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듯이 윤종신표 음악이 정서적으로 잘 맞아서겠지. 혹자는 맨날 신파처럼 감성을 쥐어짜는 상투적인 음악이라고 평가하곤 하지만, 그 말이 이 어떻게 신빙성을 가지던 간에 나로선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편이다. 음악이란 어차피 음식과도 같은 것이어서 어떤 이에게는 정말 잘 맞는 풍미가 어떤 사람에게는 고역일 수도 있으니까..결국 음악이란 취향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양성의 관점에서 보면 '음악성'을 논하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스스로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가가 사실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게다가 윤종신은 비현실적인 프로젝트는 끈기로 해오고 있다. 그 노력만으로도 사실 음악을 소비하는 개인으로 고맙다고 해야 할 판이다. 매월마다 내 취향에 맞는 음악들이 1개씩 꾸준히 나오는 셈 아닌가. 이 정도면 좀 죄송스럽지만 마르지 않는 샘물이자 황금알까지는 아니어도 이른 아침 이스라엘 백성에 내렸다는 만나와도 같은 수준이다. 계속 이렇게 해달라고 하면 너무 생떼인가싶긴 한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욕심을 내도 좋지 않을까싶기도 하다. 원래 대중들의 욕구가 때론 실천력의 장작이 되기도 하니까..바라고 또 바라고 기대하면 월간 윤종신도 계속 나오지 않을까.
오늘도 어쨋든 뒤늦게 몇달간 밀렸던 월간 윤종신을 듣고 있다. 멜로디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귀퉁이에 은근슬쩍 윤종신표 시그니쳐가 귓가에 느껴진다. 맞아 이 양반이 원래 이런 멜로디를 주력으로 했었지 심적으로 공감하고 있다. 물론 날씨가 추워지고 마음이 왠지 앙상해진다고 느껴질 무렵이면 상투적으로 통하는 발라드의 위력일수도 있겠으나 세상의 모든 발라드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수는 없다. 개 중에는 어떤 측면에서 보다 가깝게 느껴지고 정말 마음적으로 동화될 만한 발라드의 한 자락이 마음을 스치듯 지나가면 숨죽여 지내던 추억들이 깨어나는 느낌이다.
꽤 오래 전 일이기는 해도 스모키앤미호(Smokey & Miho)의 음악을 틀어놓고 가만히 눈을 감게 되면 무더운 여름날 휴식으론 제격이란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러다가 잊혀진 앨범들이 책장속으로 무늬화 되어 은둔해버리면 도대체가 그런 음악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지 못해 곤혹스러워진다. 어째든 사람마다 각자의 취향이 있기 때문에 전 아니예요 아무런 감동도 느껴지지 않거든요 라고 해도 할말은 없지만 국내 매니아들의 여파를 감안해 볼 때, 스모키앤 미호의 'Blue Glasses'같은 건 기억속에서 일찍 사그러진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이런 음악은 심야에 오히려 잘 어울려서 심야 라디오에서 제대로만 플레잉해주기만 하면 걷잡을 수 없는 감동이 폭풍처럼 휘몰아 칠텐데....아직까지 틀어주는 DJ가 없다. 무감각의 한여름밤이다. 다행히도 나야 책장 정리하다가 툭 이 CD가 툭 떨어져 버린 탓에 운명적이 재회를 맞이했다. 외로움과 쓸쓸함과 그리고 편안함과 왠지 그윽한 애수와도 같은 짙은 커피향처럼 번져가니 이거 참 묘한 느낌이었다는....
약간 다르지만 고야 앤 카미나도 이런 경로로 최근에 들어버렸는데 둘다 여름날에는 굉장히 좋다는 생각이 든다. 전자는 살짝 감흥에 취한 늦여름 초가을의 느낌이 다가오지만, 고야 앤 카미나의 En Sem Voce나 Bahia Lady는 완연한 여름을 떠오르게 해준다. 지글지글 타는 듯한 석양을 뒤로하고 야자수와 바다가 있는 자켓 때문에 더 그럴수도 있다. 아무튼 요즘에는 무더운 여름 때문에 정신의 각성수준이 마이너스 레벨에서 떠돌고 기운은 급다운되고 피부에 더운 공기가 부딪혀 냉각수 넘치듯 퍼진다. 냉방병이 생기면 어떠랴..차라리 문을 쳐닫고 에어컨을 약하게 켜놓고 음악을 틀어놓고 책이나 읽는게 좋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문제는 이런 생활을 고수할거라면 여름이 의미가 없어진다는 거다.
사실 더울때는 나가서 땀을 흘려야 하고 태양에 피부도 그을음을 일으켜야하고 뜨거운 숨을 토해내고 핫핫한 아스팥트를 걸어야 제맛이긴하다. 체력이 받쳐주지 않아서 문제지...이제 여름도 가는데 사실 진한 섬머 나이트를 경험해보진 못했으니 음악으로라도 대신 느껴보고 싶다.
