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BOOK/에세이2013. 1. 8. 11:30

 

하루키의 에세이들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무라카미 라디오>였다. 담백하고 간결하면서도 무미건조하지 않는데다가 다른 책들에서 보지 못한 그 만의 분위기가 베어있었으니까. 사실 그건 흉내내려고 해도 쉽게 되는 그런 부류의 재능들이 아니란 점이 안타깝지만, 읽는 것 만큼이야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영역이니까 열렬히 읽고는 있다.

 

아무튼 마치 에피타이저를 즐기듯 최근 합본으로 엮어주신 에세이 시리즈 5권도 거부감없이 주야장창 읽던 중, 그 사이에 그만 최신작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가 나와버렸다. (실제 발매된건 2012.6월 ㅠ.ㅠ )이름도 무라카미답게 (그는 제목이든 뭐든 실생활에서 전혀 쓰이지 않거나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 단어의 배치에 재능이 있어보인다.) 그야말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1Q84' 이후 지쳐버린 자신을 달래고자 '무라카미 라디오'의 2nd 타이틀로 카메오처럼 , 날카롭고 역습적으로 등장해주셨다.... 이 뜬금포는 그야말로 의외였다. '이봐이봐.. 에세이를 적당히 쓰라고..' 라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무작위의 주제도 그렇고 그의 표현처럼 '비방'도 '잘난척'도 '시사적'이지도 않은 채,(책속에서 에세이를 쓰는 자신만의 기준으로 언급함)  자기가 하고싶은 이야기를 듣거나 말거나식으로 하염없이 써내려갔다. 아마도 이런 걸 두고 '내맘대로 쓰는 생활 에세이'라고 해야 겠지만 막 썼다고 보기엔 교묘하고 장치적인 구석들이 좀 있긴하다. 구마모토 굴과 차가운 샤블리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굴튀김이 먹고 싶어졌다라는 엉뚱함은 소소하나 유리집에 사는 사람은 함부러 돌을 던지지 말아야 한다 (Those who live in glass houses shouldn't throw stones')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할 때 살짝 진지해졌다가  '탈구축 시저샐러드'에 대한 엉뚱한 에피소드에서 릴랙스 한 후 , '꿈을 쫓지 않는 인생이란 채소와 같다'라고 말했던 <세상에서 가장빠른 인디언>앤서니 홉킨즈를 언급할 때, 묘하고도 다양한 정서적 컬러에 감탄을 느끼는 식이다. 어쨋든 좋다. 이 무라카미식 리듬감에는 현대사회의 세련된 문화적 시각, 독립되고도 일관된 가치관, 감수성 짙은 정서의 담백함같은게 있어왔다고 느껴왔으니까..역시 하루키 답다라고 생각했드랬다.


이 에세이를 읽다가 보니 하루키의 정신세계가 슬쩍 그려진다. 물론 독자가 이런 책 몇 권읽는다고 그 사람의 깊이있는 속내를 그대로 알수 있다는 망상은 금물이지만, 사물에 대한 관점과 현상에 대한 감흥들에서는 '취향'정도는 베어나오기 마련이고 간혹가다의 진지함속에서는 어떤 타이틀롤이 그의 가치관에 걸려있는지 얼핏 보일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쉬운 관점에서 본다면 내가 하루키 에세이에 대해서 좋아하는 점은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들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가볍고 담백하게 눅눅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듯한 문장들이다. 솔직히 말해서 '햄버거를 먹기위해서 1 달러만 주세요' 라고 말하는 거리의 부랑자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했다고 해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1달러를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은 처음이다'라고 감탄하는 하루키가 더 난 감탄스럽다. 사람들의 일상은 대개 별의미 없는 것 투성이다. 의미없는 것들 속에서 쏠쏠히 의미를 옹골차게 찾아낸다는 것도 쉬운일이 아니어서..때론 그의 머리속이 궁금하기도 하다. 예전 무라카미 라디오에서도 '브래지어'를 가지고 한참동안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써내려갔었는데 막판에 문득 이런생각이 들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지?' 라고..사실 의미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의 위트있는 관찰력과 감수성이 탐났을 뿐인 게지...


