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BOOK/소설2013. 8. 3. 11:00

좋은 커피란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천사처럼 순수하고, 그리고 사랑처럼 달콤하다  - 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



어느날 아오야마 마코토(?)는 우연찮게 '커피점 탈레랑'이란 카페를 들르게 된다.  그리고 그곳의 바리스타인 기리마 미호시의 커피가 남다르다는 것, 또 이 바리스타의 또 다른 재능, 일상에서 여러가지를 추리하고 (그녀표현대로  '잘 갈아서') 결론에 도달하는 특유의 논리적인 설명에 매료된다. 서서히 그녀에게 마음이 끌리는 아오야마는 자기도 모르게 발길을 탈레랑으로 옮기게 되고 조용히 번져가는 커피향과도 같은 미호시의 은밀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수첩>이 의외로 일본에서 베스트셀러의 대열에 올랐었나보다. 의외라는 말은 본격적인 추리계열의 책들중에서 그다지 충격적이라든가 임팩트가 강해서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던가하는 부분은 없다시피하는데도 작가의 초작치고 엄청난 기세로 판매부수를 올렸다는 점에서다. 우선 이 책을 스윽 대충 넘겨보면 라이트노벨스럽다는 의구심을 피할 수가 없다. 스토리위주로 흘러가면서 철저히 가볍고 톡톡튀는 설정을 무기로 삼는 전형적인 소설로. 아무리 봐도 표지는 거의 일본 연애시뮬게임에서나 나올법한 카툰애니 일러스트레이션이니 어떤 측면에서는 소설선택기준의 비주얼부분은 확고하다는 느낌이 들어버렸다. (가벼움을 싫어하는 독자는 표지만 보고 내려놓았을 것이다.)


어찌됐든 이 소설의 전반적인 구성이나 느낌은 표지느낌을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번역으로는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들을 주로 번역하신 양윤옥씨. 물론 1Q84처럼 깊이가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나미야 잡화점같은 치밀한 전개는 애초부터 어려운 것이고 흐름, 전개같은 것들은 후반부로 갈수록 어떻게든 결말을 모두다 챙기면서 매조지하겠다는 의지때문에 어수선하고 정신이 없다. 원래 데뷰작들이 그런거지라며 위로 할 수 있었던 건,  초반부의 신선한 아이디어, 그리고 참신한 전개, 튀는 에피소드와 대화..무엇보다도 기리마 미호시의 매력적인 캐릭터성..뭐 이런 것들 아닐까. 그 좋았던 설정이  점점 먹물을 먹은듯 우려의 어두움이 몰려오더니 그만 흠뻑 소나기를 쫄딱맞고 이건뭐지..왜 이렇게 결말이 가는거지라고 좀비처럼 되뇌이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아 작가님께서 의욕적으로 데뷔하셨지만 여기까지 온 것만해도 다행이다 싶다. 뭐 그럭저럭 나쁘지않은 수준이나 아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닌터라 일일히 거론하기는 어렵다. 차기작에서 향상시켜주세요 라고 좋게 넘어갈수도 있겠지 처음인데 이 정도만 해도 다행이다 싶었는데 우습게도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을 보고 좋게 보려던 마음이 싹 가셔버렸다. 이건 아무리 봐도 비블리아 짝퉁같은데라는 의구심이 스물스물 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런던스타일 책읽기>의 닉혼비는 자기칼럼을 좋아하는 독자 캐롤라인한테 걸으면서 읽다가 가로등에 부딪힐만한 책목록을 알려달라고 하면서 기어코 목록을 받아들었고 그 책을 사서 읽고 한마디했다. '가로등에 부딪힐만큼 대단하지는 않았다'고...탈레랑도 화려한 표지에 못미치는 재미라고 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비블리아 고서당에 비하자면 뭔가 중요한게 빠져버리는 듯한 허전함이 든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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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자체는 나쁘지 않은 이야기들이었다. 그렇다고 여타 일본 추리소설마냥 어느날 주인공이 미호시에게 해결하지 못하는 미궁의 사건을 의뢰하고 그녀는 움직이지도 않고 조용히 커피를 만들면서 사고의 고리를 따라 아오야마에게 숨겨진 사건의 이면을 설명해주고 미궁에 빠졌던 살인사건은 그녀를 통해 모티브를 얻고 이면에 숨겨진 기발하고 놀라운 비밀을 하나둘식 밝혀주는 식었어도 평타수준의 추리소설이 되었을 거다. 좀 에퀴르 포와적이거나 미스 마플적이 된다고 세상에 누구도 캐릭터 재반복이냐고 힐난하지 않는다. 다만 미호시는 비블리아의 시오리코 오마쥬아닌가. 아쉽게도 미스테리한 과거. 조용한 성격. 그리고 치밀한 추리능력. 누가봐도 예쁜 외모. 고서를 다루는 시오리코나 커피를 다루는 미호시나...가히 이정도되면 설정 표절이 되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 든다. 다들 뭐라 안하실려나 모르겠다.  


