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illa Essay2013. 9. 3. 22:01

어느 유명한 작가가 서점에 가서 '디킨즈의 데이비드 코퍼필드'가 어디있냐고 물었다. (여기서 유명작가는 '무라카미 하루키'다. )


점원왈 


'그게 누군데요' ......

'디킨즈요..데이비드 코퍼필드요' 

'그러니까 그게 누군데요'...... 

'헐..'


어차피 015B도 잊혀지고 김광석도 사라지고 유재하도 기억못할게 뻔하다. 하물며 샬롯 브론테나 제임스 조이스, 피츠제럴드 정도는 아마도 듣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할지도 모르지. 어쩌면 옛날 유년시절 다 떨어진 조악하고도 텁텁한 책더미에서 노을을 맞아가며 읽었던 마크 트웨인의 소설도 역시 같은 신세가 되겠지싶다. 


얼마 전 어머니가 전화로 오랜만에 추억하시며 옛날 일을 꺼내놓으셨다. 

예전 근교 주공아파트에 살 때, (정확히 701동 307호였다. 잊혀지지도 않는다.) 시에서 만든 도서관이 같이 건립되었드랬다. 그때 입주하면서 앞도 뒤도 논이었던 풍경이 다였던 그 아파트 부근을 쓸쓸히 걷다가  열지도 않은 도서관에 갔었던 걸 기억하냐고..(개관을 준비중이었던 도서관이었다.)


어머니는 그때 오픈도 안된 도서관에 나를 들여보내주려고 무던히 애를 쓰셨다. 그 사서에게 애 좀 들여보내주면 안되겠냐고 .... 그저 책을 읽게만 해달라고..그 사서분은 남자분이었는데 웃으면서 들어오라고 했었다.  그리고 내 키의 몇배나 컸었던 책장들의 나래비를 보면서 그 틈에서 스파이더맨처럼 장르를 옮겨다녔다. 그 해 여름방학을 그 숲에서 살았다. 책의 숲...말이다. 초딩 3학년때다. 


그 때 읽었던 책들 오랜 기억으로 남아 내 삶과 같이 간다.

묘한 기분이다.


최근 고전이든 문학이든 뭘 읽었다는 애들 본 적이 별로 없다. 

심드렁한 얼굴 보는게 더 고역이다. 

책좀 읽으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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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illa Essay2013. 9. 3. 08:41





<이미지 출처 : http://culturacolectiva.com/lo-surreal-en-murakami/>


 


'노르웨이의 숲'을 '상실의 시대'로 읽은 지 대략 이십여년이 흐른 듯 싶다. 그땐 하루키의 문체가 좋다느니 혹은 그의 스타일이 좋다느니 하는 열렬함이 있긴했는데 그렇다고 정서상의 '원심분리기'라는게 있어서 하루키 책을 넣고 스위치를 켜면 45 퍼센트의 우울함과 15 퍼센트의 로맨스, 5 퍼센트의 자기연민, 그리고 35 퍼센트의 재즈가 백그라운드로 깔려있는 연상녀와의 섹스로 구성되어있어요라고 딱 부러지게 말할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냥 모호함과 개인적인 느낌이었을 뿐이다. 어찌됐든 당시 대중의 문학습득 분위기는 지루함을 무찔러라같은 느낌이었다고 기억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때는 바야흐로 밀레니엄을 맞이하며 세기말의 회색빛 암울함을 장식처럼 주렁주렁 매달고 누군가가 돗자리만 펴준다면 이 욕구들을 다  싸질러버리겠다고 마음먹었던 시절이었으니까..'희망'따위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됐고 일탈과 방황과 젊은시절의 타락정도로 질펀한 섹스를 묘사했어도 뭐 그정도 쯤이야라는 젊은층의 배려(?)가 있었드랬다. 


약물에 중독되서 그룹섹스를 벌이는 파격적인 내용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무라카미 류)를  모 당시 유명 작가는 '의미있다'며 자기 부인에게 읽어보라고 추천까지 했다고 들었는데, 사실 난 그 때 그 책을 읽으면서 이런 걸 읽고나서 누군가에 추천해준다는건 '나도 너와 이런걸 해보고 싶어'라고 은밀히 의사표시를 하고 있다는 오해를 피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었다. 욕구 탐닉의 위험수위라는게 이런게 아니면 뭘까라고 이견이라도 말하고 싶었지만 개인이 바라보는 문학의 질감들은 다 다르기에 나같은 속물적이면서도 대중 표피층에 살면서 정도껏 소비를 일삼은 범인들의 입장에선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의 의미를 안다고해도 내 삶은 더 투명해지지 않기를 바랬다.


당시에 읽었던 책들은 다 이런 류의 정서를 광고 카피로 가지고 있었다. 어쟀든 인기를 끌었고.. 시대를 풍미했고.. 살아남을 것들은 살아남고 사라져줄 것들은 침식되고 세월의 퇴적층으로 가라앉아주셨다. 그런데 묘하게 '정서'는 남았드랬다. 하루키 정서가 아직도 꿈틀거린다는 느낌, 이윽고 언론에서 인용한 하루키스러운 이디엄들을 나열했는데 피식 웃음이 나온다. 레이먼드 챈들러, 트루먼 카포티, 스콧 피츠제럴드, 레이먼드 카버정도야 인정해줄만하지만 삿포르 맥주라디오헤드스탠게츠니 하는 것들은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어서다. 물론 그가 라디오 헤드를 듣고 게츠의 음악을 듣기야 했겠지만, 하루키가 '그럼 난 뭐 삿포르 맥주를 먹다가 라디오헤드를 듣고 스탠게츠로 레이블을 돌려가며 듣는 천편일률적인 인간인가'라고 한숨이라도 쉴 판이다.  


