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BOOK/에세이2013. 8. 4. 19:00


빔벤더스<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을 다시 보게 된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라이쿠더의 이야기는 추억속으로 잊혀진지 오래였을텐데하면서도 누구말처럼 '유락한 잠의 늪'처럼 빨려들고 몇개의 꿈을 거쳐서 특유의 멜로디에 절여져있었던게 아닌가싶을 정도로 옛기억이 되살아나버렸다. 당연히 이 영화를 다시보게 된 이유는 이 책때문이다. '몸전체로 영화를 이야기하게 되었다며 슬며시 언급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첫번째 무라카미라디오' '저녁무렵에 면도하기'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 에피소드가 잊혀진 꿈의 기억조각을 이어주었다면 다른 이야기들도 오래전 서점 한귀퉁이에서 감질나게 읽어대면서 분량 적음에 아쉬워했던 그 에피소드들이었다. 어투는 여전했고 에피소드들도 그 자리에 조용히 숨쉬면서 오랜 세월동안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나보다. 


사실 순서로 보자면 저녁무렵에 면도하기가 1탄이고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순이다. 그러니까 에세이들 연달아 읽을 필요는 없어도 무라카미 라디오시절의 시간적 흐름에는 미묘한 에세이들의 질감 변화에 대한 추이를 살펴보려면 순서대로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쨋든 면밀히 읽으면 그런 변동이 중요한 저자의 심경변화나 가치관의 변화에 대한 힌트가 될 수 있다싶어 꼼꼼하게 읽었다. 의외로 하루키는 감정의 선을 폭군처럼 넘나들지도 파격도 저지르지 않는다고 느껴진다. 에세이에는 일종의 룰이 있는 것이 아닐까. (일전에도 에세이를 쓸때 몇가지 자기만의 규칙이 있다고는 했다.) 어쨋든 순서상으로는 얼추 맞게 읽으면서 '여전하시군 무라카미 하루키는...' 라고 혼자서 중얼거렸나보다. 


무라카미 라디오를 굉장히 잘쓴 에세이의 교본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하고 있는 편인데 그것은 그가 유명작가여서라기 보다는 일상사를 화려한 과장이나 지나친 생략없이 담담히 줄줄 써내려가는 대범함이 좋아서였다. 어떤 가식도 없고 변명도 없고 자기학대적이지도 않다. 하물며 트위터나 페북에서 늘상 하는 은근슬쩍 신념과 가치관 강습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아님말고'식의 고집이 있긴해도 오버페이스하지 않고 선을 유지하면서 긴거리를 조근조근 달리는 마라토너같다고나 할까. 소설은 안그런데 말이다. 소설과 다른 에세이의 하루키는 '슈퍼맨'같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왜 있잖은가 평범한 사람들은 도대체 생각할거리조차 되지 않는 것들도 슈퍼맨 눈 광선처럼 그의 눈을 관통하면 조용한 일상에서 엉뚱하고도 기발한 이야기들로 화학적 변화를 일으켜버리는 그런 느낌 때문이다. 1960년 '브래지어 소각사건'을 보다가 하루키는 변태라고 읇조렸던 친구가 있었지만 리스토란테에서 테이블 한가운데 페로몬을 머금은 안개가 자욱히 떠있는 광경을 묘사하다가 쩝쩝거리는 소리때문에 산통다 깨버린 이야기를 두고는 정말 별거아닌 이야기를 미소짓게 만들만큼 잘쓴다고 동의했던 적도 있으니까 그는 천상 이야기꾼인 것이다. 


그가 썼던 표현 중 장어를 먹으면서 '높은 칼로리에 대한 자책감'이야기하고 '오일드 사딘'(올리브오일에 담겨있는 정어리 통조림)통조림같은 깡통비행기를 타고가다가 프로펠러가 멈춰버리면 '자신이 투명해지다가 끝내 육체를 잃고 오감만 남아 잔업처리하듯 세상을 마지막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했을때, 과연 이런 느낌의 모호한 느낌을 이렇게 묘사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거라고 감탄했던 적이 있었다. 아무튼 에세이는 저자의 삶을 거울처럼 반영한다고 볼때, 에피소드와 이야기들에 그의 정서적 리듬이 그의 생활적 패턴과 모종의 연결을 도모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한다. 어떤 식으로든 일상사을 배제한 에세이는 있을수가 없으니까. 게다가 그는 솔직하지 않은가. 나서기는 싫어하지만 속내를 글로 쓰는 것만큼은 과감하고 직설적이면도 있다. 


