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illa Essay2014. 3. 26. 10:37


최근에 닉혼비의 <피버피치>(Fever Pitch)가 2014년 신판으로 재출간되었다. 물론 이 책은 문학사상사에서 2005년에 이미 출간되었던 적이 있던 책인데, 당시 표지부터 축구 관련 서적아니랄까봐 불타는 축구공을 떡하니 붙여놓고 부제를 '나는 왜 축구와 사랑에 빠지는가'라고 전단지마냥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닉혼비 정도되고 그 정도의 글솜씨를 가진 작가의 축구 에세이라고 하면 사실 그렇게 노골적인 표지 디자인과 축구광들이나 구매욕구를 가질 수 있는 극단의 디자인을 선보일 필요가 없었는데 아쉽게도 작가적인 역량을 몰라봤거나 대놓고 축구매니아들에게 어필하려는 속셈에 완전히 점령당했다. 


최신판은 이렇게 노골적인 표지가 아니라 일상적이고 소소한 생활 에세이같은 카툰 일러스트가 잔잔히 표지로 등장했다. 이게 과연 축구 에세이인지 뭔지 알수 없을만큼 평범해서 문제이긴한데 목차만 쓰윽 보면 대략 이게 어떤 부류의 에세이인지 알 수 있으니까 뭐그다지 굉장히 불편하지는 않다. 닉혼비의 이 책은 오히려 그의 대표작들인 <어바웃어 보이>보다도 더 알려져있다. 나같은 축구매니아에게는 더 유명하고 더 적나라하며 더 공감가는 책인 것이다. 그가 굳이 아스날빠가 아니었더라도 난 그의 의견에 대부분 동조할 수 있는데다가 그가 흥분하면서 글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폭주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귀퉁이에 욕지거리를 써놓는다고 해도 난 그정도쯤은 이해해줄 수 있다. 원래 축구팬이란 대개 그런 법이니까.  


여기서 닉혼비가 좋아할만한 소식. 최근에 EPL구도에서 아스날이 회생과 부활과 그리고 또 강자의 도래라고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닉혼비도 역시 TV앞에서 혼자 지그시 미소를 짓거나 이런 상황에 대해서 가슴 두근거리고 있을 것이나, 이런 현상이 EPL의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흐지부지 되고 있는터라 약간 아쉽게 되었다. 나는 뱅거감독의 불안한 심리가 그대로 선수들에게도 이입되는 것 같다고 느끼곤한다. 그의 잘 안잠겨지는 점퍼 지퍼도 그렇고 외질의 불안하고도 들쑥날쑥한 경기력에 대해 힘겹게 변호하는 것도 그렇고, 지루의 막장 쓰리섬 사건도 부들부들거릴것이며, 초반에 반짝하고 소리없이 숨죽여 사라져버린 반딧불이 '램지'도 그렇다. 


그렇다. 아스날의 처지는 그 현상 그자체다. 굳이 뭘 또 자세히 난잡하게 이것저것 설명할 것도 없고 심리적인 이유와 이면에 감춰진 비화같은 걸 꺼낼 필요조차 없다. 아스날의 현상황은 그냥 경기력에서 보여지니까. 닉혼비는 도래했던 영화에 대한 꿈을 다음시즌으로 넘겨야할거고 아스날팬은 그저 오래도록 라이벌이었던 맨유의 몰락을 보면서 '우린 그래도 저정도는 아니잖아. 아직 할만해' 라고 위안삼아도 될 것이다. 내가 진짜하고 싶었던 부분이다.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즉, 맨유의 몰락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맨빠정도는 아니더라도 EPL구도에서 균형감각을 유지하며 어느정도 균등한 접전을 선호하는 제너럴한 축구팬을 대표한다고 생각하는데 맨유의 몰락은 이런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재미없고' '안타까운' 부분이 되어가고 있다. 