그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 핀볼'이래로 수없이 끄적였던 에세이 시리즈, (이를테면 무라카미 라디오)를 보다보면 영미 문학쪽의 조예가 남다르다는 것즈음은 짐작할 수 있으니까 그가 피츠제럴드의 개츠비 이야기를 자꾸 이야기하는 이유를 알게된다.(이 아저씨는 피츠 제럴드를 너무 좋아하긴 한다.) 예전 등단시절, 오에 겐자부로의 초기평에서는 하루키가 '너무 미국문학의 영향을 받아 개성이 없다'라는 평도 있었다. 챈들러를 칭찬하고 카버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카포티의 유려함을 감탄하는 정도는 그의 문학적 스타일로 볼 때, 어떤 모체가 될만한 스타일상의 '목표치'같은 것이었을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카버나 카포티가 되려고 노력했다는 건 아니다.  (가끔가다가 챈들러의 하드보일드가 슬쩍 엿보인다고는 할 수 있어도..) 다만 하루키의 문체가 어떤 독서를 통해서 형성되었는지에 대해 궁금증을 해소해줄만 하다. 그래서 다들 챈들러니, 카버니 카포티니 찾아 읽는거겠지 싶다. 


그런데 왜 이런 것들이 관심거리가 될까 궁금증이 생긴다. 그가 브룩스브라더스의 자켓을 걸치던 윈드 브레이커를 즐겨입던 뭐 특출난 건 아니지 않나 싶다. ...그럼 아침에 조깅을 하고 가끔가다가 커틀릿을 만들어먹고 거품많은 맥주에  튀긴 두부를 한 모이상 먹으면서, 마일스 데이비스와 빌리 할리데이 음악을 잔잔히 듣고, 진구구장 뒤에 누워 푸른하늘을 보면서 '네가 응원하는게 저팀이야'라는 핀잔도 여친으로부터 들어야 하루키를 닮아가는건가라는 생각도 들어버린다. 이런걸 해보면 하루키의 감정상태가 묘한 리듬을 타고 정서에 와서 콱 박히기로 한단 뜻인가... 문학의 싸구려티를 내기위해서라면 주저없이 하루키를 읽어라라고 비아냥 거렸던 비평가들의 입장에서는 이거야말로 무턱대고 추종하는 하루키빠들의 무지함아닌가라고 지적할지도 모르겠다. 


상실의 시대를 읽으면서 옳다구나 카포티도 나왔고 챈들러도 나왔어..카버도 나오고 피츠 제럴드에 개츠비도 나왔으니 이젠 뭐 또 되새김질할만한 하루키적 특성들이 반복되는게 눈에 보인다고 이젠 하루키는 끝장난거라고 밑천이 드러난 교활한 자기복제의 증거들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고 의미심장하게 미소라도 짓는다면 이거야말로 오해하는거 아닌가. 개인적으론 최근의 다자키 쓰쿠루 건도 그렇고 업계가 인기매몰의 포커스가 하루키에게 다 쏠리는걸 못마땅해한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상실의 시대를 읽었던 세대가 현재의 사회주류층이기 때문이라는 부분에 생각이 미치면 이해못할 것도 없다.  어차피 지나가는 세대고 흐르고 나면 다시금 기억하려고해야 생각나는 이미지들에 불과하다. 하루키가 아니었어도 조정래의 정글만리나 히가시노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 알랭드 보통의 세대가 온다. 다만 하루키적 정서라는것도 알고 보면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이나 그리스인 조르바와 같은 대중성을 갖지 말란 법이 없으니 좀더 족적을 남기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나쁠 건 없지 않을까. 아무리 그래도 그의 스타일상 하루키가 뭘 했다고 해서 그걸 따라하거나 그게 그의 스타일이라고 하는건 좀 웃음이 나온다. 



cf. 하루키는 삿포르 맥주보다는 거품이 많은 맥주라면 뭐라도 좋다고 했고, 특별히 스탠게츠보단 두루두루 재즈음악을 좋아하며 라디오헤드외에도 역시 레드핫칠리페퍼등도 많이 등장한다. 블레이저 코트야 그렇다치지만 슬리퍼에 가벼운 차림으로 나다니는 걸 좋아하고 다만 야쿠르트 스왈로즈를 선호하긴한다. 이 정도는 각자 다 있는 취미들이다. 이게 하루키여서 생겨난 뭔가 스타일리쉬한건 아니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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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루키가 아침에 조깅을 하고나서 진득히 책상머리에 앉아 오전내내 글을 썼는지 알 것도 같다. 만약에 할 수만 있다면 적당한 운동과 오전의 쾌적한 공기가 스며들때 조용히 서걱거리며 문장을 고민해본다는건 꽤나 즐거운 일인 듯 싶다. 


할수만 있다면야 

멋진 삶이지...


