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illa Essay2014. 3. 10. 10:59

건담매니아들이 넘쳐나고 애니메이션 오덕들의 천국이라 불릴만한 일본에서 이런 설문조사가 있었드랬다. 10~~30대 여성들에게 최악의 남자들은 누구인가라는...그리고 결과에 떡하니 이런게 있었다. 비활동적이고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조용한 성격의 남자.!!! 여기에 몇가지 덧붙여 프라모델 건프라에 빠져사는 남자들. 게임기 붙들고 사는 히키코모리. 줄줄히 언급되는 남자들의 정체에 대해서 크게 반감없이 수긍하며 그렇게 사는 남자들은 문제가 있다라고 여성전체가 손가락질하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건프라와 게임과 애니오덕들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자신이 여자들을 만나면서 건담MG조립을 포기할리 없고 새로 등장한 LOL캐릭을 방치해둘 생각이 없으며 할렘물의 여주들이 프린팅된 베개를 껴안고 싶지 않을리 없기 때문에 별시덥지 않은 여자들이라고 치부하면 그만일 것이다. 


원래 취미란 이런 것이다. 누가뭐라고 해도 나는 내 갈길을 간다라는 분위기. 손가락질과 지탄이 난무해도 본인은 그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올 생각은 전혀 없다. 이유인즉슨, 그런 취미활동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재미가 있으면 어떤 사회적 분위기에도 이겨낼 용기같은 걸 막 생산해낸다. 게다가 이런 종류의 쾌감들은 반복적인 패턴을 가지고 있어서 '중독'이라는 레벨로 옮겨가게 된다. 여친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차마시고 심지어 AV유사스런 행동을 하는 스케줄이 동일선상에 존재한다해도 매니아들의 입장에선 부차적인 순위로 밀려날 뿐이다. 


독서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얼마전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남녀 직장인들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직장인들의 독서량이 한달에 한 권이 안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하루 중 책읽는 시간이 약 30분, 그리고 책을 고르는 기준은 '유명한 사람의 에세이/자기계발서' 순이었다. 이런 조사가 '취업포탈'에서 조사된건 왜 일까. 이 프레임에 근간에는 사람의 능력과 무형스펙에서 '독서'가 차지하는 얼마간의 포션이 있거나 사회전체가 기대하는 '지적기준'의 항목에 독서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 거대 출판사가 이런 통계를 들먹이며 '여러분들 너무 책을 안읽으시는군요. 이렇게 안 읽으시면 저희 망해요라고 푸념하는게 더 자연스럽겠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취업 포탈이 독서량을 지적하다니...,이 사회가 '책읽기'를 따분하고 도달하기 힘들면서도 반드시 하는게 좋을 법한 어떤 정형적인 프로세스로 인식하는 듯한 뉘앙스다. 


왜 읽고 싶지 않다는데도 사회는 독서포기의 자유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는걸까. 대다수의 직장인들이 책읽기를 관두는 데에는 그들 자신이 무식해지고 싶어서도 그리고 책에 환멸을 느껴서도 아니다. 그저 책을 읽으려고 전진하는 의지에 너무나도 많고도 다양한 유사 선택지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책을 읽는 재미'보다 더 재미있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학업 지상주의에 파묻힌 어떤 고상한 선생님들의 부류에서는 '왜 책 읽기가 재미없냐'고 힐난하거나 '재미가 없어도 읽어야하는게 독서'라고 강하게 어필할 수도 있겠지만 그걸두고 수긍할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사람은 '어떤 재미가 느껴지지 않으면 억지로 무엇인가를 하는데 익숙치 않은 동물이다. 의지라는 것은 한도가 있고 그것도 언젠가는 닳고 없어지게 되어 있기때문이다. 그럼 독서가들의 대개는 강한 의지의 소유자란 말인가?  


