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culture/Movie2013. 9. 15. 08:26


ⓒ澤東製作有限公司

 

색다른 기대, 무협의 계절 


동사서독(東邪西毒 : Ashes of Time)(1994) 국내에 처음 등장했을때 많은 사람들의 기대는 바로 '무협물의 정점' 충족시켜줄 아이콘이자 예술적 가치를 가진 남다른 작품이 되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어떻게 들릴 모르겠지만 무협이라는 장르가 B 문화의 카테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결정적 이유가 마치 상업적 요구에만 반응하는 액션씬에 있는게 아닐까하고 의심하기까지 하던 시절이었으니까 , 오히려 액션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보고자 예술적 분량을 더해보는 당시로서는 상당한 모험이었고 낭비에 가까웠다. 오히려 예술적 가치보다는 피부에 와닿는 화려만발한 무협 액션씬들에 집중했고 차라리 그게 관객의 관심을 끄는데는 직접적이었다. 그리고 관객도 그걸 원했던 같다.

 

당시 정소동(程小東) 오우삼(吳宇森), 서극(徐克) 의해서 키워진 판타지와 느와르의 분량은 절정기를 지나 내리막을 걷고 있었다.홍콩영화의 인기는 상상해왔던 것을 눈앞에서 보여준다는 상상력에 기댔지만 그것도 매번 같은 방식으로 붕어빵 찍어내듯 여러번 이어지게 되면 지루함이 생기는 것은 당연양적 팽창으로 파이를 키움과 동시에 질적하락이라고 하는 장애물을 만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천편일률적인 과정들은 고스란히 공식처럼 사용돼 삼류 제작사들에 의해서 시장에 도배되었다. 다행이었던 것은 소재에 대해서만큼은 무궁무진하다고 표현해도 만큼의 원작들이 오랜세월동안 축적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무협물은 축복받은 장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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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화려하면서 자극적이도록,...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무협소재의 대부분은 김용(金庸)이라는 신화적이기까지한 작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원작에 많은 부분 의존하고 있는 편이다. 마치 현실에 있어왔던 세계였던 것처럼 묘사해둔 무협의 세계와 중원의 소소한 이야기들은 철학과 역사라는 배경을 뒤로하고 서사적인 흐름까지 선사해주었다. 이후의 흐름은 이런 배경들을 이용해서 비슷한 이야기들을 등장시키기만 하면 되었다. 사조영웅전(鵰英雄傳) 곽정 황용, 남제북개(蒂北丐),동사서독(東邪西毒) 이야기, 그리고 신조협려(神雕俠侶) 양과 강맹한 검술,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 절대자 장무기, 소오강호(笑傲江湖) 검신 영호충 많은 작품들에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크로스오버의 전형적인 장치들이 깔려있다. 무협매니아들의 즐거움은 이런 설정들을 후배작가들이 완전히 바꾸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주길 기대하는 있다. 이런 것들을 가리켜 무협의 정통성이라고 이름을 붙이곤 했던 것이다.


매니아들로서는 무협스토리의 고전작이 등장할수록 내력에 관심을 기울이곤한다. 순수 창작 무협이면 모르겠지만, 어차피 인간적 능력을 초월해서 등장해주시는 많은 무협인들의 기본 구조는 선제적인 설정 조건들이 이미 갖춰져 있는 경우들이 많았다. 아시다시피 유명한 동방불패(笑傲江湖) 1 버전이었던 소오강호 후속작 형태를 띠면서 등장했고, 소오강호의 주인공 영호충은 화산파, 동방불패는 일월신교, 이어지는 장무기의 내력은 태극권을 창시했던 무당파와 명교라는 이중태생을 가지고 있었다. 하물며 화려검술을 가졌던 영호충의 진짜 검술내력은 독고구검이었으며 독고구검을 창안했던 독고구패가 사용했던 철검은 신조협려의 양과가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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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동사서독은 초반부에서 역할이 달랐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동사 황약사는 장국영, 본편에서 등장조차
           하지 않았 남제 단황야는 양가휘, 맹무살수 양조위는 서독을 맡았었다. 이에 대한 단초는 당시 중간에 촬영했던 <

           성서취>에서  자취를 찾아  있었는데, 초기의 설정대로 진행하다가 불현듯 이야기의 초점이 서독이 되어야 한다

          는 생각에 모든 출연진들의 배역들을  뒤집어 엎었다는 일화가 있다

 

 
괴상한 무협영화 등장, 과연 무협물이라고 있을까?

 

이정도되면 단순 무협액션물이라고 해도 갈래별로 내력과 나름대로의 에피소드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정도는 매니아들로서는 기본적인 지식사항이 된다 지식사항은 상상의 산물이지만 무협의 세계에서는 진리에 가깝다. (예를 들어 곤륜파의 제자가 태극권을 사용하며 공중을 날수도 없는 노릇이고 화산파의 제자가 건곤대나이를 펼칠 수도 없다. 물론 주인공은 모든 무공을 독파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지만..) 매니아들이 보기에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설정들도 등장하기 일쑤였고 설사 비스무리하게 등장했다하여도 고귀한(?) 검술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손발이 오그라들만큼 말도 안되는 퍼포먼스를 보여줄 때는 그건 무협물도 아니란 평가를 각오해야 했다.  1991년의 <동방불패> 무협물의 대중화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무렵, 서서히 사람들의 인식에는 무협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좀더 일반적이 되어가고 있었다고 보여진다. 적어도 하늘을 날아버리는 슈퍼맨식의 퍼포먼스까지는 아니었어도 바닥을 튕기며 몸을 송곳처럼 회전시키는 영호충의 독고구검을 보면서 인상적인 무협 패턴이 자리잡는 시간 문제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1994 희대의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동사서독>(東邪西毒) 등장이었다. 물론 작품을 만들었던 왕가위 감독의 유명작은 동시기에 하나 있다. 그리고 작품이 오히려 유명하기도 하다. <중경삼림>(重慶森林)(1994) 작품으로 일대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몰고와서 국내에서도 왕가위 열풍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동사서독> 만드는 중간 시점에서 <중경삼림> 만들었다는 사실이었는데 오히려 시간이 배로 걸린 <동사서독>보다 히트해버린 <중경삼림> 보고있노라면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알수 없는 모호한 느낌을 받곤 한다. 왕가위 감독은 엄청난 영화 제작지연으로도 유명한 감독이어서 수많은 화려만발의 스타 캐스팅을 유지한 사막을 전전하면서 골치아픈 무협영화를 만든다는 소문은 당시에 커다란 화제거리였었다. 덕분에 길게 이어진 제작기간에 대한 보상을 위해서 중간중간에 다른 상업적 영화들을 만들어냈다. 중에 하나가 <중경삼림>그리고 <동사서독> 유치코미디버전이라고 불리우는 <동성성취>(東成西就)(1993)이다 (매니아들 세계에서는 영화조차도 인기있는 작품으로 불리운다. 그래뵈도 당시에 대한극장에 걸린 왕가위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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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덕스(REDUX)판으로 재편집된 근래의 최신판은 퀄리티로 향상된 색감을 보여주지만, 이에 반하여 기존 원판에서 

         가지고 있었던 거친입자의 투박함이 완연히 사라져 일부 매니아들의 불평을 듣기도하였다. 이런점에서 본다면 거친 입자

         의 퀄리티는 왕가위이 의도했던 바가 아닐수도 있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대신 극도로 세츄레이션된 사막특유의 컬러

         를 리덕스판에서 있다.

