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BOOK/소설2013. 2. 27. 18:17

<고독한 시월의 밤>(A Night in the lonesome october) - 로저 젤라즈니/시공사.

 

 

아주 고전적인 무협소설 매니아의 전력(?)이 있었던지라 대여점이나 서점의 미로같은 구획들을 따라 이동하다 보면 눈이 가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코너가 바로 무협소설코너다. (대놓고 무협코너라고 타이틀을 걸어놓진 않지만..) 그리고 요즘의 그 코너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예전' 고풍스러웠던 화산과 전진, 곤륜, 소림의 이야기들이 아닌 다중차원을 오고가는 그야말로 판타지계열의 어드벤쳐로 퓨전된 괴이한 장르 이질감으로 다가온다. '이게 무슨 무협이야..그냥 SF라고 해두지' 라는 정도..SF혹은 판타지가 무협과 접목되었다고해서 나쁘다고 말할순 없지만, 내 추억의 레이아웃들은 SF, 판타지, 무협의 칸막이가 확고하다. 두방을 터는 경우(?)도 없는데다가 둘은 각자의 매력적인 정서와 뉘앙스로 개성화되어있다고 믿기에 엄연히 독립적이었던 것이다. 근래에 이르러서는 완연히 '정통무협물'이 아닌 '무협 판타지'로 전이된 양상이다. 판타지의 유입으로 보자면 시대의 흐름인가싶다가도 과거부터 있어왔던 장르이기에 그다지 특이할 것도 없는데도 무협과 결합해버렸다. 


지금도 강하게 믿고 있는데, 판타지나 무협이나 '서사'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이건 일회성의 설정으로 끝날 계제가 아니고 오히려 설정만큼은 리얼리즘에 교묘히 덧입혀져서 '그럴듯한' 내용들과 내러티브로 무장하고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그렇기에 무협같은 '시대'에 들러붙어있는 역사적 두터음에 '탈시대적인 판타지'를 결합하게 되면 상상력의 깊이가 더 강해지고 중독적이 될거라는 추측에 신뢰감을 실어준다. 문제는 내용이다.  마법이 일어나고 독특한 아이템이 등장하며 이에 관한 흥미진진한 뒷배경이 등장할 때 '얼마나 몰입적인가'라는 평가가 남아있다. 그럴듯한 설정, 그리고 그럴듯한 세계관, 그리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 모두의 이야기들이 과거부터 있어왔던 이야기라면, 혹 등장했던 캐릭터이고 무엇보다 관련된 에피소드가 프리퀼처럼 존재한다면 후대의 작가들은 이런 세계관을 그냥 사용만해도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전례에 대한 출처, 깊은 독서경험에서 우러러나오는 '인용'과 '도입', 그리고 오마쥬의 즐거움을 누릴수가 있다. 적어도 생각이 있다면 무엇이든 펼쳐지는 세계관에 한해서는 한없는 상상력의 세계속에서 평행으로 연결되기 마련이니까.


로저 젤라즈니가 <고독한 시월의 밤>에서 사용한 세계관이 이와 비슷하다. 이름하여 '크툴루 세계관'(Cthulhu Mythos). 괴이하고도 기이한 신화적 설정이겠거니하겠지만 창작에 의한 세계관치고 유야무야 사라져버린 유치뽕짝의 다른 여타의 설정들을 뒤로하고 살아남는 설정에 대해서는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고독한 시월의 밤>(이하 고시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이자 개인 '스너프'는 주인과 어느 10월 기이한 게임에 돌입한다. 이 게임에는 다음과 같은 참가자들이 등장한다. 주인인 과 화자인 개 스너프, 미치광이 질과 고양이 그레이모크, 모리스와 메케이브 그리고 올빼미인 나이트윈드, 미친 수도사 라스토프와 검은뱀 퀵라임, 드루이드교 오웬과 다람쥐 치터. 백작과 박쥐 니들, 그리고 유일하게 혼자 다니는 래리텔벗, 그리고 주변을 어슬렁 거리는 '위대한 탐정', 마지막으로 '훌륭한 박사와 쥐 부보' 등이 소설속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들이다. 정보와 재료들을 모아서 '그날'을 준비하고 동물들은 '정탐'으로 주인을 도우면서 둘이 한팀이 되어서 움직인다. 10월의 마지막날 게임 참여자들은 모여서 '개방'과 '폐쇄'에 대한 최후의 대결을 펼친다는 스토리로 전개된다.


이 소설은 로저 젤라즈니의 마지막소설로 1993년 출간, 기존의 전작들과는 약간 달리 경쾌하면서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에 비해선 훨씬 유하고 가볍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위트있으며, 고딕과 추리, 판타지의 결합을 굉장히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마치 이야기 구조만 보면 TYPEMOON페이트 스테이나이트(Fate/stay night)와 흡사한 구조다. 격돌을 전제로 생존게임을 벌이지만 각 참여자에 딸려있는 서번트와 <고시밤>에 서번트처럼 탐색전을 벌이는 동물들도 그렇고...아무튼 스토리의 설정구조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롤플레잉 게임같은 느낌이 들기는한다. 로저 젤라즈니는 여기에다가 묘한 캐릭터의 유명세를 익살스럽게 연결시켰다. 이를테면 스너프의 주인인 '잭'은 <리퍼의 밤>(Night of the Ripper)에 등장하는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를 끌어왔고, 미치광이 질은 '마녀 질'(질드레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훌륭한 박사는 '프랑켄슈타인을 만든 박사', 백작은 '드라큘라 백작', '래리텔벗'은 '늑대인간', 위대한 탐정은 바로 '셜록홈즈'다. 어떻게 본다면 각종 유명한 캐릭터들이 은밀한 게임에 참여하기 위해 모두 총출동하는 이야기 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부분이 있는데 한참 모험담이 펼쳐지는 중간에 갑자기 고양이 그레이모크와 스너프가 이질적인공간으로 빨려들어가는 부분이다. 그레이모크는 이전에도 이러한 장소에 온 적이 있음을 말하며 그 세계를 '드림월드'라고 부르는데 드림월드에 대한 곳곳의 묘사를 아주 세밀하고 생생하게 말하기 시작한다. 앞서 이야기한 크툴루 세계관이 '고시밤'에 깔려있다고 보는 부분은 이것 때문이다. 특히 크툴루 세계관의 창시자로 알려진 러브 크래프트는 자신이 만들어낸 이러한 설정을 메인으로 확장할 의지같은 건 없었다고 알려져있긴 하지만 단편작들에서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인용도구로 사용하면서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해댔다. ( 이러한 패러렐적인 설정요소들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사용하는 측에서 변형을 가해도 무방하다고 한바 있다.)


