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BOOK/철학-사상2013. 1. 23. 16:00

 

서두에 밝혀둔 에세이로서의 역할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진중권씨가 문화,사회적으로 많은 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정도는 대개 알고 있다. 아마도 그가 학술적인 견해로서의 글과 가벼원 문화적 탐방이나 소견에 관한 소소한 글로써의 역할을 릴렉스하고 싶어서 일종의 장치로서 언급했을 수도 있겠다. 워낙에 달변가이고 논리와 담론에서 노니시는 분이라 이 에세이의 기준은 아마도 '탐색'을 넘어선 '숙고'나 '사색'의 파편들이 될 가능성도 컸고.... 그리고 현상에 대해서 그가 진리라고 믿는 것들이 결국 체계적이어야 한다는 헤겔의 말을 좀더 실천에 옮겨볼 작정으로 글을 썼을 것이다라는 섯부른 판단도 스쳐갔다.(아니면 말고)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이 책의 주요 포인트는 대중들이 접하기 힘들었던 '전문학술'분야의 용어들을 은유적으로 사용하여 현재 벌어지는 현상을 자기방식대로 요약했다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달리보면 '현학적 허세'처럼 느껴질수도 있겠지만 어찌됐든 용어자체는 있어왔던 분명한 명제이고 (그가 예를 들었던 비트겐슈타인의 의심할 바 없는 진리의 원자적 확신과도 같이 사용됐다.) 그 용어들은 지금에 와서 의미를 가질만큼 멋들어지게 인용되었다. '타이포 라이팅의 응용편'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용어들은 그 자체로서 아우라를 가지는 측면이 있지 않은가.. 다만 부작용으로서의 어색함이 불시에 닥칠 수도 있다. 내재된 뜻이 모호해지면 우리는 용어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기 마련이고 수많은 억측과 추측, 그리고 확대가 이뤄질 것이며 결국 진리의 근처에 있다는 생각이 전혀들지 않게될테니까 말이다.


초반부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용어구들과 용어들의 나열속에서는 '지식에 대한 소개'의지를 담은 진중권씨의 노력이 보이는데 아마도 씨네21에 에세이로서 등장했기에 이건 설명이 된다.  아무래도 대중들을 위한 '문화설명서'가 될 필요가 있었으니까... 너무 어려운 용어나 메타포가 남발되면  '너무나도 잘난척'하는 모양새로 비춰지는 부작용을 뒤로하고 꿋꿋하게 낭창낭창하게 죽죽 밀고 나갔다. 보헤미즘과 댄디즘 정도야 친근감을 느낄정도의 타이포지만  옴파로스에서 신들이 인간에 준 '신탁'(Oracle)에서  스토이시즘, 헬레니즘의 라오콘상, 칼로카가디아로 부터 유래된 미적가치와 윤리적가치의 혼합성, 빙켈만이 등장하여 파렌티르시스를 언급하면서 '감정과잉의 오류'등까지 읽다가보면 담아두기 벅찬 굉장한 함의의 용어들이 대량 등장한다. '우와...이런 용어들은 다 뭐지' 하는 느낌?   일반 대중으로선 굉장하고도 빈번한 타이포에 질려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타이포를 아무런 적대감없이 받아들이려면 '뭐 그런게 있나봐' 정도의 태도를 가지고 '그럼 이제부터 제대로 알아보자'라는 의지가 필요할 수도 있다.
 

부수적인 재미도 있다. 견해를 펼치는 지점에서 화려한 언변술과 설명은 저자의 독특한 논리적 체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파타피직스를 언급하면서 '허구인줄 알지만 사실인척 해주기'라는 부분은 슬쩍 '나꼼수'를 바라보는 그의 찰나적 견해를 예상할 수 있다던지..모든 매체는 편향적이다라는 명제를 언급하면서 편향성의 극복이 문명의 발전을 결정한다는 지점 역시 언론 매체의 권력 지향성과 정치적 영향에 대한 묘한 시기적 데자뷰를 느낄수 있다. (결국 문명의 퇴보가 벌어지고 있다고 항변하는 느낌도..) 그리고 저자는 아무래도 귄터 안더스보다 보드리야르의 '미디어가 만들어낸 가상세계'쪽에 더 치우쳐있는게 아닐까란 생각도 슬쩍 들었드랬다. 결코 변하기 어려운 진실이 아닌 세계에 살고 있는게 아닐까하는 부정적인 시각같은게 어렴풋이 느껴지기도 해서 그렇다.


6부까지는 철학적 함의를 친근하게 풀어서 설명하는 느낌이고 7부 미의 정치성, '존재에서 생성으로',..이윽고 '예술의 진리',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미학학자로서의 본분에 충실한 느낌이다. 나도 가끔은 아는 만큼 보이는 심미안적인 견해의 소유자이고 싶을때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가보니 역시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사물에 담겨있는 함의와 철학적 견해는 다차원적이고 난해하다는 느낌이 든다. 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가 인용했던 용어들에 대한 빈약한 지식이 민망스럽기도 하고 그에 반해 인용하는 표현들이 익숙치않아서 어떤 논문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후자의 우려를 이미 서두에서 밝혀주긴 했는데 막상 닥치고 보면 수많은 인용들에 대한 명확한 이해나 사려깊은 추가액션이 필요한게 아닐까하는 측면도 많다. 혼자서 다 찾아서 관련부분을 읽어봐야 한다는 강박관념 비스무리한 것들...그래도 나쁘지 않은 건 이런 '생각의 지도'에서 분명하고도 명확한 개성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고 그 논리가 설득력있다는 부분정도..그래서 이 책에 대한 느낌이 좋았던 것같다.


비슷하게 미학시리즈로 비슷한 패턴을 보여주기도 하셨는데, 대중적인 측면에서 더 한층 다가온듯한 이 친철한 설명은 이 책만의 장점이 될 듯 싶다. 생각의 지도 2가 나올른지 어떨지는 모르겠는데 이런 식이라면 저자는 더 할 말이 많을 것이다. 크로스에서도 이미 경험한 바 있고 굉장한 스피드로 분야를 퀼트처럼 꿰매어 독특한 문양을 만들어내는 해석방식, 견해등은 참조할 만하다. 세상의 모든 견해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때론 과정과 설명에서 동감과 공감을 얻을 수도 있을테니까. 생각의 지도에서 좀더 여러가지 길을 그려볼 수 있다는 정도만 되도 꽤 괜찮은 경험이다.

 


생각의 지도

저자
진중권 지음
출판사
천년의상상 | 2012-09-1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세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라!진중권 철학 에세이『생각의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kewell
Review BOOK/소설2013. 1. 18. 18:00

<아르센 뤼팽의 마지막 사랑> : 모리스 르블랑. 성귀수 옮김.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오리지널 특유의 뤼팽분위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어서 성귀수씨가 탁월한 솜씨로 번역한 까치판의 전집들을 모조리 다 읽어대진 못했다. 정말 좋아하는 몇 편만 듬성듬성 읽었을 뿐이다. 그것도 813의 비밀같은 내용도 꽤 되고 구성도 좋고 인기작중에 인기작이랄수 있는 것을 골라서... 그런데도 오히려 난 어린 시절 읽었던 루팡 시리즈를 잊을 수가 없다. 그 때 읽었던 작품들이 어디 출판사인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기억속에는 까치판의 뤼팽 이미지와는 좀 달랐다. 더 사악하지도 그리고 음흉하거나 더 범죄자스러운 스낌이 걷혀진 모험가였다고나 할까.(기암성에서의 뤼팽은 중년삘이 좀 나주셨지만  적어도 괴도신사편에서는 청년의 느낌이 물씬...흑진주 사건도 꽤 좋아했던 작품이고, 세븐하트이야기도 정말 흥미진진했다.) 아마 성귀수씨의 완역본이 더 뤼팽 원작에 더 가깝고 더 생생하리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왠지 유년시절의 뤼팽이 좋은 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 같다.