 


무협영화에서 없었던 이상한 기운. 드라마와 심리적 색채감

 

<동사서독> 이야기는 앞서 이야기했던 대로 김용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름하여 <사조영웅전>이라고 불리우는 김용의 원전은 주인공을 곽정으로 하여 그가 벌이는 일생일대의 무협모험담을 소설을 엮은 장편소설이었다. (무협매니아가 아니더라도 국내에서 작품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고 여겨진다) <사조영웅전>에는 각양각색의 무협고수들이 등장하는데 그중에 가장 비중을 크게 차지했던 인물들 4명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바로 남제북개, 동사서독이다. 남제 단황야, 북개 홍칠공, 동사 황약사, 서독 구양봉 가리키는 것으로 인물들은 당시의 무림을 종횡하던 고수들이었다. 인물들 동사와 서독이라니...동사서독의 제목을 매니아들로서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설레임을 느꼈을른 지도 모른다. 하나의 걸작이 탄생할 것만 같은 예감을 가졌을 테니까말이다.

 

이러한 내력에도 불구하고 <동사서독> 논란을 블러일으켰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당시 무협장르의 기조는 정형적으로 굳혀진 상태였다. 그리고 타이틀 조차도 골수 매니아들이 인지할만한 전설적인 지칭을 등장시켰으므로 기대감이 증폭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극장을 찾았던 만큼 급속도로 관객수가 줄어버리는 희한한 광경을 연출하게 된다. 왕가위라면 현란한 카메라웍( 크리스토퍼 도일 의지한 크다고 여겨지지만) 하나만으로도 시선을 떼지못했을 텐데도 불구하고 흥행은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고 매니아들의 평가는 비난일색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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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양봉과 황약사의 역할이 바뀌게 된것은 아마도 이야기가 서독 중심으로 흘러가야 한다고 하는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

          이.  하지만, 아직까지도 의문인 것은 맹무살수가 등장해야만 하는 당위성은 오리무중이다. 맹무살수는 원작에도 존재

          하 않는 미스테리의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모용연이 독고구패가 되는 마당에 맹무살수는 출처불명의 검객이 

          되버리고 말았다.

 

 

'바람이 잔잔하니 깃발이 고요하다. 심란한 사람의 마음속이 이와 같다'

깊이 파고드는 상처의 경험자들,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하다.

 

<동사서독> 무협매니아들이 즐겨마지 않는 머리끝까지 관통하는 액션의 쾌감을 깔고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전형적인 무협물이라고 인정받을 만한 요소조차도 너무 빈약했다. 그야말로 타이틀만 무협스러움을 풍겨내고 있었지, 실상은 전혀 다른 진지한 멜로 드라마의 향기를 풍기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오는 관객들과의 일차적 괴리감은 거의 무협 매니아들의 실망감이었는데 다행스러운 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협 골수 매니아들의 관심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반면 일반 드라마와 사랑이야기를 즐겨보던  보통의 영화팬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처음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 서독(구양봉) 독백에서 남다른 분위기와 스타일을 감지라도 했던 것일까?


이야기는 사막에 자리잡은 해결사 중재인인 구양봉(장국영)에게 동사 황약사(양가휘)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오프닝에 묘사된 현란한 무술씬은 현재의 상황을 그린 것으로 이야기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도록 구성되어져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오프닝 이후의 내용이다) 황약사는 고민이 있는 것처럼 세상을 잊고 살고 싶은 '취생몽사'(모든 것을 잊게 만들어준다는 , 어느 여인이 황약사에게 주었다고 .) 같이 들자고 서독(구양봉)에게 권한다. 사실 이정도만 했어도 서독의 입장은 차분하게 시련받은 친구의 심리적 피난처의 역할을 맡았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며 극의 화자를 담당하는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적어도 알수 없는 고민을 뒤로 하고 떠나는 황약사를 보면서 서독은 그저 말못한 사연이 있는가보다라고 읇조릴때까지만이라도 서독은 객관적이었고 균형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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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로 인한 혼란과 괴로움, 절기마다 이어지는 다양한 상처의 색채들.

 

얼마 지나지않아 서독 구양봉을 비롯한 많은 등장인물들이 깊은 과거의 상처내지 현재의 갈등을 담고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나래이션으로 극의 관조적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리라 예상되었던 서독까지도 깊게 패인 과거의 시련으로부터 자유로울 없었고 그런 서독에게 질투심을 느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결국 얻을 없었던 동사 황약사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황약사에게 아내를 빼앗겨버린 맹무살수(양조위) 죽음을 담담히 기다리는 적막한 비장감으로 극을 수놓았고 기괴한 이중인격으로 분한 모용연(임청하) 집착증은 다른 형태의 몸부림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엇갈리는 관계속에서 그나마 정상적이었다고 한다면 유일하게 장학우 분한 홍칠 정도였다기본적으로는 영화는 '상처를 간직한 어떻게 이것을 바라보는가에 대한 심리적 혼란과 방황' 묘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특이하다고한다면 그런 표현을 '무협'이라는 트을 이용해 보여주었다라는 점이었다. 사실상 상업적 고려의 절정이라고 불리우는 무협액션에 이런 주제를 집어넣는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으나 묘하게 동사서독은 영문 제목(Ashes of Time)답게 진하고 독특한 향기를 뿜어내면서 매니아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근래에 공개된 리덕스판에서는 극의 중심이 서독 구양봉(장국영)으로 완연히 재편되었지만, 오래전 원판에서는 등장인물들이 하나의 줄기를 맡아서 전개되는 일종의 옴니버스 성격이 강했드랬다.

 

물론 에피소드들이 묘하게 얽혀있어서 아주 관계가 없는 것도 아니어서 하나의 줄기가 없었다고는 말하기 힘들지만, 리덕스판에서는 절기들을 계속해서 이어가며 서독의 덤덤한 독백과 관점을 주로 묘사했다. (편집의 능력이라고본다). 서독은 영화의 시작에서 자신의 소개를 하지만, 자신의 거처를 찾는 사람들을 오로지 자신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 매년 경칩때마다 찾아오는 동사 황약사를 덤덤히 받아들이며, 과거를 잊어버리자고 술을 권유하는 황약사를 의심의 눈길로 쳐다볼 만큼 현실적이고 냉정한 성격으로 묘사되었다. (훗날 밝혀지지만, 황약사가 구양봉에게 취생몽사를 권한건 구양봉의 과거연인이 자신의 잊어달라는 표시로 황약사에게 술을 전해주길 바랬기 때문이었다. 물론 황약사는 이사실을 밝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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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생몽사를 거부한 동사와 맹무살수,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강요받는 인물들.

'그대는 술과 물의 차이점을 아는가? '

 

영화는 내내 각자의 상처에 대한 시선을 절기별로 할애해서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연인으로부터의 시련과 갈등, 엇갈림으로 현실도피적이라는 부분이 공통적으로 부각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제각각이었으므로 절기에 해당하는 캐릭터들의 독립성과 개성들은 묘하게 상처의 종류와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다.  동사 황약사는 그냥 인내하며 묵묵히 바라보는 것으로 사랑의 해답을 찾고 있었으며  모든 번뇌의 원인이 기억력때문이라는 말조차도 받아들일만큼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초반부 마적떼가 때거지로 희생당한건 이런 괴로움에 대한 일탈적 행위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그러나 또한  상처를 가해한 인물이기도 했다.

