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illa Essay2014. 7. 3. 11:44

김승옥(金承鈺)과 하루키(村上春樹), 그리고 장마비가 오는 날.


-<언어의 정원>-


대낮에도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후드득소리를 내면서 무거운 비의 진탕질이 길바닥에 시작되면 언제나 드는 생각, 조용한 조명아래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 뿐이다. 하늘은 이미 야외의 축복이 없다고 단언하듯 시꺼먼 커텐을 쳐버렸고 땅에는 페인트 튀기듯 물난리가 벌어지면 거의 모든게 성가셔 진다. 남은 건 집구석에 쳐박혀 두터운 이야기의 세계로 들어가는 출입구만을 노리고...구석에 오렌지가 터져서 번진듯한 스탠드를 그윽하게 배경삼고, 적절하고도 눅눅함이 깃든 책한권을 손에 든 채  한장 한창 넘길 때, 이 보다 더 가슴 두근거리는 일은 아마도 없을 거라고...그렇게 혼자 중얼거린다. 사실은 그럴 수가 없을 뿐이지 세상에는 스스로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계기들이 수없이 존재한다. 다들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며,  약간 시니컬하게 말하자면 용기가 없어서 책읽기로 어수선함을 감내하기 어려울 뿐이다. 왜냐면 책을 읽는 동안은 자기가 현실을 도외시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얼마전,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다시 읽었다. 더불어 <서울 1964 겨울>도, <서울의 달빛 0章>도 같이 읽어버린 건 부수적인 행운이었지 아마 . 어쨋든 '60년대의 문학적 성찰'이라는 타이틀로도 이 묘한 기분을 갈음하기는 어렵다. 예나 지금이나 시대적인 소나기가 문장과 글에 내리고 그때였기 때문에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았을까라는 추측들은 다 별로였다. 이게 어디 60년대에 쓴 글이란 말인가 아무리 봐도 2014년 여름이 시작될 무렵에 썼다고해도 하나도 이상할게 없었다. 군더더기도 없고 단호한듯 하면서도 심플하고 그저 단촐한 풍경들이 이어지고 옅은듯 깊은 듯 감정의 도랑을 패이며 지나간다.  모종의 글쓰기 기술이란게 있다면, 아마 이런 문장들이 신의 축복이라고 했던 이유가 너무나도 분명해지는 순간이다. 아 이 분은 어쩌자고 이렇게 글을 잘쓰셔가지고 후대의 문학지망생들에게 두근거리는 도전의식을 심어주셨던가. 근 50년이 지나버렸는데도 아직 기력이 다하지 않은 이 생기발랄함은 뱀파이어 같을 정도다. 무섭기도 하고....평범해보이지만 정작 해보려고 하면 흉내도 내기 어려운 어떤 것들이 되버렸다. 


이렇게 유사한 느낌을 하루키의 글에서도 받았는데 김승옥과 하루키가 왜 비슷하게 느껴지는 거지라며 한참을 생각했다. 둘은 시대적인 연배도 다를 뿐이고 장르적 유사성도 없는데다가 추구하는 세계도 다르다. 그런데도 같은 악보에 있는 프레이징 같은 느낌이다. 혹시 김승옥이 이 글들을 쓰고..하루키가 어느날 챈들러를 읽다가 우연히 <무진기행>을 읽고 그리고 <노르웨이의 숲>을 쓰고....뭐 그러면서 어느날 읽다보니 한국에도 인상적인 소설이 있었어요..김승옥 상이라고...단편들을 쓰셨죠. 업다이크도 좋지만 김승옥씨의 글도 좋았어요. 한번 읽어보세요.....아마 이렇게 추천사를 썼었어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이상하지도 않았을 것만 같다. 둘 사이에는 시간의 교량이 있어서 장마비가 내리는 날에 통로가 연결되고 그 다리위에서 오며가며 같은 감정을 느끼고 둘이 혹시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오호라 당신도 나와 비슷한 부류 구료 서로 인사나 하시죠 라고 악수도 하고 ....그러지나 않을까....