근래에 시리즈가 우후죽순처럼 출간되는 건 아마 저작권으로부터 완연히 풀려서일 것이다. 물론 셜록 홈즈도 마찬가지이고 ...예전 기억을 떠올리는 독자들은 이런 재출간에 반색하겠으나 세월이 지나고 난 뒤에 느끼는 감흥은 몇 십년 전하고 같을 수가 없기에 감동도 반감, 그리고 흥미도 반감되기 마련이다. 책장을 들고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 의 1권부터 기암성을 넘어갈 때 즈음, 어렸을 유년시절에 느꼈던 흥미진진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더랬다. 이미 나의 상상력과 기괴할데로 날카로워진 현실감각을 탓하며 지루해져만 갔다. 더우기 개인주의적 해결사로만 알았던 뤼팽이 부하들이라니..그리고 숨겨진 장치, 통로...이런건 너무 많이 등장하면 추리소설이 아니라 모험소설이 될 뿐인지라 어린 시절 홈즈와 필적할 만큼 두뇌력을 자랑했던 뤼팽의 정체가 적나라하게 밝혀져버렸다. (지금도 홈즈가 벌이는 두뇌게임, 즉 추리적 패턴을 뤼팽이 수행해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아마 추리에 대한 요소가 너무 반감되고 비밀통로, 모종의 장치, 그리고 너무 거대해져버린 부하들의 출연이 뤼팽스토리를 훼손했다고 본다. 그리고 과정의 생략이 너무 많다.)


<아르센 뤼팽의 마지막사랑>이 작품은 숨겨진 르블랑의 유작으로 성귀수씨가 우여곡절끝에 지인으로부터 이 원고를 넘겨받고 번역했다고 알려진다.  아마 뤼패니언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겠으나 사실 숨겨진 유작이라고 해서 그게 재밌을 것라는 보장은 별로 없다. 상징적 의미라든지 뤼팽이 또 다른 모험담 정도의 가치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아무튼 설정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코라 드 레른의 주변 네명의 남자중 뤼팽이 숨어있다. 모종의 사건으로 코라는 위기에 처하고 그의 부는 자기방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아라'라는 유서을 남기고 권총 자살을 한다. 이후 아르센 뤼팽은 코라의 곁에서 그녀를 지키고 사랑을 얻게 된다는 줄거리이다. 르블랑의 뤼팽 패턴을 대략 짐작하고 있어서인지 역시 뤼팽이긴 했지만, 특유의 거만에 가까운 자신감, 그리고 실수와 좌절에 대한 연극대사같은 독백들을 읽게 되면 고전치고는 너무나 작위적이어서 약간 현대적 색채와 이질감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뤼팽을 좋아하지만, 아마 르블랑의 고전 뤼팽은 시대적인 괴리감이 꽤 있다. 아마 이건 취향탓일텐데, 난 스스로 고뇌에찬 뤼팽을 좋아하고 혼자 상상하고 모험을 즐기는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 같다. 왕비 목걸이 사건에서 어린시절 앙트와네트의 목걸이를 탈취하는 라울의 모험. 파티에 나타나선 자기가 아르센 뤼팽이라고 밝히는 그런 반전과 카타르시스를 좋아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 이 마지막 사랑편은 여전히 뤼팽스럽고 흥미진진하지만 전작들의 위명으로 볼 때 그렇게 탁월하게 재밌는 작품이라곤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뒤늦게 르블랑의 유작이 등장했다는 반가움정도는 들지도 모르겠다. ...


cf) 그런데 까치판 뤼팽 전집을 모조리 다 읽고 실망을 하더라도 해야지 드문드문 읽고 실망하는 것 같아서 겸연쩍다. 때가 되면 꾸준히 다 읽어 볼 예정이다. 뤼팽 전집에서 정말 재밌었던건...카리오스트로 편, 그리고 1권 괴도신사, 813의 비밀 정도다..나머진 약간 실망상태...


 


아르센 뤼팽의 마지막 사랑

저자
모리스 르블랑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2-05-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70년 동안 잠들어 있던 아르센 뤼팽의 마지막 이야기!괴도 신사...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kewell
Review BOOK/에세이2013. 1. 17. 14:30

<솔트 앤드 페퍼, 청춘을 위로하는 것들> - 김홍식/웅진윙스
   2010.10.18 출간.

 

 

 

이제는 가보기 어려운 곳이 되었지만 도쿄는 분명 매력적이긴 곳이긴하다. 스이도바시, 신주쿠, 시부야, 이이다바시, 오차노미즈, 아키하바라 등 몇몇군데 밖에 가보지 못했던 것이 뒤늦은 후회로 다가오게 되다니 세상일은 참으로 모를 일이다. 다시 가보고 싶어도 이제는 가기 어려운 곳이 되버리고 말았다. (이유는 개인적인 뭐...) 어찌됐든 도쿄의 일상이 그리워질 때는 오래전 읽었던 이 책을 다시 펼치곤 한다. 이 책에서만큼은 나도 도쿄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어버리니까. 동감의 구절들과 이국적 향취같은게 아주 그립다곤 이야기 못할지라도 추억을 재생하기에 수많은 동기부여가 이 책에는 담겨있다고나 할까.

 

그야말로 '청춘을 위로하는 것들'이 가득찬 느낌이었다. 읽을 땐, 나도 그곳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는데 사람이란 아주 색다른 개성만이 점유하는 존재가 아니란 걸 알겠다. 게다가 저자는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인디음악에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연출가이지 않은가. 도쿄와 인디음악의 공존이라..귀에 페퍼톤즈 음악이 흘러나오는 이어폰을 끼고 오차노미즈의 수로를 끼고 거닐어 볼 수만 있다면, 시오도메 라멘을 후르룩 거리며 먹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시부야거리를 다닐 수만 있다면, 지면 속엔들 나쁘지 않다는 걸 읽는 내내 알게 되었다. 동경소년 정도 된 느낌...오래지 않았던 옛일을 회상할 때즈음 저자의 이 책은 그저 자기경험담을 담은 에세이가 아니라 나의 추억이 일정부분 데자뷰된 감정대리자였던 셈이다.


여행 에세이들이 그렇게 인상적인 형태로 책이 출간되거나 하진 않고 아주 예쁜 사진과 여리디여린 감수성을 자랑하기에 급급해서 지면의 활자보다 그림들이 더 많은 책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책을 읽고 나면 읽었다라는 느낌보다는 그림과 사진을 감상했더라는 뭔가 경치를 굉장히 빠른 기차를 타고 흛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곤한다. 그리고 며칠 지나면 이미지는 거의 휘발되고 기억창고는 먼지만...아마 내 경험들이 아니어서가 아닐까싶다. 그런데도 <솔트앤페퍼>는 유달리 기억에 강하게 남았더랬다.  고양이 카페도 기억하고 요요기 공원도 떠오르며 메구로 강가, 기치조지 이노카시라 공원도 기억에 남는다. 아마도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열망 같은게 남아서 였을수도 있겠고  일본의 하네다 공항에서 모노레일통해 도쿄까지 가는 동안 특유의 페이퍼 냄새를 개성적으로 받아들였던 기억같은게 오버랩되서 일수도 있다. (이 냄새를 떠올리면 난 도쿄 한 복판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한다.)