2003년 4월 1일, 홍콩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그가 투신하였다고 매체에서 떠들어댔어도 당시엔 잠시동안이나마 다들 믿지 않는 눈치였다. 게다가 그날은 만우절이기도 했고... 일부러라도 그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믿어야했다면 그건 유머라곤 전혀없는, 그래서 만우절의 유쾌함을 감당해낼 수 없는, 지지리도 따분하고 진지한 사람들의 몫이었을 것이다. 이윽고 정말 그가 영영 떠났다는걸 알게 되었다. 장국영(張國榮)이 그렇게 떠난지 어언 11년이 지나고 있다. 거짓말처럼 그가 떠난 직 후, 오래도록 이어져온 청춘의 일기장 귀퉁이를 접고, 이제 그만 로망의 시절을 끝났다며 글쓰기를 멈춰버린 한 친구와 생전에 그가 출연했던 영화를 몇 주동안이나 보면서 퉁퉁부은 눈으로 나타난 동기 여자 아이들처럼 다들 소리없는 울음 바다속에서 기억을 침잠시키며 그렇게 지냈다. 그가 그냥 자살 정도로 떠난게 아니라 추억의 일면을 통째로 할퀴고, 기억의 포스터를 갈기갈기 찟어놓고 떠나갔기에 쉽게 잊혀질 수는 없었다. 오래도록 기억의 잔영들은 부유하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언제고 다시 수면위로 불현듯 떠오를 때가 있다. 너무나 황급하고 불현듯 떠나버린 '장국영'이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장국영에 대한 이미지들이 로망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건 1987년 즈음이었다. 1987년과 세상을 떠난 2003년 사이의 간격은 내 삶의 '가시광선' 대역 정도여서, 보이는 것들로만으로도 충분히 삶을 다반사 시킬 만큼의 화려한 스펙트럼 사이사이에 모종의 스타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열렬하게 지지하고픈 스타들이 더 많을 수록 좋았으니까.. 모두가 책받침에 홍콩 스타들을 끼워놓았고 3류 동시 상영관에서 아침부터 오후 늦도록 반복해서 느와르와 무협을 보았으며 하이틴 스타들이 출현하는 드라마를 신문 편성표를 봐가며 쫓던 때이기도 했다.
며칠 전 친구놈이 나에게 마누엘 푸익(Juan Manuel Puig)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어페어>(The Buenos Aires Affair,1973)를 빌려달라고 했었는데, 나는 그 이유를 짐짓 알고 있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어페어>는 마누엘의 푸익의 또 다른 역작, <거미여인의 키스>(El beso de la mujer araña)를 읽고 난 뒤, 푸익의 서적들을 죄다 읽어봐야겠다고 다짐한 이래 뒤지고 뒤져 찾아낸 책이다.(현재 품절 상태.) 구하기도 어렵고 남들에게 빌려주기도 싫고 해서 티내지 않았었는데 어쩌다가 그만 친구의 눈에 포착되었던 듯 싶다. 아마도 친구놈은 <해피투게더/춘광사설>(春光乍洩: Happy Together, 1997)를 봤을 것이다. 장국영의 기일이 오고, 추억이 살아오고, 그러다가 <해피투게더>를 보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떠올리면, 나라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빈티지 하늘빛'을 묘사해둔 어떤 것이라도 찾아봤을 것이다. 이미지의 편린들은 종종 기억속에서 드리운 낚시대를 기다린 채 숨죽여 세월의 심연속에서 노니다가 '부에노스 아이레스'같은 미끼에 응답하는 거다. 굳이 봐야 했다면 난 <아비정전> (阿飛正傳, Days of Being Wild-1990) 쪽이었을 거다. 그게 더 효과적인 미끼였지 싶다..나에겐..
그 친구와 나는 학창시절에 같이 <쳔녀유혼>(倩女幽魂,-1987)을 본 죽마고우다. 그래맞아 천녀유혼. 그러고 보니 오랜간만에 떠올려보는 '로망(Roman) 키워드'다. 절절히 기억했던건 <아비정전>쪽이었지만 사실 유명세는 <천녀유혼>쪽이 맞지 굉장했으니까. 당시로선 슬쩍 문이 열리면서 등장하는 머리칼 날리는 왕조현에 다들 넋을 놓고 빠져버려서 정말 섭소천이 유혹하려고 했던 남정네가 영채신인지 우리였는지 가늠이 안될 정도였다. 연약한 서생 영채신(장국영)과 난약사의 귀신 '섭소천'(왕조현)의 로맨스를 스토리로 한 영화. 영화 초반부 난약사에서 공중으로 쏟구치며 연적하와 하우형이 검술을 펼치고 난 뒤 두 칼끝이 장국영을 겨냥했을 때부터 우린 동시에 이 유약한 서생이 우리들의 '왕조현'(王祖賢)과 엮이게 될 것이라고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고, 실제로 이 착한 청년은 아름다운 귀신 섭소천(왕조현)과 사랑을 하게 되었다. 이때엔 나뿐 아니라 주변의 친구들도 그랬고 하나들 같이 실제 장국영이 왕조현과 연인이 되기를 은근히 기대했었다. 우리가 그렇게 기대했다고 해서 장국영이 어느날 왕조현에게 우리 팬들도 원하는데 한번 사귀어 봅시다라며 영채신처럼 고백할 리 없겠지만 현실의 우리들은 판타지의 두 커플이 현실이 되는 것만큼 멋진 것은 없을 거라고 여기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했다. (커플케미로 보자면 역대급이라고 본다.)
