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왜 다음뷰 버튼이 사라졌나했더니...

티스토리가 다음뷰 버튼 서비스 종료를 결정했다는...ㅠ.ㅠ 

대신 하트 모양의 공감버튼이 생기는 모양....


http://v.daum.net/clo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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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을 읽으면 막 조깅을 시작했을 때와 같은 두근거림이 있다. 몸은 활력을 찾아가고 사지에서 슬슬퍼저가는 긴장감과 숨소리와 섞이는 심작박동과..뭐 등등... 이 양반이 얼마나 재기발랄한 모습을 활자로 보여줄지 가늠이 잘 안되긴 하지만 이와 별도로 어쨋든 기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거장들의 서적들속에는 모종의 자기들만의 무늬들이  있는데 그건 시그니처와도 같다고 늘 생각해왔다. 읽으면 아 이분의 글은 맞네 맞어 혼자 중얼거리게 되고 이내 그런 잠정적인 전제 조건들을 레디 장치로 각인해가며 읽게된다. 그러다보면 ~적이다라는 말의 뜻을 알 것도 같다. 혼자 단정짓고 결론을 내버려서 그 작가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받아들인 나로서는 이 책이나 그 책이나 그 작가의 무늬들은 거의 흡사하게 느껴지는데다가 분위기역시 비슷해서 익숙해지는 과정을 피해갈 길이 없어지니까..


가끔 이런 예상이 빗나가는 작가도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가즈오 이시구로다. 나는 <나를 보내지마>에서 가즈오를 제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남아있는 나날>들에서는 전혀 가즈오 이시구로를 생각치 않고 읽어버렸다. 그리고나서 나중에 아 맞다 가즈오 이시구로였어 왜 잊고 있었지라고 황급히 떠올렸다. 이런 이런 이시구로의 스타일이 아니었나봐..아무튼  이 이야기는 나중에 책 이야기를 길게 쓸 때 한번 더 해볼 작정이다. 아무튼 너무나 글을 잘써서 속으로 감탄을 거듭하면서 끝까지 읽고 덮었다. 이 후 스테판 츠바이크<체스 이야기>파트릭 모디아노<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연타로 읽게 되었다. 아직 다 읽진 않아서 섣불리 말하긴 곤란하지만 지금까지는 잘 흘러가고 있다. 특히 스테판 츠바이크는 굉장히 재밌게 글을 쓰셨다. 마치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을 읽듯 읽게 되었다는...


책 읽기에는 좋은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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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나온다. 


질리게도 오랫동안 언제 나올지 알 수도 없던 바로 그 <대성당>. 책 호갱들께서 값을 천정부지로 띄우시는 바람에 중고서적에서도 어안이 벙벙한 책값으로 놀래키던 그 작품. 대체로 이 책이 유명해진건 몇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무라카미 하루키가 레이먼드 카버를 좋아라한다는 건 알만한 양반들은 다 알고 있을테고, 카버의 작품들 중 몇개가 아주 좋은데 그 중에 이 작품이 끼어들어가있다는 점. 그리하여 대다수의 글쟁이들께서 카버의 이 작품을 오래도록 곁에두고 읽고 또 읽는다는 풍문. 여기에 이걸 번역하신 분이 소설가 김연수라는 사실도 부수적으로 이슈가 되었드랬다. 


얼마전에도 김중혁씨가 김연수씨가 대성당 재출간으로 분주하다고 했을 때, 아 조만간 나오겠구나 싶었는데 드디어 등장한다. 이 책을 구해볼라고 얼마나 뻘 짓을 했는지 그 사연을 소설로 써도 그럴듯한 단편소설이 될거다.  아무튼 세계 문학전집의 표지 디자인이 썩 그다지 좋다곤 말하기 힘들지만 어쩌겠는가 절판된 운명의 초판들을 뒤로하고 이렇게라도 읽을수 있다면 만족해야지. 이전 노란색 표지도 나쁘지 않았다. 카버의 단편선들은 왠지 시리즈의 일편으로 끼워넣기엔 약간 모양새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문학동네측으로서는 세계문학의 한 부분으로 장식해놓고 싶었을지도...하도 문의가 많아서 골머리좀 썪혔을 것 같기도 하고...


