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BOOK/에세이2014. 1. 23. 22:55


한동안 이것저것 먹고살기위해 두리번거리는 통에 책 모양 비슷한 뭐라도 읽긴 읽어야겠는데라고만 생각했다. 뭐 세상일이란게 그런거지 때론 어느날 정신차려보니 내 키보다 더 자라있었다는 남쪽나라의 대나무보다도 소리없이 쌓여가는 책들의 탑 높이에 놀라곤 했다. 햐 언제이렇게 쌓였어 읽어야 할 책들의 바벨탑이로군... 시간을 한탄하는 것도 여유가 있을 때다. 대부분은 세상의 시계는 다른 방법으로 초침을 움직이니까. 인지할 틈도 그리고 깨달을 틈도 주지않고 무조건 달리게만 한다. 풀려버린 두루마리 휴지를 꼬랑지에 매달고 뛰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뭔가 큰 실수를 했다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느낌이라니... 나도 풀린 휴지를 끊어버리고 그 자리에 앉아서 빨리 모아놓은 책들을 읽어야했는데라는 생각정도는 한다. 핑계가 너무 많아서 문제인거지. 


어쨋든 요즘에는 책을 미션수행하듯 해치우듯 읽는건 사절이다. 그렇게 읽는건 읽는 행위 이상의 무엇도 남겨주지 않더라. 쫓기듯 읽고 표지를 덮고 책장에 쑤셔넣으면 '무협지 마지막권 말미에 붙어있는 '완결'이라는 단어를 읽어버린 것만큼 허무하다. 읽다가 도중에 아무런 깃발이 들려지지 않는다면 (잠시 생각하게 되는 걸 난 '깃발을 든다'고 사용한다.) 그저 똥만 싼 것과 같을 뿐이다. 내 피와 위장과 뇌에 어떤 영양소를 공급했는지 알길이 없다. 내 독서의 질량에 어떤 질감의 살이 붙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똥만 싼거지..게다가 이런 읽기에는 아무런 추억도 기억도 공간을 할애해 주지 않는다. 그러고보면 뇌라는건,...아님 감성이라는건 굉장히 이기적이지 않나 마음에 드는 몇개의 문장과 상상속에서 스물거리듯 올라왔던 이미지들 몇 장면에게만 저장소를 허락한다. 그리고 나머진 다 너저분한 잡스러운 것들이라 다 잊어버려주겠다고 통보한다. 그렇게 해서 잊혀진 책들이 몇 권인가...이런게 리얼 비효율라 말할 수 있는거다. . 어찌됐든 개인적으로 책읽기란 '해치우듯' 읽어선 곤란하다는 말 하려고 이렇게 길게 주절거렸다.


그런 점에서 요 며칠간 눅눅히 읽어갔던 이 책은 정말이지 뭔가를 푸짐하게 먹고 제대로 소화시킨 느낌이다. 바로  빌 버포드앗뜨거워-'Heat' 이다. 여기에는 저자가 갑자기 뉴요커의 삶을 살다가 마리오 바탈리(뉴욕에서 밥보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유명한 요리사)를 만나면서 '요리사'의 삶으로 자신의 삶을 바꾸는 희한한 모험담이 등장한다. 이게 소설이냐고? 그랬으면 위트와 농담으로 뒤섞인 그의 문학적 감수성을 높히 평가하면서 '갈등구조'의 적재적소를 비판적으로 저미듯 노려봤을 것이다. 이래가지고 재미가 있겠어 여기서 한번 주방을 엎어버려야지..앞건물에 경쟁자 레스토랑이 등장하고 새로운 요리개발에 매진하고 경연대회에서 일등먹고 ..등등...그렇게 나갔어야 했겠지...그런데 이건 공교롭게도 소설이 아니라 실제 있었던 체험기다. 진짜로 요리사의 삶을 경험해보려고 주방으로 뛰어든 기자가 자기란 이야기다. 


뭐 자세한 이야기야 나중에 리뷰라도 쓰면서 절절히 써볼 작정이지만, 슬쩍 끄적여두는 이유는 책을 읽은 요 며칠간의 경험이 적어두지 않으면 휘발되어버릴까봐다. 어디서든 치열한 삶이 있고 언제든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이벤트들이 도처에 널려있을 것이나 실제로 이걸 해볼려고 발을 떼는 인간들은 극소수다. 가히 이정도의 모험담은 일생을 두고 한번쯤 해볼만한 치열함이 아닌가... 나도 내 현실의  프레임의 골조를 절단해 줄 전기톱같은 결단력이 있었으면 했는데도 그렇게 안되던데...... 이 아저씨는 그야말로 폭풍처럼 자발적으로 주방으로 처들어가 온몸에 요리흔적을 생채기처럼 새겨댄다,  그야말로 놀랄 지경이다. 400페이지가 넘어가는 책두께가 쉴새없이 넘어가고 요리와 음식의 즐거움이 오후 한창 때의 식당처럼 부산스럽게 쏟아진다. 


우리는 요리와 음식에서 레시피적인 가이드만을 원하곤 한다. 내가 마늘을 세워서 칼로 저밀때 어느 각도로 내려야 하는지에 대해서 애매하게 고민하거나 달궈진 플레이트위에서 뜨거운 열기를 맞아가면서 이렇게 고단스러운 폭풍 점심의 손님들을 감당해낸다는 그 느낌이 어떤지 내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이런 것들은 대다수의 독자들이 원하는 요리책의 본분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서 문학적 감수성을 원했겠는가. 에세이정도의 소소함만을 목표로 하기에는 그냥 딱봐도 거대 사이즈의 사전 정체성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다.  보기만해도 '이건 패착이야 이렇게해선 에세이로서 성공할수 없겠어'라는 소리나 들을 테지..이유야 가져다가 붙이면 널렸지만 정작 난 이 책을 진득히 읽을수록 '패착'이란 단어따윈 꺼낼 엄두도 나지 않았다.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만한 경험을 한 것만 같은 그런 현실감과 동조의 감정들. 그리고 마치 양념이 베어나올 것만 같은 책장을 넘기며 나도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다 읽고 나니 든 생각인데 요리에 관한 책조차도 굳이 메뉴얼적으로 써대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요리책에는 생뚱맞게도 문화와 개인적인 대소사가 머릿말로 등장하고 뒤 이어 계량적인 이야기로 본격 다큐가 되곤 했다. 그러지말고도 너무 위트있고 너무 절절하고 웃음이 날만한 일들이 음식의 세계에는 있다. 간만에 즐거운 경험이었던 것 같다. 굳이 요리사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도 한번 정도 읽어보면 삶의 경험을 다른 브랜치에서 느껴본 것만 같은 기분좋은 착각을 느낄수 있을 것이다. 




앗 뜨거워(Heat)

저자
빌 버포드 지음
출판사
해냄출판사 | 2007-01-30 출간
카테고리
요리
책소개
지지고 볶고 튀기고 썰고 찢고! 인생에서 배워야 할 모든 것은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kewell
Review BOOK/에세이2013. 10. 9. 09:22


'비에 젖어 지금 당장 무너져 내릴듯한 길가의 페옥이라도 바라보는 눈길'로 '보너스는 어떻게 하실거냐'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를 나도 최근 들었다. (에세이 초반부에 관련 에피소드가 나온다.) 보너스나 퇴직금이나 매일반이긴 하지만 어찌됐든 이런 이야기를 듣게되면 좀더 사람들이 배려심이 있었다면 세상이 좀더 살기 좋을텐데라고 생각하곤 한다. 물론 이건 하루키의 삶과 직업적 특징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가 자유직이어서 은행에 들르고 직원이 직업이 뭐냐고 묻고 난 그런거 없다고 말하고 직원은 불쌍한 눈으로 쳐다본다는 건 그 직원의 착각이지 하루키가 불쌍할 이유는 없다. 그 직원보다 열배이상 부자일테니까. 


다만 그저 일반 사람들이 바라보는 통상적인 시선에 대한 약간의 비꼼. 이윽고 세상이 결코 바라는데로 확연하게 변해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아래에서 앙탈부리듯 그건 잘못된거야라고 고집세게 우겨보는 것에 대한 안스러움 같은 것이다. 나라면 아마도 하루키가 고군분투하듯 세상의 고정관념과 싸울때 응원이라도 보내주는 정도겠지. 왠지 안스럽거나 동질감을 느껴 책장 한 귀퉁이에서 모서리를 접고 '맞아요 하루키 아저씨 저도 그래요'라고 겸연쩍게 외친 적이 한 두번이었던가. 약간은 비겁하게 하루키 에세이를 읽으면서도 응원을 잃지 않는 것, 그게 하루키 에세이를 읽는 나만의 태도였던 것 같다.  


가끔 NY양키스보단 NY메츠, 베니티페어 보단 애틀렌틱, 일본식보다는 타이식, 팜비치보다는 마이애미 비치, 노먼 테일러보단 고어비달, 뉴욕타임즈보단 월스트리트 저널이 더 INSVILLE 하다고해도 사실은 그 차이가 뭔지 잘 모른다고 생각한다.('인터뷰'지에 실린 기사에 관한 에피소드) 하루키도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했을 거다. (나도 몇개 생각해봤지만 MS보단 애플, 한가인보다는 수지 뭐 이래야 하나싶어 관둬버렸다.) 나는 그의 글 한복판에서 '의도'가 뭔지를 읽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그가 대충 '그런가보다'라든지 '그럼 할수 없지'라고 관조적이고 수용적인 문장으로 마무리한다고 해도 결국 속으론 굴복하지 않을 걸 안다. 이미 '여느때는 무엇인가 있던 자리에 아무것도 없게되는 마이너스 상황, 결락의 상황쪽을 더 선호한다'고 밝힌바 있고, '파업좋잖아요.오래이어졌으면 하는데요'라고 지면에 쓰진 못해도 에세이에 끄적일 정도의 용기도 가지고 있다. 기타 태풍을 좋아한다던지.요인암살은 유쾌하다라든지 같은 경쾌함은 세상이 정말 천편일률적이라하더라도 나야말로 그렇게 살수는 없다고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중년의 아저씨같다. 아웃사이더이자 반항아적 틴에이저 스피릿이라도 있는걸까. 아마 그가 재즈적이지 않고 록적이었다면 볼만 했을텐데..폭압적인 사회적 이슈에대해서 강렬한 참여적인 일탈로 무시무시한 사운드를 뿜어내 주셨을 지 누가 아는가.


