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감탄하고 있다. 월간 윤종신의 감수성에 대해서... 


언제나 그렇듯이 윤종신표 음악이 정서적으로 잘 맞아서겠지.  혹자는 맨날 신파처럼 감성을 쥐어짜는 상투적인 음악이라고 평가하곤 하지만,  그 말이 이 어떻게 신빙성을 가지던 간에 나로선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편이다. 음악이란 어차피 음식과도 같은 것이어서 어떤 이에게는 정말 잘 맞는 풍미가 어떤 사람에게는 고역일 수도 있으니까..결국 음악이란 취향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양성의 관점에서 보면 '음악성'을 논하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스스로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가가 사실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게다가 윤종신은 비현실적인 프로젝트는 끈기로 해오고 있다. 그 노력만으로도 사실 음악을 소비하는 개인으로 고맙다고 해야 할 판이다. 매월마다 내 취향에 맞는 음악들이 1개씩 꾸준히 나오는 셈 아닌가. 이 정도면 좀 죄송스럽지만 마르지 않는 샘물이자 황금알까지는 아니어도 이른 아침 이스라엘 백성에 내렸다는 만나와도 같은 수준이다. 계속 이렇게 해달라고 하면 너무 생떼인가싶긴 한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욕심을 내도 좋지 않을까싶기도 하다. 원래 대중들의 욕구가 때론 실천력의 장작이 되기도 하니까..바라고 또 바라고 기대하면 월간 윤종신도 계속 나오지 않을까.


오늘도 어쨋든 뒤늦게 몇달간 밀렸던 월간 윤종신을 듣고 있다. 멜로디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귀퉁이에 은근슬쩍 윤종신표 시그니쳐가 귓가에 느껴진다. 맞아 이 양반이 원래 이런 멜로디를 주력으로 했었지 심적으로 공감하고 있다. 물론 날씨가 추워지고 마음이 왠지 앙상해진다고 느껴질 무렵이면 상투적으로 통하는 발라드의 위력일수도 있겠으나 세상의 모든 발라드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수는 없다. 개 중에는 어떤 측면에서 보다 가깝게 느껴지고 정말 마음적으로 동화될 만한 발라드의 한 자락이 마음을 스치듯 지나가면 숨죽여 지내던 추억들이 깨어나는 느낌이다. 


너무 많이 깨어나면 청승이기도 한데...

가끔 이정도면 나쁘지 않을 것도 같다. 



 


Posted by kewell
Book Pantry2014. 9. 22. 15:04

1.
스카라무슈를 다 읽고, 하루키의 <스크랩>을 북저널에 몇 줄 옮겨쓰고, 헤르만 브로흐의 <베르길리우스의 죽음> 1편을 너적너적 거리며 읽은게 다다. 벌써 여러 주가 지나지만 책을 읽는다는 건 마음의 평안을 찾기위해서라기보단, 마음이 평화로와야 책을 읽게 된다는 사실만 깨닫게 된다. 적극적인 해결책으로 책을 읽는게 도움이 되지 않다니..난 그렇게 생겨먹은 성향인가보다. 어찌됐든 이 여름날의 기온들은 죄다 천정의 약 1 M 두께로 '수면'의 층을 형성하고 있다가 서서히 내려와 사람들의 머리를 휘감는다. 전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어디를 가도 앉아있다가 약간의 시간이 지날무렵에는 졸고 있는 나자신을 발견한다. 이 수면층의 위력이란....냉방과 에어컨 시스템으로 무찔러보지만 이것도 하루이틀이지...좀 처럼 이 공기층을 이겨낼 자신이 없어지고 있다. 


2.

비블리아 고서당이 벌써 5권째나 나왔다는 걸 최근에 알게되었다. 2권까지 읽다가 이건 뭐 그다지 죽치고 빨리빨리 읽어야할 책은 아니군 하면서 넌지시 지인들에게 돌려버려서 한동안 잊고 있었다. 느나저나 시오리코의 은근한 매력은 아직도 다이스케에게 어필되지 않았나 왜이리 조용해라고 생각할 무렵. 5권에서 프로포즈 비스무리한걸 했다고 들었다. 다이스케가 아무리 꽉 막히 남자였어도 예쁘고 머리좋고 게다가 몸매(?)도 좋은 시오리코를 싫어할 리가 만무하다. 이 소설의 매력은 고서점에 반입되는 책들의 이력과 뒷이야기로부터 야기되는 사건들이 핵심인데 곁가지로 로맨스를 슬쩍 껴놓았다. 아마 여성독자들에게는 꽤 어필하는 모양새지만 요즘 같이 활자 엔터테이먼트가 후진 계절에 먹힐지는 더 두고 봐야 할 듯.2.


3.

