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BOOK/소설2013. 8. 6. 23:11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수첩>, 그리고 동시에 읽었던 <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이렇게 두가지의 수첩소설(?)을 동시에 읽을수 있었던 것은 비교적 읽기 쉬운 라이트노벨이어서였다. (라이트 노벨 : ライトノベル 라이토 노베루[*])은 일본의 서브컬처에서 태어난 소설 종류의 하나이다. 영어 단어 Light와 Novel을 조합한 일본어식 영어로서, 현재에는 영어권에서도 일본의 독자적인 소설 장르를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1]. 약어로 라노베(ラノベ), 라이노베(ライノベ) 등으로 불리며, 드물지만 경문학(軽文学)이나 경소설(軽小説, 중국어는 이 단어를 사용함)로 표기되기도 한다.위키피디아 발췌.) 근자에는 라이트노벨의 가벼운 특성때문에 후렌치후라이드보다 못한 소설계의 패스트푸드 취급을 당하고 있지만 깊이가 있든 없든 독서란 읽는 사람의 자유도에 관련이 있는 것이지 절대적인 가치 체계속에서 평가받으면서 선별될 필요는 없다.


물론 고전명작에서 우러나오는 묵직한 성찰이라든지 어디서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찬탄 나올만큼의 문장들이 매 페이지마다 등장해서 점점 읽으면 읽을수록 감동이 밀려오는 그런 작품이 나타나기를 읽을 때마다 기대하긴 한다. (이건 고전명작에서도 보기힘든 감동이기도 하다.) 최근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커포티'티파니에서의 아침을'을 내리 읽고 났더니 삶이 왠지 그냥 흘러가는 것 같지 않고 여러 갈래로 실타래처럼 꼬여서 우연과 불운이 서로 교차해야만 진짜 삶이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소설도 그런 이야기들만 하다니...그래서 비블리아 같은 만화같은 이야기들도 끼어들어야 하는거야라고 혼자 되뇌인게 아닐까. 


아무튼 다행히도 라이트 노벨답게 <비블리아 고서당의 사건수첩>은 가볍우면서도 재밌다. 굳이 비교해보자면 커피점 탈레랑보다 더 재미있고 가끔 더 깊이있다고 생각한다. 읽으면서 의식이 깨어나지 않는 횟수가 늘지않으면 재밌는 소설이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비블리아는 순식간에 읽히면서 의식을 스토리로 끌어내리는듯한 중독성이 있다. 슥슥 넘어가도 머리속에 스냅삿 사진들처럼 툭툭 와서 박혀버린다고나 할까. 다음 장을 재빠르게 넘겨도 고우라 다이스케가 둥글둥글 이야기하거나,  시오리코가 슬며시 얼굴 붉히는 장면도 흔한 애니메이션 일러스트처럼 머리속에 그려질 정도다. (혹시 표지의 일러스트는 나같은 상상력이 읽는 능력보다 더 강한 독자들을 위한 모티브 촉발용 그림이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시노카와 시오리코는 보브스타일의 청순 가련형 미호시보다 매력적이기까지하다. (물론 이건 극중 아야카가 고우라 다이스케에게 말했던 시오리코가 왕가슴(?)이어서 그렇다는 건 절대 아니다.) 그녀가 가진 지적탐구와 방대한 책에 관한 지식들, 그리고 순간순간 번득이는 혜안들 때문이었을것이다. 이런 추리소설에는 캐릭터적 몰입감이 반이상 먹고 들어가게 되어있으니까 시오리코가 홈즈가 된다는 건 보기좋은 징조이자 설정이 된다. 홈즈는 사건의 특이성때문에 인기가 있었던게 아니란 것은 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 책에는 에피소드가 4개 등장한다. 순서대로라면 나츠메 소세키의 '그 후', 고야마 기요시<이삭줍기. 성안데르센>, 비노그라노프쿠즈민 공저 <논리학입문>,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의 <만년>순이다. 각 책을 매개로 해서 여러가지 사건들을 벌어지고 그 사건들을 시오리코가 추리해간다는 역시 너무나도 뻔한 스토리 전개지만 매개체가 책이다보니 책을 소개하면서 드러나는 이면의 이야기들과 중층적으로 엮이면서 책의 이미지를 액자식처럼 이용했다. 게다가 배경이 고서당이라니...책을 좋아하는 많은 팬들의 입장에서는 오래된 고서점, 그리고 차곡차곡 빼곡히 쌓여있는 책들의 칸막이들 틈에서 오래도록 탐닉하고자하는 책벌레의 욕구를 마치 열렬히 응원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다. (고서점에서 쳐박혀서 책을 오래도록 탐닉하고픈 책벌레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굳이 설명해야 하는가)