1년에 책을 몇 권 읽는지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우려를 금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직장인들이 책을 너무 안 읽는데..한달에 한 권도 안 읽는다는데 나라도 이번달에는 읽어줘야겠어 라고 책을 사서 득달같이 읽는게 더 이상하다. 이 독서의 목적은 누구를 위한 걸까. 독서가들이 착각하는 몇가지의 생각들이 있는데 '책을 좋아서 읽는 사람'과 '책 읽는걸 과시하고 싶어서 읽는 사람'의 독서 유익성에 관한 부분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후자의 케이스를 우러러보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독서는 개인적인 영역이기때문에 그 사람이 무엇을 느꼈든 그 사람안에서 벌어지는 일일 뿐이다. 굳이 양적인 독서에 우러러볼 '권력지향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독서에 목적이 있기보단 자기의 독서과정에서 체득된 지식축적을 과시하고 싶은 일종의 '권력욕'일 뿐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책읽기'는 개인적인 것이며 그건 재미가 있어야 한다. 사회적 분위기에 끌려갈 필요도 없으며 읽기도 싫은걸 억지로 읽을 필요도 없다. 그렇게 강제로 읽어서 어떤 걸 알게되었고 깨닫게 된 사람으로부터 우리는 '독서'에 대한 또하나의 강박적 관점을 본다. '독서는 고귀하지만 어렵고 유익하지만 고통스럽다'는 괴이한 견해를 보며 후대들에게 이상한 독서 공포증과 형벌에 가까운 '과제'를 부과하고 있다. 그래서 말인데 다른 관점에서 독서쟁이들을 비웃을 필요도 없지 않은가. 그딴거 읽어서 뭐하느냐고 책을 읽으면 돈이 나오냐고 내 월급에 몇 푼을 더 보태줄 수 있냐고...그럴 필요가 역시 없다. 세상의 치열한 어떤게 존재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먹고, 자고, 똥싸고 섹스를 한다. 본능적인 것도 어떤 점에서는 자연스럽고 덜 고통스럽고 편안해지기 위해서 진행된다. 독서도 결국에는 재미있어 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읽는 사람은 읽는거고 읽기 싫어하는 사람은 안 읽으면 그만이다. 여기에는 어떤 고상한 논리가 있어서 책을 읽어야만 사람답게 사는 것도 아니며 책을 통해 지식을 축적해야먄 참지식이 되는 것도 아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깨달음의 루트가 있다.


물론 내가 감명깊게 읽은 책들이 어떤 사람에게 지루하고 졸릴 뿐이라는 사실이 가끔 실망스럽긴 하지만, 나역시 어떤 시끄러운 환경에서 춤을 추고 왁자지껄 대화를 나누는 걸 싫어하지 않은가. 붕어빵같은 케이팝도 싫은데 왜 싫으냐고 사람들에게 신경질적으로 묻지 않는 것처럼 독서도 결국에는 개인의 취향적인 부분일 뿐이다. 굳이 사회적 문제시 되어야 할 필요가 없다. 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압적으로 책이라도 읽힐 속셈인가. 인생의 선배된 입장에서 독서의 유익함을 위해서 강압적이 프로세스라도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렇다면 방법이 있긴하다. 대개의 독서습관은 '환경'에 좌지우지되니까 그런 습관을 들여주기 위해서라면 본인이 책을 많이 읽는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자식들과 책을 읽고 차를 마시고 서로 대화하고 독서하고 글을 쓰고 읽어주고 하면 된다. 그게 재미있다면 성공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고통스럽다면 자기도 고통스러운걸 왜 후대에 기대하는 걸까. 자기는 책하나 집어들지 못하면서 자식들에게 '책을 읽어야 한다'고 윽박지르는건 너무 웃기지 않은가. 대대로 고통을 물려주는 꼴이다. 결국, 세상의 기발한 콘텐츠 못지 않게 '책읽기'가 재밌다는 사실들을 깨닫게 되는 어떤 환경에 답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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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이 스치듯 지나가버렸다. 마치 서울에서 경기도로 넘어갈때 정신차려보니 이미 경기도였다고 느낄만큼 순식간에 경계선을 휙 하고 지나버린 느낌이다. 안녕이라고 말도 못했는데 잘있으라고 안부겸 축복도 미적미적거리다가 다 놓쳐버렸다. 매년 연말에 등장하는 키워드에 '아쉬움'이니 '후회'라느니하는 단어들이 등장하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그냥 형식적인 느낌으로 스스로를 반성해보시지라는 의식적인 통과의례를 떠올리게 한다. 언제는 아쉬움을 안느꼈던 적이 있었던가. 언제는 후회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나하며 반쯤은 비아냥과 조소속에서 피식거리면서 스스로를 솔직하게 돌아다 보고 있다. 그냥 치사하고 졸렬한거지..그러고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고 다시 연말이 오면 뭐 비슷한 패턴으로 갈거면서 유별나게 무슨 반성과 되새김질이라니....위선적인 느낌도 든다. 그러고보면 경계니 스치듯 지나갔다더니 하는 것들은 다 핑계고 변명이고 너저분한 자기위안의 교묘한 위장일 뿐이다.