나도 노란색 대성당을 가지고 있었는데...개정판으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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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을 다시 읽었다. 그냥 꾸리꾸리한 날씨탓에 뭐든 하기 싫어서 잠깐 읽어보는게 나쁠 건 없다는 생각에 집었는데 테잎의 FF를 너무 과하게 누른 것처럼 태반을 읽어버렸다. 중고 책방에서 삐져나온 더렵혀진 지폐를 발견하듯 집어온게 엊그제인데 이걸 벌써 두번이나 읽게 되다니.... 그렇다고 해서 내가 뭐 매큐언의 광팬이어서 지면의 활자가 머리에 새겨질 때까지 읽어서 다 갈아마셔줄테다라고 다짐할 정도는 아니다. 그냥 읽게 된거고 거기엔 명확한 인과관계란 없다. 이런 먹물 엎질러진 날에 암스테르담이라니..항상 엔딩에서 느끼는건데, 까짓 망신 좀 당하고 살 수도 있는거지..뭘...그렇게나 라는 생각만 부질없이 든다.  


인과관계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예전에 사놓았던 줄리언 반스(Julian Barnes)<예감은 틀리지 않는다>(The sense of an Ending)도 얼결에 읽어버렸다. 이동진 기자의 '빨간 책방'에서도 역시 언급된 바 있었던 이 책을 읽으면서 '장르소설처럼 읽는' 실수를 피하라고 했던 걸 기억하는데 2부의 스피디함에 타놓은 저자의 약빨에 그만 나도 모르게 장르소설 읽듯이 그러고 있었다. 이렇게 미스테리함을 부추기면 독자들은 1부의 호기당당하게 적셔진 토니의 관점을 곱씹어볼만한 여유를 가지기 어렵다. 베로니카는 여전히 답답한 말을 하고(중간에 이런 대사는 오직 여자만이 할 수있다고 생각했드랬다.) 아직도 모르겠냐고 그러고 토니는 영문을 몰라하고 그리고 말그대로 '그건 그저 벌어질 뿐이고' 이렇게 되면 장르소설처럼 읽을 수 밖에 없다. 궁금증이 도지니까...어떻게든 실체를 알아야겠다는 일념이 다른 묘사들을 다 제껴버린다. 이거 혹시 내공의 문제인지도 몰라 이런 책의 유혹에서 견딜만한 관조적인 시선 같은 것들 말이야 수많은 궁금증과 호기심을 굳건히 견뎌내고 네가 그래서 말하고 싶은건 정작 뭐야 라는 말로 단번에 제압하는 냉정한 Reader 처럼...굳건한 의지를 가진채 독파하는 혈혈단신의 고수처럼 말이다.



오늘은 햇살이 쨍한데, 가즈오 이시구로(石黒一雄 /Kazuo Ishiguro)<남아있는 나날>을 읽겠다고 가방에 쳐넣고 왔다. 요즘은 고전이든 현대든 문학쪽을 읽게 되는데 특히나 가즈오 이시구로를 읽으면서 정말 맘에 든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를 보내지마>도 역시 그랬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도 가끔 친구놈들은 '일본 특유의 정서가 베어있긴 하지'라는 별 같잖은 말을 무식하게 여전히 한다. 굳이 여기에 야 이시구로는 영국애에 가까워 너 걔 이력을 본 적이나 있어 걘 7살이후로 일본에 없었다니까. 이렇게 이야기해주면 걔가 아 그래 몰랐네 라고 대답하고 겸연쩍어하고 하는 이런 광경이 일어날리 없다. 왜냐면 읽지 않고서도 그렇게 이야기한다는 건 나 요즘 바쁘니까 그런 책 이야기는 하지말지 그래? 라고 말하는 은유적 표현이니까. 그냥 그러려니하고 다음 화제로 넘어가면 된다. 


