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이 소설은 영화에 영향때문에 지면에서의 매력적인 능력들이 묻힐 가능성이 농후하다. 모르긴 몰라도 영상 퀄리티가 제아무리 위력을 발휘한다고 해도 활자에 의한 데이비드 미첼의 표현과는 별개의 문제가 될 듯싶기도 하고, 영화가 이 모든 자유로움과 다채로움을 모조리 구현해냈을 것 같지도 않다. 영화를 보지 않고 소설만 보고 판단하는게 이를수도 있겠으나 어찌됐든 소설 1권을 넘어가는 이 시점에서 굉장히 매력적인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겠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지레 짐작했던 윤회 어쩌고 저쩌고의 허영기가득한 비평들도 디스하고 싶다. 그냥 앞이야기와 뒷이야기를 연결하는 매개체, 그리고 기술적인 위트정도 ? 여기에 뭘 의미를 부여하고 그러는가...클라우드 아틀라스가 프로비셔의 장엄한 곡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그리고 루이자레이가 프로비셔의 편지를 읽었다고 해서 프로비셔의 비밀이라도 털리는 것도 아니고...이건 그냥 단순히 이야기를 연결하기 위한 고리이자 재미일뿐이라는 생각이다.

 

더 두고두고 봐서 2권을 다 읽고나면 ...

제대로 써봐야겠다.

아무튼 재밌는 것만은 사실이다.

Posted by kewell

<바닐라 유니티>(Vanilla Unity) -2004


정통 고전소설의 한대목을 붙잡고 걸쭉한 에스프레소를 음미하듯 정서를 주저앉혀놓고 나면 한동안 이런 생각이 떠나가지 않게된다. '세월이 많이도 흘렀고 나도 나이를 먹을만큼 먹어서 이젠 모든 사물들의 무게가 왠지 더 무거워 내려앉아버렸다' 라는 느낌. 그래서 말이지만 고전스럽다는 것에 대한 덕목이 명료하다고해서 그걸 일부러 찾아 고귀한 가치인양 보듬어 안고 살기엔 너무 천편일률적일 것이라고...( 고전이란건 일부러 찾아봐도 지겨운 그런 거였을 수도 있다.)  그런 생각들이 인디팝을 듣다보면 더 심해진다. 하드록에 대한 추억들은 나의 경우 썩 좋지 못하다. 록의 진정한 가치까지 운운하지 않더라도 록매니아를 일삼았던 친구들의 입장에서 보면 록스피릿에 근처에 가지 못하는 편견 소유자였기때문이다. 일단 록은 나에게 너무 무겁고 너무 시끄러우며 너무 난해했다.

 

 

다행히도 록에 관련한 페이지가 줄거리 전환을 위해서 다음 챕터로 넘어갈 무렵, 얼터너티브와 프로그래시브에서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나같이 어쩡쩡한 계층을 당황시키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건즈앤 로지스만큼은 아니었어도 대개의 경우 너바나, 혹은 레드핫 칠리 페퍼스까지 오면 꽤 '유해진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듣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시애틀 뮤직들의 그런지계열과 이모(Emo)까지 언급되면 굳이 록의 히스토릭 스토리를 이해하지 않아도 충분히 친밀감 있는 인디팝의 주류를 감지하기 어렵지 않게 되었다. 요즘은 대세가 모던록으로 다 '전체집합'이 되기 마련이니까 설사 정통록 스피릿과 퀄리티를 보장하지 않더라도 그걸 비난하면서 '어리석은 자들 같으니'라고 말하는건 그저 취향탓이려니 할 뿐이었다. 선택의 자유는 풍부했다.


