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BOOK/소설2013. 2. 19. 22:00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1859)/찰스디킨스 Charles Dickens
펭귄 클래식 코리아.

 

 

<다크나이트>시리즈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동생 조나단 놀란'엔터테인먼트 위클리'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힌바 있다. "프리츠 랑의 <메트로 폴리스>(1927), 그리고 찰스 디킨즈의 <두도시 이야기>(1859)로 부터 <다크나이트 라이즈>가 영감을 받았다"말이다. 그래서 궁금했던 것 같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말미에서 느꼈던 거대한 대서사의 위력앞에서 감동먹고 도대체 이런 건 어디서 영감을 받는거지라고 혼자 되뇌이면서..그런데 막상 놀란의 입에서 '두도시 이야기'가 나오다니 이거 한번쯤 읽어볼만한 소설이겠거니하는 막연한 기대 같은게 무럭무럭 솟아나는게 아닌가. 


디킨즈의 <두도시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한번 정도는 들어본 적이 있는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근자에 이르러서 대서사 로맨스로 엮여진 뮤지컬의 상징적인 작품으로도 장기간 흥행에 일조했고 (보이스 오브 키즈의 '윤시영'도 두도시 이야기 출신이다.) 구조상 뮤지컬같은 무대에서 펼쳐질 정도의 드라마틱한 전개를 상상해본다면 소설 원작을 읽어보지 않을 수 없게된다. 막상 이 소설은 의외로 잘 읽히는 편이다. 애초부터 디킨즈가 장편소설 단행본으로 후다닥 써서 선보인게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겠고 (연재형태로 소설이 쓰여졌음) 마치 씬 전개처럼 1막, 2막 끝나듯 절단되어있는 챕터구조도 이런 읽기에 꽤나 도움을 준다. 부담이 없고 기억과 연결을 용이하게 해주며 무엇보다 고전특유의 맺고 끝내는 모양새가 잘 정리된 순서도를 보는 것처럼 치밀하다. 모호한 구석은 없고 모든 묘사들과 전개는 이야기에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어서 요즘 소설같이 시간의 뒤틀림과 반전의 카타르시스를 위해서 수없이 편집되다가 유야무야 아무런 해결도 못하고 사라져버리는 정체모를 미장센들에 비하면 정말 완성도 뛰어나다고 말할수 밖에 없다.


이야기는 알렉상드르 마네트 박사가 오랫동안 감금되어있다가 '자르비스 로리', 그리고 딸 루시에 의해서 석방되는 지점부터 시작된다. 왜 마네트 박사가 감옥에 갇혀있었는지, 그리고 암울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 '구두를 수선'하는 자기분열에 시달려야 했는지는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서서히 드러난다. 이야기 구조는 간편하게 보자면 과거의 은밀한 어떤 사건으로 인해서 현재 진행되는 모든 사건들이 영향을 받게되는 형태다. 물론 근저에는 '음모, 배신, 그리고 복수'라는 격앙된 스토리 구조를 따라가면서 정통적인 복수시나리오, 그리고 역사적 배경에 휘둘리는 주인공의 애처로운 탄식. 이런 것들로 부터 자유롭진 못하다. 게다가 이 소설의 제목처럼 런던과 파리를 오가면서 격동기를 보내는 이 배경에는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프랑스 혁명'이라는 거대 함의가 녹아들어가 있기때문에 신분과 평등에 대한 가치관을 소설속에 투영하게 되면 굉장히 부담스러워질수도 있다.


대충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프랑스의 혁명의 실질적인 피고 '왕정과 귀족들' 그리고 형을 내리는 검찰에 해당하는 '평민'들의 입장에서 어쩔수 없는 귀족신분의 주인공과 평민 신분의 또 다른 주인공을 대비시킨다면 '두도시 이야기'의 구조적 의미와 명확하게 일치될 수도 있겠다고...대충은 그렇게 짐작하기 쉽다. 두도시와 역사적 배경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서사적이면서도 격동기에 휘말린 운명적이고도 딱한 로맨스를 말하기에도 십상이니까. 그런데 두도시 이야기가 이렇게 단선적이지도 그리고 명료하지도 못했던 이유는 복합적으로 엮여있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귀족으로부터 폭압적인 탄압을 받았던 에브레몽드가의 하인들, 그리고 처참하게 죽어간 가족을 바라보는 생존자. 훗날 입막음을 위해서 희생된 마네트 박사, 그리고 박사의 딸이 사랑하게 된 사람은 에브레몽드의 후계자. 자...이 정도면 막장 국내 아침드라마를 방불케하는 구조로 전개된다. 고전도 막장드라마의 패턴을 가지고 있는거다. 여기에 배다른 형재나 자매, 그리고 기억상실이 끼어들면 최강이지만 디킨즈도 거기까지는 오버라고 생각했는지 가지 않았다.