 

절친 맹무살수의 아내 도화삼랑과의 순간적인 일탈로 인하여 모든 관계가 어그러져 버렸던 것이다. 도피에 대한 사랑은 다시 진실이 아닌 사랑이 되버리고 친구 맹무살수에게 기대했던 관대는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그가 맹무살수로부터 들었던 유일한 현실은 '술과 물의 차이가 뭔지 아냐 물음이었다. (맹무살수는 술은 몸을 뜨겁게 하지만, 물은 몸을 차갑게 한다며 취생몽사를 거부했다.) 황약사가 영화초반부터 꿰차고 다니던 취생몽사는 상처받은 현실에 대한 도피를 상징하고 있는셈이다. 이런 취생몽사는 어느 누구의 환대도 그리고 동조도 얻지 못한 본인의 인지만을 흐리기위한 핑계로 전락한다. 그저 술을 마시고 현실을 잊고 싶은 뿐이었다.

 

 반면 취생몽사를 거부한 구양봉과 맹무살수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구양봉은 이해할 없는 사실은 받아들이지 않는 현실주의자였으므로 과거를 잊게 해준다는 취생몽사 자체를 부인했다. 그는 형수가 되버린 연인에 대한 혼란스러운 감정이 사랑임을 깨닫지 못한채 세상을 향해 삐뚤어져 있었다. 조소를 날리듯 삶을 일그러뜨리며 사막이라는 황폐함속에서 상처를 스스로 보듬어 안고있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맹무살수(양조위) 취생몽사를 거부한 이유가 남다르다. 그는 친구를 용서할 없었기에 술을 거부했다황약사는 자신의 아내 도화삼랑과 정을 통한 배신자였고 그런 과거를 도저히 현실로 받아들일 없었다. 취생몽사가 그에게 주는 상징성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잊어버리자'라는 타협의 메시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시 현실로 돌아갈수 없음을 알고 있었으므로 모든 것을 죽음으로 대신하려고 작정한다. (아마 맹무살수는 눈이 보였더라도 죽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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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인격의 자아분열을 보여준 모용언, 모용연. 후반부에서 인격이상의 존재가 독고구패가 되버리는 황당함을 선사

          해 주셨다독고구패는 동사서독과 동시대의 인물이 아니라 훨씬 선배격의 인물이었으나 마치 김용의 사조영웅전과

          조협려를 오마쥬하겠다는 듯이 임청하에게 독고구패의 정체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독고구패는 동방불패가 아닐텐데...


 

상처를 극복하는 표식, 다시 돌아갈 있는가에 대한 관조적 대상, 북개 홍칠

 

사랑하는 대상으로부터 처절하게 외면받은 과거의 상처들은 이미 동사에게나 서독에게나 마찬가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들이었다. 심지어 맹무살수에게는 극단적 선택, 죽음으로서 모든 것을 대신하고자 하는 결연함이 있었으므로  맹무살수와 마적떼의 대결씬에서 최고로 극적 고조감이 치닫기도 했다. (맹무살수가 마적떼를 상대하기 중간즈음에 빠른 칼솜씨를 가진 고수를 기대하는 바로 죽음을 준비하는 자의 심정을 말해주고 있다. 좀더 빠른상대로부터 자신의 목숨을 맡기려고 했다.) 이후 등장하고 있는 홍칠(장학우) 앞선 상처받은 자들이 헤쳐나가야할 모범적인 표본과도 같은 역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마치 구원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제대로 의지만 있었다면 말이다. 홍칠은 기본적으로 동사서독의 현실성과 이기주의적인 뉘앙스와 전면배치되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원작자체도 마찬가지였다. 동사는 세상에 대한 삐딱함, 서독은 잔인하고 이기적임, 북개는 의협심을 상징하고 있었다)

 

화려하고 강맹한 검술을 지녔음에도 정에 약해서 완사녀(양채니) 대한 부탁(자신의 동생에 대한 복수를 해달라는 부탁. 댓가는 달걀 몇개와 당나귀 한마리뿐이었다.) 거부하지 못한다. 거기서 손가락 하나을 잃고 나지막히 내뱉는 말을 기억하시는가? 자신은 댓가를 이미 받았고 할일을 했다는 고백, 칼이 빠르지 못했던 것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대한 확신에 의심이 들어서였다라는 고백, 모든 것들은 이미 상처를 받았던 앞선 인물들의 어투와는 다른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다. 게다가 부인까지 따라나서 자신의 야망이 훼손되었음에도 나중에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부인과 여정을 함께 한다. 이별보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편이 자신도 행복해진다고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말이다. 이상을 쫓아 세상으로 뛰쳐나온 거친 삶이 다시 현실을 받아들이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그럴듯한 예시를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홍칠의 행동력때문에 구양봉은 심한 질투심을 느낀다. 둘은 원작에서도 숙명의 관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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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정상적이면서도 어울린다고 알려진 홍칠공역의 장학우. 이미지로는 별로 어울리지 않지만, 내부에서는 적확

          한 정체성 을 보여주고 있다. 홍칠공이 애초부터 검객이라는 설정, 그리고 손가락하나가 잘려졌다는 설정을 교묘히 이용

          해서 원작과 일치시켜주고 있다. 더우기 후반 자막설명에서는 원작의 전설과 일대일로 연결함으로써 원작부합의 오락성

          까지 추가했다. 홍칠공은 개방의 우두머리가 되며 서독과 최후의 일전으로  생을 달리하게 된다.


홍칠이 사랑하는 부인을 잃지 않고 이상적인 삶을 성공적으로 선택하였음에도 서독은 그를 흉내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자신이 사랑한 여인은 자신을 거절했다는 배신감만이 그를 냉정하게 만들었으며 그의 자존심은 다시 고향 백타산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만들었다. 맹무살수가 평생을 사랑했던 부인을 결코 잊을수 없었지만 다시 그녀의 곁으로 돌아갈수 없었던 것처럼...서독과 맹무살수 동사는 이미 후회와 거절의 중간즈음에서 자신에 대한 상처만 보듬고 현재를 수없이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동사서독은 거절받거나 상처받음에 대한 자기애에 사로잡힌 심리적 혼란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가 절절했던 결국에 모두가 시간의 흐름속에서 자신의 사랑을 깨닫기 때문이다. 동사는 고향으로 돌아가며 서독 또한 자신의 형수가 몇년전에 생을 달리했음을 듣게 된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듣고서야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현실적인 삶에 이야기를 비춰본다면 서독과 맹무살수는 그냥 현실을 인정하고 돌아가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있었어도 크게 문제되지 않을 만큼 평범한 추억을 가졌을른 지도 모른다. 왜냐면 서독의 형수는 여전히 죽는 순간까지 서독을 잊지 못하고 있었으며, 맹무살수의 아내 도화삼랑 역시 끝까지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자 했다면 상처란 그저 과거의 추억으로만 남았을 수도 있었고 굴곡의 과정으로만 족했을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애인(장만옥) 늦게 나타나 진실이라고 우기는 서독의 사랑을 거절했던 것처럼 때론 말로 설명하기 힘든 사랑의 견해차이가 있다. 견해차이가 가져다 주는 후회와 세월의 사이에서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갈등할 것이다. '원하는 것은 상처에 대한 두려움인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포기와 용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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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서독이 오랜시간이 지나서도 가슴속에 남는 이유는 이러한 감정적 이야기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거절에 대한 고통을 절절히 묘사한 영화는 무협영화에서는 유일할 것이다) 비록 그들의 손에 검이 들려져서 왠지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시간속에 놓여져 있는 보이지만, 그런 설정들은 그저 이야기를 하고자한느데 장애가 되지는 못한다. 가끔 반복해서 때마다 느끼지만, 동사서독은 마음속 깊은 곳의 주저하고 후회하는 감정들의 은근한 표출을 한꺼풀씩 차례차례 벗겨내며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이 만약 현대물이었다면 과연 이렇게 절절히 묘사할 있을까하는 의문이 남을 정도다.  아마 동사서독의 테마가 무협이어서 그렇게 절절하고 처절했을 지도 모르지만 마지막까지 설정을 사조영웅전과 연결시켜버려서 사실적이기까지 하다 (무협매니아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솔직히 말해서 사조영웅전의 프리퀼 버전이라고 해도 믿어줄만큼 적절한 구성이 아니었겠는가? 그저 사내들의 땀냄새가 물씬 풍기는 무협의 세계에서 이러한 은밀하고도 한스러운 사랑의 이야기가 있었다고 아니할 만큼 그리 빡빡한 이야기들은 결코 아니다. []

 

1 ) 동사서독의 원판에는 왕조현이 몇초간 등장하는 버전이 있다. (구성상 어울리지 않아서 빠진 것으로 알려진다)

2)  동사서독의 원래 설정은 동성서취의 구성을 따르고 있다. 