싸질러놓은 책들이 너무 많다. 마음속으로 서점에 갈 때마다 스스로 주지시키는 다짐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이다. '이미 사놓은 책들이나 다 읽고 서점에 오지그래?' 라든지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네 삶이 더 나아질 확률은 없어 알고나 있는거야?' 라든지 '책을 무책임하게 구매하면 그 여파는 현실로 너를 괴롭힐 거라고... 아무래도 넌 가난하니까' 라는 등등이다. 그러니까 내가 내 경제적 형편을 무시하고 책을 구매하는 이 무책임한 처사는 일종의 중독증같은 거다. 온라인 게임 중독자를 욕할건 없고 스맛폰의 카톡 연동 게임의 아이템질을 비웃을 필요조차 없다. 이거야 말로 취향과 장르의 문제아니겠는가. 중요한건 적자라는거고 먹고 살아야 하니까 적당히 작작 좀 사라는 자조섞인 한숨들이다. 


정말 작작 좀 사야 겠다. 너무 터무니 없어...


cf. 그나저나 제목으로 '남아있는 나날'은 너무 멋진데..'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괴이할 정도다. 이거 왜 이렇게 지은 걸까. 

어떻게봐도 The sense of an Ending이 멋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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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어빙<알함브라>를 읽고 있다. 


요즘은 계획하에 책을 읽는다기보다 그냥 제멋대로 내키는데로 무턱대고 집어들게 된다. 그러다보니 스토리도 엉키고 이 이야기가 저 이야기같고 머리가 뒤죽박죽 되는 느낌인데 그래도 딴에는 읽고 싶은 걸 읽어야 졸음도 줄고 동기부여도 되다보니 자꾸 잡스럽고 정신사납게 읽게 된다. 좀 특이하다면 최근에 환상문학계열을 줄창 읽는다는 거다. 읽을수록 묘한 재미가 있지만 굳이 판타지여서 그런건 아닌듯 싶고 뭐라고 해야할까 말로 형언하기 힘든 초월적인 어떤게 느껴져서 잠시동안 절절한 지금의 피곤함을 몰아내주는듯한 효과 때문인 것 같다. 왜 그런건 있지 않은가 고전문하게서는 등장인물이 너무나 힘들고 괴로운 현실앞에서 마치 고고한 혼자만의 양심과 영혼의 부르짖음을 장신구처럼 매달고 자기고양에 사로잡혀 현실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는데 이상만 높은 어떤 캐릭터의 자기성장내지는 파멸의 이야기들로 묘사되는 것 말이다. 솔직히 이런건 간접경험 카테고리에서도 지나치게 반복적인 메뉴다. 


<단테의 신곡>, <천일야화>등을 읽으면서 몇몇 단어들에서 풍기는 페르시아와 이슬람적인 뉘앙스, 그리고 은밀하게 펼쳐지는 마법과 신비의 세계, 그로테스크한 판타지들. 이런 내용들에 피식피식 웃으며 읽을 때, 앞서 이야기했던 그런 피곤함과 고단함을 느낄겨를이 없다. 아마도 기억에는 보르헤스의 <픽션들>이 기점이었던 것 같은데 이후로도 <아발론 연대기>의 엑스칼리버와 멀린 스토리, 젤라즈니의 <고독한 시월의 밤>을 읽고 러브크래프트의 '미지의 카다스를 향한 몽환의 추적'을 찾아읽게 되고 , 알베르토 망구엘이 극도로 칭찬했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거울나라의 앨리스>의 알수없는 문장들의 이면을 곰곰히 되씹게 되며, <오딧세이아>,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 이탈노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도 묘한 꿈의 기시감을 느끼며 현실에서 읽는다는 묘한 느낌이 있다.


어쩌면 현실부정적이어서 그런건 아닐까라고 생각도 해봤는데..아무렴 어떨까. 그런건 별로 중요치 않다. 읽을때 재밌다는게 중요하고 그러다보면 난 또 이 세계를 떠나 다른 세계로 갈테니..어차피 책의 모험이란 이런게 아니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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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씨의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을 읽었다. 

후기에 저자가 써놓은 작가의 말........


