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BOOK/자기계발2013. 3. 4. 12:55

<심플하게 산다> - 도미니크 로로(Dominique Loreau)/바다 출판사.

 


 

언젠가 친구놈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DNA적으로 난 놈은 난 놈이라고' 살다가 보니 그 말을 자꾸 곱씹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은데, 개똥철학처럼 어디에도 잘 들어맞아버리는 의외의 친밀감은 그냥 넘겨버릴 '경구'스러움 이상이다. 좀 더 다른 측면에서보자면 몸에서 정신에서 우러나오는 모든 것들의 정체도 대개 날 때부터 달고 나오거나 아주 오랜세월동안 반복되어 익숙해져버린 것들과 매우 유사하다.. 그래서 말인데,'심플하게 산다'의 저자가 왠지 이런 선천적 심플 앤 미니멀리즘 DNA 소유자여서 일반인(?)들의 사정을 아예 모르는게 아닐까 싶었다.  세상에 일부러 '더럽고 지져분하며 너저분하게 살고 싶은 인간'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지저분한 것도 가치관이자 철학일수도 있겠고 장황스러움은 부모가 물려준 가문의 스타일 일 수도 있다. 지나치게 산만한것도  자기탓이 아닐수도 있겠다... 때로는 그럴 수도 있는게지. 살다보면 이 모든 건 내가 받아들였으니까 내몸에 남아있는 거다...라고 이렇게 항변이라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말인데 이 책은 높은 외벽같고..아주 고고한 시선으로 잡스러운 쓰레기 인생들을 슬며시 굽어 살피는 통달한 달인의 시각에서 기술된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결국 '심플하게 산다'는 깨달음의 문제가 아니라 '실행'과 '연습'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기본적으로 '심플하게 산다'에 나오는 모든 지적질과 조치(?)들은 다 옳다. 도미니크 로로 말처럼 우리는 '공간을 채우느라 공간을 잃는 경향이 있다' 마트에 가서 필요하지도 않은 줄줄히 부록처럼 딸린 커피믹스를 본능적으로 집어오고 싸구려틱한 머그잔을 공짜로 얻었다며 뿌듯해하며 언젠가는 필요할지도 모른다며 클립, 볼펜, 심지어 고무줄하나도 버리기 주저한다. 바야흐로 내 주변은 산만한 광녀 저리가라할 정도의 어수선함이 자리잡겠지. 젠장 원래 이럴려고 그런게 아니었어. 미래를 걱정한 내 근심과 보호주의가 삶을 좀더 거추장스럽게 만들었을 뿐이야. 치우고 또 치워서 번잡스러움을 덜어보지만 그게 하루이틀 이상 갈지 아무도 장담못한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들이 '도도해보이는 거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지만 잘안된다고...


이렇게 생각해봤다. 내 집이 드럽게 어수선한건 물건들이 제자리에 없어서일까 아니면 무분별하게 정리하지못한 비체계적 인테리어 구조때문인가..것도 아니라면 게으른 나의 천성때문인가. 이유를 대자니 3개..5개..10개도 넘어가주신다. 이렇게 근거가 많아지면 분석은 의미없고 자기반성은 무감각해지기마련... 원래 그래왔는데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돌이켜봐도 하루아침에 확 정리가 되는 것도 아닐테다. 어찌됐든 나아지고 싶은 욕망이 있으니까 이 책들을 읽으면서 '스스로' 어떻게든 '바뀌어라. 깨달아라. 이젠 바꿀때도 되었잖아. 여태 너저분하게 살았던게야 끊임없이 책에서 눈으로 눈에서 뇌로 '강압적 기대' 신호를 보낸다. 그런데 정말 심플하게 산다는게 멋진 걸까. 뭐가 달라지는 걸까. 궁금하긴하다.


정말 어지럽고 지저분하고 장황하고 번잡스러웠던 이유는 보이지 않는 내 가치관이 그렇게 너저분하고 내 생각이 정리가 안된것이며 내 일방식이 구시대적이라는 방증이 아닐까라는 생각. 삶을 이끄는 정신같은게 있다면, 지나치게 감각적인건 역시 정리에 도움이 안되는 것 같다. 그러면 도미닉 로로는 '감각도 울타리를 치고 잡으라고' 이야기할테지. 뭐든 변명이 되기엔 역부족의 생활방식이고 통감할만한 지적들이 머리에 꽂혀버린다. '중요한 것은 질이고 뭐든 시간이 지나면 차곡차곡 쌓이는 법' 효과적으로 살기위해서라면 '자기앞에 주어진 지금의 일을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다 맞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로로는 '정신'의 심플함이 '생활'의 심플함이다라고 은밀하게 강조하고 있는 거라고 본다.  지금 내주변에 놓인 마우스, 키보드 살짝 정리해도 내 심플함에 강도를 증가시키기어렵겠지만 적어도 머리속이 깔끔하게 정리되고 구획화되면 그건 분명히 현실화될거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생각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


고민과 걱정자체가 두려워지는 현실앞에서 벗어나는 비결. 문제를 초월하여 처리하지말고 별것 아닌것처럼 내버려두라는 이야기는 굉장히 현실적이다. 그렇다고 넋놓고 있으란 이야기는 아니다. 잔잔하게 내버려두면서 문제로부터 떨어져있으라는...그리하여 어떤 성질의 문제인지 인식하고 부담을 덜라는 지적은 공감이 간다. 더우기 생활패턴에 대한 소소한 내용들도 일반론적이지만 '절대 안지켜지고 있는 사항'들이기도 하다. 생체리듬대로 살기. 충실한 아침식사. 먹는 즐거움. 식사는 자기식대로하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나를 바로 잡는 것이 지식을 얻는 것보다 우위에 있다는 점, 그리고 남과의 관계에서 '지나칠 정도의 과도한 솔직함을 요구하지 말며 친해지기 위해서 속을 다 털어놓을 필요가 없다는 부분, 다른 사람들은 자기식대로 살게 내버려두라는 쪽은 약간 냉정해보이지만 내실이 있어보인다. 현대사회는 간섭이 지나칠 정도로 많다. 설교도 많고 충고도 많고 비난도 많다. 주접떨지말고 스스로를 돌아보기에도 바쁜 시간이다라고 이야기한다면 고개를 숙일수 밖에 없다. 충족되지 못한 자기화가 아직도 미달인 셈이다.


" 어떤 원칙을 가지고 있는지 자랑하지 말고 그 원칙을 따르며 사는 모습을 보여주라 "


심플하다는 건 어떻게 보면 머리속에 있던 다양한 세상일에 대한 컨셉을 정리하는 일 처럼 느껴진다. 나와 주변사람들과 그리고 실체적인 물건들. 제위치에 있어야 하고 효율적이어야하며 꼭 필요해야 한다는 조건들에 한해서만 존재가치가 극대화된다는 그런 개념이 '심플'인 것 같다. 진짜 쾌락적인게 어떤 건지 잘모른다면 솔직히 우리들은 순간적인 중독과 빨려들어갈 것 같은 인스턴트식의 소비화에 몸이 길들여있다는 증세일수도 있겠다. 되는데로 생각하고 그렇게 하다보니 이렇게 됐다라고 하는 변명들도 습관화되고 무기력한 모든 일상사가 세월의 영향이겠거니 한다. 알고보면 당사자의 생각이 늙어가고 자신에 대한 돌봄이 게을러지고 나아지고 싶은 가이드따위가 없는 거겠지. 공간을 채우고자하는 욕심만 늘었고 그 곳에 쌓인 것들도 다 세속적이어서 다 해를 끼치는 독소들로 라이프에 자리잡혔다. 그러니까 이렇게 살기힘든거야. 그렇다고 버릴 순 없잖아..속으로 기껏 외쳐봐도 달라지는게 없는 현실일때, 이 책을 펼치고 다시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다.


방이 어지러운건지 내 짐이 이렇게 많았던게 결국 내 삶속에 자리잡고 있는 내 생각을 따라갔다고 보면 정작 어지러운건 나다. 내가 어지러우니까 주변도 어지러워진다라...꽤 부끄러운 진실같다.

 

 


심플하게 산다

저자
도미니크 로로 지음
출판사
바다출판사 | 2012-09-03 출간
카테고리
자기계발
책소개
욕망을 채우느라 삶을 잃어버린 우리들을 위한 일상 성찰!『심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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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BOOK/소설2013. 3. 3. 23:37

<페르미나 마르케스>- 발레리 라르보(Valery Larbaud)/시공사

 


" 생토귀스탱에서 맞는 이러한 저녁들. 겁에 질려 도망가듯이 가는 열차들이 멀리서 파리를 향해 신음을 흘리는 소리가 잠들때까지 들려오는 그런 저녁나절들. 파리근교 마을의 이 절망적인 저녁나절들에 담긴 우수에도 더는 흔들리지 않았다." (40p)

 

 

 

청춘소설이 다 아련하게 아퍼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리고 성장했다라는 결론도 너무 뻔하다. 청춘성장소설이란 타이틀을 붙여놓을땐 아마 뻔해서가 아닐가라고 생각했던 적도 많다.  삶이, 혹은 인생이 때론 교훈적이지도 않아서 회상하기도 싫은 괴로운 악몽을 감내할 인내가 굉장히 하찮게 느껴질수도 있다. 그럴바엔 그따위 '성숙'은 포기하고 말지' 라고 되뇌이며...오히려 아름다운 추억이라는 이름아래 세월이 내린 몇십년짜리 진통제가 남겨놓은 치유불가의 후유증으로..트라우마로 남는다. 아픈건 다 사라지고 몽롱하고 나른한 몇개의 따스한 햇볕같은게 내 인생을 내리쬐었다는 기억만을 환영처럼 남겨둔 채.. 아름다웠으니 그것으로 된 것아니냐며 위로한다.  그런가싶다가도 의외로  찌질하고 조잡하고 민망하고 심지어 오글거려서 미칠지경의 대목들이 불쑥불쑥 기억에서 벌떡 일어난다. 아...젠장 내가 왜 그 시절 그랬을까. 가만히나 있을 것이지, 솔직함과 당당함과 순수함이 뭐라고....후회했던 횟수만 꼽아봐도 롤플레잉 게임 중간 죽어버린 캐릭터 갯수보다도 많다. 게임 시나리오야 숙지하고 외워서 다시해보기라도하지. 인생에 그런건 없다. 도중에 킬 당하면 캔슬키 눌러서 not save한채로 뒤로 돌아갈 기회같은건 있지도 않은 구라같은 이야기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라든지, 제임스 조이스의 <젋은 예술가의 초상>같은 작품들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도 유명한 이 발레리 라르보의 <페르미나 마르케스>도 역시 아름 다운 한편의 추억과도 같은 청춘소설이리라 짐작하긴했다. 현실감각 결여된 또 하나의 고전, 그것도 아니라면 약간 로맨스가 곁들여졌다면 '오만과 편견'같은 것이나 '기구한 운명의 '테스'에피소드2 정도 될수도 있겠네싶었는데 점점 후반부로 갈수록 마냥 '소중한 추억'이나 간직할 것'이라는 경구조차 생각나지 않게 만들어버린다. 후기를 철썩같이 공감하기 드문데, 붙어있는 역자의 견해에는 살짝 공감했다. 사랑의 이야기라기보단 '시간의 작용에 대한 이야기'인것 같다고 하는 부분 말이다.


