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illa Essay2013. 7. 22. 10:08

레이시 이야기 - 스티브 마틴 (~150p까지 읽음)

벨더머 사례의 진상 - 에드가 앨런 포.

런던 스타일 책읽기 - 닉혼비 (2004년 8월분까지 140p) 





내가 경험한 '비내리는 정경'은 하늘에서 누군가가 분무기 개폐장치를 미디엄으로 해놓고 열심히 분사질 하듯 내리는 것들이 대개였다고 한다면 지금은 누가 물호스를 대고 그냥 수도꼭지를 열어버린 것같이 들이붓고 있다. 이거야말로 오랜시절 벌어졌던 제 1 의 심판이었던 노아의 홍수 전초격의 뉘앙스 아닐까싶을 정도로...장마전선이 다시 올라와서 그렇다는데 이 정도라면 우산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없고 그냥 허벅지 아래는 물이 묻어도 상관없는 차림새로 돌아다녀야 한다. 더우기 월요일 출근일이라면 회사오너들이 잠시나마 한량없는 아량을 베풀어서 가벼운 샌들과 반바지를 출근시간 만큼이라도 허용하기를 쓸데없이 공상해본다. 물론 비현실적이란걸 알지만 때로는 개중에 굉장히 즉흥적이고도 인기영합주의가 목마른 인기바닥의 CEO라면 한번 해봄직스럽지 않을까.


나야 집에서 100 미터정도를 걸어서 지하철로 들어가고 한번 갈아타고 회사앞 50 미터 부근에서 나오니까 징그러운 물폭탄을 하반신에 샤워하듯 뿌리고 추적추적 엘리베이터로 들어갈 짜증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좀 덜 할 뿐이지..) 많이 보송보송한 상태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이런 날에 옴싹달싹 안하고 몸끼리 닿치 않으려고 애쓰고 또 애쓴다. 나도 귀퉁이 자리에서 누가 건드릴까봐 이어폰을 꼽고 Zooey Deschanel의 'SUGAR TOWN'Chet BakerTis Autumn, September song을 듣고 있었다. 물론 위의 책들도 간간히 읽으면서...


출근거리가 상당해서 오며가며 얇은 단편정도는 그냥 휙 다 읽어버릴수는 있을 정도인데 가끔가다가 하나의 책으로만 이동하는게 질릴때가 있다. 그러니까 주구장창 앉아서 하나의 책만 몇시간이고 읽는 일은 이제 잘 안되는 듯싶다. 에전에는 흠뻑 빠져서 읽는게 가능했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3~4권의 책을 오가며 읽는 게 더 집중력이 올라가는 경향이 생겨버렸다. 덕분에 가방에 책이 3~4권이 들어있어서 무거워지는 단점이 있다. 이런 날 과다한 업무와 예기치못한 사고라도 터지면 이 책들은 그냥 짐이 될 뿐이다. 읽지도 못하는걸 바리바리 싸들고 돌아다니는 '전형적인 공부 못하는 학생'처럼 될테니까 말이다. 


레이시 이야기는 초반부에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처럼 신참내기 레이시가 빠르게 업무에 적응하는 것처럼 업계의 동향같은 걸 스폰지처럼 습득하나싶었는데 레이시는 여기에 하나를 더 크림치즈처럼 발라 놓았다. 그건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인 섹스스타일, 그리고 불법으로 자행되는 뒷쪽 세계를 왠지 이용해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욕망 아가씨 설정이다. 그래서 크게 잘라놓은 치즈케익 2번째 챕터부터는 본격적인 '스팩쌓기' '인맥넓히기'로 귀의하셨다. 점점 더 타락할른지 묘하게 균형을 잡고 '정신차려 레이시'라고 화자로부터 충고를 받던지 하겠지. 이 소설의 매력을 생각하자니 오래전 '클루리스'의 알리사실버스톤이 생각난다. 외모도 죽여주고 인기도 많고 학교에서 앞서가는 패션 아이콘, 그리고 부유한 집안의 도도한 아가씨처럼 살지만 왠지 채워지지않는 공허함과 내실없는 생활속에서 자신의 무언가를 채워줄 남친이 바로 곁에 있다는 걸 깨닫는 스토리였던 걸로 기억한다. 