 

젤라즈니 역시 크래프트의 크툴루 설정을 빌어온 흔적들이 곳곳에 보인다. 우선 그레이모크가 묘사한 드림월드의 내용들은 소설 뒷편 역자 이수현씨가 밝힌대로 '미지의 카다스를 향한 몽환의 추격'에 등장하는 '드림랜드'의 내용과 같다. 또 미친 수도사 라스토프의 무기로 등장하는 '알하즈레드'는 크래프트가 만들어낸 전설의 '네크로노미콘'이라는 책의 저자로 알려져있다. 사람이름을 '성물'로 설정하는 위트를 발휘하긴 했지만 여전히 크툴루의 잔재가 깔려있는 것이다. (부. 1927년 러브크래프트는 <네크로노미콘의 역사'라는 가상의 역사를 기록, 1938년 그의 사후 발표되었다. 책의 원제는 알아지프이며 아랍어로 '바람소리, 기괴한 소리 혹은 소음'을 의미한다. 이 책에 의하면 미친 아랍인 '알하즈레드'가 등장하고 그는 크툴루를 숭배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따라서 미친 수도사로 라스토프가 알하즈레드를 소유한다는 설정은 어느정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셈이다.)


의외로 로저젤라즈니의 이 소설속에는 여러가지 인문학적 요소와 고전 환상문학의 잔재가 깊에 자리잡고 있다. 더군다나 위트있는 대사들과 기발한 전개, 스펙타클한 모험으로 볼 때, 오히려 전작들의 미스테리하고도 무거운 전개보다 쉽게 읽힌다는 장점이 있다. 마치 정말 10월의 세계 어디에선가 이런 캐릭터들이 은밀히 활동하면서 지금도 '폐쇄와 '개방'을 위한 전력 대결을 펼칠 것만 같은.... 그래서 할로윈에는 고독한 시월의 밤을 떠올리면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차라리 서두에 언급했다시피 무협판타지여야 한다면 젤라즈니같은 서사를 배경으로 깔아놓는 정도의 위트와 흥미진진함이 있었으면 하다고 생각한다. 깊이있는 대사와 전개도 그렇고 환상문학의 가치를 이런것으로 갈음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읽는 도중에만 느끼는 긴장감만을 위해서 '책을 집어들 순 없는 노릇이 아닌가.  가끔가다가 굉장히 모호한 장르적인 뒤섞임때문에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줄거리를 계속해서 읽는 고단함은 별로 느끼고 싶지 않다가도  '고독한 시월의 밤'을 떠올리면 정말 이 작품이 얼마나 좋은 작품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의 마지막 소설이 이 패턴으로 몇 권 더 나왔으면 좀더 긴 '시월의 밤'을 누려볼 수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지금도 있다.

 


고독한 시월의 밤

저자
로저 젤라즈니 지음
출판사
시공사 | 2010-12-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고독한 시월의 마지막 밤, 게임이 시작된다!SF 판타지계의 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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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ewell

로저 젤라즈니의 책은 그다지 많이 읽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그리고 최근 다 읽은 <고독한 시월의 밤>정도..다만 독자들의 경우, <고독한 시월의 밤>(이하 고시밤)의 읽다가 설정 세계관에서 그만 러브크래프트로 새어 나가는 바람에 엄청난 블랙홀(환상문학)로 곁가지를 쳐버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역시 예외없이 나도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세계의 설정에 푹 빠져가지고 장장 세트 4권을 덜컥 구매. 틈날때마다 보고 있다. 이렇게 된건 로저 젤라즈니가 고시밤에서 '크툴루' 세계관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알하즈레드'의 설정은 사실 무기라기 보단(고시밤에서 '무기'로 등장) '인물'이었다. 그것도 <네크로노미콘>의 저자로 괴이하게 등장하는데 이 모든 설정들의 배경은 러프크래프트가 만들어놓은 크툴루 세계, 즉 상상의 집합체였던 것이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그레이모크와 스너프가 현실에서 '드림월드'로 가서 경험하게되는 엄청난 환상들, 그리고 그레이모크가 읇조리는 세계의 구석구석 진기하고 기이한 묘사 표현의 원전이 도대체 어디일까 궁금해하다가 알아낸 사실..(알아냈다고 말하기도 민망하게시리 고시밤 뒤편 후기에 역자가 해설을 붙여놓았드랬다.) '미지의 카다스를 향한 몽환의 추적'이라는 단편에 등장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도 러브 크래프트의 저작들... 

 

그러다보니 러프 크래프트가 아니 궁금할 수가 있겠는가. 이 상상력 발군의 저자를 뒤져서 그가 썼다던 연작들을 다 찾아볼 밖에 도리가 없게됐다. 그리하여 다 뒤져서 '황금가지'가 내놓은 '러브크래프트 시리즈 5권짜리 세트'를 손아귀에...아직 다 읽진 못했지만 역시 기대했던 대로 굉장한 상상력의 소유자임은 분명한 것 같다. 저간에는 매니아들세계에서 톨킨과 견줄만한 위명을 떨친다고 하던데 아직 스토리 내러티브까지는 몰라도 기괴한 설정과 미장센들을 비롯한 세세한 연결고리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질것만 같은 장대한 스케일의 묘사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 결국 이정도의 레벨이라면 후대에 영향을 아니 받을수 없겠다싶다.대개의 판타지계열의 작가들도 아마 롤모델이 될 수 있을 듯 싶고...

 


러브크래프트 전집 세트

저자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출판사
황금가지 | 2012-08-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공포 소설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H. P.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집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무엇보다 젤라즈니의 <고독한 시월의 밤>은 나스 키노코페이트 스테이 나이트. 그리고 설정관으로 보자면 아르퀘이드 브륜스터드를 비롯한 사도세계의 기묘한 이야기들과 흡사한 측면이 있다. 설정만 놓고보면 판박이처럼 느껴질 만큼 묘한 질감같은게 있다고나할까. 고시밤이 폐쇄와 개방에 대한 대리인 게임으로 소규모 축소되었길래 망정이지. 혹시라도 각 캐릭터가 크툴루 세계관에서 떨어질법한 아이템들에 포커스를 맞추고 어드벤쳐식으로 전개했으면 이렇게만 스토리가 끝나지 않았을수도 있겠다. 알하즈레드는 사실 부스레기 정도에 불과했지만, 네크로노미콘이 '질'의 품속에서 툭 떨어지거나 위대한 탐정이 드림월드 (아직도 이걸 드림랜드라고 해야할지 드림월드라고 해야 할지 애매하다. 주. 원작에서는 드림랜드, 고시밤에서는 드림월드로 젤라즈니가 비틀었다.)로 빨려들어가 모험을 한다던지 해버리면 ...그야말로 후덜덜한 스케일로 빠져드는 것이다. 아마 이런 특성들 때문에 '크툴루'의 세계관이 위키피디아처럼 후대의 작가들에 의해서 자꾸만 살이 덧붙여지고 확장되는 게 아닐까.