꿈같은 일이어서 그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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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한 혼돈때문에 '외우지 않고 통으로 이해하는 통세계사'와 '르네상스' 그리고 '로마 멸망사'를 비롯한 몇 권의 책들에 등장한 이야기들을 몰스킨에 정리해두고 있다. 생각해봤는데 역시 흐름상 순서가 의미가 있을 때는 적어도 앞뒤 전후좌우의 사정등을 알아두는게 편할 듯 하여 시작했는데 머리가 정돈 되는 느낌이라 좋다. 가끔가다가 끈금없이 이 사건이 먼저인지 저 사건이 먼저인지 헷갈릴때도 난감이지만 무엇보다 제일 당황스러운건 그렇게 책을 꾸준히 읽어놓았어도 전혀 머리속에 남아 있지 않을 때....이래서야 인문이고 역사고 뭐고간에 제대로 뭔가를 알고있다고 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해보니까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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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BOOK/소설2013. 8. 28. 11:04


블레이크 애드워즈의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1961)을 본 건 어린시절이었는데 지금와 생각해보니 도대체 뭐가뭔지 알지도 못한 채 그냥 보았던 것 같다. 이건 다들 아시는 오드리 햅번(Audrey Hepburn) 때문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게 없다. 청순하고 깜찍하면서도 톡톡튀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홀리'에 이입되었을 때, 모두들 <로마의 휴일>의 앤이 좀더 세속적이고 거침없어졌구나라고 이해했었으니까. 관객들은 영화속에서 오드리 크로니클을 모니터링하는 마음가짐으로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로마의 휴일>(1953)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오드리가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에서 명예와 인기를 지속시키기 위해서 캐릭터를 유지하겠다고 선언했었어도 이상할 건 없다. 다만 <로마>나 <티파니>는 오드리를 담는 같은 성향의 그릇이었을까란 물음이 남긴한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계속 이야긴 하고 있지만, 사실 말하고 싶은건 영화가 꼭 트루먼 커포티의 <티파니>를  100% 반영했던 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로마의 휴일>의 앤은 결코 <티파니에서 아침을>(이하 티파니)의 홀리가 될 수 없었다. 이게 오드리였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도 있긴 하지만 가능했던 이유라면 '티파니'가 소설 원작과는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다는데에도 이유가 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발리에서 생긴 일>의 하지원이 조인성과 소지섭 중 한명에게 고백하고 한명과는 친구먹고, 발리에서 셋이 나이트파티라도 하면서 소근소근 웃으며 엔딩이 되버린 것과 비슷하다.) 


뭐 굳이 새드엔딩이나 극적인 내러티브가 있어야만 그럴듯한 작품완성도가 유지되는 건 아니지만 '홀리'는 어디까지나 자유로운 영혼이었고 '폴'이란 인물은 등장도 안했고 (그럼 소설의 화자가 '폴'이 아니라면 누구냐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소설 어디에도 화자가 홀리와 결혼해야겠다고 다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화자는 커포티의 감정이 깃든 CCTV 정도..게다가 커포티는 동성애성향의 뉘앙스를 너무 풍긴다.) 홀리는 행복했지지도 않았드랬다. 나도 홀리가 행복해지는데는 찬성이다. 소설속  인물이 불행을 향해 치닷는 걸 보면서 이게 제대로된 현실반영이야 이랬어야 해라고 위안따위를 하며 가식떨고 싶은 마음 추호도 없다. 결국 내가 어린 시절 보았던 영화 <티파니>의 그 꽉찬듯한 희망과 행복은 그저 꿈같은 연출의 산물이었으며 실제 원작에서의 홀리는 좀더 애처롭고 처연하며 쓸쓸하게 저벅저벅 스토리를 기어나가 풍문으로 엔딩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대로 했다간 1960년대 영화를 보고나서 다들 길거리에 침을 뱉거나 술병하나를 들고 '삐뚤어져버릴거야라고 우울해했을 것이다. 이걸 시대가 용납했을리가 없지 않나..


티파니에서 아침을 (양장)트루먼 카포티(Truman Cap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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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히 섞인 황갈색 머리카락. 알비노처럼 하얀금발. 노란머리채가 아른거리고 여름에 가까운 따듯한 저녁에, 날씬하면서도 시원한 검은 드레스에 검은 샌들을 신었으며, 진주초커를 건 채 세련되게 마른몸매를 자랑하며 아침 식사용 시리얼처럼 건강하고 비누와 레몬처럼 청결한 분위기를 풍겼던 여인이 홀리였고 오드리였다. (햅번 스타일이라고 불리우는 블랙드레스와 진주목걸이 매치업은 솔직히 커포티의 묘사덕분이지 오드리가 창안해낸게 아닌 것일 수도 있다.) 영화에서의 오드리는 원작의 이미지를 제대로 반영했다. 이걸 그레이스 켈리가 할수도 없고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더더군다나 할수 없는 영역의 이야기다. 활자그대로 옮긴다면 오드리는 '홀리' 그 자체로 완벽한 변신을 했던 셈이다. 이후로도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는 홀리를 떠올리기에 앞서 먼저 머리속에 오드리 햅번이 해맑게 웃는 모습이 구름처럼 피어오르고 그 다음 소설의 명문장, 혹은 영화속 대사가 떠오르는 식이다. 


