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Pantry2014. 6. 14. 11:56

1. 

레이먼드 챈들러를 읽게 된 건, 완전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향이었지만, 사실 하루키가 극찬한다고 해서 내가 그걸 재미있게 읽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아무래도 난 무게감있고 진지하며 자아성찰적이면서 눅눅한 현실을 담담히 묘사해서 그럴듯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야말로 명작들에 대해서 그걸 인내심을 가지고 읽을 만한 '태도'를 갖추지 못한 독자쪽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스토리가 두근거릴정도로 재미있어야 하고, 문체는 재기발랄하면 더 좋고 구질구질하지 않으면서 암울한 불운의 스토리가 비엔나 쏘세지처럼 이어지지 않는 그야말로 뻔한 소설쪽이 더 어울린다. 실제로도 그런 쪽을 더 잘읽는다. 이건 피해갈 수 없는 진실이다. 그래서 내가 어디가서 잰체할 수 없고 뭔가를 안답시고 주절거릴 수가 없다. 좀만 아는 척해버리면 이윽고 들통 나버릴 수 있는 확률이 커질테니까. 그런 점에서 보면 챈들러의 소설은 좀 자유로운 편이다. 


'빅슬립'당시에 문장의 간격에서 벌어지는 왠지 모를 쿨함때문에 피식피식 웃음이 나버리고 쉽게 쉽게 사건이 요약되고 뭔가 위트가 사이사이에 치즈처럼 발라져 있다.   어느날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면도를 하고 맥주 하나를 까서 먹으면서 침대로 향하다가  누가 내목을 강하게 내려쳐서 정신을 잃었다라는 식의 전개가 무덤덤하게 전개된다 .주인공이 쓰러졌다라는 사실에 군더더기가 없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이 빠르고도 전광석화같은 반전들이 일목요연하게 요약되는 와중에 주인공은 상황에 맞지 않는 시니컬한 농담이나 끄적이고 있고.....결국 문장 자체에서 이런 일목요연하면서 깔끔한 리듬을 느끼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지 싶다. 챈들러의 장기는 구구절절한 설명이 없다는 거였어. 그저 사건이 벌어지고 그 사건들이 짧게 묘사되는 동안 생각은 독자가 하고 필립말로우는 그걸 쿨하게 받아들이는 거지. 하드보일드적이란건 대체로 이런 거였나..혼자 상상하게 된다. 빅슬립이 완전히 흠뻑 빠질만큼 재밌다곤 할 수없었음에도 이런 매력때문에 '기나긴 이별'을 읽으려고 '호수의 여인'대신 고르게 되었다. 기나긴 이별쪽이 더 길고, 긴 만큼 이 여운을 더 즐길 수 있을 거라는 조삼모사식의 해석 때문이었다. 두고 보면 알겠지. 


2.

SS 밴다인의 '비숍 살인사건'을 최근 읽었다.  읽다가 보면 역시 추리소설의 중흥기는 1900년대 이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스 마플엘러리퀸필립 말로우마이크 해머,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이먼 템플러라든지 말이다. 물론 대다수의 독자들이 생각하는 탐정소설의 캐릭터는 '셜록'이다. 컴버배치의 씽크로 100%에 가까운 BBC 드라마만 해도 몰입도를 극대치로 키워줄 정도니까 이런 탐정물의 역사는 하루아침에 이루진 건 결코 아닌 셈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 추리소설은 죄다 일본 소설이나 스칸디나비아풍의 변종 소설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뭔가 지나치게 작위적인 느낌을 지울 길 없고 뭔가 드럽게 재미없다는 (매니아분들께는 죄송) 느낌이 반복되고 있다. 어떤 점에서는 참신함을 발굴하고자 기존 고전들의 따분함을 아예 거세해버리는 선택을 한 셈인데 이게 효용성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팔리는걸 보면 이를 인정 안할 수도 없어서 그저 난 개인적으로 뒤쳐져버린 세대가 되버렸군이라는 생각만 든다. 난 아직도 브라운 신부의 스토리를 좋아하고 에퀼 포와로의 사색을 잊지 못한다.  아무리 베스트셀러에 올라가 있어도 히가시노의 갈릴레오는 내 추억의 캐릭터에 비교조차 안된다. 이게 진정한 고리타분함이라고도 할수 있겠다.