 

 

로저 젤라즈니를 읽다가 갑자기 러브 크래프트로 전염되서 한참동안 드림랜드에서 머물고 있다.

이것도 나쁘지 않는 모험이지싶다. ^^

 

 

Posted by kewell

우연찮게 보르헤스 저작들을 줄기차게 읽고 있다. 이게 장르가 뭔지 혹은 통틀어서 어렵다던지 하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보르헤스에 대해 궁금함을 비롯한 호기심을 감안해볼 때, 왠지 그의 저작들 몇 권은 꼭 읽어봐야 겠다라고 늘 생각해왔으니까.. 그런데 읽다가보니 참으로 쉽지 않은 수준인건 알겠다. 포스트 모던, 구조주의와 해체주의, 상징주의의 문학적 효시라고 불리는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보르헤스의 이런 탐구는 어디서 유래했던 걸까라고...곰곰히 생각해보자면 사실주의에서 벗어나 '환상문학'으로 시선을 돌린 시점이 아닐까싶기도 하고..아무튼 이런 보르헤스의 스타일은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온다. <픽션>'틀뢴, 우크바르, 오프비스 테르티우스' 내용들을 읽다보니 프레임은 환상문학의 구조를 그리고 내용은 굉장히 모호한 철학사상이 유입되어진듯한 느낌이다. 나야 뭐 이해력도 그렇고 지식도 야트막한 수준이다보니 우크바르의 등장부분과 '행성만들기'에 대한 비밀조직따위에나 천착하겠지만, 그래도 어떤가..보르헤스가 어떤 내용으로 어렵게 이야기하는지는 대충 짐작이 가니 그 정도면 만족이다. (수준높은 묘사들은 좀더 골몰히 생각좀 해봐야 겠다.) 

 

그리고 언급된 '바벨의 도서관'의 29권 정도되는 환상문학도 덤으로 차근차근 읽게되고, 나름 괜찮치 않나싶다. 재미로만 볼수도 있겠으나 어차피 현실이란 또 다른 형태의 환상일수도 있을테니..<픽션들>, 그리고 <알레프>를 읽으면서 중간중간 바벨의 도서관 컬렉션을 꼬박꼬박 읽어야겠다. 카프카의 환상문학도 미뤄두고 있었는데...갈비노도 있고...언젠가는 읽겠지싶다가도 유야무야 내버려두고 있었는데....때마침 보르헤스의 등장으로 머리의 요구사항이 늘어간다. 난해함은 별도의 문제지 싶다. 휴..

 

 

순서는 <픽션들>-<알레프>-<바벨의 도서관>-기타 저작들 이렇게 흘러갈 것 같다. 그나마 이 분께서 단편소설만 쓰신게 정말 다행이다 싶다. 이런 스타일로 장편 소설을 써주셨다면 난 머리에 쥐가 나서 기절하겠지아마....^^

Posted by kewell

책을 읽고 글을 남기는다는건 그렇게 거창한 이유나 의미가 있는건 아니다. 개인적으로 볼 때, 그냥 자기 수양적인 느낌으로 갈겨대는 편이다. 내용은 졸렬하고 유치하고 허황되거나 조잡스러울 가능성 또한 올라가기 마련이다. 쓰기로 밥벌어먹고 사는게 아닌이상 이런 감상기 및 리뷰 등등은 사실 이 책을 읽었단다 겹치지 말고 나중에라도 기억해라...라고 나자신에게 말하기 위해서란 뜻이다. 그런데 난 지금도 이렇게 글을 올리고 daum이나 mixsh에 다들 연결하는건 줄알고 위젯까지 달아놓았지만 이걸 서점에서 보고 포인트준다는 사실은 몰랐드랬다.

 

오호라...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내 블로그에 글을 써도 뭔가 혜택을 받는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감사한일이고 또 한편으론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고...무엇보다도 책살돈을 조금이나마 세이브 할 수있어서 기쁘다. 책으로 한달에 대략 못해도 3~4권. 많으면 7권을 넘어갈땐 내가 아무리 취미생활로 작정하고 돈을 모아도 감당하기 쉽지 않다..내 살림형편에는 더더욱...그래서 말인데 이거 많이 많이 선정되었으면 한다. 그래야 한권이라도 쉽게 건져볼 수 있지 않은가. 반디 & view 어워드는 매주 블로그들 중 다음뷰에 노출된 글들에서 선정하나보다. 반디앤루니스라....집에가다가 가끔 들리는 코엑스 서점이지싶다. (다른 지점도 있겠지만) 교보와 반디..두군데서만 책을 사긴하는데 이렇게 되면 나도 모르게 반디쪽으로 계속 가게 될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읽고 싶은 책은 점점 는다. ㅠ.ㅠ

 

Posted by kewell

커피번에 대한 지난 생각.

 

1. 갓 구웠을 때 먹어야 한다.

2. 시간이 지나면 제아무리 바삭한 표피도 나중엔 눅눅해진다.

3. 안이 촉촉하면 금상첨화다.

 

굽기는 의외로 쉽지 않다. 제대로 구우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나중에 대비밀 방출예정...^^

 

Posted by kewell
Vanilla Essay2013. 2. 22. 14:44


상상의 부스러기를 찾아헤매는 헨젤과 그레텔. 전시회를 가다.

 

 

 