이 소설에는 그야말로 청순과 아름다움의 화신과도 같은 우상 '페르미나 마르케스'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 소녀를 흠모하는 소년셋이 교차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한명은 보잘것 없는 신분이나 타고난 지적능력을 자랑하는 천재적 찌질이 '조아니 레니오' 그리고 반면 잘생긴 외모와 재력의 소유자로 거침없이 상남자로서의 매력을 뿜어내는 미성숙의 질풍노도 소년 '산토스 이투리아', 내성적이고 조용하면서 삶에 무기력증을 유발시키나 마음속으로 페르미나를 흠모하면서 인생의 이유를 찾는 전형적 짝사랑 바보 '카미유' 이렇게 셋이다. 그리고 초반부에서 조아니...아니 중반부까지 조아니의 화끈거리는 지적 허세질, 그리고 콤플렉스를 커버하기 위한 자기위안과 나르시즘의 괴논리을 자기식대로 펼치다가 페르미나의 냉랭한 반응에 자존심이 구겨진 이야기가 등장하고, 이 후 틈을 노리던 산토스 이투리아의 대쉬로 완전히 대세가 역전된다.  중간에 카미유는 그야말로 카메오처럼 순수하게 살짝 등장하고 ...오랜세월 후 그런일이 있었지라고 회상하는 걸로 마무리 .이렇게 해서 얇은 170여페이지의 소설은 그 역할을 다한다.  


청춘 애정 소설같지만 사실은 후반부에서 결정타를 몇개 날려줘서  마냥 아름다웠던 추억 이야기 내지 '해피엔딩'같은 건 개나줘버려리라는 섭섭함을 느끼게 될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허황되거나 그렇진않다. 애궂게 주인공이 훗날 아쉽게 불운을 경험했다고 해서 추억이 어떻게 되란 법은 없으니까. 다만 훗날 스러져버린 교정과 추억들을 간직했던 장소들의 침식들속에서 화자는 달라져버린 현실세계의 차가운 빗줄기를 부슬부슬 맞으면서 회상한다.  화자가 교정을 걸을때 소소하게 내뱉던 감정들을 읽자면 꿈같던 추억이 소중했다고 말하는 걸까. 아니면 그토록 아름다웠던 추억조차도 시간이 지나고 나니 남는게 없다고 말하는걸까 둘다겠지. 아마도...'유리창이 깨지고 창틀은 떨어져 나간채, 그렇게 오늘날의 햇빛과 하늘의 푸르름을 향해 활짝 열려있고,  분주함으로 가득한 파리의 하늘을 향해, 안개와 연기, 전깃불의 빛무리들...둥근 창은 이제 그 모든 것들 가운데 그 어느것도 비추지 못한다는 그 독백들을 읽으면 그저 덧없다란 생각뿐이다. 쓸쓸하고 왠지 아련하다.


철없던 시절의 이야기들정도로 치부하고 살짝 연애소설로 읽어둘걸 그랬나. 그 정도로 읽기엔 조아니의 굉장한 지적허세가 안스럽고 실황중계처럼 절절해서 여기서 약간 몰입되고 이입되는 경우라면 공감을 표하고 싶다.  왜 그렇지 않은가. 연애감정의 당사자로선 '자신의 존재가 상대편에게 의미있는 그 무엇이기를 바라는 그런 기대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 '그렇게 하기위해 매력적인 무엇인가를 표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정작 당사자는 아예 신경도 안쓰는데 상처받은 자존심달래보려고 있는 지식 없는 지식 다 동원해서 최대한 페르미나를 굴욕주려는 조아니의 절절함은 이 소설의 메인테마인 듯 싶다. 어쩌면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애정패턴은 붕어빵같다. 틀만 바뀌었지 찍어내는 것들은 다 붕어카테고리일테니까.. 이즈음 조건적으로 부족할 것 없는 이투리아의 매력에 넘어가는 페르미나의 속물스러움을 도덕적 죄책감으로 대신하려는 건 뭐 대단한 변명거리도 못된다. 이건 마냥 천사와 같은 소녀이야기가 될수조차 없는 거였다. 


정말 이 이야기가 시간의 작용이었다면 조아니는 참 슬픈 인생이었고, 산토스는 지리멸렬하고 페르미나 마르케스는 한계절 피고지는 이름 모를 꽃처럼 처량했다. 굳이 그렇게 조숙하고 고고하고 청순해야할 필요는 없었는데도 라르보는 그야말로 그럴듯한 소년소녀들의 소소한 연애감정을 묘한 강박관념 셋트처럼 캐릭터에 이입했다. 지적인 것과 고고한 것과 당당함과 세속적이면서도 성스러운 묘한 불일치들을 보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다들 너무 성숙해보인다고 잠깐 생각이 들었드랬다. 정말 성장하고도 남을만큼..지나치게 청춘스럽고 애잔하고 쓸쓸하다. 페르미나가 지금쯤 결혼해서 잘 살고 있을 거라는 말은 왠지 피천득씨의 '인연' 말미와 매우 닯아있지 않은가. 한낯 꿈같은 찰나의 추억들이었다.

 


페르미나 마르케스

저자
발레리 라르보 지음
출판사
시공사 | 2011-12-24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소박하고 우아한 필치로 담아낸 청춘과 사랑의 기록!20세기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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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BOOK/소설2013. 2. 27. 18:17

<고독한 시월의 밤>(A Night in the lonesome october) - 로저 젤라즈니/시공사.

 

 

아주 고전적인 무협소설 매니아의 전력(?)이 있었던지라 대여점이나 서점의 미로같은 구획들을 따라 이동하다 보면 눈이 가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코너가 바로 무협소설코너다. (대놓고 무협코너라고 타이틀을 걸어놓진 않지만..) 그리고 요즘의 그 코너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예전' 고풍스러웠던 화산과 전진, 곤륜, 소림의 이야기들이 아닌 다중차원을 오고가는 그야말로 판타지계열의 어드벤쳐로 퓨전된 괴이한 장르 이질감으로 다가온다. '이게 무슨 무협이야..그냥 SF라고 해두지' 라는 정도..SF혹은 판타지가 무협과 접목되었다고해서 나쁘다고 말할순 없지만, 내 추억의 레이아웃들은 SF, 판타지, 무협의 칸막이가 확고하다. 두방을 터는 경우(?)도 없는데다가 둘은 각자의 매력적인 정서와 뉘앙스로 개성화되어있다고 믿기에 엄연히 독립적이었던 것이다. 근래에 이르러서는 완연히 '정통무협물'이 아닌 '무협 판타지'로 전이된 양상이다. 판타지의 유입으로 보자면 시대의 흐름인가싶다가도 과거부터 있어왔던 장르이기에 그다지 특이할 것도 없는데도 무협과 결합해버렸다. 


지금도 강하게 믿고 있는데, 판타지나 무협이나 '서사'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이건 일회성의 설정으로 끝날 계제가 아니고 오히려 설정만큼은 리얼리즘에 교묘히 덧입혀져서 '그럴듯한' 내용들과 내러티브로 무장하고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그렇기에 무협같은 '시대'에 들러붙어있는 역사적 두터음에 '탈시대적인 판타지'를 결합하게 되면 상상력의 깊이가 더 강해지고 중독적이 될거라는 추측에 신뢰감을 실어준다. 문제는 내용이다.  마법이 일어나고 독특한 아이템이 등장하며 이에 관한 흥미진진한 뒷배경이 등장할 때 '얼마나 몰입적인가'라는 평가가 남아있다. 그럴듯한 설정, 그리고 그럴듯한 세계관, 그리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 모두의 이야기들이 과거부터 있어왔던 이야기라면, 혹 등장했던 캐릭터이고 무엇보다 관련된 에피소드가 프리퀼처럼 존재한다면 후대의 작가들은 이런 세계관을 그냥 사용만해도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전례에 대한 출처, 깊은 독서경험에서 우러러나오는 '인용'과 '도입', 그리고 오마쥬의 즐거움을 누릴수가 있다. 적어도 생각이 있다면 무엇이든 펼쳐지는 세계관에 한해서는 한없는 상상력의 세계속에서 평행으로 연결되기 마련이니까.


로저 젤라즈니가 <고독한 시월의 밤>에서 사용한 세계관이 이와 비슷하다. 이름하여 '크툴루 세계관'(Cthulhu Mythos). 괴이하고도 기이한 신화적 설정이겠거니하겠지만 창작에 의한 세계관치고 유야무야 사라져버린 유치뽕짝의 다른 여타의 설정들을 뒤로하고 살아남는 설정에 대해서는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고독한 시월의 밤>(이하 고시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이자 개인 '스너프'는 주인과 어느 10월 기이한 게임에 돌입한다. 이 게임에는 다음과 같은 참가자들이 등장한다. 주인인 과 화자인 개 스너프, 미치광이 질과 고양이 그레이모크, 모리스와 메케이브 그리고 올빼미인 나이트윈드, 미친 수도사 라스토프와 검은뱀 퀵라임, 드루이드교 오웬과 다람쥐 치터. 백작과 박쥐 니들, 그리고 유일하게 혼자 다니는 래리텔벗, 그리고 주변을 어슬렁 거리는 '위대한 탐정', 마지막으로 '훌륭한 박사와 쥐 부보' 등이 소설속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들이다. 정보와 재료들을 모아서 '그날'을 준비하고 동물들은 '정탐'으로 주인을 도우면서 둘이 한팀이 되어서 움직인다. 10월의 마지막날 게임 참여자들은 모여서 '개방'과 '폐쇄'에 대한 최후의 대결을 펼친다는 스토리로 전개된다.


이 소설은 로저 젤라즈니의 마지막소설로 1993년 출간, 기존의 전작들과는 약간 달리 경쾌하면서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에 비해선 훨씬 유하고 가볍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위트있으며, 고딕과 추리, 판타지의 결합을 굉장히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마치 이야기 구조만 보면 TYPEMOON페이트 스테이나이트(Fate/stay night)와 흡사한 구조다. 격돌을 전제로 생존게임을 벌이지만 각 참여자에 딸려있는 서번트와 <고시밤>에 서번트처럼 탐색전을 벌이는 동물들도 그렇고...아무튼 스토리의 설정구조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롤플레잉 게임같은 느낌이 들기는한다. 로저 젤라즈니는 여기에다가 묘한 캐릭터의 유명세를 익살스럽게 연결시켰다. 이를테면 스너프의 주인인 '잭'은 <리퍼의 밤>(Night of the Ripper)에 등장하는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를 끌어왔고, 미치광이 질은 '마녀 질'(질드레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훌륭한 박사는 '프랑켄슈타인을 만든 박사', 백작은 '드라큘라 백작', '래리텔벗'은 '늑대인간', 위대한 탐정은 바로 '셜록홈즈'다. 어떻게 본다면 각종 유명한 캐릭터들이 은밀한 게임에 참여하기 위해 모두 총출동하는 이야기 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부분이 있는데 한참 모험담이 펼쳐지는 중간에 갑자기 고양이 그레이모크와 스너프가 이질적인공간으로 빨려들어가는 부분이다. 그레이모크는 이전에도 이러한 장소에 온 적이 있음을 말하며 그 세계를 '드림월드'라고 부르는데 드림월드에 대한 곳곳의 묘사를 아주 세밀하고 생생하게 말하기 시작한다. 앞서 이야기한 크툴루 세계관이 '고시밤'에 깔려있다고 보는 부분은 이것 때문이다. 특히 크툴루 세계관의 창시자로 알려진 러브 크래프트는 자신이 만들어낸 이러한 설정을 메인으로 확장할 의지같은 건 없었다고 알려져있긴 하지만 단편작들에서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인용도구로 사용하면서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해댔다. ( 이러한 패러렐적인 설정요소들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사용하는 측에서 변형을 가해도 무방하다고 한바 있다.)


