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illa Essay2014. 7. 8. 11:38

책을 계속 해서 사재끼는건 별로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일정 금액의 수익은 정해져있고 소비는 제한적이며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모종의 룰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현실이며 그게 또 이성적이니까..자제하고 효율적으로 생각하며 아껴쓰고 적당해야 한다. 책을 사는 것도 자칫하면 과소비로 가는 길이 되기 십상이다. 끊임없이 출판되는 책들의 더미속에서 마음에 드는 몇 권의 책이 수십권의 책으로 변하는건 시간 문제다. 목록은 불어나고 자신도 모르게 하나둘씩 습관적으로 사들이다가 나중에서야 지나친 소비비율로 '책구매'가 자리잡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대개 책을 사는 것이 나쁘지 않고 투자의 성격이 강하므로 빚을 내서라도 사는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부류들이 있는데, 냉정히 생각해볼 때, 그 사람이 '그 책을 통해서' 누리려고 하는 쾌감과 즐거움의 정체, 결과적으로 얻게 되는 이익들을 따져본다면 무형의 책읽기에서 뭔가를 얻어내는 속도보다 책을 구매해서 스스로 난처한 지경에 빠지는 속도가 훨씬 빠를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지나친 독서욕구, 탐욕적인 허세, 지식에 대한 과한 탐구욕들이 괴이한 변명으로 위안이 되곤 한다. 책은 유익하니까 차라리 술마시고 먹는거 사먹고 그러는데 쓰는 돈보다 그래도 낫지 않을까라는 사고가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그러나 이건 한마디로 궤변에 가깝다. 


우리 어느 누구도 물을 먹지 않고 밥을 먹지 않고 책종이를 뜯어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책은 책일 뿐이며 밥은 밥일 뿐이다. 생계를 도외시하고 책을 구매하는 몇몇 지인들을 볼 때면 불편하다. 적당히 사서 적당히 누리고 적재된 책을 읽으며 버텨도 정서에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을 텐데..읽지도 않은 책들이 수십권인데도 계속해서 사댄다. 경제적 능력이 ..여력이 된다면 이 모든 과소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컬렉터와 같은 삶일 테니...피규어 수천종을 수집하는 매니아도 있는 마당에 책을 수천권 사댄다고 뭐가 문제가 되겠는가. 다만 그 사람이 책을 그렇게 구매할 능력이 못되는데 무리를 할 때 문제는 생긴다. 


자신의 형편을 돌아봐서 어느정도 제한선에 걸리면 책을 사대는 중독을 조절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사 놓은 책 부터 읽으시라..무조건 맘에 드는 새책들을 무작위로 사대지 말고..미적거리며 사두었던 미완의 이야기들을 소화하고 곱씹으며 책을 해치운다음 소소하게 사고 싶은 위시리스트를 꺼내고 거기서 현재 내 주머니에서 허락하는 한도내에서 새 책을 구입하는 걸 권장한다. 뭐 도박으로 집안이 망하나 책을 사서 가난해지나 가난해지는 건 매일 반 아닌가? 밥을 쫄쫄히 굶는데 사방에 쌓인 책을 보고 즐거워한다는 무슨 중국 고사성어같은 이야기를 떠올리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은 접어두고 현실에선 냉수 마치고 속을 차리는 편이 더 좋을 듯 싶다. 


그리고 돈이 없으면 무리하지 말고 빌려서 읽으면 된다.

국립 도서관은 폼으로 있는게 아닌데 ...발품을 팔고 가서 구민 회원증 만들고 한주당 3권씩 빌려서 읽으면 이것처럼 좋은 일이 어디있을까. 물론 내  책이 아닌지라 줄을 그을 수 없다지만, 그래도 읽을 수 있는 책이 손아귀에 있다는 건 그나마 다행인 일이다. 

Posted by kewell
Vanilla Essay2014. 7. 3. 11:44

김승옥(金承鈺)과 하루키(村上春樹), 그리고 장마비가 오는 날.


-<언어의 정원>-


대낮에도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후드득소리를 내면서 무거운 비의 진탕질이 길바닥에 시작되면 언제나 드는 생각, 조용한 조명아래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 뿐이다. 하늘은 이미 야외의 축복이 없다고 단언하듯 시꺼먼 커텐을 쳐버렸고 땅에는 페인트 튀기듯 물난리가 벌어지면 거의 모든게 성가셔 진다. 남은 건 집구석에 쳐박혀 두터운 이야기의 세계로 들어가는 출입구만을 노리고...구석에 오렌지가 터져서 번진듯한 스탠드를 그윽하게 배경삼고, 적절하고도 눅눅함이 깃든 책한권을 손에 든 채  한장 한창 넘길 때, 이 보다 더 가슴 두근거리는 일은 아마도 없을 거라고...그렇게 혼자 중얼거린다. 사실은 그럴 수가 없을 뿐이지 세상에는 스스로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계기들이 수없이 존재한다. 다들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며,  약간 시니컬하게 말하자면 용기가 없어서 책읽기로 어수선함을 감내하기 어려울 뿐이다. 왜냐면 책을 읽는 동안은 자기가 현실을 도외시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얼마전,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다시 읽었다. 더불어 <서울 1964 겨울>도, <서울의 달빛 0章>도 같이 읽어버린 건 부수적인 행운이었지 아마 . 어쨋든 '60년대의 문학적 성찰'이라는 타이틀로도 이 묘한 기분을 갈음하기는 어렵다. 예나 지금이나 시대적인 소나기가 문장과 글에 내리고 그때였기 때문에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았을까라는 추측들은 다 별로였다. 이게 어디 60년대에 쓴 글이란 말인가 아무리 봐도 2014년 여름이 시작될 무렵에 썼다고해도 하나도 이상할게 없었다. 군더더기도 없고 단호한듯 하면서도 심플하고 그저 단촐한 풍경들이 이어지고 옅은듯 깊은 듯 감정의 도랑을 패이며 지나간다.  모종의 글쓰기 기술이란게 있다면, 아마 이런 문장들이 신의 축복이라고 했던 이유가 너무나도 분명해지는 순간이다. 아 이 분은 어쩌자고 이렇게 글을 잘쓰셔가지고 후대의 문학지망생들에게 두근거리는 도전의식을 심어주셨던가. 근 50년이 지나버렸는데도 아직 기력이 다하지 않은 이 생기발랄함은 뱀파이어 같을 정도다. 무섭기도 하고....평범해보이지만 정작 해보려고 하면 흉내도 내기 어려운 어떤 것들이 되버렸다. 