난 선천적으로 소음을 견디지 못한다. 물론 '소음'이란건 상대적이긴하다. 시끄럽다고해도 누구말처럼 '의미'가 있다면 '스윙'이 있는것 처럼..뭔가 영향을 미칠 것 같은 소리라면 그건 더 이상 시끄러운 소리가 아닌거다. 굳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대중적'으로 알려진 장소에서 벌어지는 소란스러운 '화이트 노이즈'같은 걸 견딜 수 없다는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래서 말인데 클럽이나 나이트나 데스메탈이상의 록공연같은 곳에서 인내를 시험받을 때는 너무 괴롭다. 머리는 절로 떡이지고 피부는 끈적이고 편두통이 쏟아져들어오거나 목이 간질간질하면서 기침이 끝없이 이어진다. 분명 소음 알레르기겠지? 그렇다고 모든 장소에서 '여기 조용히 합시다' 라고 크게 어필할 수도 없는게 그런데가 도서관이 아닌이상 딱히 '조용히 해야만 하는 장소'는 아니지 않은가...그러다보면 그런 소리가 날만한 곳에는 잘안가게 되고, 결국 그쪽 문화와는 유대관계가 끊어진다.  역시 다시 생각해봐도 소소한 소근거림이 발밑에 채이고 바람은 선선하고 공간은 넉넉하고 빛은 풍부한 곳에 열렬함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동네에도 그런 카페가 몇개 있었다. 하나는 처음엔 굉장히 언더그라운드스럽고, '세계2차대전,  은밀히 활동하던 첩보활동을 하던 지하벙커'스러워 좋았는데 점차 시간이 갈수록 경영과 재정에 문제가 있었는지 맥주와 음식을 메뉴에 추가하면서 살벌한 전쟁터가 되버렸다. 여기저기서 수류탄이 터지고 탱크가 불을 뿜었다. 읽으려고 들고간 책은 사방에서 터지고 쏘아대는 수다들에 작살나서 바닥을 뒹굴고 이미 나는 쾌유불능의 전사자가 되어 돌아온 뒤..다시는 그 전쟁터로 가지 못했다. (풍문에 듣자니 그 베트남전 같은 그 살벌함이 여전히 게속되고 있다고 한다.) 왁자지껄한게 나쁜건 아니다. 정말 사람사는 냄새라는건 그런 곳에서 더 진하기 마련이니까.. 시장이나 극장같은 곳은 조용하기보단 좀 소란스러울 때 그 역할을 다하는 느낌인 것과 동일하다. 아무튼 그런 곳은 그런 곳의 역할을 다하면 되고, 일정부분 조용한 어떤 영역에 혼자 들어가서 뭔가를 생각하고 가늠하고 상상하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하루 느지막한 커피'처럼 댕길때가 있다는게 문제다. 그땐 정말 평상시 생각지도 못했던 네버랜드의 파편들이 랜덤으로 등장해주신다. 일부러라도 생각하기 어려운 아이디어들이 판치는데 허우적거려서 하나라도 붙잡고 메모라도 해야 할 판이다. 그리고 그런 아이디어는 '소란스러운데서' 잘 안떠오른다. 난 그게 문제다.


테스트해봤는데 평일, 오전..조용한 전시회장을 대중교통을 타고 가서 발품을 팔면서 하나둘씩 거닐면서 구경할 때, 이 효용력이 좀 세다. 마치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 몇시간 앞두고 레드불이라도 퍼붓고 사물이 뚜렷해진다면서 기뻐하는 어리석음같은게 그 전시회장에서 샘솟는다. 얼마나 갈지 알수 없으니 지금 빨리 생각해두고 기록하고 해야 한다고 다짐하니 마음이 급해진다. 복도 소파에 앉아서 아무 필기도구나 꺼내고 아무책 앞장이나 뒷장 여백, 그것도 안되면 카페에서 쑤시듯 뭉터기로 집어온 냅킨티슈를 꺼내 거기에 박히도록 쓴다. 날아가지 못하게...그 생각이 무사히 안착할 수 있도록...반복적으로 비스한 경험을 하다보니 전시회의 소중함이 남다르다. 솔직히 말해서 전시회 테마도 관심이 없다곤 못하겠는데, 난 전시회를 가는 과정과 거닐면서 생각하는 내 머리속에 더 목적이 있는 것 같다. 바쁠때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그런 생각들의 쉼터라고나 할까. 

 

내 공상은 다 전시회에서 집어오는 것 같다. 그렇게 보자면 인기있는 전시회는 별로다. 사람이 많이 몰리면 그 순간 그곳은 전시회라기보단 바자회가 된다. 바자회가 되든 전시회가 되든 전시회물품과 목록은 그대로겠지만 하나둘 사라져버린 여백이 안타깝다. 왜냐면 그 빈 여백에서 난 귀중한 상상의 부스러기를 묻혀오기 때문이다. 부스러기가 없는 전시회는 죽은 전시회란 뜻...난 오늘도 부스러기가 많이 떨어져 있을 것만 같은 전시회를 뒤진다. 마치 헨젤과 그레텔처럼 오래된 숲속에서 뭔가를 만날수도 있다는 두근거림을 안고서..전시회 숲속을 거닌다.

 

Posted by kewell
Vanilla Essay2013. 2. 21. 20:46

어느날 Espresso 한잔을 옆에 놓고 몇개의 책을 고르던 중 아들이 손에 뭔가를 들고와서 말한다. "이렇게 '맛없는 커피를  이길만한 소스는 역시 이것보다 좋은게 없다고 생각해~ " 라면서 Tabasco를 신속하게 3번 흔들어 뿌려놓았다. 에스프레소에 타바스코라...역시 통념적으로 보면 '이건 이제 커피가 아닌 셈이다' 아들을 혼내건 말건 이렇게 해서 창조된 이 음료를 두고 뭐라 불러야할 지는 부차적인것이고 아들의 행위에 대해서 그럴듯한 용기와 의도하지 않았던 상황에 대한 설득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타바스코 뿌려진 에스프레소에 대한 변명을 아들로부터 들을 권리도 있는 것이고...어찌됐던 친구는 나에게 이런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난 아마 아들을 꾸짖었을 거고..나중에 그는 아빠가 통념에 갇혀서 유머따위는 잊고 사는 고리타분한 아빠였다고 말할거라고 했다. 그게 싫다는 뜻이다. 그깟 에스프레소에 타바스코 몇방울 흘린것에 대해 화좀 냈다고 아들이 그렇게까지 뭐라고 할리가 있겠나....


그런데도 친구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아들에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하는 부모된 마음같은게 사실 두렵다고 한다. 음..이렇게 말하면 진지하게 받아줘야겠지..잠시 같이 그의 심정에 동기해볼 요량으로 고개를 같이 숙여 고민하는 척좀 해봤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것 몇가지.  결국 영향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야..그러면 그런줄 알아' 류의 비슷한 강압성. 무대포의 어른 노릇이라고나 할까.이런 것도 영향을 끼치고 싶은 부모의 본능이다.  결국 아들이나 딸이나 내 영향력아래에서 한동안 찍소리못하고 순응하길 원하는 게다. "조금만 더 커봐라. 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할거야. 이 말도안되는 무식한 환경은 정말 어이가 없어"...시나리오는 이렇게 흘러간다. 영향력에 대한 태도는 사실 이런 류의 에피소드에만 해당되는건 아니다. Facebook도 그렇고 Twitter도 그렇고 다 의사표시와 댓글도 다 표출이고 영향력행사다. 유사 적극성 이면에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출하고 그걸 인정받고 싶은 '영향력'에 대한 부분이 있다고 믿는다.