금일 새벽 2013-14 EPL 28 R 맨시티와의 경기에서 3 : 0 으로 발렸다. 그것도 처참하게 공격기회다운 기회한번 얻지 못하고..이게 반페르시의 부재라고 위안삼기에는 전통적인 맨유의 위력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기에 더 아쉬운 법이다. 퍼거슨이 말했던 '시끄러운 이웃' 맨시티는 이제 강자가 되버렸고, 맨유는 쓸쓸하게 그 자리를 시끄럽지만 아주 센' 맨시티에게 양보할 수 밖에 없게 되버렸다. 이젠 라이벌이라고 떠들어댈 날이 그리 많지 않을수도 있다.  프리미어 시청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건 정의의 위반이네 하면서 침을 튀기며 흥분하는 맨빠의 심정을 아주 이해못하는건 아니다. 어차피 맨시티는 만수르의 바빌로니아니까. 자본주의 사회라면 이런 불공정한 물량공세를 당연히 생각하면서도 어떻게 안되는 형편에 인상을 구겨야 하는 현실이 자꾸 떠오를 뿐이다. 


맨유의 패착이 뭐고 페인이 뭐고간에 그런건 긴 이야기가 될테니 여기서 언급하지는 못하겠지만, 내심 마음속으로 기대하는 몇가지가 있긴 하다. 하나는 맨유도 '바빌로니아'급은 안되더라도 재건을 위한 물량투자를 어느정도 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거기에는 물량으로만 해결이 안되는 질적인 퀄리티, 즉 월클 선수에 대한 유입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럽시장의 이적 루머의 상당부분에 맨유가 등장하는건 웃기기 까지 하다.  다들 맨유가 이 시점에서 누군가를 데려와야 한다고 계속해서 지적하는게 아닌가. 불특정 다수가 다들 맨유는 이래선 안돼 이 선수라도 영입해야 한다고 알아들었어 멍청이 맨유 관계자들 듣고 있냐고..라고 말이다.  


맨유팬들이라면 닉 혼비의 '피버피치' 정도는 우스울 거다. 이미 클레버리를 보면서 인내심의 최고치를 경험하고 있고, 돈독이 오른 루니를 보며 계속해서 회의가 들며 키만 큰 펠라이니가 과연 맨유에 뭘 해다 줄 수 있을지 계속 의심한다. 이미 비디치는 막장이고 퍼디낸드는 할아버지급에 필적할만큼 퇴보되었으며 나니는 일찌감치 맨유로부터 멀어지셨다. 카가와는 도르트문트 시절의 자신을 보조하던 디펜시브 조력자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게 증명되었고 마타는 자기의 롤이 뭔지 헷갈리는데다가 반페르시는 자신의 몸조차 관리가 안되는 피노키오 신세다. 아들이 맘에 안드니 아버지가 그럼 내가 대신 뛰어주지 라는 심정으로 긱스가 헐떡이는 맨유라니....


맨유가 추진 중인 올 여름 이적시장 수비수 - 에제키엘 가라이


모예스의 회견내용을 슬쩍보게되면 대충 이 아저씨가 어떤 마음가짐이고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는데 한마디로 안타깝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한때는 효율의 에버튼으로 불리우던 시절의 명장이었는데...지금 시점에서는 맨유에 기대하는 건 좋은 선수의 여름 영입 뿐이다. (기존 선수들의 케미는 이미 일어난 화학반응이고 연쇄반응을 기대하기엔 엔트로피는 고갈상태..)  두명의 월클이 이미 이적동의를 했다는데 대충 가늠하길..윌리암 카르발류, 그리고 가라이 정도가 아닐까하는 예상. 그런데 이 둘이 월클이었던가. 월클이라면 토니 크로스카바니 정도 돼줘야 뭔가 그럴듯해질텐데...그래서 말인데 코엔트랑이던 가라이던 카르발류던 누가 와서 분위기 쇄신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렇게 된다면 흥미진진한 EPL이 되지 않겠는가. 만수르의 맨시티. 무리뉴의 첼시, 닥공의 리버풀, 안간힘을 쓰는 아스날에 재건되는 맨유라...이 정도면 볼만할 거 같다. TOP4의 시절은 갔지싶다. 참고로 난 리즈팬이다. 아스날와 맨유에 아무런 악감정이 없으며 다만 흥미진진함과 공정한(?) 자원의 분배로 인한 긴장감 고조를 기대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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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BOOK/철학-사상2013. 9. 6. 22:41