그런 그가 경험적 산물에 대해서 경의를 표할때는 좀 더 진지하게 바라보곤 하는데 사실 문장들을 주루륵 내려가면서 읽다보면 아 이분께서는 기분 좋은 상상력을 통해서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지 않으시나보다라고 생각한다. 이건 고정관념에 대한 반감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형성된 세월의 축적과 정서상에서 우러러나오는 일종의 편안함 때문이 아닐까싶다. 언어는 공기와 비슷해서 어느지역에나 그곳만의 공기가 있고 그 공기에 맞는 언어가 있어, 웬만해서 그것을 거역하기 어렵다고 했던 건 이런 이유에서 기발하다고 느껴지곤 하는데 역시 스파게티는 이탈리아의 그 스파게티가 적절했던 것도 그 환경에서 벌어지는 진정한 의미의 모든 것들에 대해서 낭만을 즐기는 듯해서 편안하다. 나도 그 공기가 특별하다는 건 안다. 동네 근처에서는 더듬거리며 몇 문장도 이야기 못했던 내가 아틀란타의 모 호텔 로비에서는 그 곳 공기에 맞게 편안하게 프론트에서 조크따먹기라도 한다. 그건 분명 그곳 공기탓일거라고 상상하곤 한다. 이런게 바로 하루키적 영향력이라고 할테지. 


하루키의 에세이들의 대개는 B급정서도 꽤 많이 녹아져있다. 상상력의 퀄리티가 꼭 어마어마한 내용으로 채워져야 하는 건 결코 아닌데도 요즘에는 교양이니 소양이니 하면서 거장과 마스터피스 범람의 세계가 되어버렸다. 슬며시 반감이 치솟을 무렵, 하루키가 은근슬쩍 내뱉는  B급, C급 영화를 뼈다귀째 쪽쪽파는 기분으로 보게된다고 할 때는 찬란한 B급 매니아정서가 내몸과 정신에 맞는 옷처럼 느껴질때도 많은 것이다. 요즘은 B급정서도 개성의 구별이라는 액서세리로 활용되지만 사실 내용이 중요한거지 단어에서 풍겨나오는 이미지만 노리다보면 너무 유행적이라는 느낌도 든다. 하루키적 뉘앙스도 그렇게 흘러갔던 적이 많다. '브룩스 브라더스'의 블레이저코트를 입는다고 에피소드에 끄적였다고 해서 하루키가 이 브랜드를 선호하고 콜트레인의 음반을 어마어마하게 듣고 마라톤을 즐겨하며 생선요리에 맥주를 즐겨먹는다고 한 들, 그게 현대인의 라이프사이클에 어떤 영향을 준다는 것일까. 그건 그저 하루키의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다. 


다만 하루키의 에세이가 잘 읽혀지는건 그가 설명하는 이야기들이 대개 공감할 만하고 또 참신하다고 느껴질만큼 특별해서(역설적이게도 대중적이지 않은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대중적으로 인기를 구가한다는..)인데 역시 그가 말했던 것처럼 나도 '유려한 문장이나 치밀한 심리묘사에 감탄스러워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모조리 잊히고 아주 사소할지라도 효율적인 종류의 것만 부분적으로 기억난다'고 할때 이 아저씨는 자기가 유별나지 않고 우리랑 똑같다고 말하는 것 같다. 나도 역시 그런데..도대체 좋은 문장들은 적어놓지 않으면..때때로 인용하거나 써먹지 않으면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저 줄거리에서 파격적인 부분들에 대한 장면만 떠오른다. 어쩌면 과정에서 오는 좋은 느낌들은 공기중으로 사라지고 결과만 남는게 세상의 구조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횡행하는 수많은 주장의 대부분은 끝이 좋으면 그만이라는 정신으로 성립되어있다' (P68) ..이 문장이 진리라는건 애초부터 알고 있었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여지껏 감상평이라고 주절거렸는데 이제 본론이라니..) 이 에세이 역시 문학동네에서 내놓은 에세이 수필집 시리즈중 하나다. 제목으로 보면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 묘한 뉘앙스가 느껴지시는 분은 자신의 감수성의 예리함을 뿌듯해하는 대신 약간의 변태기질과 그 흔해빠진 AV의 몇장면이 상상되는걸 민망하셔도 상관없다. 왜냐면 하루키가 제목을 이렇게 지은건 에세이 안에 등장하는 동일한 이름의 에피소드때문이었으니까. 어느날 갑자가 'F심 연필은 세일러복을 입은 여학생 같지 않습니까' 라는 말에 '무척 난감하다고 하면서도 최근에 F심 연필을 손에 쥘때마다 그만 세일러복을 입은 여학생이 떠오르고 '이번엔 어디 , 널 한번 써볼까' '꺅 싫어요, 거짓말이죠' 라고 하는 괴이한 광경을 떠올리는 하루키 아저씨와 별반 다를게 없을테니까. 이 정도면 하루키도 역시 평범한 중년의 욕망의 아저씨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에세이는 늘 이런식이어서  어떤 중심이 되는 주제같은 것들을 책의 뼈대라고 말하기 어렵다.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다양한 사건과 여러가지 생각들이 스파게티처럼 엉크러져 하나둘씩 차곡착곡 등장했으며 그 과정에서 그저 하루키적 라이프스타일의 편린을 엿보다는 정도? 아무튼 다들 이런 것들이 궁금한 거겠지. 하루키의 소설로부터 연유한 다양한 호기심은 에세이말고는 충족할수 있는 곳이 없을테니까. 적어도 거짓말하지 않고 털털하고 속내를 가끔 드러내는 에세이야말로 하루키의 진면목을 보는 또 하나의 창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가끔 삶을 대충, 혹은 무덤덤하게 살면서도 기기묘묘한 자기정체성에 대해 특출나게 표현하는 방법을 모른다. 나는 밥을 먹었고 잠을 잤고 그리고 친구를 만났고 기분은 별로고 그래서 TV를 봤고 다시 누워서 꿈을 꿨다 정도의 패턴만 이어질 뿐이지 세상이란 이런 지루함과 뻔함의 연속인것이고 머리속에는 디지털적인 회로에서 또 하나의 연산이 이뤄지는 것처럼 변화도 없는 무미건조함이 이어지곤 한다. 


일상생활에서 낭만이란 건 묘한 감정잡기에 불과하다고 느껴질때가 종종있는데도 하루키 에세이 편린속에서는 내가 누려왔던 일상들이 그와 다르지 않음에도 훨씬 더 풍요롭게 다가온다. 그 정체가 바로 하루키의 감수성때문이 아닐까. 그가 소설을 휘리릭 쓸것 같아도 '소설가도 옛날처럼 한가로이 뜰에 앉아 참새떼를 보며 '벌써 봄이로군'하고 주절거릴수 있는 시대가 아니어서 세금이니 대출금이니 신경쓸일이 많다고 토로하고 스파게티 5인분을 방바닥에 퍼질러놓은 듯한 전깃줄 더미에 파묻혀 악전고투하면서 이것을 데모크라시의 죽음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그의 로망이다. 솔직하기도 하고 낭만적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는 솔직히 '인간은 반드시 실수를 하기 때문에 글을 쓰노라면 실수가 확고한 형태로 남는 걸 두려워한다고 고백도 했다. 


아 그래 하루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던 게지. 천재적으로 문장들을 유려하게 배치하고 단백하게 쓰며 상징적인 정서들이 담긴 단어들이 곳곳에 놓이는 걸 읽을땐 전혀 다른 거장의 모습처럼 보였는데 여전히 그는 일반사람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사는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솔직한 견해를 늘어놓을때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공감했나보다. 그도 실수를 하는 사람이라는 걸 잊기라도 한건 아닌데도 가끔 작가들은 고고한 서민 레이어에 살지 않고 몇단계 위 성층권 어디즈음에 깨끗한 정서의 레이어층에 집이 있어서 거기에서 공중정원에서 뜰에 물을 부면서 바람에 눈을 감고 글을 쓰고 있을것 같은 착각이 들곤했는데..그건 다 환타지였던 거지 싶다. 


그도 핀천의 <제49호 품목의 경매>를 읽다가 좌절하고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부인과 공유하며 읽는다. 하루종일 일하고 가게문을 닫은뒤 긴장을 풀기 위해 맥주를 한두병 마시고, 그 뒤에 우리집 부엌 데이블에 앉아 소설을 섰다. 거창한 공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생계를 도외시하고 미친놈처럼 수염도 안깍고 글을 쓴것도 아니다. 금연을 할때는 남에게 시비도 걸고 지저분한 말을 내뱉으면서 남에게 싫은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요즘 사람들이 디킨즈따위를 읽지 않고 샬럿 브런테니 푸시킨이니 스타인백을 모르고 산다는 것에 대해 의아해한다. 그래놓고 자기비하적으로 '삶을 사는 방식자체가 근본적으로 글러먹은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역설적으로 내뱉어놓았는데 그 어느 누구도 이런 자기비하에 불쌍하다고 말하지 못한다. 왜냐면 그 만큼 독특하면서도 개성적이라는 뜻인데 가끔은 우리도 그렇게 살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동경의 대상이 된다면 모를까. 


