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BOOK/에세이2013. 6. 7. 00:00

하루키, 하루키 

- 히라노 요시노부 /지학사.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생 히트작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나서 그 쓸쓸함과 뭔가 애닯은 듯한 감정을 가슴에 품은 채 시절을 감내하듯 지내는 것 정도는 당시의 또래들에게 굉장히 유행병 같았다. 그럼 이 쓸쓸함과 거리두기에 독자들은 완전히 몰입했던 것일까. 물론 이런 성향을 두고 하루키의 디태지먼트(물러섬, 관조적, 수동적 태도)로 정의하긴 한다. 시대적 종말론 비슷한 우울함과 맛물려서 90년대 후반은 어수선했으니까.. 그래서 하루키의 타작들도 다 이러했을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사실 다른 연작들의 추상적 스토리에 비하면 굉장히 리얼리틱했다.  아마 <해변의 카프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양을 둘러싼 모험>같은 이야기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난해함이 깃들어 있음을 인정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개인적으론 굉장히 어려웠다. ) 


차라리  동화적이면서도 우화적인 스토리라인에다가 미스테리한 설정, 그리고 조근조근 이야기하듯 펼쳐지는 삶의 독특한 일상들이 더 매력적이었다면 모를까. 그러니까 대다수의 독자들은 하루키 삶의 attitude같은 걸 사랑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구마모토 굴과 차가운 샤블리를 한잔 하면서 호박색 반달을 바라보고, 맥주를 곁들인 생선요리를 가볍게 먹고 콜트레인을 들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었는데 갑자기 노크소리가 나고 구멍을 통해 바깥을 보니 양사나이가 서있었다라는 식의....가벼우면서도 흥미진진하고 뭔가 의미심장한 일련의 사건들이 소리없이 펼쳐지는 이중 구조의 세계...이런게 하루키가 펼쳐놓은 이야기의 프레임들이었다. 



각자의 해석에 기대어서 하루키를 바라보긴 하지만 사실 하루키가 가진 사생활적 편린들은 대체로 소설 그 자체 외에서 찾기가 수월치않다.  수필은 그나마 좀 낫다. 소소한 자기견해를 덤덤히 내뱉어주니까. 평상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건 어떤 것이고 또 꺼려하는 건 어떤 것인지 독자들은 편하게 흡수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진실인지 신뢰성이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 어차피 하루키라고해서 하기 싫은 이야기를 할 리 없을테고 해가 되는 이야기에도 나름의 이유를 붙일 것이고, 어지하다보면 괴이하고 독특한 성격에 대한 기술좋은(?) 변명을 듣고 있는 건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언젠가 1Q84를 해석해놓은 해설서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걸 넌지시 넘겨보면서 이건 어떻게 해서 쓰여진 것일까라고 궁금했다. 정말 저자는 하루키의 의도를 100% 확신이라도 하는 걸까라고...진짜인지 만들어낸 허구인지 아니면 자신만의 독특한 견해인지 알 길 없는 그 해설서의 귀퉁이에서 느낀건 하나, 오히려 '하루키의 진짜 속내를 아는 인간은 없을 거다' 였다. (해설서 별로 안좋아한다.) 

 