영화의 잔상이 이토록 강했으니 원작소설을 읽을 때 홀리가 어떤 캐릭터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건 다 영화덕분이지만 초반부를 지나 중반부를 넘어갈때까지도 괴리감은 미미했으니까 나쁜 상상력은 아니었다. 다만 스토리가 진행됨에 따라 커포티 원작의 소설이 좀더 농도짙은 현실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꼈다. 

이건 위스키에 눈이 풀려서 <왈츠추는 마틸다>를 합창하는 호주장교들 틈을 스카프처럼 떠다니는 홀리의 행실에 관한 묘사때문만은 아니다. 코티지 치즈와 멜바토스토로 연명하면서도 레즈비언이 훌륭한 주부라는 홀리의 익살스러움같은 건 오히려 애처로운 것이기도 했고..주변에서도 그녀를 '세코날 병바닥을 비우고 인생끝났다고 신문에서 보게될 여자라고 읇조릴 때는 아 커포티가 홀리를 어떤 부류의 삶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묘사하리라는 것정도는 예측이 되고 있었다. 다만 영화는 너무 귀여웠고 매력적이었을 따름이다.

시간이 지났어도 홀리가 사람들의 기억과 추억속에 남는건 오히려 이미지도 이미지지만 특유의 '솔직함' 때문이었을 것 같다. 대중매체들은 홀리를 고전 된장녀의 프로토타입이라고 가끔 언급하지만 된장녀는 모름지기 스스로를 되돌아보거나 처지를 신랄하게 비꼬거나 하는 일 따위는 별로 안하거나 스스로 인정하지 않거나 뭐 그렇다. 홀리가 영화배우로 변신해서 스타가 될 만한 기회가 왔음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자신은 절대 영화스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너무 힘들고 자신의 콤플렉스는 그럴만큼 열등하지 못했으며 영화스타가 된다는 것과 하늘높은 줄 모르고 솟는 자존심이 손을 잡고 나란히 가야하는 일이었다고...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난들 부자고 유명해지는게 싫겠어요. 내가 어느날 아침 '티파니'에서 아침을 먹는다해도 여전히 나이고 싶어요 " 라고..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라고 제목이 정해진 이유가 뭔지 좀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쿨하면서도 적극적이고 활력이 넘치고 매력적이기까지하면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기 마련이다. 때가 지금의 분위기와도 많이 달랐던 원스어폰어타임 시절인데도 이런 여성을 그릴수 있었다는 건 굉장히 파격적이면서도 진취적인 여성성에 대한 사회적분위기를 가늠케한다. 대개의 경우 이렇게 매력적인 여성들이 이야기구조상 '결핍'을 가지지 않는건 일종의 배신같은 것이었을테지만 이런 것들은 동정심을 자아내고 애처롭게 바라봐주는 독자들의 증가를 위한 것들이지 신랄한 삶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가 그렇게 흘러갔던 거겠지 그래서 홀리가 마지막 프로포즈를 받아들이고 정상적인 삶으로 제자리 했던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설은 아니올시다였다. 

홀리 골라이틀리의 소설속 등장에서 드러나는 몇가지는 '고양이에게 이름 붙이지 않기' 그리고 '심술궂은 빨강'에 대한 공포. 사랑을 바라보는 굉장히 작위적이고 가벼운 듯한 홀리의 태도. 감춰진 현실의 이름 '룰러매반스'에 담겨진 그녀 본연의 과거들. 그럼에도 유지되는 그녀의 애처로운 모습이다. 소설책의 정확히 반의 지점이 지나게 되면 이런 우울함과 안타까움들이 와인잔에 와인이 넘치도록 수위가 올라온다. 적당히 끝냈어도 좋았을 파티용 와인이었는데 그만 흘러서 넘치고 파티는 망가지고 그러는 느낌 알잖는가..

" 난 이 고양이에게 이름을 줄 권리가 없어요. 얘는 누군가의 것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우리는 어느날 그저 강가에서 마주친거나 다름없죠. 서로의 소유가 아닌걸요. 얘는 독립적인 존재이고 나도 그래요 " 

"두렵고 돼지처럼 땀이 나는데 뭐가 두려운지 모르는...다만 나쁜 일이 생긴다는 것 말고는..그런데도 뭔지 모르는 거예요" 

홀리가 그렇게까지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아마 스스로에대한 독립심이나 현실에서 불현듯 닥쳐올 미지의 아슬아슬함 공포감에 대한 반작용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가끔은 홀리같다면 참 삶에 조언같은 건 적나라하게 말해줄거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아마 홀리가 화자에게 이야기했던 '돈을 버는편이 좋을것 같다고 비싼 상상을 하니까라고 말하는 대목들은 폐부를 찌르면서도 현실적인 부분 아닐까. 그리고 내가 빈정거리며 그 의견에 반대라도 한다면 그녀는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여기서 저 문까지가는데 4초면 되겠죠. 난 2초 주겠어요. 라고....정신이 확들 것 같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커포티의 소설에서만큼은 여러가지로 머리가 복잡해지곤 한다. 나뭇잎이 쌓인 호숫가에서 낙엽을 태운 모닥불이 인디언 신호처럼 흔들리는 공기속의 유일한 얼룩이었다고 할 때만 해도 편안한 정서와 커포티의 탐닉적인 묘사를 그냥 즐기면 될 뿐이야라고 생각했는데 화자의 소설에 대한 평을 하면서 "두번 읽어봤는데 짜증나는 애들이랑 흑인이랑 떨리는 이파리 어쩌고...아무 의미없잖아요"라며 폭풍의 언덕고 비교하면 그야말로 멘붕이 올 것이다. 짝사랑하던 여인에게 의외에 말투에 당황하고 찬물담긴 컵한잔 확 뿌려맞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솔직함도 지나치면 병이겠지만 홀리정도 되야 현실에 발딪고 사는 것 아니겠는가. 티파니를 동경한다고 해서 상류사회를 꿈꾸는 머리에 바람든 여인이라고 매도하기는 억울한 거다.