난 인디 음악의 대개가 이런 80~90년대의 강렬한 사운드에 근거한 취향의 변이를 따라 형성되어왔다고 믿는 편이다. (바세린같은..)  브릿팝이나 펑키에 의한 다양성에는 '참신함' 그리고 좀더 친근한 무엇이 있었다고 보여진다. 특히 멜로디어스한 록들의 등장은 꽤 여파가 있었으며 Emo계열이라고 불리우는 soft 음악들의 대개는 90년대 중반을 강타했던 발라드 전성기로 부터 물려받은 대중적 팩트가 녹아있는게 아닐까하는 의구심마저 들고 있었다. 아마도 감성적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하이브리드'해질 가능성이 농후했고 실제로도 그랬다고 믿는 편이다.


바닐라 유니티도 그랬던 것 같다. Emo의 정의를 가지고 어떤게 더 정확한가에 대한 논란같은 건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바닐라 유니티가 뭔가 그 중간에 브릿지를 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도입부에서 보여준 펑키적인 이모스러운 전개와 멜로디야 그렇다치더라도 완전히 놓아버리지 않은 강렬사운드의 후반부는 그들이 여전히 록적인 부분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걸 의미했다. 친구들은 간간히 바닐라 유니티가  올드스쿨의 스피릿을 이어받은 것처럼 행세하진 않아도 묘하게 양다리를 걸친 것 같다고 했을때 난 혼자서 '그런게 뭔지'도 모른 채, 2집에서 더 유해진 그들의 캐주얼을 킬킬거리며 들었드랬다. 1집에서 브리티쉬 정장의 오픈마이드 젠틀맨을 떠올렸다면, 2집에서는 스니커즈로 갈아신고 가벼운 브라운 뿔테안경을 걸쳐쓴 여행객 같은 느낌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감성적'으로 접근하면 우리는 모두 바닐라 유니티의 '내가 널 어떻게 잊어'나 'Tomorrow'같은 인기곡들만을 기억해내기 바쁘다. 슬며시 'Crying on' 같은게 껴있다는 건 잊기라도 하는 걸까. 홍대인디밴드들의 폭풍같은 인기추종의 실체는 '나긋나긋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는 일탈' 비스무리한 개성들에 있다고 항변하는 동생들을 말을 들어왔다. 그래서 묻고 싶은 말..'그래서 좋아하는 곡이 뭐야' Tomorrow에도 내가 널 어떻게 잊어' 라고 말하는 듯 결코 잊을 수 없는 히트곡을 무언으로 언급해대던 그녀들의 눈망을 떠오를 뿐이다. Emo스럽다는 건 이런 대중적인 지지를 근본적으로 부인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게 이상한 것도 결코 아니고, 편견의 눈 빛으로 보지 않아도 된다. 쓸쓸하고 외롭고 잃어버린 사랑을 논하기에는 보컬도 연주도 최적의 궁합, 소포모어 구름이 밀려와 그들이 부담백배로 common place를 내놓았을 지라도 'Anybody'같은 것도 들을 수 있었다. 이정도면 다양성으로 볼 때 감지덕지 이상이지...

 

언제고 2집이후의 음악들도 한번 이야기해보고 싶긴한데..뭔가를 느끼고 어쩌고 할만큼 많이 들은게 아니어서 그건 다음으로 미룬다. 하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난 혼자서 여행할때 바닐라 유니티의 레이블을 잊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게 무슨 장르이든 또 어떤 스토리텔링을 가졌든 사실 별로 영향은 없었다고 본다. 그러기에는 너무 현실감있고 설득력도 꽤 되었으며 무엇보다 스산한 해지는 저녁에 아스팔트위에 레드와인을 부은듯한 그 눅눅한 여름날을 기억한다. 그 시절 바닐라 유니티는 그 여름날 자체였으니까...

 

 

Posted by kewell

소설 읽기에 대해서 한때는 부질없는 비현실적 읽기라고 폄하했던 적이 있다. 일종의 허구장치외 모든 소품들에 대한 천시같은게 있었을 수도 있다. 현실속에선 소설적 상상력은 그야말로 망상과 환상일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니까 통속적 쾌감이나 기쁨은 TV일일연속극에서 펼쳐지는 막장전개와 같은 것으로 현실과 유사할 수는 있어도 굉장히 밀접한 통찰력을 주기는 어렵다는 결론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무튼 비슷한 견해으로 소설 읽기를 피해왔던 것 같다.