          서독은 양조위가 동사는 장국영이 맡기로 하고 실제 많은 부분 촬영을 진행했다.

3)  동사서독의 초반부와 후반부 수염없는 장국영의 등장은 바로 동사로서의 설정을 토대로 촬영한 원본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미 촬영한 내용이 아까워 초반부와 후반부에 다시 재이용했다고 알려진다. 그리고 시간배열상 초반부

        와 후반부는 강호에 등장한 서독의 설정을 연출했다고 장국영이 밝힌  있다.

4)  양가휘는 애초부터 동사와는 무관한 남제 단황야였다. 
5)  동사서독 후반부에는 황약사가 마적과 대결하는 씬들이 몇초간 들어가있다. 홍보와 스폰서에게 지원받기 위한 

        션씬의 추가분이상당분량 있었지만, 무협을 포커스로  것이 아니었으므로 필요없다고 판단해  컷팅해버렸다.

        (무협매니아들로서는 통탄할 일이었다)

6)  리덕스판에서는 원판에 등장했던 오프닝 OST 아예 바뀌어 버렸다. (리덕스판 음악이  낫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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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이 곡을 듣게 된건 니폰 TV에서 방영해준 애니메이션 삼국지 ( 三国志II 天翔ける英雄た)의 주제가로 들었다. 물론 스기야마 키요타카가 이전 부터 R&B 블루스에 대한 동경으로 목소리 변조에 꽤나 노력을 했었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장점을 버릴수는 없는 노릇. 깨끗한 목소리는 역시 천상 발라더로 살아가야 할 운명을 애초부터 타고 난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한다. 이 곡도 역시 스기야마의 장점을 드러낸다는... 어쨋든 니폰 테레비의 삼국지는 당시 꽤나 파격적인 내용으로 방영이 되었는데 유비와 손부인의 로맨스를 극대화시키는 과정에서 이 노래를 테마음악으로 그리고 엔딩으로 장식해주었다. 사극에 현대풍에 음악을 넣는게 이상해보일 수도 있었는데 의외로 나쁘지 않아서 스스로도 괴이하게 생각하곤 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손부인이 왜 요화이고 요화는 유비와 그렇게 청춘로맨스를 벌였는지 왜 원작 삼국지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미스테리로 남겨둔 채, 뭐 삼국지를 어떻게 각색하든 재미만 있네라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몰입했던 추억이 있다. 그 뒤로도 이 삼국지에 대한 이야기를 가끔 듣긴하는데 어디서도 정식으로 DVD가 발매되었다던지 하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다만 스기야마의 목소리는 지금까지 남아서 추억속에 살고 있는 듯하다. 


날씨가 스산해지고 왠지 기분이 가라앉아버린 이런 날에 듣기엔 나쁘지 않은 음악이 아닐까..눈을 감고 잠시 노래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지난 해변가의 추억. 사랑했던 학창시절의 느낌같은 것들이 파도에 밀려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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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BOOK/경제-경영2013. 9. 13. 14:40


"오늘 당신기업이 사라진다면 내일 세상이 달라지겠는가" 라는 글귀를 보았을 때, 직감적으로 이 책은 기업을 운영하는 오너, 회사의 전략적 기획과 비전을 빌딩하는 기획과 전략부서 요직에 있는 인물들을 위한 일종의 강좌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많은 수의 '경영 전략'에 대한 비즈니스 서적들의 교묘함은 '전략'이라는 단어의 남용에 있다는 점을 볼 때,  책 제목으로 옥석을 가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최근에는 산업 발전사와 경영에서의 혁신부분에서 '매니지먼트'에 대한 진화로 '전략'의 설정과 설계에 포커스를 맞춘 탓에 전략이라는 표현들이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시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고르고 또 고르고 읽고 또 읽는다. 


폭풍처럼 불어닥쳐 뭔가 고민하고 생각하고 열심히 탐구한다는 태도에 대한 피치못할 끌림과 그럴듯한 지능적 사고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에 들떠서 무늬만 '전략'인 책들도 많았을텐데도 줄기차게 팔리는 걸 보면 궁지에 몰린 사람들은 지푸라기든 뭐든 다 잡을 것이라는 세간의 평이 틀린게 없어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책 광고에 있어서 일반인들이 통상적으로 경험하기 어려운 높은 수준을 담보하는 듯한 단어들이 등장하면 이 기대효과는 증폭된다. 이를 테면 하버드 경영 실제강좌라든지 케임브리지 경영스쿨에서 소수정예로 실시하는 특강이라던지 하는 것들 말이다. 


뭐 어찌됐든 그런 수없이 많은 트랩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서점 도처에 널려 있었다. 고르는 사람의 몫이자 선택에 모든 책임이 주어질테니 행운이 함께하시길라며 기도하는 것 외 어떻게 혜안을 주겠는가. (좋은 책들도 질떨어지는 광고를 어쨋든 붙이고 보는 시절이니..) 그래서 말인데 이 책도 이미 상업적 장치라고 불리우는 몇가지를 사용한 탓에 의심의 눈초리가 읽는 내내 이어졌드랬다. 전략가하버드 경영대학원. 이제 의미도 퇴색되어버려서 별 영향도 없다고 항변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두가지를 제거한 채 귀퉁이 이 책이 '경쟁력있는 기업되기'따위의 제목을 붙였다면 구입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보자. 확률적으로도 구매는 어렵다.


전략에 대한 베스트셀러들의 통상적인 오류나 실수같은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전략의 요체'대한 개념설명으로 모든 것을 대신하려고 하는 듯한 자세, 그리고 실제 있어왔던 예제나 사건들의 나열,(여기서도 IKEA가 등장한다. 뭐 어쩔수 없는거겠지 싶긴하다.) 벌어진 결과에 대해 귀납적인 도출로 결과를 가지고 이론에 꿰다 맞추려는 태도. 그리고 그걸 전략적 혜안의 결과였다고 포장하는 일들..우리가 신이 되어서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모든 인과관계를 이렇게 천편일률적으로 재단해버린다면 이 세상은 보다 더 디지털적이고 매트릭스적이고 완벽하게 들어맞는 귀납적 세계가 될텐데 실제로는 모두들 아시는 거처럼 전혀 아니올시다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경제와 경영의 세계는 카멜레온처럼 변한다. 아마 이 책이 시작을 '슈퍼 경영자 신화' (경영자의 능력에 기대어서 무엇이든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경영자는 자기가 믿는 바를 실천할 뿐이라는..)가 비즈니스를 망하게 만들수 있다는 지점에서 출발한건 참신했다. 


