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BOOK/소설2013. 2. 18. 19:00

치츠랑 소금이랑 콩이랑 

가쿠타 미츠요/이노우에 아레노/모리 에토/에쿠니 가오리.




일부러 그랬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소개하는 많은 곳에서 '에쿠니 가오리'가 저자 앞머리로 등장한다. 하기사 에쿠니 가오리 정도되어야 독자들의 뇌리에 기억된 '유명인' 판타즘이라도 불러올 수 있으니까…어떡해든 어필하려면 에쿠니 가오리라도 전면에 나서줘야 되겠지싶다. (에쿠니 가오리는 '도쿄타워' 그리고 '냉정과 열정사이'로 유명하다. ) 그런데도 난 에쿠니 가오리는 별로다. 특히 이 책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에서 선보인 4개의 단편 소설중에서는 더더욱 '알렌테주'는 평범했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이 그렇듯이 넘치듯 범람하는 감정의 과잉들이 가끔 싫을 때가 있다. 적당했으면 좋겠는데 싶다가도 무미건조해버려서 '앗 이거 수위조절하다가 이도저도 아닌게 되버렸어' 라고 혼자 되뇌일때는 저자에게 좀 미안한 심정이다. (그렇다고 에쿠니가 나 따위의 독자에게 뭐라하거나 사과할리도 만무하지만..) 어찌됐든 마지막 소설이었던 '알렌테주'로 부터 굉장히 따스한 마무리를 읽어버렸다는 감상평에 대해서는 존중한다. 사람마다 느끼는 건 다 다른 법이니까. 


잡설이 길었지만 에쿠니 가오리가 어떻든 그건 개인적인 소견일뿐 아마도 독자들은 4명의 작가들로부터 입맛에 맞는 어떤 취향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왜냐면 이 소설은 아래와 같은 4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있으니까....


신의 정원 (Basque /Spain) : 가쿠타 미츠요.

이유 (Piemonte / Italy): 이노우에 아레노

블레누아 (Bretagne/France): 모리 에토

알렌테주 (Alentejo/Portugal): 에쿠니 가오리.


이 책은 요즘 유행하는 '관계'의 힐링을 전제로 각 에피소드에서 '음식'을 중요한 매개체로 등장시켰다. 음식이야기를 슬며시 하는 것 같지만 점점 깊이있는 이야기를 하다보면 사실은 음식이 이어져있는 결정적인 주인장들에 대한 감정들이 소용돌이 치면서 부대낀다. 갈등이란 자고로 이런 부대낌이 없으면 존재하지도 않을테니까 당연한 것이겠지만 분풀이도 음식으로..그리고 힐링도 음식으로 한다는 지점에 있어서는 묘한 테마설정을 소설의 메인으로 삼았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지방색이 완연한 4편의 소설에서는 마치 그 지역에서 인터뷰를 한 것 같은 생생한 냄새도 풍기면서 묘한 사람냄새까지 섞어놓았다. 


 신의 정원에서는 '만찬의 날'에서 통보된 어머니의 예고된 시한부 인생, 그리고 도망치듯 가족들부터 벗어나고픈 주인공의 회한이 등장하지만 기어코 결말에서는 '힐링'이 된다. 식탁 어딘가에 앉아있을 어머니로부터….'그러는 너는 제대로 밥은 챙겨먹고 있는 거니? " 라는 말을 듣는다. 


'잘 챙겨 먹고 있으니 걱정마세요' (60p) 


눈물 나올 것만 같았던 <신의 정원>편의 마무리를 읽으면서 치열한 삶같은 건 결국 부모세대들이 우려하고 걱정했던 자식들에 대한 사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간다. 혼수상태에 빠진 남편 카를로를 향한 애증의 심정을 보여주고 있는 <이유>편도 그렇고, 브르타뉴 토속의 믿음같은게 운명적으로 연결되는 <블레누아>편도 그렇다.  (특히나 블레누아는 신의 정원과 매우 유사한 뉘앙스를 결말로 택했다. 궁금하신 분은 직접 읽어보시는게 좋겠다. ) 알렌테주에서 루이스와 마누엘이 느낀 일상같은건 오히려 차분하고 잔잔하지만 그것도 역시 '관계'에 대한 복잡한 시선을 단촐하게 추려내고 깔끔하게 정리정돈 했다. 자유분방한 감정들이 난립하면 '미친년 꽃다발'같은 수많은 감정 부스레기들이 이곳저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애쓰는 법인데 요행히 그런 잔가지들이 애초에 다 정리된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 소설에는 그런 지저분함이 없어서 좋았다. 짧지만 명료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솔직한 느낌들. 여행을 해야만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생생한 시골풍경. 지면에서 눅눅히 전달될 것만 같은 음식냄새들. 신경질적으로 펼쳐진 대화체속에서도 가늠할만한 '사랑'과 관심에 대한 표현들. 훗날 이어지는 넉넉하고 잔잔한 미소들. 둘러앉은 식탁에서 풍겨나는 회한, 추억, 그리고 사랑. 모두  음식으로 연결되어 버렸다. '같은 음식을 같이 먹는다는 것은 별개의 인격임을 바꾸지 못하는 두 사람이 매일같이 같은 음식을 몸속으로 집어넣고 있다는' 책속의 표현대로 서로를 바라보면서 하는 식사의 의미가 증폭되는 느낌이다. 아마 차분하게 자근자근 읽어준다면 갑자기 어린 유년시절의 먹었던 음식들의 맛이 궁금해질지도 모르겠다. 원래 음식이란 기억이라는 방부제만큼 유효기간이 있는 법이다. 추억이 있는한 절대 상하지 않는 음식들…그런 거다.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은……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

저자
에쿠니 가오리 지음
출판사
시드페이퍼 | 2011-09-23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일본 최고의 인기 여성작가 4인이 유럽의 시골에서 먹고, 쓴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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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ewell