알렉스 퍼거슨경은 이를 두고 '평생에 쓸데없는 짓이 트위터질'이라고 폄하했지만, 사실 그게 틀린말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굳이 뭔가 영향력을 그렇게 똥싸듯이 싸질러대면서 토막토막 간판 내건다고 뭐 달라지는것도 없다. 그저 지루하고 또 지루하고 따분할 따름이다. 본인은 의미를 덤뿍맏아서 그럴듯하고 진지하게 써내려간 페이스북 토막글을 보고 있노라면..이거야 말로 감정 쓰레기라는 생각이다.아마 그걸 두고 말한 거겠지..퍼거슨 할배는....아마 그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심리전을 펼치기 보단 더 실용적이었을 거다.  예를 들면 다음주 벌어질 맨시티와의 일전에 대항할 포메이션과 선수들의 컨디션...'맨시티는 시끄러운 이웃일뿐 우리의 적수가 아니다' 라고 트위터 한줄 쓰면 속이야 시원하겠지만 그건 퍼거슨 스타일이 아니다. 그게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고 믿을테니까.  영향력이라면 '헤어드라이기가 제격이지' 라고 조용히 읇조릴 스타일이라면 모를까. ..


이야기가 겻가지로 샜지만 통념에 기반한 교정은 가끔 창의성과 의외성을 죽인다는 그런 느낌이 불현듯 떠오른다...가끔가다가 세상속에서 아주 지루해진 어른들을 볼 때면 그게 옳다고 믿는 자기만의 범주안에서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은 채 굳어가는 다비드 상같다는 느낌이 든다. 멋지지만 절대 변하지 않는..그래서 절대 변하지 않는 자신이 언제나 그럴듯하다고 생각하고,  은근슬쩍 시대에 뒤쳐지기는 싫어서 변해보려고 애쓰지만 몸도 피곤하고 머리도 고단하고 무엇보다 머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이 싫어진다. 동상은 그렇게 때가 끼어가고 푸르스름하게 변해갈거다. 그러다가 아무도 그걸 우러러 보지 않는 시절이 온다. 바야흐로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어른'이 되는 거다. 


친구랑 이야기했던 어른의 영향력이란 이런 것일라고.... 친구도 나도 에스프레소에 타바스코 뿌린 걸두고 '한번즘 이건 어떤맛일까'라고 웃으면 맛좀 보고 '이건 정말 구리다. 다음부턴 다른 소스를 연구해봐라' 라고 말할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었으면 한다고 킬킬거렸다. 그게 쉬울리가 있나. 나도 어려서부터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폭압적이고 강압적인 얼차려를 랜덤으로 맞아댔는데 그 DNA가 없을리가..그래도 말이지..가끔 조용히 그 DNA에 저항하는 항체같은게 후천적으로 생겼으면 좋겠다고 상상해본다. 그래야 좀 세대도 바뀌고 ..좀 재밌어지고 그럴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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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쟁겨놓았던 책들이 약 40% 정도 줄었다. 다 읽어서 그런 것이겠지만 이즈음 되면 서서히 앞으로 읽을 책들 골라놓는게 취미라면 취미..음...들락날락거리다가 다시 몇권의 책들을 골라놓았다.

 

1. 뉴욕의 책방 / 최한샘 / 플레이 그라운드

2. 라이프 트렌드 2013 / 김용섭 / 부키.

3. 더 나은 미래는 쉽게 오지 않는다 / 요르겐 랜더스 / 생각연구소.

4. 스파이스 / 잭터너

5. 바나나 /댄 쾨펠 / 이마고

6. 라디오 헤드로 철학하기 / 브랜든 포브스 / 한빛 비즈.

7. 노동의 배신 / 바버라 에런라 / 부키.

8. 당신은 전략가 입니까 / 신시아 A. 몽고.

9. 카페에서 책 읽기 / 뚜루 / 나무 발전소.

10.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 / 팀버튼 / 새터.

11. 일년동안의 과부 / 존어빙 / 사피엔스 21.

12. 중력의 무지개 / 토마스 핀천 /새물결.

 

    

 

 

 

 

대충 기웃거리면서 살짝살짝 읽어보고 고른 목록이다. 이전 목록들에서 무겁고 고전스러운 문학들을 주로 골랐었는데 이번엔 약간 가볍게 선택. 특히 '카페에서 책읽기' 같은 건 책이라기보단 그림책, 물론 '굴소년'도 매한가지다. '뉴욕의 책방'도 읽는데는 거의 힘이 들지 않는 책이다. 가장 읽고 싶은 책은 역시 핀천의 '중력의 무지개' 책값도 무려 9만원을 넘어가주신다. 이거 금테두리라도 둘렀나 왜 이러는건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읽고 싶다는.... 그리고 '일년동안의 과부'는 워낙 어빙을 좋아해서 꼭 읽으리라 오래전 부터 다짐했던 책. 그리고 흥미진진할 것 같은 책은 '노동의 배신' 그리고 '라디오 헤드로 철학하기' '스파이스' '더 나은 미래는 쉽게 오지 않는다' 이 정도..마지막으로 그냥 한번 어떤건가 읽어보려는건 '당신은 전략가 입니까' 이다. 이거 다 구입하는게 쉽지는 않겠지만 어찌됐든 기본적으로는 목록정도는 한달에 한번씩 업데이트 해줘야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서 차근차근 읽다보면 뭐 어떻게든 목표에 도달할 수 있지 않나하는 막연하고도 무식한 생각을 해본다.

 

자고로 책읽기에는 멍때리면서 읽어주는게 나에겐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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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BOOK/소설2013. 2. 21. 16:00

<달려라, 토끼>(Rabbit, run) - 존업다이크 (John. Updike)

 

 

 

2010년 즈음으로 기억하는데, 토끼해를 맞이해서 컬럼을 수놓던 몇군데의 매스컴에서 '토끼' 연관성을 찾아 헤맨끝에 끄적여 놓은 소스제공으로도 '달려라 토끼'가 몫을 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토끼 해와 달려라 토끼가 뭔 관련이 있다고..굳이 연상도 안되는걸 강제로 엮으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 쓸게 하도 없어서 기어코 '토끼'자가 들어가는 문학작품이라도 인용해야 겠다라고 생각하셨나보다.) 아무튼 토끼라는 뉘앙스에는 아무래도 '동화적' 색채감이 깔려있다보니 분명히 모르고 접하는 <달려라 토끼>에는 불행을 달고 사는 주인공이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역경을 딛고 희망찬 미래를 바라보면서 달려나간다라는 식으로 결말이 마무리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니까 토끼해에 대한 의미를 떠올릴때 달려라 토끼까지 끌어들이는 것 아닌가. 얼마나 거칠고 처참하고 암울한지도 모르면서...'달려라'라는 말은 대체로 '파이팅' '힘내'라는 의미를 품고 있으니까.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에세이들과 그의 작품들 귀퉁이에 업다이크의 책을 들고 어디론가 가서 읽어야만 하는 계절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수시로 써놓은 적이 있다. (1Q84의 신포니에타(야나체크) 한번 인용했다고 음반가게에서 갑자기 돌풍일으키는 것과 유사하게 업다이크 책도 찾는 사람들이 많았으리라. 최근 정리 발매된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에서 1968년의 봄을 업다이크를 읽기 좋은 계절이라고 언급하였다. 이외에도 업다이크는 그의 작품에서 수시로 등장한다.) 적어도 국내에서 업다이크 저작들이 90년대에 하루키의 인용에 의해서 슬쩍슬쩍 고개를 내민건 사실이다. '상실'과 '방황'을 무슨 장신구마냥 달고 고뇌했던  91학번 세대는 절판의 저세상으로 가버린 문학작품이라 할지라도 묘지라도 파헤쳐서 '업다이크 책들을 꺼낼 마음가짐들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하루키에 동조했었으니까. 감동먹은 감수성의 힘이란 그런 것 아닌가. 유행을 달리는 저자들의 유래와 정체성에 대한 탐구. 모든 출처에 대해 조사해보고 싶은 충동, 그러다보면 특유의 감수성이 어디로 부터 유래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만날 것만 같은 기대감. 그리고 업다이크의 대표작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저기...<달려라 토끼> 있나요? " 라면서...