많은 수의 책들은 경영자의 철학적이고도 심오한 마인드에 초점을 맞추곤 하는데 사실 그런 다짐이나 신념들이 경영에 얼마나 많은 리스크를 야기시키는지에 대한 검증은 들은 바가 없다. 그저 성공하면 '신화'가 되는거고 실패하면 '소리없이 사라져주시니까' 사람들이 접하는 레전드와 신화의 세상에서는 동일하게 반복되는 경영자의 능력이 얼마나 영향력을 미칠까라고 생각해보면..그게 다일걸. 경영은 그게 다야라고 말할 전문가분들이 계실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히어로를 마냥 기다려야 한다. 슈퍼 경영자는 저자의 표현대로 굉장히 오류에 빠지기 쉬운 일반 논리이자 맹목적인 바램 기대 같은 것으로 이뤄진 위험 일수도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도 들은 바 있었던 경영의 환경은 '카오스적인 혼돈'과 '예측가능한 영역'으로 구성되어질 수 밖에 없다고..따라서 혁신이란 어쩌면 우연처럼 얻어걸린 '선물'처럼 다가올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 이면에는 예측하기 어렵고 괴이하게 요동치는 요인들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다. 그래서 전략가가 갖추어야 하는 능력 첫머리에다가 업계분석이라고 하는 상황적 부분들을 심어놓았을 것이다. 특히나 통제할 수 없는 경쟁요인의 인지. 도저히 어쩌지 못하는 어느날 등장해버리는 블랙스완과도 같은 사고들, 그리고 변혁들에 대해서 경쟁요인,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시각을 사소하게 여기지 말라는 지적은 경영자들에게 '당신네들의 신념보다 그런게 더 중요하잖소. 주위를 둘러보고 상황파악을 해보시구료'라고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신화적이고도 우화적인 이야기들의 허상이 없어서 좋긴 했지만 손에 잡히지 않을 가치상승에 대한 '기업목적'은 사실 증명하기에 너무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언제부터 이미지 광고가 시작되었다고..언제부터 기업이 자신들의 가치를 고고한 무엇들이 포장하기 시작했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지만 그대로 실천하다고 느껴지는 회사를 떠올리라고 하면 딱히 할말이 없다.  


"오늘 당신기업이 사라진다면 내일 세상이 달라지겠는가" 


여러번 되뇌어봐도 그럴 거 같지는 않다. 세상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그저 묵묵히 흐를거고 사람들은 서서히 기업이름을 잊게 된다. 그렇다고 희소성과 진입장벽에 대한 워렌버핏의 충고를 잊었을 리는 없다. 모두들 다른 기업들이 진입해 들어오도록 허락하지 않는 막강한 힘은 '제품을 구성하고 설계하는 유틸리티적인 능력'외에도 가치를 부여하는 그 기업의 존재목적일 것이라고 누군들 생각안할까. 누구나가 그러고 싶어한다. 다만 이것을 어떻게 실현하는지에 대해서 막막함을 느낄 뿐이다. 그리고 인내의 시간이 흐른다. 언제즘이면 우리기업의 가치가 수익실현의 중요성을 넘어설 수 있나하고 말이다. 전략가들의 대개는 이런 불확실성에 대해서 예견하고 측정하는일을 꺼려한다. 어디로 튀는지 가늠하기 어렵고 얼마나 걸릴지도 애매하기 때문이다. 통제할 수 있는 분야에만 주력하는 전략가라는 지적은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분명히 업계에서는 통제불가능한 요소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걸 파악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라는 점이 포인트인 것이다. 


이걸 이길수 있는 경쟁력이란 목적을 다시 한번 재고하는 것. 우리의 기업은 어떤한 목적을 향해가고 있느냐의 문제. 끊임없이 이 목적과 가치에 대한 재검토와 궤도 수정과 경재요인의 다각적인 분석과 불확실한 요인에 대한 준비, 그리고 다시 목적부합에의 여러가지 고려사항들을 끌면서 전략가는 끊임없이 시스템을 교정하며 성과물에 대한 효율성을 재고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딱 두 부분이다. 하나는 당신의 기업은 필요한가요? 그리고 또 하나는 당신의 기업의 목적은 무엇인가요..다. 돌이켜생각해보면 많은 전략가들이 '업계분석' 및 '불확실한 경쟁요인'을 감안하지 않는다는소리와 같고..눈앞의 이익때문에 궁극적으로 기업을 대표할 만한 정체성같은걸 아주 가볍게 생각한다는 소리와도 같다. 


어쩌면 지나치게 세속적인 어떤 이디엄이 그 기업을 지배한다고 할지라도 구성원들이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경쟁요인에 대한 끊임없는 교정이 이뤄지는 기업이라면 험난한 경쟁의 토네이도 속에서 굳건히 버텨나갈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전략가로서의 롤을 감안한다면 굉장히 난해하고 분주하고 고뇌해야 할 난제들이다.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아니 그런 상황에 처해있다면 늦었다고 느낄수도 있겠고 어쩌면 아주 먼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잘하는 분야만 보려고 할테니까. 공포의 영역에 진실이 놓여져 있다면 더더군다나 성공의 확률은 더 떨어지겠지. 그래서 당신은 전략가입니까라고 물었나보다. 제대로 된 전략가들이 해야 할 일이 그런거라고...  




당신은 전략가 입니까

저자
신시아 A. 몽고메리 지음
출판사
리더스북 | 2013-04-01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 이 책은전세계 35개국 164명의 글로벌 리더들이 오직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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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BOOK/에세이2013. 9. 12. 21:39


난, 하루키가 예전 무라카미 라디오에서 밝힌 브래지어 에피소드에서 (여권신장을 위해서 브래지어 소각 이벤트를 벌이는 걸 보고 '과연 입던 속옷일까'라는 의문을 가졌다고 밝힌 ..) 약간의 기이한 변태(?) 기질이 있다고 느꼈던 적이 있었다. 그 뒤로도 1Q84의 덴고와 후카에리의 판타지 퍼포먼스(?)도 그렇고, 이미 <노르웨이의 숲>에서 와타나베도 나오코와 미도리, 그리고 레이코와 자유분방함을 보여준바 있었으니까 (당시의 평론들을 보면 '학생들의 머리속에 온통 섹스밖에 없는게 놀랍다'라는 비스무리한 평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오해도 그런 오해가 없을거다라고 생각해도 역시 성적인 코드가 등장하면 그 아저씨 또 변태기질이 도지셨나봐 그런쪽으론 굉장히 기발한 하루키씨..라고 해도 뭐 딱히 할 말도 없다.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이란 제목도 약간은 그런 기질이 반영되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쌍둥이 자매를 여자친구로 가지고 싶다는 에피소드에 달린 제목이었으니까. 어쩌자고 쌍둥이 자매를 여친으로 해서 뭐 . 언니인지 동생인지 일부러라도 헷갈리고 싶다는 거에요 뭐에요 하루키씨 !!! 라고 말이라도 하고 싶지만..사실은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 역시 '이번엔 널 한번 써볼까?" "꺅 싫어요 거짓말이죠" 라고 이미 또 쓰셨으니  이 정도되면 기발한 상상력을 넘어서 주책이다 싶을 정도다. 사실 우리도 이보다 더한 상상력을 발휘해서 개개인의 본능속에서 더 엉뚱한 광경들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는 보장은 없다. 더하면 더했지... 하루키의 매력은 꼭 소설속에서 '상실'과 '비관'만을 말하고 '본질'에 대한 탐구만으로 일목요연하게 달려가는 그런 형태 외에도 이런 엉뚱함과 유쾌함이 더 본질적인건 아닐까. 실제 삶과 더 관련이 있을테니까 말이다. 