얼마 전,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카모메 식당' (かもめ食堂: Kamome Diner, 2006)을 그윽하게 보고 나서 '다시 한번 가봤으면 하는 마음을 고이 접어 두었드랬는데 ' 별다른 기대 없이 지내다가 내가 방금 먹고있는 '오뎅우동'과 '베이컨' 오니기리의 값을 지불하고 나서는 순간 식당이름이 '카모메'라는걸 알아채렸다. 간절한 바램은 간혹가다가 추접스럽고 민망스럽지만 유사 짝퉁이 되었을지언정 어떡해든 비슷한 모양새라도 만들기 마련이라고 어디 '마법책'에 써있을 것만 같다.  재빨리 하늘을 봤는데 가히 이정도면 헬싱키 못지 않은가. 파랗고 높고…공기는 살갗에 부딪혀서 차가운 크림막을 만든다. 오늘 이 크림막을 '헬싱키 글레이징'이라고 해둘 판이다.  슬쩍 카모메 식당도 봤겠다. 사치코 아줌마라도 근처에서 갑자기 나타날까싶어 두리번 거려봤지만 역시 여기 카모메의 주인 마나님은 사치코보다는 훨 미인이시다. 더 젊기도 하고… 쿠폰달라고 하다가 '서명 먼저' 라고 하시는 바람에 약간 민망했지만, 영화 카모메의 그 분위기 못지 않다. 


마침 내 귀에 꼽힌 헤드셋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3호선 버터플라이'의 '말해요 우리' … 오래전 모스코바에서 헷짓거리를 하다가 비자만료로 슬쩍 핀란드 찍고 돌아와야 해서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러시아 비자연장은 타국에서 하루만에 발급이 되었드랬다. 인접한 핀란드로 건너왔다가 하루만에 들어가는 마치 유럽에 파견된 정보요원마냥 긴박하게 움직였다는…) 그런데도 그 핀란드, 헬싱키의 반나절을 기억한다. 차가운 공기, 그리고 높은 하늘, 한적한 거리. 스산하고 차가운 빛깔의 가게들. 외관은 얼음궁전같은 한기였지만 내부는 스팀뿐어져 나왔던 그 호텔하며… 가끔 이런 엉뚱한 상상도 해본다. 유럽에 파견된 정보요원이 핀란드에서 숨어지내다가 카모메에서 우동한 그릇을 먹다 식당과 연결된 전세계의 '카모메'라는 이름의 식당 포털로 이동하게 되고 이를  이용하여 전세계를 돌며 정보활동을 벌인다는 뭐 그런 황당한 이야기. 이 소설의 제목은 '코드명 헬싱키 : 카모메에서 오뎅우동을 먹어라!! ' 뭐 이런거….ㅎㅎㅎ  


토요일 오후 잡생각이었다. 날씨는 좋지만 이제 좀 추위는 가셨으면 싶다. 그리고 이런 날씨에는 유독 '카모메 식당'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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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nne ReevesGeri Allen의 'Maiden Voyage'Acoustic cafe의 'Buenos Aires의 꿈'을  아침부터 일부러 들어봤다. 주말 아침나절에 잘 들었던 거라...하지만 거기에 약 10페이지 남짓 업다이크의 'Run rabbit'을 읽었더니 '삶'이 띵한 느낌이다. 이렇게 암울할수가....아무튼 요새는 주변에서 '비보'가 많이 들린다. 약 7년동안 연락끊겼던 친구가 카톡으로 안부를 묻길래 당황했는데 아예 Yorba linda라는데 거기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3번의 반가운 안부가 다 '비보'였다. 어머니가 그러시는데 '그럴 나이가 되었다고..' ..비보만 쏟아지는 '나이'가 있을리가.......차라리 다들 행복해고 탈없고 희소식만 가득해서 아무런 연락이 안오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연락만 오면 뭔가 덜컹 내려앉는 느낌이다.

친구들아 잘살아라....^^

노래는 우울해서 페퍼톤즈의 'Galaxy tourist'..그나저나 날씨는 언제 풀리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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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BOOK/에세이2013. 2. 13. 14:30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무라카미 하루키(Murakami, Haruki / 村上春樹)/ 문학동네.

 

 

 

" 커피는 어둠처럼 검고, 재즈 선율처럼 따뜻했다. 내가 그 조그만 세계를 음미할 때, 풍경은 나를 축복했다 "

 

 

 

또. 하루키의 에세이다. 그야말로 하루키 에세이가 아니면 읽지도 않는다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겠지만, 사실 하루키 에세이이외에 그럴듯한 에세이를 만나보지 못한 것도 이유라면 이유다. 게다가 한여름 갑작스레 길거리 한복판에서 만난 소나기마냥 느닷없고 충동적으로 에세이 연작시리즈를 모조리 사가지고 집으로 오지 않았던가. 지나고보면 이게 다 느닷없는 충동질에 대한 책임감과도 엮여있다고 볼 수 있다. 책장이 다 떨어지도록 읽어라라는 외침이 가슴한구석에서 계속 메아리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무라카미 에세이 시리즈는 사실 희귀하다고 말하긴 힘들다.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갈래로 서점에 앞다투어 등장했었지만 희한하게도 '문학동네'측에서 정식계약에 의해 제대로 된 삽화와 이력(?)을 타이틀로 세트로 구성해서 내놓았다는 점이 특이할 뿐이다. 이를테면 두둥!!, 리뉴얼판 신작시리즈 하루키 에세이 세트 등장이라고 해야할 판이다.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2. 발랜타이데이의 무말랭이.
3.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
4.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5. 해뜨는 나라의 공장.


이 묵직한 5권세트(거북이 등짝이 새로생긴 것마냥 무겁게..)를 짋어지고 결국 난 공사판의 혈기왕성한 청년처럼 의기양양하게 옮겨놓았드랬다. 아무튼 후회는 별로 하지 않는다. 잘 샀고, 또 잘 읽고 있으니까. 우선 1편격에 해당하는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는 5권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에세이집이다.  이미 읽었던 내용도 간간히 있기는 해서 낯설지도 않고 안지 미즈마루의 삽화같은건 일종의 쉼터역할을 해서 에세이로서의 여백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되기는 한다. 하지만 지면에는 활자가 그득하게 좋아서 여분의 페이지에 그림들로 상당수 채워진건 살짝 불만이다. 그럴려면 그냥 얇게 만들어줘도 좋겠는데,...뭐 나쁘지는 않다.