내 기억속의 장국영은 그렇게 해서 전면으로 등장했다. 천녀유혼의 히트덕에 <영웅본색>(英雄本色-1986)도 따라 봤고, 연이어 느와르에 중독되고 베레타의 총소리에 익숙해지며, 덕택에 아주 낯간지러운 '강호의 의리가 땅에 떨어졌다'는 유치절정의 문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다. (굉장히 오그라드는 문구들이었다.) 영웅본색의 장국영을 기억하고서도, 비디오 샵에서는 장국영의 인기를 이어가고자 우후죽순처럼 과거작들을 내놓았는데 <위니종정>((爲你鍾情-1985)이라든지 <우연>(偶然-1986)같은 걸 빌려야 한다고 극성을 부리던 누나들 틈에서 장국영의 존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장국영의 당시 이미지는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여린 청년의 이미지였다. 유약하고 뭔가 시류에 흔들거리고 마음속 깊이 간직해놓은 비밀이 있으며 남모를 고뇌에 시달리며 우울해하는 이미지로 화해가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비정전>에서도 그렇고 이후 대중들이 좋아라 했던 무협물 <백발마녀전>에서도 그렇고, 그 그늘은 쉽게 걷혀지지 않았다.
그리고선 장국영이 <동사서독>에서 서독으로 분했을 때, 차라리 본인을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서독이야말로 현실 감각적이고 생을 우울하게 바라볼 지언정 한탄하지 않으며 비열해질 수 있는 캐릭터였으니까, 어떤 슬픔을 머금고 그것을 속에 감추고 비뚤어진 시선으로 세상을 종횡한다는 그런 느낌의 캐릭터로 변해간다면 분출구로서 장국영은 좀더 현실적이 되어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암흑가의 협박이네뭐네 하면서 은퇴소동을 일으켰던 장국영의 입지와 애정전선은 대중들이 기대했던 그림으로 그려지지 않은 채 점점 괴이한 시간들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가 <이동공간>에서도 그렇고 <해피투게더>에서도 그렇고 왠지 자신의 실제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서 하고 있다고 느낄 무렵, 일이 벌어졌다.
가끔은 장국영이 미로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그만 힘이 다해 버렸다식으로 생각한다. 그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미스테리하지만 그렇다고 영화와 현실의 우울한 정서가 그를 '자실'로 끌고 갔다고 생각하기 쉽지 않다. 아직까지 어떤 것들이 진실이었는지도 모르겠고...다만 팬의 입장에서 한가지 분명한건 그가 여타의 홍콩 느와르 스타 답지 않게 올곶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면서 작품을 선택해 왔다는 것과 어떻게든 스스로 그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애써왔다는 사실 같은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인기 작품들보다 '동사서독'과 '해피 투게더'와 '패왕별희' 등등의 작품을 눈여겨 보게 된다.
로망은 로맨스의 캐릭터인데도 그가 그만 로맨스에 실연을 겪고 어떻게 나는 살아야지라고 방황할 무렵, 팬들은 그에게 그만 진지한 구석을 발견하고 아..장국영은 그랬던 건가라고 생각한다는 것. 그게 장국영이 나름의 삶속에서 성숙해가고 있었다는 방증이 아니었을까. 그렇긴 해도 역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는건 왕조현을 지긋이 바라보던 <천녀유혼>의 서생, 쪽빛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부에노스적 풍광이 어우러진 <해피 투게더>, 사막의 모래바람속에서 옷깃을 여미며 쓸쓸히 내뱉던 깊은 인상의 장면들이 떠오를 뿐이다. 그렇게 보면 관객들은 배우들에게서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부분만을 볼 뿐이다. 배운 본인이야 어찌되었던 간에 우리는 추억속의 로망을 기억하면서 그 배우가 그렇게 살아주길 기대한다.