사실 소설이 현실과 가까워야 한다는 것도 우습긴 마찬가지다. 소설속에서 보려는 건 의외로 단순할 수도 있다. 그 상황과 그 줄거리속에서 자신의 생각이 어떠한 방향으로 가고있나하는 탐색, 그리고 주인공들의 행동과 말투, 그 밖의 상황들을 통해 다양한 생각들의 절충을 볼 수 있다. 특히나 세상의 모든 것들을 묘사하는 방법은 몇몇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수십, 수백, 수만가지의 패턴과 스타일이 있으므로 그걸 토대로 묘사되는 많은 느낌들은 그야말로 생각과 통찰을 넓혀주는 간접적 경험이 될 수도 있다.. 거창한 깨달음까지는 아니어도 대개 우리는 위로와 안정과 편안함을 소설로부터 얻는다. 나도 그럴 것이라는 동감, 당신도 그랬나하는 아련한 추억, 그리고 잘되었면 한다는 바램들. 그리고 유유히 지면을 타고 흐르는 생각지도 못했던 감성들, 격하게 전개되는 빠른 충격들, 그리고 마음속에 와 박히는 수많은 사적인 은유와 감정들의 파편들까지 감안하면 소설 읽기가 비현실적이라고 말할 순 없는 노릇이다. 이미 난 마음속에서 현실적으로 무엇인가를 경험하고 있으니까.. (지금도 데이비드 미첼의 '클라우스 아틀라스'를 읽으면서 감탄 중이다. 애덤 어윙까지는 덤덤했는데 루이자 레이 미스테리에서 충격적인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 


소설을 주야장창읽는 몇몇 지인들 중에 그저 문장력과 표현력을 보기위해서 혹은 나름대로 분석하기 위해서 읽는다는 친구도 봤다. 그런데 그는 단어하나라도 붙들고 늘어지면서 굉장히 힘겹게 의미들을 부여하고 따져가며 세밀한 조율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물론 그것도 하나의 신념이나 방식중 하나겠지만 그렇게 해서 꽤나 명확한 분석을 한다 할지라도 그가 원하는건 정작 '자신도 그와 같이 잘 쓰기' 였기 때문에 노상 분석해체만 하고 있을순 없는 노릇. 그리하여 습작들을 감행하여 나에게 읽어보라며 넘겨준 원고더미에서 난 그야말로 아이러니함을 봤다. 그 글들은 약간은 조잡했고 연결도 매끄럽지 못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 마치 파인딩 포레스터의 크로포드 교수가 자말 월레스의 글을 질투하듯, 그도 그랬던게 아닐까하는 묘한 데자뷰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읽기 동기부여 방식도 나에겐 솔직히 별로 였다.


확실히 문장을 탐내든 편안함을 얻기위해서든 소설읽기에 대한 동기야 널리고 널렸다. 다만 중요했던 것은 소설이 가져다 주는 어떤 점들이 그다지 꼭 현실적이거나 교훈적이거나 할 필요는 없다는 점. 그게 나에겐 중요했던 것 같다. 지금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어디서 느끼기 어려운 아주 드문 인적 눈이 내린 산 길에 처음 발자국을 남길만큼 생경한 경험이 된다고 느껴진다면 사실 그것으로 족하다. 삶은 그다지 길지 않고 누릴 감정의 파고도 어쩌면 내 키를 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생애 담을 수 없는 해일과 같은 감동을 느껴봤을 수도 있겠고 그런게 있는지도 모를만큼 잔잔함 속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더 많은 감정의 도자기들을 소설속에서 구워내고 싶을 뿐이다. 나만의 감정 도자기를 굽듯이..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내 감정의 무늬와 빛깔과 청아함을 담아서...그러면 소설 읽기에 더할 나위 없다.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