하루키 표현대로 젊은시절 '존 업다이크'의 책을 구름낀 희뿌연 봄날의 조용한 저녁나절에 '일주일전에 산 바게트빵'같은 철제침대에 누워 읽어야만 했다면 역시 하루키 에세이도 비슷하게 읽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존업다이크를 읽기위한, 존 치버를 읽기위한 장소같은게 분명히 존재할 것만 같다고 하지 않았나.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을만한 적당한 장소가 분명 이 세계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에세이는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다.  여전히 정서적 올컬러로 형형색색 퀼트모직처럼 엮여있다.  '임스의 라운지체어', 'AR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텔레만' '로스맥도널드의 죽음, 스니커즈 이야기, 스윙재즈들. 테리힐 밴드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캡캘러웨이, 초콜릿 댄디스, 퀴퀴한 냄새가 나는 따뜻하고 흥분된 가게의 공기들',그리고 질레트의 '트로피컬 코코넛' 쉐이빙 크림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 NICE BOX 1384에 담긴 위험한 발언(?)까지 포함하면 무라카미는 역시 무라카미답다.

 

 

한때, 하루키의 글을 읽으면서 그가 표현했다시피 '그것들은 '그것들'일 뿐이다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같은 패턴과 같은 이미지, 그리고 버무리는 특유의 스타일리쉬한 타이포라이팅. 마치 롤빵에 발라진 버터와 찌그러진 캔맥주, 챙이있는 야구모자와 빨간 뿔테안경을 쓰고, 올이 성긴 다갈색 원피스에 하얀 테니스화를 신은 소녀가 코끼리 공장에 나타나서 수없이 많은 계단을 통해 달이 두개인 '그 세계'로 갈것만 같은 느낌이 에세이에서도 간당간당 느껴질 정도면 말 다한거 아닌가. 반복적이란 건 그래서 위험하다. 지루해지기 십상이니까.  하지만 범상치 않아서 좋았고 판타지적이어서 질리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에세이에서도 그런 자취는 여전하다. 다만 그가 에세이에서 언급했다시피 '두다리로 직접 마을과 하나하나돌다보면, 하나하나의 장소에 사람들의 정념이 미세한 비늘처럼 들러부터있는 것을 알수 있다는 것처럼, 그의 에세이에도 그의 비늘이 지면에 돋아나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슬그머니 지면에서 한장한장 넘길때 정서적으로 느껴지는 그 감촉들이 아마도 하루키 에세이이 진면목이리라.


오랜세월동안 하루키의 에세이가 내 인생의 여백에 차츰차츰 엔트로피의 증대처럼 쌓였다고 생각한다. (207p에 이 표현이 등장한다.^^) 마치 하루키가 살고있는 판타지의 소굴속을 살금살금 기어들어가 몰래 엿보는 이런 쾌감은 쉽게 얻을수 있는게 아니다. 이원화된 세계와 상실된 자아를 찾기위한 주인공의 몸부림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다라고 생각하고 에세이를 뒤적거렸던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결국 그속에서 의외의 편안함과 그리고 일상사에서 만나보기 힘든 하루키의 또 다른 일면을 본 것 같다. 그 정도면 소설못지 않은 감흥과 즐거움이 있는거라고..뭘 또 바라냐고 피식피식 웃곤 한다. 두번째 에세이도...3번째 에세이도 그렇겠지. 그리고 잔잔하고 쿨하고 덤덤하면서도 소리없이 피는 진달래처럼 봄날에 읽기에는 딱 좋은 에세이일거라 믿는다.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2-07-24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센티멘털리즘 가득한 문장과 컬러풀한 일러스트가 연주하는 하모니!...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kewell
Review BOOK/소설2013. 2. 12. 18:30

클라우드 아틀라스(Cloud Atlas) - 데이비드 미첼


 

워쇼스키 남매의 걸출 과거작들의 여파만 아니었어도 '클라우드 아틀라스'에 대한 기대는 미미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세계'를 정의하는 그 독특한 감각과 구성은 당시로서는 굉장한 '일탈'이자 '파격'이었으니까, 관객의 입장에서 또 한번의 혁신을 보여줄거라는 믿음, 그리고 자신들의 지적인 갈망을 좀 더 채워줄 수 있다는 문화적 파이오니아로서 워쇼스키를 정의해두는건 당연했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이런 워쇼스키가 '매트릭스'이후로 들고나온 영화가 '클라우드 아틀라스'라니 ….기대가 드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더군다나 데이비드 미첼의 전작 스타일을 볼 때, 묘한 환상과 SF안에 스며든 철학적 편린들은 그야말로 워쇼스키의 눈을 반짝이게 했을 거라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클아우드 아틀라스의 케미스트리에는 어떤 연금술이 사용되었을까. 모두들 관심을 가질 무렵, 정작 이 작품의 원작 소설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총 6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있다. 영화는 굉장한 교차편집으로 이 6개 에피소드의 고리를 현란하게 오가지만 다행히도 소설은 하나의 챕터씩 전개해서 차근차근 1권에서는 '손미 451 오리즌'까지 갔다가 2권에서는 '슬로샤 나루터와 모든 일이 지나간 후' 로 정점을 찍고 다시 거꾸로 1권에 전개된 에피소드를 역순으로 따라간다.

 

아마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을 때, 모종의 의미심장한 다짐같은 걸 가져야 겠다라고 생각하는 지점은 2권 '슬로샤 나루터'를 넘어가면서부터 일 것이다. 여지껏 읽었던 에피소드들의 재반복이 이어지는 순간 '내가 놓친 것은 없는지 , 혹시 암시적으로라도 복선같은 것들이 앞서서 모두 나열되었음에도 이해하지 못해서 화려한 후반부 지적여행을 놓치지나 않을까하는 우려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주욱 읽다가 보면 사실 그렇게 치밀한 설정과 장치들에 대한 필요성은 잊게 된다. 모름지기 소설에서는 설정과 장치보다 오히려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에 의해서 좌우되기 마련이니까..


 

1권. 

[1] 애덤어윙의 항해일지 - 평등.

[2] 제델햄에서 온 편지. - 배려

[3] 반감기-첫번째 루이자 레이의 미스테리. - 희생

[4] 티머시 캐번디시의 치떨리는 시련. - 자유

[5] 손미 ~451의 오리즌 - 존엄성.


2권.