게다가 읽는내내 의심해봤는데 고우라 다이스케가 시오리코와 묘한 애정관계를 형성하는 것조차 닮아버렸다. 아오야마 마코토가 미호시와 서로 가까워지는 이 플롯의 유사성을 두고 미카미 엔은 뭐라고 할까. 탈레랑의 전략은 나쁘지 않았는데 비블리아 고서당의 레벨과 비교하자니 하자투성이의 소설처럼 느껴진다. 치밀함도 덜하고 캐릭터의 몰입감도 비블리아 쪽이 더 좋다. 아쉽게도 비블리아를 보지 못한 독자들이 탈레랑을 본다고 가정한다면 그나마 좀 나은 평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목까지 이렇게 비슷해서야 동어반복도 어느정도지 비블리아 고서당과 맞붙지 않은게 더 이상한게 아닐까. 그렇다면 비블리아를 봤던 독자들이 탈레랑을 봤을 때 느끼는 기시감은 묘한 불쾌함으로 남을 수도 있다.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것들이 세상에 단 하나뿐이 아닐수도 있겠지만 탈레랑은 아무래도 비블리아를 답습했다는 의혹의 눈초리를 벗어나기 힘들것 같다.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 1

저자
오카자키 다쿠마 지음
출판사
소미미디어 | 2013-07-0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일본 열도를 뒤흔든 커피 미스터리 걸작, 마침내 출간!커피를 좋...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kewell
Vanilla Essay2013. 2. 21. 20:46

어느날 Espresso 한잔을 옆에 놓고 몇개의 책을 고르던 중 아들이 손에 뭔가를 들고와서 말한다. "이렇게 '맛없는 커피를  이길만한 소스는 역시 이것보다 좋은게 없다고 생각해~ " 라면서 Tabasco를 신속하게 3번 흔들어 뿌려놓았다. 에스프레소에 타바스코라...역시 통념적으로 보면 '이건 이제 커피가 아닌 셈이다' 아들을 혼내건 말건 이렇게 해서 창조된 이 음료를 두고 뭐라 불러야할 지는 부차적인것이고 아들의 행위에 대해서 그럴듯한 용기와 의도하지 않았던 상황에 대한 설득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타바스코 뿌려진 에스프레소에 대한 변명을 아들로부터 들을 권리도 있는 것이고...어찌됐던 친구는 나에게 이런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난 아마 아들을 꾸짖었을 거고..나중에 그는 아빠가 통념에 갇혀서 유머따위는 잊고 사는 고리타분한 아빠였다고 말할거라고 했다. 그게 싫다는 뜻이다. 그깟 에스프레소에 타바스코 몇방울 흘린것에 대해 화좀 냈다고 아들이 그렇게까지 뭐라고 할리가 있겠나....