나는 가끔 이런 하루키의 에세이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끼곤 한다. 나도 과거 어느지점에서는 자유스럽게 생각하고 틀에 구애받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데 칠칠맞게 허술하고 구멍 빵빵 뚤린 인생이긴 했어도 좀더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고 어느날 아침의 공기가 특별해서 뭔가 흥미진진한 일이 생길것만 같은 모험의 요일들이 등장하곤 했었는데 ..지금은 기억조차 나질 않다니 ..하루키가 가끔 이렇게 에세이에서 자신의 괴이함을 겸연쩍게 내뱉는 건 사실 자신이 민망해서라기 보단, 나 이렇게 사는데 바꿀생각도 별로 없고 내가 이렇게 생겨먹은 놈이니까 앞으로도 이렇게 살께요 라고 은밀히 이야기 하는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고정관념속에서 익숙해져있고 깊이 있게 파고들지 않으며 회로에서 벗어나려고 하지않은 현대인들로서는 은근한 질투와 동경과 부러움이 느껴질 수 밖에 없는 삶이 아닐까. 아마도 대리만족이라도 하고 싶어서 하루키 에세이를 읽는 거겠지 싶다.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2-07-24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노르웨이의 숲』 『해변의 카프카』 등으로 폭넓은 사랑과 지지를...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kewell
Review BOOK/에세이2013. 9. 12. 21:39


난, 하루키가 예전 무라카미 라디오에서 밝힌 브래지어 에피소드에서 (여권신장을 위해서 브래지어 소각 이벤트를 벌이는 걸 보고 '과연 입던 속옷일까'라는 의문을 가졌다고 밝힌 ..) 약간의 기이한 변태(?) 기질이 있다고 느꼈던 적이 있었다. 그 뒤로도 1Q84의 덴고와 후카에리의 판타지 퍼포먼스(?)도 그렇고, 이미 <노르웨이의 숲>에서 와타나베도 나오코와 미도리, 그리고 레이코와 자유분방함을 보여준바 있었으니까 (당시의 평론들을 보면 '학생들의 머리속에 온통 섹스밖에 없는게 놀랍다'라는 비스무리한 평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오해도 그런 오해가 없을거다라고 생각해도 역시 성적인 코드가 등장하면 그 아저씨 또 변태기질이 도지셨나봐 그런쪽으론 굉장히 기발한 하루키씨..라고 해도 뭐 딱히 할 말도 없다.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이란 제목도 약간은 그런 기질이 반영되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쌍둥이 자매를 여자친구로 가지고 싶다는 에피소드에 달린 제목이었으니까. 어쩌자고 쌍둥이 자매를 여친으로 해서 뭐 . 언니인지 동생인지 일부러라도 헷갈리고 싶다는 거에요 뭐에요 하루키씨 !!! 라고 말이라도 하고 싶지만..사실은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 역시 '이번엔 널 한번 써볼까?" "꺅 싫어요 거짓말이죠" 라고 이미 또 쓰셨으니  이 정도되면 기발한 상상력을 넘어서 주책이다 싶을 정도다. 사실 우리도 이보다 더한 상상력을 발휘해서 개개인의 본능속에서 더 엉뚱한 광경들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는 보장은 없다. 더하면 더했지... 하루키의 매력은 꼭 소설속에서 '상실'과 '비관'만을 말하고 '본질'에 대한 탐구만으로 일목요연하게 달려가는 그런 형태 외에도 이런 엉뚱함과 유쾌함이 더 본질적인건 아닐까. 실제 삶과 더 관련이 있을테니까 말이다. 


기질적으로 보면 형식적인 부분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성격때문에 안티 시스템 히어로(Anti-System-hero)같은 작가 같다고 느낌도 종종 든다. 이 동네에서 이 정도의 아웃사이더 히어로는 '커트 보네거트'옹 하나만으로 충분하겠지만 하루키도 거참 나도 만만치 않아 제기랄 하고 속으로 외치지 않는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애초부터 그는 이사를 거주지변경따위의 개념으로 인식하지 않고 주기적인 휴지통 비우기로  이사의 필요성을 인식한 바 있고, 레이 파커 주니어의 'I Still Can't Get Over Loving you'보단 제목으로 'I Still 사랑해'가 더 낫다고 할 만큼 심플한면도 있다. 본인이 에세이에서 밝힌 것처럼 그저 '그런거지뭐'와 '그래서뭐'를 남발하면서 넉넉하고 무책임(?)하게 살고 싶어하는 쪽일 수도 있다. 물론 이 정도되면 일반 서민들도 바라마지 않는 편안하고 쾌적한 마인드일테지만 우리가 정작 부러워하는건  동심과 감성의 스파게티가 오밀조밀 잘 자리잡고 있는 특유의 정서지 싶다. 


종종 그의 글에서 선더버드를 탄 여인이 등장하곤했는데 이게 바로 영화 <청춘낙서>에서 '리차드 드레이퍼스가 길거리에서 우연히 본 선더버드를 탄 꿈의 여자'the girl of a dream'를 잊지못해 밤새도록 찾아다니는 에피소드에서 연유한 거였다. 그리고도 그는 원래 사랑이란 이렇게 기존 시스템을 넘어선 행위라고 했드랬다. (난 지금도 그런 여인이 아무리 멋져도 밤새 찾아헤메고 싶은 마음같은 건 없지만) 세상의 끊임없는 고착화된 시스템과 고정관념들의 틈에서 분투하는 하루키씨라니...그러고 보니 문득 소설을 쓰는 이유로 '개인의 혼이 가진 존엄함을 드러내어 거기에 빛을 더하기 위해서..우리들의 혼이 시스템에 끌려들어가 멸시당하는 일이 없도록 항상 거기에 빛을 비추고 경종을 울리는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보자면 소설이든 에세이든 그는 세상의 고정관념 따위는 내 알 바 아니다라고 지속적으로 은근히 글로 표현하고 있는거 아닌가. 



고정관념 같은 거야 그렇다쳐도 개인적으론 그의 정서적인 표현능력이 부러울 따름이다. <렉스턴의 유령>도 그렇고 <도쿄 기담집>외에도 로저 젤라즈니의 <고독한 시월의 밤>같은 고딕적인 뉘앙스를 좋아하는데.. 하루키에겐 일상적이고 습관적인 상상력으로 충분히 이런 이미지들이 글로 아무렇지도 않게 재현되어지나보다. 찰스턴의 유령이라는 대목으로 그가 묘사한 문장들...


'해질 무렵 코블스톤이 깔린 찰스턴의 고즈넉한 거리를 걷다보면 화려하게 세공된 검은 철문 너머에 , 또는 뿌옇고 희미한 불빛에 드러난 차고 한구석에 무슨 이상한 그림자가 비친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밤의 정원은 적막하고 아름드리 떡갈나무가지에 털실처럼 늘어진 착생식물은 강바락에 흔들리고 백일홍 꽃이 저녁 어둠에 어스름하게 떠있다...모든 것이 고풍스럽고 조용하고 그리고 우아하다


라고 했다. 소설적 배경으로도 하나도 아쉬울 것 없는 밑그림들이다. 그래서 아마 감탄하고 찬탄하는 거겠지. 일부러 만들어보려고 해도 이미지화 시키기 힘든 것들은 수월찮게 글로 그려내는 재주라고나 할까. 그게 관찰력이었든 아니면 그가 가진 특유의 정서적 질감이든 간에 그런 부분은 부러울 수 밖에 없다. 내가 멈춰버린 시계를 보면서 '전지식 시계의 죽음에는 차갑고 무거운 어떤 것이 있어서 몇년에 한번 밖에 멈추지 않기 때문에 그 죽음에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의 도래'를 느끼기야 하겠는가. 강의에 들어갔는데 '휴강'이라고 써있어서 이 짜투리 시간이 마치 인생에 있어서 덤으로 주어진 캐러멜 같다고, '핀볼머신'을 보면서 왠지 멸종해가는 공룡같은 슬픔이 떠다닌다고 혼자서 감상에 젖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저 멍이나 때리면서 현상이 눈표피에서 뇌쪽으로 혹은 가슴으로 더 이상 진입하지 못하고 증발해버리는 거다. 그래서 이 에세이를 읽으며서 감정 회로사이에 끼인 고정관념의 콜레스테롤이 녹는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삶의 유쾌함 지수가 올라가는 느낌과 소소함으로 읽혀지는 소중함같은 것들을 뒤늦게 알게되는 기쁨...그런 것들이 에세이 전반에 구름 처럼 떠있다. 


'모든 면도기에도 철학이 있다'고 했으니 어쩌면 계속해서 무라카미의 에세이를 읽다가 보면 그 느낌들이 내몸에 맞는 옷처럼 편안하고 당연하게 느껴질 날도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본인 말처럼 '자기를 둘러싼 호의와 악의의 총량을 양방향으로 , 그것도 비약적으로 확대된지 꽤 되셔서 (유명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 당시 에세이를 쓸 때처럼 자연스럽게 오가면서 편안히 뭔가를 하실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마라톤이라고 뛰려고 참가하면 갑자기 옆에서 '오..하루키씨 아니세요. 책 잘 봤구요. 사진보다 낫네요 라고 할 수도 있다. 이젠 그가 사진 찍는 걸 별로로 생각한다고 해도 이미 많은 스틸들이 퍼져나간지 꽤 됐다. 오히려 모르는 사람이 있는게 더 이상할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지금의 하루키씨는 에세이에 뭘 쓰려고 해도 이젠 정말 귀찮아졌을수도 있다. 그냥 상상해봤다.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2-07-24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작가가 아닌 생활인 하루키, 젊은 하루키를 만난다 무라카미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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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ewell
Review BOOK/에세이2013. 8. 13. 12:43


이렇게 된 이상 하루키의 에세이 연작들에 대해서 다 이야기해 볼 작정이다. 지금까지 나온 에세이들을 꽤 읽었으니까 몇 권 안남았다. 아마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양장본 에세이 시리즈 2권만 빼놓고는 다 읽었나보다. 비채가 시리즈로 낸 하루키 에세이는 <저녁무럽에 면도하기>,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이렇게 3권이다. 무라카미 라디오 연작으로 에세이 중, 가장 하루키스럽고 단백하다고 정평이 나있는 에세이들이기도 하다. (휘어지는 표지는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굳이 소개하지 않았어도 하루키 매니아들은 손수 다 찾아 읽었을 것이고 나같이 하루키의 엉뚱하면서도 세련된 문장체가 좋아서 (마치 뇌의 안쓰던 부분을 쓰는 듯한 느낌) 무턱대고 읽었던 독자들로 꽤 있었을 것이다. 