대체로 그의 문장들을 분해해보면 단어선택에 있어서 묘한 정서적 컬러가 숨겨있다는 걸 느끼곤 한다. 이를테면'샴고양이', '피노누아르', '밤바다', '실크시폰드레스', '호박색반달'이 합쳐진 복합이미지가 문장으로 완성되어서 독자들의 감정회로에 이입되고  독자들만의 상상력이 동원되어 이미지화되는게 아닐까라고 생각된다. 판타지스럽기도 하고 때론 미스테리하며 하루키 특유의 소설적 우화적 배경들에 대한 근거가 혹시 에세이에서 드러나는게 아닐까하고 잠시 몽상에 빠진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도 작가이다보니 그렇게 의도적이진 않았을 듯 싶고, 에세이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하기도 하고 (도대체 뭘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라고 언급함) '문학에서는 자연스러움 역시 사명감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의미심장한 언급을 하기도 한다. 가벼우나 변속기어처럼 상황에 따라 진지함을 오가는 그의 리드미컬한 질주에는 '일관성'이 있어왔다는 점은 좋다. 변하지 않는 그만이 가진 표현력정도...


삶의 RPM이 과열할 지경이면 잠시동안 정서의 마음가짐을 '중립'에 놓고 이런 에세이를 보기도한다. 큰 의미가 없는 '읽기'는 피하라고 친구가 옹골차게 말했었는데, 오히려 난 담론에 취한채 격렬한 자의식 자랑놀이 하는 그 친구가 더 의미없고 지루하긴 마찬가지 아닌가싶다.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는 서른을 넘었고, 대 부분 그 옛날의 지루한 멍청이 어른이 되었다. 자신이 있던 자리에서는 전혀 바보같지 않았다. All you need is love를 노래했고 낭랑하게 트렘펫이 울렸다' …… 그럴 듯하지 않은가. 아마도 다들 어릴 때 그토록 고리타분하다고 여겼던 '지루한 멍청이 어른'들이 되어가는건 아닐까싶기도 하고... 고집이 세지면 세질수록, 뭔가 깨달으면 깨달을수록..오히려 더 무시무시한 바벨탑이 둘러치고 그 안에서 볼 수 있는 하늘은 좁아지는 뭐 그런 독야청청의 외곬수. 이걸 다른 말로 '엄청나게 지루한 어른되기'라고 이름을 붙여버렸다. 옛날 읽었던 '무라카미 라디오'에서 느꼈던 그 덤덤함이 여전히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고 아직도 그의 날서린 표현력은 줄지 않았다.  나도 신선한 로메인 상추에 크루통, 계란노른자를 올리고 파마산 치즈를 뿌린 다음 올리브유,, 다진마늘, 소금, 후추약간, 레몬 뿌려주고 우스터 소스와 와인 비네가를 곁드린 시저스 샐러드를 먹어야 겠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의 늦은 감흥은 시저스샐러드로 달래야 제격이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비채 | 2012-06-27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소소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하루키의 에세이!세계적인 작가 무...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kewell
Review BOOK/에세이2013. 1. 5. 23:30

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 (God bless you, Dr.Kevorkian)
커트 보네거트(Kurt vonnegut)

 

 

1965년, 유사 제목의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God bless you, Mr.Rosewater)를 쓰고 30년정도가 훌쩍 지난 1999년에 자신의 이전 작품과 거의 동일한 제목으로 <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을 출간했다. 앞서 '로즈워터씨' 리뷰에서 밝혔다시피 전작에서 보네거트 문장에 중독된 독자들이 드디어 제2탄 운운하면서 '키보키언'을 찾아헤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지만, 실망스럽게도 키보키언은 로즈워터보다 내러티브적으로는 하향조절되었고 덜 현실적이었다.