'소설을 쓴다는 건 그게 야즈드의 불빛이라고 믿으며 어두운 도로를 따라 환한 지평선을 향해 천천히 내려가는 일과 같다' 고....그래 이게 무슨 말인지 대충을 알 것도 같다. 야즈드의 불빛이라.....그래도 암치료와 지하병동과 줄기차게 피워대는 담배와 무덤덤한 자기갈 길 가는 어머니와 인생은 실패였다고 말하던 아버지와 지하터널에서 들려야만 하는 어머니의 노래소리와 그래 그건 사랑이었다고 그래서 그 함석지붕 밑에서 퉁퉁거리며 튀기는 빗방울소리가 칠월에 솔까지 올라갔다고는 해도..


아름다워야만 한다고 했는데..

난 왜 다 읽고나서도 아름답다는 생각보다는 서글프다고 느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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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이 스치듯 지나가버렸다. 마치 서울에서 경기도로 넘어갈때 정신차려보니 이미 경기도였다고 느낄만큼 순식간에 경계선을 휙 하고 지나버린 느낌이다. 안녕이라고 말도 못했는데 잘있으라고 안부겸 축복도 미적미적거리다가 다 놓쳐버렸다. 매년 연말에 등장하는 키워드에 '아쉬움'이니 '후회'라느니하는 단어들이 등장하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그냥 형식적인 느낌으로 스스로를 반성해보시지라는 의식적인 통과의례를 떠올리게 한다. 언제는 아쉬움을 안느꼈던 적이 있었던가. 언제는 후회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나하며 반쯤은 비아냥과 조소속에서 피식거리면서 스스로를 솔직하게 돌아다 보고 있다. 그냥 치사하고 졸렬한거지..그러고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고 다시 연말이 오면 뭐 비슷한 패턴으로 갈거면서 유별나게 무슨 반성과 되새김질이라니....위선적인 느낌도 든다. 그러고보면 경계니 스치듯 지나갔다더니 하는 것들은 다 핑계고 변명이고 너저분한 자기위안의 교묘한 위장일 뿐이다.


100권 읽기는 물건너갔다. 2013년에 읽은 책의 권수는 대략 70권 남짓이고, 블로그에 쓴 리뷰로 보자면 40권 안밖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게을러터져가지고 뭘 제대로 했다고 보기도 힘든 2013년이었단 소리다. 하기사 내가 100권을 읽는다고 뭐 새로운 떡밥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굉장한 뭔가를 깨닫게 되어서 정서가 함양되고 것도 아니고,,, 엄청난 책탐과 수집질에 만족감을 느끼거나 하는 그런 부수적인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읽으면 읽는거고 못읽으면 못읽는것일 뿐인게지..100권이라함은 그냥 상징적인 목표일 뿐. 이걸 이뤄냄으로써 거대한 인생의 어떤 성과물이 되는게 아닌데도 목표라는 단어하나땜에 집착하고 매달리게 되었드랬다. 어찌됐든 2013년에 읽었던 책들에 대한 후회는 별로 없다. 정말 재밌던 책도 있었고, 지루해서 미쳐버릴뻔한 책들도 있었고.....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좀 정신차려가며 책을 읽고 요약을 하고 정리도 하면서 한권씩 읽어갔다는 점이었다. 그 정도만 해도 악습관을 많이 버렸다. (책읽고 그냥 던저버리거나 쳐박아두기. 읽은 책 기억못하기 등등..) 


2013년 몰스킨 북저널 한권을 뒤에 2페이지 남기고 다 썼다. 지난주에 교보에 들려서 북저널을 한권 더 사면서 느낀건데 난 1년에 한권의 북저널을 소비하는 속도로 책을 읽는 것 같다.  1년에 1권의 북저널이라.....뭐 그정도면 생계에 지장을 줄만큼 책탐닉도 아니고 적절한 수준의 책읽기아닌가. 나도 미친듯이 여러권의 책들을 닥치는대로 읽고 싶지만 그렇게 숫자에 집착하면서 읽어댈수는 없는 노릇이다. 독서를 하는 목적, 그리고 남겨진 느낌과 의견. 스스로 생각해보는 시간들. 현재에 어떻게 반영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등을 놓고 보자면 읽는 것으로 끝나는게 아니었는데도 한권한권 읽어해치운다는 느낌으로 읽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읽은 책들은 다 망각의 늪으로 사라져주신지 오래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책상위에 쌓아놓은 책더미가 눈에 들어온다. 읽겠다고 했는데 못읽고 있는 책들의 탑이다. 2014년 초에는 이 책들을 읽으며 보내야겠지. 