이 책의 특이점은 에세이 내부에 인디음악에 대한 애정을 심어놓았다는 정도. 그리하여 부록으로 무려 OST 시디를 붙여놓았드랬다. (개인적으론 책에 CD부록주는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책에 시디케이스 비닐을 붙여놓는 건 망할 짓이란 생각도 좀 있고, 이렇게 구입한 시디를 제대로 들어 본 적이 없어서 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도 저자의 인디애정이 절절하게 다가와 난 일부러라도 이 시디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디어덱까지 동원하진 못했어도 PC의 시디롬에 넣고 스피커을 잔잔하게 다듬은 다음 DEB의 음악에 귀를 열어두었다. 아주 생경한 건 아니었고 예전에 패러럴문(Parallel moon)을 듣긴했었다. 인디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글이 길어지니 생략하지만 아무튼 특이한 컨셉의 에세이란 느낌은 든다. 아무튼 지금도 가끔 이 책을 읽을 땐, 집에 조용히 음악을 켜두고 아침 햇살이 창가에 스며들게 한 후 자리를 편하게 한다. 그리고 지면의 장소로 점프하곤 한다. 음악도 좋고 저자의 나긋나긋하면서도 덤덤하고 감성적인 어투도 매력적이다. 에세이를 읽어야 한다면 이런 책이 나에겐 제격인 듯 싶다.

 

 

 

 


야키도리에 뿌려진 솔트 앤 페퍼의 풍미를 떠올리며 ...

언젠가는 다시 가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혹시 책을 한 3백번 정도 읽으며 가게 될 운명이 끈이 연결되지나 않을까하는 망상도 가끔 들만큼 흡사 타임포탈같은 책이다.

 

 

 


 

저자 : 김홍식
 밴쿠버 필름스쿨에서 연출을 전공, 2005년부터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 이끌려 도쿄를 오가면서 그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에게 도쿄는 촬영 장소이자, 지친 스케줄 틈틈이 숨통을 틔워주는 아지트, 아이디어를 샘솟게 해주는 보물상자이기도 하다. 순수하면서도 열정적인 인디음악이 좋아 시작한 ‘인디투고Indie to go’는 인디뮤지션들의 리얼 퍼포먼스를 원신One Scene, 원테이크One Take로 담아내는 다큐멘터리이다. 박지윤, 장기하와 얼굴들, 크라잉넛, 페퍼톤스, 노리플라이 등 50여 팀이 참여하며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가 연출한 인디투고는 2008 삿포로 단편영화제, 2009 도쿄 단편영화제에 초청·상영되었다. 그밖에도 체리필터, 김경호 등 30여 편의 뮤직비디오 연출과 올리브TV의 ‘스타일 다큐’, 컨버스convers, 갭gap 광고 등의 연출에 참여했다 (www.kyobobook.co.kr에서 발췌)

 

 


 

목차

 

솔트 앤드 페퍼: 신주쿠 오모이데요코초
밤이 깊었네: 시오도메 라멘
타인의 취향: 시모키타자와 스티커숍
Coffee to Go: 지유가오카 테이크아웃 카페 바 무라초
사랑한다는 말: 세이조 대학 벚꽃 거리
오늘 고마운 하루: 요요기 금붕어 카페
음악과 여행 사이: 시부야 디스크 유니언
사랑의 롤러코스터: 도쿄 돔 시티 롤러코스터
작은 고양이: 히키후네 고양이 카페
My Favorite Things: 에비스 카페 뤼 파바르
나의 안티에이징 스팟: 요요기 공원
봄의 멜로디: 메구로 도리 가구 거리
연애시대: 고마자와 올림픽 공원
여름의 조각들: 나카메구로 메구로 강가
브라운, 브라운, 브라운: 기치조지 이노카시라 공원
보통의 날들: 가쿠라자카 카페 조르주 상드
노스탤지어: 가쿠라자카 우드맨스 케이크
화양연화: 가사이린카이 공원 대관람차
기억편린: 우라하라주쿠 캣스트리트
슬럼프: 진보초 고서점가
모두가 록스타를 꿈꿔야 하는 건 아냐: 오차노미즈 악기 상점가
기억하지 못할 순간: 고엔지 카페갤러리 하티프낫토
웃으며 안녕: 고엔지 팬케이크 데이스
이토록 뜨거운 순간: Flight No. OZ 1035

 

 

 

 


솔트 앤드 페퍼

저자
김홍식 지음
출판사
웅진윙스 | 2010-10-18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당신의 솔트 앤드 페퍼는 무엇인가요?인디뮤지션의 리얼 퍼포먼스를...
가격비교

Posted by kewell
Review BOOK/에세이2013. 1. 16. 10:00

<소울푸드> - 샘킴.

 

 

 

개인적으로 셰프 샘킴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다. 어느날 아무 생각없이 CATV 채널을 마구잡이로 로테이션 시키다가 친근감있는 얼굴로 (요리사 복장따위는 하지도 않은 채,) 체크무늬 셔츠에 아주 유쾌한 말투로 요리를 하는 이 분을 보게 되었다. 그것도 굉장히 좋아하는 이탈리아 요리들이라니....이윽고 빠짐없이 이 분의 프로그램을 챙겨보기 시작했는데 아마 그 프로그램이 쿠킹타임이었던 걸로... 쿠킹타임 시즌1은 일정 부분 출연하시다가 다른 요리사도 등장하는 게스트형 프로그램이었으며 나오지 않는 회차에는 아쉬움 마음을 가지고 다음 회차를 기다리곤 했다. 그 유명한 드라마 '파스타'의 주인공 이선균의 원래 캐릭터가 이 분이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도저히 매치가 되지 않는 서글서글한 눈빛을 보면 절대 '버럭' 셰프가 되기엔 어렵다는 걸 눈치채긴 했다. (실제 최현욱 셰프의 성격까지 이 분과 동일한건 아니라고 밝히신 바 있다.)

 

요근래 매스텀에 자주 등장하시는 스타셰프들이 꽤 있는 편이다.  최현석 (엘 본 더 테이블 총괄셰프), 강레오,  에드워드 권, 박찬일, 레이먼 킴, 하물며 탤런트 김호진까지..다들 한 성격들 하시는 듯 싶은데 (갑자기 버럭하면서 살벌함을 풍길때는 채널을 돌리고 싶을만큼 꺼려진다는...) 오히려 이 분은 오기는 있어도 전쟁터같은 주방에서 마구 뒤엎는 스타일은 아니란 점이 색달랐고 생글생글 웃으면서 '아무렴 어때'하는 스타일이어서 좀 더 정감이 갔다고나 할까. 어찌되었든 이 분 덕분에 나는 졸지에 이탈리아 요리를 취미로 배우고자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는데 파스타를 열심히 연습하고자 구매했던 '가로수길 레시피' 라든지 '샘킴의 이탈리아 요리' 등은 요리만드는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정작 궁금했던 셰프들의  생각을 알수는 없는 노릇이다보니 점점 더 궁금해지곤 했다. 이 분은 도대체 요리에 대한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 유년시절을 지냈셨나. 무슨 코스로 요리사가 되셨나..뭐 등등..

 

 

어떤 셰프들은  다큐멘터리 요리 기행같은 걸 하면서 자기만의 생각, 견해등을 표현, 속에 있는 요리철학이라든지 생활방식이라든지 하는 부분들을 슬쩍 볼 수도 있다지만  이 분은 도무지 그런 방식으로는 얻어지는 정보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웃으면서 요리는 해도 인터뷰도 본 적이 없고...아마도 내 컨텐츠 탐색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테지만, 어쨋든 베일에 싸인 오리무중의 고수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이 책을 봤다. 특히 성공담 늘어놓기이거나 여행을 한답시고 사진 무진장찍어서 지면의 대부분은 여백으로..그리고 진짜 감정들은 지면에 흩어진 과자 부스러기마냥 몇 줄 읇조린 에세이들을 워낙 싫어했던 터라 그런 책이 아닐까 살짝 의구심이 들었는데...다행히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냥 이야기였다. 솔직하고 진솔한  이야기..그리고 나는 몇장을 서서 읽다가  <소울푸드>는 주저없이 집어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건데 기대했던 데로 굉장히 소탈하시다는 점 (물론 다른 셰프들께서 비인간적이란 뜻은 아니다. 다만 너무 무서우신 양반들이신지라 약간 다르길 기대했던 것 같다.) 엘리트코스로 차근차근 밟고 올라가신 요리사라기보단, 실전형 요리사에 가까운 이력도 눈에 들어오고.. 그래서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하숙집에서 요리재료사러 시장을 쏘다니는 이야기, 그리고 미국에 가고 싶어서 다른공부를 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일식집에 취직한 이야기..안주하기 싫어서 일식집을 박차고 이탈리아 레스토랑으로 도전하는 이야기들은 흡사 아는 형의 이야기이거나 편한 선배의 이야기처럼 아주 생생하게 전달되고 있었다.

