덤덤히 지날갈법한 화자의 툭툭거리는 듯한 어투..

그리고 무엇보다도 간간히 뮤지컬 저리가라할 정도의 낭낭한 등장인물들의 퍼포먼스 

중반부를 넘어 후반부로 달려가고 있다는...


가끔 느끼는 거지만..

요즘에는 이런 소설을 거의 만나볼 수가 없지 않나싶다.

모비딕이 아니었어도 진득히 이렇게 물고 늘어져서 아주 진을 빼버릴 정도로 집착하는 묘사와 표현들은 귀찮고 짜증나는 겉저리가 되어버린지 오래, 생략과 간략함을 무기로 스피드한 전개를 꿈꿔버리면 이런 글을 더이상 못만나지 싶다. 대단하신 양반인거지..이렇게까지 쓰다니 말야. 시간이 지났어도 위력은 여전한 듯...




Posted by kewell




서점에 서서 한참을 읽다가 맘에 들면 목록표에 작성해두곤 하는데..시간이 지났어도 사지 못해서 한참을 주저주저하다가 드디어 바로드림서비스로 가져왔다. 책 내용은 대만족이다. 모비딕은 예전 구버전으로 읽은지 좀 되었지만 제대로 다시 읽고 싶어서 샀고 르네상스는 딱딱하지 않으면서도 알찬 책을 찾다가 이 책을 골랐다. 물론 읽어봐야 책의 진가를 알겠으나 르네상스의 경우에는 서서 몇 챕터를 읽었어도 지루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볼 땐 잘 샀다고 생각한다. 


이번 달 책구매가 너무 후덜덜해서 이젠 좀 자중해야 할텐데 하면서도 계속해서 구매하게 된다. 책은 쌓여가는데 열심히 읽는 일만 남은 셈이다. 그래도 뭔가 좀 든든한 느낌이네..열심히 읽어봐야 겠다.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