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illa Essay2013. 8. 16. 17:36



책을 사고 읽는 패턴이 아무 생각없는 멍청한 놈이 장님 꼬끼리 만지듯 느껴질 때가 많았드랬다. 그 만큼 무작위이고 기분내키는대로이고 제멋대로란 이야기다. 혹시나 '그냥 무턱대고 읽는다고 해서 활자중독일까라고 의심도 해봤지만 가당치도 않는 이야기다. 가끔 매체에서 이런 말씀들을 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활자중독이 있어서 뭐든 읽어야만 하는 병이 있다고...개인적인 경험을 놓고볼 때 , 이런 말을 하시는 분들 중 활자중독이 제대로 뭔지도 모르는 분들 태반이었다.  진짜 활자중독 못봐서 그러시는 거지..다들...


활자중독 왠만하면 없다. 내가 기억하기론 너무 읽을게 없어서 항공기 좌석에 꽂혀있는 메뉴얼과 광고 전단지를 몇번이고 읽으면서 오셨다는 분 말고는 그 증세를 실제 체감하기도 어렵다. 세상에 그렇게 읽고 싶어서 안달나신 분들의 책 목록들을 보면 '애개 겨우' 수준이다. 활자중독 정도면 어마머마하진 못해도 '오호라 과연' 정도는 되야 하지 않겠는가. 활자중독이라고 하면 책 좀 읽는다는 느낌을 줄 수 있어서일거다. 유명인들이 주로 이미지 포장할 때 주로 쓰는 뭐 그런 것들 아닐까. 그게 뭐 꼭 나쁜건 아니다. 전 클럽에 가서 그 날밤 하얗게 불태울 여자사냥 하는걸 즐기구요. 전 내몸을 뜨겁게 달궈줄 기가막힌 꽃미남을 원해요라고 고백하는 것보단 약간이나마 더 그럴 듯해보이니까..뭐 오히려 쳐박혀서 책읽는게 더 궁상맞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서도..


아무튼 나도 활자중독은 아니다. 나도 책을 꽤나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중독까지는 근처에도 못갔다. 읽는게 다른 취미보다 좋다는 건 인정한다. 그저 우왕좌왕 이것저것 막 읽어대는 머리없는 닭같아서 문제지..책은 기본적으로 좋아한다. 문제는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기준'이 없었다는 거다. 그걸로 허송세월 보냈다고 생각하면 좀 아둔한 뭐마냥 씁쓸할 뿐이다. 에휴 그냥 막 읽으셨구료 어쩌면 좋아 그렇게 읽으면 읽어도 읽은게 아니란걸 모르시나..그렇게 스스로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을 정도다. 


세월이 아까워서라도 요즘에 그렇게 읽지 않는다.  읽을 때 도그 이어(Dog's ear : 책 귀퉁이를 접는 행위) 조물닥거리고 과감히 줄을 죽죽 긋고 형광팬으로 기억해둘만한 부분들 떡칠을 하기도 한다. 어차피 내책이다 걸레를 만들어도 내꺼고 찟어져도 할수없는 거지라고 마음먹고 에디터마냥 책에다 지랄을 떨고 그런다. 가끔 한권의 책을 다 읽고 나면 책이 무슨 원고 교정한 것마냥 개차반이 되기도 한다. 그 책 나름 좋은 내용들이 많아서였겠지..그렇지 않으면 아무 줄도 없고 귀퉁이도 멀쩡하단건 재미 더럽게 없단 뜻이니까...


가끔 주변분들이 책장에서 빌려가시는데 (다 읽은 책들은 거실책장으로 다 옮겨버림) 책장들추다가 내가 한 짓을 보고 혀를 차신다. 책이 귀한 줄 모른다고..혹은 뭐 인상깊다는 것들 자랑하는거냐는 둥, 좀 쪽팔리지 않으세요 자기생각이 막 이입되는거 ...각양각색의 의견들 고맙게도 더럽게 많으시다. 그럼 그냥 공공장소 도서관 가서 금가고 김칫국물 흘린 책들 빌려서 읽으시든지 하시지 뭐하러 제 책을 읽으셔가지고 그 고생을....애초에 난 책은 빌려줄게 못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책이란 자기가 댓가를 지불하고 사서 봐야 진득히 읽게되고 읽고나서도 어떻게저떻게 유지가 된다. 빌려읽는 것도 해보긴 했다. 해봤는데 답답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 