그런데도 친구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아들에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하는 부모된 마음같은게 사실 두렵다고 한다. 음..이렇게 말하면 진지하게 받아줘야겠지..잠시 같이 그의 심정에 동기해볼 요량으로 고개를 같이 숙여 고민하는 척좀 해봤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것 몇가지.  결국 영향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야..그러면 그런줄 알아' 류의 비슷한 강압성. 무대포의 어른 노릇이라고나 할까.이런 것도 영향을 끼치고 싶은 부모의 본능이다.  결국 아들이나 딸이나 내 영향력아래에서 한동안 찍소리못하고 순응하길 원하는 게다. "조금만 더 커봐라. 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할거야. 이 말도안되는 무식한 환경은 정말 어이가 없어"...시나리오는 이렇게 흘러간다. 영향력에 대한 태도는 사실 이런 류의 에피소드에만 해당되는건 아니다. Facebook도 그렇고 Twitter도 그렇고 다 의사표시와 댓글도 다 표출이고 영향력행사다. 유사 적극성 이면에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출하고 그걸 인정받고 싶은 '영향력'에 대한 부분이 있다고 믿는다.


알렉스 퍼거슨경은 이를 두고 '평생에 쓸데없는 짓이 트위터질'이라고 폄하했지만, 사실 그게 틀린말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굳이 뭔가 영향력을 그렇게 똥싸듯이 싸질러대면서 토막토막 간판 내건다고 뭐 달라지는것도 없다. 그저 지루하고 또 지루하고 따분할 따름이다. 본인은 의미를 덤뿍맏아서 그럴듯하고 진지하게 써내려간 페이스북 토막글을 보고 있노라면..이거야 말로 감정 쓰레기라는 생각이다.아마 그걸 두고 말한 거겠지..퍼거슨 할배는....아마 그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심리전을 펼치기 보단 더 실용적이었을 거다.  예를 들면 다음주 벌어질 맨시티와의 일전에 대항할 포메이션과 선수들의 컨디션...'맨시티는 시끄러운 이웃일뿐 우리의 적수가 아니다' 라고 트위터 한줄 쓰면 속이야 시원하겠지만 그건 퍼거슨 스타일이 아니다. 그게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고 믿을테니까.  영향력이라면 '헤어드라이기가 제격이지' 라고 조용히 읇조릴 스타일이라면 모를까. ..


이야기가 겻가지로 샜지만 통념에 기반한 교정은 가끔 창의성과 의외성을 죽인다는 그런 느낌이 불현듯 떠오른다...가끔가다가 세상속에서 아주 지루해진 어른들을 볼 때면 그게 옳다고 믿는 자기만의 범주안에서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은 채 굳어가는 다비드 상같다는 느낌이 든다. 멋지지만 절대 변하지 않는..그래서 절대 변하지 않는 자신이 언제나 그럴듯하다고 생각하고,  은근슬쩍 시대에 뒤쳐지기는 싫어서 변해보려고 애쓰지만 몸도 피곤하고 머리도 고단하고 무엇보다 머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이 싫어진다. 동상은 그렇게 때가 끼어가고 푸르스름하게 변해갈거다. 그러다가 아무도 그걸 우러러 보지 않는 시절이 온다. 바야흐로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어른'이 되는 거다. 


친구랑 이야기했던 어른의 영향력이란 이런 것일라고.... 친구도 나도 에스프레소에 타바스코 뿌린 걸두고 '한번즘 이건 어떤맛일까'라고 웃으면 맛좀 보고 '이건 정말 구리다. 다음부턴 다른 소스를 연구해봐라' 라고 말할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었으면 한다고 킬킬거렸다. 그게 쉬울리가 있나. 나도 어려서부터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폭압적이고 강압적인 얼차려를 랜덤으로 맞아댔는데 그 DNA가 없을리가..그래도 말이지..가끔 조용히 그 DNA에 저항하는 항체같은게 후천적으로 생겼으면 좋겠다고 상상해본다. 그래야 좀 세대도 바뀌고 ..좀 재밌어지고 그럴게 아닌가.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