그래서 아마 말미에 휘몰아친 사건들에 묻혀 사라져버린 홀리가 해피엔딩일지 새드엔딩일지 가늠이 안되는 것이겠지싶다. 걸어온 것만 보면 폭풍처럼 살아갈 수도.. 그렇다고 박차고 나갈 용기와 재능도 없어져버린 보통사람들로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었으니까. 그저 소설의 화자처럼 슬쩍 다가갔다가 연정의 마음을 품었다가 의외로 쌀쌀함에 상처받고 다시 너도 함 상처받아봐라고 외면했는데 아예 그 존재가 삶에서 사라져버린 느낌..비워진 자리를 보며 더 쓸쓸하고 슬프다는 느낌..그래서 차라리 홀리가 티파니에서 아침을 먹더라도 자리에 있었으면 하는 느낌...


아마 그런 느낌이 소설을 읽고 난 한동안 계속 스물스물 거렸던 것 같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저자
트루먼 커포티 지음
출판사
시공사 | 2013-06-24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잊을 수 없는 한 시절에 관한 짧은 동화!고독한 소년의 눈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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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ewell
Review BOOK/자기계발2013. 8. 26. 14:04


인문학이 아무리 모호하고 힘들어도 사실 문학이든 소설이든 역사이야기든 인문학과 관련없다고 단언할만한 분야가 없다고보면  이건 완전히 새로운 뭔가를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원래 인문학이란 그런거니까. 사람에 대한 학문이 인문학인데.. 어디 인간을 빼고 이야기할만한 학문들이 설마 있기나 할까. 우리 모두는 어느정도 인문학을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지갑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지니고 다녔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어쩌면 일상속에서 겪어온 모든 예제들은 '인간사'에 이미 다 출제되었을테니 바이블도 이런 바이블이 없지 싶기도 할테고...어차피 인문학적 회귀는 누구나가 예측가능한 것들이었다. 원래 뭐가 잘 안풀리면 기본부터 생각하기 마련이다. 새삼스럽게시리 이제와서 인문학 붐이라니..약간은 일희일비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대개 폼 좀 잡으시고 수사학적인 진지함이 덕목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중에는 '봄날 담장에 앉아 물방울 무늬의 옷을 입고 사탕을 빠는 아이들'이 쉽게 인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게 영 미덥지 않으실 수도 있다. 너무 가볍고 천박해보일테니까...그래서 인문학 입문에 관한 진지터지는 책들이 쏟아져나오는거라고 본다. 인문학적인 본연을 말하기에 앞서 태도부터 거론할 때는 묘한 반감 같은게 괜히 스물거리겠는가. 


최근에 읽었던 <런던스타일 책읽기>의 닉혼비는 '독서가 레저활동으로 자리잡으려면 독서의 불분명한 혜택보다는 즐거움이 장려되어야 한다'고 했었드랬다. 들여다보기에도 두터운 고전들의 향연틈에서 재미는 어따 팽개치고 읽어야 할 당위성만 강조해대는게 유행이라면 이건 '일종의 쇼에 가까운 것이다. 근데 인문학이 딱 요모양이다. 추천이랍시고 등장하는 많은 서적들은 '거대한 지루함'과 '난해함'이 하이브리드하게 엮어져 독자들을 공격한다. 이런 걸 이해못한다면 인문학근처에는 얼씬도 하지말라고 윽박지르듯... 그래서 말인데 인문학을 소개하는 많은 책들은 '굉장히 어렵고 난해한 인문학'이란 인식이 생겨남에 대해서 일말의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도 초반부에서 되도록이면 알기쉽게 인문학에 접근하는 방법을 말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래서 독서 이야기도 나오는 것이고 책을 읽는 방법같은 것들을 주르륵 써놓으셨던게지.. 그런데 인문학을 제대로 알려면 독서를 해야 한다는 전제가 맞기는 해도 독서가 되면 인문학이 저절로 이해되는 건 아니기에 방법론적인 기술에 너무 많은 분량을 할애하면 핀트가 빗겨간다. 통찰력을 길러주는 인문학 공부법인데 갑자기 넌 책도 제대로 못읽으니까 처음부터 제대로 읽는 법을 알려줄테니 잘 따라해보기바람 이라고 첨자 교육이라도 당한 느낌이다.  물론 책에 줄긋고 줄거리 따라가고 등장인물의 관계도도 그려보고 체력을 기르기위해서 효율과 목적등을 감안하는 게 비휼적이거나 잘못된 방법이란건 결코 아니다. 다 맞는 이야기지 싶다. 솔직히 유행따라 삼천리라면 인문학적인 소양이란 '독서하는 방법' 일수도 있으니까 이런게 통찰력을 얻는 방법이 아닐 가능성은 별로 없다.  