3.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재출간이 되자마자 그동안 중고사이트에서 폭등한 가격으로 흠칫 놀라게 만들었던 몇 몇의 중고상품들이 가격 하락을 겪고 있다. 올곶이 버티는 분들도 계시는데 그 분들은 아예 자신들이 등록한 대성당이 있었는지도 잊고 있는 양반들이거나 대성당 신판이 등장한 것을 아예 모르고 계시는 아주 바쁜 분들일 가능성이 크다. 아무튼 중고사이트에 등록되는 몇가지의 서적들에 대한 가격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제때 구입하지 못한 책에 대한 댓가가 제대로 돌아온다는 느낌이다. 그 때 구입했어야 하는건데 라는 후회는 사실 말짱 아무짝에 쓸모없는 후회일 뿐이지만, 어찌됐든 형편상 책을 구입하지 못하는 것도 운명적이 측면이 있다. 


어떤 책들은 생각조차 안했음에도 불현듯 구매해서 충동질의 결과로 남고, 어떤 책은 매번 갈때마다 집었다놨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그 자리에 모셔두고 그냥 오는 경우도 있다. 그런 책들의 운명은 내가 읽을 운명이 아닌 아이러니한 책들의 목록에 추가된 채, 인생 전체를 부유하게 된다. 내가 놓쳐버린 책, 읽었어야 하는 책..뭐 이런 타이틀이 붙은 채 말이다. 다만 훗날이라도 그 책을 찾아 해메일때 가격이 적당했으면 좋으련만, 흠칫 놀랄 정도의 가격표를 보노라면..이 책을 절판시킨 출판사를 원망하게 된다. 이 모든 가격폭등의 책임자는 출판사로 귀결되는 것이다. 이렇게 대성당 처럼 신판이 나와주면 좋은 일이긴 하다. 가끔은 가격을 너무 터무니 없이 올려버린 중고서적들의 주인들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볼 때, 이런 신판은 '책의 정체성'을 교란시키는 배신행위처럼 비추어질 수도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운명은 절판의 운명이니까 이대로 둬. 세상의 몇권만 남은채 나를 부각시키고 싶단 말이야 ..뭐 이런..대성당은 그러기에는 대중의 욕구가 큰 소설이었지 아마..

'Book Pant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Book Pantry - 6월 5주차  (0) 2014.07.01
Book Pantry - 6월 4주차  (0) 2014.06.26
Book Pantry - 6월 3주차  (0) 2014.06.24
Pantry Slot - 5월 5주차  (0) 2014.05.27
Pantry Slot - 5월 4주차  (0) 2014.05.21
Posted by kewell

드디어 나온다. 


질리게도 오랫동안 언제 나올지 알 수도 없던 바로 그 <대성당>. 책 호갱들께서 값을 천정부지로 띄우시는 바람에 중고서적에서도 어안이 벙벙한 책값으로 놀래키던 그 작품. 대체로 이 책이 유명해진건 몇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무라카미 하루키가 레이먼드 카버를 좋아라한다는 건 알만한 양반들은 다 알고 있을테고, 카버의 작품들 중 몇개가 아주 좋은데 그 중에 이 작품이 끼어들어가있다는 점. 그리하여 대다수의 글쟁이들께서 카버의 이 작품을 오래도록 곁에두고 읽고 또 읽는다는 풍문. 여기에 이걸 번역하신 분이 소설가 김연수라는 사실도 부수적으로 이슈가 되었드랬다. 