[6] 슬로샤 나루터와 모든 일이 지나간 후. 

[7] 손미 ~461의 오리즌

[8] 티머시 캐번디시의 치떨리는 시련.

[9] 반감기-첫번째 루이자 레이의 미스테리.

[10] 제델햄에서 온 편지.

[11] 애덤 어윙의 항해일지.



이야기의 전개상으로 보면 애덤어윙의 항해일지에서 모험담을 기대하였을 테지만, 어윙의 소소한 일상 외 그다지 드러나는게 별로 없다. 대신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대화속에 원주민격인 '모리오리'족에 대한 '개화'라든지 '평등'에 대한 이해관계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마오리 족으로부터 구타당한 오투아에 대한 모종의 노력등을 보면 어윙은 '평등주의자'이자 '휴머니즘'을 가진 당시로서는 앞선 지식인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윙의 면모가 히어로적이진 않다. 그는 프로피티스호에 타고 항해를 하게 될 뿐 거창한 자신만의 신념을 낭낭히 선원들에게 전파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를 통해서 모리오족의 멸망과 탄압, 그리고 순수했던 종족이 어떻게 비참해지는 지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된다. 어윙이 독자이자 독자가 어윙이 되는 셈이다. 그를 통해서 '개화된다는 것이 어떻게 해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폭력'이란 개념이 어떻게 해서 모리오리족의 머리속에 각인되는지 간접적으로 전달되면서 어윙은 그속에서 '최소한의 인격적인 조력자'의 역할을 짊어진 것처럼 이어진다. 거대한 통념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행동하고 노력하는지에 대한 미세한 실마리를 전달해준다고나 할까... (사실 이 부분은 뒷부분에서 좀 더 명확해지지만..) 

 

 

'제델햄에서 온 편지'는 이에 비하면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을 가졌지만 방탕한 생활과 거만한 태도가 몸에 배인 몰락한 귀족의 자기 독백적 구성으로 이루어져있다. 로버트 프로비셔는 친구인 '식스 스미스'와 편지를 주고 받는 식으로 자기이야기를 하는데 아마 이 이야기의 근간은 '성적 소수자' 즉 동성애에 대한 세련된 자기변호같은 대목도 상당히 등장한다. 워쇼스키는 아마 '이 부근에서 굉장한 만족감을 가지고 어떻게든 액자식으로 구성해서 도드라지게 연출하고픈 욕구에 사로 잡히지 않았을까.  사실 제댈햄 이야기가 애덤어윙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라고 골몰히 생각하면 머리만 아플따름이다. 유일한 연결고리는 책을 쌓아둔 반침을 뒤지다가 표지도 떨어져버린 책자를 프로비셔는 발견하고 그것이 1849년 부근에 쓰여진 애덤어윙의 항해일지라는 것을 알아내는 부근이다. 프로비셔는 이에 대해서 묘한 집착을 보이지만 이를 두고 어윙으로부터 어떤 영감을 얻었다던지 그리고 데자뷰가 일어났다던지하는 흥분감 같은 건 전혀없다. 그런데 아마 전체 작품을 두고 묘한 연결고리로 등장하는 상징이 없지는 않은데 바로 어깨위 '혜성모양의 모반' 자국이 각 에피소드를 두고 등장인물에 공통적으로 설정되어있다는 점이 그렇다.  


3번째 에피소드는 1974년, 루이자 레이의 거대 조직에 맞서 진실파헤치기 모험담이다. (모험담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심각하고 잔인하고 다이나믹한 구성들이라 당황스러울지도..) 물론 여기서도 이전 에피소드에서 언급한 '제델햄'의 프로비셔가 편지를 주고받았던 '식스 스미스'가 박사가 에피소드 연결고리로 등장하긴 하지만 제델햄에 관련된 큰 암시적인 복선으로 보이지 않는다. (루이자 레이가 클라우드 아틀라스 6중주 음반을 손에 쥐는 내용이 더 의미심장할 수도 있겠는데 이건 전체 에피소드를 아우르는 지도같은 느낌인지라..) 이 에피소드의 가치는 '진실'과 '희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싶다. 진실을 파헤치는 언론인들의 말로가 죽음내지는 희생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죄책감에 대한 비장미서린 결말까지 이어질때면 꽤나 격한 수위로 테마의 가치를 위로 끌어올리는 느낌이다. 


그리고 4번째 에피소드, 2012년 티머시 캐번디시의 치떨리는 시련은 약간 뜬금없다. 출판사사장이 우여곡절끝에 요양원에 강제수용되면서 세상과 단절되고 탈출하기위해서 안간힘을 쓰지만 쉽지 않다는 내용으로 위트있고 약간 비딱하며 명랑하기까지한 노회한 지식인 캐번디시의 자태가 꽤 유쾌하게 전개된다. 캐번디시도 전 에피소드의 루이자 레이 이야기를 출판할 후보 책으로 등장시키는 점이 약간 재미있고 역시 모반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전생의 루이자 레이를 이어받는 모양새도 역설적이다. (약간 진부하고 따분하다는 평가를 루이자 레이 미스테리에 엮어놓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양원을 탈출하는 스펙타클 만큼은 압도적으로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마치 '쇼생크 탈출'의 카리스마를 엮어놓은 듯한 스릴로 땀을 쥐게 만들어주고 결국 '자유'를 맞이하는 달콤하고도 기쁜마음을 잔잔히 지는 노을 처럼 누리게 해준다. 


" 사람을 좀비 대열에 끼게 만들기도 하고, 구해주기도 하는 것은 세월이 아니라 태도이다. 젊은이들의 영토에도 좀비의 정신을 가진 자들이 우글거린다. 그런 상태로 흘러가면서 수십 년간 내부에서 진행되는 부패를 감출 뿐이다. 바깥에는 눈송이가 슬레이트 지붕과 화강암 벽위로 내려앉고 있다. 뉴욕에서 일하는 솔제니친처럼, 나도 내뼈를 엮은 도시에서 멀리 도피해 와 부지런히 일할 것이다. 솔제니친처럼, 어느 맑은 날 해 질 녘에 돌아갈 것이다. " 245p.


