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illa Essay2014. 2. 2. 23:35

경쟁의 시대에서 난관을 헤쳐나갈 전략적인 도식과 수식들의 틈바구니에서 경영사가들이 찾아낸 또 하나의 전가의 보도가 있었다고 보이는데 그게 바로 요즘 들먹이는 '인문학'이다. 여타의 어려운 상황들이 카운터처럼 양 뺨따구를 사정없이 후려치고 복부에 커다랗고도 묵직한 한방을 맞아 그로기상태에 빠져버린 유명 기업들 조차도 '우리에겐 인문학을 기본으로 한 경영철학이 없었다'라고 토로할 정도니까 이젠 인문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대세에 뒤떨어진 무엇이 되고 마는 느낌이 되버렸다. 


마르크스가 인간이 드러나는 결정적인 면모는 계급이니어쩌고 했을때에도, 그리고 헤겔이 노동을 언급했을 때에도 사람들이 자아중심주의적 사고에서 '구조주의'적인 사조로 가고 있는 줄 눈치채지 못했 듯, 인문학이란 것도 대개는 두부모를 자르듯 그렇게 구획하시키고 절단낸 다음 조각 케이크처럼 여기 인문학 두접시요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떤 점에서 보자면 대중이 보기좋아하고 두루두루 인용해야하며 적당하고도 적확한 예제가 되어줄 수 있는 그럴듯한 장르 카테고리라면 모를까.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읽는 것'자체에 재미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수많은 지식들의 파편들이 난무하는 와중에도 독서가들의 만족도는 내용 그 자체의 활용을 최종목적으로 여기지않고 뜻밖에도 자신들이 읽는 행위에만 그저 의미를 두고 만족해한다는 이야기, 그 틈에서 읽어지는 컨텐츠들에 대한 무의식적인 '의미부여' 소리없이 난무하는 느낌이다. 인문학이란 이런 의미부여라는 스티커를 이곳저곳에 붙이기 딱 좋은 대상이다. 사람은 역사, 문화, 교양, 신화, 문학 등등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며 어떠한 산출물도 이 카테고리를 벗어나기 어려운데도 마치 오늘날 이 인문학을 세상사람들이 잊고 살았다며 힐난하고 부족한 점은 인문학이었다고 지적들을 해대는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마치 이제껏 관심조차 같지 않고 읽기에만 몰두하던 독서가들조차도 '자신들이 읽었던' 뭔가에 대해 의미를 과하게 부여하려고 한다. 읽은 노력에 대한 사회적 인정같은 걸 원하는 걸까.


이 사기꾼들을 어떡하지 싶다가도 서가에 꽂혀있는 인문학에 대한 책들을 슬쩍슬쩍 보면 취지가 뭔지는 알듯 해서 약간은 좀 씁쓸하고 또 한편으론 뭐 이렇게라도 다방면에 관심을 가져준다면 좋은 거지라고 억지 추임새를 짓고 말았다. 먹고 살기 바쁜 수많은 샐러리맨들과 생계와 평안을 위해서 불철주야 고민하는 현대인들에게 '원전 책을 숙독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뭔가 깨달음을 얻고 머리에 차곡차곡 정리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일전에 2013년 한 해동안 600권의 책을 읽은 '독서가'의 블로그 댓글을 본적이 있었는데 각 책마다 5줄의 요약과 더불어 별점까지 매긴 그 포스트를 보며 이 분께서는 이 책들을 다 정독하면서 저자의 진의도 다 이해하며 내밀함을 샅샅히 분해라도 하셨던 걸까라고 시기심어린 의구심을 가졌었다. 


그렇게 책을 좋아하고 일상에서 페이퍼를 놓기 싫어하는 사람이 일반적이라면 서가의 인문학 서적들이 그렇게 팔릴리가 없었을 것이다. 인문학으로 유명한 저자는 수없이 많은 철학책을 독파하면서도 오히려 나이가들어 읽었던 책은 '고전문학'이었다고 거기에서 진정한 철학적 진면목과 삶에서 우러나오는 통찰력을 발견했다고 말했던 고백을 기억한다. 어떤 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깨달음을 얻는 그 대상의 다양성은 한두가지의 길은 결코 아님에도 유독 다이제스트식의 요약본이나 정리된 해설서에 의존하는 경향들이 짙다. 시간부족에다가 리소스의 한계를 보자면 '요약본'이라도 집어들어야 하는건 상식인데 왜 우리는 요약본 없이는 중요한 개념과 이데올로기와 역사와 문화를 비타민처럼 흡수하지 못하는가라는 궁금증이 든다.