앞서 언급한대로 미국 영미문학의 상징적으로 인용되는 <호밀밭의 파수꾼>, <위대한 캐츠비>에 비하면 <달려라 토끼>는 도대체 언급은 되는데 어디서도 구하기 힘든 책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절판의 회오리가 '토끼'를 오즈의 나라로 데려가버리고 난 후..잠시동안 업다이크는 '인용의 기호'로만 이미지화 되어 숨쉬고 있다가  2011년 문학동네에서 정영목씨의 번역으로 재등장했다. 말로만 듣던 <달려라 토끼>라니..이것이야말로 오래 가뭄 끝, 단비와도 같은 것이지 않나. '이야 이제 달려라 토끼를 읽을 수 있겠어. 그것도 제대로 된 번역으로..'라고 쾌재를 부르던 문학매니아들을 비롯해서 작가 지망생들의 기쁜 얼굴들하며...그렇게 보자면 이 <달려라 토끼>에 걸린 타이틀이 자못 궁금해진다. 도대체 어떤 소설이길래...업다이크의 대표작이 된 것일까라든지, 무슨 내용이었기에 4부작까지 이어지면서 업다이크의 명성을 드높여 주었는지 등의 궁금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달려라 토끼>의 내용은 비 온 다음날 말끔하게 개인 하늘에 살짝 그려놓은 수채화같은 투명함과 산뜻함과는 거리가 멀다. 굳이 비유하자면 덕지덕지 발라진 유화풍의 그림인데다가 알수없는 붓자국, 흘러내리고 번진 그리고 닳다못해 찢어져버린 캔버스쪽에 가깝다. 내용은 거칠고, 폭압적이며 뼈대는 일탈과 방황, 그리고 기어코 독자들의 마음을 화석처럼 차갑게 만들고 난 다음 , 심해의 깊은 곳으로 던져져 무겁게 내려앉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주인공 해리 앵스트롬은 세일즈를 하면서 사는 중산층 20대다.  알콜과 TV중독에 빠진 임신한 부인, 나아지지 않는 생활, 그리고 과거의 촉망받았던 농구선수로서의 자존심등이 한꺼번에 회의감으로 몰려와 무단가출, 그리고 방황하다가 아무 남자하고 자는 '루스'를 만나 외도하고, 부인 제니스는 어떻게 살든 나몰라라로 일관하다가 동네 목사와 주위의 권유에 따라 (출산일이 다가온 부인때문에 어쩔수 없이..) 다시 부인에게 돌아왔다가..다시 반복되는 따분한 일상과 거절된 섹스로 인해 다시 또 가출...(이 부근에 다다르면 래빗에 대한 독자들의 불만이 최고조로 폭등한다.) 여기에 제니스는 딸 레베카를 실수로 익사시키고, 현실의 암울함을 견디다 못해 다시 가출해서 옛연인 루스에게 찾아가지만 거기서도 거절당한다는 뭐 아주 읽다보면 한심하고 미칠것 같은 증오가 일어나는 그런 내용으로 이뤄져있다.

 


페미니스트들이 업다이크를 여성혐오론자아니냐고 힐난했다고 하는데 충분히 이해간다. 등장하는 여인에 대한 몰인정하고도 무책임한 주인공 래빗(해리 앵스트롬의 별명)의 사고나 행동은 충분히 지탄받을만하다못해 '차라리 결혼이나 하지 않았으면'이라는 짜증까지 불러일으키고,  누가 어떻게 되든 현재 자신이 그렇게 느끼는데로 충동적이고 이기적이고 상대방은 생각지못하는 단세포같은 인물이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의 코치로 등장하는 토세로도 비슷하긴 매일반.) 그런데도 미국의 문학계는 이 책의 모든 상황이 다분히 '실존'적이고 중산층의 삶을 대변해주고 있다고하는 평을 걸어주었다. 이 이야기는 요약해서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일상적인 이야기'라는 것이다. 쳇바퀴돌듯 이어지는 무기력하고 나아지지 않는 생활, 옴짝달싹못하는 현실적인 압박, 꿈과 유망함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려서 도대체 내일은 뭘 하면서 살아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 그런 시절이 한동안 지속될 때, <달려라, 토끼>가 그것들을 설명해주고 대변해주고 뭐 그런단 의미아닐까.. 이런 암울한 삶속에서 미국 중산층의 평범한 서민 래빗에게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내면에서는 어떤 갈등과 절망과 암울함들이 스며드는지 아슬아슬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이런 일탈과 방황이 현실세계에서 일어난 버린 래빗으로서는 어떡하다가 이렇게 된 것인지 스스로도 납득하기 힘들어한다.


' 래빗은 진실을 느낀다. 그의 삶을 떠난 것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것. 아무리 찾아 헤매도 되찾아올수 없다는 것. 아무리 날아가도 거기에는 이를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여기에 있었다. 도시밑에 이 냄새와 이 목소리들안에, 영원히 그의 뒤에. 우리가 자연에 몸값을 내면 , 자연을 위해 아이들을 만들어내면 충만함은 끝이 난다. 그러면 자연은 우리와 관계를 끝낸다. ' (322p)