비가 상상을 너무 부채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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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BOOK/에세이2013. 9. 12. 21:39


난, 하루키가 예전 무라카미 라디오에서 밝힌 브래지어 에피소드에서 (여권신장을 위해서 브래지어 소각 이벤트를 벌이는 걸 보고 '과연 입던 속옷일까'라는 의문을 가졌다고 밝힌 ..) 약간의 기이한 변태(?) 기질이 있다고 느꼈던 적이 있었다. 그 뒤로도 1Q84의 덴고와 후카에리의 판타지 퍼포먼스(?)도 그렇고, 이미 <노르웨이의 숲>에서 와타나베도 나오코와 미도리, 그리고 레이코와 자유분방함을 보여준바 있었으니까 (당시의 평론들을 보면 '학생들의 머리속에 온통 섹스밖에 없는게 놀랍다'라는 비스무리한 평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오해도 그런 오해가 없을거다라고 생각해도 역시 성적인 코드가 등장하면 그 아저씨 또 변태기질이 도지셨나봐 그런쪽으론 굉장히 기발한 하루키씨..라고 해도 뭐 딱히 할 말도 없다.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이란 제목도 약간은 그런 기질이 반영되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쌍둥이 자매를 여자친구로 가지고 싶다는 에피소드에 달린 제목이었으니까. 어쩌자고 쌍둥이 자매를 여친으로 해서 뭐 . 언니인지 동생인지 일부러라도 헷갈리고 싶다는 거에요 뭐에요 하루키씨 !!! 라고 말이라도 하고 싶지만..사실은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 역시 '이번엔 널 한번 써볼까?" "꺅 싫어요 거짓말이죠" 라고 이미 또 쓰셨으니  이 정도되면 기발한 상상력을 넘어서 주책이다 싶을 정도다. 사실 우리도 이보다 더한 상상력을 발휘해서 개개인의 본능속에서 더 엉뚱한 광경들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는 보장은 없다. 더하면 더했지... 하루키의 매력은 꼭 소설속에서 '상실'과 '비관'만을 말하고 '본질'에 대한 탐구만으로 일목요연하게 달려가는 그런 형태 외에도 이런 엉뚱함과 유쾌함이 더 본질적인건 아닐까. 실제 삶과 더 관련이 있을테니까 말이다. 


기질적으로 보면 형식적인 부분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성격때문에 안티 시스템 히어로(Anti-System-hero)같은 작가 같다고 느낌도 종종 든다. 이 동네에서 이 정도의 아웃사이더 히어로는 '커트 보네거트'옹 하나만으로 충분하겠지만 하루키도 거참 나도 만만치 않아 제기랄 하고 속으로 외치지 않는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애초부터 그는 이사를 거주지변경따위의 개념으로 인식하지 않고 주기적인 휴지통 비우기로  이사의 필요성을 인식한 바 있고, 레이 파커 주니어의 'I Still Can't Get Over Loving you'보단 제목으로 'I Still 사랑해'가 더 낫다고 할 만큼 심플한면도 있다. 본인이 에세이에서 밝힌 것처럼 그저 '그런거지뭐'와 '그래서뭐'를 남발하면서 넉넉하고 무책임(?)하게 살고 싶어하는 쪽일 수도 있다. 물론 이 정도되면 일반 서민들도 바라마지 않는 편안하고 쾌적한 마인드일테지만 우리가 정작 부러워하는건  동심과 감성의 스파게티가 오밀조밀 잘 자리잡고 있는 특유의 정서지 싶다. 


종종 그의 글에서 선더버드를 탄 여인이 등장하곤했는데 이게 바로 영화 <청춘낙서>에서 '리차드 드레이퍼스가 길거리에서 우연히 본 선더버드를 탄 꿈의 여자'the girl of a dream'를 잊지못해 밤새도록 찾아다니는 에피소드에서 연유한 거였다. 그리고도 그는 원래 사랑이란 이렇게 기존 시스템을 넘어선 행위라고 했드랬다. (난 지금도 그런 여인이 아무리 멋져도 밤새 찾아헤메고 싶은 마음같은 건 없지만) 세상의 끊임없는 고착화된 시스템과 고정관념들의 틈에서 분투하는 하루키씨라니...그러고 보니 문득 소설을 쓰는 이유로 '개인의 혼이 가진 존엄함을 드러내어 거기에 빛을 더하기 위해서..우리들의 혼이 시스템에 끌려들어가 멸시당하는 일이 없도록 항상 거기에 빛을 비추고 경종을 울리는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보자면 소설이든 에세이든 그는 세상의 고정관념 따위는 내 알 바 아니다라고 지속적으로 은근히 글로 표현하고 있는거 아닌가. 