이거 이런 식이면 시중에 나와있는 인문학의 지식들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여야 하고 그렇게 한다고 가정했을때 우리가 가지는 지식들의 편린들을 모아보면 어마어마하다. 철학의 흐름들과 역사의 대소사들, 그리고 중국고전들의 고어향연, 그리고 신화들의 숨겨진의미, 문학소설들에서 슬쩍슬쩍 들어나는 인간본성의 탐구, 그리고 문학적 감수성이 뭍어나는 문장들의 기묘하고 찬탄할만한 묘사들, 이게 왜 다이제스트로 친절하게 떠먹여야 '인문학'적 사고의 궁극적 완성이 되는 건지 아직까지도 헷갈린다. 왜 사람들은 제대로된 오리지널 원전같은 걸 읽지도 않으면서 해설서를 읽어서 그 사조와 경향을 이해해야 세상을 사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때가 되면 사람들은 여태 자신들이 알아왔던 지식의 두께가 빈약함을 깨닫는다고 한다. 그리고 나면 이 허기진 지적탐구의 본성이 허영으로 변질되고 그틈에서 그 허영을 채워줄 또 하나의 나열시 책읽기가 등장한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여태 인문학 외적인 삶을 결코 세상사람들이 살지도 않았는데도 갑자기 인문학이 모든 세상사의 기본이 된다라고 믿는 이 트렌드에는 약간의 뻥끼가 있는 것이다. 진작에 삼국시대와 조선시대 500년을 이미 알고 있고 그 틈에서 유럽사와 각종 철학들과 생물학적 지식, 사회, 도덕을 비롯한 수많은 상식들의 틈에서 살아왔는데 특별나게 당신이 미술사의 중대한 시기를 이해하고 르네상스 이면의 사회조짐의 큰 의미를 이해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다만 이런 건 세상사에서 조그만한 예시가 역사에 존재했을지도 모른다는 궁금증과 순수한 지식의 탐구욕에서는 가능한 이야기들이 될 수도 있다. 


왜 억지로 인문학 관련서적을 읽어야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인문학은 천편일률적으로 다 독후감들이 되어서 저자의 가이드처럼 찍혀져 나와야 하는건지도 이상하다. 그저 어느날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산티아고의 풍경이 떠올라 짐을 꾸려 떠나 현지에서 보고 이런게 내가 상상했던 그런거구나라고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던 내 지인의 경험만도 못한 책읽기들이다. 우리가 집어드는 인문학 서적들에는 수없이 많은 '식당메뉴'들이 등장한다. 각자가 입맛에 맞는 메뉴를 고르긴 골라야 하는데 이게 뭔지 알수도 없으니 옆에 붙어있는 간략한 설명을 읽어보고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서 난 이 레퍼런스를 참조했으니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해서 일단 먹어본다. 


먹고나서도 영 찜찜하다. 먹긴 먹었는데 이게 뭔지는 아직도 모르겠고, 나랑 별 관계도 없는 것 같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무 비싸다. 내 노력도 들어가고 내 시간도 들어가고 대체비용은 뭔가 명확하지 않은 애매한 경험담외에 별로 없는 것 같다. 요즘의 인문학이란 대개 이런 것들이다. 상식을 많이 알아야해서 언론사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서 Q&A 문답집을 외우는 것과 뭐가 다를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중요한건 이런게 뭐 나쁘다는 게 아니고 다 해볼만한 일이고 나름 의미있 일이란 것을 부인하는게 아니다. 문제는 이렇게 해서 우리가 어떤 포장지를 다 외었다고 하면 그게 무슨 경쟁력에 도움이 된단 것일까. 그게 무슨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통찰력을 준단 걸까. 


혹시, 다들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책을 읽고 책에서 인용된 책들을 한번씨 다 읽어보라는 취지였다고....

것도 아니라면 바쁘니까 대신 요약해준거라고...


그렇게 해서 읽어 뭔가를 알게된 인문학의 대가들은 또 어떤 형태의 크리에이티브를 상징하게 되는가.

생각할수록 시대와 계절이 만들어낸 뽕끼다분한 허세와 허영기가 짙에 드리워져 있다. 인문학에는.....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