언제고 늘 서점을 지나면서 들었던 생각들...책은 그 시절, 그 시점, 그 순간에 읽고 싶을때 읽어야 한다는 점...그러다보니 충동구매가 너무 심해지곤 한다.  매번 서점을 지날때면 사고 싶은 책들이 대략 10권씩 늘어간다. 하지만 그렇게 10권을 매번 구매하게 되면 내가 방에서 발디딜 공간도 없이 괴이한 책더미속에서 살아야 하는데 난 그정도의 책 탐닉자는 아니시다. 난 적절한 수준의 독서쟁이일 뿐이고 무엇보다 구매력에 한계가 그런 욕구를 나무란다. 능력되는 한도에서 책도 읽으라고 멍청아....라고.. 누가 나에게 규칙적으로 책을 공짜로 준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경제적 고려을 감안해서 책의 수급에는 굴곡이 있기 마련. 그리하여 14년의 초입부에서는 13년 못다이룬 100권 후보작들에 대한 독서부터 시작해야겠다. 어쨋든 사놓은 책이고...어차피 읽어야 할 책들이니까..저정도의 책더미라면 적어도 3월까지는 어렵지 않게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올해는 100권의 목표같은건 없다. 그저 읽어야 할 목록들을 업데이트하고 차근차근 읽으면서 생각 좀 해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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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presso minutes /10 minutes2013. 12. 17. 09:23

간혹 아르센(Arsen)의 모험담이 셜록(Sherlock)에 모험담에 미치지 못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유야 뻔하지 셜록은 의식의 흐름속에서도 고고하게 논리와 추론의 구조를 놓치지 않고 줄기차게 따라가며 궁극적으로 완벽한 해설이 뒤받침되지만,  아르센은 신출귀몰이라는 극적인 전개로 '논리'와 그럴듯한 두뇌훈련을 갈음하곤 했기 때문이다. 뭐 물론 뤼팽도 당시 통속소설의 범주에서 흥미진진함으론 어느 작품 못지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여기에 뤼팽의 그럴듯한 교활함의 이면에 잠자고 있는 그의 추리적 능력도 슬쩍슬쩍 비추어 주었더라면...더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을 금할 길 없다. 갑자기 밀실에서 대리석 벽의 귀퉁이를 발로 툭 찼더니 벽 전체가 밀리면서 사람이 들어갈만한 틈이 생기고 그 틈을 통해서 도시의 어디라도 갈수 있게 되면 우리는 더이상의 머리속 추론을 귀찮아 하게 되고 밀실탈출에 대한 고민을 접어두게 된다. 모든게 이미 구상된 장치고 희극적인 설정이 되버리는 것이다. 수수께끼란 뤼팽이 겪는 사건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드라마'에만 할애 된다. 뤼팽의 상상력에 의해서...그리고 엄청난 그의 부하들을 통한 정보력에서...