최근 하루키의 에세이들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느낀 점이 있는데 그것은 이 아저씨가 '글은 정말 단백하고 깔끔하게 쓰신다' 였다. 부연과 전제가 질질 끌려서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장황함도 없고 지적이면서 동시에 허영기가 짙게 배인 '잘난척' 단어 나열도 좀 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이 분이 재즈 감상기를 쓰시게 되면 약간 어려운 말들이 등장하기는 한다.). 이렇게 절제와 간단명료를 문장에서 실현하시는 분들도 생각보다 만나기어려운 시절이다. 게다가 생각과 판단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은 대다수의 작가들이 가지지 못한 하루키 특유의 정체서이기도 하다. 많은 에세이들에는 지은이의 신념과 가치관들이 알게모르게 스며들어있기때문에 은근슬쩍 '주장'과 '단정', 그리고 '자기생각에 Sync를 맞춰주길 기대하거나 동의해주길 원한다. 그런 내용이 반복되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고서는 읽는 것자체가 부담스럽고 영 껄끄러워지는데 그런 상태에서는 읽기는 거의 '폭압적' 납득이 되거나 입에 맞지않는 음식을 꾸역꾸역 입에 넣는 것보다 더 괴로운 법이다.  


'에세이든 소설이든 문장을 쓸때 친절심은 중요하다. 상대가 읽기 쉬우면서도 서로 이해하기 쉽게 써야한다. 그런데 시도해보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P23)


하루키표 에세이에는 이런 자기 생각에의 강요가 별로 없다. (약간의 툴툴거림이나 시니컬한 요소들이 있긴 있다.) 이 모든 산물은  레이먼드 카버나 트루먼 커포티, 그리고 존 치버, 업다이크로부터 왔을 가능성 크지만, 사실 카버스럽다는 것도 그렇고, 커포티답다는 것도 쉽게 와닿는 그런 부분은 아니라서 딱히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뭣하다.  책을 읽었어도 애매하고 손에 잡힐듯 잡히지 않는 무형의 아이덴티티와 같은 느낌 같은 것일 뿐이다. 읽다가보면 어 이건 카포티와 비슷하고 저건 카버하고 유사한 느낌인데 라고 되뇌이게 된다고나 할까. 


하루키의 글에는 레이먼드 카버의 문장 단위의 생략에서 드러나는 은밀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암시들, 그리고 트루먼 커포티 특유의 오밀조밀한 디테일함, 이 두사람을 교묘히 이어서 균형감각을 가지고 주제를 적절히 녹이는 존 치버의 장점들이 복합적으로 녹아있다. 결국 하루키는 스스로가 '친절심'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스스로가 추구하는 문장에 대한 완성도에 대해선 자기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작가들의 재능을 대신 표출해주고 있다. (본인은 아니라고 우기지만 어쨋든 그가 글을 편하게 쓴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다보니 선대작가들의  영향력을 빼고서라면 그의 상상력이 어떨까 궁금해질 때가 있다. 수많은 작가들을 오마쥬해서 스타일을 짜깁기했다고해도 하루키는 하루키인 것이니까..그의 발군 묘사실력은 기묘한 상상력, 그리고 세련된 그의 삶의 스타일에 기반한 것이 아닐까하는 것이다. 


 '섹스한 다음날 아침, 침대에는 아직 여자친구가 있고 남자가 티셔츠와 헐렁한 사각팬티 차림으로 주방에 서서 물을 끓여 커피를 준비한다. 그리고 시금치 오물렛을 준비하는 것이다. 가스불에 버터를 녹이고 오물렛을 만들고 여자친구는 스트라이프 면셔츠 바람으로 , 나른한 듯 침대에서 나오고...슈베르트의 아르페 지오네 소나타가 흘러나온다


시금치 오믈렛이니 스트라이프 셔츠니 아르페 지오네 소나타네 하는 것들이 일상에서 등장할 리가 없겠지만 하루키의 글에서는 이런 로맨스 물씬 풍기는 장면들이 영화처럼 자주 등장한다. 이유가 뭘까.  언젠가 평론가의 글에서 이런 대목을 읽었던 걸 기억한다. 하루키의 에세이나 소설에는 현대 자본주의 문화의 전형적인 스타일이 스며들어있다고....따라서 현대인들은 하루키의 글을 보면서 '그러한(?)생활을 은근히 동경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어있다고....나도 역시 마노아 레터스와 쿠라토마노, 쓴맛이 없는 마우이 어니언을 곁들이고 롤빵에 차가운 맥주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가 이런 것일까. 하루키 아저씨처럼...뭘해도 참 분위기 있게 사시는 이 아저씨의 에세이는 그래서 동경할만 한 걸까. 나도 그렇게 살아볼 순 없는 걸까라고 생각했드랬다.  토니베넷의 <샌프란시스코에 두고온 내마음>을 들으면서 랄프샤론의 피아노 인트로가 연상되고 재즈클럽은 뉴욕의 '빌리지 뱅가드'가 최고라는 기억을 되살려 한번 즘 가볼 수 는 없을까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책장을 넘기다가 아주 공감할만한 에피소드를 하나 만났는데..'주유소 사건'에 관한 것이었다. 하루키가 차를 몰고가다가 기름이 떨어져서 주유소까지 통을 들고가 기름을 담아와서 어려움을 벗어났다라는 단순한 이야기였는데 아마도 그때 하루키가 '혼자여서 다행이었다'라고 말한 대목 때문이었을것이다. 그 자리에 여친이 있었다면 '진짜 멍청하다니까.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이 사람하고 사귀는건 잘못된 선택일지도 몰라' 라고 말하게 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대목말이다. 나는 이대목에서 공감백배였다. 나도 역시 혼자다니는 이유중 하나였으니까... 여친이나 애인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건 끔찍하니까..이 외에도 고등학생의 '헌욕수첩' 같은 황당한 에피소드도 좋아한다. 슬그머니 한마디 해줄 뿐이다. 이런 변태같으니라고...^^


'신주쿠역에서 '지금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라는 음성이 녹음되어있어서 원치 않는 전화를 적절하게 커팅하고 싶다고 했을때도 나는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런데 아저씨 이런 기능은 진짜로 특허가 나와 있다는거 아세요? ^^) 소띠 산양좌 A형이라고 고백 할 때..어라 나도 소띠고 A형인데라며 웃었다. 이련 묘한 일치감이라니 하루키 아저씨도 기질적으로 나와 진배 없을거라는 대착각이 근거를 가지는 순간이었다. 다만 하루키가 언급했던 헤밍웨이의 진정한 남자되기 4가지는 동감하기 어렵다. 나무를 심고, 투우를 하고 책을 쓰고 아들을 낳는다라는 것들...이건 뭐 해밍웨이의 몰린 정서나 가치관 때문이지 남자되기와는 별 상관이 없었으니까..그런데도 역시 하루키는 이 부분에 대해 별말 없다. 다만 책을 쓴다는 점에 있어서는 자신도 남자라는 우쭐댐을 슬쩍 흘리고 싶어했으리라..


 '우리는 조류를 거스리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 이 것은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구절이었고 ' 마지막 문을 닫아라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아라. 그저 바람을 생각해라'는 트루먼 커포티의 단편소설' 마지막 문을 닫아라'에 등장하는 말이었다. 그가 결국 삶속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있는 그대로를 두고 무덤덤하고도 쿨하게 저벅저벅 가는 것. 남들이 보고 들었던 수많은 고정관념들속에서 아마 '시스템에 붕괴되어가지 않도록 버티면서도 그 의식들이 거대토끼처럼 되지 않기였나보다. 그래서 독자들이 하루키 아저씨도 이젠 잔소리쟁이가 되버리셨어라고 되지 않기를 은근히 기대하면서... (언젠가 그가 자신이 글을 쓰는 목적에서 밝힌 바 있기도 하다.) 


읽으면서 기대했을 지도 모른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만큼이나 희귀하고 엉뚱하지만 생활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하루키 아저씨가 조근조근 계속 이야기해주기를...그렇게만 되면 점점 더 닮아갈지 어떨지 확신은 못해도 이 에세이들이 내 삶에서 벌어질수도 있다는 동질감은 유지되지 않을까 생각했나보다. 가끔은 나도 덤덤히 무던하고 쿨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치열하고 북적거리고 머리속에 범람하는 수많은 스트레스의 분량들은 내가 찌질하고 구차하게 살아서 생긴 침전물이 아닐까 의심해보게 된다. 좀더 쿨해지고 싶을 뿐이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비채 | 2013-05-04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오하시 아유미의 일러스트와 함께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오리지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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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BOOK/에세이2013. 8. 4. 19:00


빔벤더스<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을 다시 보게 된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라이쿠더의 이야기는 추억속으로 잊혀진지 오래였을텐데하면서도 누구말처럼 '유락한 잠의 늪'처럼 빨려들고 몇개의 꿈을 거쳐서 특유의 멜로디에 절여져있었던게 아닌가싶을 정도로 옛기억이 되살아나버렸다. 당연히 이 영화를 다시보게 된 이유는 이 책때문이다. '몸전체로 영화를 이야기하게 되었다며 슬며시 언급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첫번째 무라카미라디오' '저녁무렵에 면도하기'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 에피소드가 잊혀진 꿈의 기억조각을 이어주었다면 다른 이야기들도 오래전 서점 한귀퉁이에서 감질나게 읽어대면서 분량 적음에 아쉬워했던 그 에피소드들이었다. 어투는 여전했고 에피소드들도 그 자리에 조용히 숨쉬면서 오랜 세월동안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나보다. 