 

 

 

이윽고 2144년 서울로 건너띄면서 '손미 ~451 오리진'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무거운 주제이자  순혈인간에 대비되는 복제인간의 처연함과 부조리함을 주제로 삼고 있다. 많은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주제가 아주 생경한 주제들은 결코 아니다. 오래전 부터 SF장르가 고민해왔던 '인간 존업성의 기준을 복제인간에까지 확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녹아있는 부분이 그렇다.  공각기동대에서 심화된 바있는 전뇌화와 사이보그화에 대한 여러가지 철학적 고민들이 재생산됨으로 인해서 약간 진부해질수는 있겠으나 손미가 과정에서 보여주는 '상승'에 대한 여러가지 깨달음, 문화적 충격들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어떤 토대에서 이뤄져있는 지에 대한 실마리를 준다고 생각한다. '상승'(복제인간 내면에 본질추구에 대한 본능들을 억제해놓았으나 어떤 계기로 인해서 복제인간이 이를 넘어서는 사유과 사고를 통해서 복제인간의 범주를 벗어나는 현상)과 거대조직(유니언)에 대한 기존 질서체계 유지방식들은 현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아마도 저자는 현재나 미래나 이런류의 고민과 갈등은 계속해서 있을 것이라고 묵묵히 이야기하는 것 같다. (손미는 거의 이 에피소드에서 2권 초입부까지 '현자'같은 뉘앙스로 철학적 주제들을 관통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손미도 '혜성 모양의 모반'을 가지고 있다. 복제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 환희의 나라는 네오 에도에서 디지털 촬영하여 소니로 생성한 시뮬라크럼입니다. 

  진짜 하와이 열도에는 그런 곳이 없습니다." - 2권. 178p


이즈음 되면 독자들은 '윤회'에 대한 철학적 설정에 대해 깊이있는 재고를 시작한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거대한 '윤회'의 고리속에서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중의적인 시그니쳐라고 생각하게 되고 어윙과 프로비셔, 루이자 레이, 캐번디시, 손미 모두 어깨에 '혜성모양의 모반'자국이 있음을 읽으면서 알게된다. 그렇다면 한 인물이 겪는 이 모든 상황은 결국 세대를 뛰어넘어 모든 영역에서 끊임없이 이어져간다는 거대한 환생이야기로 완성되는 것이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설명하는 '모든 목소리가 조금 다른 하나의 목소리가 된다' 고 말했던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가. 개인적으로는 제델햄 이야기 이후, 루이자 레이 미스테리, 캐번디시의 치떨리는 시련, 손미 ~451의 오리즌 모두 옴니버스 형태의 굉장히 재미있는 단편소설처럼 읽혀졌다. 각각의 소설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있다고나 할까.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각 에피소드를 변주하는 미첼의 문장구사력이다. 에피소드들의 스타일이 완전히 구분되는 이 특징들은 마치 신출귀몰한 설정들과 무지개처럼 산란하는 미첼의 변신술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어윙은 덤덤하고도 묵묵하게 그리고 한편으로 침착하고 고지식한 지식인풍의 어투로…그리고 제델햄 이야기는 끼를 주체하지 못하는 굉장한 천재들의 광기어리고 어디로 튈지모르는 괴팍함과 경박스러움, 그리고 재기발랄함으로..루이자 레이는 열정 폭주로 이어지는 집요하고도 신념의 일환으로 달리는 정의구현자의 절박함, 티머시 캐번디시는 노회한 지식인의 아이러니한 세상풍자, 그리고 말년에 펼쳐지는 모험담, 손미는 예전 공각기동대와 블레이드 런너의 데칼코마니스러운  SF적 설정, 그리고 인간 존재와 가치에 대한 기준. 그리고 고민거리를 안겨주는 냉철하고도 모호한 판타지스러운 설정과 분위기로 등장한다. 그것도 제각각 다른 패턴과 다른 설정과 전개, 질감도 다르고 뉘앙스도 다르다. 

 

 



감탄이 나올만큼 변화무쌍한 저자의 표현력도 감탄이 나올지경이고 이 수많은 줄기의 이야기고리들을 스파게티처럼 꼬이지 않게 잘 정돈하면서 스스로의 길을 가도록 고고하게 이끄는 저변의 생각들도 일관성이 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가 비록 이 6개의 에피소드를 합주하는 6중주의 음악으로 완벽히 연주되었는지 어떤지는 읽는 독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이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6가지의 꿈을 꾸었다. 그리고 그 6가지의 꿈속에서 나는 어윙으로, 프로비셔로, 그리고 루이자 레이, 캐번디시, 손미가 되어서 그들의 생각과 모험을 누렸던 것 같은 인상이다. 소설을 읽는 동안에 누렸던 이 호사스러움을 표현할 길 막막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결국에 한 영혼이 누렸던 이 공통되고도 실질적인 인간과 인간사이에 벌어지는 사랑를 비롯한 이 세월 여파는 세기를 넘나들면서도 수그러들지 않았던 것 같다. 잠시 동안 '혜성모양의 모반'이 나에게도 어디 있지 않을까라는 착각이 들만큼….

 

 


클라우드 아틀라스. 1

저자
데이비드 미첼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0-11-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젊은 거장 데이비드 미첼의 대표작!서로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클라우드 아틀라스. 2

저자
데이비드 미첼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0-11-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젊은 거장 데이비드 미첼의 대표작!서로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kewell

 

 

 