100권 읽기는 물건너갔다. 2013년에 읽은 책의 권수는 대략 70권 남짓이고, 블로그에 쓴 리뷰로 보자면 40권 안밖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게을러터져가지고 뭘 제대로 했다고 보기도 힘든 2013년이었단 소리다. 하기사 내가 100권을 읽는다고 뭐 새로운 떡밥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굉장한 뭔가를 깨닫게 되어서 정서가 함양되고 것도 아니고,,, 엄청난 책탐과 수집질에 만족감을 느끼거나 하는 그런 부수적인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읽으면 읽는거고 못읽으면 못읽는것일 뿐인게지..100권이라함은 그냥 상징적인 목표일 뿐. 이걸 이뤄냄으로써 거대한 인생의 어떤 성과물이 되는게 아닌데도 목표라는 단어하나땜에 집착하고 매달리게 되었드랬다. 어찌됐든 2013년에 읽었던 책들에 대한 후회는 별로 없다. 정말 재밌던 책도 있었고, 지루해서 미쳐버릴뻔한 책들도 있었고.....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좀 정신차려가며 책을 읽고 요약을 하고 정리도 하면서 한권씩 읽어갔다는 점이었다. 그 정도만 해도 악습관을 많이 버렸다. (책읽고 그냥 던저버리거나 쳐박아두기. 읽은 책 기억못하기 등등..) 


2013년 몰스킨 북저널 한권을 뒤에 2페이지 남기고 다 썼다. 지난주에 교보에 들려서 북저널을 한권 더 사면서 느낀건데 난 1년에 한권의 북저널을 소비하는 속도로 책을 읽는 것 같다.  1년에 1권의 북저널이라.....뭐 그정도면 생계에 지장을 줄만큼 책탐닉도 아니고 적절한 수준의 책읽기아닌가. 나도 미친듯이 여러권의 책들을 닥치는대로 읽고 싶지만 그렇게 숫자에 집착하면서 읽어댈수는 없는 노릇이다. 독서를 하는 목적, 그리고 남겨진 느낌과 의견. 스스로 생각해보는 시간들. 현재에 어떻게 반영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등을 놓고 보자면 읽는 것으로 끝나는게 아니었는데도 한권한권 읽어해치운다는 느낌으로 읽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읽은 책들은 다 망각의 늪으로 사라져주신지 오래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책상위에 쌓아놓은 책더미가 눈에 들어온다. 읽겠다고 했는데 못읽고 있는 책들의 탑이다. 2014년 초에는 이 책들을 읽으며 보내야겠지. 


언제고 늘 서점을 지나면서 들었던 생각들...책은 그 시절, 그 시점, 그 순간에 읽고 싶을때 읽어야 한다는 점...그러다보니 충동구매가 너무 심해지곤 한다.  매번 서점을 지날때면 사고 싶은 책들이 대략 10권씩 늘어간다. 하지만 그렇게 10권을 매번 구매하게 되면 내가 방에서 발디딜 공간도 없이 괴이한 책더미속에서 살아야 하는데 난 그정도의 책 탐닉자는 아니시다. 난 적절한 수준의 독서쟁이일 뿐이고 무엇보다 구매력에 한계가 그런 욕구를 나무란다. 능력되는 한도에서 책도 읽으라고 멍청아....라고.. 누가 나에게 규칙적으로 책을 공짜로 준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경제적 고려을 감안해서 책의 수급에는 굴곡이 있기 마련. 그리하여 14년의 초입부에서는 13년 못다이룬 100권 후보작들에 대한 독서부터 시작해야겠다. 어쨋든 사놓은 책이고...어차피 읽어야 할 책들이니까..저정도의 책더미라면 적어도 3월까지는 어렵지 않게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올해는 100권의 목표같은건 없다. 그저 읽어야 할 목록들을 업데이트하고 차근차근 읽으면서 생각 좀 해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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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illa Essay2013. 10. 17. 17:36