장국영이 작금에서도 잊혀지지 않는 이유는...그의 과거가 내 추억과 결합되어 늘러붙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미 합선되버린 전기회로처럼 이미 터져서 붙어서 이젠 떼어낼수 조차 없게 되버렸다. 영원히 그 부위는 그대로 스파크가 터질것이고 현실의 전기 콘센트가 꽂히는 날에는 내 마음의 전기충격이 가해질 테지. 그가 좀더 살았더라면 온전히 유지된 채 소소하고도 잔잔한 배경음악이 되어 주었을 텐데..이젠 피해갈길 없는 아쉬움이 되버렸다. 그래서 말인데 요즘에서는 장국영같은 배우를 보기도 어렵고 등장히지도 않는다. 우리는 서서히 대중의 욕구를 쫓아 어울리지도 않는 괴이한 CG가 난무하는 새로운 풍의 중국 영화를 보게 되고 거기에서 온라인 캐릭터같은 배우들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대륙의 배우들은 돈은 많이 벌 거야..
저 정도로도 괜찮은 걸까.
장국영 같은 배우들도 한때 있었는데....
세상이 어떻게 된거야? 정말 거짓말이라도 장국영이 죽지 않고 살아있는 채, 혼자 어느 지방 산간에서 자신이 찍은 영화를 보며 슬며시 미소짓고 있기를 허황된 마음으로 바란다. 아마 내 세대가 끝나면 기억조차 안나는 배우가 되겠지만 서도....
얼마전에 공교롭게도 K팝스타에서 윤종신이 예능프로그램에서 안테나는 미스틱89의 자회사라고 농담을 터트렸다. 그래 맞아 미스틱89와 안테나는 묘하게 닮았어라고 혼자 중얼거리곤 했는데, 모르긴 몰라도 상당수의 대중들도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안테나와 미스틱89는 닮아있다. 현 주류 유행음악 질질 끌려가지 않으면서도 음악적으로 만만치 않은 내공과 아우라를 보유한 개성있는 뮤지션들이 갈 곳이 그리 많아보이지 않는 요즈음이다. 이럴땐 나라도 자신들의 음악적 색채를 이해해 줄 법한 선배가수들이 있는 곳으로 시선이 돌아가기 마련이다. 윤종신과 유희열 쪽이라면 수긍할 만하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JYP에서 용도폐기되다시피한 박지윤이 그렇게 야사시한 눈빛으로 나이를 먹도록 JYP에서 굴러다녔다간 그녀가 어필한 대중적 기억은 그저 옆트임 검정 블랙 원피스 이상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꼭 '성인식'이 나쁘단건 아니다.) 결국 YG와 JYP가 그런 성향조차 다른 뮤지션들을 데리고 뭘 한다는 건 좀 어울리지가 않는다. 이건 완전히 다른 레이블의 질감들이고 이미지와 무늬가 다르고 향기도 다르며 심지어 건물 사이즈도 다르다. 어쨋든 위에서 말했다시피 윤종신이 안테나에 대한 언급을 한 날, 버나드 박은 유희열의 기획아래 콜라보레이션을 선보였다. 바로 버나드박의 More than words, 밴드로 페퍼톤즈, 박새별이 등장하고 있었다.
안테나 뮤직의 성향상 왠지 인디에서 이름 좀 날릴 듯 싶고 너무 대중적으로 엇나가 있지 않으면서 사람들의 동경을 불러 일으킬만한 지적인 수준이 갖춰져 있는 가수들이 소속가수일거라는 짐작은 별로 틀리지 않았는데 루시드 폴도 그랬고 페퍼톤즈도 그랬지 않나. 유희열이야 말할 것도 없고....여기에 박새별도 있었드랬다. 이 즈음되면 혹시 안테나는 소속계약을 하기전에 몇가지 안테나적인 기준 항목이 있어서, 공부도 잘하고 음악도 잘해야 한다라는 항목이 제일 위에 자리잡고 있고, 거기에 반드시 부합이라는 체크박스에 체크하고 난 다음에야 다른 항목으로 갈수 있는게 아닐까라고 추측하게 된다. 정말 세상에는 엄친아들이 너무 많다. 음악도 잘하고 공부도 잘한다니....
그래 잊고 있었다. 박새별도 안테나였지.