사실 순서로 보자면 저녁무렵에 면도하기가 1탄이고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순이다. 그러니까 에세이들 연달아 읽을 필요는 없어도 무라카미 라디오시절의 시간적 흐름에는 미묘한 에세이들의 질감 변화에 대한 추이를 살펴보려면 순서대로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쨋든 면밀히 읽으면 그런 변동이 중요한 저자의 심경변화나 가치관의 변화에 대한 힌트가 될 수 있다싶어 꼼꼼하게 읽었다. 의외로 하루키는 감정의 선을 폭군처럼 넘나들지도 파격도 저지르지 않는다고 느껴진다. 에세이에는 일종의 룰이 있는 것이 아닐까. (일전에도 에세이를 쓸때 몇가지 자기만의 규칙이 있다고는 했다.) 어쨋든 순서상으로는 얼추 맞게 읽으면서 '여전하시군 무라카미 하루키는...' 라고 혼자서 중얼거렸나보다. 


무라카미 라디오를 굉장히 잘쓴 에세이의 교본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하고 있는 편인데 그것은 그가 유명작가여서라기 보다는 일상사를 화려한 과장이나 지나친 생략없이 담담히 줄줄 써내려가는 대범함이 좋아서였다. 어떤 가식도 없고 변명도 없고 자기학대적이지도 않다. 하물며 트위터나 페북에서 늘상 하는 은근슬쩍 신념과 가치관 강습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아님말고'식의 고집이 있긴해도 오버페이스하지 않고 선을 유지하면서 긴거리를 조근조근 달리는 마라토너같다고나 할까. 소설은 안그런데 말이다. 소설과 다른 에세이의 하루키는 '슈퍼맨'같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왜 있잖은가 평범한 사람들은 도대체 생각할거리조차 되지 않는 것들도 슈퍼맨 눈 광선처럼 그의 눈을 관통하면 조용한 일상에서 엉뚱하고도 기발한 이야기들로 화학적 변화를 일으켜버리는 그런 느낌 때문이다. 1960년 '브래지어 소각사건'을 보다가 하루키는 변태라고 읇조렸던 친구가 있었지만 리스토란테에서 테이블 한가운데 페로몬을 머금은 안개가 자욱히 떠있는 광경을 묘사하다가 쩝쩝거리는 소리때문에 산통다 깨버린 이야기를 두고는 정말 별거아닌 이야기를 미소짓게 만들만큼 잘쓴다고 동의했던 적도 있으니까 그는 천상 이야기꾼인 것이다. 


그가 썼던 표현 중 장어를 먹으면서 '높은 칼로리에 대한 자책감'이야기하고 '오일드 사딘'(올리브오일에 담겨있는 정어리 통조림)통조림같은 깡통비행기를 타고가다가 프로펠러가 멈춰버리면 '자신이 투명해지다가 끝내 육체를 잃고 오감만 남아 잔업처리하듯 세상을 마지막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했을때, 과연 이런 느낌의 모호한 느낌을 이렇게 묘사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거라고 감탄했던 적이 있었다. 아무튼 에세이는 저자의 삶을 거울처럼 반영한다고 볼때, 에피소드와 이야기들에 그의 정서적 리듬이 그의 생활적 패턴과 모종의 연결을 도모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한다. 어떤 식으로든 일상사을 배제한 에세이는 있을수가 없으니까. 게다가 그는 솔직하지 않은가. 나서기는 싫어하지만 속내를 글로 쓰는 것만큼은 과감하고 직설적이면도 있다. 


하루키도 갑자기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것을 원치 않으며 ('그런 무서운 짓을 두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라고 한바 있다.) 음악에 깊이 관여된 묘한 관점으로 '후렴구가 없는 인간'을 '함께 할 수 없어 묘한...말한마디한마디는 얼핏 옳아보이지만 전체적인 전개에 깊이가 없는 인간'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또 파스타를 이탈리아에서 먹는 것과 국내에서 먹는 것의 차이가 생기는 이유를 '음식이란 공기포함'이란 고개 끄덕일만한 이야기도, 그리고 '현실에서 간과할 수 없는 주머니속에서 3주전 깜박하고 빨지않은 테니스양말을 꺼낸 것처럼..' 이라며 당혹스럽고도 아이러니한 삶의 일면을 단 몇줄로 요약해주기도했다. 아마 그런 그의 시선과 감성이 좋았을 거다. 독자들은 아무래도 안일한 스토리라인에 매몰된 채 깊이라곤 별로 없는 '해설서'같은 것들에 너무 많이 둘러쌓여 있다보면 그리운 감성같은게 있기 마련이다. 


하루키의 이 에세이는 유독 친 생활적인 에피소드를 넘어서 감성적인 단락들이 존재하는데 이걸 읽고 있으면 그 광경이 그대로 옆에 다가와 있는 느낌이다. 게다가 그는 보이지 않는 감수성의 편린들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책속에 박어넣는다. 아마 이런 감수성 미장센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꼼꼼함을 자랑하시고 계시다. "카우아이의 섬읜 노스쇼어는 노을이 너무나 멋있고 아름다웠다. 선명한 오렌지색 덩어리가 산등성이 너머로 지금 막 숨으려고 하고 바다도 구름도 같은 색으로 물들어있다. 석양을 배경으로 정처없이 차를 몰고 브라이언 윌슨의 '캐롤라인노'가 흐른다. " 이 대목을 읽으면서 잠시 광경을 떠올려버렸다. 그리고 그가 묘사한 '따듯한 나이프로 버터를 자를때처럼 부드러웠다는' 수동변속기의 감촉이 그리워 어느날 친구의 오랜차에 앉아서 둑둑거려보기도 했다. 물론 다 쓸데없는 짓이긴하지만 역시 그의 말처럼 글쓰기에는 '감정의 기억'이 중요한 것 아닌가. 그의 감정기억이 유달랐다는 건 인정할수 밖에 없는 셈이다. 


이런 책들은 문학의 탈을 패스트푸드라고 레플러 여사가 힐난했던 모양이다. 하루키의 저작들말이다. 그런 평가에 초연한듯 싶다가다도 에전 읽었던 하루키 전기를 관통하는 그의 시니컬한 뒷끝을 알고 있는터라 어떻게든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만의 길을 갈것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의 영향력이 근자에 이르러 아주 원숙해진 느낌인데 서점에 갔더니 '스콧피츠제럴드포크너, 카포티, 챈들러, 레이먼드 커버' 한쪽 코너에서 '하루키가 좋아하는저작들'이란 타이을을 건채 진열되어 있었드랬다. 그랬던 거다. 그동안 굉장히 연기잘하기로 유명했지만 대중들이 미처 원숙함을 알기도전에 포기했던 배우를 '대세배우'가 몇번 언급해서 다시 세상에 나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정서에 동기화되고 싶은 독자들이 많다는 뜻이겠지 싶다. 




cf. 

그나저나 하루키는 왜 '사랑하기 좋은 나이'를 16~21 라고 말했을까. 생각해보고 있는데 답이 별로 없다. 그저 상대적으로 고민이 적고 상상력이 풍부한 나이여서 그런가. 글라스에 얼음, 보드카와 토마토쥬스를 섞고 리앤페인 우스터소스 한방울과 레모을 가볍게 짠 블러드 메리를 들고 있는 '포켓 트랜지스터 글래머 걸'은 죄다 그 연령대외에는 없을까?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비채 | 2013-05-2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무라카미 하루키식 해피 라이프를 엿보다!《채소의 기분, 바다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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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BOOK/에세이2013. 6. 9. 23:30


서평집을 굳이 구매해서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기도 하고..그런데도 '서서비행'을 읽어보자고 서점에서 집어온건 오로지 저자의 재기발랄한 책탐과 내용에 천착하지 않은 채 묘하게 떨어진 관점에서 글을 쓰는 그 스타일 때문이었다. 와서 전체적으로 스윽 읽어봤는데 책의 라인업은 국문학과 출신스럽게 나열되어져 있고 적당히 대중적이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을 약간씩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리스트들이었단 생각이 든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이 책을 굳이 다 읽어볼 필요는 없겠다. 저자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여기에 쓰인 서평들만 가지고 그 책을 구입하는 정서를 찾아헤맨다는 건 그럴듯한 전단지 하나를 들고 거기에 쓰인 몇가지의 문구만으로 '날 믿어볼래요' 하는  빈약하고도 은근한 '강요'비스무리한 설득력에 현혹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물론 서평에 공감이 되면 구입하는 건 인지상정이지만서도..) 


서평집이란 사실 이래서 위험하다. 읽기에는 부담이 없지만 글을 읽은 사람의 관점에서 쓰여진 일종의 감상문인게고 그러다보면 서평 중반부에서 '읽으려면 읽고 말려면 마세요' 라는 마치 관조적인척하는 고고함이 슬쩍쓸쩍 거스릴 수도있다. 저자는 이걸 방지하고자 조금씩 자기학대적인 유명작의 인용구들을 붙여서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표현은 어리둥절하고 너무 뜬금없다. 한참을 뒤적뒤적거려서 얼마나 많은 시절을 MD로 보냈나싶어 찾아봤는데 개인정보가 드러나있지는 않은터라 연령대가 삽십부근을 찍어주시는 연륜의 소유정도란걸 알기는 했다. 표현들은 지극히 개인적이어서 공감과는 거리가 먼 서평들도 좀 있고 읽었던 책 이력과 인용구들의 나열을 보면서 그동안 쌓아온 내공(?)의 힘도 느껴지지만 아쉽게도 '그런가' 결론이 뭐지' 라는 황망한 서평들도 꽤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게 아쉽다. 아무리 개성의 표출이라곤 해도 서평은 '서를 평해야 제맛이니까' 너무 개인적이면 차라리 책일기에 가까운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다행이었던 건, 해당 책의 서평을 쓰면서 언급했던 다른 책들의 인용구들 읽는 재미정도...그리고 본인도 <나는 왜 쓰는가>-조지오엘에서 언급한 '진짜 목적과 겉으로 내세우는 목적이 다른 경우, 본능적으로 긴단어와 진부한 숙어에 의존하게 된다. 마치 오징어가 먹물을 뿜어내듯..' 라는 뉘앙스를 되새기게 만들어주었다는 정도..과용한 인용과 진부한 표현들이란 과연 어떤 건가를 계속 생각하면서 글을 읽었드랬다. 그래도 좋지 않나싶었던 건 저자가 빠듯한 MD생활속에서도 탐닉했던 편력들하며 중독에 가까운 읽기능력, 그리고 쉴새없이 쏟아져나오는 다른 책들의 편린들...그래 이 정도 읽었으니까 이렇게 여러가지 감정들의 물줄기가 형형색색 뿜어져나오는 거겠지. 머리속에 가득찬 표현들, 그리고 사고, 생각들, 견해. 깊이있는 가치관까지 수많은 파편들이 서평에 꽂혀있더랬다. 아마 어안벙벙한 예제들의 스피드와 저자본인이 보유한 굉장히 아웃사이더인듯한 스타일에 그리 손을 들어줄 수 없어서 미안할 따름이지 이 분의 책에 대한 애정을 누가 따라가겠는가. 읽은 세월하며 고뇌한 그 흔적들하며 ....