알리사처럼 레이시도 그렇게 갈 가능성이 크지 않겠지. 그럼 너무 진부하고 너무 90년대적이니까. 하지만 캐릭터성은 그런걸 기둥으로 삼았나보다 톡톡튀고 아무렇지도 않은듯 남자들을 이용해먹을 줄 알고 야망을 적당히 조절해서 뒤통수를 치고 한걸음씩 재수없는 상사들을 밟고 일어서려는 당돌한 모습들은 다 캐릭터 성이니까. 사건에 대한 전개나 흥미진진함은 아직까지 별로다. 모험담은 없고 그저 미술계, 전시, 소더비에서 얼마나 의미없는 일들이 그럴듯하게 치장되어서 보여지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지적질이 난무할 뿐이다. 중간중간에 레이시가 얼마나 매력적이고 쿨한 여성인지를 인지시켜주기 위해서 남자들에게 적선하듯 허락하는 장면들은 마치 이 정도의 업계에서 살려면 몸정도야 적절히 베풀수 있어야 한다고 눅눅히 이야기 하는 것 같다. 


앨런포의 벨더머 사례의 진상은 몇페이지 안된다. 단편선 정도라 지하철 책읽기 목록 제 2편으로 적합하다. 메인 디쉬들 사이에 곁들여진 디저트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읽다가 느낀 건데 러브 크래프트 뉘앙스가 철철 넘치신다. 혹시 크래프트가 포의 이 이미지를 차용했나 싶을 정도로 크툴루 신화를 읽다가 슬며시 들어버린 건데 아마도 포가 크래프트의 저작들을 보면서 슬며시 씨익 웃지나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런던 스타일 책읽기' 은 줄기차게 읽고 있다. 무자비한 닉의 책들 평가가 피식피식 거리는데 어려운 책을 애써 위로 보호하거나 그럴듯하게 포장해주지 않아서 다행이다. 일관되게 책읽기를 안하면 어떠냐는 비아냥도 애교 스럽게 들리기도하고..


어찌됐든 비는 오고 책은 잘 읽히는 날씨다. 조명이 좀더 눅눅했으면 좋겠지만 그럼 회사가 아니라 카페가 되겠지. 월요일 아침에 침대에서 나오기 싫다는 생각은 이런 날씨에 더 진해지고 샷이 더 추가되는 경향이 있다. 


Posted by kewell
Vanilla Essay2013. 7. 21. 17:14

2013.07.21(일)

1.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무라카미 하루키.

2. 도둑맞은 편지 - 에드가 엘런 포

3. 런던스타일 책 읽기 - 닉혼비. 



가끔 이런 날씨에서는 책읽기 만큼 좋은 '시간보내기'가 없다고 생각한다. 책읽기의 단점이라면 '이걸 누구와 함께 하는 뭐 공유의 활동'이라고 말하기 힘들다는 것과 오래도록 시간을 보내고 나서도 더 읽고 싶은 것들이 많다는 점 정도다. 그렇다고 해서 책을 마냥 읽기만 하고 몇 권 연속으로 읽었다고 해서 내 삶이 윤택해진다던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책을 읽는 건 그저 읽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준다고 스스로 위로하지 않는 편이다. 책은 책일 뿐이니까. 물론 교훈도 좋고 정보도 좋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그냥 읽음으로써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고 새로운 모험을 한다고 생가하는 정도다. 