얼마전에도 김중혁씨가 김연수씨가 대성당 재출간으로 분주하다고 했을 때, 아 조만간 나오겠구나 싶었는데 드디어 등장한다. 이 책을 구해볼라고 얼마나 뻘 짓을 했는지 그 사연을 소설로 써도 그럴듯한 단편소설이 될거다.  아무튼 세계 문학전집의 표지 디자인이 썩 그다지 좋다곤 말하기 힘들지만 어쩌겠는가 절판된 운명의 초판들을 뒤로하고 이렇게라도 읽을수 있다면 만족해야지. 이전 노란색 표지도 나쁘지 않았다. 카버의 단편선들은 왠지 시리즈의 일편으로 끼워넣기엔 약간 모양새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문학동네측으로서는 세계문학의 한 부분으로 장식해놓고 싶었을지도...하도 문의가 많아서 골머리좀 썪혔을 것 같기도 하고...


나도 노란색 대성당을 가지고 있었는데...개정판으로 읽어봐야겠다. 




Posted by kewell
Vanilla Essay2014. 3. 12. 21:52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시오리코다자이 오사무<만년>에 불을 붙이는 쇼로 가사이를 충격에 빠뜨릴 때 가사이는 '시오리코가 결코 책에다가 불을 붙일 부류의 인간이 아니었음을 알았음에도 당황했었드랬다. 왜 그랬을까. 좋아하는 책이 소멸된다고 생각해서다. 앞뒤 가릴 것없이 그것만 눈에 들어오는 좁아진 시야를 보면서 한정판의 위력을 본다. 모든 한정판은 가슴을 뛰게 한다던 지인의 표현처럼 어떤 대상이든 그것이 제한적이거나 소멸의 과정에 있다면 남기고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게 마련이다. 책같은 경우에는 좀 다르다고는 생각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책이 불탄다고 상상하면 나도 별반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는 결코 책에다가 불을 불일 수 없는 시오리코 같은 부류가 반드시 존재한다. 그 사람들은 책을 찢을 수도 구길 수도 그리고 불태울 수도 없는... 제 몸이 구겨지고 찢겨질 지언정 책은 보듬어 안고 언제까지나 깊은 자신들만의 서재에 꽂아두고 싶어 하는 쪽이다.  나는 그정도는 아니어서 영원한 소유를 꿈꾸지도 않지만 가끔 읽어야 할 책들이 내곁에 늘 있어서 읽고 싶을 때 언제든 집어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기대하고 바라는게 죄는 아니지 않은가. 단순히 읽고 싶은 순간에 찾아도 찾아도 없는 경우가 문제인거지..가끔 읽었어야 했지만 여러가지 저간의 사정으로 읽지 못했던 회한의 책들을 다시 찾으면서 이번에는 읽어야지 이젠 여유도 있고 시간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때가 무르익지 않았겠어 읽어야 할 때가 도래했으니 나는 읽어야만해 라고 마음먹고 당차게 서점사이트를 클릭하지만...온라인 책 검색결과에 쓰여있는 책의 정보 하단에는 덩그러니 '절판' '품절'이라는 글자가 두둥 하고 불길하게 등장한다. 제기랄 그러게 내가 뭐랬어 미리 사두자고 했잖아. 



오래전 짝사랑하던 연인으로 부터 차갑게 들었던 '거절'의 뉘앙스가 '품절'이라는 글자에 박혀있었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놓쳐버린 그리고 제때에 챙기지 못했을 괴이한 회한으로 자책질의 폭풍이 지나고 나면 현실적으로 이 책을 구할 방법이 없을까쪽으로 선회한다. 요즘은 온라인쪽이 많이 발전하여 어디서든 중고서적의 검색이 자유롭다. 지레 포기할 단계가 아닌 것이다. 우리의 '마술램프'와 '공원'사이트를 뒤지고 저명한 몇 개의 중고서적 사이트를 헤메다가 재고를 발견하게 되면 쾌재를 부르는 거고 그렇지 않아도 때를 모색하며 쥐죽은 듯 인내의 시간을 버티면 된다. 책이란 수요에 의해서 언젠가 다시 검색란에서 재등장할 날이 오니까..그러나 이런 과정을 거친다고 해도 세상에서 감쪽같이 모습을 감춘채 종적이 사라져버린 소멸의 책들도 있긴하다. 그 책은 내가 읽을 인연의 책이 아니었던 거다.