책 어디즈음에서 그런 내용을 본 듯 싶다. 

좋은 독서가가 될 수는 없어도 좋은 책을 소개해 줄 수는 있다고....

이 책은 이런 저자의 마음이 담겨있는 책이다. 다만 왠지 치기어린 듯한 느낌은 왜 드는지 잘 모르겠다. 혹시 모르지 나도 세대가 달라서 이젠 이런 저자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일수도....





서서비행

저자
금정연 지음
출판사
마티 | 2012-08-17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삶을 바꾸는 독서가 아닌, 자신의 삶을 인정하는 독서의 세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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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ewell
Review BOOK/에세이2013. 6. 7. 00:00

하루키, 하루키 

- 히라노 요시노부 /지학사.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생 히트작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나서 그 쓸쓸함과 뭔가 애닯은 듯한 감정을 가슴에 품은 채 시절을 감내하듯 지내는 것 정도는 당시의 또래들에게 굉장히 유행병 같았다. 그럼 이 쓸쓸함과 거리두기에 독자들은 완전히 몰입했던 것일까. 물론 이런 성향을 두고 하루키의 디태지먼트(물러섬, 관조적, 수동적 태도)로 정의하긴 한다. 시대적 종말론 비슷한 우울함과 맛물려서 90년대 후반은 어수선했으니까.. 그래서 하루키의 타작들도 다 이러했을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사실 다른 연작들의 추상적 스토리에 비하면 굉장히 리얼리틱했다.  아마 <해변의 카프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양을 둘러싼 모험>같은 이야기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난해함이 깃들어 있음을 인정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개인적으론 굉장히 어려웠다. ) 


차라리  동화적이면서도 우화적인 스토리라인에다가 미스테리한 설정, 그리고 조근조근 이야기하듯 펼쳐지는 삶의 독특한 일상들이 더 매력적이었다면 모를까. 그러니까 대다수의 독자들은 하루키 삶의 attitude같은 걸 사랑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구마모토 굴과 차가운 샤블리를 한잔 하면서 호박색 반달을 바라보고, 맥주를 곁들인 생선요리를 가볍게 먹고 콜트레인을 들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었는데 갑자기 노크소리가 나고 구멍을 통해 바깥을 보니 양사나이가 서있었다라는 식의....가벼우면서도 흥미진진하고 뭔가 의미심장한 일련의 사건들이 소리없이 펼쳐지는 이중 구조의 세계...이런게 하루키가 펼쳐놓은 이야기의 프레임들이었다. 



각자의 해석에 기대어서 하루키를 바라보긴 하지만 사실 하루키가 가진 사생활적 편린들은 대체로 소설 그 자체 외에서 찾기가 수월치않다.  수필은 그나마 좀 낫다. 소소한 자기견해를 덤덤히 내뱉어주니까. 평상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건 어떤 것이고 또 꺼려하는 건 어떤 것인지 독자들은 편하게 흡수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진실인지 신뢰성이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 어차피 하루키라고해서 하기 싫은 이야기를 할 리 없을테고 해가 되는 이야기에도 나름의 이유를 붙일 것이고, 어지하다보면 괴이하고 독특한 성격에 대한 기술좋은(?) 변명을 듣고 있는 건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언젠가 1Q84를 해석해놓은 해설서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걸 넌지시 넘겨보면서 이건 어떻게 해서 쓰여진 것일까라고 궁금했다. 정말 저자는 하루키의 의도를 100% 확신이라도 하는 걸까라고...진짜인지 만들어낸 허구인지 아니면 자신만의 독특한 견해인지 알 길 없는 그 해설서의 귀퉁이에서 느낀건 하나, 오히려 '하루키의 진짜 속내를 아는 인간은 없을 거다' 였다. (해설서 별로 안좋아한다.) 

 

그러다가 이 책을 어떨결에 보게 되었다. <하루키, 하루키>라...자전적으로 스스로 이런 책을 내어놓았다면 그동안 <무라카미 라디오>같이 일상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솔직하게 토로하는 고백서정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저자는 하루키가 아니었다.. 읽다보니 굉장히 사적인 이야기들이 등장하고 꺼려할만한 내용도 나오고 있다. 진지한 죽음의 첫경험이 아버지친구 아들의 익사, 그리고 할아버지의 선로위에서 죽음(하루키의 할아버지는 교토의 승려, 술취한 채 선로위에서 자다가 전차에 몸이 절단되어서 사망함) 동갑의 부인과의 만남,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평에서 느껴지다시피 어설픈 미국현대소설 표방으로 평가받았던 아쿠타카와 상과의 악연. 리얼리즘 문체를 재미없어했다는 일화. 일본 출판계의 귀찮고도 짜증나는 번잡스러움. 편집자 야스하라켄과의 설전과 절교. 해외로 전전했던 그의 일본회피적인 여행들.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본인의 입으로 미처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았으나 수많은 인터뷰들과의 미묘한 간극속에서 저자가 잡아낸 심리적 내막들을 읽다보면 그럴수도 있겠다싶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하루키가 '순문학적 어휘'들의 필요성에 대해 그다지 중요하게 보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거리와 , 그 불확실한 벽>, <1973년의 핀볼>같은 과거작들을 실패로 보아서 언급을 그리 자주 안한다는 점, 일본문학계의 숨막히는 정서가 싫어서 해외에서 글을 썼다는 견해등이다. 여기에서 이미 밝힌 바 있었던 <태엽감는 새>에서 떨어져나온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이야기도 재미있고 커트보네거트의 영향력에 관해 인정하지 않는 점, 다만 스콧 피츠제럴드를 좋아하고 그 때문에 프린스턴에 머물기도 했다는 이야기들은 짐작컨대 상상으로 추측만했던 느낌들이 현실화되는 느낌이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라고 혼자 생각했던 것들이 맞아떨어지는 걸 보면 하루키는 가식적 인물은 아닌 듯 싶다. 


하기야 이런 하루키 분석이야기를 읽는다고 해서 그의 저작들이 더 잘읽혀지는 건 아니다. 여전히 읽는 건 변함없을테고 그의 과거이야기가 얼마나 작품에 반영되어서 영향력을 뿜어내는지도 알 수 없는 건 매한가지다. 다만 하루키가 <해변의 카프카>를 내고 예루살렘상 시상을 위해 참석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소감. '벽과 계란'이란 제목의 연설문을 보면 그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했던 부분만큼은 명확했던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본특유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념'같은게 전달되었다고 할까.. 그가 소설을 쓰는 이유로 그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개인의 혼이 가진 존엄함을 드러내어 거기에 빛을 더하기 위해서...우리들의 혼이 시스템에 끌려들어가 멸시당하는 일이 없도록 항상 거기에 빛을 비추고 경종을 울리는 것, 그것이 이야기의 역할이다' 라고 ....그러니까 고정관념과 시스템이 만들어놓은 귀찮고도 더러운 이 세상에 반감을 품고 본질적인 부분에 더 많은 빛을 비추길 원한다라...까달스러운 저자답긴 하다. 주류의 격식같은 을 싫어하는 줄을 알았지만서도..


사실 파파라치마냥 치부를 흔들고 치정극과도 같은 비릿한 숨결을 지면에 토해놓지 않아도 하루키의 정서는 작품으로 이해될 만하다. 그가 와세다 대학 문학부 기숙사생활이 <노르웨이의 숲>의 배경이 되었다는 걸 안다고 해서 그의 작품이 갑자기 다르게 읽혀질리도 없고 그가 아쿠타카와 상 수상 실패로 트라우마있다고 해도 독자들은 신경쓰지 않는다. 더우기 노르웨이의 숲의 미도리가 부인 요코로 읽혀진다고 해도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냐라고 하면 할 말도 없다. 그저 하루키에 대한 남다른 관심들은 그의 작품이 보여준 정서의 궁금함이 벌인 격변의 일기정도...한 여름밤의 스콜성 폭우정도?  이 정도의 책이라면 가볍게 읽을 만하고 그렇군하고 넘어가줄만하다.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이 책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하루키가 스스로 동여맨 자신의 이야기를 들춰라도 줬으니...그나저나 하루키는 이 책을 보면서 뭐라고 할까나..아마 자기멋대로 해석하고 맘대로 썼군' 이라고 생각하거나 '될데로 되라지, 아무렴 그렇게 생각하시든지'...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루키 하루키

저자
히라노 요시노부 지음
출판사
아르볼 | 2012-10-22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진짜 하루키를 만나다!하루키의 인생, 하루키의 문학 『하루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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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BOOK/에세이2013. 2. 13. 14:30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무라카미 하루키(Murakami, Haruki / 村上春樹)/ 문학동네.

