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BOOK/에세이2014. 1. 23. 22:55


한동안 이것저것 먹고살기위해 두리번거리는 통에 책 모양 비슷한 뭐라도 읽긴 읽어야겠는데라고만 생각했다. 뭐 세상일이란게 그런거지 때론 어느날 정신차려보니 내 키보다 더 자라있었다는 남쪽나라의 대나무보다도 소리없이 쌓여가는 책들의 탑 높이에 놀라곤 했다. 햐 언제이렇게 쌓였어 읽어야 할 책들의 바벨탑이로군... 시간을 한탄하는 것도 여유가 있을 때다. 대부분은 세상의 시계는 다른 방법으로 초침을 움직이니까. 인지할 틈도 그리고 깨달을 틈도 주지않고 무조건 달리게만 한다. 풀려버린 두루마리 휴지를 꼬랑지에 매달고 뛰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뭔가 큰 실수를 했다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느낌이라니... 나도 풀린 휴지를 끊어버리고 그 자리에 앉아서 빨리 모아놓은 책들을 읽어야했는데라는 생각정도는 한다. 핑계가 너무 많아서 문제인거지. 


어쨋든 요즘에는 책을 미션수행하듯 해치우듯 읽는건 사절이다. 그렇게 읽는건 읽는 행위 이상의 무엇도 남겨주지 않더라. 쫓기듯 읽고 표지를 덮고 책장에 쑤셔넣으면 '무협지 마지막권 말미에 붙어있는 '완결'이라는 단어를 읽어버린 것만큼 허무하다. 읽다가 도중에 아무런 깃발이 들려지지 않는다면 (잠시 생각하게 되는 걸 난 '깃발을 든다'고 사용한다.) 그저 똥만 싼 것과 같을 뿐이다. 내 피와 위장과 뇌에 어떤 영양소를 공급했는지 알길이 없다. 내 독서의 질량에 어떤 질감의 살이 붙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똥만 싼거지..게다가 이런 읽기에는 아무런 추억도 기억도 공간을 할애해 주지 않는다. 그러고보면 뇌라는건,...아님 감성이라는건 굉장히 이기적이지 않나 마음에 드는 몇개의 문장과 상상속에서 스물거리듯 올라왔던 이미지들 몇 장면에게만 저장소를 허락한다. 그리고 나머진 다 너저분한 잡스러운 것들이라 다 잊어버려주겠다고 통보한다. 그렇게 해서 잊혀진 책들이 몇 권인가...이런게 리얼 비효율라 말할 수 있는거다. . 어찌됐든 개인적으로 책읽기란 '해치우듯' 읽어선 곤란하다는 말 하려고 이렇게 길게 주절거렸다.


그런 점에서 요 며칠간 눅눅히 읽어갔던 이 책은 정말이지 뭔가를 푸짐하게 먹고 제대로 소화시킨 느낌이다. 바로  빌 버포드앗뜨거워-'Heat' 이다. 여기에는 저자가 갑자기 뉴요커의 삶을 살다가 마리오 바탈리(뉴욕에서 밥보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유명한 요리사)를 만나면서 '요리사'의 삶으로 자신의 삶을 바꾸는 희한한 모험담이 등장한다. 이게 소설이냐고? 그랬으면 위트와 농담으로 뒤섞인 그의 문학적 감수성을 높히 평가하면서 '갈등구조'의 적재적소를 비판적으로 저미듯 노려봤을 것이다. 이래가지고 재미가 있겠어 여기서 한번 주방을 엎어버려야지..앞건물에 경쟁자 레스토랑이 등장하고 새로운 요리개발에 매진하고 경연대회에서 일등먹고 ..등등...그렇게 나갔어야 했겠지...그런데 이건 공교롭게도 소설이 아니라 실제 있었던 체험기다. 진짜로 요리사의 삶을 경험해보려고 주방으로 뛰어든 기자가 자기란 이야기다. 


뭐 자세한 이야기야 나중에 리뷰라도 쓰면서 절절히 써볼 작정이지만, 슬쩍 끄적여두는 이유는 책을 읽은 요 며칠간의 경험이 적어두지 않으면 휘발되어버릴까봐다. 어디서든 치열한 삶이 있고 언제든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이벤트들이 도처에 널려있을 것이나 실제로 이걸 해볼려고 발을 떼는 인간들은 극소수다. 가히 이정도의 모험담은 일생을 두고 한번쯤 해볼만한 치열함이 아닌가... 나도 내 현실의  프레임의 골조를 절단해 줄 전기톱같은 결단력이 있었으면 했는데도 그렇게 안되던데...... 이 아저씨는 그야말로 폭풍처럼 자발적으로 주방으로 처들어가 온몸에 요리흔적을 생채기처럼 새겨댄다,  그야말로 놀랄 지경이다. 400페이지가 넘어가는 책두께가 쉴새없이 넘어가고 요리와 음식의 즐거움이 오후 한창 때의 식당처럼 부산스럽게 쏟아진다. 


우리는 요리와 음식에서 레시피적인 가이드만을 원하곤 한다. 내가 마늘을 세워서 칼로 저밀때 어느 각도로 내려야 하는지에 대해서 애매하게 고민하거나 달궈진 플레이트위에서 뜨거운 열기를 맞아가면서 이렇게 고단스러운 폭풍 점심의 손님들을 감당해낸다는 그 느낌이 어떤지 내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이런 것들은 대다수의 독자들이 원하는 요리책의 본분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서 문학적 감수성을 원했겠는가. 에세이정도의 소소함만을 목표로 하기에는 그냥 딱봐도 거대 사이즈의 사전 정체성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다.  보기만해도 '이건 패착이야 이렇게해선 에세이로서 성공할수 없겠어'라는 소리나 들을 테지..이유야 가져다가 붙이면 널렸지만 정작 난 이 책을 진득히 읽을수록 '패착'이란 단어따윈 꺼낼 엄두도 나지 않았다.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만한 경험을 한 것만 같은 그런 현실감과 동조의 감정들. 그리고 마치 양념이 베어나올 것만 같은 책장을 넘기며 나도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했던 셈이다. 다 읽고 나니 든 생각인데 요리에 관한 책조차도 굳이 메뉴얼적으로 써대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요리책에는 생뚱맞게도 문화와 개인적인 대소사가 머릿말로 등장하고 뒤 이어 계량적인 이야기로 본격 다큐가 되곤 했다. 그러지말고도 너무 위트있고 너무 절절하고 웃음이 날만한 일들이 음식의 세계에는 있다. 간만에 즐거운 경험이었던 것 같다. 굳이 요리사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도 한번 정도 읽어보면 삶의 경험을 다른 브랜치에서 느껴본 것만 같은 기분좋은 착각을 느낄수 있을 것이다. 




앗 뜨거워(Heat)

저자
빌 버포드 지음
출판사
해냄출판사 | 2007-01-30 출간
카테고리
요리
책소개
지지고 볶고 튀기고 썰고 찢고! 인생에서 배워야 할 모든 것은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