돌이켜보면, 여유가 있을 때, 책을 사서 읽겠다는 것만큼 '뻔한 거짓말'도 없다. 물론 살기 바쁘세상이니까 여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책을 사서 읽는건 부담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 시기가 지나고 나서도 절대 '여유가 있는 계절'은 돌아오지 않는 법이다. 읽고 싶었던 책은 제목 조차 기억나지 않는 망각의 숲으로 사라진지 오래고 그 '여유'도 다른 바쁜 일로 채워진다. '책 읽기'같은 건 그야말로 한량들이나 하는 정말 해도그만 안해도 그만인 미션인 것이다. 안해도 그만이라니까 생각난건데, 책 읽기를 굳이 의식적으로 열심히 한다고 해도 뭐 땅에서 '돈'이 샘솟는 것도 아니고 교양이 늘고 지식이 는다는 '근거없는 믿음'도 영원하지 못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무의미한 되새김질 이전에 책읽기가 가져다주는 각자의 무형의 자산물이 있다고 본다. 그게 풍부한 경험이 되었든 감성이 되었든, 그리고 끊임없이 이야기하고픈 내러티브를 주던간에 그런 걸 잃지 않으려는 바램들로 '책을 본다'고 해야 정확하지 않을까싶다. 나같은 경우에는 책을 읽는 이유로..계속해서 지면에 뭔가를 쓰고 싶다는 의지때문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기억으로 사라지는 추억들에 대한 아쉬움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도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굉장한 빈곤이 아니라면..그 자리에서 집어들고 오는 편이다. 온라인도 좋긴 한데 지면을 만져보고 폰트도 보고, 저자의 서문도 좀 읽고 무엇보다도 책두께, 뭐 등등을 자세히 보려면 오프라인 매장에서 만져봐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몇 권의 책을 집어들고 왔다. 원래 진작에 읽었어야할 책들인데 유야무야 미루다가 드디어 한꺼번에 확 질러버렸다. 봄은 그럭저럭 지나갈걸로 본다. 

 

재닛프레임 <내 책상위의 천사>

헨리 제임스 <나사의 회전>

발레리 라르보 <페르미나 마르케스>

라이스 보엔 < 탐정 레이디 조지애나>

나이젤 슬레이터 <토스트>

찰스 디킨즈 <어려운 시절>

보르헤스 <픽션들>

 

이외에도 근래에 읽어야 하는 책들 목록 중, 존 어빙의 <일년동안의 과부>, 그리고 <노동의 배신>..

3월까지는 나쁘지 않을 듯 싶은데...또 모르지..읽고 싶은게 더 생기면 남은 여력을 다 퍼부을 수도..

 

 

 

Posted by kewell
Review BOOK/소설2013. 2. 8. 20:30

 

 

 

 " 쟤 정말 괴짜같지 않냐? 그렇지? "

그러자 밥은 고개를 끄덕거렸어. 그때 패트릭이 절대 잊어버릴 수 없을 것 같은 말을 했지.

" 쟤는 월플라워 wallflower 야"

그러자 밥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고, 방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지.

그래서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지만 패트릭이 안심을 시켜줬어.

(p69)

 

 

월플라워가 제2의<호밀밭의 파수꾼>이라고 불리우나보다. 아마도 타이틀을 '현실부적응자의 섬'으로 내건 후에 주인공의 내면에서 방황하는 걸 공통분모로 설정하고 성장소설이라는 그럴듯한 카테고리로 묶어버리게 되면 내용물이 뭐든 간에 통조림은 다 '통조림'으로 분류하면 대충 맞아 떨어질거라는 추측과 비슷한 류의 비약들로 요약 될 수도 있겠다. 하기사 '호밀밭'의 홀든이 '통념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드러낼때 짙게 드리우는 쓸쓸함같은 건  '월플라워'의 찰리도 일맥상통이었으니까... 꽤나 우울하고 쓸쓸하며 암울하기까지한 순간들이 줄기차게 등장하고 무엇보다 현실에 섞일수 없다는 주인공의 자책성 독백들이 지면을 수놓을 때 즈음,  어째 청소년들이 겪는 질풍노도의 방황기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정서가 바로 이런게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이 소설에서 찰리는 누군가에 편지를 쓰는 듯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독자들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꽤 고민을 들어줄 것 같은 너'를 알고있다면서 자기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허심탄회하게 편지를 줄기차게 보낸다. 답장을 찰리가 받은  흔적이 없지만 이 편지를 받는 또래의 동년배는 찰리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준비를 한 채, 그의 은밀하고도 깊은 속내에 대해 같이 듣고 고민하게 된다. 이런 이야기를 계속해서 듣다보면 '나는 찰리의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부터 시작해서 '나라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라는 적용의 영역까지 옮아가게 되기 마련이다.

 

간접적이고도 상징적인 '찰리'친구가 한명 생기는 꼴이다. 한편, 이 책의 후기를 보면  현재 미국내 도덕주의자들에 의해서 '월플라워'를 금서목록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하는 주장이 일고 있다고 언급되었는데 이유인즉슨, 약물, 섹스, 동성애 그리고 굉장히 일탈적인 여러 상황들에 대한 묘사가 직접적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냥 밝고따뜻한 영혼을 위로하는 성장소설이겠거니 했다가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소재들과 매개체가 거친것을 알고 흠칫 놀라게 되는 것이다. 미국내의 기득권 부모세대들로서는 눈살을 지푸릴만큼의 파격과 일탈을 미화시키려는 것으로 월플라워을 해석할 소지는 충분하다못해 확신까지 나아갔으리라..