 

 

 

" 커피는 어둠처럼 검고, 재즈 선율처럼 따뜻했다. 내가 그 조그만 세계를 음미할 때, 풍경은 나를 축복했다 "

 

 

 

또. 하루키의 에세이다. 그야말로 하루키 에세이가 아니면 읽지도 않는다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겠지만, 사실 하루키 에세이이외에 그럴듯한 에세이를 만나보지 못한 것도 이유라면 이유다. 게다가 한여름 갑작스레 길거리 한복판에서 만난 소나기마냥 느닷없고 충동적으로 에세이 연작시리즈를 모조리 사가지고 집으로 오지 않았던가. 지나고보면 이게 다 느닷없는 충동질에 대한 책임감과도 엮여있다고 볼 수 있다. 책장이 다 떨어지도록 읽어라라는 외침이 가슴한구석에서 계속 메아리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무라카미 에세이 시리즈는 사실 희귀하다고 말하긴 힘들다.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갈래로 서점에 앞다투어 등장했었지만 희한하게도 '문학동네'측에서 정식계약에 의해 제대로 된 삽화와 이력(?)을 타이틀로 세트로 구성해서 내놓았다는 점이 특이할 뿐이다. 이를테면 두둥!!, 리뉴얼판 신작시리즈 하루키 에세이 세트 등장이라고 해야할 판이다.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2. 발랜타이데이의 무말랭이.
3.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
4.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5. 해뜨는 나라의 공장.


이 묵직한 5권세트(거북이 등짝이 새로생긴 것마냥 무겁게..)를 짋어지고 결국 난 공사판의 혈기왕성한 청년처럼 의기양양하게 옮겨놓았드랬다. 아무튼 후회는 별로 하지 않는다. 잘 샀고, 또 잘 읽고 있으니까. 우선 1편격에 해당하는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는 5권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에세이집이다.  이미 읽었던 내용도 간간히 있기는 해서 낯설지도 않고 안지 미즈마루의 삽화같은건 일종의 쉼터역할을 해서 에세이로서의 여백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되기는 한다. 하지만 지면에는 활자가 그득하게 좋아서 여분의 페이지에 그림들로 상당수 채워진건 살짝 불만이다. 그럴려면 그냥 얇게 만들어줘도 좋겠는데,...뭐 나쁘지는 않다.


하루키 표현대로 젊은시절 '존 업다이크'의 책을 구름낀 희뿌연 봄날의 조용한 저녁나절에 '일주일전에 산 바게트빵'같은 철제침대에 누워 읽어야만 했다면 역시 하루키 에세이도 비슷하게 읽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존업다이크를 읽기위한, 존 치버를 읽기위한 장소같은게 분명히 존재할 것만 같다고 하지 않았나.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을만한 적당한 장소가 분명 이 세계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에세이는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다.  여전히 정서적 올컬러로 형형색색 퀼트모직처럼 엮여있다.  '임스의 라운지체어', 'AR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텔레만' '로스맥도널드의 죽음, 스니커즈 이야기, 스윙재즈들. 테리힐 밴드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캡캘러웨이, 초콜릿 댄디스, 퀴퀴한 냄새가 나는 따뜻하고 흥분된 가게의 공기들',그리고 질레트의 '트로피컬 코코넛' 쉐이빙 크림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 NICE BOX 1384에 담긴 위험한 발언(?)까지 포함하면 무라카미는 역시 무라카미답다.

 

 

한때, 하루키의 글을 읽으면서 그가 표현했다시피 '그것들은 '그것들'일 뿐이다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같은 패턴과 같은 이미지, 그리고 버무리는 특유의 스타일리쉬한 타이포라이팅. 마치 롤빵에 발라진 버터와 찌그러진 캔맥주, 챙이있는 야구모자와 빨간 뿔테안경을 쓰고, 올이 성긴 다갈색 원피스에 하얀 테니스화를 신은 소녀가 코끼리 공장에 나타나서 수없이 많은 계단을 통해 달이 두개인 '그 세계'로 갈것만 같은 느낌이 에세이에서도 간당간당 느껴질 정도면 말 다한거 아닌가. 반복적이란 건 그래서 위험하다. 지루해지기 십상이니까.  하지만 범상치 않아서 좋았고 판타지적이어서 질리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에세이에서도 그런 자취는 여전하다. 다만 그가 에세이에서 언급했다시피 '두다리로 직접 마을과 하나하나돌다보면, 하나하나의 장소에 사람들의 정념이 미세한 비늘처럼 들러부터있는 것을 알수 있다는 것처럼, 그의 에세이에도 그의 비늘이 지면에 돋아나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슬그머니 지면에서 한장한장 넘길때 정서적으로 느껴지는 그 감촉들이 아마도 하루키 에세이이 진면목이리라.


오랜세월동안 하루키의 에세이가 내 인생의 여백에 차츰차츰 엔트로피의 증대처럼 쌓였다고 생각한다. (207p에 이 표현이 등장한다.^^) 마치 하루키가 살고있는 판타지의 소굴속을 살금살금 기어들어가 몰래 엿보는 이런 쾌감은 쉽게 얻을수 있는게 아니다. 이원화된 세계와 상실된 자아를 찾기위한 주인공의 몸부림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다라고 생각하고 에세이를 뒤적거렸던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결국 그속에서 의외의 편안함과 그리고 일상사에서 만나보기 힘든 하루키의 또 다른 일면을 본 것 같다. 그 정도면 소설못지 않은 감흥과 즐거움이 있는거라고..뭘 또 바라냐고 피식피식 웃곤 한다. 두번째 에세이도...3번째 에세이도 그렇겠지. 그리고 잔잔하고 쿨하고 덤덤하면서도 소리없이 피는 진달래처럼 봄날에 읽기에는 딱 좋은 에세이일거라 믿는다.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2-07-24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센티멘털리즘 가득한 문장과 컬러풀한 일러스트가 연주하는 하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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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ewell
Review BOOK/에세이2013. 1. 17. 14:30

<솔트 앤드 페퍼, 청춘을 위로하는 것들> - 김홍식/웅진윙스
   2010.10.18 출간.

 

 

 

이제는 가보기 어려운 곳이 되었지만 도쿄는 분명 매력적이긴 곳이긴하다. 스이도바시, 신주쿠, 시부야, 이이다바시, 오차노미즈, 아키하바라 등 몇몇군데 밖에 가보지 못했던 것이 뒤늦은 후회로 다가오게 되다니 세상일은 참으로 모를 일이다. 다시 가보고 싶어도 이제는 가기 어려운 곳이 되버리고 말았다. (이유는 개인적인 뭐...) 어찌됐든 도쿄의 일상이 그리워질 때는 오래전 읽었던 이 책을 다시 펼치곤 한다. 이 책에서만큼은 나도 도쿄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어버리니까. 동감의 구절들과 이국적 향취같은게 아주 그립다곤 이야기 못할지라도 추억을 재생하기에 수많은 동기부여가 이 책에는 담겨있다고나 할까.

 

그야말로 '청춘을 위로하는 것들'이 가득찬 느낌이었다. 읽을 땐, 나도 그곳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는데 사람이란 아주 색다른 개성만이 점유하는 존재가 아니란 걸 알겠다. 게다가 저자는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인디음악에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연출가이지 않은가. 도쿄와 인디음악의 공존이라..귀에 페퍼톤즈 음악이 흘러나오는 이어폰을 끼고 오차노미즈의 수로를 끼고 거닐어 볼 수만 있다면, 시오도메 라멘을 후르룩 거리며 먹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시부야거리를 다닐 수만 있다면, 지면 속엔들 나쁘지 않다는 걸 읽는 내내 알게 되었다. 동경소년 정도 된 느낌...오래지 않았던 옛일을 회상할 때즈음 저자의 이 책은 그저 자기경험담을 담은 에세이가 아니라 나의 추억이 일정부분 데자뷰된 감정대리자였던 셈이다.


여행 에세이들이 그렇게 인상적인 형태로 책이 출간되거나 하진 않고 아주 예쁜 사진과 여리디여린 감수성을 자랑하기에 급급해서 지면의 활자보다 그림들이 더 많은 책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책을 읽고 나면 읽었다라는 느낌보다는 그림과 사진을 감상했더라는 뭔가 경치를 굉장히 빠른 기차를 타고 흛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곤한다. 그리고 며칠 지나면 이미지는 거의 휘발되고 기억창고는 먼지만...아마 내 경험들이 아니어서가 아닐까싶다. 그런데도 <솔트앤페퍼>는 유달리 기억에 강하게 남았더랬다.  고양이 카페도 기억하고 요요기 공원도 떠오르며 메구로 강가, 기치조지 이노카시라 공원도 기억에 남는다. 아마도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열망 같은게 남아서 였을수도 있겠고  일본의 하네다 공항에서 모노레일통해 도쿄까지 가는 동안 특유의 페이퍼 냄새를 개성적으로 받아들였던 기억같은게 오버랩되서 일수도 있다. (이 냄새를 떠올리면 난 도쿄 한 복판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한다.)


이 책의 특이점은 에세이 내부에 인디음악에 대한 애정을 심어놓았다는 정도. 그리하여 부록으로 무려 OST 시디를 붙여놓았드랬다. (개인적으론 책에 CD부록주는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책에 시디케이스 비닐을 붙여놓는 건 망할 짓이란 생각도 좀 있고, 이렇게 구입한 시디를 제대로 들어 본 적이 없어서 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도 저자의 인디애정이 절절하게 다가와 난 일부러라도 이 시디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디어덱까지 동원하진 못했어도 PC의 시디롬에 넣고 스피커을 잔잔하게 다듬은 다음 DEB의 음악에 귀를 열어두었다. 아주 생경한 건 아니었고 예전에 패러럴문(Parallel moon)을 듣긴했었다. 인디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글이 길어지니 생략하지만 아무튼 특이한 컨셉의 에세이란 느낌은 든다. 아무튼 지금도 가끔 이 책을 읽을 땐, 집에 조용히 음악을 켜두고 아침 햇살이 창가에 스며들게 한 후 자리를 편하게 한다. 그리고 지면의 장소로 점프하곤 한다. 음악도 좋고 저자의 나긋나긋하면서도 덤덤하고 감성적인 어투도 매력적이다. 에세이를 읽어야 한다면 이런 책이 나에겐 제격인 듯 싶다.