기투와 앙가주망을 대목을 보면서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용어에 대한 이해가 되고 나면 사상이 보일 거다라는 생각들. 근데 이건 내용을 이해하는 것인데 지식의 한 페이지를 채우는 결과적인 경험이야기 일 뿐이다. 앙가주망에 대해서 개인적인 느낌이 어떤건지 슬쩍 내비추었어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고 어떻게 삶에 불쑥뿔쑥 이런 지식들이 튀어나왔는지 좀 털털하게 이야기해줬어도 더 친밀했을 것 같다. 이렇게 끝내고 넘어가야 한다면 이거 어디 입시시험 또는 토익시험 맞추기위한 맞춤식 예제 설명 아닌가. 내가 사르트르에 대해서 이론적 배경과 개념들을 알아야 한다면 용어 정리이외에 상황에서 실존주의에 대한 어떤 통찰을 보고 싶어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니까 실존주의를 통해서 어떤 시각을 가지게 된 거라는...그래서 난 어느날 카페에서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친구놈이 '초인'적인 삶에 대한 갈구만큼이나 미달하는 현실에 절망하고 있는 걸 보고 위로해줄 수 있다는...시덥지 않은 일상이야기라도 등장하길 바랬던 거지..싶다. 


아쉽게도 그런 목적으로 이 책을 읽은게 아니라서 정말 말그대로 아쉽게 되었다. 아마 목적이 잘못되었나보다. 이건 전적으로 내잘못이지 책이 잘못된 건 아닐듯 싶고..다만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 뭔가를 읽을만한 태도와 체력이 없으면 '인문학' 접근이 요원할거라는 메시지 정도다. 그렇겠지 우선 뭔가를 읽고 깨달아야 통찰력이 생길테지. 진득히 읽어야 뭘 느낄테지만 읽기 중독자들도 읽기는 읽는다. 그리고 책도 좋아라하고 목록도 꿰고 난해함도 꾸준함으로 돌파한다. 이런식의 취미활동을 보면 언뜻 '어떤 통찰력에 대한 본질'이 꼭 독서여야만 하는가라는 의구심이 남기도 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인생에서 각자 스스로의 분량들을 깨닫곤 하는데 도대체 인문학이라고 카테고리화 시켜서 책을 읽고 지식을 얻게 되면 더 지혜로워지는 걸까라는 호기심이 끊이질 않는 것이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 학습적 관점에서 인문학을 이해하고 싶으신 분들은 이 책을 고르기보단 정신적으로 동기화가 잘된 저자의 저작들을 줄기차게 읽으시는게 더 나을 듯 싶다. 


물론 이 책도 나쁘진 않다. 추천은 글쎄...정도..




인문학 공부법

저자
안상헌 지음
출판사
북포스 | 2012-06-2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인문학 공부에는 특별한 방법이 있다!『통찰력을 길러주는 인문학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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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하게 산다 - 도미니크 로로  (4) 2013.03.04
Posted by kewell

<모비딕>을 하루에 100페이지 정도 읽고 있다. 대략 700 페이지 되는 듯 싶은데 이렇게 읽으면 일주일이면 다 읽는건가싶어서 많은 분량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드랬다. 게다가 생각외로 그렇게 지루하지도 않고... (누군가가 모비딕 읽다가 미칠지경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 정도는 아니라는..) 도리어 멜빌의 세밀하고 정교한 묘사들을 보면 주석달린 동화책 읽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중간에 읽다가 만 <로마 멸망사>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읽다가 중간에 잠시 관뒀던 이유는 단순하다. 이 책의 역사 서술 지점이 전체 로마사의 어디를 말하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워서였다. 그러니까 5현제 아우렐리우스 이후 코모도스에 이야기를 시작할 때, 난 카이사르와 스키피오가 등장하는 지점과 전후사정을 전혀 모른 채 무턱대로 읽었단 뜻이다. 모두 다 상세히 알아야 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흐름만을 알아야겠기에 약간의 로마사 흐름을 공부해두고 다시 읽기 시작했다. 덕분에 세계사 공부를 다시했다는...ㅠ.ㅠ 


카포티의 단편집인 <차가운 벽>도 짧게 한 편씩 꾸준히 읽어나가도 있다. 일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난 레이먼드 카버보다는 카포티쪽인 것 같다. 카버는 뭐라 그럴까 더 블루하고 더 황급하고 더 느닷없다. 그러니까 읽고 있으면 삶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비가내리고 번개도 치고 폭풍우도 불고 그런다. 잠시 해가 들어 야 이제 희망을 말해주려나보다 싶다가 갑자기 계절이 바뀌고 낙엽이 날리면서 스산한 공기가 불어댄다. 아저씨 일상의 편린들이 이렇게 뾰족하셨어요 라고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다.  소설에서 희망만을 갈구할 수는 없겠지만 카버만 읽으면 '인생의 쓴맛 드링크'를 샷추가해서 원샷하는 느낌이라 마음을 단단히 부여잡아야 한다.  뭐 카포티도 그리 밝다고 말은 못하겠는데 그래도 특유의 섬세함때문에 연민과 동정이 교차되고 그 틈에서 한줄기 따스한 햇빛이 스며들기도 하니까 그나마 나은게 아닐까.