간혹, 아주 두터운 두께의 고전이나 오랜 문학소설, 그리고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 문학들을 접하게 될 때, 테크놀로지적인 습득장치가 마련되어서 코인을 넣고 머리에 뭔가를 연결하고 '스팍'하고 번쩍이면 머리의 기억장소에 정확하게 내용과 핵심들이 저장되면 정말 편할거야라고 황당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아마 키아누 리브스가 코드명 J에서 비슷한 걸 했었지싶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 싶지만 그만큼 세월을 감내한 마스터 피스 일수록 왠지 모를 거대 지루함은 견디기 힘들고,  암연과도 같은 혼란의 미로속에서 헤맬 만큼의 얕은 이해력을 생각하면 상상이라도 이랬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왜 그렇게 책 읽기가 어려운 건지.... 술술 읽히고 머리속에서 갈갈히 용해되고 지독히도 다양한 문장의 치즈들이 덕지덕지 발려져 꾸역꾸역 뇌로 들어오면 이를 재빨리 녹여줄 콜라같은 '이해력'이 있었으면 하는데 하지만 그런게 있을 턱이 있나 세상은  출중한 독서가를 많이 등장시켰어도 절대로 '훌륭한 독서가'가 되는 기발한 방법같은 건 알려주지 않는 법이다. 이게 다 진득히 뭔가를 읽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서일 수도 있고 뭔가를 진득히 읽고 생각하기를 세상이 원하지 않아서 일 수도 있다.  그래서 책 다이제스트도 생겨났다고 믿는다. 책 내용을 친절히 풀어서 설명해주고 핵심이 뭔지도 가르쳐주고 개인적인 평도 덧붙여주고 그러면서 그 험난한 '독서생활'이 없을지라도 유사 그럴듯한 독서가 행세를 할 수 있지 않은가. 그야말로 편한 세상인 것이다.  


이런게 다 나쁘다는건 아니다. 솔직히 언제 읽을 지 알수도 없는 수없이 많은 고전들과 듣도 보지 못한 소설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나오게 되면 여기서 뭘 골라낸다는 것 자체가 노동이다. 이렇게되면 읽는 능력외에도 '골라잡는' 능력도 필요하게 되고  골라잡으려면 '모니터링'을 잘해야 하고 이 모든 걸 다 감안하면 거대한 시간 놀음 속에서 점점 침몰되어가는 자신을 볼 수도 있다. 어떻게든 좋은 책을 골라는 잡아야겠지만 이런 걸 누가 가르쳐줄까..그리하여 책을 읽고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을 다시 골라잡게 된다. 아마도 MD추천이니 하는걸 믿고 책을 잡았다가 지적허세질에 당했다고 부르르 떨면서 책을 놓아버렸던 경험이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인건 알려진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이런 책을 내게 되면 적어도 그 책 속에서 언급했던 비평과 이야기들에 신뢰감을 가지고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이다. 


서평도 그렇고 책읽기에 대한 책들도 그렇고 교습적인 강요투의 문장만 무더기로 반복되지 않는다면 해가 될 이유가 없다. 어차피 다들 참고이상으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고 개인적인 취사선택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을테니까 책을 읽는 시점에서는 아 그래 이 책이 그런 책이야 한번 고려해보도록하지 라고 스스로 모종의 체크만 해둘 뿐이다. 나중에 한번 그 책에 대한 저자의 평을 떠올리며 슬쩍 몇장 넘겨보다보면 책의 저자가 말한 뉘앙스가 맞는지 어떤지 알게 되고 그러다가 보면 저자가 책을 읽고 감회를 밝혔던 그 책의 가치를 알게 된다. 그정도면 훌륭하다. 그런데 여기에 몇가지 더 보너스로 추가한다면 이런게 있다. 



