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닐라 유니티>(Vanilla Unity) -2004


정통 고전소설의 한대목을 붙잡고 걸쭉한 에스프레소를 음미하듯 정서를 주저앉혀놓고 나면 한동안 이런 생각이 떠나가지 않게된다. '세월이 많이도 흘렀고 나도 나이를 먹을만큼 먹어서 이젠 모든 사물들의 무게가 왠지 더 무거워 내려앉아버렸다' 라는 느낌. 그래서 말이지만 고전스럽다는 것에 대한 덕목이 명료하다고해서 그걸 일부러 찾아 고귀한 가치인양 보듬어 안고 살기엔 너무 천편일률적일 것이라고...( 고전이란건 일부러 찾아봐도 지겨운 그런 거였을 수도 있다.)  그런 생각들이 인디팝을 듣다보면 더 심해진다. 하드록에 대한 추억들은 나의 경우 썩 좋지 못하다. 록의 진정한 가치까지 운운하지 않더라도 록매니아를 일삼았던 친구들의 입장에서 보면 록스피릿에 근처에 가지 못하는 편견 소유자였기때문이다. 일단 록은 나에게 너무 무겁고 너무 시끄러우며 너무 난해했다.

 

 

다행히도 록에 관련한 페이지가 줄거리 전환을 위해서 다음 챕터로 넘어갈 무렵, 얼터너티브와 프로그래시브에서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나같이 어쩡쩡한 계층을 당황시키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건즈앤 로지스만큼은 아니었어도 대개의 경우 너바나, 혹은 레드핫 칠리 페퍼스까지 오면 꽤 '유해진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듣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시애틀 뮤직들의 그런지계열과 이모(Emo)까지 언급되면 굳이 록의 히스토릭 스토리를 이해하지 않아도 충분히 친밀감 있는 인디팝의 주류를 감지하기 어렵지 않게 되었다. 요즘은 대세가 모던록으로 다 '전체집합'이 되기 마련이니까 설사 정통록 스피릿과 퀄리티를 보장하지 않더라도 그걸 비난하면서 '어리석은 자들 같으니'라고 말하는건 그저 취향탓이려니 할 뿐이었다. 선택의 자유는 풍부했다.


난 인디 음악의 대개가 이런 80~90년대의 강렬한 사운드에 근거한 취향의 변이를 따라 형성되어왔다고 믿는 편이다. (바세린같은..)  브릿팝이나 펑키에 의한 다양성에는 '참신함' 그리고 좀더 친근한 무엇이 있었다고 보여진다. 특히 멜로디어스한 록들의 등장은 꽤 여파가 있었으며 Emo계열이라고 불리우는 soft 음악들의 대개는 90년대 중반을 강타했던 발라드 전성기로 부터 물려받은 대중적 팩트가 녹아있는게 아닐까하는 의구심마저 들고 있었다. 아마도 감성적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하이브리드'해질 가능성이 농후했고 실제로도 그랬다고 믿는 편이다.


바닐라 유니티도 그랬던 것 같다. Emo의 정의를 가지고 어떤게 더 정확한가에 대한 논란같은 건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바닐라 유니티가 뭔가 그 중간에 브릿지를 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도입부에서 보여준 펑키적인 이모스러운 전개와 멜로디야 그렇다치더라도 완전히 놓아버리지 않은 강렬사운드의 후반부는 그들이 여전히 록적인 부분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걸 의미했다. 친구들은 간간히 바닐라 유니티가  올드스쿨의 스피릿을 이어받은 것처럼 행세하진 않아도 묘하게 양다리를 걸친 것 같다고 했을때 난 혼자서 '그런게 뭔지'도 모른 채, 2집에서 더 유해진 그들의 캐주얼을 킬킬거리며 들었드랬다. 1집에서 브리티쉬 정장의 오픈마이드 젠틀맨을 떠올렸다면, 2집에서는 스니커즈로 갈아신고 가벼운 브라운 뿔테안경을 걸쳐쓴 여행객 같은 느낌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감성적'으로 접근하면 우리는 모두 바닐라 유니티의 '내가 널 어떻게 잊어'나 'Tomorrow'같은 인기곡들만을 기억해내기 바쁘다. 슬며시 'Crying on' 같은게 껴있다는 건 잊기라도 하는 걸까. 홍대인디밴드들의 폭풍같은 인기추종의 실체는 '나긋나긋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는 일탈' 비스무리한 개성들에 있다고 항변하는 동생들을 말을 들어왔다. 그래서 묻고 싶은 말..'그래서 좋아하는 곡이 뭐야' Tomorrow에도 내가 널 어떻게 잊어' 라고 말하는 듯 결코 잊을 수 없는 히트곡을 무언으로 언급해대던 그녀들의 눈망을 떠오를 뿐이다. Emo스럽다는 건 이런 대중적인 지지를 근본적으로 부인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게 이상한 것도 결코 아니고, 편견의 눈 빛으로 보지 않아도 된다. 쓸쓸하고 외롭고 잃어버린 사랑을 논하기에는 보컬도 연주도 최적의 궁합, 소포모어 구름이 밀려와 그들이 부담백배로 common place를 내놓았을 지라도 'Anybody'같은 것도 들을 수 있었다. 이정도면 다양성으로 볼 때 감지덕지 이상이지...

 

언제고 2집이후의 음악들도 한번 이야기해보고 싶긴한데..뭔가를 느끼고 어쩌고 할만큼 많이 들은게 아니어서 그건 다음으로 미룬다. 하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난 혼자서 여행할때 바닐라 유니티의 레이블을 잊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게 무슨 장르이든 또 어떤 스토리텔링을 가졌든 사실 별로 영향은 없었다고 본다. 그러기에는 너무 현실감있고 설득력도 꽤 되었으며 무엇보다 스산한 해지는 저녁에 아스팔트위에 레드와인을 부은듯한 그 눅눅한 여름날을 기억한다. 그 시절 바닐라 유니티는 그 여름날 자체였으니까...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