펭귄 클래식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다가 '거울나라의 앨리스'까지 읽지 않으면 도저히 안되겠다는 막연하고도 충동적인 느낌때문에 서점을 뒤졌다. 문제는 '거울나라의 앨리스'가 절판의 경지에 다다렀다는 점이다. 교보에도 절판중이시고 (현재까지는..) 반디앤루니스에서도 약 2권 남짓만 남아있는 상태고 어느 서점에서도 유독 '거울나라의 앨리스'만 집착적으로 많이 팔려주셨다. 괴이하기도 하지만 어쩔수 없겠다싶어 발품을 팔고 종로타워지점까지 가서 북셀프로 '거울나라의 앨리스'을 질렀다. 속이 다 후련하지만 책을 이렇게 충동적으로 사가지고 온 적이 어디 한 두번도 아니고 매번 이럴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혼자 자책하는 시나리오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 책장의 책들은 다 이런 식으로 구매된 랜덤과 무작위와 충동적인 감정의 산물들이었으니 숙명적으로 습관과의 평생 전쟁을 치룰 조짐들이라는....


언제나 충동적인건 아니지만 간혹 제대로 걸리는 날들이 있다.  지금도 이언매큐언의 '암스테르담' 그리고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그리고 커트보네거트의 '타이탄의 미녀'같은 책들은 언제나 '충동구매'의 영역안에 산다. 서점 책장 어디 한 귀퉁이에 꽂혀있기라도 하다면 그야말로 심마니 산삼보듯 쾌재를 불러줄텐데 요즘 같은 시절에는 결코 벌어지지 않는 꿈같은 이야기다.  온라인에서 절판이라는 딱지가 붙어버린면 오프라인으로 구매하는 것도 힘들긴 매한가지니까.. 구하기가 어려워서 중고서적을 기웃거려도 보지만 예전 중급의 중고서적을 받아들었던 기억으로 볼 때 그 볼품없는 타인의 흔적때문에 실망한 적이 하도 많아서 별로 내키지도 않는다. 중고는 나름대로는 어느정도 대안이 될 수있지만 여전히 아니다싶은 구석도 많다. 책을 읽을때 나아닌 다른 사람의 자취를 대면한다는 건 그리 좋은 기분이 아니고.... 어찌됐든 서점을 오고가다 보면 충동적인 구매의 향연을 벌일 때가 있다. 일전에도 아르투르 페레즈 레베르테의 '뒤마클럽'을 봤는데 얼마전까지 절판으로 구하기가 어려워서 헤맸던 책이었다. 경제적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질러볼까하다가 그동안 저지른 충동의 통장내역이 한심스러워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던 적이 있었다.  


다자이 오사무 전집도 충동적으로 질렀고, 레이먼드 챈들러의 절판 작품들도 혈안이 되서 찾곤 했었다. 그리하여 현재 읽어제끼는 책들보다 읽어야할 책들이 책상에 쌓여간다. 키는 점점 높아져서 이윽고 모니터 높이를 넘어서고 그리고 책장의 두칸정도높이로 솟구쳐올라 굉장한 기세로 말한다. 도대체 언제 읽을거냐고...그래도 시간이 흘러 그 책들을 구하지 못하게 되는건 너무나도 쓰라리다. 일단 구해놓으면 언제고 읽게 되니까. 벌이가 한심스러워서 책구매에 돈지출을 매조지해버리지 않는 이상 이런 투자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곤 했다. 친구말마따나 내가 이런 책의 탑에서 한권씩 한권씩 읽어 해치워 나간다고 해서 내 소양이 배가되고 인문학적 통찰력이 레벨업 되고 그럴거라고 기대하진 않는다. 


뭐라고 할까. 식신로드 중 만나는 별미를 놓치기 어려운 매니아적, 취향적인 식탐과 유사할까. 뭐하여튼 그런 느낌이다. 그냥 책속의 내용을 탐닉하고 그 작가를 읽어야만 하는 운명적인 데자뷰 같은 것들. 그리고 단 몇줄의 문장만 덩그러니남아 노트귀퉁이에서 조용히 말할 때, 그저 읽어버린 책 이상의 아우라들이 있게 된다. 어쩌면 코난도일의 말이나 망구엘 할아버지 표현대로 글쓰기를 위한 굉장히 효율적인 보물창고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일부러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퀼트처럼 명문을 갖다 붙이는 작위적인 의도는 꿈도 꾸지 않는다. 대개의 경우는 문장보단 감정이 남게되고 그런 감흥의 뒤에선 뭔가 스물거리는 삶의 묘미를 느낄 뿐이다. 아이러니하고 때론 우여곡절끝에 다다르는 간만의 정서적 안도감 정도면 그럴듯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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