하루키도 갑자기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것을 원치 않으며 ('그런 무서운 짓을 두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라고 한바 있다.) 음악에 깊이 관여된 묘한 관점으로 '후렴구가 없는 인간'을 '함께 할 수 없어 묘한...말한마디한마디는 얼핏 옳아보이지만 전체적인 전개에 깊이가 없는 인간'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또 파스타를 이탈리아에서 먹는 것과 국내에서 먹는 것의 차이가 생기는 이유를 '음식이란 공기포함'이란 고개 끄덕일만한 이야기도, 그리고 '현실에서 간과할 수 없는 주머니속에서 3주전 깜박하고 빨지않은 테니스양말을 꺼낸 것처럼..' 이라며 당혹스럽고도 아이러니한 삶의 일면을 단 몇줄로 요약해주기도했다. 아마 그런 그의 시선과 감성이 좋았을 거다. 독자들은 아무래도 안일한 스토리라인에 매몰된 채 깊이라곤 별로 없는 '해설서'같은 것들에 너무 많이 둘러쌓여 있다보면 그리운 감성같은게 있기 마련이다. 


하루키의 이 에세이는 유독 친 생활적인 에피소드를 넘어서 감성적인 단락들이 존재하는데 이걸 읽고 있으면 그 광경이 그대로 옆에 다가와 있는 느낌이다. 게다가 그는 보이지 않는 감수성의 편린들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책속에 박어넣는다. 아마 이런 감수성 미장센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꼼꼼함을 자랑하시고 계시다. "카우아이의 섬읜 노스쇼어는 노을이 너무나 멋있고 아름다웠다. 선명한 오렌지색 덩어리가 산등성이 너머로 지금 막 숨으려고 하고 바다도 구름도 같은 색으로 물들어있다. 석양을 배경으로 정처없이 차를 몰고 브라이언 윌슨의 '캐롤라인노'가 흐른다. " 이 대목을 읽으면서 잠시 광경을 떠올려버렸다. 그리고 그가 묘사한 '따듯한 나이프로 버터를 자를때처럼 부드러웠다는' 수동변속기의 감촉이 그리워 어느날 친구의 오랜차에 앉아서 둑둑거려보기도 했다. 물론 다 쓸데없는 짓이긴하지만 역시 그의 말처럼 글쓰기에는 '감정의 기억'이 중요한 것 아닌가. 그의 감정기억이 유달랐다는 건 인정할수 밖에 없는 셈이다. 


이런 책들은 문학의 탈을 패스트푸드라고 레플러 여사가 힐난했던 모양이다. 하루키의 저작들말이다. 그런 평가에 초연한듯 싶다가다도 에전 읽었던 하루키 전기를 관통하는 그의 시니컬한 뒷끝을 알고 있는터라 어떻게든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만의 길을 갈것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의 영향력이 근자에 이르러 아주 원숙해진 느낌인데 서점에 갔더니 '스콧피츠제럴드포크너, 카포티, 챈들러, 레이먼드 커버' 한쪽 코너에서 '하루키가 좋아하는저작들'이란 타이을을 건채 진열되어 있었드랬다. 그랬던 거다. 그동안 굉장히 연기잘하기로 유명했지만 대중들이 미처 원숙함을 알기도전에 포기했던 배우를 '대세배우'가 몇번 언급해서 다시 세상에 나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정서에 동기화되고 싶은 독자들이 많다는 뜻이겠지 싶다. 




cf. 

그나저나 하루키는 왜 '사랑하기 좋은 나이'를 16~21 라고 말했을까. 생각해보고 있는데 답이 별로 없다. 그저 상대적으로 고민이 적고 상상력이 풍부한 나이여서 그런가. 글라스에 얼음, 보드카와 토마토쥬스를 섞고 리앤페인 우스터소스 한방울과 레모을 가볍게 짠 블러드 메리를 들고 있는 '포켓 트랜지스터 글래머 걸'은 죄다 그 연령대외에는 없을까?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비채 | 2013-05-2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무라카미 하루키식 해피 라이프를 엿보다!《채소의 기분, 바다표범...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