우여곡절끝에 사귄 친구는 동성애자고 누나는 덜컥 임신해서 낙태를 해야하니 같이가자고 하고.., 아버지는 어린시절 지독한 폭력에 시달렸고, 무엇보다 찰리는 친구의 자살, 그리고 유년시절, 헬렌이모로부터 유래한 일련의 사건은 그 수위가 후덜덜할 지경이다. 이즈음되면 국내 독자들이 월플라워의 진면목을 이해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경험적 산물'에 대한 비경험적 추측과 상상만으로 '찰리'를 이해한다는 건 영화감상 수준이거나 그보다 훨씬 못한 '피상적 동감'에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찰리와 같은 동년배 청소녀들은 아마 '진정한 고민'들을 헤쳐나가고 결국 '한계는 없을 것이다'라는 프레이징을 결말에서 보게 되므로 문화적, 사회적 괴리감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항변할 수도 있겠고 (결국 또래들은 서로 통하는 것이니까. 정서적으론 완벽한 방황기의 펭귄들 아닌가.)  또 그만하면 소설이 말하려고 하는 진짜 이야기가 무엇인지 어른들은 놓치고 있다는 지적을 '월플라워'추종자들로 부터 받게 될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소설은 쉽게 읽힐만큼 가볍고 솔직하고 간간이 위트가 버무려져있다. 충격적인 사실들에 대해서는 은유와 모호하을 약간씩 곁들여 놓았으며 헬렌이모 사이에서 벌어진 과거사건은 완전히 적나라하게 꺼내놓은 것은 결말까지 유보해놓았기에 사실상 찰리의 방황근거를 심리적 원인으로 돌려버리는 부분은 완벽히 가려졌다. (사실 이게 제일 컸던 것 같은데 말이다.) 소설에서 공감을 얻는건 찰리가 패트릭과 샘을 만나면서 진심을 터놓고 다가가는 부분이다. 책 제목처럼 '월플라워'는 '파티에서 초대받지 못하거나 파트너가 없는 왕따인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학생들로 치면 '찌질이이거나 뭔가 모자란 또라이거나 ' 완벽히 다른 어떤 스타일의 인격'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소설에서 유일하게 처음부터 지속적으로 찰리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인물은 빌 선생님인데 '찰리'의 문학적 감수성, 그리고 글로 표출되는 독특한 시각을 재능으로 인지하고 그에게 좀더 자기계발과 더불어 '친구들 문화'로 끼어들게 조언을 주저하지 않는 '착한 선생님'으로 등장한다. 인격적으로나 능력적으로나 찰리에게 둘도 없는 멘토역할이 될테지만 그 조차도 완벽히 찰리의 속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며 그저 '비밀스럽게 이야기해준 사적인 대화들을 부모들에게 일러버리는 그저그런 선생님'의 일면도 가지고 있는 정도다. 그래서 찰리가 패트릭과 샘으로부터 멀어지지 않으려고 애썼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이해해주려고 노력하는 친구들은 그들이 유일했으니까...월플라워에서 그나마 순기능적이고 밝으며 희망찬 메시지를 읽을수 있다는 건 '따분하고 지루하며 뻔한' 친구들의 결론 같은게 아니다. 패트릭은 브래드와 은밀한 동성애를...샘은 자기를 한낯 마네킹으로만 보는 크레이그를 만나는식의 '실패할만한 사랑'을 하는 친구들이다.  


그런데도 찰리, 패트릭, 샘은 자신들만의 세계를 공유하며 서서히 서로를 위로한다. 찰리가 엘리자베스에게 숨기지 않고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사람은 '샘'이라는 걸 밝히고 나서도 기어코 셋은 이해한다. 정말 우상과도 같았던 샘이 찰리와 잘되길 빌었던 독자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환각에 취해서 자신의 불안감을 이야기할때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패트릭과 샘이 지켜주지 않았더라면 찰리의 삶은 어느날 갑자기 돌연사한 불행하고도 정서적으로 문제있는 왕따 학생으로 그쳤을 것이다. 언제고 빌선생님은 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현실에 참여하지 않기 위해서 생각속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있다'고..간접적으로 찰리의 독백과 대화들은 너무 많은 생각에 기반한다. 끊임없이 자기를 객관화하고 지나칠정도로 배려하며 과격하게 자기를 학대한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생각과 그를 지배하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보면 '생각많은 솔직한 찰리'군의 친구되기 이야기는 눈물겹다.

 

그래서 말인데, 빌선생님이 건네주는 도서들의 연계관계도 흥미롭다. 왜냐면 조금씩 조금씩 불안감을 해소하며 깊이있고 사려깊은 판단을 내려주길 은밀히 원하는 선생님의 의도가 담겨있는듯해서다. 또 소설속에는 소통에 관한 또 하나의 매개체가 등장한다. 바로 찰리가 패트릭, 샘과 공유한 음악들.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테이프에 담아서 건네주는 그네들의 문화들을 이용해서 찰리가 평상시 자신의 감성을 고이 간직한 음악들을 친구들에게 꺼내놓는 것이다. 아래는 찰리가 샘에게 건네준 테이프에 담긴 음악목록이다.

 

Asleep - 더 스미스,

Vapour Trail - 라이드,

Scarborough Fair - 사이먼 앤 가펑클
A Whiter Shade of Pale - 프로콜 할럼
Dear Prudence - 비틀즈
Gypsy - 수잔 베가
Nights in White Satin - 무디 블루스
Daydream - 스매싱 펌프킨
Dusk - 제네시스
MLK - 유투
Blackbird - 비틀즈
Landslide - 플리트우드 맥
Smells Like Teem Spirit - 너바나
Another Brick in the Wall Pt.2 - 핑크 플로이드
Something - 비틀즈


cf) 영화에서 등장한 데이빗 보위의 'Heors'더 소설에 맞는 것으로 느껴지는데 소설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의 해소는 후반부에 가서나 확연히 드러나지만 과정들속에서도 찰리는 분명히 폭주하는 광기의 소년으로 묘사되지는 않았다. 엄밀히 이야기해서는 심리적 장애를 가진 환자였으므로 통상적인 학생으로서의 고민을 이야기하기는 어려웠지만, 많은 부분들에 대해서는 찰리특유의 솔직함으로 덤덤히 서술했고 또 그것들의 이면에는 자신이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심정을 공개해놓았다. 그걸 읽는 독자들은 아마도 '이렇게 생각할수도 있겠구나'라는 의외의 동감을 경험할수 있다면 이 책은 교묘하게 부모세대들에게도 충분히 납득할만한 소설로서의 기능을 다하는 셈이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건, 찰리가 샘을 보내면서 들었던 샘의 진심들..'너도 어떤 행동을 했어야 했어'라는 말, 그게 찰리에게 커다란 희망과 깨달음을 주었을 수도 있다. 자신이 삶에 있어서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전면에 나서기 위한 준비운동같은 느낌이다.

 

부족하지만 찰리는 영화에서도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에게 한계는 없어" 라고...

 

 

아마 또래들에게는 인생을 두고 살아가는데 있어 용기를 주는 그런 가슴벅찬 독백이 아니었을까.

(참고로 영화또한 잘만들어졌으니 꼭 봐두었으면 ..)  

 

 


월플라워

저자
스티븐 크보스키 지음
출판사
돋을새김 | 2012-12-24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미국의 100만 청소년독자들을 열광시킨 성장소설 『월플라워』.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kewell

 

많은 일들이 지나간다. 언제고 나도 겪을 일이겠지만...

 

또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겠지만, 때로는 마치 아무일 없었다는듯이 나는 그런 것과 무관하다는 듯이 살다가...살다가.. 

반갑지 않은 손님오듯 왈칵 눈물이 쏟아지면 후회고 뭐고간에 다윗이나 솔로몬처럼 베개닛이 썩도록

눈동자가 부르터버릴지도 모른다.