치버  소설은 약간 밀어두었다. 치버는 카포티 단편을 다 읽고 읽어볼 요량이다. 치버는 카버의 소프트버전 아닐까. 치버 단편을 읽었지만 더 드라마틱한 건 알겠는데 여기도 우울하긴 마찬가지라..좀....두고봐야겠다.  챈들러의 <빅슬립>은 사다놓고 아직 읽지 못하고 있다. 언젠간 읽겠지라는 의식의 갈피를 빅슬립의 표지에 걸어두었다. 볼 때마다 그 갈피를 떠올린다. '언제읽을건데' 그렇게 의식에 써 있다.  <르네상스>(민혜련)도 읽기 시작했는데 책이 약간 생각했던 것보다 비싸서 주저했지만 워낙에 이 시기의 이야기가 좋았던 지라 주저없이 골랐다. 좀더 읽어봐야 분위기와 중심내용을 알겠지 몇 장 못읽어서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책들은 꽤 읽었는데 글은 도무지 못쓰겠다. 교육중이라 시간도 빠듯하고 왔다갔다하면서 빠듯한 시간에 책읽고 그러면 여기와서 주절대는건 거의 기적과도 같은일이지 싶다. 이래서 다들 파워블로거는 못할짓이란거지..끊임없이 포스팅한다는건 대단한 것을 넘어서는 어떤 거대한 의지의 표상이라는...

Posted by kewell




서점에 서서 한참을 읽다가 맘에 들면 목록표에 작성해두곤 하는데..시간이 지났어도 사지 못해서 한참을 주저주저하다가 드디어 바로드림서비스로 가져왔다. 책 내용은 대만족이다. 모비딕은 예전 구버전으로 읽은지 좀 되었지만 제대로 다시 읽고 싶어서 샀고 르네상스는 딱딱하지 않으면서도 알찬 책을 찾다가 이 책을 골랐다. 물론 읽어봐야 책의 진가를 알겠으나 르네상스의 경우에는 서서 몇 챕터를 읽었어도 지루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볼 땐 잘 샀다고 생각한다. 


이번 달 책구매가 너무 후덜덜해서 이젠 좀 자중해야 할텐데 하면서도 계속해서 구매하게 된다. 책은 쌓여가는데 열심히 읽는 일만 남은 셈이다. 그래도 뭔가 좀 든든한 느낌이네..열심히 읽어봐야 겠다. 

Posted by kewell
Vanilla Essay2013. 8. 16. 17:36



책을 사고 읽는 패턴이 아무 생각없는 멍청한 놈이 장님 꼬끼리 만지듯 느껴질 때가 많았드랬다. 그 만큼 무작위이고 기분내키는대로이고 제멋대로란 이야기다. 혹시나 '그냥 무턱대고 읽는다고 해서 활자중독일까라고 의심도 해봤지만 가당치도 않는 이야기다. 가끔 매체에서 이런 말씀들을 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활자중독이 있어서 뭐든 읽어야만 하는 병이 있다고...개인적인 경험을 놓고볼 때 , 이런 말을 하시는 분들 중 활자중독이 제대로 뭔지도 모르는 분들 태반이었다.  진짜 활자중독 못봐서 그러시는 거지..다들...


활자중독 왠만하면 없다. 내가 기억하기론 너무 읽을게 없어서 항공기 좌석에 꽂혀있는 메뉴얼과 광고 전단지를 몇번이고 읽으면서 오셨다는 분 말고는 그 증세를 실제 체감하기도 어렵다. 세상에 그렇게 읽고 싶어서 안달나신 분들의 책 목록들을 보면 '애개 겨우' 수준이다. 활자중독 정도면 어마머마하진 못해도 '오호라 과연' 정도는 되야 하지 않겠는가. 활자중독이라고 하면 책 좀 읽는다는 느낌을 줄 수 있어서일거다. 유명인들이 주로 이미지 포장할 때 주로 쓰는 뭐 그런 것들 아닐까. 그게 뭐 꼭 나쁜건 아니다. 전 클럽에 가서 그 날밤 하얗게 불태울 여자사냥 하는걸 즐기구요. 전 내몸을 뜨겁게 달궈줄 기가막힌 꽃미남을 원해요라고 고백하는 것보단 약간이나마 더 그럴 듯해보이니까..뭐 오히려 쳐박혀서 책읽는게 더 궁상맞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서도..


아무튼 나도 활자중독은 아니다. 나도 책을 꽤나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중독까지는 근처에도 못갔다. 읽는게 다른 취미보다 좋다는 건 인정한다. 그저 우왕좌왕 이것저것 막 읽어대는 머리없는 닭같아서 문제지..책은 기본적으로 좋아한다. 문제는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기준'이 없었다는 거다. 그걸로 허송세월 보냈다고 생각하면 좀 아둔한 뭐마냥 씁쓸할 뿐이다. 에휴 그냥 막 읽으셨구료 어쩌면 좋아 그렇게 읽으면 읽어도 읽은게 아니란걸 모르시나..그렇게 스스로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을 정도다. 


