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illa Essay2013. 2. 22. 14:44


상상의 부스러기를 찾아헤매는 헨젤과 그레텔. 전시회를 가다.

 

 

 


난 선천적으로 소음을 견디지 못한다. 물론 '소음'이란건 상대적이긴하다. 시끄럽다고해도 누구말처럼 '의미'가 있다면 '스윙'이 있는것 처럼..뭔가 영향을 미칠 것 같은 소리라면 그건 더 이상 시끄러운 소리가 아닌거다. 굳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대중적'으로 알려진 장소에서 벌어지는 소란스러운 '화이트 노이즈'같은 걸 견딜 수 없다는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래서 말인데 클럽이나 나이트나 데스메탈이상의 록공연같은 곳에서 인내를 시험받을 때는 너무 괴롭다. 머리는 절로 떡이지고 피부는 끈적이고 편두통이 쏟아져들어오거나 목이 간질간질하면서 기침이 끝없이 이어진다. 분명 소음 알레르기겠지? 그렇다고 모든 장소에서 '여기 조용히 합시다' 라고 크게 어필할 수도 없는게 그런데가 도서관이 아닌이상 딱히 '조용히 해야만 하는 장소'는 아니지 않은가...그러다보면 그런 소리가 날만한 곳에는 잘안가게 되고, 결국 그쪽 문화와는 유대관계가 끊어진다.  역시 다시 생각해봐도 소소한 소근거림이 발밑에 채이고 바람은 선선하고 공간은 넉넉하고 빛은 풍부한 곳에 열렬함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동네에도 그런 카페가 몇개 있었다. 하나는 처음엔 굉장히 언더그라운드스럽고, '세계2차대전,  은밀히 활동하던 첩보활동을 하던 지하벙커'스러워 좋았는데 점차 시간이 갈수록 경영과 재정에 문제가 있었는지 맥주와 음식을 메뉴에 추가하면서 살벌한 전쟁터가 되버렸다. 여기저기서 수류탄이 터지고 탱크가 불을 뿜었다. 읽으려고 들고간 책은 사방에서 터지고 쏘아대는 수다들에 작살나서 바닥을 뒹굴고 이미 나는 쾌유불능의 전사자가 되어 돌아온 뒤..다시는 그 전쟁터로 가지 못했다. (풍문에 듣자니 그 베트남전 같은 그 살벌함이 여전히 게속되고 있다고 한다.) 왁자지껄한게 나쁜건 아니다. 정말 사람사는 냄새라는건 그런 곳에서 더 진하기 마련이니까.. 시장이나 극장같은 곳은 조용하기보단 좀 소란스러울 때 그 역할을 다하는 느낌인 것과 동일하다. 아무튼 그런 곳은 그런 곳의 역할을 다하면 되고, 일정부분 조용한 어떤 영역에 혼자 들어가서 뭔가를 생각하고 가늠하고 상상하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하루 느지막한 커피'처럼 댕길때가 있다는게 문제다. 그땐 정말 평상시 생각지도 못했던 네버랜드의 파편들이 랜덤으로 등장해주신다. 일부러라도 생각하기 어려운 아이디어들이 판치는데 허우적거려서 하나라도 붙잡고 메모라도 해야 할 판이다. 그리고 그런 아이디어는 '소란스러운데서' 잘 안떠오른다. 난 그게 문제다.


테스트해봤는데 평일, 오전..조용한 전시회장을 대중교통을 타고 가서 발품을 팔면서 하나둘씩 거닐면서 구경할 때, 이 효용력이 좀 세다. 마치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 몇시간 앞두고 레드불이라도 퍼붓고 사물이 뚜렷해진다면서 기뻐하는 어리석음같은게 그 전시회장에서 샘솟는다. 얼마나 갈지 알수 없으니 지금 빨리 생각해두고 기록하고 해야 한다고 다짐하니 마음이 급해진다. 복도 소파에 앉아서 아무 필기도구나 꺼내고 아무책 앞장이나 뒷장 여백, 그것도 안되면 카페에서 쑤시듯 뭉터기로 집어온 냅킨티슈를 꺼내 거기에 박히도록 쓴다. 날아가지 못하게...그 생각이 무사히 안착할 수 있도록...반복적으로 비스한 경험을 하다보니 전시회의 소중함이 남다르다. 솔직히 말해서 전시회 테마도 관심이 없다곤 못하겠는데, 난 전시회를 가는 과정과 거닐면서 생각하는 내 머리속에 더 목적이 있는 것 같다. 바쁠때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그런 생각들의 쉼터라고나 할까. 

 

내 공상은 다 전시회에서 집어오는 것 같다. 그렇게 보자면 인기있는 전시회는 별로다. 사람이 많이 몰리면 그 순간 그곳은 전시회라기보단 바자회가 된다. 바자회가 되든 전시회가 되든 전시회물품과 목록은 그대로겠지만 하나둘 사라져버린 여백이 안타깝다. 왜냐면 그 빈 여백에서 난 귀중한 상상의 부스러기를 묻혀오기 때문이다. 부스러기가 없는 전시회는 죽은 전시회란 뜻...난 오늘도 부스러기가 많이 떨어져 있을 것만 같은 전시회를 뒤진다. 마치 헨젤과 그레텔처럼 오래된 숲속에서 뭔가를 만날수도 있다는 두근거림을 안고서..전시회 숲속을 거닌다.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