닉 혼비


책에 대한 평을 쓰면서 자기만의 스타일과 격조있는 문장과 그럴듯한 비유와 기발한 표현들을 버무려서 독자가 책을 읽지도 않았는데 마치 이제 막 읽은 것처럼 감정을 전달해줄 때, 옆에서 친한 친구가 어제 읽었던 책 이야기를 도란도란 이야기해주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리고 자꾸 이 친구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지는거다. 어떤 재미난 이야기를 해줄까 오늘은 또 어떤 책을 읽고 유머있는 이야기를 해줄까. 번뜩이는 재기와 신랄한 지적질과 솔직한 표현들을 기대하며 기대한다. 그렇게 즐거움을 가지고 책에 대한 책을 읽는 것. 그 속에서 저자의 아이덴티티까지 덤으로 획득되어지면 단순히 책정보를 전달해주는 것 이상의 에세이를 만나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그 책이 바로 이 <런던 스타일 책읽기>다.  


물론 알베르토 망구엘 할아버지가 이걸 봤으면 이런 허접한 독자들을 봤나. 내가 그랬지 않나 책을 읽을때 낱낱히 문장을 해부하고 그 이면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완전한 번역가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어라고 신랄하게 뭐라고 하시겠지만 설사 그렇다고해도 우리는 책에 대해 대작해주는 작가를 믿을 수 밖에 없다. 그는 나보다 더 지적우위에 있고 사리를 분별할줄 알고 가치기준의 명확함과 대중들에 대한 개인적인 판단이 어느정도 인정되어있으니까..그렇지 않았으면 내가 닉혼비의 소설을 읽었을 이유가 없고 이 책을 굳이 들고 닉혼비 특유의 재치를 읽으며 미소를 지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닉은 책에 대해 훌륭한 자세를 가지고 있다. 그는 '돈을 받지 않았어도 했을일, 즉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쓴 글에 대해서 돈을 받을 셈이었다고 솔직히 고백했고, '우리는 스스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이미 읽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러한 책을 읽는 경우가 많다고 짐짓 아픈 곳을 찌른다. 그렇다. 이런 허세질이 없으면 우리가 괜히 뜬금없이 날도 더운데 혹은 스산해질때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이해도 안가는 고리타분한 고전문학을 집어들겠는가. 스스로를 속이는 또 하나의 기묘한 지적놀이로 독서를 택해도 개멋 부린다고 뭐라 하지 않는다. 다만 닉혼비의 이 글을 접하게 되면 등짝을 손바닥으로 짝하고 맞은 기분일 거다. 


그런 재미없는 책을 읽으면 지루해지고, 지루해지면 성격이 더러워지고 그렇게 되지 않기란 너무 쉬운 방법, 재밌는 책을 찾아서 읽으시라는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그리고 솔직한 권유야말로 가식없는 '독서가'로서 진솔한 모습이 아닌가. 닉혼비여서가 아니라 어느누구라도 이렇게 말해줬어야하는데 다들 청소년 권장도서 100선이니 뭐니 하는 항목에다가 읽기도 싫은 무지막지한 목록을 나열해주면 어떡하란 말인가. 이런걸 접하면 개인적으론 다들 독서의 적들 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더 읽고 더 배우신 양반들이 추천해주는 책이란 것들이 지나칠 정도의 개인적이라는 건 뭔가 이기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럼 결국 닉이 말한 '책은 어려워야 하고 어렵지 않으면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있는 그런 분들 뿐인거다. 


사방팔방에서 이런 공격들로 버티려면 이 책을 읽으면서 닉혼비가 종횡무진 펼치는 쾌도난마를 구경하면 된다. 정치인 전기따위를 읽으면서 하품하지 않고 좀 더티하지만 3류소설을 읽으면서도 피식 피식 웃는게 더 유익하다는 무언의 공감대가 문장을 통해 드러난다.  이 책에서 언급한 책들의 대개는 국내에 출판되지도 않은 듣도보지 못한 책들도 부지기수지만 그 책들이 가지는 진정한 요약본을 바란건 아니었으니 애초에 별 문제는 없다. 하지만 그가 어떤 책에는 기막힌 칭찬을 ...그리고 어떤 책은 도저히 좋은 이야기를 할 수 없어서 책제목도 표기할 수 없다고 솔직히 써주었을 땐, 닉 혼비는 믿어도 된다고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 <런던스타일 책읽기>의 서평스타일을 본받으려는 MD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화려한 책편력의 이면에서 미친듯이 읽어야 하고 미친듯이 책을 구매해야하는  필수부가결한 삶이 따라붙어야만 가능하다고 느낄즈음 , 닉혼비의 이 책이 시리즈로 나와줬으면 어떨까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VOL.1 VOL.2 이런식으로..정말 재밌지 않을까. 수없이 쌓인 책더미에서...무한히 반복되는 바벨의 도서관에서 책장의 한칸씩을 먹어치우는 신출귀몰한 책벌레를 보는 재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자 즐거움이다. 