고정관념 같은 거야 그렇다쳐도 개인적으론 그의 정서적인 표현능력이 부러울 따름이다. <렉스턴의 유령>도 그렇고 <도쿄 기담집>외에도 로저 젤라즈니의 <고독한 시월의 밤>같은 고딕적인 뉘앙스를 좋아하는데.. 하루키에겐 일상적이고 습관적인 상상력으로 충분히 이런 이미지들이 글로 아무렇지도 않게 재현되어지나보다. 찰스턴의 유령이라는 대목으로 그가 묘사한 문장들...


'해질 무렵 코블스톤이 깔린 찰스턴의 고즈넉한 거리를 걷다보면 화려하게 세공된 검은 철문 너머에 , 또는 뿌옇고 희미한 불빛에 드러난 차고 한구석에 무슨 이상한 그림자가 비친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밤의 정원은 적막하고 아름드리 떡갈나무가지에 털실처럼 늘어진 착생식물은 강바락에 흔들리고 백일홍 꽃이 저녁 어둠에 어스름하게 떠있다...모든 것이 고풍스럽고 조용하고 그리고 우아하다


라고 했다. 소설적 배경으로도 하나도 아쉬울 것 없는 밑그림들이다. 그래서 아마 감탄하고 찬탄하는 거겠지. 일부러 만들어보려고 해도 이미지화 시키기 힘든 것들은 수월찮게 글로 그려내는 재주라고나 할까. 그게 관찰력이었든 아니면 그가 가진 특유의 정서적 질감이든 간에 그런 부분은 부러울 수 밖에 없다. 내가 멈춰버린 시계를 보면서 '전지식 시계의 죽음에는 차갑고 무거운 어떤 것이 있어서 몇년에 한번 밖에 멈추지 않기 때문에 그 죽음에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의 도래'를 느끼기야 하겠는가. 강의에 들어갔는데 '휴강'이라고 써있어서 이 짜투리 시간이 마치 인생에 있어서 덤으로 주어진 캐러멜 같다고, '핀볼머신'을 보면서 왠지 멸종해가는 공룡같은 슬픔이 떠다닌다고 혼자서 감상에 젖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저 멍이나 때리면서 현상이 눈표피에서 뇌쪽으로 혹은 가슴으로 더 이상 진입하지 못하고 증발해버리는 거다. 그래서 이 에세이를 읽으며서 감정 회로사이에 끼인 고정관념의 콜레스테롤이 녹는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삶의 유쾌함 지수가 올라가는 느낌과 소소함으로 읽혀지는 소중함같은 것들을 뒤늦게 알게되는 기쁨...그런 것들이 에세이 전반에 구름 처럼 떠있다. 


'모든 면도기에도 철학이 있다'고 했으니 어쩌면 계속해서 무라카미의 에세이를 읽다가 보면 그 느낌들이 내몸에 맞는 옷처럼 편안하고 당연하게 느껴질 날도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본인 말처럼 '자기를 둘러싼 호의와 악의의 총량을 양방향으로 , 그것도 비약적으로 확대된지 꽤 되셔서 (유명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 당시 에세이를 쓸 때처럼 자연스럽게 오가면서 편안히 뭔가를 하실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마라톤이라고 뛰려고 참가하면 갑자기 옆에서 '오..하루키씨 아니세요. 책 잘 봤구요. 사진보다 낫네요 라고 할 수도 있다. 이젠 그가 사진 찍는 걸 별로로 생각한다고 해도 이미 많은 스틸들이 퍼져나간지 꽤 됐다. 오히려 모르는 사람이 있는게 더 이상할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지금의 하루키씨는 에세이에 뭘 쓰려고 해도 이젠 정말 귀찮아졌을수도 있다. 그냥 상상해봤다.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2-07-24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작가가 아닌 생활인 하루키, 젊은 하루키를 만난다 무라카미 하루...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kewell
Review BOOK/에세이2013. 8. 13. 12:43


이렇게 된 이상 하루키의 에세이 연작들에 대해서 다 이야기해 볼 작정이다. 지금까지 나온 에세이들을 꽤 읽었으니까 몇 권 안남았다. 아마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양장본 에세이 시리즈 2권만 빼놓고는 다 읽었나보다. 비채가 시리즈로 낸 하루키 에세이는 <저녁무럽에 면도하기>,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이렇게 3권이다. 무라카미 라디오 연작으로 에세이 중, 가장 하루키스럽고 단백하다고 정평이 나있는 에세이들이기도 하다. (휘어지는 표지는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굳이 소개하지 않았어도 하루키 매니아들은 손수 다 찾아 읽었을 것이고 나같이 하루키의 엉뚱하면서도 세련된 문장체가 좋아서 (마치 뇌의 안쓰던 부분을 쓰는 듯한 느낌) 무턱대고 읽었던 독자들로 꽤 있었을 것이다. 