 

다만 이 정도의 이야기에서도 충분히 몰입적이고도 의미있는 이야기들을 전개시켜나간다. 특히나 프랑스 혁명의 시점을 논할때는 그 의미가 가지는 '순기능적이고도 사회기여적인 발전적 태도'의 관점에서 긍정적 이야기를 꾸려나가지 않았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야기는 드라마적이지만 배경도 그 한요소로 충분히 힘을 발휘하니까 그 묘한 배경의 힘을 빌어서 이야기에 파워를 실어다 주는 점은 굉장히 거장답다고나 할까. 먼저 혁명의 그 시기를 '공포적'으로 묘사했다. 그러니까 광기가 스며드는 파리의 전조를 굉장히 디테일하면서 긴장감 있게 부각시키다가 갑자기 폭팔하듯이 몰아쳐버렸다. 그 와중에 대중들이 들고 일어나는 '정의'에 대한 '정의'를 폭압적이고도 불평등했던 귀족들 못지않게 비이성적으로 달려간다고 본 것 같다. 그 대표적 인물은 역시 드파르주. 드파르주 부인라고 해야 맞겠지만 이 부부의 '귀족에 대한 복수극'은 이성의 범주를 넘어섰다. 특히나 드파르쥬 부인의 회고에는 증오와 파멸이라고 하는 광폭한 결말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드파르주 부인은 과거 마네트 박사의 학대를 빌미로 귀족에 대한 최종 복수극을 이어가려고 한다. 마네트 박사는 이미 자신은 귀족을 용서했음에도 불구하고 (딸 루시가 사랑했던 찰스 다네이에 대한 구명운동을 보면 아마도 독자 대부분이 이런 전개를 예상했으리라) 그런데도 정작 드파르주 부인은 복수극을 멈출 기미를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마네트 박사가 감옥에서 절망을 느끼며 기록했던 '귀족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과거 편린을 기초로 찰스 다네이를 기요틴 앞으로 보내게 된다. 아마 후반부에서 펼쳐지는 이 폭력적인 광기의 흐름들에서 독자들은 가슴떨리는 긴장감 ,그리고 드파르주 부인에 대한 반감과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세상은 사랑과 용서를 말할때 존중을 드러내니까 드파르주가 부인에게 이제 그만 해도 되지 않냐고 했을때 드파르주 부인이 했던 ' 바람과 불한테 물어보라'는 냉정한 어조는 그래서 악마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 복수와 증징에는 시간이 필요해요. 번개가 만들어지는데 걸리는 시간이 있죠 " 라고 말했던 드파르주의 증오는 점차 그 이유를 알아가게 되었을 때, 광기로만 치부할 수 없음을 체감하게 된다. 

 

사실 이 소설에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하는 치밀한 복수전개 내지는 증오의 표출과는 또 다른 테마가 있다. 이름하여 사랑과 희생. 이 소설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또 하나의 인물 (마치 주인공이 루시와 찰스 다네이라고 착각했던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듯한) 바로 '시드니 카턴'이 그다. 카턴은 파리에 비해 훨씬 '진보적'이었던 런던에서 그저 그런 스트라이버 밑에서 일했던 변호사. 그는 다네이의 석방을 위해서 발로 뛰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순정을 루시 마네트에게 바쳤다. 그런 그가 마지막에 '구세주'처럼 등장해서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고전의 신파극이라고 아무리 치부할지라도 엄청난 감동을 안겨준다. 좀더 현대적인 색채라고 한다면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을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면서 끝까지 모든 것을 주려고하는 사랑의 상징적인 인물로 화했을 것이다. 그래서 카턴의 희생을 보면서 다들 안타까워하고 루시와 다네이에 대한 안도감을 민망해하는 것이 아닐까.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이런 두도시의 후덜덜한 서사를 옮겨왔다고 했다. 아마 '샤를 에브레몽드/찰스 다네이'는 브루스 웨인이자 배트맨으로, 시드니 카턴은 블레이크, (여기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다네이의 귀족신분이자 인격과 무관한 어떤 사회적 지탄에 대한 희생으로 볼때 브루스웨인이라고 생각하며, 어둠의 기사역할을 이어받으면서 다시 자신이 대신 그 짐을 짊어지려는 블레이크가 카턴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 그리고 미스 프로스는 캣우먼, 드파르주는 베인, 드파르주 부인은 탈리아 알굴 정도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그 정도라면 히어로물에 심어둔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을 주기 충분하다. 현대판 두도시 이야기가 다크나이트 라이즈라면 원작 두도시 이야기가 가진 엄청난 위력을 실감할 수 있지 않을까. 세월을 뛰어넘는 듯한 이 세세하고 절절한 묘사, 그리고 눈물 날 것만 같은 마지막 장면들, 그리고 하나하나 심정적으로 동감하지 않을 수 없는 주변인물의 사정들...왜 두도시 이야기가 명작이자 고전중에서도 고전이라고 일컫는지는 한번이라도 이 책을 읽어봐야만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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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