박새별의 음악과 목소리가 완전히 친 대중적이어서 막 열광하고 그런 팬층이 두텁게 자리잡은편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콜라보레이션이라고 하기에는 버나드박을 살려주는 쪽으로 보조를 맞췄지만, 새삼스레 그녀의 음악색깔을 떠올리게 된다. 제일 기억에 남았던 건 예전 페퍼톤즈 공연때 Read, Get Set, Go를 보컬로서 부를 때였다. 원래 이곡의 보컬은 뎁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뮤직 워리어스때도 그렇고 줄곧 박새별이 이 곡의 전임자인것처럼 불러제끼고 있다.) 뎁은 약간 담백하고도 장식없는 소녀같은 뉘앙스로...박새별은 진한 장미향이 물씬 나는 성숙기의 목소리로 진득히 불렀다. 사실 그냥 외모로만 보자면 나긋나긋하고 굴곡없으면서 사근사근해야 할텐데 목소리는 약간 달라서 의외성이 있었던 가수로 기억한다. 그랬는데...갑자기 화장을 하시고 립스틱도 컬러플하게 드로잉하셨고 눈화장도 매혹적으로 하신데다가 머리가 흘러내려 섹시함까지 보여주시다니...이래가지곤 내가 아는 박새별 레벨 업한 느낌이시다. 외모도 업글되니 얼마나 좋았는지...^^
요즘의 시대에는 걸그룹과 보이그룹의 찬란한 사운드 이면에 노출 과다경쟁, 그리고 지나치게 과도한 멋을 부린 군무 아래 잠식 당해있다보니 다들 이런 음악만 듣는 줄 알겠지만 개 중에는 이런 음악으로 도저히 살 수 없는 달속의 토끼들도 있다. 그들에게는 시끄러운 사운드와 칼같은 군무와 조금만 더 올라가면 팬티라도 보일듯한 코스프레에 흥분되지도 않고 보이들의 깨끗한 피부에 가슴을 두근거려하지도 않는다. 지인 중 몇몇은 걸그룹의 야시시한 율동을 보면서 가끔 저게 야동이었다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한다고 했는데 이게 감상자의 변태적 성향 때문만이라곤 생각지 않는다. 다만 너무 편향적인 거다. 우리 모두 뮤뱅에서 두번째 등장하는 걸그룹의 세번째 걸의 치마가 조금만 더 올라가 팬티가 보인다고 해도 들을 음악은 다 듣는다. 모든 여가수들이 속옷노출 경쟁만 하는 뮤뱅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어떻게든 메인골든 타임에 페퍼톤즈와 박새별이 나와서 자신들만의 색채로 사운드를 뿜어내 준다는건 일종의 존재감 같은게 아니었을까.
잔잔한 호수위에 퍼져가는 작은 물결같겠지만 온 호수를 뒤덮고 말거라는 그런 기대감 같은 것 말이다.
어 저분들은 누구야 누군데 저렇게 멋진 사운드와 세련된 외모로 멋드러지게 연주도 하고 노래도 부르는 저 언니오빠들 너무 예쁜데 ? .....조카들이 이렇게 말했다.이윽고 페퍼톤즈와 박새별 이라고 안테나에 소속된 가수들이라고 약간은 언더풍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고 메이저 레이블로 봐도 무방할 만큼 알려져있는 가수들이니 들어보면 괜찮을 거라고..조카들도 나도 이 순간만큼은 같은 음악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좋은 음악을 듣는다는 건 좋은 것이고 그 뮤지션들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은 채 현실에 등장하는건 의미심장하다. 이건 세대간의 격차라기보단 음악적 다양성의 문제였으니까 언제고 격차가 있을 법한 세월에도 존재감이 있는 뮤지션으로 산다는거 보다 많은 다양성의 축으로 살아간단 뜻이 아닐까.
지금에야 보사노바(Bosanova)라는 말을 들으면 귓가에 어떤 종류의 음악이 은은하게 들리는 상상을 할 수 있지만, 과연 이런 계통이 자리잡기전에는 이런 음악을 뭐라고 불러야 했을까란 궁금증이 남곤 한다. 요아힘.E.베렌트가 보사노바는 '삼바와 쿨재즈'가 합쳐진 것이라고 정의를 내려줘서 한편으론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쿨재즈를 알고 삼바를 아는 어떤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 두개의 장르가 결합되면 이런 음악이 나올법도 하겠구나라며 고개를 끄떡일수 있었으니까. 사실 음악을 감상하는데 있어서 연혁이나 계보와 정체성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 음악의 진면목을 더 절절히 체감한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느끼는 것은 이해하는 것과는 다른 측면이니까. 마치 주사위의 한쪽 면 숫자가 다른 쪽 면 숫자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스윙의 시대에서 모던으로 규정되었던 쿨재즈(Cool Jazz) 이면에는 재즈의 스팩트럼이 그렇게 단촐하지 않다는 지적이 자리잡고 있다. 편견적으로 재즈라고하면 눅눅한 조명밑에서 슬며시 차양막을 통해서 몇 편의 태양광이 비추고, 스모키한 공기안에서 부유하는 먼지들 사이에서 짙게 깔리는 음악, 마음은 침잠되고 뇌수가 마치 오후의 나른함 잠에 푹 절여진듯한 느낌이 떠오른다. 즉흥적이라는 변수때문에 재즈의 이런 선입견이 다변화되었을 지도 모른다. 거리를 토닥이듯 종종 걸음을 걷는 소녀와 봄날에 날리는 꽃잎들, 그리고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이 떠오르는 쪽도 재즈라고 부른다. 그래서 60년대의 보사노바를 들으면서 그다지 정통재즈에 대한 반감같은게 덜 했나보다. 이런 쪽의 재즈라니!!.. 내 취향에는 너무 맞았다는 뜻이다. 그게 보사노바였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개인적으로는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이 참여한 1963년 <게츠/질베르투>(Getz/Gilberto) 앨범이 바로 이런 보사노바를 제대로 알게 해준 음반이었다. 매니아들께서는 보사노바의 시초라고 불릴만한 단하나의 음반을 두고 무슨 제대로 알게 해줬다느니 그딴 소리를 하나 싶을 수도 있다. 온리원(Only One)에 가까운 음반이었으니까..아쉽게도 60년대 보사노바가 불어닥칠때 난 태어나지도 않았던데다가 재즈의 유행주기가 몇 바퀴를 돌았어도 난 그 쪽으론 고개초자 돌리지 않던 세월을 지나왔다. 성인이 되고서도 한 참을 지난 후에 우연찮게 이 음반을 들었으니..이 음반이 나에겐 유일무이한 보사노바 음반이었던 거다.