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

저자
닉 혼비 지음
출판사
청어람미디어 | 2009-05-18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19세기 찰스 디킨스, 체호프의 고전부터 21세기의 최신소설,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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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illa Essay2013. 7. 22. 10:08

레이시 이야기 - 스티브 마틴 (~150p까지 읽음)

벨더머 사례의 진상 - 에드가 앨런 포.

런던 스타일 책읽기 - 닉혼비 (2004년 8월분까지 140p) 





내가 경험한 '비내리는 정경'은 하늘에서 누군가가 분무기 개폐장치를 미디엄으로 해놓고 열심히 분사질 하듯 내리는 것들이 대개였다고 한다면 지금은 누가 물호스를 대고 그냥 수도꼭지를 열어버린 것같이 들이붓고 있다. 이거야말로 오랜시절 벌어졌던 제 1 의 심판이었던 노아의 홍수 전초격의 뉘앙스 아닐까싶을 정도로...장마전선이 다시 올라와서 그렇다는데 이 정도라면 우산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없고 그냥 허벅지 아래는 물이 묻어도 상관없는 차림새로 돌아다녀야 한다. 더우기 월요일 출근일이라면 회사오너들이 잠시나마 한량없는 아량을 베풀어서 가벼운 샌들과 반바지를 출근시간 만큼이라도 허용하기를 쓸데없이 공상해본다. 물론 비현실적이란걸 알지만 때로는 개중에 굉장히 즉흥적이고도 인기영합주의가 목마른 인기바닥의 CEO라면 한번 해봄직스럽지 않을까.


나야 집에서 100 미터정도를 걸어서 지하철로 들어가고 한번 갈아타고 회사앞 50 미터 부근에서 나오니까 징그러운 물폭탄을 하반신에 샤워하듯 뿌리고 추적추적 엘리베이터로 들어갈 짜증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좀 덜 할 뿐이지..) 많이 보송보송한 상태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이런 날에 옴싹달싹 안하고 몸끼리 닿치 않으려고 애쓰고 또 애쓴다. 나도 귀퉁이 자리에서 누가 건드릴까봐 이어폰을 꼽고 Zooey Deschanel의 'SUGAR TOWN'Chet BakerTis Autumn, September song을 듣고 있었다. 물론 위의 책들도 간간히 읽으면서...


출근거리가 상당해서 오며가며 얇은 단편정도는 그냥 휙 다 읽어버릴수는 있을 정도인데 가끔가다가 하나의 책으로만 이동하는게 질릴때가 있다. 그러니까 주구장창 앉아서 하나의 책만 몇시간이고 읽는 일은 이제 잘 안되는 듯싶다. 에전에는 흠뻑 빠져서 읽는게 가능했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3~4권의 책을 오가며 읽는 게 더 집중력이 올라가는 경향이 생겨버렸다. 덕분에 가방에 책이 3~4권이 들어있어서 무거워지는 단점이 있다. 이런 날 과다한 업무와 예기치못한 사고라도 터지면 이 책들은 그냥 짐이 될 뿐이다. 읽지도 못하는걸 바리바리 싸들고 돌아다니는 '전형적인 공부 못하는 학생'처럼 될테니까 말이다. 