이렇게 유사한 느낌을 하루키의 글에서도 받았는데 김승옥과 하루키가 왜 비슷하게 느껴지는 거지라며 한참을 생각했다. 둘은 시대적인 연배도 다를 뿐이고 장르적 유사성도 없는데다가 추구하는 세계도 다르다. 그런데도 같은 악보에 있는 프레이징 같은 느낌이다. 혹시 김승옥이 이 글들을 쓰고..하루키가 어느날 챈들러를 읽다가 우연히 <무진기행>을 읽고 그리고 <노르웨이의 숲>을 쓰고....뭐 그러면서 어느날 읽다보니 한국에도 인상적인 소설이 있었어요..김승옥 상이라고...단편들을 쓰셨죠. 업다이크도 좋지만 김승옥씨의 글도 좋았어요. 한번 읽어보세요.....아마 이렇게 추천사를 썼었어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이상하지도 않았을 것만 같다. 둘 사이에는 시간의 교량이 있어서 장마비가 내리는 날에 통로가 연결되고 그 다리위에서 오며가며 같은 감정을 느끼고 둘이 혹시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오호라 당신도 나와 비슷한 부류 구료 서로 인사나 하시죠 라고 악수도 하고 ....그러지나 않을까....



비가 상상을 너무 부채질 한다. 



Posted by kewell
Book Pantry2014. 7. 1. 10:18


1. 

<쿠스쿠스 크레페 라비올리>. 아...개브리엘 해밀턴의 후속작인가 싶었는데 그냥 <피와 뼈 그리고 버터>의 리뉴얼 판이었다. 사실 <피와 뼈>쪽이 더 책 커버는 감칠맛이 났었는데 <쿠스쿠스>쪽은 책도 무겁거니와 뭔가 취지와 핀트가 엇나간 느낌이다. 해밀턴식의 묘사는 적나라하고 직설적이어서 흥미롭게 읽을만하고 무엇보다 자기 이야기인지라 치열한 삶의 지글거림이 책밖으로 들릴듯한게 장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표지에서는 그런걸 느끼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차라리 빨간 스테이크에서 베어나온 듯한 선혈낭자한 이전 책표지가 더 그럴듯하지 않은가. 아무튼 책내용이야 변하게 없으니 여전히 재밌긴 하다. 나이젤 슬레이터<토스트>, 빌 버포트<앗, 뜨거워>도 다 비슷한 부류이긴한데 유독 <쿠스쿠스>쪽이 더 직접적인 이유는 주방이 좌절의 공간이자 노동의 공간인걸 인정하는 분위기 때문일거라고 문득 생각이 든다. <토스트>는 유년의 아름다웠떤 추억을 말하고 <앗뜨거워>는 저자의 탐구 정신쪽에 더 쏠려있고... 뭘 택하더라도 요리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겐 나쁘지 않은 기억일 될 듯싶다. 


2. 

무라카미 하루키의 80년대 키워드 에세이라고 불릴수 있는 <스크랩>을 스쳐지나가듯 읽었다. 마치 에스콰이어나 브루투스 잡지를 휙휙 넘기듯 주적주적 읽어내려갈만한 소담스러운 분량의 페이지 사이사이에서 알게 된 것들은, 그의 키워드가 완전히 외래적이라는 것 정도.. 애초에 그에게는 영미문학쪽의 향기가 늘 강해왔던 터라 새로울 것도 없긴 하지만 가끔가다가는 하루키가 토속적인 일본특유의 소설을 썼던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보곤 한다. 기껏해야 두부이야기나 도쿄의 번잡스러움이라든가 출판사와 둘러싼 일적인 에피소들 뿐인 에세이가 거의 다였던 것 같다. 사소하다고는 해도 커틀릿을 말하고 맥주이야기 정도만 들어도 그는 일본스럽지가 않다. 그게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3. 

움베르트 에코가 <푸코의 진자>에서 '상징이 어렵고 애매할수록 의미와 힘을 얻는다'라고 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이 말의 위력이 가끔 실감이 난다. 내용이 텅비어 있는 프레임만의 상징들을 보면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흥미진진하다고 느끼고 뭔가 있을 것 같고, 숨겨진 신비감이 회오리치는 것같은 아슬아슬함을 매번 느끼게 된다. 최근에 이탈로 칼비노의 책들을 읽으면서  유독 이런 느낌이 강했던 것 같은데 다른 한편으로는 알수없는 애매함때문에 짜증이 밀려오기도 한다. 이건 해석의 문제라기 보다는 태도의 문제일 듯도 싶긴하지만 어찌됐든 간에 읽을 때의 묘한 기분만큼은 설명할 길이 없는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서는 <하자르 사전>이 나온 것도 이런 애매함과 사전식의 광대함을 빌미로 독자들을 헷갈리게 하려고 한게 아닐까 싶기도 한다. 아무튼 구구절절한 쪽보다 의미와 내용을 감추고 타이틀만 있는 신비스러움이 끌릴 때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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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