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BOOK/소설2014. 5. 23. 16:49


아르투르 페레즈 레베르테의 작품들의 기저에는  '쉬운 문학'을 지향하겠다는 일념같은 것들이 엿보인다. 그렇다고해서 마냥 무협지처럼 읽기 편하고 쉽게 눈동자가 흐르는데로 마구 뇌속으로 이입되는 스폰지 같다는 느낌은 아니다. 그저 표현력에 있어서 한번 정도 곱씹어볼 만한 문학적 색채감이 약간 옅다는 정도, 그리고 고전문학계에서 늘 써왔던 '인간탐구'에 대한 진지한 고찰같은 겉만 번드르한 주제에 탐닉하지 않았다는 정도다. 사실 그것만 해도 독자가 가지는 부담감은 훨씬 준다. 대개의 독자들은 작가로부터 한여름 습기눅눅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연설같은 '해설과 담론'을 브리핑받고 싶지 않을테니까. 우리는 단지 이야기만 좋아할 뿐이라는 고백을 알기라도 하듯 레베르테의 소설은 드러내놓고 '내 소설은 쉬운 소설이야' 고 말하고 있었다. 


<뒤마클럽>은 철저히 설정으로서의 역사적 배경을 이용하고 그 이면에 숨겨져있는 미스테리한 에피소드, 그리고 상상력에 의해서 발휘된 '악마 이야기'를 적절히 섞으면서 흥미진진함을 자극하면서 시작한다. 거기에서 실제 알렉산드르 뒤마에 대한 평전에 가까운 견해들이 등장인물들의 토론에 의해서 드러나게 되는데  뒤마는 흥청망청의 쾌락주의자였고, 역사적 사실의 변형을 밥멋듯이 하는 사기꾼에다가 , 음흉한 동료의 글 가로채기, 이윽고 '난 역사를 위조했지만 창의력만큼은 발군이야'라고 궤변을 놓았다고 비평하고 있다. 여기에서 다시 뒤마의 고백이 인용되는데 '그렇지만 자신의 문학은 쉬운 문학이다'라는 것이었다.  앞서이야기했던 레베르테의 취지. 즉 뒤마가 지향했던 '쉬운 문학'으로서의 가치를 <뒤마클럽>에 오마쥬하면서 자신도 '쉬운 문학을 지향하고 있음'을 은근히 주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검의 대가>,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을 통해 형성된 팬층에 의해 명성을 얻기시작한 아르투로 페레즈 레베르테는 <뒤마클럽>을 통해서 스페인의 '움베르트 에코'라는 별칭이 붙어버렸다. (이건 '장미의 이름' 번역가인 이윤기씨의 추천평도 어느정도 영향이 있다.) 하지만 대중들의 치밀한 탐독과 구체적인 정황분석에 의해서 '수준미달'의 유사작이란 의심을 받곤 했다. (지금도 갑론을박 중이시다.) 읽어도 별 도움도 안되는 정서함양에 도움조차 되기 어려운 통속소설에 불과한 레베르테의 소설이 어떻게 에코의 걸작들과 비교될 수 있다는 거냐는 비아냥들이 난무하고 있었던 것이다. 레베르테가 <뒤마클럽>이야기를 하면서 움베르트 에코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는 지점이 의심스러운 의도로 호도되고 있었나보다. 정작 레베르테는 '쉬운 문학'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공교롭게도 독자층이 바라보는 시점은 지적유희가 판을 치는 움베르트 에코적 분위기가 오버랩되어 있는데 무슨소리냐라고 항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움베르트 에코'적이란게 도대체 뭘까.  움베르트 에코는 <장미의 이름>에서 자신의 소설적 정체성을 드러냈드랬다. 그러니까 플롯자체는 미스테리 추리소설을 표방하고 있었지만 과정에서 수많은 담론과 역사절 사실을 통한 갖가지 충돌식 토론과 의견을 지면위에 펼쳐놓음으로써 자신의 지적인 두께를 꽤 자랑했다. 독자들의 상당수는 한 인간이 두뇌에 담을 수 있는 지식총량의 무게에 이런 정도의 분량도 들어있을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면서 움베르트 에코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어쩌면 일반독자의 취향적 선택으로 보았을때,  추리소설로서 '장미의 이름'은 '잘못된 선택'으로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너무 길고, 너무 장황하고 그리고 너무나도 심취된 담론들의 연속이었으니까..취향이 죄는 아닐 것인데 에코스럽다에 너무 경의를 표할 건 없을테니 '장미의 이름'을 중도포기해도 충분히 납득할 만했다.  