 

젤라즈니 역시 크래프트의 크툴루 설정을 빌어온 흔적들이 곳곳에 보인다. 우선 그레이모크가 묘사한 드림월드의 내용들은 소설 뒷편 역자 이수현씨가 밝힌대로 '미지의 카다스를 향한 몽환의 추격'에 등장하는 '드림랜드'의 내용과 같다. 또 미친 수도사 라스토프의 무기로 등장하는 '알하즈레드'는 크래프트가 만들어낸 전설의 '네크로노미콘'이라는 책의 저자로 알려져있다. 사람이름을 '성물'로 설정하는 위트를 발휘하긴 했지만 여전히 크툴루의 잔재가 깔려있는 것이다. (부. 1927년 러브크래프트는 <네크로노미콘의 역사'라는 가상의 역사를 기록, 1938년 그의 사후 발표되었다. 책의 원제는 알아지프이며 아랍어로 '바람소리, 기괴한 소리 혹은 소음'을 의미한다. 이 책에 의하면 미친 아랍인 '알하즈레드'가 등장하고 그는 크툴루를 숭배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따라서 미친 수도사로 라스토프가 알하즈레드를 소유한다는 설정은 어느정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셈이다.)


의외로 로저젤라즈니의 이 소설속에는 여러가지 인문학적 요소와 고전 환상문학의 잔재가 깊에 자리잡고 있다. 더군다나 위트있는 대사들과 기발한 전개, 스펙타클한 모험으로 볼 때, 오히려 전작들의 미스테리하고도 무거운 전개보다 쉽게 읽힌다는 장점이 있다. 마치 정말 10월의 세계 어디에선가 이런 캐릭터들이 은밀히 활동하면서 지금도 '폐쇄와 '개방'을 위한 전력 대결을 펼칠 것만 같은.... 그래서 할로윈에는 고독한 시월의 밤을 떠올리면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차라리 서두에 언급했다시피 무협판타지여야 한다면 젤라즈니같은 서사를 배경으로 깔아놓는 정도의 위트와 흥미진진함이 있었으면 하다고 생각한다. 깊이있는 대사와 전개도 그렇고 환상문학의 가치를 이런것으로 갈음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읽는 도중에만 느끼는 긴장감만을 위해서 '책을 집어들 순 없는 노릇이 아닌가.  가끔가다가 굉장히 모호한 장르적인 뒤섞임때문에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줄거리를 계속해서 읽는 고단함은 별로 느끼고 싶지 않다가도  '고독한 시월의 밤'을 떠올리면 정말 이 작품이 얼마나 좋은 작품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의 마지막 소설이 이 패턴으로 몇 권 더 나왔으면 좀더 긴 '시월의 밤'을 누려볼 수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지금도 있다.

 


고독한 시월의 밤

저자
로저 젤라즈니 지음
출판사
시공사 | 2010-12-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고독한 시월의 마지막 밤, 게임이 시작된다!SF 판타지계의 거장...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kewell
Review BOOK/소설2013. 2. 21. 16:00

<달려라, 토끼>(Rabbit, run) - 존업다이크 (John. Updike)

 

 

 

2010년 즈음으로 기억하는데, 토끼해를 맞이해서 컬럼을 수놓던 몇군데의 매스컴에서 '토끼' 연관성을 찾아 헤맨끝에 끄적여 놓은 소스제공으로도 '달려라 토끼'가 몫을 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토끼 해와 달려라 토끼가 뭔 관련이 있다고..굳이 연상도 안되는걸 강제로 엮으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 쓸게 하도 없어서 기어코 '토끼'자가 들어가는 문학작품이라도 인용해야 겠다라고 생각하셨나보다.) 아무튼 토끼라는 뉘앙스에는 아무래도 '동화적' 색채감이 깔려있다보니 분명히 모르고 접하는 <달려라 토끼>에는 불행을 달고 사는 주인공이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역경을 딛고 희망찬 미래를 바라보면서 달려나간다라는 식으로 결말이 마무리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니까 토끼해에 대한 의미를 떠올릴때 달려라 토끼까지 끌어들이는 것 아닌가. 얼마나 거칠고 처참하고 암울한지도 모르면서...'달려라'라는 말은 대체로 '파이팅' '힘내'라는 의미를 품고 있으니까.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에세이들과 그의 작품들 귀퉁이에 업다이크의 책을 들고 어디론가 가서 읽어야만 하는 계절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수시로 써놓은 적이 있다. (1Q84의 신포니에타(야나체크) 한번 인용했다고 음반가게에서 갑자기 돌풍일으키는 것과 유사하게 업다이크 책도 찾는 사람들이 많았으리라. 최근 정리 발매된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에서 1968년의 봄을 업다이크를 읽기 좋은 계절이라고 언급하였다. 이외에도 업다이크는 그의 작품에서 수시로 등장한다.) 적어도 국내에서 업다이크 저작들이 90년대에 하루키의 인용에 의해서 슬쩍슬쩍 고개를 내민건 사실이다. '상실'과 '방황'을 무슨 장신구마냥 달고 고뇌했던  91학번 세대는 절판의 저세상으로 가버린 문학작품이라 할지라도 묘지라도 파헤쳐서 '업다이크 책들을 꺼낼 마음가짐들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하루키에 동조했었으니까. 감동먹은 감수성의 힘이란 그런 것 아닌가. 유행을 달리는 저자들의 유래와 정체성에 대한 탐구. 모든 출처에 대해 조사해보고 싶은 충동, 그러다보면 특유의 감수성이 어디로 부터 유래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만날 것만 같은 기대감. 그리고 업다이크의 대표작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저기...<달려라 토끼> 있나요? " 라면서...


앞서 언급한대로 미국 영미문학의 상징적으로 인용되는 <호밀밭의 파수꾼>, <위대한 캐츠비>에 비하면 <달려라 토끼>는 도대체 언급은 되는데 어디서도 구하기 힘든 책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절판의 회오리가 '토끼'를 오즈의 나라로 데려가버리고 난 후..잠시동안 업다이크는 '인용의 기호'로만 이미지화 되어 숨쉬고 있다가  2011년 문학동네에서 정영목씨의 번역으로 재등장했다. 말로만 듣던 <달려라 토끼>라니..이것이야말로 오래 가뭄 끝, 단비와도 같은 것이지 않나. '이야 이제 달려라 토끼를 읽을 수 있겠어. 그것도 제대로 된 번역으로..'라고 쾌재를 부르던 문학매니아들을 비롯해서 작가 지망생들의 기쁜 얼굴들하며...그렇게 보자면 이 <달려라 토끼>에 걸린 타이틀이 자못 궁금해진다. 도대체 어떤 소설이길래...업다이크의 대표작이 된 것일까라든지, 무슨 내용이었기에 4부작까지 이어지면서 업다이크의 명성을 드높여 주었는지 등의 궁금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달려라 토끼>의 내용은 비 온 다음날 말끔하게 개인 하늘에 살짝 그려놓은 수채화같은 투명함과 산뜻함과는 거리가 멀다. 굳이 비유하자면 덕지덕지 발라진 유화풍의 그림인데다가 알수없는 붓자국, 흘러내리고 번진 그리고 닳다못해 찢어져버린 캔버스쪽에 가깝다. 내용은 거칠고, 폭압적이며 뼈대는 일탈과 방황, 그리고 기어코 독자들의 마음을 화석처럼 차갑게 만들고 난 다음 , 심해의 깊은 곳으로 던져져 무겁게 내려앉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주인공 해리 앵스트롬은 세일즈를 하면서 사는 중산층 20대다.  알콜과 TV중독에 빠진 임신한 부인, 나아지지 않는 생활, 그리고 과거의 촉망받았던 농구선수로서의 자존심등이 한꺼번에 회의감으로 몰려와 무단가출, 그리고 방황하다가 아무 남자하고 자는 '루스'를 만나 외도하고, 부인 제니스는 어떻게 살든 나몰라라로 일관하다가 동네 목사와 주위의 권유에 따라 (출산일이 다가온 부인때문에 어쩔수 없이..) 다시 부인에게 돌아왔다가..다시 반복되는 따분한 일상과 거절된 섹스로 인해 다시 또 가출...(이 부근에 다다르면 래빗에 대한 독자들의 불만이 최고조로 폭등한다.) 여기에 제니스는 딸 레베카를 실수로 익사시키고, 현실의 암울함을 견디다 못해 다시 가출해서 옛연인 루스에게 찾아가지만 거기서도 거절당한다는 뭐 아주 읽다보면 한심하고 미칠것 같은 증오가 일어나는 그런 내용으로 이뤄져있다.

 


페미니스트들이 업다이크를 여성혐오론자아니냐고 힐난했다고 하는데 충분히 이해간다. 등장하는 여인에 대한 몰인정하고도 무책임한 주인공 래빗(해리 앵스트롬의 별명)의 사고나 행동은 충분히 지탄받을만하다못해 '차라리 결혼이나 하지 않았으면'이라는 짜증까지 불러일으키고,  누가 어떻게 되든 현재 자신이 그렇게 느끼는데로 충동적이고 이기적이고 상대방은 생각지못하는 단세포같은 인물이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의 코치로 등장하는 토세로도 비슷하긴 매일반.) 그런데도 미국의 문학계는 이 책의 모든 상황이 다분히 '실존'적이고 중산층의 삶을 대변해주고 있다고하는 평을 걸어주었다. 이 이야기는 요약해서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일상적인 이야기'라는 것이다. 쳇바퀴돌듯 이어지는 무기력하고 나아지지 않는 생활, 옴짝달싹못하는 현실적인 압박, 꿈과 유망함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려서 도대체 내일은 뭘 하면서 살아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 그런 시절이 한동안 지속될 때, <달려라, 토끼>가 그것들을 설명해주고 대변해주고 뭐 그런단 의미아닐까.. 이런 암울한 삶속에서 미국 중산층의 평범한 서민 래빗에게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내면에서는 어떤 갈등과 절망과 암울함들이 스며드는지 아슬아슬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이런 일탈과 방황이 현실세계에서 일어난 버린 래빗으로서는 어떡하다가 이렇게 된 것인지 스스로도 납득하기 힘들어한다.