최근에 몇 권의 절판 및 품절 서적을 손에 넣었다. 라파엘 사바티니<스카라무슈>, 그리고 야마다 에이미<슈거 앤 스파이스>, 이언 매큐언<암스테르담>, 레이먼드 카버<대성당>이다. 사바티니의 저작들은 국내에 정말 제대로 등장한지 꽤 되었다. 스카라무슈라 그렇다쳐도 (옛날 고리짝시절 문고판으로 등장하긴 했었다), 불후의 명작 캡틴 블러드 따위는 아예 등장도 안한다. 어린 시절에 보물섬에서 보았던 이현세옹의 만화을 떠올리며 스카라무슈를 기억할 뿐이었다. 활극소설로 사바티니를 능가할 작가도 별로 없다고 보는데.. <스카라무슈> 몇 년전 등장했다가 휘리릭 사라져 주셨드랬다. 물론 중고 서적에 이 책이 등장하기는 했는데 가격대가 후덜덜해서 문제인거지 싶다. 3배 넘는 가격으로 등장해버려서 과연 내가 이 책을 이 가격에 읽어야만 할까로 한참 고민을 안겨주고 있었다. 최근 또 다른 서적상으로부터 적절한 가격으로 번개처럼 검색이 되었다. 후다닥 결제라인을 완료하고 나니 다시 품절로 가버리는 걸 보고 인연의 끝을 마지막에 잡은 느낌이라니...



야마다 에이미의 작품들은 약간 논란이 있긴 한데 왠지 여성들이 읽는 책이란 선입관과 너무 에로적이고 적나라하다는 속성때문에 대중적으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칭찬하는 부류는 아니었을 거다. 이렇게 보수적인 나라에서 섹스장면이 부지기수로 등장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묘사해대는 과감함은 또 다른 오해를 부르기 딱 좋지 않은가. <설국>도 그렇게 매도된지 오래다. 대중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책을 읽는 사람들의 수준 운운하는 모양인데 요시모토 바나나쿠니 가오리 소설을 닥치는 대로 읽으면서 야마다 에이미를 은근슬쩍 꺼려하는건 이율 배반적이지 않은가. 난 개인적으로 야마다 에이미의 소설을 맹렬히 좋아하진 않았어도 나쁘지 않게 읽는 편이다. <풍장의 교실>같은 건 드물게 정서를 침참시켜서 절구통에 삐죽삐죽한 짜증덩어리를 넣고 돌려대는 느낌이다. 너의 정서란 세상의 그저 한 부스러기일 뿐이야 라고 책망받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에이미의 저작들도 초기작들은 왠간에서 구하기가 어렵다. <슈거 앤 스파이스>가 아마도 나쁘지 않은 작품일텐데도 제대로 읽어볼 기회조차 오질 않았다니...희한하긴 희한하다. 아무튼 이 책도 중고서적에서 건져냈다. 


이언 매큐언<암스테르담>은 사실 주변의 지인들이 열렬히 찾던 책이다. 이 책은 온라인에서 검색해서 구할 수 있긴 한데 역시나 가격이 문제다. 두배이상으로 뻥튀기 되어있기 때문에 약간 망설여지는데 어차피 읽어야 할 책이라면 그냥 마음 편하게 확 구매해서 읽으면 그만이긴 하다. 그나저나 <암스테르담>이 재판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다. <토요일>은 아직도 버젓이 유명 서점에 꽂여 있는데 <암스테르담>의 어떤 점이 절판의 블랙홀로 이끌었는지 감지조차 되지 않을 뿐이다. (하기사 토요일에 비할바가 아니지..매큐언의 소설도 어쩌면 대중적이어야만 했을 거다.)


 마지막으로 카버의 <대성당>. 이건 정말이지 할 말이 많은데, 문학동네측에도 문의했던 데로 아마 이 책은 신판 문학시리즈의 하나로 재출간되긴 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이지 질리게도 시간을 오래끌고 지지리도 진척이 없어서 문제다.  문의한게 작년인데 아직도 나오지 않는다. 대성당의 가격이 미친x 머리칼 나부끼듯 폭주하는걸 보면서 혹시 저 책의 특정 페이지에 카버의 유서라도 들어있는건가 의심하곤 했다. 하지마 이 책은 우연찮게 지나던 중고 서점에서 구했다. 물론 제 가격에...