어찌되었든 섬세하고 지적이며 현학적인 지식들을 백과사전식으로 펼쳐놓으며 역사적 사실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기술이란 왠만한 소양가지고는 어림없는 일이긴 하다. 우리는 상상력의 한계를 알고 있다.  적어도 '에코'적일 수 있으려면 몇가지의 조건들이 뒷받침되주어야 하고 그런 것들이 다 펼쳐지고 나서도 그 '케미'가 결론에 다다렀을때 얼마나 가슴이 공감해주는지도 기준으로 작용한다. 뒤마를 끌어들이고 '쉬운 문학'과 '정통문학'의 담론들 사이에서 보리스 발칸루카스 코르소를 대비시킨 채 격론 이끄는 정도로는 에코적이다라고 판단하기 어려웠을 것이나, 애초부터 레베르테는 그럴 마음조차 없지 않았을까. 자신은 '움베르트 에코'의 어려운 문학과 서술을 할 의도가 없었으니까. 그저 뒤마처럼 통속적이고 흥미위주의 쉬운문학이지만 자신의 창작성을 충분히 들러낼만한 내러티브였다고 <뒤마클럽>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데 방법적으로 에코의 서술적 스타일을 이용했다는 느낌은 강하게 든다. 


주로 독자들이 오해했던 건 <뒤마클럽>에서 발휘된 레베르테의 독서편력과 방대한 지식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역사절 사실 이면에 감춰진 미스테리한 설정들과 에피소드들. 팩션(Faction) 창조자였던  움베르트 에코 파트2가 되려면 이런 배경 없이는 불가능하다. 사실 이 유사성이 <뒤마클럽>의 매력이기도 하다. 우리는 초반부터 뒤마의 <앙주의 포도주>에 얽혀있는 이면 스토리에 집중할 것이고, 이윽고 병렬 대두된 아리스티테 토르키아의 17세기 델로멜라니콘의 삽화가 들어간 "어둠의 왕국에 있는 아홉번째 문'에 완전 몰입할 수 있다.레베르테가 쳐놓은 역사적 사실과 슬며시 틀어놓은 상상력의 설정의 늪에서 서서히 함몰되어가는 거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특유의 독서편력이 껴들고 갖가지 인용문과 상징이 결합되면서 장대한 '에코적 월드'를 은근슬쩍 그려놓았으니 혐의는 이제 충분하다.  

라파엘 사바티니를 소개하면서 <스카라무슈><캡틴블러드>를 소개하고 아예 초장에 주인공 루카스 코르소에게 캡틴 블러드보다 '스카라무슈'쪽이 더 사바티니의 경전에 가깝다는 의견을 슬쩍 비추고,  '아르멩골의 자식들' '고서와 사서학에 관한 호기심들', '페르실레스' '카스티야 왕국의 법전',  즈바코의 '호걸들', 폴페발의 작품들, 갈도스 번역의 디킨스의 '피크위크'등을 북 컬렉터들의 로망으로 묘사했고,  외젠느쉬의 '파리의 미스테리' 샤르니 백작부인, 두 다이아나총사들, 40권의 몬테크리스토 백작, 메리메'암노루의 복수' 등을 뒤마 그림자로 치장했으며,  베네딕토 카시아노 '악마사전', 피에르 크레스페의 '사탄의 증오' , 트리테미오 '스테가노르라피아' , 폰티아노'세기말에 대해'. 파올로 데스테 '에술에 관한 3권의 책' , 베르나르도 트레비사노의 '불가사의와 상형문자에 관한 엉뚱한 해석' , 붉은 집의 신사, 검은 튜을립등을 미스테리하게 창조, 인용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쉽사리 접해보지 못했던 몇몇 작품들의 나열에 기가눌리고 호기심과 그로테스크한 미심쩍음이 회오리칠 무렵, 이 <뒤마클럽>의 핵심이 되는 토르키오의 <어둠의 왕국에 있는 아홉번째 문>을 등장시켜 최고조로 긴장감을 증폭시켰다. 