기질적으로 보면 형식적인 부분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성격때문에 안티 시스템 히어로(Anti-System-hero)같은 작가 같다고 느낌도 종종 든다. 이 동네에서 이 정도의 아웃사이더 히어로는 '커트 보네거트'옹 하나만으로 충분하겠지만 하루키도 거참 나도 만만치 않아 제기랄 하고 속으로 외치지 않는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애초부터 그는 이사를 거주지변경따위의 개념으로 인식하지 않고 주기적인 휴지통 비우기로  이사의 필요성을 인식한 바 있고, 레이 파커 주니어의 'I Still Can't Get Over Loving you'보단 제목으로 'I Still 사랑해'가 더 낫다고 할 만큼 심플한면도 있다. 본인이 에세이에서 밝힌 것처럼 그저 '그런거지뭐'와 '그래서뭐'를 남발하면서 넉넉하고 무책임(?)하게 살고 싶어하는 쪽일 수도 있다. 물론 이 정도되면 일반 서민들도 바라마지 않는 편안하고 쾌적한 마인드일테지만 우리가 정작 부러워하는건  동심과 감성의 스파게티가 오밀조밀 잘 자리잡고 있는 특유의 정서지 싶다. 


종종 그의 글에서 선더버드를 탄 여인이 등장하곤했는데 이게 바로 영화 <청춘낙서>에서 '리차드 드레이퍼스가 길거리에서 우연히 본 선더버드를 탄 꿈의 여자'the girl of a dream'를 잊지못해 밤새도록 찾아다니는 에피소드에서 연유한 거였다. 그리고도 그는 원래 사랑이란 이렇게 기존 시스템을 넘어선 행위라고 했드랬다. (난 지금도 그런 여인이 아무리 멋져도 밤새 찾아헤메고 싶은 마음같은 건 없지만) 세상의 끊임없는 고착화된 시스템과 고정관념들의 틈에서 분투하는 하루키씨라니...그러고 보니 문득 소설을 쓰는 이유로 '개인의 혼이 가진 존엄함을 드러내어 거기에 빛을 더하기 위해서..우리들의 혼이 시스템에 끌려들어가 멸시당하는 일이 없도록 항상 거기에 빛을 비추고 경종을 울리는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보자면 소설이든 에세이든 그는 세상의 고정관념 따위는 내 알 바 아니다라고 지속적으로 은근히 글로 표현하고 있는거 아닌가. 



고정관념 같은 거야 그렇다쳐도 개인적으론 그의 정서적인 표현능력이 부러울 따름이다. <렉스턴의 유령>도 그렇고 <도쿄 기담집>외에도 로저 젤라즈니의 <고독한 시월의 밤>같은 고딕적인 뉘앙스를 좋아하는데.. 하루키에겐 일상적이고 습관적인 상상력으로 충분히 이런 이미지들이 글로 아무렇지도 않게 재현되어지나보다. 찰스턴의 유령이라는 대목으로 그가 묘사한 문장들...


'해질 무렵 코블스톤이 깔린 찰스턴의 고즈넉한 거리를 걷다보면 화려하게 세공된 검은 철문 너머에 , 또는 뿌옇고 희미한 불빛에 드러난 차고 한구석에 무슨 이상한 그림자가 비친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밤의 정원은 적막하고 아름드리 떡갈나무가지에 털실처럼 늘어진 착생식물은 강바락에 흔들리고 백일홍 꽃이 저녁 어둠에 어스름하게 떠있다...모든 것이 고풍스럽고 조용하고 그리고 우아하다


라고 했다. 소설적 배경으로도 하나도 아쉬울 것 없는 밑그림들이다. 그래서 아마 감탄하고 찬탄하는 거겠지. 일부러 만들어보려고 해도 이미지화 시키기 힘든 것들은 수월찮게 글로 그려내는 재주라고나 할까. 그게 관찰력이었든 아니면 그가 가진 특유의 정서적 질감이든 간에 그런 부분은 부러울 수 밖에 없다. 내가 멈춰버린 시계를 보면서 '전지식 시계의 죽음에는 차갑고 무거운 어떤 것이 있어서 몇년에 한번 밖에 멈추지 않기 때문에 그 죽음에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의 도래'를 느끼기야 하겠는가. 강의에 들어갔는데 '휴강'이라고 써있어서 이 짜투리 시간이 마치 인생에 있어서 덤으로 주어진 캐러멜 같다고, '핀볼머신'을 보면서 왠지 멸종해가는 공룡같은 슬픔이 떠다닌다고 혼자서 감상에 젖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저 멍이나 때리면서 현상이 눈표피에서 뇌쪽으로 혹은 가슴으로 더 이상 진입하지 못하고 증발해버리는 거다. 그래서 이 에세이를 읽으며서 감정 회로사이에 끼인 고정관념의 콜레스테롤이 녹는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삶의 유쾌함 지수가 올라가는 느낌과 소소함으로 읽혀지는 소중함같은 것들을 뒤늦게 알게되는 기쁨...그런 것들이 에세이 전반에 구름 처럼 떠있다. 


'모든 면도기에도 철학이 있다'고 했으니 어쩌면 계속해서 무라카미의 에세이를 읽다가 보면 그 느낌들이 내몸에 맞는 옷처럼 편안하고 당연하게 느껴질 날도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본인 말처럼 '자기를 둘러싼 호의와 악의의 총량을 양방향으로 , 그것도 비약적으로 확대된지 꽤 되셔서 (유명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 당시 에세이를 쓸 때처럼 자연스럽게 오가면서 편안히 뭔가를 하실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마라톤이라고 뛰려고 참가하면 갑자기 옆에서 '오..하루키씨 아니세요. 책 잘 봤구요. 사진보다 낫네요 라고 할 수도 있다. 이젠 그가 사진 찍는 걸 별로로 생각한다고 해도 이미 많은 스틸들이 퍼져나간지 꽤 됐다. 오히려 모르는 사람이 있는게 더 이상할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지금의 하루키씨는 에세이에 뭘 쓰려고 해도 이젠 정말 귀찮아졌을수도 있다. 그냥 상상해봤다.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2-07-24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작가가 아닌 생활인 하루키, 젊은 하루키를 만난다 무라카미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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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왔다갔다하는 거리를 놓고 보자면 반디앤루니스 코엑스점은 그야말로 필수 코스였다.  약 집으로부터 1/3 지점이어서 부담감도 덜했고 활력소이자 재미난 여가도 됐었고 여러모로 좋았드랬다.  불현듯 시간이 남거나, 여유가 있거나,  혹은 갑자기 책이 보고 싶어졌거나 것도 아니면 숨겨진 아주 좋은 양서목록을 일부러 업데이트해야 한다면 꼭 이 지점을 들리곤 했다. 이 매장은 특이하게 2층이 없었고 광활한 홀로 구성되어 있어서 직사각형으로 한바퀴 돌면 모든 장르의 책을 다 만나볼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서점도 잘되어 있긴 하다. 책구비로 보자면 여타의 서점이 그리 뒤쳐진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하지만 위치상 집에서 가깝다보니 마지막에 들렸다가기엔 코엑스점이 제일 좋았던 것 같다. 지친 몸을 이끌고 서점에 들렸다가 집으로 가야할 때 여전히 한참을 가야한다면 결국 집에 도착해서는 파김치가 될테니까...


