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을 읽으면 막 조깅을 시작했을 때와 같은 두근거림이 있다. 몸은 활력을 찾아가고 사지에서 슬슬퍼저가는 긴장감과 숨소리와 섞이는 심작박동과..뭐 등등... 이 양반이 얼마나 재기발랄한 모습을 활자로 보여줄지 가늠이 잘 안되긴 하지만 이와 별도로 어쨋든 기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거장들의 서적들속에는 모종의 자기들만의 무늬들이  있는데 그건 시그니처와도 같다고 늘 생각해왔다. 읽으면 아 이분의 글은 맞네 맞어 혼자 중얼거리게 되고 이내 그런 잠정적인 전제 조건들을 레디 장치로 각인해가며 읽게된다. 그러다보면 ~적이다라는 말의 뜻을 알 것도 같다. 혼자 단정짓고 결론을 내버려서 그 작가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받아들인 나로서는 이 책이나 그 책이나 그 작가의 무늬들은 거의 흡사하게 느껴지는데다가 분위기역시 비슷해서 익숙해지는 과정을 피해갈 길이 없어지니까..


가끔 이런 예상이 빗나가는 작가도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가즈오 이시구로다. 나는 <나를 보내지마>에서 가즈오를 제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남아있는 나날>들에서는 전혀 가즈오 이시구로를 생각치 않고 읽어버렸다. 그리고나서 나중에 아 맞다 가즈오 이시구로였어 왜 잊고 있었지라고 황급히 떠올렸다. 이런 이런 이시구로의 스타일이 아니었나봐..아무튼  이 이야기는 나중에 책 이야기를 길게 쓸 때 한번 더 해볼 작정이다. 아무튼 너무나 글을 잘써서 속으로 감탄을 거듭하면서 끝까지 읽고 덮었다. 이 후 스테판 츠바이크<체스 이야기>파트릭 모디아노<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연타로 읽게 되었다. 아직 다 읽진 않아서 섣불리 말하긴 곤란하지만 지금까지는 잘 흘러가고 있다. 특히 스테판 츠바이크는 굉장히 재밌게 글을 쓰셨다. 마치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을 읽듯 읽게 되었다는...


책 읽기에는 좋은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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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을 다시 읽었다. 그냥 꾸리꾸리한 날씨탓에 뭐든 하기 싫어서 잠깐 읽어보는게 나쁠 건 없다는 생각에 집었는데 테잎의 FF를 너무 과하게 누른 것처럼 태반을 읽어버렸다. 중고 책방에서 삐져나온 더렵혀진 지폐를 발견하듯 집어온게 엊그제인데 이걸 벌써 두번이나 읽게 되다니.... 그렇다고 해서 내가 뭐 매큐언의 광팬이어서 지면의 활자가 머리에 새겨질 때까지 읽어서 다 갈아마셔줄테다라고 다짐할 정도는 아니다. 그냥 읽게 된거고 거기엔 명확한 인과관계란 없다. 이런 먹물 엎질러진 날에 암스테르담이라니..항상 엔딩에서 느끼는건데, 까짓 망신 좀 당하고 살 수도 있는거지..뭘...그렇게나 라는 생각만 부질없이 든다.  


인과관계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예전에 사놓았던 줄리언 반스(Julian Barnes)<예감은 틀리지 않는다>(The sense of an Ending)도 얼결에 읽어버렸다. 이동진 기자의 '빨간 책방'에서도 역시 언급된 바 있었던 이 책을 읽으면서 '장르소설처럼 읽는' 실수를 피하라고 했던 걸 기억하는데 2부의 스피디함에 타놓은 저자의 약빨에 그만 나도 모르게 장르소설 읽듯이 그러고 있었다. 이렇게 미스테리함을 부추기면 독자들은 1부의 호기당당하게 적셔진 토니의 관점을 곱씹어볼만한 여유를 가지기 어렵다. 베로니카는 여전히 답답한 말을 하고(중간에 이런 대사는 오직 여자만이 할 수있다고 생각했드랬다.) 아직도 모르겠냐고 그러고 토니는 영문을 몰라하고 그리고 말그대로 '그건 그저 벌어질 뿐이고' 이렇게 되면 장르소설처럼 읽을 수 밖에 없다. 궁금증이 도지니까...어떻게든 실체를 알아야겠다는 일념이 다른 묘사들을 다 제껴버린다. 이거 혹시 내공의 문제인지도 몰라 이런 책의 유혹에서 견딜만한 관조적인 시선 같은 것들 말이야 수많은 궁금증과 호기심을 굳건히 견뎌내고 네가 그래서 말하고 싶은건 정작 뭐야 라는 말로 단번에 제압하는 냉정한 Reader 처럼...굳건한 의지를 가진채 독파하는 혈혈단신의 고수처럼 말이다.



오늘은 햇살이 쨍한데, 가즈오 이시구로(石黒一雄 /Kazuo Ishiguro)<남아있는 나날>을 읽겠다고 가방에 쳐넣고 왔다. 요즘은 고전이든 현대든 문학쪽을 읽게 되는데 특히나 가즈오 이시구로를 읽으면서 정말 맘에 든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를 보내지마>도 역시 그랬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도 가끔 친구놈들은 '일본 특유의 정서가 베어있긴 하지'라는 별 같잖은 말을 무식하게 여전히 한다. 굳이 여기에 야 이시구로는 영국애에 가까워 너 걔 이력을 본 적이나 있어 걘 7살이후로 일본에 없었다니까. 이렇게 이야기해주면 걔가 아 그래 몰랐네 라고 대답하고 겸연쩍어하고 하는 이런 광경이 일어날리 없다. 왜냐면 읽지 않고서도 그렇게 이야기한다는 건 나 요즘 바쁘니까 그런 책 이야기는 하지말지 그래? 라고 말하는 은유적 표현이니까. 그냥 그러려니하고 다음 화제로 넘어가면 된다. 


싸질러놓은 책들이 너무 많다. 마음속으로 서점에 갈 때마다 스스로 주지시키는 다짐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이다. '이미 사놓은 책들이나 다 읽고 서점에 오지그래?' 라든지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네 삶이 더 나아질 확률은 없어 알고나 있는거야?' 라든지 '책을 무책임하게 구매하면 그 여파는 현실로 너를 괴롭힐 거라고... 아무래도 넌 가난하니까' 라는 등등이다. 그러니까 내가 내 경제적 형편을 무시하고 책을 구매하는 이 무책임한 처사는 일종의 중독증같은 거다. 온라인 게임 중독자를 욕할건 없고 스맛폰의 카톡 연동 게임의 아이템질을 비웃을 필요조차 없다. 이거야 말로 취향과 장르의 문제아니겠는가. 중요한건 적자라는거고 먹고 살아야 하니까 적당히 작작 좀 사라는 자조섞인 한숨들이다. 


정말 작작 좀 사야 겠다. 너무 터무니 없어...


cf. 그나저나 제목으로 '남아있는 나날'은 너무 멋진데..'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괴이할 정도다. 이거 왜 이렇게 지은 걸까. 

어떻게봐도 The sense of an Ending이 멋지잖아.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