자..독자들은 이 레베르테의 기가막힌 지적유희적 설정에서 얼마나 많은 내용을 캡쳐해낼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실적 근거와 상상력의 산물을 구별해 낼 수 있는 것인가. 책사냥꾼의 코르소가 자기경험적 지적반항을 보르하나 보리스발칸에게 뿜어내는 것에 어느정도 공감하고 동의할 수 있는가. 책을 사랑하다못해 집착하는 책과 관련된 탐닉주의자들의 심리적 모양과 허세는 그럴듯했고 고딕적인 나인스게이트(조니뎁 주연의 동명 영화 : 실제 뒤마클럽을 원작으로 했다.)는 미스테리의 한 축을 증폭해 단독화될만큼 영향력 있었다. 뒤마클럽의 두 스토리축이 말미에 가서 허무하게 '아무관련 없음'으로 결론 지어질때, 신비로움의 연쇄반응이 응고되어 가라앉아버렸다는 실망이 문제였던 거지. 과정자체는 흥미진진했지 않은가. 그래서 서평의 기대에 못미친 아쉬운 작품이라는 평가들이 먼지처럼 떠도는 거다. 


솔직히 코르소의 빈정거리는 듯한 지적유희에 가까운 대화체에서 쾌감을 느끼는 것으로는 책중독자들의 구미를 충족시킬수 없었다. 진짜 원했던 건, 리아나 타이예페르가 밀레이디 환생으로 비쳐지고 돌아가는 상황이 루카스 코르소를 달탸냥으로, 그리고 로쉬포르가 생명을 위협한 채 '앙주의 포도주' 이면에 숨겨진 현실의 판타지화였을 것이다. 보리스 발칸이 수없이 떠벌이다시피한 '카를로스 데 바츠 카스텔모로'의 정체나 아르만도 드 쉴레그, 앙리드 아라미츠, 이삭 드 포르토와 같은 역사적 사실이 얼마나 삼총사와 밀접한지는 그저 장식에 불과하다. 그런 내용과 해설을 읽을 수록 느껴지는 건, '알았다구, 그러니까 도대체 지금의 상황과 그 총사들의 사건이 얼마나 신비스럽게 연결되어있는지 이제 그만 비밀을 밝혀줘' 였다. 그런데도 여전히 태연자약스럽게 보헤미안 스캔들의 '이레네 아들레르'가 등장하고 그만 '황량하고 비탄에 잠긴 분위기가 감도는 왕국에서 혼자 앉아있는 단조로운 모습'으로 루시퍼를 묘사한 코르소를 사랑하는 스토리가 등장해버렸다. 