 

 

 

 


야키도리에 뿌려진 솔트 앤 페퍼의 풍미를 떠올리며 ...

언젠가는 다시 가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혹시 책을 한 3백번 정도 읽으며 가게 될 운명이 끈이 연결되지나 않을까하는 망상도 가끔 들만큼 흡사 타임포탈같은 책이다.

 

 

 


 

저자 : 김홍식
 밴쿠버 필름스쿨에서 연출을 전공, 2005년부터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 이끌려 도쿄를 오가면서 그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에게 도쿄는 촬영 장소이자, 지친 스케줄 틈틈이 숨통을 틔워주는 아지트, 아이디어를 샘솟게 해주는 보물상자이기도 하다. 순수하면서도 열정적인 인디음악이 좋아 시작한 ‘인디투고Indie to go’는 인디뮤지션들의 리얼 퍼포먼스를 원신One Scene, 원테이크One Take로 담아내는 다큐멘터리이다. 박지윤, 장기하와 얼굴들, 크라잉넛, 페퍼톤스, 노리플라이 등 50여 팀이 참여하며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가 연출한 인디투고는 2008 삿포로 단편영화제, 2009 도쿄 단편영화제에 초청·상영되었다. 그밖에도 체리필터, 김경호 등 30여 편의 뮤직비디오 연출과 올리브TV의 ‘스타일 다큐’, 컨버스convers, 갭gap 광고 등의 연출에 참여했다 (www.kyobobook.co.kr에서 발췌)

 

 


 

목차

 

솔트 앤드 페퍼: 신주쿠 오모이데요코초
밤이 깊었네: 시오도메 라멘
타인의 취향: 시모키타자와 스티커숍
Coffee to Go: 지유가오카 테이크아웃 카페 바 무라초
사랑한다는 말: 세이조 대학 벚꽃 거리
오늘 고마운 하루: 요요기 금붕어 카페
음악과 여행 사이: 시부야 디스크 유니언
사랑의 롤러코스터: 도쿄 돔 시티 롤러코스터
작은 고양이: 히키후네 고양이 카페
My Favorite Things: 에비스 카페 뤼 파바르
나의 안티에이징 스팟: 요요기 공원
봄의 멜로디: 메구로 도리 가구 거리
연애시대: 고마자와 올림픽 공원
여름의 조각들: 나카메구로 메구로 강가
브라운, 브라운, 브라운: 기치조지 이노카시라 공원
보통의 날들: 가쿠라자카 카페 조르주 상드
노스탤지어: 가쿠라자카 우드맨스 케이크
화양연화: 가사이린카이 공원 대관람차
기억편린: 우라하라주쿠 캣스트리트
슬럼프: 진보초 고서점가
모두가 록스타를 꿈꿔야 하는 건 아냐: 오차노미즈 악기 상점가
기억하지 못할 순간: 고엔지 카페갤러리 하티프낫토
웃으며 안녕: 고엔지 팬케이크 데이스
이토록 뜨거운 순간: Flight No. OZ 1035

 

 

 

 


솔트 앤드 페퍼

저자
김홍식 지음
출판사
웅진윙스 | 2010-10-18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당신의 솔트 앤드 페퍼는 무엇인가요?인디뮤지션의 리얼 퍼포먼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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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ewell
Review BOOK/에세이2013. 1. 16. 10:00

<소울푸드> - 샘킴.

 

 

 

개인적으로 셰프 샘킴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다. 어느날 아무 생각없이 CATV 채널을 마구잡이로 로테이션 시키다가 친근감있는 얼굴로 (요리사 복장따위는 하지도 않은 채,) 체크무늬 셔츠에 아주 유쾌한 말투로 요리를 하는 이 분을 보게 되었다. 그것도 굉장히 좋아하는 이탈리아 요리들이라니....이윽고 빠짐없이 이 분의 프로그램을 챙겨보기 시작했는데 아마 그 프로그램이 쿠킹타임이었던 걸로... 쿠킹타임 시즌1은 일정 부분 출연하시다가 다른 요리사도 등장하는 게스트형 프로그램이었으며 나오지 않는 회차에는 아쉬움 마음을 가지고 다음 회차를 기다리곤 했다. 그 유명한 드라마 '파스타'의 주인공 이선균의 원래 캐릭터가 이 분이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도저히 매치가 되지 않는 서글서글한 눈빛을 보면 절대 '버럭' 셰프가 되기엔 어렵다는 걸 눈치채긴 했다. (실제 최현욱 셰프의 성격까지 이 분과 동일한건 아니라고 밝히신 바 있다.)

 

요근래 매스텀에 자주 등장하시는 스타셰프들이 꽤 있는 편이다.  최현석 (엘 본 더 테이블 총괄셰프), 강레오,  에드워드 권, 박찬일, 레이먼 킴, 하물며 탤런트 김호진까지..다들 한 성격들 하시는 듯 싶은데 (갑자기 버럭하면서 살벌함을 풍길때는 채널을 돌리고 싶을만큼 꺼려진다는...) 오히려 이 분은 오기는 있어도 전쟁터같은 주방에서 마구 뒤엎는 스타일은 아니란 점이 색달랐고 생글생글 웃으면서 '아무렴 어때'하는 스타일이어서 좀 더 정감이 갔다고나 할까. 어찌되었든 이 분 덕분에 나는 졸지에 이탈리아 요리를 취미로 배우고자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는데 파스타를 열심히 연습하고자 구매했던 '가로수길 레시피' 라든지 '샘킴의 이탈리아 요리' 등은 요리만드는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정작 궁금했던 셰프들의  생각을 알수는 없는 노릇이다보니 점점 더 궁금해지곤 했다. 이 분은 도대체 요리에 대한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 유년시절을 지냈셨나. 무슨 코스로 요리사가 되셨나..뭐 등등..

 

 

어떤 셰프들은  다큐멘터리 요리 기행같은 걸 하면서 자기만의 생각, 견해등을 표현, 속에 있는 요리철학이라든지 생활방식이라든지 하는 부분들을 슬쩍 볼 수도 있다지만  이 분은 도무지 그런 방식으로는 얻어지는 정보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웃으면서 요리는 해도 인터뷰도 본 적이 없고...아마도 내 컨텐츠 탐색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테지만, 어쨋든 베일에 싸인 오리무중의 고수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이 책을 봤다. 특히 성공담 늘어놓기이거나 여행을 한답시고 사진 무진장찍어서 지면의 대부분은 여백으로..그리고 진짜 감정들은 지면에 흩어진 과자 부스러기마냥 몇 줄 읇조린 에세이들을 워낙 싫어했던 터라 그런 책이 아닐까 살짝 의구심이 들었는데...다행히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냥 이야기였다. 솔직하고 진솔한  이야기..그리고 나는 몇장을 서서 읽다가  <소울푸드>는 주저없이 집어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건데 기대했던 데로 굉장히 소탈하시다는 점 (물론 다른 셰프들께서 비인간적이란 뜻은 아니다. 다만 너무 무서우신 양반들이신지라 약간 다르길 기대했던 것 같다.) 엘리트코스로 차근차근 밟고 올라가신 요리사라기보단, 실전형 요리사에 가까운 이력도 눈에 들어오고.. 그래서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하숙집에서 요리재료사러 시장을 쏘다니는 이야기, 그리고 미국에 가고 싶어서 다른공부를 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일식집에 취직한 이야기..안주하기 싫어서 일식집을 박차고 이탈리아 레스토랑으로 도전하는 이야기들은 흡사 아는 형의 이야기이거나 편한 선배의 이야기처럼 아주 생생하게 전달되고 있었다.

 

보나세라의 셰프 지원서를 내고 요리 테스트를 받을 때의 이야기는 솔직한 말로 마치 '드라마처럼' 느껴졌다. 요리 프로그램을 보면서 느낀건데 샘킴 셰프의 요리들이 정통 이탈리안 요리라기보단 약간 퓨전느낌이 난 현대적 요리같은 느낌이 있어서 뭔가의 걸림돌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몇번의 테스트를 거쳤다는 이야기에 묘한 공감을...그리고 기어코 셰프 확정되고 나서 유명해지는 과정에서도 주방을 뒤엎어버릴만큼의 강력한 '파스타'의 최현욱같지 않아서 더더욱 좋았더랬다. (물론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일 따름이긴 하지만..)  일전에 나는 셰프 레이먼킴과 이분의 듀엣 쿠킹타임을 열심히 시청한 적이 있었는데, 좋았던건 요리사로서의 거들먹거리는 뭐라고 해야 하나 '나는 전문가이거든' 하는 위압감이 없어서 굉장히 좋아했었다. 물론 요리사가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방법으로 어법이나 말투가 편안해야 할 필요는 없겠으나 세상에는 너무나 신경질적이고 폼을 잡으시는 분들이 너무 많다. 주방은 전쟁터이고 시체가 죽어나는 심각하고 진지한 곳이라는 것, 이미 유명 셰프들로부터 듣고 공감한지 오래다. 그래도 나같은 시청자들은 요리하는 과정에서 죽일듯한 긴장감을 감정적으로 폭발시키는 건 영 불편하다.

 

아무튼 샘킴의 이 책속에서 나름대로의 생각과 가치관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요리라는 건 어쩌면 그 사람을 대변하는 일종의 거울일수도 있겠다. 때론 탐구도 그리고 탐구만큼 진지한 열정도 필요하겠지만 어쩌면 이 모든 게 그 사람이 가진 많은 것들의 결정체로 화한 것이라고 볼 때 사람이 매력적이라면 요리또한 매력적이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난 샘킴 셰프를 좋아하는 것이고 앞으로도 이 분의 프로그램을 줄기차게 볼 듯 싶다. 

 

 


소울 푸드

저자
샘 킴 지음
출판사
담소 | 2012-12-07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드라마 ‘파스타’를 통해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온 셰프 ‘샘 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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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