 

보나세라의 셰프 지원서를 내고 요리 테스트를 받을 때의 이야기는 솔직한 말로 마치 '드라마처럼' 느껴졌다. 요리 프로그램을 보면서 느낀건데 샘킴 셰프의 요리들이 정통 이탈리안 요리라기보단 약간 퓨전느낌이 난 현대적 요리같은 느낌이 있어서 뭔가의 걸림돌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몇번의 테스트를 거쳤다는 이야기에 묘한 공감을...그리고 기어코 셰프 확정되고 나서 유명해지는 과정에서도 주방을 뒤엎어버릴만큼의 강력한 '파스타'의 최현욱같지 않아서 더더욱 좋았더랬다. (물론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일 따름이긴 하지만..)  일전에 나는 셰프 레이먼킴과 이분의 듀엣 쿠킹타임을 열심히 시청한 적이 있었는데, 좋았던건 요리사로서의 거들먹거리는 뭐라고 해야 하나 '나는 전문가이거든' 하는 위압감이 없어서 굉장히 좋아했었다. 물론 요리사가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방법으로 어법이나 말투가 편안해야 할 필요는 없겠으나 세상에는 너무나 신경질적이고 폼을 잡으시는 분들이 너무 많다. 주방은 전쟁터이고 시체가 죽어나는 심각하고 진지한 곳이라는 것, 이미 유명 셰프들로부터 듣고 공감한지 오래다. 그래도 나같은 시청자들은 요리하는 과정에서 죽일듯한 긴장감을 감정적으로 폭발시키는 건 영 불편하다.

 

아무튼 샘킴의 이 책속에서 나름대로의 생각과 가치관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요리라는 건 어쩌면 그 사람을 대변하는 일종의 거울일수도 있겠다. 때론 탐구도 그리고 탐구만큼 진지한 열정도 필요하겠지만 어쩌면 이 모든 게 그 사람이 가진 많은 것들의 결정체로 화한 것이라고 볼 때 사람이 매력적이라면 요리또한 매력적이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난 샘킴 셰프를 좋아하는 것이고 앞으로도 이 분의 프로그램을 줄기차게 볼 듯 싶다. 

 

 


소울 푸드

저자
샘 킴 지음
출판사
담소 | 2012-12-07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드라마 ‘파스타’를 통해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온 셰프 ‘샘 킴...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kewell
Review BOOK/소설2013. 1. 15. 14:00

<언더그라운드 맨> : 믹잭슨.

 

 

 

 

<뼈모으는 소녀>를 통해서 '고딕소설'의 재미에 맛을 들인 독자들은 믹잭슨의 또 다른 걸작 <언더그라운드맨>을 어떻게든 접하게 되어있다. 마치 집으로 가기위해 정해진 노선을 자연스럽게 갈아타듯이 필연적으로 언더그라운드맨에 도달하는 식으로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뼈소녀'에서만큼이나 '언더그라운드맨'에서 엄청난 흥미를 느꼈으리라는 보장은 별로 없다. 언더그라운드맨은 그야말로 '언더스러운' 주인공의 외로움과 쓸쓸함, 자아성찰, 기묘한 자기탐구를 통해 세상을 보려는 운둔자의 행로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은둔자로부터 느끼는 뉘앙스들은 폐쇄적이거나 자기탐닉적이고도 복잡한 내면 탐구의 영역으로 옮겨가기 일쑤고 그렇게 되면 독자들은 독백의 바다에서 홀로 이성의 돗단배를 펴고 지루함의 풍랑을 견뎌야한다. 어디로 갈지..행여 모호하고 이해할 수 없는 연민에 휩쌓인 채 표류하는 자신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뼈소녀의 기묘한 모험담을 뒤로하고 이런 내면탐구의 시절로 돌아간다는 건, 대중 통속소설의 매니아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쉬운일이 결코 아닌 것이다. 더우기 이건 믹잭슨이란 작가에 대한 신뢰성에 대한 기준이 될 테니까..(언더그라운드맨이 문학적으로 훌륭하다는 사실이 뼈소녀에 대한 환상을 그대로 유지시켜준다는 보장은 결코 없다.)  위안이라면 그래도 이 작품은 영국의 휘트브레드상을 받은 '수상작'이란 점.

 

문학적인 재능과 스토리 텔링에 관한한 믹잭슨의 노력을 감안한다면 뼈소녀보다는 더 진지할테고 더 고형적일거라는 믿음같은게 자리잡을 테고....그 기대감을 가지고 본다면 초반부에서는 캐번디시의 삶도 뼈소녀처럼 꽤 미스테리하고 괴이스럽기에 드디어 믹잭슨의 고딕재능이 힘을 발휘하는 구나라고 쾌재를 부르실수도 있겠다. 하지만 점차 스토리가 진행 될수록 독자들은 그런 흥미거리로부터 멀어지는 플롯을 보게된다. 읽는 내내 느끼게 된 유사유형의 인물..'쥔스키의 '좀머씨'? 호밀밭의 파수꾼? 세상에 대한 자기만의 시선, 자기를 평가하는 세속적인 기준으로부터의 탈피, 스스로 돌아보며 세상과 벽을 쌓았지만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인연의 고리들. 결국 무엇인가 쓸쓸하고도 처연한 느낌 (공작의 표현대로 가을이 남겨두고 간 시체들로 가득찬 거리를 보는 듯한)에 둘러쌓이게 된다. 이윽고 아마 공작의 말로가 결코 행복해지지 않으리라는 모종의 안스러움이 서서히 발밑에 밀려들오는 바닷물처럼 잠식한다. 좋은 쪽으로 기대보자면 말이 없지만 숙고적이고도 친절한 주인공이 세상을 더 살아볼만한 무엇으로 인식하여 약간의 소통을 사소하게 시작하는 식으로 결말이 났었어도 꽤 좋은 동화이야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마음 한켠에 뿌듯함을 가지고 캐번디시의 새로운 사랑을 기대하면서...클레멘트와 어깨동무라도 하고 슬며시 미소지으면서 스케이트 신발을 다시 신으면서 그렇게 마무리를 했더라면...

 

악몽이 침대보에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겨놓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무명천이 고독의 찌꺼기를 빨아들였을 수도 있었다. 최근 들어 심해진 잠을 설치는 현상은 완전히 떨어진 줄 알았던 나쁜 감정이 내 몸에 의해 다시 덥혀지면서 또다시 강해진 결과가 아닐까? (38p)

 

우리가 살면서 쌓는 경험은 기억이라는 귀중품실에 안전하게 보관된다. 우리는 이곳에다가 우리의 과거를 넣어둔다. 우리가 보관하는 기록이란 그때그때 모아들인 기념품, 즉 삶의 사소한 성공과 가슴 아픈 실패,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과 (운이 따라준다면) 우리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전부다. 잘 살았다는, 삶이 다했을 때 이정도면 괜찮게 살았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마음이라는 거대한 바위턱, 즉 우리의 기억속에 얌전히 보관되어 있는 그 많은 증거들이다. 하지만 귀중품실의 입구가 파손된다면 ? 틈새 어딘가로 비바람이 들어온다면 ?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는 희망이라곤 없이 영원히 떠돌아다녀야 할지도 모르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53p)

 


 외로움과 쓸쓸함의 농도가 더 진해지는 건, 외부요인이라기 보단 스스로에 대한 결정때문이라고 믿는 편인데, 노환과 지루함과 달라지지 않는 일상과 재미와 활력을 찾기엔 공작에게 너무 '연인'과 '지인'과 '친구'들이 부족했다. '책상'과 '인체지도'와 '터널'같은 건  정을 터놓을 존재들이 아니다.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는 것들이라고 할까. 몇 십년동안이나 계속된 지루함의 결정체이거나 변하지 않을 법한 일상사 따분함, 외로움과 고독을 더 강하게 만들어줄 담금질에 필요한 촉매제 같은것이겠지 아마.. 물론 생각하시기 좋아하는 많은 분들이 세상과 이별하지 않기 위해 자기만의 방법으로 터널을 뚫고 주유했다고 생각할테지만 나는 터널도 폐쇄적인 자기 기만처럼 보였드랬다. 왜 그는 터널에 흥분했을까. 한발자국이라도 은밀하게 조용히 방해받지 않고 '나다닐 수 있어서?'