개인적으로 느낀 것이지만 <달려라 토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완벽한 '행복한 인물'들이 없다. 최악이 해리 앵스트롬이라면, 남편에게 의지하고 삶의 무기력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부인 제니스, 딸의 불행을 보면서 애초부터 결혼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스프링어 부인, 아들의 일탈이 '제니스'의 탓이자 스프링어 가문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앵스트롬 부인. 기독교 교인의 문제는 다 자기문제라고 생각하는 동네 목사 에클스. 교인들을 지나치게 돌보느라 가족들을 돌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에클스 부인. 아무렇게나 몸을 굴리다가 드디어 제대로된 온전한 남자를 만났다고 착각한 루스, 래빗을 오랜시간 코치하며 인생을 인도했으나 자기자신과 함께 타락시켜버린 토세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대개 이런 판단을 내릴 것 같다. '이런게 진짜 인생이다' 라고..완벽하게 100% 행복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불행도 같이 가는 것이다라고..그래서 읽는내내 굉장히 힘들다. 부딪히고 넘어지고 이 책장을 넘기면 이보다 더 암울하게 전개될 수 없겠다싶다가도 더 최악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말미에서는 범람하는 암울함을 견디기 어렵게 된다. (베키에 대한 래빗은 절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래빗은 이 모든 절망에 대한 회피를 달리는 것으로 갈음하려고 한다. 아마 '달려라' 라고 하는 부분은 래빗의 암울함을 보는 많은 이들이 내심 관조적으로 내뱉는 탄식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나마 달려야 하지 않겠나 래빗..뭐 이런...그리고 기어코 래빗은 이런 상황을 '상대편이 그가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비두명을 붙이는 바람에 어느쪽으로 돌든 둘중 한명과 부딪히게 되어 할 수있는 일이라고는 패스하는 밖에 없던 때와 비슷하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패스밖에 할게 없다라...인생에서 주도적으로 뭔가를 결정할 수 없다는 그런 의미리라 생각되지만 많은 독자로서는 인정하기 힘들 것이다. 거의 용서보다는 증오를 래빗에게 돌릴테니, 자초한 일이었다고 그때 래빗이 도망치지 말았어야 했다고 혀를 끌끌 차지나 않을까. 그래서 토세로의 마지막 말이 의미심장하다.


" 옳으냐 그르냐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게 아니야. 우리. 우리가 만드는거야. 불행을 막기위해. 변함없이. 해리 변함없이............. 불행은 그것을 따르지 않는데서 나와. 우리 자신의 불행은 아니지. 처음에는 우리 자신의 불행이 아닌경우가 많아. 그런데 너도 너 자신의 인생에서 그러한 예를 하나 본 거야 " (397p)


래빗의 이야기가 1부로 끝나지 않고 4부까지 이어져서 그나마 다행이다. 제니스도 그렇게 살지 않았어야 했고, 루스도 불쌍하긴 매일반이며 토세로도 안타깝긴 마찬가지다. 에클스도 적당히 가족을 돌봐야하고 무엇보다 래빗도 최소한 잘살아보면서 고민따위를 하는 지지리도 궁상인 중산층 비스무리한 삶에서 벗어도 나야 한다. 때로는 이런 삶이 우리 곁에 있는 듯하지만 다들 마음속으로 생각하길...'난 이정도는 아니야'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난 이정도로 무책임하지는 않아라고 자위하면서 하지만 삶이 어떻게 그렇게 뜻대로 되겠는가. 그 때 래빗이 갑자기 차를 몰고 430번을 타고 포토맥을 넘어가는 그런 순간이 오지말란 법이 어디있는가. 마음속으로는 래빗보다 더 많은 가출과 더 많은 탈출을 꿈꾸며 사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다. 마치 상상속으로만 펼쳐보았던 대탈출의 현실화가 비극적이고 또 처참하게 전개되었지만 마음속으로 '불쌍한 래빗'이라고 읇조릴만할때는 다들 결국 비슷한 것이다. 래빗이나 나나...그리고 이웃들이나...


cf) 그리고 업다이크의 신경증에 걸릴것 같은 현재형 묘사실력때문에 머리가 멍멍하다. 이런 묘사는 어디서도 본 적없는데 때로는 굉장히 천천히 그리고 음미하듯 읽었어야 하는게 아닐까라는 자기반성적인 느낌이 들곤한다. 그런데 이런 암울함을 곱씹으면서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진 않는다. 공부하듯 답습하듯 문장과 문체를 연구한다고해도 <달려라 토끼>를 여러번 읽는건 지치는일이다.

 


달려라 토끼

저자
존 업다이크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1-08-2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물질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20세기 미국문학의 아버...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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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BOOK/소설2013. 2. 19. 22:00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1859)/찰스디킨스 Charles Dickens
펭귄 클래식 코리아.

 

 

<다크나이트>시리즈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동생 조나단 놀란'엔터테인먼트 위클리'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힌바 있다. "프리츠 랑의 <메트로 폴리스>(1927), 그리고 찰스 디킨즈의 <두도시 이야기>(1859)로 부터 <다크나이트 라이즈>가 영감을 받았다"말이다. 그래서 궁금했던 것 같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말미에서 느꼈던 거대한 대서사의 위력앞에서 감동먹고 도대체 이런 건 어디서 영감을 받는거지라고 혼자 되뇌이면서..그런데 막상 놀란의 입에서 '두도시 이야기'가 나오다니 이거 한번쯤 읽어볼만한 소설이겠거니하는 막연한 기대 같은게 무럭무럭 솟아나는게 아닌가. 


디킨즈의 <두도시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한번 정도는 들어본 적이 있는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근자에 이르러서 대서사 로맨스로 엮여진 뮤지컬의 상징적인 작품으로도 장기간 흥행에 일조했고 (보이스 오브 키즈의 '윤시영'도 두도시 이야기 출신이다.) 구조상 뮤지컬같은 무대에서 펼쳐질 정도의 드라마틱한 전개를 상상해본다면 소설 원작을 읽어보지 않을 수 없게된다. 막상 이 소설은 의외로 잘 읽히는 편이다. 애초부터 디킨즈가 장편소설 단행본으로 후다닥 써서 선보인게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겠고 (연재형태로 소설이 쓰여졌음) 마치 씬 전개처럼 1막, 2막 끝나듯 절단되어있는 챕터구조도 이런 읽기에 꽤나 도움을 준다. 부담이 없고 기억과 연결을 용이하게 해주며 무엇보다 고전특유의 맺고 끝내는 모양새가 잘 정리된 순서도를 보는 것처럼 치밀하다. 모호한 구석은 없고 모든 묘사들과 전개는 이야기에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어서 요즘 소설같이 시간의 뒤틀림과 반전의 카타르시스를 위해서 수없이 편집되다가 유야무야 아무런 해결도 못하고 사라져버리는 정체모를 미장센들에 비하면 정말 완성도 뛰어나다고 말할수 밖에 없다.


이야기는 알렉상드르 마네트 박사가 오랫동안 감금되어있다가 '자르비스 로리', 그리고 딸 루시에 의해서 석방되는 지점부터 시작된다. 왜 마네트 박사가 감옥에 갇혀있었는지, 그리고 암울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 '구두를 수선'하는 자기분열에 시달려야 했는지는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서서히 드러난다. 이야기 구조는 간편하게 보자면 과거의 은밀한 어떤 사건으로 인해서 현재 진행되는 모든 사건들이 영향을 받게되는 형태다. 물론 근저에는 '음모, 배신, 그리고 복수'라는 격앙된 스토리 구조를 따라가면서 정통적인 복수시나리오, 그리고 역사적 배경에 휘둘리는 주인공의 애처로운 탄식. 이런 것들로 부터 자유롭진 못하다. 게다가 이 소설의 제목처럼 런던과 파리를 오가면서 격동기를 보내는 이 배경에는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프랑스 혁명'이라는 거대 함의가 녹아들어가 있기때문에 신분과 평등에 대한 가치관을 소설속에 투영하게 되면 굉장히 부담스러워질수도 있다.