' 래빗은 진실을 느낀다. 그의 삶을 떠난 것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것. 아무리 찾아 헤매도 되찾아올수 없다는 것. 아무리 날아가도 거기에는 이를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여기에 있었다. 도시밑에 이 냄새와 이 목소리들안에, 영원히 그의 뒤에. 우리가 자연에 몸값을 내면 , 자연을 위해 아이들을 만들어내면 충만함은 끝이 난다. 그러면 자연은 우리와 관계를 끝낸다. ' (322p)


개인적으로 느낀 것이지만 <달려라 토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완벽한 '행복한 인물'들이 없다. 최악이 해리 앵스트롬이라면, 남편에게 의지하고 삶의 무기력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부인 제니스, 딸의 불행을 보면서 애초부터 결혼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스프링어 부인, 아들의 일탈이 '제니스'의 탓이자 스프링어 가문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앵스트롬 부인. 기독교 교인의 문제는 다 자기문제라고 생각하는 동네 목사 에클스. 교인들을 지나치게 돌보느라 가족들을 돌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에클스 부인. 아무렇게나 몸을 굴리다가 드디어 제대로된 온전한 남자를 만났다고 착각한 루스, 래빗을 오랜시간 코치하며 인생을 인도했으나 자기자신과 함께 타락시켜버린 토세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대개 이런 판단을 내릴 것 같다. '이런게 진짜 인생이다' 라고..완벽하게 100% 행복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불행도 같이 가는 것이다라고..그래서 읽는내내 굉장히 힘들다. 부딪히고 넘어지고 이 책장을 넘기면 이보다 더 암울하게 전개될 수 없겠다싶다가도 더 최악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말미에서는 범람하는 암울함을 견디기 어렵게 된다. (베키에 대한 래빗은 절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래빗은 이 모든 절망에 대한 회피를 달리는 것으로 갈음하려고 한다. 아마 '달려라' 라고 하는 부분은 래빗의 암울함을 보는 많은 이들이 내심 관조적으로 내뱉는 탄식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나마 달려야 하지 않겠나 래빗..뭐 이런...그리고 기어코 래빗은 이런 상황을 '상대편이 그가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비두명을 붙이는 바람에 어느쪽으로 돌든 둘중 한명과 부딪히게 되어 할 수있는 일이라고는 패스하는 밖에 없던 때와 비슷하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패스밖에 할게 없다라...인생에서 주도적으로 뭔가를 결정할 수 없다는 그런 의미리라 생각되지만 많은 독자로서는 인정하기 힘들 것이다. 거의 용서보다는 증오를 래빗에게 돌릴테니, 자초한 일이었다고 그때 래빗이 도망치지 말았어야 했다고 혀를 끌끌 차지나 않을까. 그래서 토세로의 마지막 말이 의미심장하다.


" 옳으냐 그르냐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게 아니야. 우리. 우리가 만드는거야. 불행을 막기위해. 변함없이. 해리 변함없이............. 불행은 그것을 따르지 않는데서 나와. 우리 자신의 불행은 아니지. 처음에는 우리 자신의 불행이 아닌경우가 많아. 그런데 너도 너 자신의 인생에서 그러한 예를 하나 본 거야 " (397p)


래빗의 이야기가 1부로 끝나지 않고 4부까지 이어져서 그나마 다행이다. 제니스도 그렇게 살지 않았어야 했고, 루스도 불쌍하긴 매일반이며 토세로도 안타깝긴 마찬가지다. 에클스도 적당히 가족을 돌봐야하고 무엇보다 래빗도 최소한 잘살아보면서 고민따위를 하는 지지리도 궁상인 중산층 비스무리한 삶에서 벗어도 나야 한다. 때로는 이런 삶이 우리 곁에 있는 듯하지만 다들 마음속으로 생각하길...'난 이정도는 아니야'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난 이정도로 무책임하지는 않아라고 자위하면서 하지만 삶이 어떻게 그렇게 뜻대로 되겠는가. 그 때 래빗이 갑자기 차를 몰고 430번을 타고 포토맥을 넘어가는 그런 순간이 오지말란 법이 어디있는가. 마음속으로는 래빗보다 더 많은 가출과 더 많은 탈출을 꿈꾸며 사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다. 마치 상상속으로만 펼쳐보았던 대탈출의 현실화가 비극적이고 또 처참하게 전개되었지만 마음속으로 '불쌍한 래빗'이라고 읇조릴만할때는 다들 결국 비슷한 것이다. 래빗이나 나나...그리고 이웃들이나...


cf) 그리고 업다이크의 신경증에 걸릴것 같은 현재형 묘사실력때문에 머리가 멍멍하다. 이런 묘사는 어디서도 본 적없는데 때로는 굉장히 천천히 그리고 음미하듯 읽었어야 하는게 아닐까라는 자기반성적인 느낌이 들곤한다. 그런데 이런 암울함을 곱씹으면서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진 않는다. 공부하듯 답습하듯 문장과 문체를 연구한다고해도 <달려라 토끼>를 여러번 읽는건 지치는일이다.

 


달려라 토끼

저자
존 업다이크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1-08-2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물질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20세기 미국문학의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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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ewell
Review BOOK/소설2013. 2. 19. 22:00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1859)/찰스디킨스 Charles Dickens
펭귄 클래식 코리아.

 

 

<다크나이트>시리즈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동생 조나단 놀란'엔터테인먼트 위클리'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힌바 있다. "프리츠 랑의 <메트로 폴리스>(1927), 그리고 찰스 디킨즈의 <두도시 이야기>(1859)로 부터 <다크나이트 라이즈>가 영감을 받았다"말이다. 그래서 궁금했던 것 같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말미에서 느꼈던 거대한 대서사의 위력앞에서 감동먹고 도대체 이런 건 어디서 영감을 받는거지라고 혼자 되뇌이면서..그런데 막상 놀란의 입에서 '두도시 이야기'가 나오다니 이거 한번쯤 읽어볼만한 소설이겠거니하는 막연한 기대 같은게 무럭무럭 솟아나는게 아닌가. 


디킨즈의 <두도시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한번 정도는 들어본 적이 있는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근자에 이르러서 대서사 로맨스로 엮여진 뮤지컬의 상징적인 작품으로도 장기간 흥행에 일조했고 (보이스 오브 키즈의 '윤시영'도 두도시 이야기 출신이다.) 구조상 뮤지컬같은 무대에서 펼쳐질 정도의 드라마틱한 전개를 상상해본다면 소설 원작을 읽어보지 않을 수 없게된다. 막상 이 소설은 의외로 잘 읽히는 편이다. 애초부터 디킨즈가 장편소설 단행본으로 후다닥 써서 선보인게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겠고 (연재형태로 소설이 쓰여졌음) 마치 씬 전개처럼 1막, 2막 끝나듯 절단되어있는 챕터구조도 이런 읽기에 꽤나 도움을 준다. 부담이 없고 기억과 연결을 용이하게 해주며 무엇보다 고전특유의 맺고 끝내는 모양새가 잘 정리된 순서도를 보는 것처럼 치밀하다. 모호한 구석은 없고 모든 묘사들과 전개는 이야기에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어서 요즘 소설같이 시간의 뒤틀림과 반전의 카타르시스를 위해서 수없이 편집되다가 유야무야 아무런 해결도 못하고 사라져버리는 정체모를 미장센들에 비하면 정말 완성도 뛰어나다고 말할수 밖에 없다.


이야기는 알렉상드르 마네트 박사가 오랫동안 감금되어있다가 '자르비스 로리', 그리고 딸 루시에 의해서 석방되는 지점부터 시작된다. 왜 마네트 박사가 감옥에 갇혀있었는지, 그리고 암울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 '구두를 수선'하는 자기분열에 시달려야 했는지는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서서히 드러난다. 이야기 구조는 간편하게 보자면 과거의 은밀한 어떤 사건으로 인해서 현재 진행되는 모든 사건들이 영향을 받게되는 형태다. 물론 근저에는 '음모, 배신, 그리고 복수'라는 격앙된 스토리 구조를 따라가면서 정통적인 복수시나리오, 그리고 역사적 배경에 휘둘리는 주인공의 애처로운 탄식. 이런 것들로 부터 자유롭진 못하다. 게다가 이 소설의 제목처럼 런던과 파리를 오가면서 격동기를 보내는 이 배경에는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프랑스 혁명'이라는 거대 함의가 녹아들어가 있기때문에 신분과 평등에 대한 가치관을 소설속에 투영하게 되면 굉장히 부담스러워질수도 있다.


대충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프랑스의 혁명의 실질적인 피고 '왕정과 귀족들' 그리고 형을 내리는 검찰에 해당하는 '평민'들의 입장에서 어쩔수 없는 귀족신분의 주인공과 평민 신분의 또 다른 주인공을 대비시킨다면 '두도시 이야기'의 구조적 의미와 명확하게 일치될 수도 있겠다고...대충은 그렇게 짐작하기 쉽다. 두도시와 역사적 배경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서사적이면서도 격동기에 휘말린 운명적이고도 딱한 로맨스를 말하기에도 십상이니까. 그런데 두도시 이야기가 이렇게 단선적이지도 그리고 명료하지도 못했던 이유는 복합적으로 엮여있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귀족으로부터 폭압적인 탄압을 받았던 에브레몽드가의 하인들, 그리고 처참하게 죽어간 가족을 바라보는 생존자. 훗날 입막음을 위해서 희생된 마네트 박사, 그리고 박사의 딸이 사랑하게 된 사람은 에브레몽드의 후계자. 자...이 정도면 막장 국내 아침드라마를 방불케하는 구조로 전개된다. 고전도 막장드라마의 패턴을 가지고 있는거다. 여기에 배다른 형재나 자매, 그리고 기억상실이 끼어들면 최강이지만 디킨즈도 거기까지는 오버라고 생각했는지 가지 않았다.

 

다만 이 정도의 이야기에서도 충분히 몰입적이고도 의미있는 이야기들을 전개시켜나간다. 특히나 프랑스 혁명의 시점을 논할때는 그 의미가 가지는 '순기능적이고도 사회기여적인 발전적 태도'의 관점에서 긍정적 이야기를 꾸려나가지 않았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야기는 드라마적이지만 배경도 그 한요소로 충분히 힘을 발휘하니까 그 묘한 배경의 힘을 빌어서 이야기에 파워를 실어다 주는 점은 굉장히 거장답다고나 할까. 먼저 혁명의 그 시기를 '공포적'으로 묘사했다. 그러니까 광기가 스며드는 파리의 전조를 굉장히 디테일하면서 긴장감 있게 부각시키다가 갑자기 폭팔하듯이 몰아쳐버렸다. 그 와중에 대중들이 들고 일어나는 '정의'에 대한 '정의'를 폭압적이고도 불평등했던 귀족들 못지않게 비이성적으로 달려간다고 본 것 같다. 그 대표적 인물은 역시 드파르주. 드파르주 부인라고 해야 맞겠지만 이 부부의 '귀족에 대한 복수극'은 이성의 범주를 넘어섰다. 특히나 드파르쥬 부인의 회고에는 증오와 파멸이라고 하는 광폭한 결말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드파르주 부인은 과거 마네트 박사의 학대를 빌미로 귀족에 대한 최종 복수극을 이어가려고 한다. 마네트 박사는 이미 자신은 귀족을 용서했음에도 불구하고 (딸 루시가 사랑했던 찰스 다네이에 대한 구명운동을 보면 아마도 독자 대부분이 이런 전개를 예상했으리라) 그런데도 정작 드파르주 부인은 복수극을 멈출 기미를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마네트 박사가 감옥에서 절망을 느끼며 기록했던 '귀족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과거 편린을 기초로 찰스 다네이를 기요틴 앞으로 보내게 된다. 아마 후반부에서 펼쳐지는 이 폭력적인 광기의 흐름들에서 독자들은 가슴떨리는 긴장감 ,그리고 드파르주 부인에 대한 반감과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세상은 사랑과 용서를 말할때 존중을 드러내니까 드파르주가 부인에게 이제 그만 해도 되지 않냐고 했을때 드파르주 부인이 했던 ' 바람과 불한테 물어보라'는 냉정한 어조는 그래서 악마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 복수와 증징에는 시간이 필요해요. 번개가 만들어지는데 걸리는 시간이 있죠 " 라고 말했던 드파르주의 증오는 점차 그 이유를 알아가게 되었을 때, 광기로만 치부할 수 없음을 체감하게 된다. 