하나도 힘든데 두가지가 얽혀있다니, 그렇다면 리슐리에는 연금술사이고 악마주의에 사로잡힌 고에시아(Goecia)를 연구한 역사적 인물이기라도 했다는 건가. 그리고 뒤마는 그걸 알아채리고 '앙주의 포도주'에 그 비밀을 숨기고  '어둠의 마왕을 불러내는 책' 델로멜라니콘의 열쇠가 되는 키워드를 '친필' 원작 원고에 숨겨놓아서 코르소가 이지경 이모양으로 생고생을 하면서 이리저리 사건을 겪게 되는 건가라고 상상하게 된다. 파르가스나 파리의 웅게른 재단의 컬렉터들로부터 얻을 수 있었던 건 컬렉터의 허무한 삶, 그리고 악마주의 탐닉자의 허접스러운 옹호였다. 세속적인 플라비오 라 폰테와 낸터것의 포경사 클럽은 조크에 불과했고 결정적으로 리아나의 밀레디 오버연출은 섹슈얼한 에피소드를 무리하게 끼워넣다가 아무것도 아닌 이상한 설정이 되버렸다. 차라리 폴란스키의 나인스게이트가 그쪽으론 일관되었던 게 아닌가. 

나인스 게이트(Ninth gate)는 '앙주의 포도주'를 초장부터 거세하고 '어둠의 왕국으로 가는 아홉개의 문'에만 할애했다. 조니뎁에게 연결되는 리아나 타이예페르는 악마를 신봉하는 은밀한 조직원이었고 보리스발칸은 보르하와 합체해서 루시퍼를 만나고 싶어하는 그야말로 악마추종자로 화했으며 이레네 보들레르는 델로멜로니콘의 아홉번째 삽화의 여자로 연출되어 코르소를 나이스 게이트로 '인도'해주는 진정한 루시퍼의 대리인으로 나왔다. 약간 우습지만 영화와의 이 괴리감 중에도 여전히 리아나 타이예페르가 코르소와 책을 댓가로 섹스를 나누고 리아나가 따귀를 날리며, 이레네와 몽환적인 라스트 섹스신을 원작처럼 연출했다는 점이다. 가히 플롯의 주요 이벤트를 살리며서 '앙주의 포두주'만 들어냈던 셈이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조차 '뒤마클럽'의 '앙주 포도주' 미스테리는 극적 긴장감을 한번에 무너뜨리는 허망한 설정이었음을 눈치챈게 아니었을까. 약간이나마 총사들의 이야기에 나이스게이트가 연결이라도 되었다면 거대한 '얼음과 불에 대한 노래' 미니시리즈에 필적할만한 미니시리즈로 연출되었을 수도 있을텐데 그만 뒤마클럽의 조직적인 게임놀이에 놀아난 코르소라니...그러고도 보르하는 영화의 발칸처럼 부르짖다가 허망하게 끝난다. 코르소가 이레네를 통해서 나인스게이트로 갔다는 이야기는 원작에 없다. 그저 아홉번째 삽화가 잘못된 것이었다는 의미심장함만 남겨둔 채..시니컬하게 마무리되었을 뿐이다. 다만 뒤마클럽의 몰입도를 증가시키는 몇가지는 영화 나인스게이트를 먼저 본 탓에 완변한 코르소의 조니뎁을 상상했다는 것과 (Corso가 해적을 가리킨다고 하니 '캐리비안의 해적' 잭스패로우의 조니뎁이 나이스게이트를 선택한 건 숙명적인 결과가 아니었나하는 생각마저 든다.)앙주의 포도주스토리가 너무 허무해서 너무 기대했던 부담감이 격감된 것이다. 


개인적으론 영화도 좋긴 하지만 여전히 레베르테의 <뒤마클럽>이 좋다. 작위적이긴해도 코르소는 책을 정말 사랑하는 캐릭터이자 비열함느껴지는 세상때 물씬 묻은 사랑스러운 캐릭터고 이레네와 리아나는 충분히 자극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콘스탄스와 밀레이디였다고 느껴지니까. 게다가 난 뒤마의 <삼총사>에 대한 로망이 그득하니 <뒤마클럽>이 주는 뉘앙스가 그다지 나쁘지 않았던 셈이다. 두고 두고 읽을 지는 모르겠지만 흥미롭기로는 아르투로 페레즈 레베르테의 이력 중에서 제일 낫다고 본다.   