레이시 이야기는 초반부에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처럼 신참내기 레이시가 빠르게 업무에 적응하는 것처럼 업계의 동향같은 걸 스폰지처럼 습득하나싶었는데 레이시는 여기에 하나를 더 크림치즈처럼 발라 놓았다. 그건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인 섹스스타일, 그리고 불법으로 자행되는 뒷쪽 세계를 왠지 이용해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욕망 아가씨 설정이다. 그래서 크게 잘라놓은 치즈케익 2번째 챕터부터는 본격적인 '스팩쌓기' '인맥넓히기'로 귀의하셨다. 점점 더 타락할른지 묘하게 균형을 잡고 '정신차려 레이시'라고 화자로부터 충고를 받던지 하겠지. 이 소설의 매력을 생각하자니 오래전 '클루리스'의 알리사실버스톤이 생각난다. 외모도 죽여주고 인기도 많고 학교에서 앞서가는 패션 아이콘, 그리고 부유한 집안의 도도한 아가씨처럼 살지만 왠지 채워지지않는 공허함과 내실없는 생활속에서 자신의 무언가를 채워줄 남친이 바로 곁에 있다는 걸 깨닫는 스토리였던 걸로 기억한다. 


알리사처럼 레이시도 그렇게 갈 가능성이 크지 않겠지. 그럼 너무 진부하고 너무 90년대적이니까. 하지만 캐릭터성은 그런걸 기둥으로 삼았나보다 톡톡튀고 아무렇지도 않은듯 남자들을 이용해먹을 줄 알고 야망을 적당히 조절해서 뒤통수를 치고 한걸음씩 재수없는 상사들을 밟고 일어서려는 당돌한 모습들은 다 캐릭터 성이니까. 사건에 대한 전개나 흥미진진함은 아직까지 별로다. 모험담은 없고 그저 미술계, 전시, 소더비에서 얼마나 의미없는 일들이 그럴듯하게 치장되어서 보여지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지적질이 난무할 뿐이다. 중간중간에 레이시가 얼마나 매력적이고 쿨한 여성인지를 인지시켜주기 위해서 남자들에게 적선하듯 허락하는 장면들은 마치 이 정도의 업계에서 살려면 몸정도야 적절히 베풀수 있어야 한다고 눅눅히 이야기 하는 것 같다. 


앨런포의 벨더머 사례의 진상은 몇페이지 안된다. 단편선 정도라 지하철 책읽기 목록 제 2편으로 적합하다. 메인 디쉬들 사이에 곁들여진 디저트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읽다가 느낀 건데 러브 크래프트 뉘앙스가 철철 넘치신다. 혹시 크래프트가 포의 이 이미지를 차용했나 싶을 정도로 크툴루 신화를 읽다가 슬며시 들어버린 건데 아마도 포가 크래프트의 저작들을 보면서 슬며시 씨익 웃지나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런던 스타일 책읽기' 은 줄기차게 읽고 있다. 무자비한 닉의 책들 평가가 피식피식 거리는데 어려운 책을 애써 위로 보호하거나 그럴듯하게 포장해주지 않아서 다행이다. 일관되게 책읽기를 안하면 어떠냐는 비아냥도 애교 스럽게 들리기도하고..


어찌됐든 비는 오고 책은 잘 읽히는 날씨다. 조명이 좀더 눅눅했으면 좋겠지만 그럼 회사가 아니라 카페가 되겠지. 월요일 아침에 침대에서 나오기 싫다는 생각은 이런 날씨에 더 진해지고 샷이 더 추가되는 경향이 있다. 


Posted by kewell
Vanilla Essay2013. 7. 21. 17:14

2013.07.21(일)

1.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무라카미 하루키.

2. 도둑맞은 편지 - 에드가 엘런 포

3. 런던스타일 책 읽기 - 닉혼비. 



가끔 이런 날씨에서는 책읽기 만큼 좋은 '시간보내기'가 없다고 생각한다. 책읽기의 단점이라면 '이걸 누구와 함께 하는 뭐 공유의 활동'이라고 말하기 힘들다는 것과 오래도록 시간을 보내고 나서도 더 읽고 싶은 것들이 많다는 점 정도다. 그렇다고 해서 책을 마냥 읽기만 하고 몇 권 연속으로 읽었다고 해서 내 삶이 윤택해진다던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책을 읽는 건 그저 읽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준다고 스스로 위로하지 않는 편이다. 책은 책일 뿐이니까. 물론 교훈도 좋고 정보도 좋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그냥 읽음으로써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고 새로운 모험을 한다고 생가하는 정도다. 