 

사실 이 소설에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하는 치밀한 복수전개 내지는 증오의 표출과는 또 다른 테마가 있다. 이름하여 사랑과 희생. 이 소설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또 하나의 인물 (마치 주인공이 루시와 찰스 다네이라고 착각했던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듯한) 바로 '시드니 카턴'이 그다. 카턴은 파리에 비해 훨씬 '진보적'이었던 런던에서 그저 그런 스트라이버 밑에서 일했던 변호사. 그는 다네이의 석방을 위해서 발로 뛰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순정을 루시 마네트에게 바쳤다. 그런 그가 마지막에 '구세주'처럼 등장해서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고전의 신파극이라고 아무리 치부할지라도 엄청난 감동을 안겨준다. 좀더 현대적인 색채라고 한다면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을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면서 끝까지 모든 것을 주려고하는 사랑의 상징적인 인물로 화했을 것이다. 그래서 카턴의 희생을 보면서 다들 안타까워하고 루시와 다네이에 대한 안도감을 민망해하는 것이 아닐까.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이런 두도시의 후덜덜한 서사를 옮겨왔다고 했다. 아마 '샤를 에브레몽드/찰스 다네이'는 브루스 웨인이자 배트맨으로, 시드니 카턴은 블레이크, (여기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다네이의 귀족신분이자 인격과 무관한 어떤 사회적 지탄에 대한 희생으로 볼때 브루스웨인이라고 생각하며, 어둠의 기사역할을 이어받으면서 다시 자신이 대신 그 짐을 짊어지려는 블레이크가 카턴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 그리고 미스 프로스는 캣우먼, 드파르주는 베인, 드파르주 부인은 탈리아 알굴 정도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그 정도라면 히어로물에 심어둔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을 주기 충분하다. 현대판 두도시 이야기가 다크나이트 라이즈라면 원작 두도시 이야기가 가진 엄청난 위력을 실감할 수 있지 않을까. 세월을 뛰어넘는 듯한 이 세세하고 절절한 묘사, 그리고 눈물 날 것만 같은 마지막 장면들, 그리고 하나하나 심정적으로 동감하지 않을 수 없는 주변인물의 사정들...왜 두도시 이야기가 명작이자 고전중에서도 고전이라고 일컫는지는 한번이라도 이 책을 읽어봐야만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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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ewell
Review BOOK/소설2013. 2. 18. 19:00

치츠랑 소금이랑 콩이랑 

가쿠타 미츠요/이노우에 아레노/모리 에토/에쿠니 가오리.




일부러 그랬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소개하는 많은 곳에서 '에쿠니 가오리'가 저자 앞머리로 등장한다. 하기사 에쿠니 가오리 정도되어야 독자들의 뇌리에 기억된 '유명인' 판타즘이라도 불러올 수 있으니까…어떡해든 어필하려면 에쿠니 가오리라도 전면에 나서줘야 되겠지싶다. (에쿠니 가오리는 '도쿄타워' 그리고 '냉정과 열정사이'로 유명하다. ) 그런데도 난 에쿠니 가오리는 별로다. 특히 이 책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에서 선보인 4개의 단편 소설중에서는 더더욱 '알렌테주'는 평범했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이 그렇듯이 넘치듯 범람하는 감정의 과잉들이 가끔 싫을 때가 있다. 적당했으면 좋겠는데 싶다가도 무미건조해버려서 '앗 이거 수위조절하다가 이도저도 아닌게 되버렸어' 라고 혼자 되뇌일때는 저자에게 좀 미안한 심정이다. (그렇다고 에쿠니가 나 따위의 독자에게 뭐라하거나 사과할리도 만무하지만..) 어찌됐든 마지막 소설이었던 '알렌테주'로 부터 굉장히 따스한 마무리를 읽어버렸다는 감상평에 대해서는 존중한다. 사람마다 느끼는 건 다 다른 법이니까. 


잡설이 길었지만 에쿠니 가오리가 어떻든 그건 개인적인 소견일뿐 아마도 독자들은 4명의 작가들로부터 입맛에 맞는 어떤 취향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왜냐면 이 소설은 아래와 같은 4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있으니까....


신의 정원 (Basque /Spain) : 가쿠타 미츠요.

이유 (Piemonte / Italy): 이노우에 아레노

블레누아 (Bretagne/France): 모리 에토

알렌테주 (Alentejo/Portugal): 에쿠니 가오리.


이 책은 요즘 유행하는 '관계'의 힐링을 전제로 각 에피소드에서 '음식'을 중요한 매개체로 등장시켰다. 음식이야기를 슬며시 하는 것 같지만 점점 깊이있는 이야기를 하다보면 사실은 음식이 이어져있는 결정적인 주인장들에 대한 감정들이 소용돌이 치면서 부대낀다. 갈등이란 자고로 이런 부대낌이 없으면 존재하지도 않을테니까 당연한 것이겠지만 분풀이도 음식으로..그리고 힐링도 음식으로 한다는 지점에 있어서는 묘한 테마설정을 소설의 메인으로 삼았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지방색이 완연한 4편의 소설에서는 마치 그 지역에서 인터뷰를 한 것 같은 생생한 냄새도 풍기면서 묘한 사람냄새까지 섞어놓았다. 


 신의 정원에서는 '만찬의 날'에서 통보된 어머니의 예고된 시한부 인생, 그리고 도망치듯 가족들부터 벗어나고픈 주인공의 회한이 등장하지만 기어코 결말에서는 '힐링'이 된다. 식탁 어딘가에 앉아있을 어머니로부터….'그러는 너는 제대로 밥은 챙겨먹고 있는 거니? " 라는 말을 듣는다. 


'잘 챙겨 먹고 있으니 걱정마세요' (60p) 


눈물 나올 것만 같았던 <신의 정원>편의 마무리를 읽으면서 치열한 삶같은 건 결국 부모세대들이 우려하고 걱정했던 자식들에 대한 사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간다. 혼수상태에 빠진 남편 카를로를 향한 애증의 심정을 보여주고 있는 <이유>편도 그렇고, 브르타뉴 토속의 믿음같은게 운명적으로 연결되는 <블레누아>편도 그렇다.  (특히나 블레누아는 신의 정원과 매우 유사한 뉘앙스를 결말로 택했다. 궁금하신 분은 직접 읽어보시는게 좋겠다. ) 알렌테주에서 루이스와 마누엘이 느낀 일상같은건 오히려 차분하고 잔잔하지만 그것도 역시 '관계'에 대한 복잡한 시선을 단촐하게 추려내고 깔끔하게 정리정돈 했다. 자유분방한 감정들이 난립하면 '미친년 꽃다발'같은 수많은 감정 부스레기들이 이곳저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애쓰는 법인데 요행히 그런 잔가지들이 애초에 다 정리된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 소설에는 그런 지저분함이 없어서 좋았다. 짧지만 명료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솔직한 느낌들. 여행을 해야만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생생한 시골풍경. 지면에서 눅눅히 전달될 것만 같은 음식냄새들. 신경질적으로 펼쳐진 대화체속에서도 가늠할만한 '사랑'과 관심에 대한 표현들. 훗날 이어지는 넉넉하고 잔잔한 미소들. 둘러앉은 식탁에서 풍겨나는 회한, 추억, 그리고 사랑. 모두  음식으로 연결되어 버렸다. '같은 음식을 같이 먹는다는 것은 별개의 인격임을 바꾸지 못하는 두 사람이 매일같이 같은 음식을 몸속으로 집어넣고 있다는' 책속의 표현대로 서로를 바라보면서 하는 식사의 의미가 증폭되는 느낌이다. 아마 차분하게 자근자근 읽어준다면 갑자기 어린 유년시절의 먹었던 음식들의 맛이 궁금해질지도 모르겠다. 원래 음식이란 기억이라는 방부제만큼 유효기간이 있는 법이다. 추억이 있는한 절대 상하지 않는 음식들…그런 거다.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은……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

저자
에쿠니 가오리 지음
출판사
시드페이퍼 | 2011-09-23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일본 최고의 인기 여성작가 4인이 유럽의 시골에서 먹고, 쓴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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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BOOK/에세이2013. 2. 13. 14:30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무라카미 하루키(Murakami, Haruki / 村上春樹)/ 문학동네.

 

 

 

" 커피는 어둠처럼 검고, 재즈 선율처럼 따뜻했다. 내가 그 조그만 세계를 음미할 때, 풍경은 나를 축복했다 "

 

 

 

또. 하루키의 에세이다. 그야말로 하루키 에세이가 아니면 읽지도 않는다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겠지만, 사실 하루키 에세이이외에 그럴듯한 에세이를 만나보지 못한 것도 이유라면 이유다. 게다가 한여름 갑작스레 길거리 한복판에서 만난 소나기마냥 느닷없고 충동적으로 에세이 연작시리즈를 모조리 사가지고 집으로 오지 않았던가. 지나고보면 이게 다 느닷없는 충동질에 대한 책임감과도 엮여있다고 볼 수 있다. 책장이 다 떨어지도록 읽어라라는 외침이 가슴한구석에서 계속 메아리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무라카미 에세이 시리즈는 사실 희귀하다고 말하긴 힘들다.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갈래로 서점에 앞다투어 등장했었지만 희한하게도 '문학동네'측에서 정식계약에 의해 제대로 된 삽화와 이력(?)을 타이틀로 세트로 구성해서 내놓았다는 점이 특이할 뿐이다. 이를테면 두둥!!, 리뉴얼판 신작시리즈 하루키 에세이 세트 등장이라고 해야할 판이다.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2. 발랜타이데이의 무말랭이.
3.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
4.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5. 해뜨는 나라의 공장.


이 묵직한 5권세트(거북이 등짝이 새로생긴 것마냥 무겁게..)를 짋어지고 결국 난 공사판의 혈기왕성한 청년처럼 의기양양하게 옮겨놓았드랬다. 아무튼 후회는 별로 하지 않는다. 잘 샀고, 또 잘 읽고 있으니까. 우선 1편격에 해당하는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는 5권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에세이집이다.  이미 읽었던 내용도 간간히 있기는 해서 낯설지도 않고 안지 미즈마루의 삽화같은건 일종의 쉼터역할을 해서 에세이로서의 여백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되기는 한다. 하지만 지면에는 활자가 그득하게 좋아서 여분의 페이지에 그림들로 상당수 채워진건 살짝 불만이다. 그럴려면 그냥 얇게 만들어줘도 좋겠는데,...뭐 나쁘지는 않다.


하루키 표현대로 젊은시절 '존 업다이크'의 책을 구름낀 희뿌연 봄날의 조용한 저녁나절에 '일주일전에 산 바게트빵'같은 철제침대에 누워 읽어야만 했다면 역시 하루키 에세이도 비슷하게 읽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존업다이크를 읽기위한, 존 치버를 읽기위한 장소같은게 분명히 존재할 것만 같다고 하지 않았나.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을만한 적당한 장소가 분명 이 세계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에세이는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다.  여전히 정서적 올컬러로 형형색색 퀼트모직처럼 엮여있다.  '임스의 라운지체어', 'AR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텔레만' '로스맥도널드의 죽음, 스니커즈 이야기, 스윙재즈들. 테리힐 밴드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캡캘러웨이, 초콜릿 댄디스, 퀴퀴한 냄새가 나는 따뜻하고 흥분된 가게의 공기들',그리고 질레트의 '트로피컬 코코넛' 쉐이빙 크림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 NICE BOX 1384에 담긴 위험한 발언(?)까지 포함하면 무라카미는 역시 무라카미답다.

