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illa Essay2013. 10. 14. 10:18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유년시절 이미 읽었는데도 최근 다시 읽게 되었다. 뭐 특별할 것 같은 이유는 딱히 없었지만 왠지 어렸을때의 앨리스가 지금의 앨리스와는 다르게 다가올 것 같은 막연한 느낌이거나 얼핏얼핏 스쳐지나가듯 보여지는 문장들틈에서 왠지 의미를 놓치고 앨리스를 듬성듬성 읽은게 아닐까하는 호기심같은 것이 있었다고 보는게 좋을 것 같다. 보르헤스의 미로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런 수수께기와 같은 문장들은 뭔가 숨겨진 함의를 품고 독자들을 끊임없이 사고하게 만들고 그 속에서 나름대로의 즐거움을 찾게 되니까..이런 접근방식이 아주 맥락없는 동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서문의 소개글에서 이런 접근이 '붉은 여왕'적 관점이란걸 알았지만 (반대로 무의미적 접근에서는 그리핀적 접근이라고 언급되어있다.) 때로는 세상살이가 날 이렇게 각박하고 딱딱하게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하는 고지식한 태도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참 피곤하게 살고 있는게 아닌가라며 한숨을 쉬게된다. 순수함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수도 있고 아무렇지도 않은 농담한 자락도 그냥 넘어가지 않을 때엔 또 다른 형태의 질병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최근 고전읽기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영향을 받았나보다. 난 완전히 붉은 여왕적 독서를 하는 셈이다. 


최근 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포함하여 생떽쥐베리의 <야간비행/남방우편기>, 멜빌의 <모비딕>,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개정판을 다시 읽고 있다. 이 모든 건 다 붉은 여왕의 눈동자가 내 눈에 이식된 탓이다. 과거는 현재가 되고 현재도 언젠가 과거가 되겠지만 매번 이 작품들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이건 완연히 '피에르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처럼 되가고 있는게 아닌가.작품을 풍부하게 만드는건 저자가 아니라 독자라는.....이런 해석이 어제오늘일은 아닌데도 막상 읽었던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새로운 감상에 사로잡히게 되면 '읽기'라는건 영원히 반복되는 뫼비우스고리가 된다.  


난 오늘도 이 뫼비우스의 고리를 따라 과거에 읽었던 책들을 현재로 포장한다. 이미 내용은 충분히 달라져있었고 스토리는 선택지의 가지수를 늘렸으며 주인공들은 다른 생각들을 한다. 분명히 10년전에는 옳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어리석고 무지하며 바보같은 결정을 내리고 있다. 이런 세월의 차이를 읽는다는 건 분명히 흥미진진하긴 하데 과거와 달라져버린 시선때문에 당혹스럽긴하다. 읽은 건지 안읽어도 될 만큼 달라져버린다면 절대적 읽기라는건 감히 꿈꾸기 어려운 것 아닌가.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