뒤마클럽

저자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출판사
시공사 | 2002-02-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210개의 역주, 2년여에 걸친 지난한 번역 작업 『뒤마클럽」은...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kewell
Vanilla Essay2013. 10. 17. 17:36


펭귄 클래식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다가 '거울나라의 앨리스'까지 읽지 않으면 도저히 안되겠다는 막연하고도 충동적인 느낌때문에 서점을 뒤졌다. 문제는 '거울나라의 앨리스'가 절판의 경지에 다다렀다는 점이다. 교보에도 절판중이시고 (현재까지는..) 반디앤루니스에서도 약 2권 남짓만 남아있는 상태고 어느 서점에서도 유독 '거울나라의 앨리스'만 집착적으로 많이 팔려주셨다. 괴이하기도 하지만 어쩔수 없겠다싶어 발품을 팔고 종로타워지점까지 가서 북셀프로 '거울나라의 앨리스'을 질렀다. 속이 다 후련하지만 책을 이렇게 충동적으로 사가지고 온 적이 어디 한 두번도 아니고 매번 이럴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혼자 자책하는 시나리오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 책장의 책들은 다 이런 식으로 구매된 랜덤과 무작위와 충동적인 감정의 산물들이었으니 숙명적으로 습관과의 평생 전쟁을 치룰 조짐들이라는....


언제나 충동적인건 아니지만 간혹 제대로 걸리는 날들이 있다.  지금도 이언매큐언의 '암스테르담' 그리고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그리고 커트보네거트의 '타이탄의 미녀'같은 책들은 언제나 '충동구매'의 영역안에 산다. 서점 책장 어디 한 귀퉁이에 꽂혀있기라도 하다면 그야말로 심마니 산삼보듯 쾌재를 불러줄텐데 요즘 같은 시절에는 결코 벌어지지 않는 꿈같은 이야기다.  온라인에서 절판이라는 딱지가 붙어버린면 오프라인으로 구매하는 것도 힘들긴 매한가지니까.. 구하기가 어려워서 중고서적을 기웃거려도 보지만 예전 중급의 중고서적을 받아들었던 기억으로 볼 때 그 볼품없는 타인의 흔적때문에 실망한 적이 하도 많아서 별로 내키지도 않는다. 중고는 나름대로는 어느정도 대안이 될 수있지만 여전히 아니다싶은 구석도 많다. 책을 읽을때 나아닌 다른 사람의 자취를 대면한다는 건 그리 좋은 기분이 아니고.... 어찌됐든 서점을 오고가다 보면 충동적인 구매의 향연을 벌일 때가 있다. 일전에도 아르투르 페레즈 레베르테의 '뒤마클럽'을 봤는데 얼마전까지 절판으로 구하기가 어려워서 헤맸던 책이었다. 경제적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질러볼까하다가 그동안 저지른 충동의 통장내역이 한심스러워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던 적이 있었다.  


다자이 오사무 전집도 충동적으로 질렀고, 레이먼드 챈들러의 절판 작품들도 혈안이 되서 찾곤 했었다. 그리하여 현재 읽어제끼는 책들보다 읽어야할 책들이 책상에 쌓여간다. 키는 점점 높아져서 이윽고 모니터 높이를 넘어서고 그리고 책장의 두칸정도높이로 솟구쳐올라 굉장한 기세로 말한다. 도대체 언제 읽을거냐고...그래도 시간이 흘러 그 책들을 구하지 못하게 되는건 너무나도 쓰라리다. 일단 구해놓으면 언제고 읽게 되니까. 벌이가 한심스러워서 책구매에 돈지출을 매조지해버리지 않는 이상 이런 투자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곤 했다. 친구말마따나 내가 이런 책의 탑에서 한권씩 한권씩 읽어 해치워 나간다고 해서 내 소양이 배가되고 인문학적 통찰력이 레벨업 되고 그럴거라고 기대하진 않는다. 