이탈노 칼비노의 전집이 뜬금 출시되었다. 분명히 민음사 세계문학본에도 몇권이 껴들어가 있을텐데 별도로 양장판으로 내주셨다. 이럴거면 휘어지는 전작들을 살 필요가 없었는데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하지만, 전집이랍시고 떡하니 자리만 차지할 바에야 읽어볼만한 몇권만 선택해서 읽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뭐 이쪽계열의 환상문학도 시들해지고 있어서 따분하고 너무 몽환적이고 지루하다는 느낌도 간간히 들고 있었다. 픽션들은 반짝반짝하면서 읽고 알레프는 시니컬하게 읽어버리고 백년의 고독은 읽다가 지쳐버렸다. 어쩌면 독서체력이란게 있어서 서서히 이 체력도 바닥이 나는게 아닐까. 매번 같은 장르를 읽을 수록 서서히 익숙해지다가 나중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어져버리는....뭐 그런 상태가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3. 


4.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고전 추리소설 중 사이먼 템플러의 활약이 담긴 시리즈가 손안에 들어왔다. <성자, 암흑가에 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책의 수준이 '아동'스럽다. 굳이 이렇게까지 수준을 다운시킬 필요는 없었는데 왜 재밌는 소설들은 얇게라도 문고판으로 안나오는지 잘 모르겠다. 왜 굳이 휘황찬란한 양장이나 활자 왕따시만한 인쇄본으로 부피가 팅팅 불어 내놓고 가격은 어울리지도 않게 뻥튀기시키시는지 이해가 안가지만, 이게 다 열악한 구매층 때문이라면 뭐 할 말은 없다. 읽는 사람도 많아야 그럴듯하게 내놓지. 아무튼 사이먼 템플러의 다른 작품들은 안나오려나? 더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은데...괴도 이십면상도 나오질 않는다. 고전 추리소설은 인기없는 장르가 되버렸나보다. 


5.

<탐정사전>을 읽다가 이우정씨의 '모돌이'를 봤다. 참 오랜만이다. 어렸을때는 모돌이 탐정을 무지하게 좋아했는데..잊고 있었다가 이렇게 다시 대면하게 되다니..지금에서야 알게되었지만 모돌이 탐정이 겪은 사건들은 대개 유명한 추리소설을 그대로 베끼다시피한 짜깁기 이야기..그래서 말인데 당시의 플롯이나 스토리들은 순수 창작의 형태로 만들어지기보단 여러가지를 참고로 인용 및 참조를 과하게 구성된 측면이 없지 않아 있다. 지금 보면 유치해질 수도 있겠는데 당시로선 그보다 더 재밌는 이야기를 만나지 못했으니 어떡하랴. 이우정씨가 나름대로 이렇게 그려낸 만화들이 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르블랑의 813의 비밀도 봤던 기억이 있고, 당시의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 지금까지도 그 잔상들이 어른거린다. 케셀바흐와 구렐..캐릭터는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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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ewell
Review BOOK/소설2014. 8. 19. 10:10


라파엘 사바티니의 '스카라무슈'를 며칠 전 다 읽었다. (이 책은 현재 절판 상태다. 재주껏 구해서 보셔야 함.) 책 두께는 어마무시할 정도지만 일단 읽기시작하면 이 두께를 의식하는 일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책장이 마구 넘어가서 이윽고 정신차려보면 반절이 후딱 지나가버린다. 사실 두께가 두꺼운 책들의 대개는 별 내용 아닌 것들이 자리잡는 경우가 많다.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는 넘쳐나지만 그 이야기가 그렇게 중요해서 꼭 알아야만 하는 것들도 아니어서 사실상 생략해도 무방한 경우도 있다.  별개로 스카라무슈 같은 경우엔 쓸데없는 내용때문에 두터워진건 아닌듯 싶고, 워낙 주인공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기때문에 상황을 바꿔가며 활극 나열을 하다보니 책 두께는 어쩔수 없는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두께가 별 문제가 안되는 이유로 전반적인 분위기가 '무협지'적인 뉘앙스를 품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우리가 무협지를 읽을 때 그 엄청난 분량의 활자를 감내하는이유는 바로 가벼운 문체와 이해하기 쉬운 스토리와 어떤 걸 탐구할만한 사유의 늪에 깊이 빠져들 필요가 없어서다. 굉장한 에너지의 소모가 없이도 술술 읽히는 활극모험소설이라면 분량 따위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유럽판 무협지를 방불케하는 이 '스카라무슈'에는 통속적으로 국내 '아침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우여곡절과 꼬이는 인연과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삶이 엄청난 속도로 전개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적 역사적 격랑으로 빨려들어가게 되고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에 반하는 어떤 상황을 만나면서 생각과 마음도 변화를 일으키며 주위의 인물들로부터 부단한 부대낌을 겪고 위험에 휩쌓이고 기어코 복수의 길을 가게 되는 식이다. 주인공의 마음가짐이라든가 어떤 행위에 대한 정당성은 이 소설의 배경에서 그 조짐을 느낄 수 있다. 프랑스 혁명의 전야. 