르블랑의 뤼팽시리즈 중에서는 813과 더불어 '여덟개의 종소리'를 좋아하는데 (물론 첫번째도 좋다. 괴도신사 뤼팽) 이유는 단 한가지다. 그가 너무 설치면서 말도 안되는 허세짓거리를 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소소하게 조그만 사건들을 기민한 두뇌로 풀어내는 자잘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떠오르는 한가지 생각. 내가 여덟개의 종소리를 읽다가 제일 좋아했던 '망루 위에서'의 귀퉁이가 접혀있다는 것이었다. 이건 읽다가 다시한번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던 대목이라는 뜻.......역시 난 거창함보다는 소소한 단편속의 뤼팽이 더 좋았었나보다. 그리고 왕비의 목걸이, 세븐하트, 흑진주 같은 단편들이 좀더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랬다면 셜록보다는 덜해도 나름대로 아르센의 이야기도 충분히 매력적이었을텐데.....아르센은 아쉽게도 너무나 많은 부하들과 수많은 도시를 뚫어버리는 미로와 같은 통로들과 시시덕거리는 농담과 허세로 이 모든 걸 희극적으로 바꿔놓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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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는 애플빠다. 가지고 있는 기기들도 거의 애플 액세서리들..맥북 프로에다가 아이팟 초기 기종부터 연달아 3모델 모두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 초창기 아이폰, 뭐 등등이다. 기술집약적인 사양질에 질리고 투박한 기능나열에 헛웃음을 지으며 다른 제품들을 외면했었다. 그러니까 요약하면 안드로이드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다는...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뭐든 질리기 마련이고 다른 제품들도 한번 써봐야겠다고 마음먹는 도중. 과감하게 선택했다. 베가 시크릿 노트(Vega Secret Note)로...


왜냐고. 이유는 하나다. 내주변에 아는 지인이 거길 다니는데 굉장히 열심히 만들었다고 하도 홍보를 해대길래 설마하는 심정으로 소원함 들어줬다. 써보고 아니다싶으면 자기가 내년에 새로운 걸로 해준다고 하니까...^^  물론 요즘은 스맛폰에 대한 기술적인 구현레벨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기때문에 뭘 써도 무방하지만 사람들의 고정관념에는 확고한 'S'사 맹신주의가 있기마련이다. 그래서 말인데 주위에서 하도 갤갤갤 거리길래 짜증나서 됐다고 한 적도 많았다.  아무런 구체적인 이유도 없이 이거 갤뭐시긴데요라고 자랑질하는 분들보면 자기가 좋아서 그러시는거겠지싶어도 별반 다르지도 않는데 뭘 그리 좋아하시나 싶기도 하다. S사는 제품을 잘만들기도 하지만 브랜드빨이라는 힘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이런 브랜드이미지가 자신의 인생에 투영되어서 자신도 이런 이미지처럼 보이고 싶은 그런느낌으로 선택하는건 아닐까. 이건 굳이 S사가 아니더라도 애플빠에도 같이 적용된다. 애플빠들도 역시 같은 기준과 같은 느낌으로 애플 디바이스를 선택한다고 본다. 거기에 비해 실제 기능적인 차이는 그렇게 갭이 크지 않다. 갤시리즈나 G시리즈나 벡시리즈나 안드로이드는 다 거기서 거기다. 물론 와콤펜이 갑이나 뭐네 하고 카메라가 이게 좋으네 저게 좋으네 하긴 하지만 이건 사용하는 사람의 목적성에 빗대어 생각해보면 답이 나올 문제다. 


자기가 펜을 주로 쓰면 펜이 잘나온펜을 쓰면되고 보안이 강화된 폰을 원하면 보안강화 기능이 탑재된 폰을 선택하면 된다. 일단 만져보고 써보면 대충 이 폰이 자기에게 잘맞는지 어떤지 알수 있게된다.  난 지인이 추천해주는데로 걍 받았다. 베가 시크릿 노트로 .....가성비 끝판왕이라는 그 칭호있다고 하니... 사후 서비스는 그렇게 크게 기대 안한다. S사도 그렇고 아이폰도 그렇고 폰을 곱게 쓰는 편이라 사후서비스를 받아본 적이 없다. 거의 액정 깨먹은 적도 없고 물에 담군적도 없으며 심지어 난 폰을 떨어뜨려본 적도 몇 번없는 유저다. 그래서 말인데 사후서비스, 그리고 OS 업글은 크게 기대 안한다. 