 

다만 더 위트있고 유쾌해졌고 깃털처럼 가벼운 조소만은 여전했다. 분량은 로즈워터때보다 약 1/3 수준, 당시 77세의 보네거트로서는 아마도 미리 써두었을 몇편의 미출간작들을 모아두었다가 단편의 형식으로 출간했을 수도 있고,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슬쩍 드러내라고 주위로부터 강요 당했을 수도 있다. 이미 1999년 당시 그는 '소설가'로서의 정체성으로부터 자유를 얻었었으니까 (1997년에 소설가로서 은퇴를 선언했었다.) 그로서는 아쉬울 것도 안타까울 것도 없는 남은 여생을 '보네거트 방송'을 하며 천국을 들락날락거리며 보냈어도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

 

보네거트 소설을 근자에 이르러 굉장히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건 아마도 '그의 그럴듯한 정신 사상'이라던지 인간을 하염없이 따뜻하게 바라보는 휴머니즘에 근거한 세속적 이유만큼은 결코 아니었다.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남들 다 챙기는 일종의 형식, 시선을 의식하고 진실보다는 가공의 아름다움을 데코레이션 한 후에 좀 더 나은 뭔가를 보여주고자 애쓰는 그런 자세를 지양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서문에서 '닐 게이먼'은 커트 보네거트의 가상 인터뷰를 통해서 '당신의 저작물이 얼마나 나에게 영향을 끼쳤는지 알려주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그리고 '인생의 목적은, 누가 그것을 지배하든 주변의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라는 보네거트 책으로부터의 자신의 깨달음을 인정받기라도 하고 싶어서 보네거트에게 의견을 구한다. 그리고 보네거트는 이렇게 말했다. "좋아, 내가 그렇게 얘기했다고 말하게나" 라고..

 

이 책은 기묘하게도 백삼십여명을 안락사시킨 '죽음의 의사' 잭키보키언의 도움을 받아 3/4 정도 죽은 상태에서 사후세계로 가 유명인사들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쓰여졌다. (엄밀하게 보자면 소설이라기보다 차라리 개인의 생각을 가상으로 엮은 일종의 잡문집, 에세이라고 불리워도 무리는 없어보인다.) '푸른터널'의 끝과 '천국의 문'사이의 작은 공터에서 벌이는 이 기묘한 인터뷰가 만들어진 이유는 보네거트가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사후세계로 가버린 인물들을 통해서 표출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보네거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도주의자'로 타이틀화한 듯 싶다. 이미 종교적인 관점에서 '만일 예수의 산상수훈에 자비와 동정의 가르침이 없다면, 나는 인간이기를 거부할 것이다. 차라리 방울뱀이 되는 편이 나을 것이다'라고 한 부분만 봐도 그렇고 아예 '인도주의는 훌륭한 시민정신과 보편적 품위'를 대신하는 편리한 동의어'라고 언급한 대목에서 진정 보네거트가 추종하는 소양을 짐작케한다.

 

등장하는 사후 인터뷰 대상자들이 다 유명한 인물들은 아니고 잘 알려지지 않는 범인들도 등장한다. 독자들의 지식속에 메리 D.에인즈워스 박사가 누구인지, 살바토레 비아지니,존 브라운 정도는 제아무리 미국에서 TV와 신문을 끼고 살아도 알기 어려운 인물들이다. 그럼에도 보네거트는 열심히 사후세계 건너편에서 이들의 의견을 열심히 인용한다. 아마도 이들이 죽게 되기 까지 닥친 모종의 상황, 그리고 죽은 인물들이 사회에 끼친 영향들 중 보네거트가 '한마디씩' 자기만의 견해를 피력하기 위해서 소재로써 활용되는게 아닐까 싶다.  위트있고 기발하며 때론 신랄하고 통찰력있는 몇마디의 인터뷰야 말로 상대방이 아닌 보네거트의 진정한 속내이리라 추측된다.

