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BOOK/에세이2013. 2. 13. 14:30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무라카미 하루키(Murakami, Haruki / 村上春樹)/ 문학동네.

 

 

 

" 커피는 어둠처럼 검고, 재즈 선율처럼 따뜻했다. 내가 그 조그만 세계를 음미할 때, 풍경은 나를 축복했다 "

 

 

 

또. 하루키의 에세이다. 그야말로 하루키 에세이가 아니면 읽지도 않는다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겠지만, 사실 하루키 에세이이외에 그럴듯한 에세이를 만나보지 못한 것도 이유라면 이유다. 게다가 한여름 갑작스레 길거리 한복판에서 만난 소나기마냥 느닷없고 충동적으로 에세이 연작시리즈를 모조리 사가지고 집으로 오지 않았던가. 지나고보면 이게 다 느닷없는 충동질에 대한 책임감과도 엮여있다고 볼 수 있다. 책장이 다 떨어지도록 읽어라라는 외침이 가슴한구석에서 계속 메아리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무라카미 에세이 시리즈는 사실 희귀하다고 말하긴 힘들다.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갈래로 서점에 앞다투어 등장했었지만 희한하게도 '문학동네'측에서 정식계약에 의해 제대로 된 삽화와 이력(?)을 타이틀로 세트로 구성해서 내놓았다는 점이 특이할 뿐이다. 이를테면 두둥!!, 리뉴얼판 신작시리즈 하루키 에세이 세트 등장이라고 해야할 판이다.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2. 발랜타이데이의 무말랭이.
3.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
4.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5. 해뜨는 나라의 공장.


이 묵직한 5권세트(거북이 등짝이 새로생긴 것마냥 무겁게..)를 짋어지고 결국 난 공사판의 혈기왕성한 청년처럼 의기양양하게 옮겨놓았드랬다. 아무튼 후회는 별로 하지 않는다. 잘 샀고, 또 잘 읽고 있으니까. 우선 1편격에 해당하는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는 5권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에세이집이다.  이미 읽었던 내용도 간간히 있기는 해서 낯설지도 않고 안지 미즈마루의 삽화같은건 일종의 쉼터역할을 해서 에세이로서의 여백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되기는 한다. 하지만 지면에는 활자가 그득하게 좋아서 여분의 페이지에 그림들로 상당수 채워진건 살짝 불만이다. 그럴려면 그냥 얇게 만들어줘도 좋겠는데,...뭐 나쁘지는 않다.


하루키 표현대로 젊은시절 '존 업다이크'의 책을 구름낀 희뿌연 봄날의 조용한 저녁나절에 '일주일전에 산 바게트빵'같은 철제침대에 누워 읽어야만 했다면 역시 하루키 에세이도 비슷하게 읽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존업다이크를 읽기위한, 존 치버를 읽기위한 장소같은게 분명히 존재할 것만 같다고 하지 않았나.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을만한 적당한 장소가 분명 이 세계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에세이는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다.  여전히 정서적 올컬러로 형형색색 퀼트모직처럼 엮여있다.  '임스의 라운지체어', 'AR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텔레만' '로스맥도널드의 죽음, 스니커즈 이야기, 스윙재즈들. 테리힐 밴드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캡캘러웨이, 초콜릿 댄디스, 퀴퀴한 냄새가 나는 따뜻하고 흥분된 가게의 공기들',그리고 질레트의 '트로피컬 코코넛' 쉐이빙 크림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 NICE BOX 1384에 담긴 위험한 발언(?)까지 포함하면 무라카미는 역시 무라카미답다.

 

 

한때, 하루키의 글을 읽으면서 그가 표현했다시피 '그것들은 '그것들'일 뿐이다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같은 패턴과 같은 이미지, 그리고 버무리는 특유의 스타일리쉬한 타이포라이팅. 마치 롤빵에 발라진 버터와 찌그러진 캔맥주, 챙이있는 야구모자와 빨간 뿔테안경을 쓰고, 올이 성긴 다갈색 원피스에 하얀 테니스화를 신은 소녀가 코끼리 공장에 나타나서 수없이 많은 계단을 통해 달이 두개인 '그 세계'로 갈것만 같은 느낌이 에세이에서도 간당간당 느껴질 정도면 말 다한거 아닌가. 반복적이란 건 그래서 위험하다. 지루해지기 십상이니까.  하지만 범상치 않아서 좋았고 판타지적이어서 질리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에세이에서도 그런 자취는 여전하다. 다만 그가 에세이에서 언급했다시피 '두다리로 직접 마을과 하나하나돌다보면, 하나하나의 장소에 사람들의 정념이 미세한 비늘처럼 들러부터있는 것을 알수 있다는 것처럼, 그의 에세이에도 그의 비늘이 지면에 돋아나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슬그머니 지면에서 한장한장 넘길때 정서적으로 느껴지는 그 감촉들이 아마도 하루키 에세이이 진면목이리라.


오랜세월동안 하루키의 에세이가 내 인생의 여백에 차츰차츰 엔트로피의 증대처럼 쌓였다고 생각한다. (207p에 이 표현이 등장한다.^^) 마치 하루키가 살고있는 판타지의 소굴속을 살금살금 기어들어가 몰래 엿보는 이런 쾌감은 쉽게 얻을수 있는게 아니다. 이원화된 세계와 상실된 자아를 찾기위한 주인공의 몸부림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다라고 생각하고 에세이를 뒤적거렸던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결국 그속에서 의외의 편안함과 그리고 일상사에서 만나보기 힘든 하루키의 또 다른 일면을 본 것 같다. 그 정도면 소설못지 않은 감흥과 즐거움이 있는거라고..뭘 또 바라냐고 피식피식 웃곤 한다. 두번째 에세이도...3번째 에세이도 그렇겠지. 그리고 잔잔하고 쿨하고 덤덤하면서도 소리없이 피는 진달래처럼 봄날에 읽기에는 딱 좋은 에세이일거라 믿는다.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2-07-24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센티멘털리즘 가득한 문장과 컬러풀한 일러스트가 연주하는 하모니!...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