이런 걸 보면 책이란건 정말 인연이란게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된다. 읽으려고 읽으려고 애써도 손에 안들어오는 책이 있는가하면...한참을 잊고 있었어도 결국에는 손에 들어와 읽히는 책들이 있다. 그 책들과 나와 어떤 운명적인 실타래가 있는지 알수 없다. 때로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던 책들이 오랜 시간 후에 내 손에서 읽히는 날도 많았으니까..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을 순 없다는 걸 안다. 그래도 최소한 눈에 걸리는데로 읽어야 겠다고 다짐한 책들의 일부분 만이라도 나와 같이 숨쉬며 생존해 있기를 바라고 잠시 기억에서 사라졌더라도 언제고 다시 나타나 주길 꿈속에서라도 기대할 것이다. 


   

Posted by kewell
Espresso minutes /10 minutes2013. 10. 18. 13:06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이 절판인 상태인지라 이곳저곳에 알아보니 중고서적이 있긴했다. 반가운 마음에 중고서적이라도 상태만 나쁘지 않다면 바로 구입해야지라고 했다가 가격을 보는 순간 '멘붕' 무려 4배가 넘는 금액을 판매가로 올려주셨다는...ㅠ.ㅠ 책으로 떼돈을 벌겠다는 의도가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만이천냥의 책이 오만냥이라...북셀러들이 희귀본을 책을 거래할 때 이런 판매전략을 세우는건 알겠는데 이 정도면 너무 심한거 아닌가 싶다. 


그리하여 문학동네에 문의메일까지 썼다. 대성당은 정녕 구할 수 없는거냐고 헐어버린 헌 책말고 제대로된 새책 재고는 없는지 아주 절절한 마음으로 메일을 썼지만 (메일내용은 심플하게..) 그리 큰 기대는 안했다. 대체로 출판사들은 이런 문의메일에 친절하지 않는 자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문의하신 서적은 절판된 서적으로 재출간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언제고 다시 재출간된다면 그때 연락을 드릴예정입니다 같은 판에 박힌듯한 회신이 오기 마련이다. 실망과 썩소가 퍼지는 회신일수밖에 없는 저간의 사정들을 뒤로하고 설마했던 기대감이 역시라는 당위성으로 귀착되는 순간이다. 


다행히도 대성당에 문의메일은 위와 같은 '계획없음'이 아니었다. 개정판 발행이 예정된 도서이며 올해안에 출간할 예정이라고 기다리시면 새책을 만나보실수 있다고...역자와 편집부에서 한참 작업중인 도서라고 설명까지 곁들여서...그러니 '대성당'가지고 장난질 치시는 북셀러들은 구판 서적의 우월함을 혼자 가지고 계속 판매질을 계속하시면 될 듯싶고 나같이 가난한 독서쟁이들은 개정판이 올해안으로 나올 때 구해보면 되겠다싶다. 가끔 보면 되도않는 돈질로 마치 포커레이스를 치듯 책 가격을 후려치는 셀러들에게 적대감을 갖곤 하는데 한편 생각해보니 제때 구입하지 못한 내 잘못도 있는지라 뭐 그다지 이해 못할 것도 없어보인다. 어쨋든 '대성당'은 재출간 될거고 난 다시 읽게 될테니 그걸로 만족이다. ^^

Posted by kewell
Vanilla Essay2013. 10. 17. 17:36


펭귄 클래식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다가 '거울나라의 앨리스'까지 읽지 않으면 도저히 안되겠다는 막연하고도 충동적인 느낌때문에 서점을 뒤졌다. 문제는 '거울나라의 앨리스'가 절판의 경지에 다다렀다는 점이다. 교보에도 절판중이시고 (현재까지는..) 반디앤루니스에서도 약 2권 남짓만 남아있는 상태고 어느 서점에서도 유독 '거울나라의 앨리스'만 집착적으로 많이 팔려주셨다. 괴이하기도 하지만 어쩔수 없겠다싶어 발품을 팔고 종로타워지점까지 가서 북셀프로 '거울나라의 앨리스'을 질렀다. 속이 다 후련하지만 책을 이렇게 충동적으로 사가지고 온 적이 어디 한 두번도 아니고 매번 이럴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혼자 자책하는 시나리오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 책장의 책들은 다 이런 식으로 구매된 랜덤과 무작위와 충동적인 감정의 산물들이었으니 숙명적으로 습관과의 평생 전쟁을 치룰 조짐들이라는....