뭐라고 할까. 식신로드 중 만나는 별미를 놓치기 어려운 매니아적, 취향적인 식탐과 유사할까. 뭐하여튼 그런 느낌이다. 그냥 책속의 내용을 탐닉하고 그 작가를 읽어야만 하는 운명적인 데자뷰 같은 것들. 그리고 단 몇줄의 문장만 덩그러니남아 노트귀퉁이에서 조용히 말할 때, 그저 읽어버린 책 이상의 아우라들이 있게 된다. 어쩌면 코난도일의 말이나 망구엘 할아버지 표현대로 글쓰기를 위한 굉장히 효율적인 보물창고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일부러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퀼트처럼 명문을 갖다 붙이는 작위적인 의도는 꿈도 꾸지 않는다. 대개의 경우는 문장보단 감정이 남게되고 그런 감흥의 뒤에선 뭔가 스물거리는 삶의 묘미를 느낄 뿐이다. 아이러니하고 때론 우여곡절끝에 다다르는 간만의 정서적 안도감 정도면 그럴듯하다고 생각한다. 



Posted by kewell
Review BOOK/소설2013. 1. 10. 13:30

 검의 대가(El maestro de esgrima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김수진/열린책들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Arturo Perez-Reverte)<검의 대가>(El maestro de esgrima)을 아무 의심없이 광풍의 속도로 읽어버렸다. 누가뭐라해도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1990)이나 <뒤마클럽>(1992) 정도가 그의 유명작이겠으나 '검의 대가'는 처녀작만이 가진 임팩트가 있다. (아마도 그리 길지도 않으면서 굉장히 타이트한 스토리때문이었으리라.), 뻔한 미스테리 추리물 느낌이 약간 나주시다가 결말에 이르러서는 독자들의 기대와 환상을 뒤엎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여기서 묘하다고 한 점은 책을 끝까지 읽어보시면 알게 되신다.)


예전 로만 폴란스키의 괴작<나인스게이트>(Ninth gate)를 보고 나서 <뒤마클럽>이 원작이라는걸 알았다.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미스테리한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뒤마클럽을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던 기억이 있는데. 물론 영화와 소설은 괴리감이 있기 마련이고 아르투로 페레즈의 뒤마는 좀더 학구적이고도 좀더 인간적이었다는 느낌인터라 영화의 조니뎁과는 약간 어울리지 않았음에도 묘한 분위기만큼은 매력적이었다.그에 비하면 <검의 대가>는 문학적이란 뉘앙스가 강하게 느껴진다. 혹 역사적 배경과 결합된 서사적 구조때문일까라고 추측 해 볼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보다는 신비함과 미스테리한 초월적 분위기가 판타지적으로 등장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아무튼 <검의 대가>쪽은 스페인의 19세기 정치적 상황이 명료하게 명시되어있는터라 좀더 무겁고 어두운 스페인의 묵직함같은게 소설 전반에 흐른다. 정치적 관점을 가지고 주인공 하이메와 그를 둘러싼 지인들의 격론도 소설의 배경을 차지하고 있으며 초반부 전개를 읽다가보면 혹시 이게 정치소설인가 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킬만큼  굉장한 분량으로 독자들을 지치게 한다. (아마 재미로 이 소설을 집어든 독자는 대실망 예상! )  물론 주인공 하이메 아스트를로아는 이런 정치적 격랑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 철저한 무관심과 자기절제를 보여주면서 서서히 자기 갈 길을 간다.


