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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1.04 히스클리프의 불운한 나날들.
Vanilla Essay2013. 11. 4. 11:41

<폭풍의 언덕>의 캐서린 언쇼가 에드거 린턴의 청혼을 받아들이면서 히스클리프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했드랬다. '히스클리프랑 결혼하게 되면 내가 왠지 천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야'라고..그리고 그걸 엿들은 히스클리프는 폭풍의 언덕을 떠나고 이후 다들 아시는 것처럼 대서사의 복수 무정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언쇼가문을 몰락시킨다. 


이렇게 스쳐지나가듯 내뱉은 말. 초점없는 눈빛으로 중얼거렸던 몇마디, 그리고 무심한 눈빛. 아무렇지도 않게 추측했던 결론들. 강인해지고 무시무시한 현실의 칼날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몇 겹 갑옷처럼 두르고 살아야 한다고 말들 하지만,  언제나 아픈 말들은 비수처럼 갑옷의 빈틈을 찾아 비집고 들어온다. 이 비수들은 사실 뜻밖의 사소함으로 부터 스노우볼처럼 커진다. 공교롭게도 가장 친한 사람으로 부터 그 크기가 비약적으로 커진다는게 아니러니할 뿐이다. 그렇다고 그런 아픔으로부터 성숙해진다는건 수많은 칼날이 비집고 들어오는 고통에 대해 무감각을 유지하는걸까. 칼이 쑥하고 들어오는데 '아 이거 별거아냐 며칠전에도 당했던 거야'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반응할 수 없는 것처럼 언제나 고통과 불운은 불가항력의 영역인 것이다.  


난 귀찮으면 모든 걸 피하고 싶은 그 게름직함을 안다. 난 현실이 힘들면 다른 것들은 배려도 할 수 없다는 그 느낌을 이해한다. 그리고 며칠만 굶으면 파렴치한 짓도 저지를 수 있음을 은근히 느낀다. 세상의 모든 불행이 벌어지지만 않는다면 천사처럼 살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없는 사랑과 애정과 따스한 시선을 기대하면서...늘 노력하지만 드라마속에서 나오는 꿋꿋한 캔디처럼 살아갈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소하게 시작된 이 자존심에 대한 폭압적인 전개들이 수습불가가 될 지언정 결코 다시 회수하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원래 시나리오는 이런게 아니었을테지. 지금은 힘들지만 이겨내고 행복을 쟁취하듯...그래서 자기에게 벌어진 상황이 일시적인거고 좀 더 버티면 빛이 비출거고 다시 좋아질거고 하는 그런 시나리오를 인생 가이드인것처럼 받아들이고 싶었을 거다.  그런데도 시간이 세월이 되는 동안 '히스클리프'처럼 헤어나오기 힘든 불행을 겪는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블랙홀처럼 상황악화의 절대불명에 봉착하면 우리는 과연 이성적일수 있을까란 생각이 문득 든다. 


불운의 화살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맞은 상처받은 영혼들에게는 '왜 화살이 당신에게 가서 꽂혔을까요'라는 질문은 가혹하다. 나도 그 화살을 못피하겠지. 내가 후두둑 수십발을 맞게 되면 난 그제서야 이렇게 생각할거다. 억울하다고...아무런 이유도 없이 인생에서 이런 화살을 맞았노라고....그 사람이나 나나 별다를 바 없다. 불운이란 사람을 모두 이렇게 만든다. 어느 누가 괴이해서 특별해서 불운을 부르는게 아니다.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