만약에 스카라무슈가 어떤 권선징악의 단순구도만을 추구했다면 앙드레 루이가 그저 복수와 검객과 정치코미디의 수사에 불과하다고 결론을 내버릴 수는 없다. 거기에는 일단의 역사가 흐르고 있고, 이야기를 지탱해주는 커다란 함의가 깔려있으니까. 사실 귀족, 민중충돌과 프랑스혁명사에 격동기에는 우여곡절이라는 운명의 실타래를 배경으로 로맨스와 모험을 찔러넣는 소설들이 꽤 있어왔다. 인생의 소용돌이란건 그곳에 자신이 빠지지 않은 채 경험해보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 마련이니까..사바티니의 이 소설은 독자들의 이런 대리만족을 이해한다는 듯이 적재적소에 활극을 심어주었다. 지면을 휙휙 뒤로 넘기고 앞으로 전속력 질주를 감행하게 되는건 어쩌면 사바티니가 노린 코스식 요리가 아니었을까. 준비들 되셨나요 이제 막 전채요리가 끝났을 뿐인걸요 메인디시는 아직이랍니다 라고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 앙드레 루이의 파란만장함을 뒤늦게 돌아보자면 사실 몇 권으로 나뉘어 출간되었어도 수긍했을 것이다. 1부 변호사와 복수심, 2부 배우 스카라무슈로의 변신, 3부 검의 마스터, 루이 돌아오다, 4부 소용돌이치는 인연과 운명의 늪..뭐 이런식으로 그럴듯한 제목으로 4부작 시리즈로 적당히 폰트를 키우고 적절한 삽화와 각권의 표지와..등등 이렇게 상업적인 고려를 감안해서 출간이되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상상이 들곤 한다. 팔릴지 안팔리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정도 실패하지는 않았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이 책은 중간중간 끊어도 될만큼 각 스토리사이의 분절이 탁월히 칸막이 쳐져있어서 이제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는걸요 조금만 있으면 우리의 주인공 루이는 사랑하는 알린을 다쥐르 후작에게 내주고 처절히 몰락해가며 찌질한 인생을 살게 될거예요. 그러다가 다시 복수의 칼을 들게 되죠. 다음 이야기는 제2권에서...뭐 이런식으로 독자들의 심리를 꿰뚫어본다면 그럭저럭 분절 출간되었어도 좋았을 것이다. 


의그는 변호사에서 광대로, 광대에서 검객으로..그리고 혁명가였다가 운명의 장난에 의해서 모든 것을 희생해내야하는 전형적인 불굴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대개의 경우, 서사적인 흐름에서는 앙드레 일대기로 묘사되었어도 굉장한 분량의 역사드라마처럼 전개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에게는 활극와 로맨스만으로도 충분한 이야기가 거리가 있었다. 알린과 앙드레 루이와 다쥐르 후작. 세명을 뒤로한 역사의 혼란기에서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종횡할 것인가에 대한 사유가 있었어야 한다고 혹자는 이야기하지만, 그건 이 소설을 너무 진지하게 보는거다. 솔직히 말하자면 대개의 독자는 루이가 알린의 시선을 알아채리고 다쥐르에게 복수할 줄 알며, 불운과 불공평, 불평등의 세상을 헤쳐나가며 먼치킨처럼 우뚝서길 원할 것이다. 거기에는 역사적 깨달음이 없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히려 사바티니가 독자들에게 프랑스 정치사에 있어서 앙드레 루이가 서있는 위치의 타당성과 상징성을 논하려고 지면을 할애하는 순간, 이 소설은 무지하게 따분하게 되었을 것이다. 대중 통속 소설로 시작해서 갑자기 독자들을 가르치려들면 할수록 우원래의 목적은 잊혀지기 마련이다. 자고로 소설은 흡인력이 있어야 하고 여기에는 '재미'란 요소가 빠질 수가 없다. 스카라무슈의 미덕은 바로 이 전형적인 '재미'이 있어서 앙드레 루이가 역사의 굴레속에서 부침을 겪다가 자신의 능력과 재능으로 이 모든 걸 이겨내고 복수하고 사랑을 쟁취하며 구조적인 사회의 분위기에 개의치 않는 '일당백'의 모습을 독자들도 원하게 된다. 만약에 루이가 마지막에서 혁명의 전제조건으로 개인의 행복과 사랑을 포기하고 유치찬란하게 정치계로 진출하고 동지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며 국왕을 페위시키고 시민봉기를 주도하러 앞장서면서 끝을 맺었다면 이 뜬금 마무리에 다들 실소를 금하지 못했을 것이다. 


차라리 이런 식의 결말이라면 번갈아 연습하는 아르투로 페레즈의 '검의 대가'쪽이 그런 분위기에 가깝다. 사바티니의 '스카라무슈'는 완전히 재미가 보장되는 대중소설이다. 아쉬운 것은 '스카라무슈'외 '캡틴 블러드'같은 작품들이 완역본으로 출간되지 못했다는 점이고 나온 책이라고해봐야 아이들이나 보는 해적 모험 소설처럼 격하된 점이 못마땅스럽다.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