게다가 반디앤루니스에는 갑 서비스가 있는데 이름하여 '북셀프'서비스라는 것이 계시다. 매장에서 골라서 바로 결제하고 들고 나올수 있다는.... 그러니까 온라인 주문가격으로 매장에서 구매가능한 아주 친절한 서비스다. 그리하여 코엑스점에서 산책하듯 책구경을 하다가 도저히 참기힘든 책을 발견하게 되면 싼 가격으로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결제후 들고 나오는 것이다. (교보문구의 경우 바로드림이 있긴하지만..이건 주문 후 1시간 후에 수령이 가능하다. 그리고 재고여부도 확인되어야 한다.) 부담도 없고 기분도 좋고.........  일상의 주요 루트 중 하나였는데...그만....


리뉴얼 공사로 코엑스점이 휴업한단다...무려 약 13개월동안..@@ .....그러니까 공사가 1년이 넘어가주신다는 뜻이다. 이건 거의 페업수준인데 나중에 어떻게 리뉴얼되어서 오픈할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갑자기 서점하나가 지구상에서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되버렸다. 그리하여 졸지에 '집으로 가는 길에 들르는 정다운 서점' 한 개가 덧없이 지도에서 사라져주시고 북셀프 서비스는 중지되고 ...다른 서점들을 지도에서 찍어보아도 도저히 직선코스가 나오질 않으니 그야말로 반디앤루니스는 온라인 구매밖에 안남은거다. 비슷하게 고속터미널이 있긴한데 이것도 정말 돌아돌아가는거라 영 내키질 않는다.  


아쉽게 되버렸다. 코엑스가 13개월 오픈하더라도 그땐 내 위치가 어떻게 변해 있을지 모르니..지금으로선 이 상황이 정말 아쉽게 되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일부러 다른 반디서점을 찾을 순 없는 노릇...고민이 되긴하지만 책을 어느정도 직접 보고 구매하는 내 습관상 다른 직선루트에 있는 서점 목록을 다시 한번 확인해볼 밖에....가끔가다가 이런 생각을 해본다. 그깟 리뉴얼 같은 거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구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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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반디앤루니스입니다.

반디앤루니스 코엑스점이 코엑스몰 자체 리뉴얼 공사로 
2013년 09월 11일(수)부터 약 13개월 동안 임시 휴점에 들어갑니다.

임시 휴점 기간에는 코엑스 매장 운영이 중단되며
이에 앞서 코엑스 북셀프 서비스는 9월 5일에 임시 종료됩니다.

관련 내용 아래와 같이 알려드립니다.

<아              래>

1. 코엑스점 임시 휴점 기간
    - 영업 마감일 : 2013.09.10 (화) PM10:30
    - 영업 재개일 : 2014.11월 예정

2. 코엑스 북셀프 서비스 임시 종료
   - 2013. 09.06 (금) ~ 2014.11월(예정)
   - 09.05일까지의 북셀프 주문 도서는 09.09일까지 코엑스 매장에서 수령하실 수 있습니다.
   - 영업 종료일 이후 미수령 도서는 부득이하게 취소/환불 처리가 될 수 있습니다만 그 전에 개별 연락을
     통해 수령 안내를 해 드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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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 코엑스점을 이용해 주신 점 깊이 감사 드립니다.
코엑스점을 사랑해 주신 고객님들 덕분에 지금의 
저희가 있음을 압니다. 책과 함께 하기 더욱 좋은
서점으로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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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ewell

문득 든 생각인데 적어도 이 바닥에선 '보르헤스'에 관한한 다 구라쟁이들인걸로 보인다. 

이 수없이 무한히 난무하는 헛소리들에 귀를 기울이다보니 웃음만 나와.....

누구 없을까. 자기들은 알고 있을까. 자기가 굉장히 자기도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이 무한히 반복되는 거대 미친소리들을 친절히 잠재울만한 혜안의 소유자는 어디있을까.

다들 피에르 메나르처럼 <픽션들>을 다시 쓸 기세들이야. 

보르헤스의 <픽션들>과는 다른 이야기라고 하면서...


^^


Posted by kewell

읽을 때는 이걸 언제 다 읽나 했는데 ....

의외로 술술 넘어가는 이야기들과 지루한 듯 하지만 무덤덤히 지날갈법한 화자의 툭툭거리는 듯한 어투..

그리고 무엇보다도 간간히 뮤지컬 저리가라할 정도의 낭낭한 등장인물들의 퍼포먼스 

중반부를 넘어 후반부로 달려가고 있다는...


가끔 느끼는 거지만..

요즘에는 이런 소설을 거의 만나볼 수가 없지 않나싶다.

모비딕이 아니었어도 진득히 이렇게 물고 늘어져서 아주 진을 빼버릴 정도로 집착하는 묘사와 표현들은 귀찮고 짜증나는 겉저리가 되어버린지 오래, 생략과 간략함을 무기로 스피드한 전개를 꿈꿔버리면 이런 글을 더이상 못만나지 싶다. 대단하신 양반인거지..이렇게까지 쓰다니 말야. 시간이 지났어도 위력은 여전한 듯...




Posted by kewell

카포티 소설을 읽고 줄을 그은 부분 메모할 때 드는 생각...

뭐 이렇게 줄을 많이 그어놓았어 너무 많아서 다 적기가 너무 힘드네.. 

정말 적당히 긋고 적당히 접어놓았어야 하는데 너무 많다 많어. 이거 정리하고 나면 커포티 소설은 잠시 접어 놓아야 할 듯.. 








Posted by kewell
Review BOOK/철학-사상2013. 9. 6. 22:41


간혹, 아주 두터운 두께의 고전이나 오랜 문학소설, 그리고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 문학들을 접하게 될 때, 테크놀로지적인 습득장치가 마련되어서 코인을 넣고 머리에 뭔가를 연결하고 '스팍'하고 번쩍이면 머리의 기억장소에 정확하게 내용과 핵심들이 저장되면 정말 편할거야라고 황당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아마 키아누 리브스가 코드명 J에서 비슷한 걸 했었지싶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 싶지만 그만큼 세월을 감내한 마스터 피스 일수록 왠지 모를 거대 지루함은 견디기 힘들고,  암연과도 같은 혼란의 미로속에서 헤맬 만큼의 얕은 이해력을 생각하면 상상이라도 이랬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왜 그렇게 책 읽기가 어려운 건지.... 술술 읽히고 머리속에서 갈갈히 용해되고 지독히도 다양한 문장의 치즈들이 덕지덕지 발려져 꾸역꾸역 뇌로 들어오면 이를 재빨리 녹여줄 콜라같은 '이해력'이 있었으면 하는데 하지만 그런게 있을 턱이 있나 세상은  출중한 독서가를 많이 등장시켰어도 절대로 '훌륭한 독서가'가 되는 기발한 방법같은 건 알려주지 않는 법이다. 이게 다 진득히 뭔가를 읽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서일 수도 있고 뭔가를 진득히 읽고 생각하기를 세상이 원하지 않아서 일 수도 있다.  그래서 책 다이제스트도 생겨났다고 믿는다. 책 내용을 친절히 풀어서 설명해주고 핵심이 뭔지도 가르쳐주고 개인적인 평도 덧붙여주고 그러면서 그 험난한 '독서생활'이 없을지라도 유사 그럴듯한 독서가 행세를 할 수 있지 않은가. 그야말로 편한 세상인 것이다.  