 

 

한때, 하루키의 글을 읽으면서 그가 표현했다시피 '그것들은 '그것들'일 뿐이다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같은 패턴과 같은 이미지, 그리고 버무리는 특유의 스타일리쉬한 타이포라이팅. 마치 롤빵에 발라진 버터와 찌그러진 캔맥주, 챙이있는 야구모자와 빨간 뿔테안경을 쓰고, 올이 성긴 다갈색 원피스에 하얀 테니스화를 신은 소녀가 코끼리 공장에 나타나서 수없이 많은 계단을 통해 달이 두개인 '그 세계'로 갈것만 같은 느낌이 에세이에서도 간당간당 느껴질 정도면 말 다한거 아닌가. 반복적이란 건 그래서 위험하다. 지루해지기 십상이니까.  하지만 범상치 않아서 좋았고 판타지적이어서 질리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에세이에서도 그런 자취는 여전하다. 다만 그가 에세이에서 언급했다시피 '두다리로 직접 마을과 하나하나돌다보면, 하나하나의 장소에 사람들의 정념이 미세한 비늘처럼 들러부터있는 것을 알수 있다는 것처럼, 그의 에세이에도 그의 비늘이 지면에 돋아나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슬그머니 지면에서 한장한장 넘길때 정서적으로 느껴지는 그 감촉들이 아마도 하루키 에세이이 진면목이리라.


오랜세월동안 하루키의 에세이가 내 인생의 여백에 차츰차츰 엔트로피의 증대처럼 쌓였다고 생각한다. (207p에 이 표현이 등장한다.^^) 마치 하루키가 살고있는 판타지의 소굴속을 살금살금 기어들어가 몰래 엿보는 이런 쾌감은 쉽게 얻을수 있는게 아니다. 이원화된 세계와 상실된 자아를 찾기위한 주인공의 몸부림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다라고 생각하고 에세이를 뒤적거렸던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결국 그속에서 의외의 편안함과 그리고 일상사에서 만나보기 힘든 하루키의 또 다른 일면을 본 것 같다. 그 정도면 소설못지 않은 감흥과 즐거움이 있는거라고..뭘 또 바라냐고 피식피식 웃곤 한다. 두번째 에세이도...3번째 에세이도 그렇겠지. 그리고 잔잔하고 쿨하고 덤덤하면서도 소리없이 피는 진달래처럼 봄날에 읽기에는 딱 좋은 에세이일거라 믿는다.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2-07-24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센티멘털리즘 가득한 문장과 컬러풀한 일러스트가 연주하는 하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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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BOOK/소설2013. 2. 12. 18:30

클라우드 아틀라스(Cloud Atlas) - 데이비드 미첼


 

워쇼스키 남매의 걸출 과거작들의 여파만 아니었어도 '클라우드 아틀라스'에 대한 기대는 미미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세계'를 정의하는 그 독특한 감각과 구성은 당시로서는 굉장한 '일탈'이자 '파격'이었으니까, 관객의 입장에서 또 한번의 혁신을 보여줄거라는 믿음, 그리고 자신들의 지적인 갈망을 좀 더 채워줄 수 있다는 문화적 파이오니아로서 워쇼스키를 정의해두는건 당연했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이런 워쇼스키가 '매트릭스'이후로 들고나온 영화가 '클라우드 아틀라스'라니 ….기대가 드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더군다나 데이비드 미첼의 전작 스타일을 볼 때, 묘한 환상과 SF안에 스며든 철학적 편린들은 그야말로 워쇼스키의 눈을 반짝이게 했을 거라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클아우드 아틀라스의 케미스트리에는 어떤 연금술이 사용되었을까. 모두들 관심을 가질 무렵, 정작 이 작품의 원작 소설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총 6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있다. 영화는 굉장한 교차편집으로 이 6개 에피소드의 고리를 현란하게 오가지만 다행히도 소설은 하나의 챕터씩 전개해서 차근차근 1권에서는 '손미 451 오리즌'까지 갔다가 2권에서는 '슬로샤 나루터와 모든 일이 지나간 후' 로 정점을 찍고 다시 거꾸로 1권에 전개된 에피소드를 역순으로 따라간다.

 

아마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을 때, 모종의 의미심장한 다짐같은 걸 가져야 겠다라고 생각하는 지점은 2권 '슬로샤 나루터'를 넘어가면서부터 일 것이다. 여지껏 읽었던 에피소드들의 재반복이 이어지는 순간 '내가 놓친 것은 없는지 , 혹시 암시적으로라도 복선같은 것들이 앞서서 모두 나열되었음에도 이해하지 못해서 화려한 후반부 지적여행을 놓치지나 않을까하는 우려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주욱 읽다가 보면 사실 그렇게 치밀한 설정과 장치들에 대한 필요성은 잊게 된다. 모름지기 소설에서는 설정과 장치보다 오히려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에 의해서 좌우되기 마련이니까..


 

1권. 

[1] 애덤어윙의 항해일지 - 평등.

[2] 제델햄에서 온 편지. - 배려

[3] 반감기-첫번째 루이자 레이의 미스테리. - 희생

[4] 티머시 캐번디시의 치떨리는 시련. - 자유

[5] 손미 ~451의 오리즌 - 존엄성.


2권.

[6] 슬로샤 나루터와 모든 일이 지나간 후. 

[7] 손미 ~461의 오리즌

[8] 티머시 캐번디시의 치떨리는 시련.

[9] 반감기-첫번째 루이자 레이의 미스테리.

[10] 제델햄에서 온 편지.

[11] 애덤 어윙의 항해일지.



이야기의 전개상으로 보면 애덤어윙의 항해일지에서 모험담을 기대하였을 테지만, 어윙의 소소한 일상 외 그다지 드러나는게 별로 없다. 대신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대화속에 원주민격인 '모리오리'족에 대한 '개화'라든지 '평등'에 대한 이해관계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마오리 족으로부터 구타당한 오투아에 대한 모종의 노력등을 보면 어윙은 '평등주의자'이자 '휴머니즘'을 가진 당시로서는 앞선 지식인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윙의 면모가 히어로적이진 않다. 그는 프로피티스호에 타고 항해를 하게 될 뿐 거창한 자신만의 신념을 낭낭히 선원들에게 전파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를 통해서 모리오족의 멸망과 탄압, 그리고 순수했던 종족이 어떻게 비참해지는 지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된다. 어윙이 독자이자 독자가 어윙이 되는 셈이다. 그를 통해서 '개화된다는 것이 어떻게 해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폭력'이란 개념이 어떻게 해서 모리오리족의 머리속에 각인되는지 간접적으로 전달되면서 어윙은 그속에서 '최소한의 인격적인 조력자'의 역할을 짊어진 것처럼 이어진다. 거대한 통념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행동하고 노력하는지에 대한 미세한 실마리를 전달해준다고나 할까... (사실 이 부분은 뒷부분에서 좀 더 명확해지지만..) 

 

 

'제델햄에서 온 편지'는 이에 비하면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을 가졌지만 방탕한 생활과 거만한 태도가 몸에 배인 몰락한 귀족의 자기 독백적 구성으로 이루어져있다. 로버트 프로비셔는 친구인 '식스 스미스'와 편지를 주고 받는 식으로 자기이야기를 하는데 아마 이 이야기의 근간은 '성적 소수자' 즉 동성애에 대한 세련된 자기변호같은 대목도 상당히 등장한다. 워쇼스키는 아마 '이 부근에서 굉장한 만족감을 가지고 어떻게든 액자식으로 구성해서 도드라지게 연출하고픈 욕구에 사로 잡히지 않았을까.  사실 제댈햄 이야기가 애덤어윙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라고 골몰히 생각하면 머리만 아플따름이다. 유일한 연결고리는 책을 쌓아둔 반침을 뒤지다가 표지도 떨어져버린 책자를 프로비셔는 발견하고 그것이 1849년 부근에 쓰여진 애덤어윙의 항해일지라는 것을 알아내는 부근이다. 프로비셔는 이에 대해서 묘한 집착을 보이지만 이를 두고 어윙으로부터 어떤 영감을 얻었다던지 그리고 데자뷰가 일어났다던지하는 흥분감 같은 건 전혀없다. 그런데 아마 전체 작품을 두고 묘한 연결고리로 등장하는 상징이 없지는 않은데 바로 어깨위 '혜성모양의 모반' 자국이 각 에피소드를 두고 등장인물에 공통적으로 설정되어있다는 점이 그렇다.  


3번째 에피소드는 1974년, 루이자 레이의 거대 조직에 맞서 진실파헤치기 모험담이다. (모험담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심각하고 잔인하고 다이나믹한 구성들이라 당황스러울지도..) 물론 여기서도 이전 에피소드에서 언급한 '제델햄'의 프로비셔가 편지를 주고받았던 '식스 스미스'가 박사가 에피소드 연결고리로 등장하긴 하지만 제델햄에 관련된 큰 암시적인 복선으로 보이지 않는다. (루이자 레이가 클라우드 아틀라스 6중주 음반을 손에 쥐는 내용이 더 의미심장할 수도 있겠는데 이건 전체 에피소드를 아우르는 지도같은 느낌인지라..) 이 에피소드의 가치는 '진실'과 '희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싶다. 진실을 파헤치는 언론인들의 말로가 죽음내지는 희생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죄책감에 대한 비장미서린 결말까지 이어질때면 꽤나 격한 수위로 테마의 가치를 위로 끌어올리는 느낌이다. 


그리고 4번째 에피소드, 2012년 티머시 캐번디시의 치떨리는 시련은 약간 뜬금없다. 출판사사장이 우여곡절끝에 요양원에 강제수용되면서 세상과 단절되고 탈출하기위해서 안간힘을 쓰지만 쉽지 않다는 내용으로 위트있고 약간 비딱하며 명랑하기까지한 노회한 지식인 캐번디시의 자태가 꽤 유쾌하게 전개된다. 캐번디시도 전 에피소드의 루이자 레이 이야기를 출판할 후보 책으로 등장시키는 점이 약간 재미있고 역시 모반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전생의 루이자 레이를 이어받는 모양새도 역설적이다. (약간 진부하고 따분하다는 평가를 루이자 레이 미스테리에 엮어놓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양원을 탈출하는 스펙타클 만큼은 압도적으로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마치 '쇼생크 탈출'의 카리스마를 엮어놓은 듯한 스릴로 땀을 쥐게 만들어주고 결국 '자유'를 맞이하는 달콤하고도 기쁜마음을 잔잔히 지는 노을 처럼 누리게 해준다. 


" 사람을 좀비 대열에 끼게 만들기도 하고, 구해주기도 하는 것은 세월이 아니라 태도이다. 젊은이들의 영토에도 좀비의 정신을 가진 자들이 우글거린다. 그런 상태로 흘러가면서 수십 년간 내부에서 진행되는 부패를 감출 뿐이다. 바깥에는 눈송이가 슬레이트 지붕과 화강암 벽위로 내려앉고 있다. 뉴욕에서 일하는 솔제니친처럼, 나도 내뼈를 엮은 도시에서 멀리 도피해 와 부지런히 일할 것이다. 솔제니친처럼, 어느 맑은 날 해 질 녘에 돌아갈 것이다. " 245p.