 

  • 메리 D. 에인즈워스 : 유아가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애착관계 필요를 주장했으나 보네거트는 사후세계에서는 이런 그녀의 주장이 쓸데없다고 말하며 아기들은 천사가 되어있더라고 밝힌다.
  • 살바토레 비아지니 : 슈나우저 테디를 구하기위해 핏불테리어에게 물려 죽은 사람.
    '베트남 전쟁에서 개죽음을 당하는 것보다 낫지 않겠냐'는 대답을 들음. 반전 사상에 대한 견해피력.

  • 버넘버넘 : 오스트렐리아 원주민 태생으로 1967년에 시민권을 받도록 결정적 영향을 끼친 인물
    여기에는 루이암스트롱 악단도 등장함. 인종차별에 대한 견해를 밝힘.

  • 존 브라운 : 18명의 열성 노예폐지론자를 이끌고 버지니아 주 하퍼스페리 무기고를 탈취했던 인물. 교수형 당함.
    미국에서의 노예제도를 합법적으로 저지른 잔학행위로 규정하면서 '홀로코스토도 독일안에서 합법적이었다는 신랄한 견해를 밝힘' 또한 유색인이 백인에게 굽실거리는 것을 자연법과 완벽히 조화를 이룬다고 여기는 사회를 '토마스 제퍼슨'이 만들었다고 힐난했다.

  • 로버타 코르서치 버크 여사 : 1955~1961년의 해군참모총장을 역임한 알리 A.버크제독의 부인.
    좋은 아내가 되기 위한 본보기로 등장했으며, 결국 '뱃사람의 아내'라는 소박한 타이틀을 선택하는 부인을 존중했음.

  • 클레런스 대로 : 미국초기에 노동조합을 조직한 노동가를 변호한 변호사.
    클레런스의 인터뷰말미에 '난 최선을 다해 오락거릴 제공했다네' 라고 말한다.

  • 빅터 데브스 : 사회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5번 출마한 사람.
    " 하층 계급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나는 하층계급입니다. 범죄인자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나는 범죄형입니다. 
      감옥에 갇힌 영혼이 존재한다면 나는 자유롭지 않습니다. "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에 대한 질타. 그리고 현실의 미국에서는 데브스말이 '조롱'당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 비비언 헬리넌 : 화려한 태평양 연안가문의 여주인.
    상대적으로 보자면 기득권 세력이었던 헬리넌이 남편인 빈센트 헬리넌처럼 노동운동 지도자 해리 브리지스를 지지하고 인권을 옹호하는 일에 앞장섰던 것에 대해서 '화려하다'라는 칭호를 붙여주었다. 그리고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적들에게 불리웠던 칭호 "자기 계급을 배반한 자'라는 역설적 위트를 보여준다.

  • 아돌프 히틀러 : 자신이 저지른 일을 용서해달라는 의미로 인터뷰.

  • 존웨슬리 조이스 : 1966~1996 라이온스 헤드바 운영. 미국작가들이 술을 먹으며 떠들어대는 중심지 역할을 했다.
    작가들의 수다방지를 위해 주크박스를 들였으나 '그냥 더 시끄럽게 얘기하더군'이라며 위트를 보여준다.

  • 프랜시스 킨 : 로망스어 전문가 어린이책 작가로 활동하였다.
    세번의 결혼이 실패로 돌아갔다라는 주류언론의 흠집내기를 '아시 에스라 비다" "세라 비타" "세 라 비" 라는 단어로 축약했다. ('그것이 인생이다' 라는 뜻)

  • 아이작 뉴턴 : 탐구에 대한 호기심이 멈추지 않는 뉴턴을 사후세계에서 인터뷰함. 여기에는 성베드로도 등장하는데 베드로는 뉴턴에게 이렇게 말한다 " 하늘과 땅에는 자네의 철학으로 꿈꿀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네" 라고..

  • 이 밖에도 몇명의 인물이 더 등장한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

저자
커트 보네거트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1-01-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엉뚱하고 기발한 사후세계 인터뷰사후세계로 취재를 떠난 커트 보네...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