최근 책을 구입하는데 약간 인색해졌는데 그 이유는 '좋아하는 책'들을 이미 꽤 많이 사 놓았기 때문이다. 읽지 않는 책들이 대략 10권 남짓 되니까 굳이 새로운 책을 구입해서 거기에 더 보탤 필요성이 없다. 그런데도 책이란 묘해서 서점에가면 아직 읽지 않는 '의무감'비스무리한 것들이 vol 1. vol. 2 ... 처럼 구비되어있어도 자꾸 더 사게 되는 묘한 구석이 있다. 생각해보면 약 20권 안밖에서 이 읽는게 다 바닥나지 않도록 무의식중에 조절한다고나 할까. 


하루키의 수필집은 여전히 꾸준히 읽는 책이다. 최근 '저녁무렵에 면도하기'를 비롯한 무라카미 라디오 연작 시리즈는 3권다 재미있게 읽었다. 문학동네에서 내놓은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발렌타인 데이의 무말랭이',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 '해뜨는 나라의 공장'그리고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같은 에세이들도 우후죽순처럼 새발간되었드랬다. 시간이 좀 되긴 했는데 다자키 쓰쿠루 이야기를 듣는 것 보다는 차라리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는게 더 편하고 더 친근감있고 더 담백하고 더 산뜻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 소설보다는 에세이가 더 인기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하루키의 에세이는 감각을 담아서 넘기는 활자많은 잡지 정도의 가벼움이 있어서 부담이 없고 공감도 간다. 아마도 '강요'가 없고 '고집'이 없어서 그런가. 


그리고 에드가 엘런포의 '도둑맞은 편지'는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중 1권으로 보르헤스의 '픽션들'을 읽다가 불현듯 충동에 이끌려 바벨 도서관 시리즈를 무턱대고 다 읽어보리라 맘먹어서 사둔 책이었다. 선구적인 포의 스토리 라인과 정서가 이젠 무감각하리만큼 일상적인듯 되버렸지만 여전히 활자로 읽을 때 느끼는 새로움이란게 있다. 그래서 더 좋다. 어디선가 '우울과 몽상'에 대한 포의 정신분석학적인 내용의 분석서를 본 적이 있었는데 사실 그런 성향이나 배경 따위를 읽으면서 아 그렇구나 그래서 포가 이런 소설들을 쓴 거였어라고 할 필요가 별로 없다. 그저 그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그가 뿜어내는 기묘한 이야기의 매력만으로도 그의 정체성을 대변할 수 있다. 아무튼 포를 비롯한 바벨도서관 시리즈를 줄기차게 읽어볼 작정이다. 얼마나 읽을 지 알 수 없지만...


닉혼비의 런던스타일 책읽기는 그동안 사리라 마음 먹었던 책이었는데도 시간을 미루다가 못샀던 책이었드랬다. 그래서 큰맘이랄것도 없는 굳은 의지를 동원해서 기어코 이 책을 집어들고 집으로 오는 내내 읽었다. 사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책들에서 내가 무슨 편린을 얻는다던지 아니면 책 목록따위를 만들어서 나도 '런던스타일'로 책을 읽어봐야지라고 마음을 다잡는 계기로 삼으려는건 아니다. 그저 닉 혼비가 글을 쓰면서 슬슬 드러내는 그만의 독특한 시각과 책에 대한 마인드..특히나 재미없는 책, 고상한척하면서 읽기도 싫은 두꺼운 책들 폼으로 읽고 다니시는 그런 가식이 없어서 좋다. 다 집어치우고 좋은 책을 읽으라는 그의 권유가 꽤 솔직하다. 책을 읽으면서 자아성찰이니 혹은 내면성숙이라던지 하는 조건부 설정으로 책을 사드는건 좀 아니지 않나싶기도 하고...


아직 다 읽지는 않았지만, 재미도 쏠쏠하다. 3권을 읽고 나면 또 뭘 읽을 지 고민 좀 해봐야겠다. 올해 읽으려고 나두었던 책들 목록에도 있지만, 이걸 알파벳 순으로 읽는다던지 하는 우를 범하고 싶진 않다. 때에 따라서 읽고 싶은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들 뿐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책을 읽는 건 노동이 될테니까...책을 노동으로 읽는건 처럼 바보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