대충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프랑스의 혁명의 실질적인 피고 '왕정과 귀족들' 그리고 형을 내리는 검찰에 해당하는 '평민'들의 입장에서 어쩔수 없는 귀족신분의 주인공과 평민 신분의 또 다른 주인공을 대비시킨다면 '두도시 이야기'의 구조적 의미와 명확하게 일치될 수도 있겠다고...대충은 그렇게 짐작하기 쉽다. 두도시와 역사적 배경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서사적이면서도 격동기에 휘말린 운명적이고도 딱한 로맨스를 말하기에도 십상이니까. 그런데 두도시 이야기가 이렇게 단선적이지도 그리고 명료하지도 못했던 이유는 복합적으로 엮여있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귀족으로부터 폭압적인 탄압을 받았던 에브레몽드가의 하인들, 그리고 처참하게 죽어간 가족을 바라보는 생존자. 훗날 입막음을 위해서 희생된 마네트 박사, 그리고 박사의 딸이 사랑하게 된 사람은 에브레몽드의 후계자. 자...이 정도면 막장 국내 아침드라마를 방불케하는 구조로 전개된다. 고전도 막장드라마의 패턴을 가지고 있는거다. 여기에 배다른 형재나 자매, 그리고 기억상실이 끼어들면 최강이지만 디킨즈도 거기까지는 오버라고 생각했는지 가지 않았다.

 

다만 이 정도의 이야기에서도 충분히 몰입적이고도 의미있는 이야기들을 전개시켜나간다. 특히나 프랑스 혁명의 시점을 논할때는 그 의미가 가지는 '순기능적이고도 사회기여적인 발전적 태도'의 관점에서 긍정적 이야기를 꾸려나가지 않았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야기는 드라마적이지만 배경도 그 한요소로 충분히 힘을 발휘하니까 그 묘한 배경의 힘을 빌어서 이야기에 파워를 실어다 주는 점은 굉장히 거장답다고나 할까. 먼저 혁명의 그 시기를 '공포적'으로 묘사했다. 그러니까 광기가 스며드는 파리의 전조를 굉장히 디테일하면서 긴장감 있게 부각시키다가 갑자기 폭팔하듯이 몰아쳐버렸다. 그 와중에 대중들이 들고 일어나는 '정의'에 대한 '정의'를 폭압적이고도 불평등했던 귀족들 못지않게 비이성적으로 달려간다고 본 것 같다. 그 대표적 인물은 역시 드파르주. 드파르주 부인라고 해야 맞겠지만 이 부부의 '귀족에 대한 복수극'은 이성의 범주를 넘어섰다. 특히나 드파르쥬 부인의 회고에는 증오와 파멸이라고 하는 광폭한 결말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드파르주 부인은 과거 마네트 박사의 학대를 빌미로 귀족에 대한 최종 복수극을 이어가려고 한다. 마네트 박사는 이미 자신은 귀족을 용서했음에도 불구하고 (딸 루시가 사랑했던 찰스 다네이에 대한 구명운동을 보면 아마도 독자 대부분이 이런 전개를 예상했으리라) 그런데도 정작 드파르주 부인은 복수극을 멈출 기미를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마네트 박사가 감옥에서 절망을 느끼며 기록했던 '귀족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과거 편린을 기초로 찰스 다네이를 기요틴 앞으로 보내게 된다. 아마 후반부에서 펼쳐지는 이 폭력적인 광기의 흐름들에서 독자들은 가슴떨리는 긴장감 ,그리고 드파르주 부인에 대한 반감과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세상은 사랑과 용서를 말할때 존중을 드러내니까 드파르주가 부인에게 이제 그만 해도 되지 않냐고 했을때 드파르주 부인이 했던 ' 바람과 불한테 물어보라'는 냉정한 어조는 그래서 악마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 복수와 증징에는 시간이 필요해요. 번개가 만들어지는데 걸리는 시간이 있죠 " 라고 말했던 드파르주의 증오는 점차 그 이유를 알아가게 되었을 때, 광기로만 치부할 수 없음을 체감하게 된다. 

 

사실 이 소설에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하는 치밀한 복수전개 내지는 증오의 표출과는 또 다른 테마가 있다. 이름하여 사랑과 희생. 이 소설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또 하나의 인물 (마치 주인공이 루시와 찰스 다네이라고 착각했던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듯한) 바로 '시드니 카턴'이 그다. 카턴은 파리에 비해 훨씬 '진보적'이었던 런던에서 그저 그런 스트라이버 밑에서 일했던 변호사. 그는 다네이의 석방을 위해서 발로 뛰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순정을 루시 마네트에게 바쳤다. 그런 그가 마지막에 '구세주'처럼 등장해서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고전의 신파극이라고 아무리 치부할지라도 엄청난 감동을 안겨준다. 좀더 현대적인 색채라고 한다면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을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면서 끝까지 모든 것을 주려고하는 사랑의 상징적인 인물로 화했을 것이다. 그래서 카턴의 희생을 보면서 다들 안타까워하고 루시와 다네이에 대한 안도감을 민망해하는 것이 아닐까.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이런 두도시의 후덜덜한 서사를 옮겨왔다고 했다. 아마 '샤를 에브레몽드/찰스 다네이'는 브루스 웨인이자 배트맨으로, 시드니 카턴은 블레이크, (여기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다네이의 귀족신분이자 인격과 무관한 어떤 사회적 지탄에 대한 희생으로 볼때 브루스웨인이라고 생각하며, 어둠의 기사역할을 이어받으면서 다시 자신이 대신 그 짐을 짊어지려는 블레이크가 카턴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 그리고 미스 프로스는 캣우먼, 드파르주는 베인, 드파르주 부인은 탈리아 알굴 정도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그 정도라면 히어로물에 심어둔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을 주기 충분하다. 현대판 두도시 이야기가 다크나이트 라이즈라면 원작 두도시 이야기가 가진 엄청난 위력을 실감할 수 있지 않을까. 세월을 뛰어넘는 듯한 이 세세하고 절절한 묘사, 그리고 눈물 날 것만 같은 마지막 장면들, 그리고 하나하나 심정적으로 동감하지 않을 수 없는 주변인물의 사정들...왜 두도시 이야기가 명작이자 고전중에서도 고전이라고 일컫는지는 한번이라도 이 책을 읽어봐야만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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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