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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1.18 소설 읽기에 동기를 부여하는 나만의 방식

소설 읽기에 대해서 한때는 부질없는 비현실적 읽기라고 폄하했던 적이 있다. 일종의 허구장치외 모든 소품들에 대한 천시같은게 있었을 수도 있다. 현실속에선 소설적 상상력은 그야말로 망상과 환상일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니까 통속적 쾌감이나 기쁨은 TV일일연속극에서 펼쳐지는 막장전개와 같은 것으로 현실과 유사할 수는 있어도 굉장히 밀접한 통찰력을 주기는 어렵다는 결론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무튼 비슷한 견해으로 소설 읽기를 피해왔던 것 같다.


사실 소설이 현실과 가까워야 한다는 것도 우습긴 마찬가지다. 소설속에서 보려는 건 의외로 단순할 수도 있다. 그 상황과 그 줄거리속에서 자신의 생각이 어떠한 방향으로 가고있나하는 탐색, 그리고 주인공들의 행동과 말투, 그 밖의 상황들을 통해 다양한 생각들의 절충을 볼 수 있다. 특히나 세상의 모든 것들을 묘사하는 방법은 몇몇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수십, 수백, 수만가지의 패턴과 스타일이 있으므로 그걸 토대로 묘사되는 많은 느낌들은 그야말로 생각과 통찰을 넓혀주는 간접적 경험이 될 수도 있다.. 거창한 깨달음까지는 아니어도 대개 우리는 위로와 안정과 편안함을 소설로부터 얻는다. 나도 그럴 것이라는 동감, 당신도 그랬나하는 아련한 추억, 그리고 잘되었면 한다는 바램들. 그리고 유유히 지면을 타고 흐르는 생각지도 못했던 감성들, 격하게 전개되는 빠른 충격들, 그리고 마음속에 와 박히는 수많은 사적인 은유와 감정들의 파편들까지 감안하면 소설 읽기가 비현실적이라고 말할 순 없는 노릇이다. 이미 난 마음속에서 현실적으로 무엇인가를 경험하고 있으니까.. (지금도 데이비드 미첼의 '클라우스 아틀라스'를 읽으면서 감탄 중이다. 애덤 어윙까지는 덤덤했는데 루이자 레이 미스테리에서 충격적인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 


소설을 주야장창읽는 몇몇 지인들 중에 그저 문장력과 표현력을 보기위해서 혹은 나름대로 분석하기 위해서 읽는다는 친구도 봤다. 그런데 그는 단어하나라도 붙들고 늘어지면서 굉장히 힘겹게 의미들을 부여하고 따져가며 세밀한 조율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물론 그것도 하나의 신념이나 방식중 하나겠지만 그렇게 해서 꽤나 명확한 분석을 한다 할지라도 그가 원하는건 정작 '자신도 그와 같이 잘 쓰기' 였기 때문에 노상 분석해체만 하고 있을순 없는 노릇. 그리하여 습작들을 감행하여 나에게 읽어보라며 넘겨준 원고더미에서 난 그야말로 아이러니함을 봤다. 그 글들은 약간은 조잡했고 연결도 매끄럽지 못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 마치 파인딩 포레스터의 크로포드 교수가 자말 월레스의 글을 질투하듯, 그도 그랬던게 아닐까하는 묘한 데자뷰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읽기 동기부여 방식도 나에겐 솔직히 별로 였다.


확실히 문장을 탐내든 편안함을 얻기위해서든 소설읽기에 대한 동기야 널리고 널렸다. 다만 중요했던 것은 소설이 가져다 주는 어떤 점들이 그다지 꼭 현실적이거나 교훈적이거나 할 필요는 없다는 점. 그게 나에겐 중요했던 것 같다. 지금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어디서 느끼기 어려운 아주 드문 인적 눈이 내린 산 길에 처음 발자국을 남길만큼 생경한 경험이 된다고 느껴진다면 사실 그것으로 족하다. 삶은 그다지 길지 않고 누릴 감정의 파고도 어쩌면 내 키를 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생애 담을 수 없는 해일과 같은 감동을 느껴봤을 수도 있겠고 그런게 있는지도 모를만큼 잔잔함 속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더 많은 감정의 도자기들을 소설속에서 구워내고 싶을 뿐이다. 나만의 감정 도자기를 굽듯이..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내 감정의 무늬와 빛깔과 청아함을 담아서...그러면 소설 읽기에 더할 나위 없다.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