최근 하루키의 에세이들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느낀 점이 있는데 그것은 이 아저씨가 '글은 정말 단백하고 깔끔하게 쓰신다' 였다. 부연과 전제가 질질 끌려서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장황함도 없고 지적이면서 동시에 허영기가 짙게 배인 '잘난척' 단어 나열도 좀 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이 분이 재즈 감상기를 쓰시게 되면 약간 어려운 말들이 등장하기는 한다.). 이렇게 절제와 간단명료를 문장에서 실현하시는 분들도 생각보다 만나기어려운 시절이다. 게다가 생각과 판단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은 대다수의 작가들이 가지지 못한 하루키 특유의 정체서이기도 하다. 많은 에세이들에는 지은이의 신념과 가치관들이 알게모르게 스며들어있기때문에 은근슬쩍 '주장'과 '단정', 그리고 '자기생각에 Sync를 맞춰주길 기대하거나 동의해주길 원한다. 그런 내용이 반복되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고서는 읽는 것자체가 부담스럽고 영 껄끄러워지는데 그런 상태에서는 읽기는 거의 '폭압적' 납득이 되거나 입에 맞지않는 음식을 꾸역꾸역 입에 넣는 것보다 더 괴로운 법이다.  


'에세이든 소설이든 문장을 쓸때 친절심은 중요하다. 상대가 읽기 쉬우면서도 서로 이해하기 쉽게 써야한다. 그런데 시도해보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P23)


하루키표 에세이에는 이런 자기 생각에의 강요가 별로 없다. (약간의 툴툴거림이나 시니컬한 요소들이 있긴 있다.) 이 모든 산물은  레이먼드 카버나 트루먼 커포티, 그리고 존 치버, 업다이크로부터 왔을 가능성 크지만, 사실 카버스럽다는 것도 그렇고, 커포티답다는 것도 쉽게 와닿는 그런 부분은 아니라서 딱히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뭣하다.  책을 읽었어도 애매하고 손에 잡힐듯 잡히지 않는 무형의 아이덴티티와 같은 느낌 같은 것일 뿐이다. 읽다가보면 어 이건 카포티와 비슷하고 저건 카버하고 유사한 느낌인데 라고 되뇌이게 된다고나 할까. 


하루키의 글에는 레이먼드 카버의 문장 단위의 생략에서 드러나는 은밀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암시들, 그리고 트루먼 커포티 특유의 오밀조밀한 디테일함, 이 두사람을 교묘히 이어서 균형감각을 가지고 주제를 적절히 녹이는 존 치버의 장점들이 복합적으로 녹아있다. 결국 하루키는 스스로가 '친절심'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스스로가 추구하는 문장에 대한 완성도에 대해선 자기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작가들의 재능을 대신 표출해주고 있다. (본인은 아니라고 우기지만 어쨋든 그가 글을 편하게 쓴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다보니 선대작가들의  영향력을 빼고서라면 그의 상상력이 어떨까 궁금해질 때가 있다. 수많은 작가들을 오마쥬해서 스타일을 짜깁기했다고해도 하루키는 하루키인 것이니까..그의 발군 묘사실력은 기묘한 상상력, 그리고 세련된 그의 삶의 스타일에 기반한 것이 아닐까하는 것이다. 


 '섹스한 다음날 아침, 침대에는 아직 여자친구가 있고 남자가 티셔츠와 헐렁한 사각팬티 차림으로 주방에 서서 물을 끓여 커피를 준비한다. 그리고 시금치 오물렛을 준비하는 것이다. 가스불에 버터를 녹이고 오물렛을 만들고 여자친구는 스트라이프 면셔츠 바람으로 , 나른한 듯 침대에서 나오고...슈베르트의 아르페 지오네 소나타가 흘러나온다