그러다가 이 책을 어떨결에 보게 되었다. <하루키, 하루키>라...자전적으로 스스로 이런 책을 내어놓았다면 그동안 <무라카미 라디오>같이 일상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솔직하게 토로하는 고백서정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저자는 하루키가 아니었다.. 읽다보니 굉장히 사적인 이야기들이 등장하고 꺼려할만한 내용도 나오고 있다. 진지한 죽음의 첫경험이 아버지친구 아들의 익사, 그리고 할아버지의 선로위에서 죽음(하루키의 할아버지는 교토의 승려, 술취한 채 선로위에서 자다가 전차에 몸이 절단되어서 사망함) 동갑의 부인과의 만남,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평에서 느껴지다시피 어설픈 미국현대소설 표방으로 평가받았던 아쿠타카와 상과의 악연. 리얼리즘 문체를 재미없어했다는 일화. 일본 출판계의 귀찮고도 짜증나는 번잡스러움. 편집자 야스하라켄과의 설전과 절교. 해외로 전전했던 그의 일본회피적인 여행들.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본인의 입으로 미처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았으나 수많은 인터뷰들과의 미묘한 간극속에서 저자가 잡아낸 심리적 내막들을 읽다보면 그럴수도 있겠다싶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하루키가 '순문학적 어휘'들의 필요성에 대해 그다지 중요하게 보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거리와 , 그 불확실한 벽>, <1973년의 핀볼>같은 과거작들을 실패로 보아서 언급을 그리 자주 안한다는 점, 일본문학계의 숨막히는 정서가 싫어서 해외에서 글을 썼다는 견해등이다. 여기에서 이미 밝힌 바 있었던 <태엽감는 새>에서 떨어져나온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이야기도 재미있고 커트보네거트의 영향력에 관해 인정하지 않는 점, 다만 스콧 피츠제럴드를 좋아하고 그 때문에 프린스턴에 머물기도 했다는 이야기들은 짐작컨대 상상으로 추측만했던 느낌들이 현실화되는 느낌이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라고 혼자 생각했던 것들이 맞아떨어지는 걸 보면 하루키는 가식적 인물은 아닌 듯 싶다. 


하기야 이런 하루키 분석이야기를 읽는다고 해서 그의 저작들이 더 잘읽혀지는 건 아니다. 여전히 읽는 건 변함없을테고 그의 과거이야기가 얼마나 작품에 반영되어서 영향력을 뿜어내는지도 알 수 없는 건 매한가지다. 다만 하루키가 <해변의 카프카>를 내고 예루살렘상 시상을 위해 참석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소감. '벽과 계란'이란 제목의 연설문을 보면 그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했던 부분만큼은 명확했던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본특유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념'같은게 전달되었다고 할까.. 그가 소설을 쓰는 이유로 그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개인의 혼이 가진 존엄함을 드러내어 거기에 빛을 더하기 위해서...우리들의 혼이 시스템에 끌려들어가 멸시당하는 일이 없도록 항상 거기에 빛을 비추고 경종을 울리는 것, 그것이 이야기의 역할이다' 라고 ....그러니까 고정관념과 시스템이 만들어놓은 귀찮고도 더러운 이 세상에 반감을 품고 본질적인 부분에 더 많은 빛을 비추길 원한다라...까달스러운 저자답긴 하다. 주류의 격식같은 을 싫어하는 줄을 알았지만서도..


사실 파파라치마냥 치부를 흔들고 치정극과도 같은 비릿한 숨결을 지면에 토해놓지 않아도 하루키의 정서는 작품으로 이해될 만하다. 그가 와세다 대학 문학부 기숙사생활이 <노르웨이의 숲>의 배경이 되었다는 걸 안다고 해서 그의 작품이 갑자기 다르게 읽혀질리도 없고 그가 아쿠타카와 상 수상 실패로 트라우마있다고 해도 독자들은 신경쓰지 않는다. 더우기 노르웨이의 숲의 미도리가 부인 요코로 읽혀진다고 해도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냐라고 하면 할 말도 없다. 그저 하루키에 대한 남다른 관심들은 그의 작품이 보여준 정서의 궁금함이 벌인 격변의 일기정도...한 여름밤의 스콜성 폭우정도?  이 정도의 책이라면 가볍게 읽을 만하고 그렇군하고 넘어가줄만하다.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이 책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하루키가 스스로 동여맨 자신의 이야기를 들춰라도 줬으니...그나저나 하루키는 이 책을 보면서 뭐라고 할까나..아마 자기멋대로 해석하고 맘대로 썼군' 이라고 생각하거나 '될데로 되라지, 아무렴 그렇게 생각하시든지'...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루키 하루키

저자
히라노 요시노부 지음
출판사
아르볼 | 2012-10-22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진짜 하루키를 만나다!하루키의 인생, 하루키의 문학 『하루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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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