일단 줄을 칠 수가 없다. 내 책이 아니니까..줄을 못치면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뭐가 중요하고 뭘 기억해야하는지 애매하다. 나도 내가 레인맨 더스틴 호프먼처럼..혹은 보르헤스의 픽션에 등장하는 푸네스같았으면 기뻐 날뛰겠다. 100페이지짜리도 읽고나면 어느 순간 메멘토 저리가라 할 정도로 '휴지통 비움' 상태가 되버리곤 해서 문제이지.. 그러니까 난 적어도 뭔가를 기억할 '포인트'들이 필요하고... 필요하고 또 필요하다.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빌려서 읽게 되면 이런 것들을 읽으면서 실시간 처리해야 하는데 사람이 어떻게 읽으면서 옆에 노트를 놓고 쓰나..버스를 탈 때도 있고 지하철에 서있을수도 있건만...한손으로 손잡이 붙들고 한손에 책들고 ..언제 노트 꺼내서 쓰고 다시 책보고...이건 스파이더맨을 상대하는 옥토퍼스나 가능한 일이다. 


빌려서 읽는 건 비상시국에나 하는 짓이다. 또 읽은 책을 오래도록 기억하려면 '메모'없이는 불가능하다. 특히 인문한 서적은 중요한 내용을 어찌됐건 줄을 그어놓아야 하고 나중에 한장에다가 요약할 수 있을 만큼 관계도 및 생각의 레이아웃이 필요하기도 하다. 읽고 난 다음 바로 하는게 좋은데 의외로 굉장히 어려워서..읽고 나면 읽었다는 포만감이 사람의 감각을 굉장히 둔하게 만들고 들뜨게 해서 기록이란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만든다. 마치 점수 그럴듯하게 받은 학생이 이 과목은 더 이상 안봐도 돼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독서가 공부도 아닌데 뭘 읽고 또 요약을 하냐는 분들도 계실텐데..읽고 나서 조만간 기억못하고 다시 읽는걸 상상해보시라..뭔가 되게 바보스럽지 않나. 와...몇 년전에 읽었는데 다시 읽으니까 새책 읽는 것 같다니..이거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당황해할 때가 무척이나 많았다는 걸 솔직히 고백해본다. 기록하면 이런 애처로운(?)상황을 피할 수 있다.  


소설조차도 줄거리가 진행되는 핵심 문장에는 줄을 그어 놓으시는게 좋다. 개인적으론 줄거리 변화가 있는 문장에 줄을 긋고 등장인물 이름에다가 형광팬으로 칠해놓는다. 처음에만 칠하면 그 뒤론 안 써도 된다.그리고 역사관련 서적은 중요한 흐름을 연대순으로 기록해둔다. 유럽사에 관한 책을 볼 때 굉장히 심란했는데 이게 도무지 읽을 때만 기억나고 시간이 지나면 대체 사건들이 언제 어떻게 발생해서 어떻게 인과관계가 발생하고 흐름이 어떻게 되는지 공백이 되곤 했다. 그래서 스스로 연대를 짧게 기록하고 주요사건들을 기록해서 내 생각들을 짧게 써놓았드랬다. 나중에 필요할 때 메모해둔 2~3 페이지 몰스킨을 뒤적거려서 재미 좀 봤다.  


책을 읽고 오래도록 기억하는 방법은 '기록하는 것' 외에는 없다. 뭔가를 쓰지 않으면 절대 기억 못하게 된다. 메모는 독서의 결과를 더 찰지게 만들어주고 오래도록 유지하게 해주는 일종의 보험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해볼만 하다...정말 해볼만 하다. 그리고 한번 하고 두번하고 그러다가 메모 습관이 되면 그게 두고두고 그 사람의 사고로 작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 최소한 추억정도라도 될 수 있다.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