 

언제 가봤더라 ....

 

발바닥 저려올만큼 쏘다닐때도 몰랐던 사실을 지나간 사진을 보고서 알게 된다는 건 늙었다는 건가?

지나가다가 어렴풋이 생각이라도 나면 내려서 걸어봐야겠다. 데자뷰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나

적어도 그때 두고온 '그림자'와의 해후라도 우연찮게 이뤄질지도...그럼 허구의 세계에서 탈출 할지도.....

 

Posted by kewell

어렸을 때 (아마도 초딩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교에서 집안의 가훈이 무엇인지 알아오라는 과제를 내준 적이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가훈'이라는 단어조차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었을만큼 '거창'한 것들에 대한 공포를 간직한 채 아버지에게 '가훈'에 대해서 여쭈었드랬다. 그때 아버지께서는 '뜻하지 않은' 상황에 직면이라도 하신 것처럼 천정을 잠시동안 바라보시고 '정직'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해주셨드랬다. 정직이라니..밑도 끝도 없이 그냥 말그대로 뜻그래도 정직? 정직이 좋은 말이긴하지만 범용적 의미로서는 이보다 더 무미건조할 순 없는데다가 개성이라곤 조금도 없는 그야말로 따분하기 짝이 없는 단어가 아닌가. 물론 그 시절에는 정직이라니..정말 멋있는 단어인가보다라고 막연히 추측하고 한자로 적어주시는 공책위의 어려운 자취를 보면서 뭔가 대단한 걸 적어가는구나라고 멍청하게 생각했었다.

 

무미건조한 '정직'이 가훈이라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고 해서 내가 아버지를 유치하게 생각한다던지 아니면 '그시절의 아버지들이 다 그렇지뭐'라고 애써 몰개성을 폄하한다던지하는 개념없는 자식까지는 결코 아니다. 기본적으로 굳이 논하자면 아버지는 존경의 대상쪽이다. 다만 FC 바르셀로나처럼 아버지를 바라본다기 보다는 레알마드리드의 호날두를 보는 것처럼 아버지의 장점을 본다고 해두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대개 많은 사람들은 현대에 이르러서 완벽한 시스템을 칭찬하기보단 흠이 없을수 없는 어떤 상황에서 부분부분을 더 경이롭게 본다고나 할까..내가 아버지의 장점을 보는 것도 이와 같을 따름이다. (지금도 전체가 완벽히 조화롭다고 말할 수 있는건 바르셀로나 뿐이라고 생각한다. ) 어찌됐든 나이를 먹다보니 가훈이 '정직'이라는 건 거의 당시 임기응변으로 넘어가기위한 아버지의 궁여지책임을 눈치챘다.

 

정직에대한 깊이 있는 철학은 차치하고서라도 그런걸 자연스럽게 체득할만한 당신만의 관점같은게 나한테 전달된게 없으니까..불만은 없지만 아마도 그럴듯한 워딩이 필요하셨으리라..자식들에게 왠만하면 대중적이고도 그럴듯한 가훈정도는 있어왔다라고 '족보'스럽게 언질해줄 의무감같은 뭐....그런 것들의 일종이 아니었을까싶다. 그러다가 나이를 조금씩 먹고 나도 언젠가 자식으로부터 '우리집의 가훈은 뭐예요?'라고 기어코 듣게 될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가훈을 할아버지가 '정직'이라고 했다고 나까지 '정직'을 대를 이어 가훈으로 설정하기에 심히 민망스럽다. 적어도 난 '정직'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머니까...'임기응변' '변신' '배반' 이런쪽이 더 가까울 판이다.

 

그래서 말인데, 난 가훈을 이렇게 설정해야 겠다라고 마음 먹었다.

 

'그런가보네, 됐고..'

 

 

이게 무슨 가훈이냐고? 가훈이란게 별거 있을까. 의미를 두고두고 꼽씹을 만큼 교훈적이거나 깨달음이 있으면 될뿐이지 성인들의 명구를 걸어놓는다고 해서 그 명언들이 집안벽에 스며드는건 결코 아니니까..설명하자면 이런 거다. 우선 저 가훈을 둘로 나뉘어서 생각해야 한다. 그런가보네는 외부적으로 표출하는 자세이자 태도, 그리고 '됐고'는 내면으로 추스리는 마음가짐정도다. 세상사람들에게 굳이 깊게 관여하지도 말고 간섭하지도 않는 그런걸 좋아한다. 충고랍시고, 혹은 걱정이랍시고 오지랖넓게 이것저것 지적질하는 인생은 그야말로 길가다가 똥밟을만큼 불행연속의 격변을 맞아들이기 쉽다. 세상은 자고로 스스로를 추스리고 다른 사람의 삶을 묵묵히 관조하며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이런 해석이 미쳐서는 가끔 곤란할 것이다. 무관심처럼 비춰질수도 있으니까...그러나 기본적으로는 난 저런 삶의 자세를 좋아한다.

 

남에게는 악의없는 덤덤한 자세, 그리고 스스로에게는 다시한번 자신을 돌아보는 내실있는 생각들...좀 유치하긴해도 오히려 가훈으로 삼을만큼 실효성있다고 본다. 나중에 자식들의 선생님들이 이에 대해 저질스러운 과제였다고 평이라도 한다면 자세한 해설 가이드를 A4용지로 한장 뽑아서 첨부해줄 작정이다. 많은 사람들은 너무 많은 경구와 의미에 취해서 자신도 지키지못할 괴이한 괴리감을 가훈으로 건다. 멋있기야 할테지만, 그게 무슨 고생인가. 맞지도 않은 가훈땜에 이중인격자라는 소리를 듣기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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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빠진 훈제청어의 맛 (A red herring without mustard )

건지 감자껍질 파이 북클럽 (The Guernsey Literary and Potato Peel Pie society)

월 플라워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

 

시기가 좀 지나긴 했지만 눈여겨보던 책들. 차근차근 읽어볼 계획.

가끔 삶이란 '겨자빠진 훈제청어처럼 공허할수도 건지감자껍질 파이 북클럽처럼 치열할수도 월플라워처럼 혼란스러운 시기가 늘 있어왔다고 생각한다. 다들 그렇지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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