최근 책을 구입하는데 약간 인색해졌는데 그 이유는 '좋아하는 책'들을 이미 꽤 많이 사 놓았기 때문이다. 읽지 않는 책들이 대략 10권 남짓 되니까 굳이 새로운 책을 구입해서 거기에 더 보탤 필요성이 없다. 그런데도 책이란 묘해서 서점에가면 아직 읽지 않는 '의무감'비스무리한 것들이 vol 1. vol. 2 ... 처럼 구비되어있어도 자꾸 더 사게 되는 묘한 구석이 있다. 생각해보면 약 20권 안밖에서 이 읽는게 다 바닥나지 않도록 무의식중에 조절한다고나 할까. 


하루키의 수필집은 여전히 꾸준히 읽는 책이다. 최근 '저녁무렵에 면도하기'를 비롯한 무라카미 라디오 연작 시리즈는 3권다 재미있게 읽었다. 문학동네에서 내놓은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발렌타인 데이의 무말랭이',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 '해뜨는 나라의 공장'그리고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같은 에세이들도 우후죽순처럼 새발간되었드랬다. 시간이 좀 되긴 했는데 다자키 쓰쿠루 이야기를 듣는 것 보다는 차라리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는게 더 편하고 더 친근감있고 더 담백하고 더 산뜻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 소설보다는 에세이가 더 인기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하루키의 에세이는 감각을 담아서 넘기는 활자많은 잡지 정도의 가벼움이 있어서 부담이 없고 공감도 간다. 아마도 '강요'가 없고 '고집'이 없어서 그런가. 


그리고 에드가 엘런포의 '도둑맞은 편지'는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중 1권으로 보르헤스의 '픽션들'을 읽다가 불현듯 충동에 이끌려 바벨 도서관 시리즈를 무턱대고 다 읽어보리라 맘먹어서 사둔 책이었다. 선구적인 포의 스토리 라인과 정서가 이젠 무감각하리만큼 일상적인듯 되버렸지만 여전히 활자로 읽을 때 느끼는 새로움이란게 있다. 그래서 더 좋다. 어디선가 '우울과 몽상'에 대한 포의 정신분석학적인 내용의 분석서를 본 적이 있었는데 사실 그런 성향이나 배경 따위를 읽으면서 아 그렇구나 그래서 포가 이런 소설들을 쓴 거였어라고 할 필요가 별로 없다. 그저 그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그가 뿜어내는 기묘한 이야기의 매력만으로도 그의 정체성을 대변할 수 있다. 아무튼 포를 비롯한 바벨도서관 시리즈를 줄기차게 읽어볼 작정이다. 얼마나 읽을 지 알 수 없지만...


닉혼비의 런던스타일 책읽기는 그동안 사리라 마음 먹었던 책이었는데도 시간을 미루다가 못샀던 책이었드랬다. 그래서 큰맘이랄것도 없는 굳은 의지를 동원해서 기어코 이 책을 집어들고 집으로 오는 내내 읽었다. 사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책들에서 내가 무슨 편린을 얻는다던지 아니면 책 목록따위를 만들어서 나도 '런던스타일'로 책을 읽어봐야지라고 마음을 다잡는 계기로 삼으려는건 아니다. 그저 닉 혼비가 글을 쓰면서 슬슬 드러내는 그만의 독특한 시각과 책에 대한 마인드..특히나 재미없는 책, 고상한척하면서 읽기도 싫은 두꺼운 책들 폼으로 읽고 다니시는 그런 가식이 없어서 좋다. 다 집어치우고 좋은 책을 읽으라는 그의 권유가 꽤 솔직하다. 책을 읽으면서 자아성찰이니 혹은 내면성숙이라던지 하는 조건부 설정으로 책을 사드는건 좀 아니지 않나싶기도 하고...


아직 다 읽지는 않았지만, 재미도 쏠쏠하다. 3권을 읽고 나면 또 뭘 읽을 지 고민 좀 해봐야겠다. 올해 읽으려고 나두었던 책들 목록에도 있지만, 이걸 알파벳 순으로 읽는다던지 하는 우를 범하고 싶진 않다. 때에 따라서 읽고 싶은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들 뿐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책을 읽는 건 노동이 될테니까...책을 노동으로 읽는건 처럼 바보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