공작은 패니 아들레이드와 결혼했어야 했다. 그렇게 되었다면 유년시절의 쓰라리게 아픈 존재감상실에 대한 은밀한 슬픔을 위로 받을 수 있었고 '스노'와의 이별도 덤덤히 인정했을 것이다. 범람하는 유년시절의 잊혀졌던 아픔과 상처에 대한 보호막따위는 그저 공작이 혼자 되뇌였던 독백들로 치유될만한 것들이 아니었던 셈이다.  소설에서 유난히 별처럼 빛났던 건  적나라한 현실인식이 아니라 순수하고 참신했던 그의 표현력들인데,  육체와 영혼을 연결시킨 실, 연을 띄우듯 꿈을 꾼다고 했던 말들. 애들레이드가 자신의 청혼을 거절하고 얼마 안있어 생선조각에 목숨일 잃게된 아이러니함따위에 연연하지 않듯 덤덤히 버텻지만. 사실 그건 버틴게 아니라 계속해서 외로움에 침식당하고 있었으리라.

 

 

내 생각에는 아주 가느다란 실이 닻 역할을 하는 텅 빈 육체와 영혼을 연결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 실을 통해 별들 틈에서 노니는 영혼의 진동이 전달되는데, 잠이 든 우리몸은 이를 꿈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자면서 연을 날릴 경우 우리는 연을 날리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연이기도 하다. (78p)


 


언더그라운드 맨

저자
믹 잭슨 지음
출판사
생각의나무 | 2009-07-17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어느 기이한 귀족의 흥미진진하고도 애잔한 초상!뼈 모으는 소녀의...
가격비교

Posted by kewell
Review BOOK/소설2013. 1. 10. 13:30

 검의 대가(El maestro de esgrima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김수진/열린책들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Arturo Perez-Reverte)<검의 대가>(El maestro de esgrima)을 아무 의심없이 광풍의 속도로 읽어버렸다. 누가뭐라해도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1990)이나 <뒤마클럽>(1992) 정도가 그의 유명작이겠으나 '검의 대가'는 처녀작만이 가진 임팩트가 있다. (아마도 그리 길지도 않으면서 굉장히 타이트한 스토리때문이었으리라.), 뻔한 미스테리 추리물 느낌이 약간 나주시다가 결말에 이르러서는 독자들의 기대와 환상을 뒤엎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여기서 묘하다고 한 점은 책을 끝까지 읽어보시면 알게 되신다.)


예전 로만 폴란스키의 괴작<나인스게이트>(Ninth gate)를 보고 나서 <뒤마클럽>이 원작이라는걸 알았다.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미스테리한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뒤마클럽을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던 기억이 있는데. 물론 영화와 소설은 괴리감이 있기 마련이고 아르투로 페레즈의 뒤마는 좀더 학구적이고도 좀더 인간적이었다는 느낌인터라 영화의 조니뎁과는 약간 어울리지 않았음에도 묘한 분위기만큼은 매력적이었다.그에 비하면 <검의 대가>는 문학적이란 뉘앙스가 강하게 느껴진다. 혹 역사적 배경과 결합된 서사적 구조때문일까라고 추측 해 볼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보다는 신비함과 미스테리한 초월적 분위기가 판타지적으로 등장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아무튼 <검의 대가>쪽은 스페인의 19세기 정치적 상황이 명료하게 명시되어있는터라 좀더 무겁고 어두운 스페인의 묵직함같은게 소설 전반에 흐른다. 정치적 관점을 가지고 주인공 하이메와 그를 둘러싼 지인들의 격론도 소설의 배경을 차지하고 있으며 초반부 전개를 읽다가보면 혹시 이게 정치소설인가 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킬만큼  굉장한 분량으로 독자들을 지치게 한다. (아마 재미로 이 소설을 집어든 독자는 대실망 예상! )  물론 주인공 하이메 아스트를로아는 이런 정치적 격랑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 철저한 무관심과 자기절제를 보여주면서 서서히 자기 갈 길을 간다.


하이메는 나이가 들면서 뭔가를 이뤄내야 한다는 강박관념같은게 있었는데 아마도 그건 '궁극적인 검술, 즉 최강의 검법을 완성하는 것' 이었던 것 같다. 여기까지 오면 '오호 이건 무협소설일지도..' 라는 착각이 있을테지만 많은 독자들이 기대하는 초식 전개 같은 무협지적 묘사는 흉내만 낼 뿐 포커스가 향해있지도 스토리상 그걸 원하지도 않는다. 물론 다양한 플뢰레 펜싱에 대한 기술용어가 줄을 지어 등장해서 마치 이걸 다 알아야만 하이메의 극강 검술을 상상이라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긴 한다. 아마도 아트루로의 검술용어 나열은 검술가로서의 섬세한 몰입, 정신세계로 향하는 그만의 여정을 구체화 할 수 있는 유일한 지도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뒤돌아서 찌르고, 한발 비켜서 검을 세우고 꼿꼿치 목을 노린채 연속해서 두번찌르고..하는 부연 설명과 화려한 이름들의 나열속에서 하이메는 왠지 모를 이상향 추구를 목매 기대리는 절실함같은게 엿보인다고나 할까.


그런데도 하이메는 '궁극의 경지'로 올라갈 기미같은게 도무지 보이질 않게 되고, 서서히 자신의 나이와 세월의 흐름속에서 다다를 수 없는 실패감과 그에 따른 무기력함을 느끼게 된다. '정의롭고' '굳건하며' '소신을 지키는' 따위의 자세가 허물어질때즈음,  아델 오테로가 찾아온다. 뒤늦은 나이에 젊고 매력적이고 검술까지 잘하는 묘령의 여인이 등장하면서 하이메는 다시 피가 요동치고 삶의 기쁨까지 누리게 된다. 여기까지만 해도 노회한 검술가와 매력적인 여제자사이에서 벌어지는 밀고당기는 로맨스, 그리고 정치적 격랑으로인해 이별과 만남을 반복하면서 기구한 애정행로를 테마로 하는 로맨스 소설의 진면목을 보여줬으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찰스디킨즈'의 두도시 이야기만큼 거대 서사소설로 변신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서 숙명적인 전개를 꾸며놓았다. 독자들도 대개의 경우 결말을 예상하게 되는데 아마 충격의 여파는 하이메가 결말에서 오테로를 어떻게 맞이하는가가 아니라 , 오테로가 하이메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느냐 쪽이 아닐까싶다. 거기서 독자들은 충격까지는 아니어도 작은 탄식을 내뱉지 않을까.