이런게 다 나쁘다는건 아니다. 솔직히 언제 읽을 지 알수도 없는 수없이 많은 고전들과 듣도 보지 못한 소설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나오게 되면 여기서 뭘 골라낸다는 것 자체가 노동이다. 이렇게되면 읽는 능력외에도 '골라잡는' 능력도 필요하게 되고  골라잡으려면 '모니터링'을 잘해야 하고 이 모든 걸 다 감안하면 거대한 시간 놀음 속에서 점점 침몰되어가는 자신을 볼 수도 있다. 어떻게든 좋은 책을 골라는 잡아야겠지만 이런 걸 누가 가르쳐줄까..그리하여 책을 읽고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을 다시 골라잡게 된다. 아마도 MD추천이니 하는걸 믿고 책을 잡았다가 지적허세질에 당했다고 부르르 떨면서 책을 놓아버렸던 경험이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인건 알려진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이런 책을 내게 되면 적어도 그 책 속에서 언급했던 비평과 이야기들에 신뢰감을 가지고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이다. 


서평도 그렇고 책읽기에 대한 책들도 그렇고 교습적인 강요투의 문장만 무더기로 반복되지 않는다면 해가 될 이유가 없다. 어차피 다들 참고이상으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고 개인적인 취사선택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을테니까 책을 읽는 시점에서는 아 그래 이 책이 그런 책이야 한번 고려해보도록하지 라고 스스로 모종의 체크만 해둘 뿐이다. 나중에 한번 그 책에 대한 저자의 평을 떠올리며 슬쩍 몇장 넘겨보다보면 책의 저자가 말한 뉘앙스가 맞는지 어떤지 알게 되고 그러다가 보면 저자가 책을 읽고 감회를 밝혔던 그 책의 가치를 알게 된다. 그정도면 훌륭하다. 그런데 여기에 몇가지 더 보너스로 추가한다면 이런게 있다. 



닉 혼비


책에 대한 평을 쓰면서 자기만의 스타일과 격조있는 문장과 그럴듯한 비유와 기발한 표현들을 버무려서 독자가 책을 읽지도 않았는데 마치 이제 막 읽은 것처럼 감정을 전달해줄 때, 옆에서 친한 친구가 어제 읽었던 책 이야기를 도란도란 이야기해주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리고 자꾸 이 친구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지는거다. 어떤 재미난 이야기를 해줄까 오늘은 또 어떤 책을 읽고 유머있는 이야기를 해줄까. 번뜩이는 재기와 신랄한 지적질과 솔직한 표현들을 기대하며 기대한다. 그렇게 즐거움을 가지고 책에 대한 책을 읽는 것. 그 속에서 저자의 아이덴티티까지 덤으로 획득되어지면 단순히 책정보를 전달해주는 것 이상의 에세이를 만나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그 책이 바로 이 <런던 스타일 책읽기>다.  


물론 알베르토 망구엘 할아버지가 이걸 봤으면 이런 허접한 독자들을 봤나. 내가 그랬지 않나 책을 읽을때 낱낱히 문장을 해부하고 그 이면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완전한 번역가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어라고 신랄하게 뭐라고 하시겠지만 설사 그렇다고해도 우리는 책에 대해 대작해주는 작가를 믿을 수 밖에 없다. 그는 나보다 더 지적우위에 있고 사리를 분별할줄 알고 가치기준의 명확함과 대중들에 대한 개인적인 판단이 어느정도 인정되어있으니까..그렇지 않았으면 내가 닉혼비의 소설을 읽었을 이유가 없고 이 책을 굳이 들고 닉혼비 특유의 재치를 읽으며 미소를 지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닉은 책에 대해 훌륭한 자세를 가지고 있다. 그는 '돈을 받지 않았어도 했을일, 즉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쓴 글에 대해서 돈을 받을 셈이었다고 솔직히 고백했고, '우리는 스스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이미 읽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러한 책을 읽는 경우가 많다고 짐짓 아픈 곳을 찌른다. 그렇다. 이런 허세질이 없으면 우리가 괜히 뜬금없이 날도 더운데 혹은 스산해질때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이해도 안가는 고리타분한 고전문학을 집어들겠는가. 스스로를 속이는 또 하나의 기묘한 지적놀이로 독서를 택해도 개멋 부린다고 뭐라 하지 않는다. 다만 닉혼비의 이 글을 접하게 되면 등짝을 손바닥으로 짝하고 맞은 기분일 거다. 


그런 재미없는 책을 읽으면 지루해지고, 지루해지면 성격이 더러워지고 그렇게 되지 않기란 너무 쉬운 방법, 재밌는 책을 찾아서 읽으시라는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그리고 솔직한 권유야말로 가식없는 '독서가'로서 진솔한 모습이 아닌가. 닉혼비여서가 아니라 어느누구라도 이렇게 말해줬어야하는데 다들 청소년 권장도서 100선이니 뭐니 하는 항목에다가 읽기도 싫은 무지막지한 목록을 나열해주면 어떡하란 말인가. 이런걸 접하면 개인적으론 다들 독서의 적들 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더 읽고 더 배우신 양반들이 추천해주는 책이란 것들이 지나칠 정도의 개인적이라는 건 뭔가 이기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럼 결국 닉이 말한 '책은 어려워야 하고 어렵지 않으면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있는 그런 분들 뿐인거다. 


사방팔방에서 이런 공격들로 버티려면 이 책을 읽으면서 닉혼비가 종횡무진 펼치는 쾌도난마를 구경하면 된다. 정치인 전기따위를 읽으면서 하품하지 않고 좀 더티하지만 3류소설을 읽으면서도 피식 피식 웃는게 더 유익하다는 무언의 공감대가 문장을 통해 드러난다.  이 책에서 언급한 책들의 대개는 국내에 출판되지도 않은 듣도보지 못한 책들도 부지기수지만 그 책들이 가지는 진정한 요약본을 바란건 아니었으니 애초에 별 문제는 없다. 하지만 그가 어떤 책에는 기막힌 칭찬을 ...그리고 어떤 책은 도저히 좋은 이야기를 할 수 없어서 책제목도 표기할 수 없다고 솔직히 써주었을 땐, 닉 혼비는 믿어도 된다고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 <런던스타일 책읽기>의 서평스타일을 본받으려는 MD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화려한 책편력의 이면에서 미친듯이 읽어야 하고 미친듯이 책을 구매해야하는  필수부가결한 삶이 따라붙어야만 가능하다고 느낄즈음 , 닉혼비의 이 책이 시리즈로 나와줬으면 어떨까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VOL.1 VOL.2 이런식으로..정말 재밌지 않을까. 수없이 쌓인 책더미에서...무한히 반복되는 바벨의 도서관에서 책장의 한칸씩을 먹어치우는 신출귀몰한 책벌레를 보는 재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자 즐거움이다. 




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

저자
닉 혼비 지음
출판사
청어람미디어 | 2009-05-18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19세기 찰스 디킨스, 체호프의 고전부터 21세기의 최신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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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ewell

이제 막 트루먼 커포티(Truman Capote)의 '차가운 벽'을 다 읽었는데...정말 기가막히게 글을 잘쓰신다.  아마 이래서 커포티의 책을 읽으면 작가지망생들이 가슴이 두근두근거린다고 했나보다. 커포티의 문장을 보고 자기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데 막상해보면 전혀 흉내내지지 않는 '절대 재능'의 영역이었다는 자괴감과 엄청난 괴리감만 느껴진다는..


문득 알베르토 망구엘(Alberto Manguel)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이 분..글 잘쓰시면서도 자기는 글쓰는 쪽으론 망했다고 생각해 접고 '독서' 쪽으로 자신의 인생을 거신 분이다. 물론 이 분이 유명해진건 장님이 된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부터였지만...아무튼 <책 읽는 사람들>에서 이런 말을 하셨드랬다.  





'독서하는 능력이 우리 인간이란 종을 정의한다' 고.........





그래서 쓰기보다 읽기에 심혈을 기울이긴 하는데 잘안된다. 졸리고 피곤하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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