세월이 아까워서라도 요즘에 그렇게 읽지 않는다.  읽을 때 도그 이어(Dog's ear : 책 귀퉁이를 접는 행위) 조물닥거리고 과감히 줄을 죽죽 긋고 형광팬으로 기억해둘만한 부분들 떡칠을 하기도 한다. 어차피 내책이다 걸레를 만들어도 내꺼고 찟어져도 할수없는 거지라고 마음먹고 에디터마냥 책에다 지랄을 떨고 그런다. 가끔 한권의 책을 다 읽고 나면 책이 무슨 원고 교정한 것마냥 개차반이 되기도 한다. 그 책 나름 좋은 내용들이 많아서였겠지..그렇지 않으면 아무 줄도 없고 귀퉁이도 멀쩡하단건 재미 더럽게 없단 뜻이니까...


가끔 주변분들이 책장에서 빌려가시는데 (다 읽은 책들은 거실책장으로 다 옮겨버림) 책장들추다가 내가 한 짓을 보고 혀를 차신다. 책이 귀한 줄 모른다고..혹은 뭐 인상깊다는 것들 자랑하는거냐는 둥, 좀 쪽팔리지 않으세요 자기생각이 막 이입되는거 ...각양각색의 의견들 고맙게도 더럽게 많으시다. 그럼 그냥 공공장소 도서관 가서 금가고 김칫국물 흘린 책들 빌려서 읽으시든지 하시지 뭐하러 제 책을 읽으셔가지고 그 고생을....애초에 난 책은 빌려줄게 못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책이란 자기가 댓가를 지불하고 사서 봐야 진득히 읽게되고 읽고나서도 어떻게저떻게 유지가 된다. 빌려읽는 것도 해보긴 했다. 해봤는데 답답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 


일단 줄을 칠 수가 없다. 내 책이 아니니까..줄을 못치면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뭐가 중요하고 뭘 기억해야하는지 애매하다. 나도 내가 레인맨 더스틴 호프먼처럼..혹은 보르헤스의 픽션에 등장하는 푸네스같았으면 기뻐 날뛰겠다. 100페이지짜리도 읽고나면 어느 순간 메멘토 저리가라 할 정도로 '휴지통 비움' 상태가 되버리곤 해서 문제이지.. 그러니까 난 적어도 뭔가를 기억할 '포인트'들이 필요하고... 필요하고 또 필요하다.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빌려서 읽게 되면 이런 것들을 읽으면서 실시간 처리해야 하는데 사람이 어떻게 읽으면서 옆에 노트를 놓고 쓰나..버스를 탈 때도 있고 지하철에 서있을수도 있건만...한손으로 손잡이 붙들고 한손에 책들고 ..언제 노트 꺼내서 쓰고 다시 책보고...이건 스파이더맨을 상대하는 옥토퍼스나 가능한 일이다. 


빌려서 읽는 건 비상시국에나 하는 짓이다. 또 읽은 책을 오래도록 기억하려면 '메모'없이는 불가능하다. 특히 인문한 서적은 중요한 내용을 어찌됐건 줄을 그어놓아야 하고 나중에 한장에다가 요약할 수 있을 만큼 관계도 및 생각의 레이아웃이 필요하기도 하다. 읽고 난 다음 바로 하는게 좋은데 의외로 굉장히 어려워서..읽고 나면 읽었다는 포만감이 사람의 감각을 굉장히 둔하게 만들고 들뜨게 해서 기록이란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만든다. 마치 점수 그럴듯하게 받은 학생이 이 과목은 더 이상 안봐도 돼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독서가 공부도 아닌데 뭘 읽고 또 요약을 하냐는 분들도 계실텐데..읽고 나서 조만간 기억못하고 다시 읽는걸 상상해보시라..뭔가 되게 바보스럽지 않나. 와...몇 년전에 읽었는데 다시 읽으니까 새책 읽는 것 같다니..이거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당황해할 때가 무척이나 많았다는 걸 솔직히 고백해본다. 기록하면 이런 애처로운(?)상황을 피할 수 있다.  


소설조차도 줄거리가 진행되는 핵심 문장에는 줄을 그어 놓으시는게 좋다. 개인적으론 줄거리 변화가 있는 문장에 줄을 긋고 등장인물 이름에다가 형광팬으로 칠해놓는다. 처음에만 칠하면 그 뒤론 안 써도 된다.그리고 역사관련 서적은 중요한 흐름을 연대순으로 기록해둔다. 유럽사에 관한 책을 볼 때 굉장히 심란했는데 이게 도무지 읽을 때만 기억나고 시간이 지나면 대체 사건들이 언제 어떻게 발생해서 어떻게 인과관계가 발생하고 흐름이 어떻게 되는지 공백이 되곤 했다. 그래서 스스로 연대를 짧게 기록하고 주요사건들을 기록해서 내 생각들을 짧게 써놓았드랬다. 나중에 필요할 때 메모해둔 2~3 페이지 몰스킨을 뒤적거려서 재미 좀 봤다.  


책을 읽고 오래도록 기억하는 방법은 '기록하는 것' 외에는 없다. 뭔가를 쓰지 않으면 절대 기억 못하게 된다. 메모는 독서의 결과를 더 찰지게 만들어주고 오래도록 유지하게 해주는 일종의 보험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해볼만 하다...정말 해볼만 하다. 그리고 한번 하고 두번하고 그러다가 메모 습관이 되면 그게 두고두고 그 사람의 사고로 작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 최소한 추억정도라도 될 수 있다. 




Posted by kewell






최근 읽었던 책들 중 최고는 다자이 오사무의 '만년'이었다. 

두고 두고 못잊을 경험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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