 

 

 

이윽고 2144년 서울로 건너띄면서 '손미 ~451 오리진'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무거운 주제이자  순혈인간에 대비되는 복제인간의 처연함과 부조리함을 주제로 삼고 있다. 많은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주제가 아주 생경한 주제들은 결코 아니다. 오래전 부터 SF장르가 고민해왔던 '인간 존업성의 기준을 복제인간에까지 확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녹아있는 부분이 그렇다.  공각기동대에서 심화된 바있는 전뇌화와 사이보그화에 대한 여러가지 철학적 고민들이 재생산됨으로 인해서 약간 진부해질수는 있겠으나 손미가 과정에서 보여주는 '상승'에 대한 여러가지 깨달음, 문화적 충격들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어떤 토대에서 이뤄져있는 지에 대한 실마리를 준다고 생각한다. '상승'(복제인간 내면에 본질추구에 대한 본능들을 억제해놓았으나 어떤 계기로 인해서 복제인간이 이를 넘어서는 사유과 사고를 통해서 복제인간의 범주를 벗어나는 현상)과 거대조직(유니언)에 대한 기존 질서체계 유지방식들은 현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아마도 저자는 현재나 미래나 이런류의 고민과 갈등은 계속해서 있을 것이라고 묵묵히 이야기하는 것 같다. (손미는 거의 이 에피소드에서 2권 초입부까지 '현자'같은 뉘앙스로 철학적 주제들을 관통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손미도 '혜성 모양의 모반'을 가지고 있다. 복제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 환희의 나라는 네오 에도에서 디지털 촬영하여 소니로 생성한 시뮬라크럼입니다. 

  진짜 하와이 열도에는 그런 곳이 없습니다." - 2권. 178p


이즈음 되면 독자들은 '윤회'에 대한 철학적 설정에 대해 깊이있는 재고를 시작한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거대한 '윤회'의 고리속에서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중의적인 시그니쳐라고 생각하게 되고 어윙과 프로비셔, 루이자 레이, 캐번디시, 손미 모두 어깨에 '혜성모양의 모반'자국이 있음을 읽으면서 알게된다. 그렇다면 한 인물이 겪는 이 모든 상황은 결국 세대를 뛰어넘어 모든 영역에서 끊임없이 이어져간다는 거대한 환생이야기로 완성되는 것이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설명하는 '모든 목소리가 조금 다른 하나의 목소리가 된다' 고 말했던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가. 개인적으로는 제델햄 이야기 이후, 루이자 레이 미스테리, 캐번디시의 치떨리는 시련, 손미 ~451의 오리즌 모두 옴니버스 형태의 굉장히 재미있는 단편소설처럼 읽혀졌다. 각각의 소설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있다고나 할까.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각 에피소드를 변주하는 미첼의 문장구사력이다. 에피소드들의 스타일이 완전히 구분되는 이 특징들은 마치 신출귀몰한 설정들과 무지개처럼 산란하는 미첼의 변신술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어윙은 덤덤하고도 묵묵하게 그리고 한편으로 침착하고 고지식한 지식인풍의 어투로…그리고 제델햄 이야기는 끼를 주체하지 못하는 굉장한 천재들의 광기어리고 어디로 튈지모르는 괴팍함과 경박스러움, 그리고 재기발랄함으로..루이자 레이는 열정 폭주로 이어지는 집요하고도 신념의 일환으로 달리는 정의구현자의 절박함, 티머시 캐번디시는 노회한 지식인의 아이러니한 세상풍자, 그리고 말년에 펼쳐지는 모험담, 손미는 예전 공각기동대와 블레이드 런너의 데칼코마니스러운  SF적 설정, 그리고 인간 존재와 가치에 대한 기준. 그리고 고민거리를 안겨주는 냉철하고도 모호한 판타지스러운 설정과 분위기로 등장한다. 그것도 제각각 다른 패턴과 다른 설정과 전개, 질감도 다르고 뉘앙스도 다르다. 

 

 



감탄이 나올만큼 변화무쌍한 저자의 표현력도 감탄이 나올지경이고 이 수많은 줄기의 이야기고리들을 스파게티처럼 꼬이지 않게 잘 정돈하면서 스스로의 길을 가도록 고고하게 이끄는 저변의 생각들도 일관성이 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가 비록 이 6개의 에피소드를 합주하는 6중주의 음악으로 완벽히 연주되었는지 어떤지는 읽는 독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이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6가지의 꿈을 꾸었다. 그리고 그 6가지의 꿈속에서 나는 어윙으로, 프로비셔로, 그리고 루이자 레이, 캐번디시, 손미가 되어서 그들의 생각과 모험을 누렸던 것 같은 인상이다. 소설을 읽는 동안에 누렸던 이 호사스러움을 표현할 길 막막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결국에 한 영혼이 누렸던 이 공통되고도 실질적인 인간과 인간사이에 벌어지는 사랑를 비롯한 이 세월 여파는 세기를 넘나들면서도 수그러들지 않았던 것 같다. 잠시 동안 '혜성모양의 모반'이 나에게도 어디 있지 않을까라는 착각이 들만큼….

 

 


클라우드 아틀라스. 1

저자
데이비드 미첼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0-11-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젊은 거장 데이비드 미첼의 대표작!서로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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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아틀라스. 2

저자
데이비드 미첼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0-11-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젊은 거장 데이비드 미첼의 대표작!서로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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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BOOK/소설2013. 2. 8. 20:30

 

 

 

 " 쟤 정말 괴짜같지 않냐? 그렇지? "

그러자 밥은 고개를 끄덕거렸어. 그때 패트릭이 절대 잊어버릴 수 없을 것 같은 말을 했지.

" 쟤는 월플라워 wallflower 야"

그러자 밥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고, 방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지.

그래서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지만 패트릭이 안심을 시켜줬어.

(p69)

 

 

월플라워가 제2의<호밀밭의 파수꾼>이라고 불리우나보다. 아마도 타이틀을 '현실부적응자의 섬'으로 내건 후에 주인공의 내면에서 방황하는 걸 공통분모로 설정하고 성장소설이라는 그럴듯한 카테고리로 묶어버리게 되면 내용물이 뭐든 간에 통조림은 다 '통조림'으로 분류하면 대충 맞아 떨어질거라는 추측과 비슷한 류의 비약들로 요약 될 수도 있겠다. 하기사 '호밀밭'의 홀든이 '통념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드러낼때 짙게 드리우는 쓸쓸함같은 건  '월플라워'의 찰리도 일맥상통이었으니까... 꽤나 우울하고 쓸쓸하며 암울하기까지한 순간들이 줄기차게 등장하고 무엇보다 현실에 섞일수 없다는 주인공의 자책성 독백들이 지면을 수놓을 때 즈음,  어째 청소년들이 겪는 질풍노도의 방황기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정서가 바로 이런게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이 소설에서 찰리는 누군가에 편지를 쓰는 듯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독자들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꽤 고민을 들어줄 것 같은 너'를 알고있다면서 자기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허심탄회하게 편지를 줄기차게 보낸다. 답장을 찰리가 받은  흔적이 없지만 이 편지를 받는 또래의 동년배는 찰리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준비를 한 채, 그의 은밀하고도 깊은 속내에 대해 같이 듣고 고민하게 된다. 이런 이야기를 계속해서 듣다보면 '나는 찰리의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부터 시작해서 '나라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라는 적용의 영역까지 옮아가게 되기 마련이다.

 

간접적이고도 상징적인 '찰리'친구가 한명 생기는 꼴이다. 한편, 이 책의 후기를 보면  현재 미국내 도덕주의자들에 의해서 '월플라워'를 금서목록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하는 주장이 일고 있다고 언급되었는데 이유인즉슨, 약물, 섹스, 동성애 그리고 굉장히 일탈적인 여러 상황들에 대한 묘사가 직접적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냥 밝고따뜻한 영혼을 위로하는 성장소설이겠거니 했다가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소재들과 매개체가 거친것을 알고 흠칫 놀라게 되는 것이다. 미국내의 기득권 부모세대들로서는 눈살을 지푸릴만큼의 파격과 일탈을 미화시키려는 것으로 월플라워을 해석할 소지는 충분하다못해 확신까지 나아갔으리라..


우여곡절끝에 사귄 친구는 동성애자고 누나는 덜컥 임신해서 낙태를 해야하니 같이가자고 하고.., 아버지는 어린시절 지독한 폭력에 시달렸고, 무엇보다 찰리는 친구의 자살, 그리고 유년시절, 헬렌이모로부터 유래한 일련의 사건은 그 수위가 후덜덜할 지경이다. 이즈음되면 국내 독자들이 월플라워의 진면목을 이해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경험적 산물'에 대한 비경험적 추측과 상상만으로 '찰리'를 이해한다는 건 영화감상 수준이거나 그보다 훨씬 못한 '피상적 동감'에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찰리와 같은 동년배 청소녀들은 아마 '진정한 고민'들을 헤쳐나가고 결국 '한계는 없을 것이다'라는 프레이징을 결말에서 보게 되므로 문화적, 사회적 괴리감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항변할 수도 있겠고 (결국 또래들은 서로 통하는 것이니까. 정서적으론 완벽한 방황기의 펭귄들 아닌가.)  또 그만하면 소설이 말하려고 하는 진짜 이야기가 무엇인지 어른들은 놓치고 있다는 지적을 '월플라워'추종자들로 부터 받게 될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소설은 쉽게 읽힐만큼 가볍고 솔직하고 간간이 위트가 버무려져있다. 충격적인 사실들에 대해서는 은유와 모호하을 약간씩 곁들여 놓았으며 헬렌이모 사이에서 벌어진 과거사건은 완전히 적나라하게 꺼내놓은 것은 결말까지 유보해놓았기에 사실상 찰리의 방황근거를 심리적 원인으로 돌려버리는 부분은 완벽히 가려졌다. (사실 이게 제일 컸던 것 같은데 말이다.) 소설에서 공감을 얻는건 찰리가 패트릭과 샘을 만나면서 진심을 터놓고 다가가는 부분이다. 책 제목처럼 '월플라워'는 '파티에서 초대받지 못하거나 파트너가 없는 왕따인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학생들로 치면 '찌질이이거나 뭔가 모자란 또라이거나 ' 완벽히 다른 어떤 스타일의 인격'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소설에서 유일하게 처음부터 지속적으로 찰리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인물은 빌 선생님인데 '찰리'의 문학적 감수성, 그리고 글로 표출되는 독특한 시각을 재능으로 인지하고 그에게 좀더 자기계발과 더불어 '친구들 문화'로 끼어들게 조언을 주저하지 않는 '착한 선생님'으로 등장한다. 인격적으로나 능력적으로나 찰리에게 둘도 없는 멘토역할이 될테지만 그 조차도 완벽히 찰리의 속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며 그저 '비밀스럽게 이야기해준 사적인 대화들을 부모들에게 일러버리는 그저그런 선생님'의 일면도 가지고 있는 정도다. 그래서 찰리가 패트릭과 샘으로부터 멀어지지 않으려고 애썼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이해해주려고 노력하는 친구들은 그들이 유일했으니까...월플라워에서 그나마 순기능적이고 밝으며 희망찬 메시지를 읽을수 있다는 건 '따분하고 지루하며 뻔한' 친구들의 결론 같은게 아니다. 패트릭은 브래드와 은밀한 동성애를...샘은 자기를 한낯 마네킹으로만 보는 크레이그를 만나는식의 '실패할만한 사랑'을 하는 친구들이다.  