1965년 빌보드와 그래미 어워드를 휩쓴 이후에도 수없이 매체를 통해 플레이되어왔던 이 목록들의 진면목이야 재즈를 좀 안다하시는 양반들로서는 입아픈 이야기일테지만, 지금에서도 나는 이 음반을 아주 자주 틀곤 한다.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의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에서 굳이 'The Girl from Ipanema' 가 등장해서 그런건 아니다. 'Doralice'와 'Para Machuchar Meu Coracao'를 더 듣던 시절과 'Desafinado'를 귀에 달고 다녔던 때가 더 많았으니까... 이 음악들과 시간들이 서로 연결되어 합선되고 녹아 늘어 붙어버렸다고나 할까. 이 음악들의 생명주기가 여태 이어지는 걸 보면 난 이 음반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받았음에 틀림이 없다. 지금에와서야 든 생각인데 봄이 되면서 공기가 데워지고 햇살이 좀더 오렌지빛으로 화하고 길가의 보도블럭이 건조해지며 바람이 머리칼을 흔들때가 되면 저절로 머리속에서 이 음악들이 백그라운드 뮤직처럼 재생된다. 야 다시 들어야 할 계절이 왔어 드디어 왔다고 라고 가슴이 잠시 뛴다.
비록 황사가 판을 치는 계절이 되버렸지만, 좀더 명징한 공기들이 물갈이 하듯 5월에 올라서면 이 음반만큼 적절한 음반도 없다. 요즘은 보컬도 거나한 시절인데, 여기엔 아스트루드 질베르토(Astrud Gilberto)같은 목소리가 출현할 일도 없고 스탠게츠(Stan Getz)같은 색스폰이 깔릴 메이저들도 드물다. (질베르토의 이 어색한 발음을 들을때면 굉장히 좋은 정통발음의 소유자들이 한치오차 없는 억양의 자랑질이 굉장히 따분한 거였다는 걸 깨닫곤 한다.) 굳이 들어야 한다면 수없이 파생된 인디음악이라도 들어야 할까 싶었는데 계절이 도와주다니...역시 좋은 음악이란 때가 되면 두둥 하고 나타나기 마련이다. 설사 그것이 잠자고 있던 음반일지라도.. 수없이 많은 장면들의 편린들에는 모종의 책갈피처럼 이 사운드들이 박혀있나보다. 거리에서 유사한 장면이 펼쳐지면 덩달아 이 음악들이 펼쳐지니 말이다.
비발디의 사계는 거의 클래식을 입문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공식처럼 제공되는 음악인데 사실 이렇게 귀에 익은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원래 본연의 사계가 주려고했던 이미지들이 훼손되어서 내가 듣고 있는 이 사계가 과연 이런 느낌이었을까라고 의심이 들어버리는 경우도 꽤 많다. 너무나 많이 쓰여서다. 각종 드라마나 광고나 심지어 백화점 백그라운드 뮤직으로도 익숙해서 대중적으로 너무 친숙해버린 나머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때 조지마이클의 노래를 질리게 생각하는 것과 일맥상통이다.