하이메는 나이가 들면서 뭔가를 이뤄내야 한다는 강박관념같은게 있었는데 아마도 그건 '궁극적인 검술, 즉 최강의 검법을 완성하는 것' 이었던 것 같다. 여기까지 오면 '오호 이건 무협소설일지도..' 라는 착각이 있을테지만 많은 독자들이 기대하는 초식 전개 같은 무협지적 묘사는 흉내만 낼 뿐 포커스가 향해있지도 스토리상 그걸 원하지도 않는다. 물론 다양한 플뢰레 펜싱에 대한 기술용어가 줄을 지어 등장해서 마치 이걸 다 알아야만 하이메의 극강 검술을 상상이라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긴 한다. 아마도 아트루로의 검술용어 나열은 검술가로서의 섬세한 몰입, 정신세계로 향하는 그만의 여정을 구체화 할 수 있는 유일한 지도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뒤돌아서 찌르고, 한발 비켜서 검을 세우고 꼿꼿치 목을 노린채 연속해서 두번찌르고..하는 부연 설명과 화려한 이름들의 나열속에서 하이메는 왠지 모를 이상향 추구를 목매 기대리는 절실함같은게 엿보인다고나 할까.


그런데도 하이메는 '궁극의 경지'로 올라갈 기미같은게 도무지 보이질 않게 되고, 서서히 자신의 나이와 세월의 흐름속에서 다다를 수 없는 실패감과 그에 따른 무기력함을 느끼게 된다. '정의롭고' '굳건하며' '소신을 지키는' 따위의 자세가 허물어질때즈음,  아델 오테로가 찾아온다. 뒤늦은 나이에 젊고 매력적이고 검술까지 잘하는 묘령의 여인이 등장하면서 하이메는 다시 피가 요동치고 삶의 기쁨까지 누리게 된다. 여기까지만 해도 노회한 검술가와 매력적인 여제자사이에서 벌어지는 밀고당기는 로맨스, 그리고 정치적 격랑으로인해 이별과 만남을 반복하면서 기구한 애정행로를 테마로 하는 로맨스 소설의 진면목을 보여줬으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찰스디킨즈'의 두도시 이야기만큼 거대 서사소설로 변신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서 숙명적인 전개를 꾸며놓았다. 독자들도 대개의 경우 결말을 예상하게 되는데 아마 충격의 여파는 하이메가 결말에서 오테로를 어떻게 맞이하는가가 아니라 , 오테로가 하이메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느냐 쪽이 아닐까싶다. 거기서 독자들은 충격까지는 아니어도 작은 탄식을 내뱉지 않을까.


과연 이 여인은 무엇때문에 하이메로부터 검술을 배우려고 했던것인지는 미스테리 소설이 가지는 기본 장치정도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건 그다지 중요한 요소도 아니고...다만 오테로가 스승 하이메로부터 느꼈던 감정의 본질, 그리고 하이메가 오테로에게 쏟았던 관심과 열정의 정체,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역설적인 혼란속에서 전개된 하이메의 궁국의 검술이 드러나면서  하이메가 심혈을 기울였던 이상향을 완성시키게 된다. 독자들은 하이메가 그토록 원했던 궁국의 검법의 현실화를 보면서 어쩌면 이상향이란 냉혹하면서 피할수 없는 숙명적 대면을 극복하면서 나타나는 찰나적 깨달음일 것이다라고 느낄수도 있겠다. 원래의 검술가로 돌아온 하이메에게 뒤늦은 로맨스와 사랑과 회한은 어떤 의미였을까.


cf) 아르투로 페레즈는 <뒤마클럽>을 통해서 스페인의 움베르토 에코라는 명성을 가지게 되었다는데 움베르트의 <장미의 이름>을 읽었던 나는 <뒤마클럽>도 그렇고 <검의 대가>도 그렇고 슬며시 '어디가 비슷하다는 거지?' 라고 되뇌이고 있다. 유사한 뉘앙스라곤 역사적 사실과 서스펜스를 결합시키는'분위기'정도..  아무튼 움베르트 에코와 아르투로 페레즈를 엮는건 좀 비약이 아닐까싶다.

 


검의 대가

저자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2009-12-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검의 대가』고전들을 젊고 새로운 얼굴로 재구성한 전집「열린책들...
가격비교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