그런데도 찰리, 패트릭, 샘은 자신들만의 세계를 공유하며 서서히 서로를 위로한다. 찰리가 엘리자베스에게 숨기지 않고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사람은 '샘'이라는 걸 밝히고 나서도 기어코 셋은 이해한다. 정말 우상과도 같았던 샘이 찰리와 잘되길 빌었던 독자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환각에 취해서 자신의 불안감을 이야기할때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패트릭과 샘이 지켜주지 않았더라면 찰리의 삶은 어느날 갑자기 돌연사한 불행하고도 정서적으로 문제있는 왕따 학생으로 그쳤을 것이다. 언제고 빌선생님은 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현실에 참여하지 않기 위해서 생각속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있다'고..간접적으로 찰리의 독백과 대화들은 너무 많은 생각에 기반한다. 끊임없이 자기를 객관화하고 지나칠정도로 배려하며 과격하게 자기를 학대한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생각과 그를 지배하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보면 '생각많은 솔직한 찰리'군의 친구되기 이야기는 눈물겹다.

 

그래서 말인데, 빌선생님이 건네주는 도서들의 연계관계도 흥미롭다. 왜냐면 조금씩 조금씩 불안감을 해소하며 깊이있고 사려깊은 판단을 내려주길 은밀히 원하는 선생님의 의도가 담겨있는듯해서다. 또 소설속에는 소통에 관한 또 하나의 매개체가 등장한다. 바로 찰리가 패트릭, 샘과 공유한 음악들.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테이프에 담아서 건네주는 그네들의 문화들을 이용해서 찰리가 평상시 자신의 감성을 고이 간직한 음악들을 친구들에게 꺼내놓는 것이다. 아래는 찰리가 샘에게 건네준 테이프에 담긴 음악목록이다.

 

Asleep - 더 스미스,

Vapour Trail - 라이드,

Scarborough Fair - 사이먼 앤 가펑클
A Whiter Shade of Pale - 프로콜 할럼
Dear Prudence - 비틀즈
Gypsy - 수잔 베가
Nights in White Satin - 무디 블루스
Daydream - 스매싱 펌프킨
Dusk - 제네시스
MLK - 유투
Blackbird - 비틀즈
Landslide - 플리트우드 맥
Smells Like Teem Spirit - 너바나
Another Brick in the Wall Pt.2 - 핑크 플로이드
Something - 비틀즈


cf) 영화에서 등장한 데이빗 보위의 'Heors'더 소설에 맞는 것으로 느껴지는데 소설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의 해소는 후반부에 가서나 확연히 드러나지만 과정들속에서도 찰리는 분명히 폭주하는 광기의 소년으로 묘사되지는 않았다. 엄밀히 이야기해서는 심리적 장애를 가진 환자였으므로 통상적인 학생으로서의 고민을 이야기하기는 어려웠지만, 많은 부분들에 대해서는 찰리특유의 솔직함으로 덤덤히 서술했고 또 그것들의 이면에는 자신이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심정을 공개해놓았다. 그걸 읽는 독자들은 아마도 '이렇게 생각할수도 있겠구나'라는 의외의 동감을 경험할수 있다면 이 책은 교묘하게 부모세대들에게도 충분히 납득할만한 소설로서의 기능을 다하는 셈이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건, 찰리가 샘을 보내면서 들었던 샘의 진심들..'너도 어떤 행동을 했어야 했어'라는 말, 그게 찰리에게 커다란 희망과 깨달음을 주었을 수도 있다. 자신이 삶에 있어서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전면에 나서기 위한 준비운동같은 느낌이다.

 

부족하지만 찰리는 영화에서도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에게 한계는 없어" 라고...

 

 

아마 또래들에게는 인생을 두고 살아가는데 있어 용기를 주는 그런 가슴벅찬 독백이 아니었을까.

(참고로 영화또한 잘만들어졌으니 꼭 봐두었으면 ..)  

 

 


월플라워

저자
스티븐 크보스키 지음
출판사
돋을새김 | 2012-12-24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미국의 100만 청소년독자들을 열광시킨 성장소설 『월플라워』.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kewell
Review BOOK/경제-경영2013. 1. 24. 17:00

 

Velocity는 원래 사전적으로 그냥 '속도'다. 왜 이걸 '속도전'이라고 번역했는지 의아하나 아무래도 치열한 경쟁의 시대에서 투지넘치는 적극적 해석의 취지라고 하면 이해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경영의 상황을 빗대 전투적인 뉘앙스로 치열함이 미덕인 것처럼 해석되는 분위기는 별로다. 원래 경영에 대한 비즈니스 서적들의 대개는 '비약'과 '과장'그리고 애초부터 정량으로든 정성적으로든 검증하긴 힘든 부분들을 기묘한 논리으로 설명하는 '우'를 많이 범해왔고 그것을 설명하는 방식도 근거가 빈약하기 일쑤다. 이를테면 결과에 의한 성공요인의 유추는 공공연연하게 '알수 없는' 또는 '증명하기 어려운' 아이템들이 되어 실전경험 없는 이론가들에 의해서 전가의 보도처럼 쓰여졌드랬다.  그렇기때문에 속도전이라는 단어에서 '진지해져라'라는 무언의 요구같은 뉘앙스가 느껴진다.  '됐고 차분히 명료하게끔 이야기만 해다오'라고 속으로 되뇌이고 있었다. (난 기본적으론 반항적이고 네가티브에 가깝다는 걸 부인하지 않겠다.)


 현 NIKE 디지털 Sports 부사장, 그리고 AKQA 설립자인 두사람 스테판 올랜더, 그리고 아자즈 아메드의 대화체를 빌어서 스토리텔링을 매개로 경영일반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의 전달수단은 아무래도 딱딱한 이론적 선언의 형태를 피하고 핵심 요체를 대화를 빌어서 말하려고 했던 것 같다. 우리들은 모두 일차적으로 대화에서 깨달음을 얻기에 보다 쉬울테니까..이런류의 저작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는 '성공 늘어놓기'다. 그야말로 자사의 업적을 낱낱이 밝혀주리라는 목적으로 하나둘씩 자신의 성취감을 고양시키기 위한 이디엄들을 남발한다. 우리 제품 중 이런 기획이야말로 현시대의 창조적이고도 혁신적인 반영에 다름없다고..우리를 본받으라는 그런 취지의 대화들이 될 가능성이 너무 높은 것이다. 게다가 이 저자들은 한사람은 스포츠 브랜드의 탑, 그리고 또 한사람은 이런 기획성 광고의 굴지회사 수장이다. 모르긴 몰라도 자화자찬 하기엔 딱 좋은 돗자리들 아닌가.


이런 류의 실수를 전혀 아니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나이키 제품 홍보라든지..자신이 성공해낸 광고들의 예시들) 좀 나은 점이 있다면 몇가지 기존의 책들에서 보기쉽지 않는 통찰력과 실행가들로부터 얻게되는 교훈 같은 것들이다. '혁신은 본질적으로 결과를 알 수 없는 실험'이기때문에 삶을 얼마나 풍요롭고 재미나게 만들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과 예측불가능한 불확실성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비전있는 인재모으기에 나설 수 밖에 없다고 토로하는 저자들의 대화에는 공감이 아니갈 수 없다. 책속에는 몇가지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핵심 내용이 있기 마련인데 이 책에서 줄기차게 말하는 기본적인 요체는 이런 것들이다.

 


1. 궁극적으로는 기업은 '서비스' 기업이 되어야 한다.
2. 그 '서비스'들은 삶을 얼마나 풍요롭고, 재미나게 만들 수 있는지에 포커스가 가 있어야 한다.
3. 소비자와의 상호작용은 반드시 필요하다.
4. 결과물, 산출물이 나오는 행동력이 중요하다.
5. 실용성, 내용물 이딴건 분위기와 감수성에 밀릴 수 있다. 중요한건 스팩이 아니라 상상력이다. 

 


대개의 기업들 중 '혁신'을 이야기하지 않는 기업은 없다. 누구나 혁신을 하고 싶어하며 올바른 비전과 창의적 노력을 꿈꾼다. 그런데 '혁신이 필요하다' '혁신이 중요하다' '지금보다 나은 현실을 꿈꿔야 한다' '일에 더 열심히 매진하자' '현실에 안주하지 말자' 이런식의 말들은 해결책이 아니며 더우기 어떤 통찰력을 가져다 주기도 어려운말들이다. (이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 않은가). 결국 많은 경영서들은 이미 이뤄놓은 '결과'를 말한다. 그렇게 되어야한다라고 선언문들이 줄기차게 이어지는데 도대체 그런 걸 어떻게 해야 이룰 수 있는 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면 조잡하기 이를데 없는 상상력없는 따분한 말들만 늘어놓기 일쑤다. 그리고 전혀 공감이 가지 않게된다.  그렇게 해서 성공한 기업과 성공하지 않는 기업간의 비율이 랜덤수준에 가까울 정도로 구별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디엄은 자고로 공허해선 가치가 없다.


많은 기업들 입장에서 보자면 기업들은 서비스 기업이 되기보단 영향력있는 '제조사'가 되고 싶을 뿐이다. 결국 많은 제품들에 부여되는 가치에는 '이윤'이라는 측면의 중요성이 더 부각되기 마련이고 '더 잘팔리기위한 상술'에 가까운 조작들만 나열된다. 얼마나 풍요롭고 재미나게 삶을 바꿀 수 있는지에서 시작되는 기업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은 생각해볼만하다. 고객들은 자신들의 삶이 더 재미나고 더 좋은 기억으로 남길 원한다는 부분도 꽤 강조될 만하다.  결국 그렇게 만들어주는 브랜드가 최강이 된다는 부분도 통찰력있게 느껴진다.  그리고 많은 스팩나열이나 일삼는 사양비교질따위나 하는 식의 기술적 견해보다 상상력이 우선한다는 부분도 역시 공감이 간다. 나이키나 AKQA가 지향했던 공통점은 아마도 '기술적 공헌'이 아니라 근본적인 인간생활에 있어서의 '재미'를 이끌어내는 '변화' 그리고 그걸 수행하는 실질적인 실천력이 아닐까싶다. 수없이 같은 이야기를 챕터마다 반복하는게 지루하지만 결국에 말하고 싶었던 것들은 그게 다였던 것 같다.


혁신을 말하기보다는 효율을 논해야 한다고했을때 부터 이들이 진작에 조직으로서의 아웃풋을 내기 힘든 요소들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보다 진지해지려면 인정해서는 불편해지는 것들의 존재를 부인해선 곤란하다. 대개의 경우에는 CEO들의 입장에서 볼 때, 추구하는 가치가 보다 '서비스'적이지 않았고 보다 '상술'적이었다는 부분을 인정해야 하고 '실천에 의한 산출물에 지겹도록 확인하는 엄밀함이 없었다는 것도 되새겨볼만하다. 자고로 사람은 논리와 이성에 의한 결정적 판단보다 '감성에 의한 분위기'에 좌지 우지 된다는 지점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벨로시티

저자
스테판 올랜더 지음
출판사
SEEDPAPER | 2012-11-26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무조건 뛰지 말고 목표와 방향을 명확하게 설정하라!디지털 혁명에...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