과연 이 여인은 무엇때문에 하이메로부터 검술을 배우려고 했던것인지는 미스테리 소설이 가지는 기본 장치정도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건 그다지 중요한 요소도 아니고...다만 오테로가 스승 하이메로부터 느꼈던 감정의 본질, 그리고 하이메가 오테로에게 쏟았던 관심과 열정의 정체,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역설적인 혼란속에서 전개된 하이메의 궁국의 검술이 드러나면서  하이메가 심혈을 기울였던 이상향을 완성시키게 된다. 독자들은 하이메가 그토록 원했던 궁국의 검법의 현실화를 보면서 어쩌면 이상향이란 냉혹하면서 피할수 없는 숙명적 대면을 극복하면서 나타나는 찰나적 깨달음일 것이다라고 느낄수도 있겠다. 원래의 검술가로 돌아온 하이메에게 뒤늦은 로맨스와 사랑과 회한은 어떤 의미였을까.


cf) 아르투로 페레즈는 <뒤마클럽>을 통해서 스페인의 움베르토 에코라는 명성을 가지게 되었다는데 움베르트의 <장미의 이름>을 읽었던 나는 <뒤마클럽>도 그렇고 <검의 대가>도 그렇고 슬며시 '어디가 비슷하다는 거지?' 라고 되뇌이고 있다. 유사한 뉘앙스라곤 역사적 사실과 서스펜스를 결합시키는'분위기'정도..  아무튼 움베르트 에코와 아르투로 페레즈를 엮는건 좀 비약이 아닐까싶다.

 


검의 대가

저자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2009-12-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검의 대가』고전들을 젊고 새로운 얼굴로 재구성한 전집「열린책들...
가격비교

 

Posted by kewell
Review BOOK/에세이2013. 1. 8. 11:30

 

하루키의 에세이들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무라카미 라디오>였다. 담백하고 간결하면서도 무미건조하지 않는데다가 다른 책들에서 보지 못한 그 만의 분위기가 베어있었으니까. 사실 그건 흉내내려고 해도 쉽게 되는 그런 부류의 재능들이 아니란 점이 안타깝지만, 읽는 것 만큼이야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영역이니까 열렬히 읽고는 있다.

 

아무튼 마치 에피타이저를 즐기듯 최근 합본으로 엮어주신 에세이 시리즈 5권도 거부감없이 주야장창 읽던 중, 그 사이에 그만 최신작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가 나와버렸다. (실제 발매된건 2012.6월 ㅠ.ㅠ )이름도 무라카미답게 (그는 제목이든 뭐든 실생활에서 전혀 쓰이지 않거나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 단어의 배치에 재능이 있어보인다.) 그야말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1Q84' 이후 지쳐버린 자신을 달래고자 '무라카미 라디오'의 2nd 타이틀로 카메오처럼 , 날카롭고 역습적으로 등장해주셨다.... 이 뜬금포는 그야말로 의외였다. '이봐이봐.. 에세이를 적당히 쓰라고..' 라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무작위의 주제도 그렇고 그의 표현처럼 '비방'도 '잘난척'도 '시사적'이지도 않은 채,(책속에서 에세이를 쓰는 자신만의 기준으로 언급함)  자기가 하고싶은 이야기를 듣거나 말거나식으로 하염없이 써내려갔다. 아마도 이런 걸 두고 '내맘대로 쓰는 생활 에세이'라고 해야 겠지만 막 썼다고 보기엔 교묘하고 장치적인 구석들이 좀 있긴하다. 구마모토 굴과 차가운 샤블리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굴튀김이 먹고 싶어졌다라는 엉뚱함은 소소하나 유리집에 사는 사람은 함부러 돌을 던지지 말아야 한다 (Those who live in glass houses shouldn't throw stones')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할 때 살짝 진지해졌다가  '탈구축 시저샐러드'에 대한 엉뚱한 에피소드에서 릴랙스 한 후 , '꿈을 쫓지 않는 인생이란 채소와 같다'라고 말했던 <세상에서 가장빠른 인디언>앤서니 홉킨즈를 언급할 때, 묘하고도 다양한 정서적 컬러에 감탄을 느끼는 식이다. 어쨋든 좋다. 이 무라카미식 리듬감에는 현대사회의 세련된 문화적 시각, 독립되고도 일관된 가치관, 감수성 짙은 정서의 담백함같은게 있어왔다고 느껴왔으니까..역시 하루키 답다라고 생각했드랬다.


이 에세이를 읽다가 보니 하루키의 정신세계가 슬쩍 그려진다. 물론 독자가 이런 책 몇 권읽는다고 그 사람의 깊이있는 속내를 그대로 알수 있다는 망상은 금물이지만, 사물에 대한 관점과 현상에 대한 감흥들에서는 '취향'정도는 베어나오기 마련이고 간혹가다의 진지함속에서는 어떤 타이틀롤이 그의 가치관에 걸려있는지 얼핏 보일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쉬운 관점에서 본다면 내가 하루키 에세이에 대해서 좋아하는 점은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들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가볍고 담백하게 눅눅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듯한 문장들이다. 솔직히 말해서 '햄버거를 먹기위해서 1 달러만 주세요' 라고 말하는 거리의 부랑자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했다고 해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1달러를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은 처음이다'라고 감탄하는 하루키가 더 난 감탄스럽다. 사람들의 일상은 대개 별의미 없는 것 투성이다. 의미없는 것들 속에서 쏠쏠히 의미를 옹골차게 찾아낸다는 것도 쉬운일이 아니어서..때론 그의 머리속이 궁금하기도 하다. 예전 무라카미 라디오에서도 '브래지어'를 가지고 한참동안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써내려갔었는데 막판에 문득 이런생각이 들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지?' 라고..사실 의미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의 위트있는 관찰력과 감수성이 탐났을 뿐인 게지...


대체로 그의 문장들을 분해해보면 단어선택에 있어서 묘한 정서적 컬러가 숨겨있다는 걸 느끼곤 한다. 이를테면'샴고양이', '피노누아르', '밤바다', '실크시폰드레스', '호박색반달'이 합쳐진 복합이미지가 문장으로 완성되어서 독자들의 감정회로에 이입되고  독자들만의 상상력이 동원되어 이미지화되는게 아닐까라고 생각된다. 판타지스럽기도 하고 때론 미스테리하며 하루키 특유의 소설적 우화적 배경들에 대한 근거가 혹시 에세이에서 드러나는게 아닐까하고 잠시 몽상에 빠진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도 작가이다보니 그렇게 의도적이진 않았을 듯 싶고, 에세이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하기도 하고 (도대체 뭘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라고 언급함) '문학에서는 자연스러움 역시 사명감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의미심장한 언급을 하기도 한다. 가벼우나 변속기어처럼 상황에 따라 진지함을 오가는 그의 리드미컬한 질주에는 '일관성'이 있어왔다는 점은 좋다. 변하지 않는 그만이 가진 표현력정도...


삶의 RPM이 과열할 지경이면 잠시동안 정서의 마음가짐을 '중립'에 놓고 이런 에세이를 보기도한다. 큰 의미가 없는 '읽기'는 피하라고 친구가 옹골차게 말했었는데, 오히려 난 담론에 취한채 격렬한 자의식 자랑놀이 하는 그 친구가 더 의미없고 지루하긴 마찬가지 아닌가싶다.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는 서른을 넘었고, 대 부분 그 옛날의 지루한 멍청이 어른이 되었다. 자신이 있던 자리에서는 전혀 바보같지 않았다. All you need is love를 노래했고 낭랑하게 트렘펫이 울렸다' …… 그럴 듯하지 않은가. 아마도 다들 어릴 때 그토록 고리타분하다고 여겼던 '지루한 멍청이 어른'들이 되어가는건 아닐까싶기도 하고... 고집이 세지면 세질수록, 뭔가 깨달으면 깨달을수록..오히려 더 무시무시한 바벨탑이 둘러치고 그 안에서 볼 수 있는 하늘은 좁아지는 뭐 그런 독야청청의 외곬수. 이걸 다른 말로 '엄청나게 지루한 어른되기'라고 이름을 붙여버렸다. 옛날 읽었던 '무라카미 라디오'에서 느꼈던 그 덤덤함이 여전히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고 아직도 그의 날서린 표현력은 줄지 않았다.  나도 신선한 로메인 상추에 크루통, 계란노른자를 올리고 파마산 치즈를 뿌린 다음 올리브유,, 다진마늘, 소금, 후추약간, 레몬 뿌려주고 우스터 소스와 와인 비네가를 곁드린 시저스 샐러드를 먹어야 겠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의 늦은 감흥은 시저스샐러드로 달래야 제격이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비채 | 2012-06-27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소소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하루키의 에세이!세계적인 작가 무...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kewell
Review BOOK/소설2013. 1. 5. 23:30