그러다보니 사계에서 그리 큰 임팩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봤자 '사계'지. 익히 아는 선율에다가 닳도록 들었던 그 음악인데 뭐가 다르겠냐는 것이다. 너무나 대중적이어서 이미 탈 클래식화 되어버린 이 '사계'조차도 변화무쌍한 버전들이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좀더 색다른 음반들은 없는 걸까. 기대감과 호기심이 무럭무럭 생겨날 무렵, 비발디의 세계에서도 사계에 관련된 명반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명반이라고 하면 음악중독의 퀄리티 쩔어주시는 리얼 매니아분들은 눈에 쌍심지를 켜시고 어떤 음반을 말하려고 그러나라고 주목하실테지만 전문가 분들이 아시는 그 '명반'은 아니니 안심하시기를...^^ 개인적으로 이런 전문 매니아분들의 '클래식 이해하기'에 대한 고명한 강의를 꽤 들었었는데 슬며시 마음속으로 내린 결론은 도무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대신 대중적이면서도 내 귀에 좋게 들리는 클래식음반을 찾아서 듣기로했다.
비발디의 사계부터 뒤지기 시작한거다. 처음에 감동먹은 연주 음반은 '정경화'의 사계다. 나는 정경화의 사계를 듣고 있으면 정말 아주 정통검술을 펼치는 대가가 떠오른다. 중후한 듯 하면서도 가볍게 그어대는 공기를 가르고 나오는 그 사운드는 마음속의 심연에 바이올린 사운드 흔적을 깊이 남기고, 격정적이고 흔들림없고 개성이 종종 묻어나는 듯한 그 연주는 가슴속에 굉장히 드라마틱한 광경을 청각적으로 그려준다. 한동안은 정경화 음반에 빠져서 살았으니까...그리고나서 지인들이 추천해줘서 들었던 음반으로 이무지치 버전의 사계. 이무지치의 사계에 대해선 하도 지인들의 평가가 들쑥날쑥이라 뭐라 말하기 힘들지만 아주 제너럴하게 봐서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사계가 맞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나도 이무지치 사계의 산뜻함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이걸 두고 두고 듣고 있으면 굉장히 편안하고 익숙해져버린 지난 날들이 떠오르곤 한다. 너무나도 익숙했던 거지 싶다.
다음이 줄리아노 카르미뇰라(Giuliano Carmignola)의 사계, 그리고 정작 언급하려고 하는 파비오 비온디(Fabio Biondi)가 이끄는 에우로파 갈란테(Europa Galante)의 '사계(Four seasons)'다. 카르미뇰라의 사계도 이에 못지 않을 만큼 좋은데 카르미뇰라 이야기는 나중에 한번 다시 이야기해야 할 만큼 할 이야기가 많다. 여기선 파비오 비온디의 사계를 중점으로...^^......결론적으로 난 이 두가지 사계를 제일 많이 듣는 편이다. 누가뭐래도 이쪽의 이 두 음반이 나에게 맞고 내귀에 맞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변의 지인들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 파비오의 사계는 '약간 이단적이다'라고..이무지치의 사계를 놓고 보면 에우로파 갈란테의 사계는 무슨 미친년 광란 질주하듯 연주해 버렸으니 그럴만도 하겠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그런 사계를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파비오 비온디가 인터뷰에서 밝힌 바대로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려고 그렇게 폭풍연주를 한게 아니라 원래 비발디의 사계는 그렇게 연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라는 대목에서 참신함을 느꼈다. 그래..그렇게 연주하지 말란 법은 없지.아마..
파비오의 사계를 듣다보면 이게 과연 내가 알고 있던 사계가 맞나 싶을 정도의 의구심과 충격적인 전율에 압도된다. 속으로 이게뭐야를 몇번이나 중얼거렸으니까. 사계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수있다면 파비오가 유일하지 않을까. 파비오 비온디는 '원전연주', 즉 정격연주라 불리우는 시대상황을 감안한 재현 연주의 그룹 '에우로파 갈란테'에서 기존의 사계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 음악을 연주했다. 중후함이 덜한 듯 싶으나 특유의 가볍고도 잰 걸음으로 공중에 나부끼듯 흔들리다가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는 폭풍처럼 날카로운 얇은 차가움을 하늘에 그어대듯 속주가 진행된다. 듣고 있으면 이와 동조되서 가슴이 두근두근 거릴 정도였다는....이런 연유로 당시의 기존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사계를 이렇게 연주해도 되느냐라는 평이 있을 정도였다니 한편으로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게 이해도 간다.
아무튼 이런 파격때문에 마이너 레이블이었던OPUS111는 정격연주의 메이저 레이블로 급부상하고 에우로파 갈란테는 엄청난 초청과 연주회를 열면서 대중적으로 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몇몇의 매니아들은 파비오를 굉장히 싫어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그냥 대중친화적인 접목이 이루어진 현대 음악가일뿐이라고 말이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 보단 그냥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일거라고 본다. 사계는 여러사람들에게 이미 오래도록 들려져왔던 음악이었으니 그것을 작금에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는 존중의 영역에서 바라봐야 한다고..그리하여 나는 이 음반을 비롯한 황금가면 시리즈의 비온디 음반을 싹쓸이 해버렸다. 지금도 가끔 이 음반을 꺼내서 듣곤하는데 예나 지금이나 그 감흥은 아직 변색되지 않은 듯 하다.