시금치 오믈렛이니 스트라이프 셔츠니 아르페 지오네 소나타네 하는 것들이 일상에서 등장할 리가 없겠지만 하루키의 글에서는 이런 로맨스 물씬 풍기는 장면들이 영화처럼 자주 등장한다. 이유가 뭘까.  언젠가 평론가의 글에서 이런 대목을 읽었던 걸 기억한다. 하루키의 에세이나 소설에는 현대 자본주의 문화의 전형적인 스타일이 스며들어있다고....따라서 현대인들은 하루키의 글을 보면서 '그러한(?)생활을 은근히 동경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어있다고....나도 역시 마노아 레터스와 쿠라토마노, 쓴맛이 없는 마우이 어니언을 곁들이고 롤빵에 차가운 맥주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가 이런 것일까. 하루키 아저씨처럼...뭘해도 참 분위기 있게 사시는 이 아저씨의 에세이는 그래서 동경할만 한 걸까. 나도 그렇게 살아볼 순 없는 걸까라고 생각했드랬다.  토니베넷의 <샌프란시스코에 두고온 내마음>을 들으면서 랄프샤론의 피아노 인트로가 연상되고 재즈클럽은 뉴욕의 '빌리지 뱅가드'가 최고라는 기억을 되살려 한번 즘 가볼 수 는 없을까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책장을 넘기다가 아주 공감할만한 에피소드를 하나 만났는데..'주유소 사건'에 관한 것이었다. 하루키가 차를 몰고가다가 기름이 떨어져서 주유소까지 통을 들고가 기름을 담아와서 어려움을 벗어났다라는 단순한 이야기였는데 아마도 그때 하루키가 '혼자여서 다행이었다'라고 말한 대목 때문이었을것이다. 그 자리에 여친이 있었다면 '진짜 멍청하다니까.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이 사람하고 사귀는건 잘못된 선택일지도 몰라' 라고 말하게 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대목말이다. 나는 이대목에서 공감백배였다. 나도 역시 혼자다니는 이유중 하나였으니까... 여친이나 애인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건 끔찍하니까..이 외에도 고등학생의 '헌욕수첩' 같은 황당한 에피소드도 좋아한다. 슬그머니 한마디 해줄 뿐이다. 이런 변태같으니라고...^^


'신주쿠역에서 '지금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라는 음성이 녹음되어있어서 원치 않는 전화를 적절하게 커팅하고 싶다고 했을때도 나는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런데 아저씨 이런 기능은 진짜로 특허가 나와 있다는거 아세요? ^^) 소띠 산양좌 A형이라고 고백 할 때..어라 나도 소띠고 A형인데라며 웃었다. 이련 묘한 일치감이라니 하루키 아저씨도 기질적으로 나와 진배 없을거라는 대착각이 근거를 가지는 순간이었다. 다만 하루키가 언급했던 헤밍웨이의 진정한 남자되기 4가지는 동감하기 어렵다. 나무를 심고, 투우를 하고 책을 쓰고 아들을 낳는다라는 것들...이건 뭐 해밍웨이의 몰린 정서나 가치관 때문이지 남자되기와는 별 상관이 없었으니까..그런데도 역시 하루키는 이 부분에 대해 별말 없다. 다만 책을 쓴다는 점에 있어서는 자신도 남자라는 우쭐댐을 슬쩍 흘리고 싶어했으리라..


 '우리는 조류를 거스리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 이 것은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구절이었고 ' 마지막 문을 닫아라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아라. 그저 바람을 생각해라'는 트루먼 커포티의 단편소설' 마지막 문을 닫아라'에 등장하는 말이었다. 그가 결국 삶속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있는 그대로를 두고 무덤덤하고도 쿨하게 저벅저벅 가는 것. 남들이 보고 들었던 수많은 고정관념들속에서 아마 '시스템에 붕괴되어가지 않도록 버티면서도 그 의식들이 거대토끼처럼 되지 않기였나보다. 그래서 독자들이 하루키 아저씨도 이젠 잔소리쟁이가 되버리셨어라고 되지 않기를 은근히 기대하면서... (언젠가 그가 자신이 글을 쓰는 목적에서 밝힌 바 있기도 하다.) 


읽으면서 기대했을 지도 모른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만큼이나 희귀하고 엉뚱하지만 생활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하루키 아저씨가 조근조근 계속 이야기해주기를...그렇게만 되면 점점 더 닮아갈지 어떨지 확신은 못해도 이 에세이들이 내 삶에서 벌어질수도 있다는 동질감은 유지되지 않을까 생각했나보다. 가끔은 나도 덤덤히 무던하고 쿨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치열하고 북적거리고 머리속에 범람하는 수많은 스트레스의 분량들은 내가 찌질하고 구차하게 살아서 생긴 침전물이 아닐까 의심해보게 된다. 좀더 쿨해지고 싶을 뿐이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비채 | 2013-05-04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오하시 아유미의 일러스트와 함께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오리지널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kewell
Vanilla Essay2013. 7. 26. 15:20

1. 러브크래프트 전집 1권 -크툴루 신화-(황금가지) : '크툴루의 부름' 편까지 읽음

2.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동네) : 다 읽었음

3. 저녁무렵에 면도하기 -무라카미 하루키- (비채) : 다 읽었음.