일단 베가시크릿노트는 거두절미하고 화면이 쨍한게 장점이다. 보고있으면 어떻게 이렇게 광활한 화면이 이렇게 선명하고 쨍할수가 있을까라는 사실에 놀란다. 다른 폰들도 유심히 봤는데 이건 정말 특출난거 같다. 반응속도는 갤시리즈와 비슷하고 옵유저들은 모르시겠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일단 화면 쨍한거부터 먹고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여기에서 아마도 많은 유저들이 베가시크릿노트를 선택할거라고 믿는다. 나도 여기에 걸려들었으니까..그리고 외관 기구 전면에 아무런 마크가 박혀있지 않은 것도 맘에 든다. S사 마크도 싫고 난 어떤 시그니쳐도 싫었으니까..이건 정말 마음에 든다. 또 FLAC 지원과 음질...이거 크게 감동먹었다. 자기고 있던 클래식 FLAC 음원들 저장해서 들어보니 감동의 물결이 휘몰아친다. 시크릿 기능이 있는데 이건 내가 그리 사용하지 않아서 무방...하도 좋다고해서 써볼려고 생각중이다. 난 감출 비밀이 별로 없다. ㅠ.ㅠ


대략 한달정도 써봤는데 베가는 예전 지인들이 말하는 베레기 그런게 결코 아닌 것 같다. 그런 시절이 있긴 있었나본데 지금은 아니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심지어 내가 써본 폰들 중에 베가시크릿이 제일 낫다. 강추할 수 있을 정도다. 아직까지 크게 불편함을 못느끼는데다가 갈수록 손에 익어서 다른 폰들을 쓰기가 더 불편해져버렸다. 이제와서 말인데 아직도 S사 브랜드빨이야기하면서 나에게 왜 베가시크릿을 샀냐고 물으시는 분들, 뭐라고 할 순 없겠지만 브랜드빨 믿고 계속 S사꺼 쓰시면 되고 난 나대로 내가 맘에 드는 폰을 쓰면 된다. 근데 아무리봐도 난 베가시크릿이 다른폰에 꿀린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의 인식차이의 문제가 아닐까. 그래서 메이저브랜드란 엄청 큰 파워겠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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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막 노르웨이의 숲을 다시 또 읽었다. 이젠 몇 번째 읽었는지 세는 것조차 의미가 없을 정도로 많이 읽어버려서 이젠 새로운 뭔가가 느껴질 것도 없겠다싶은데도 뭔가 다른 느낌이 들곤 한다. 처음만 해도 나오코와 와타나베가 닮아있다고 그리고 둘이 어쩌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도 지독히도 서로에게 안맞는 커플이라는 생각만 강하다. 그리고 와타나베가 서두에서 '나오코가 자신을 사랑하지조차 않았다'는데서 강한 절망감을 가지는게 굉장히 '위선'적이라는 느낌이 불쑥 들었다. 자기도 나오코를 그런식으로 생각했으면서...바보같이...미도리나 잘 챙길 것이지...하면서 말이다. 


이제와서 생각인데 함부르크에서 모든게 플랑드르파의 그림같네 어쩌니 하며 분위기잡을 때조차도 와타나베가 '혼자일 것'이라는 추측이 강하게 밀어닥친다. 그러니까 나오코가 어떻게 되고 미도리에게 전화를 하고 뭐 이딴 것들이 다 정리되고 혼자서 뭔가를 깨닫고 성장했던 게 아니라 그냥 트라우마로 남은 채 표류하는 늙어버린 와타나베같은 느낌도 중간에 들어버렸다. 가끔은 개성적이고 험프리 보카드적이면서 호밀밭의 파수꾼스러운 '쿨'함이 장기였던 와타나베가 그럴듯하다고도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하츠키나 나오코나 기즈키스럽게 변해가지나 않나하며 안타깝게 바라본다. 차라리 나가사와 같았더라면 좋았을텐데..그나저나 와타나베 곁에 지금 미도리가 있는건지 없는건지 아직도 궁금하다.  


이거 무슨 응답하라 1994의 나정이 옆에 쓰레기가 있는건지 칠봉이가 있는건지 궁금한 거랑 유사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만약에..만약에 미도리가 없다면 와타나베는 불행한 거겠지. 노르웨이의 숲 ...오래도 읽었다.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