너무나도 좋다. 강추할만하다.
cf) 파비오 비온디의 사계는 음반이 여러가지 버전으로 나온바 있는데 개인적으로 OPUS111에서 나온 저 황금가면 시리즈 음반을 강추한다. 이후 나무에 달린 바이올린을 표지로 같은 연주의 다른 버전이 나오기도 했다.
내 시절이라고 생각하는 시기는 원래 1992 다. 1997 였다면 예전에 이미 응칠로 열광했었겠고, 1994였으면 MAMA를 방영한 tvN에게 '돌이킬수 없는 실수하지 말라'고 말했겠지만 어쨋든 내 시절은 1992다. 그랬다고는 해도 난 이승환을 좋아했다. 기억으로는 BC603 이후 줄기차게 텅빈마음과 비추어주오, 가을흔적을 숨쉬는 공기에 아예 프린트해놓고 있었을 만큼 중독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후로도 이승환이 록에 대한 본인의 미련을 버리지 못할 시기를 건널 무렵에도 '대중들이 이승환에게 원하는 것'과 본인이 추구하는 음악사이의 괴리감을 이해하며 언젠가는 다시 발라더로 돌아오기를 기대했었나보다.
응답하라 1994가 이렇게 인기폭발을 일으키고 예전 노래들이 하나둘 나오면 과거 LP판에 있던 트랙들이 사운드와 같이 그 시절 추억까지 끄집어 내버린다. 이윽고 당시 3집 시절 애잔한 마음 담고 학교 교정을 거닐었던 며칠간의 애매한 감정들이 슬쩍 고개를 들어버리셨다. 화려하지 않은 고백에 이입된 성나정이나 칠봉이나 쓰레기나 그 만큼 씽크로 100%의 재현일수 있겠냐만은 어느정도의 감정 알레고리는 세상이치처럼 유사하기 마련이다. 그시절의 나는 참 잘견뎠고 무던했다. 차라리 너무 약아빠지지 않고 너무 감상적이다못해 쳐박혀 찌그러들만큼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는 생각이다.
가을이 되니 빛과 공기의 온도가 하루가 다르게 내려간다. 그런데도 과거에 이미 냉동되버린 추억이나 기억들은 왜 녹는건지 모르겠다. 이때만 되면 과거들이 다 녹아내린다. 미처 준비도 안되어있는데 낯익은 거리에서 불현듯 다 녹고 정체를 드러낸 기억들에 당혹해하면서 놀라곤 한다. 아 이래서 기억들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다들 영원한 기억들에 애증어린 감정을 가지고 있나보다. 어쩌다가 '<월간 윤종신>10월호 : 이별을 앞두고' 를 들었는데 마치 짜놓기라도 하듯 싱크로율 100%의 과거를 대면하는 느낌이었다. 정말이지 윤종신은 가을 뮤지션이 맞나보다.
원래는이 곡을 듣게 된건 니폰 TV에서 방영해준 애니메이션 삼국지 ( 三国志II 天翔ける英雄た)의 주제가로 들었다. 물론 스기야마 키요타카가 이전 부터 R&B 블루스에 대한 동경으로 목소리 변조에 꽤나 노력을 했었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장점을 버릴수는 없는 노릇. 깨끗한 목소리는 역시 천상 발라더로 살아가야 할 운명을 애초부터 타고 난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한다. 이 곡도 역시 스기야마의 장점을 드러낸다는... 어쨋든 니폰 테레비의 삼국지는 당시 꽤나 파격적인 내용으로 방영이 되었는데 유비와 손부인의 로맨스를 극대화시키는 과정에서 이 노래를 테마음악으로 그리고 엔딩으로 장식해주었다. 사극에 현대풍에 음악을 넣는게 이상해보일 수도 있었는데 의외로 나쁘지 않아서 스스로도 괴이하게 생각하곤 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손부인이 왜 요화이고 요화는 유비와 그렇게 청춘로맨스를 벌였는지 왜 원작 삼국지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미스테리로 남겨둔 채, 뭐 삼국지를 어떻게 각색하든 재미만 있네라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몰입했던 추억이 있다. 그 뒤로도 이 삼국지에 대한 이야기를 가끔 듣긴하는데 어디서도 정식으로 DVD가 발매되었다던지 하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다만 스기야마의 목소리는 지금까지 남아서 추억속에 살고 있는 듯하다.
날씨가 스산해지고 왠지 기분이 가라앉아버린 이런 날에 듣기엔 나쁘지 않은 음악이 아닐까..눈을 감고 잠시 노래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지난 해변가의 추억. 사랑했던 학창시절의 느낌같은 것들이 파도에 밀려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