보네거트는 속이 뜨금거릴만큼 영악하면서도 폐부를 찌르는듯한 신랄함을 위트에 버무려서 자신의 문장으로 빚어내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 작가로 유명했다. (살아생전에는..) <제5 도살장>같은 진지 그 자체의 저작들에서도 비슷한 명징함이 강력함으로 다가오지만, 오히려 가볍지 않은 진지함때문에 분위기자체는 엄숙했다라고 볼 수도 있다. 몰살과 전쟁과 잔인한 소재가 완연히 유쾌해지리라는 건 거의 비약에 가깝기 마련이다. 따라서 커트 보네거트가 독자들에게 열렬한 호응을 받고 환대를 받은 작품은 오히려 덜 진지하면서 가볍다고 볼 수있는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같은 작품일수도 있다. 차라리 여기서 커트 보네거트의 진가는 더 진해진다. 

 

주인공 엘리엇 로즈워터의 기행에 가까운 모험담( 백만장자이면서 상대적으로 못살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봉사 헌신하는 줄거리)을 보여주면서 역시 부와 가난, 그리고 미덕과 악덕을 그만의 방식으로 분류, 전개, 기어코 마지막에서 거대한 반전을 선보이며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보인다. 그런데 다들 눈치채겠지만, 보네거트의 인기나 매력이 실제 작품에서 드러난 이야기흐름이라던지 '주제'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어느정도 영향력이 있기야 하겠지만)  그의 표현능력, 즉 현실을 빗대어 교묘하게 틀어버린 그의 문장 구사력에 있어서 그만이 가진 독특한 능력때문이라면 모를까. 

 

그의 독특한 묘사능력은 그동안 세간에서 전혀들어보지 못한 참신성, 그리고 무릅을 치게 만드는 비유, 기발한 조크로 지면 위를 수놓았다.  '정직하고 부지런하고 평화로운 시민들은 최저임금만 요구해도 즉시 흡혈귀로 분류되고, 칭찬은 언제나 엉성한 법망을 피해 범죄를 저지르고 막대한 돈을 챙기는 방법을 고안한 자들의 몫으로 돌아갔다'라는 설명을 '유머없는 미국 계급제도'에 붙여놓는 기발함은 약간의 예시정도에 불과할 뿐 소설내내 이런 류의 보네거트 시그니쳐가 고유명사처럼 계속해서 등장한다. 


'양심의 입을 막을 때마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지도자는 '사리사욕'이라고 묘사하면서 사리사욕은 기어코 해골문양의 깃발로 '널 지옥으로 보내주겠다'라는듯이 위압적으로 휘날린다고 하고 '우리는 당신의 재떨이에 오줌을 싸지 않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우리의 소변기에 담배를 버리지 말아주세요'라고 부자들에 대한 묘한 시선을 어필하기도 했으며 엘리엇이 자신에게 기대는 다수의 루저들에게 처방하는 단순명료 방법으로 '아와' (아스피린 + 와인)를 권유한다던지, 가상의 SF소설가, 킬고어 트라우트를 이용해서  2BRO2B 이야기를 햄릿과 치환시키는 과정에서 천재성을 느낄만큼 탁월함으로 다가온다. 

 

이 밖에도 엘리엇이 꿈이야기를 하면서 '소스타인 베블런'이 자꾸 꿈에 나타난다고 희화화하는 대목에서 슬며시 미소짓고,   공중전화부스의 낙서에 '실라 테일러는 감질만 나게하는 여자다'라고 쓰여있다고 언급하는 부분,  엘리엇의 부인인 실비아의 병명을 '자신보다 불행한 사람의 고통에 대한 히스테리성 무관심'으로 정의된 사마리안 실조증, 정상인이란  부유하고 산업화된 사회의 상류계층에서 탈없이 살아가는 사람으로 양심의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는 부류'라고 비꼴 때 드디어 그가 현실 사회에서의 부조리함과 인간내면의 본성을 가감없이 뒤집어 주는 능력에 재주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책 뒤에도 언급되었다시피 엘리엇이 아기에게 세례주면서 읇조린  '안녕 아가들아 지구에 온 걸 환영한다. 여긴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단다 그리고 둥글둥글하고 축축하고 붐비는 곳이지. 여기선 고작 100년정도 산단다. 아가들아 내가 아는 단 하나의 규칙을 말해줄까. 제기랄, 착하게 살아야한다." 라고 한 부분을 통해 분명 보네거트의 편린이자 정체성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노암 촘스키가 자신의 논리를 블랙유머스럽게 어필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얼추 비슷하지 않을까.

 

이외에도 샐수 없이 많은 기발한 문장들이 등장한다. 밑줄쳐두고 귀퉁이를 접어놓은 것만 수십페이지가 되니까. 책 전체가 위트있는 묘사력으로 똘똘뭉쳐있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이 책이 재밌고 매력적인 점은 미국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엘리엇의 아버지와 엘리엇의 대비뿐만 아니라 노먼 무샤리같은 부류의 인간들이 강탈하려고하는 돈과 재력의 본질을 시니컬하게 비웃으면서 막판에 통쾌하게 대처하는 방식이다. 방식조차도 일관성있기는 쉽지 않다. 나같으면 눈에는 눈식으로 악질적으로 변신했을 수도 있다. 물론 여기까지 가지 않았어도 이미 엘리엇의 기발한 언행과 건들거림을 통해서 독자들은 많은 카타르시스를 느낄것이다. 


독자들은..아마 엘리엇같은 사람을 현실세계에서 보지 못할 것이라는 아쉬움과 어쩌면 그토록 바라마지 않았던 노블리스 오블리제에 대한 명료함이 결합된 실체에 열광했을 수도 있다. 좀더 잘사는 사람들이 적어도 몇푼의 돈을 분배니 어쩌니하면서 나눠주지 않더라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의 자세같은 걸 슬며시 깨닫게 해줘서 그럴 수도 있고..아무튼 커트 보네거트는 이 책을 통해서 깊이있으면서도 통찰력있고 핵심을 꿰뚫는 몇가지를 알려줬다. 그건 정말 이 세상을 착하게 살아도 당신이 손해보는 건 별로 없다라는 거부하기 힘든 믿음, 설사 의심이 들더라도 왠지 대중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는 무언의 바램같은 것들이다. 그렇게 됨으로써 세상은 좀 더 좋아질 수 있다고 말이다. 

 

읽을 수록 묘한 미소가 지어지는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

저자
커트 보네거트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0-03-0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주정뱅이 백만장자 로즈워터의 유쾌한 모험담미국 최고의 풍자가이자...
가격비교

 

 


 

Posted by kewell
Review BOOK/에세이2013. 1. 5. 23:30

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 (God bless you, Dr.Kevorkian)
커트 보네거트(Kurt vonnegut)

 

 

1965년, 유사 제목의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God bless you, Mr.Rosewater)를 쓰고 30년정도가 훌쩍 지난 1999년에 자신의 이전 작품과 거의 동일한 제목으로 <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을 출간했다. 앞서 '로즈워터씨' 리뷰에서 밝혔다시피 전작에서 보네거트 문장에 중독된 독자들이 드디어 제2탄 운운하면서 '키보키언'을 찾아헤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지만, 실망스럽게도 키보키언은 로즈워터보다 내러티브적으로는 하향조절되었고 덜 현실적이었다.