언제나 충동적인건 아니지만 간혹 제대로 걸리는 날들이 있다.  지금도 이언매큐언의 '암스테르담' 그리고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그리고 커트보네거트의 '타이탄의 미녀'같은 책들은 언제나 '충동구매'의 영역안에 산다. 서점 책장 어디 한 귀퉁이에 꽂혀있기라도 하다면 그야말로 심마니 산삼보듯 쾌재를 불러줄텐데 요즘 같은 시절에는 결코 벌어지지 않는 꿈같은 이야기다.  온라인에서 절판이라는 딱지가 붙어버린면 오프라인으로 구매하는 것도 힘들긴 매한가지니까.. 구하기가 어려워서 중고서적을 기웃거려도 보지만 예전 중급의 중고서적을 받아들었던 기억으로 볼 때 그 볼품없는 타인의 흔적때문에 실망한 적이 하도 많아서 별로 내키지도 않는다. 중고는 나름대로는 어느정도 대안이 될 수있지만 여전히 아니다싶은 구석도 많다. 책을 읽을때 나아닌 다른 사람의 자취를 대면한다는 건 그리 좋은 기분이 아니고.... 어찌됐든 서점을 오고가다 보면 충동적인 구매의 향연을 벌일 때가 있다. 일전에도 아르투르 페레즈 레베르테의 '뒤마클럽'을 봤는데 얼마전까지 절판으로 구하기가 어려워서 헤맸던 책이었다. 경제적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질러볼까하다가 그동안 저지른 충동의 통장내역이 한심스러워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던 적이 있었다.  


다자이 오사무 전집도 충동적으로 질렀고, 레이먼드 챈들러의 절판 작품들도 혈안이 되서 찾곤 했었다. 그리하여 현재 읽어제끼는 책들보다 읽어야할 책들이 책상에 쌓여간다. 키는 점점 높아져서 이윽고 모니터 높이를 넘어서고 그리고 책장의 두칸정도높이로 솟구쳐올라 굉장한 기세로 말한다. 도대체 언제 읽을거냐고...그래도 시간이 흘러 그 책들을 구하지 못하게 되는건 너무나도 쓰라리다. 일단 구해놓으면 언제고 읽게 되니까. 벌이가 한심스러워서 책구매에 돈지출을 매조지해버리지 않는 이상 이런 투자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곤 했다. 친구말마따나 내가 이런 책의 탑에서 한권씩 한권씩 읽어 해치워 나간다고 해서 내 소양이 배가되고 인문학적 통찰력이 레벨업 되고 그럴거라고 기대하진 않는다. 


뭐라고 할까. 식신로드 중 만나는 별미를 놓치기 어려운 매니아적, 취향적인 식탐과 유사할까. 뭐하여튼 그런 느낌이다. 그냥 책속의 내용을 탐닉하고 그 작가를 읽어야만 하는 운명적인 데자뷰 같은 것들. 그리고 단 몇줄의 문장만 덩그러니남아 노트귀퉁이에서 조용히 말할 때, 그저 읽어버린 책 이상의 아우라들이 있게 된다. 어쩌면 코난도일의 말이나 망구엘 할아버지 표현대로 글쓰기를 위한 굉장히 효율적인 보물창고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일부러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퀼트처럼 명문을 갖다 붙이는 작위적인 의도는 꿈도 꾸지 않는다. 대개의 경우는 문장보단 감정이 남게되고 그런 감흥의 뒤에선 뭔가 스물거리는 삶의 묘미를 느낄 뿐이다. 아이러니하고 때론 우여곡절끝에 다다르는 간만의 정서적 안도감 정도면 그럴듯하다고 생각한다.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