4.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수첩 -오카자키 타쿠마-(소미 미디어) : 30p 정도 읽는 중

5.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시오리코 시와-  (디엔씨 미디어) : 20p 정도 읽는 중.

6. 머니볼 -마이클 루이스 (비즈니스맵) 약 반정도 읽음.




이러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들을 다 읽을 듯 싶다. 하루키의 책을 열렬히 좋아해서 반드시 안읽고는 못배기겠다라는 마음가짐은 없는데도 그냥 읽게 된다. 매일 아무생각없이 삼키는 캡슐 비타민처럼 말이다. 아마도 젠체하지 않는 특유의 담백한 문체가 좋아서일수도 있고 정서적으로 환기되는 휴식같은 즐거움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물론 에세이에 한해서지만...(소설은 다른 이야기다.) 문학동네에서 내 준 에세이 시리즈는 검은 하드커버로 그럴듯하게 나와줘서 예전에 시리즈로 구입을 해놓은걸 차례차례 하나씩 조각케익 꺼내먹듯 읽고 있다.  문학동네판 에세이는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그리고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이렇게 2권 읽었고, 비채에서 내놓은 또 다른 에세이 시리즈 3권은 다 읽었다. (저녁무렵의 면도하기,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에세이 8권, 그리고 재즈 리뷰 2권인가 그렇고 단편소설들까지 더하면 꽤나 읽은 건 사실이다.  


레이시 이야기를 다읽고, 하루키 에세이도 다 읽고나니 소설과 에세이가 지루해져서 예전에 읽다가 잠시 둔 마이클 루이스의 '머니볼' 한 챕터를 읽었다. 4장 무지의 필드편인데 의외로 잘 읽혀져서 당황했다는...이유인즉슨, 지난번 읽을 때, 굉장히 따분하고 지루해서 한장 한장넘기는 게 고역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이번엔 굉장히 잘읽혔다. 아마 빌리빈의 천재적인 안목을 반영한 영화적 감동을 이 책에서 기대했었나보다. 그러기에는 너무 다큐멘터리 comment 같아서 (가끔 읽다가 '서프라이즈'의 이야기를 해설하는 걸 글자로 듣는 기분이었다.) 드라마틱한 반전같은 걸 기대하기는 어려웠는데 소설을 읽고난 뒤라 그런지 덤덤한 문체뒤에 기이한 동감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한편, 책을 중간중간 사두는 편인데 라이트 노벨은 왠간해서 집어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비스무리한 두권의 책을 쌓아두었다. (순전히 불량식품 하나 빨아보자라는 불순한 의도였다.) 하나는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 그리고 이번에 신규 등장해주신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수첩. 뭐 이렇게 제목들에수첩들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라며 시니컬거렸는데도 (아마도 일본특유의 라이트소설 네이밍이 아닐까. 판에 박혀버린 일종의 습관성 제목붙이기의 희생양 정도..? ) 의외로 두권의 책들이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두개의 책이 좀 질감이 다른데 하나는 그야말로 호기심을 당기는 라이트 노벨속성, 그리고 탈레랑은 묘하게 문학적 냄새가 슬쩍 풍겨서 놀랐다는...번역을 보아하니 '양윤옥' 여사시다. (1Q84의 그 분...)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전담 번역가인걸로 기억.... 탈레랑도 맡겼나보다. 이 두권은 좀더 읽어봐야 진면목이든 뭐든 알 수 있겠다. 


러브크래프트 전집은 사다놓고 읽지 않아서 큰 맘먹고 읽기 시작한 책이다. 대략 크툴루의 부름까지 읽었는데 플롯은 포기하고 오히려 기괴한 네이밍들이 매력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레이트 원이 나오고 크툴루가 주문으로 불려나오며, 네크로미콘, 미스캐토닉이 등장하면 정신이 바짝 조여드는 기분이다. 사실 로저 젤라즈니의 '고독한 시월의 밤'에서 듣게된 '미지의 카다스를 향한 몽환의 추적'이 궁금해서 크래프트저작들을 읽게 된건데 의외로 그 세계가 깊어서 놀랍고 생생한 묘사가 그럴듯해서 다시한번 감탄하게 된다. 도대체 이런 상상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에드가 엘런 포도 정신착란에 시달렸는데 혹시 러브 크래프트도 기괴한 상상력이 그의 정신을 갉아 먹었던 건 아닌지....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