 

다만 더 위트있고 유쾌해졌고 깃털처럼 가벼운 조소만은 여전했다. 분량은 로즈워터때보다 약 1/3 수준, 당시 77세의 보네거트로서는 아마도 미리 써두었을 몇편의 미출간작들을 모아두었다가 단편의 형식으로 출간했을 수도 있고,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슬쩍 드러내라고 주위로부터 강요 당했을 수도 있다. 이미 1999년 당시 그는 '소설가'로서의 정체성으로부터 자유를 얻었었으니까 (1997년에 소설가로서 은퇴를 선언했었다.) 그로서는 아쉬울 것도 안타까울 것도 없는 남은 여생을 '보네거트 방송'을 하며 천국을 들락날락거리며 보냈어도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

 

보네거트 소설을 근자에 이르러 굉장히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건 아마도 '그의 그럴듯한 정신 사상'이라던지 인간을 하염없이 따뜻하게 바라보는 휴머니즘에 근거한 세속적 이유만큼은 결코 아니었다.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남들 다 챙기는 일종의 형식, 시선을 의식하고 진실보다는 가공의 아름다움을 데코레이션 한 후에 좀 더 나은 뭔가를 보여주고자 애쓰는 그런 자세를 지양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서문에서 '닐 게이먼'은 커트 보네거트의 가상 인터뷰를 통해서 '당신의 저작물이 얼마나 나에게 영향을 끼쳤는지 알려주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그리고 '인생의 목적은, 누가 그것을 지배하든 주변의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라는 보네거트 책으로부터의 자신의 깨달음을 인정받기라도 하고 싶어서 보네거트에게 의견을 구한다. 그리고 보네거트는 이렇게 말했다. "좋아, 내가 그렇게 얘기했다고 말하게나" 라고..

 

이 책은 기묘하게도 백삼십여명을 안락사시킨 '죽음의 의사' 잭키보키언의 도움을 받아 3/4 정도 죽은 상태에서 사후세계로 가 유명인사들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쓰여졌다. (엄밀하게 보자면 소설이라기보다 차라리 개인의 생각을 가상으로 엮은 일종의 잡문집, 에세이라고 불리워도 무리는 없어보인다.) '푸른터널'의 끝과 '천국의 문'사이의 작은 공터에서 벌이는 이 기묘한 인터뷰가 만들어진 이유는 보네거트가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사후세계로 가버린 인물들을 통해서 표출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보네거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도주의자'로 타이틀화한 듯 싶다. 이미 종교적인 관점에서 '만일 예수의 산상수훈에 자비와 동정의 가르침이 없다면, 나는 인간이기를 거부할 것이다. 차라리 방울뱀이 되는 편이 나을 것이다'라고 한 부분만 봐도 그렇고 아예 '인도주의는 훌륭한 시민정신과 보편적 품위'를 대신하는 편리한 동의어'라고 언급한 대목에서 진정 보네거트가 추종하는 소양을 짐작케한다.

 

등장하는 사후 인터뷰 대상자들이 다 유명한 인물들은 아니고 잘 알려지지 않는 범인들도 등장한다. 독자들의 지식속에 메리 D.에인즈워스 박사가 누구인지, 살바토레 비아지니,존 브라운 정도는 제아무리 미국에서 TV와 신문을 끼고 살아도 알기 어려운 인물들이다. 그럼에도 보네거트는 열심히 사후세계 건너편에서 이들의 의견을 열심히 인용한다. 아마도 이들이 죽게 되기 까지 닥친 모종의 상황, 그리고 죽은 인물들이 사회에 끼친 영향들 중 보네거트가 '한마디씩' 자기만의 견해를 피력하기 위해서 소재로써 활용되는게 아닐까 싶다.  위트있고 기발하며 때론 신랄하고 통찰력있는 몇마디의 인터뷰야 말로 상대방이 아닌 보네거트의 진정한 속내이리라 추측된다.

 

  • 메리 D. 에인즈워스 : 유아가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애착관계 필요를 주장했으나 보네거트는 사후세계에서는 이런 그녀의 주장이 쓸데없다고 말하며 아기들은 천사가 되어있더라고 밝힌다.
  • 살바토레 비아지니 : 슈나우저 테디를 구하기위해 핏불테리어에게 물려 죽은 사람.
    '베트남 전쟁에서 개죽음을 당하는 것보다 낫지 않겠냐'는 대답을 들음. 반전 사상에 대한 견해피력.

  • 버넘버넘 : 오스트렐리아 원주민 태생으로 1967년에 시민권을 받도록 결정적 영향을 끼친 인물
    여기에는 루이암스트롱 악단도 등장함. 인종차별에 대한 견해를 밝힘.

  • 존 브라운 : 18명의 열성 노예폐지론자를 이끌고 버지니아 주 하퍼스페리 무기고를 탈취했던 인물. 교수형 당함.
    미국에서의 노예제도를 합법적으로 저지른 잔학행위로 규정하면서 '홀로코스토도 독일안에서 합법적이었다는 신랄한 견해를 밝힘' 또한 유색인이 백인에게 굽실거리는 것을 자연법과 완벽히 조화를 이룬다고 여기는 사회를 '토마스 제퍼슨'이 만들었다고 힐난했다.

  • 로버타 코르서치 버크 여사 : 1955~1961년의 해군참모총장을 역임한 알리 A.버크제독의 부인.
    좋은 아내가 되기 위한 본보기로 등장했으며, 결국 '뱃사람의 아내'라는 소박한 타이틀을 선택하는 부인을 존중했음.

  • 클레런스 대로 : 미국초기에 노동조합을 조직한 노동가를 변호한 변호사.
    클레런스의 인터뷰말미에 '난 최선을 다해 오락거릴 제공했다네' 라고 말한다.

  • 빅터 데브스 : 사회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5번 출마한 사람.
    " 하층 계급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나는 하층계급입니다. 범죄인자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나는 범죄형입니다. 
      감옥에 갇힌 영혼이 존재한다면 나는 자유롭지 않습니다. "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에 대한 질타. 그리고 현실의 미국에서는 데브스말이 '조롱'당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 비비언 헬리넌 : 화려한 태평양 연안가문의 여주인.
    상대적으로 보자면 기득권 세력이었던 헬리넌이 남편인 빈센트 헬리넌처럼 노동운동 지도자 해리 브리지스를 지지하고 인권을 옹호하는 일에 앞장섰던 것에 대해서 '화려하다'라는 칭호를 붙여주었다. 그리고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적들에게 불리웠던 칭호 "자기 계급을 배반한 자'라는 역설적 위트를 보여준다.

  • 아돌프 히틀러 : 자신이 저지른 일을 용서해달라는 의미로 인터뷰.

  • 존웨슬리 조이스 : 1966~1996 라이온스 헤드바 운영. 미국작가들이 술을 먹으며 떠들어대는 중심지 역할을 했다.
    작가들의 수다방지를 위해 주크박스를 들였으나 '그냥 더 시끄럽게 얘기하더군'이라며 위트를 보여준다.

  • 프랜시스 킨 : 로망스어 전문가 어린이책 작가로 활동하였다.
    세번의 결혼이 실패로 돌아갔다라는 주류언론의 흠집내기를 '아시 에스라 비다" "세라 비타" "세 라 비" 라는 단어로 축약했다. ('그것이 인생이다' 라는 뜻)

  • 아이작 뉴턴 : 탐구에 대한 호기심이 멈추지 않는 뉴턴을 사후세계에서 인터뷰함. 여기에는 성베드로도 등장하는데 베드로는 뉴턴에게 이렇게 말한다 " 하늘과 땅에는 자네의 철학으로 꿈꿀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네" 라고..

  • 이 밖에도 몇명의 인물이 더 등장한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

저자
커트 보네거트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1-01-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엉뚱하고 기발한 사후세계 인터뷰사후세계로 취재를 떠난 커트 보네...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