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크 애드워즈의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1961)을 본 건 어린시절이었는데 지금와 생각해보니 도대체 뭐가뭔지 알지도 못한 채 그냥 보았던 것 같다. 이건 다들 아시는 오드리 햅번(Audrey Hepburn) 때문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게 없다. 청순하고 깜찍하면서도 톡톡튀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홀리'에 이입되었을 때, 모두들 <로마의 휴일>의 앤이 좀더 세속적이고 거침없어졌구나라고 이해했었으니까. 관객들은 영화속에서 오드리 크로니클을 모니터링하는 마음가짐으로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로마의 휴일>(1953)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오드리가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에서 명예와 인기를 지속시키기 위해서 캐릭터를 유지하겠다고 선언했었어도 이상할 건 없다. 다만 <로마>나 <티파니>는 오드리를 담는 같은 성향의 그릇이었을까란 물음이 남긴한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계속 이야긴 하고 있지만, 사실 말하고 싶은건 영화가 꼭 트루먼 커포티의 <티파니>를 100% 반영했던 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로마의 휴일>의 앤은 결코 <티파니에서 아침을>(이하 티파니)의 홀리가 될 수 없었다. 이게 오드리였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도 있긴 하지만 가능했던 이유라면 '티파니'가 소설 원작과는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다는데에도 이유가 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발리에서 생긴 일>의 하지원이 조인성과 소지섭 중 한명에게 고백하고 한명과는 친구먹고, 발리에서 셋이 나이트파티라도 하면서 소근소근 웃으며 엔딩이 되버린 것과 비슷하다.)
뭐 굳이 새드엔딩이나 극적인 내러티브가 있어야만 그럴듯한 작품완성도가 유지되는 건 아니지만 '홀리'는 어디까지나 자유로운 영혼이었고 '폴'이란 인물은 등장도 안했고 (그럼 소설의 화자가 '폴'이 아니라면 누구냐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소설 어디에도 화자가 홀리와 결혼해야겠다고 다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화자는 커포티의 감정이 깃든 CCTV 정도..게다가 커포티는 동성애성향의 뉘앙스를 너무 풍긴다.) 홀리는 행복했지지도 않았드랬다. 나도 홀리가 행복해지는데는 찬성이다. 소설속 인물이 불행을 향해 치닷는 걸 보면서 이게 제대로된 현실반영이야 이랬어야 해라고 위안따위를 하며 가식떨고 싶은 마음 추호도 없다. 결국 내가 어린 시절 보았던 영화 <티파니>의 그 꽉찬듯한 희망과 행복은 그저 꿈같은 연출의 산물이었으며 실제 원작에서의 홀리는 좀더 애처롭고 처연하며 쓸쓸하게 저벅저벅 스토리를 기어나가 풍문으로 엔딩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대로 했다간 1960년대 영화를 보고나서 다들 길거리에 침을 뱉거나 술병하나를 들고 '삐뚤어져버릴거야라고 우울해했을 것이다. 이걸 시대가 용납했을리가 없지 않나..
간간히 섞인 황갈색 머리카락. 알비노처럼 하얀금발. 노란머리채가 아른거리고 여름에 가까운 따듯한 저녁에, 날씬하면서도 시원한 검은 드레스에 검은 샌들을 신었으며, 진주초커를 건 채 세련되게 마른몸매를 자랑하며 아침 식사용 시리얼처럼 건강하고 비누와 레몬처럼 청결한 분위기를 풍겼던 여인이 홀리였고 오드리였다. (햅번 스타일이라고 불리우는 블랙드레스와 진주목걸이 매치업은 솔직히 커포티의 묘사덕분이지 오드리가 창안해낸게 아닌 것일 수도 있다.) 영화에서의 오드리는 원작의 이미지를 제대로 반영했다. 이걸 그레이스 켈리가 할수도 없고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더더군다나 할수 없는 영역의 이야기다. 활자그대로 옮긴다면 오드리는 '홀리' 그 자체로 완벽한 변신을 했던 셈이다. 이후로도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는 홀리를 떠올리기에 앞서 먼저 머리속에 오드리 햅번이 해맑게 웃는 모습이 구름처럼 피어오르고 그 다음 소설의 명문장, 혹은 영화속 대사가 떠오르는 식이다.
" 난 이 고양이에게 이름을 줄 권리가 없어요. 얘는 누군가의 것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우리는 어느날 그저 강가에서 마주친거나 다름없죠. 서로의 소유가 아닌걸요. 얘는 독립적인 존재이고 나도 그래요 ""두렵고 돼지처럼 땀이 나는데 뭐가 두려운지 모르는...다만 나쁜 일이 생긴다는 것 말고는..그런데도 뭔지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아마 말미에 휘몰아친 사건들에 묻혀 사라져버린 홀리가 해피엔딩일지 새드엔딩일지 가늠이 안되는 것이겠지싶다. 걸어온 것만 보면 폭풍처럼 살아갈 수도.. 그렇다고 박차고 나갈 용기와 재능도 없어져버린 보통사람들로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었으니까. 그저 소설의 화자처럼 슬쩍 다가갔다가 연정의 마음을 품었다가 의외로 쌀쌀함에 상처받고 다시 너도 함 상처받아봐라고 외면했는데 아예 그 존재가 삶에서 사라져버린 느낌..비워진 자리를 보며 더 쓸쓸하고 슬프다는 느낌..그래서 차라리 홀리가 티파니에서 아침을 먹더라도 자리에 있었으면 하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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