 다행히도 뻔한 밀실 살인 같은건 배제되어있고 그 흔한 피가 난무하고 시체 절단, 그리고 기괴한 살인방법에 대한 묘사도 이 책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탈레랑도 그랬지만 비블리아도 역시 그런걸 보면 일본소설계에는 이런 생활 밀착형 추리소설의 시대가 도래한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부드럽고 라이트하게 흘러간다. 시리즈가 일본내 4권이상 출간된 듯 보이는데 1권에서만 놓고보면 사건해결을 위한 시오리코의 명석한 해결능력만을 목표로 하고 있진 않아서 1장에서 언급된 나츠메 소세키의 <그 후>에 얽혀있는 고우라 다이스케의 진짜 혈연관계, 그리고 친해지기 힘들고 낯도 가리는 시노카와 시오리코와 순수한 고우라 다이스케 사이의 애정전선 배치가 긴호흡으로 걸려있다. 물론 한 순간에 결론을 낼 성질의 것이 아니고 시리즈를 관통할 것같은 느낌이 드는건 이 소설이 완벽한 범죄소설이 아니란걸 방증한다. 아마  둘이 친해지고 연인이 되고 위기도 맞고 다시 가까워지고 할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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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이런 라이트노벨적 순수함에 긴장감을 주기위해서 택한건 '시오리코'가 모호하고 미스테리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그것을 통해서 다이스케가 예기치 못한 갈등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암시들이다. 이미 책등빼기의 '시다'는 시오리코의 수완이 너무 뛰어나기때문에 마음에 걸린다라고 지적하고 있으며 상황을 설계하는 그녀의 천재적인 두뇌에 다이스케는 우려를 가진다. 그리고 책에 대해 남다른 집착과 중독을 가진 후반부의 악역 오바요조는 그녀를 두고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책을 남겨두려 한다'고 단정짓기까지했다. 이 부분은 고우라 다이스케가 그녀에 대해 크게 오해하고 실망하게 되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렇게 마무리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1권의 후반부가 그렇게 결말이 난 것은 다이스케가 오해했던 시오리코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야만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2권, 3권이 나올 충분한 명분이 있는 것이다. 




드라마 <비블리아 고서당>


아직 보진 못했지만 2권의 사건수준이라는 것이 더 과격하고 잔인해져간다면 이 책의 본연목표가 굉장히 이상해진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지 않길 기대하지만...뭐 작가의 마음이니까..어떻게 될 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어떤점에서 본다면 일본의 라이트노벨 특히 추리쪽은 사건의 괴이함을 말하기 앞서 로맨스를 연결시켜놓고 주변의 이야기를 결합하는 방향으로 유행의 흐름을 정했나보다. 비블리아 고서당, 커피점 탈레랑. 또 뭐가 생길려나..... 모두 다 주인공은 똑똑하고 예쁜 여성이고 남자는 순수하고 착하면서 약간은 바보같은 설정이 덧입혀져있다. 그러다가 위기의 순간이 다가오면 과감하고 용감하게 여자를 구하기위해서 돌진하는 그런 뻔한 히어로적 역할을 남자주인공들에게 부여해놓았다. 라이트 노벨답다는 건 이런것들 아니겠는가. 미리 안다고 해도 재밌다면 그걸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저자
미카미 엔 지음
출판사
디앤씨미디어 | 2013-02-28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2012년 한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히가시노 게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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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ewell
Review BOOK/소설2013. 8. 3. 11:00

좋은 커피란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천사처럼 순수하고, 그리고 사랑처럼 달콤하다  - 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



어느날 아오야마 마코토(?)는 우연찮게 '커피점 탈레랑'이란 카페를 들르게 된다.  그리고 그곳의 바리스타인 기리마 미호시의 커피가 남다르다는 것, 또 이 바리스타의 또 다른 재능, 일상에서 여러가지를 추리하고 (그녀표현대로  '잘 갈아서') 결론에 도달하는 특유의 논리적인 설명에 매료된다. 서서히 그녀에게 마음이 끌리는 아오야마는 자기도 모르게 발길을 탈레랑으로 옮기게 되고 조용히 번져가는 커피향과도 같은 미호시의 은밀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수첩>이 의외로 일본에서 베스트셀러의 대열에 올랐었나보다. 의외라는 말은 본격적인 추리계열의 책들중에서 그다지 충격적이라든가 임팩트가 강해서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던가하는 부분은 없다시피하는데도 작가의 초작치고 엄청난 기세로 판매부수를 올렸다는 점에서다. 우선 이 책을 스윽 대충 넘겨보면 라이트노벨스럽다는 의구심을 피할 수가 없다. 스토리위주로 흘러가면서 철저히 가볍고 톡톡튀는 설정을 무기로 삼는 전형적인 소설로. 아무리 봐도 표지는 거의 일본 연애시뮬게임에서나 나올법한 카툰애니 일러스트레이션이니 어떤 측면에서는 소설선택기준의 비주얼부분은 확고하다는 느낌이 들어버렸다. (가벼움을 싫어하는 독자는 표지만 보고 내려놓았을 것이다.)


어찌됐든 이 소설의 전반적인 구성이나 느낌은 표지느낌을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번역으로는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들을 주로 번역하신 양윤옥씨. 물론 1Q84처럼 깊이가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나미야 잡화점같은 치밀한 전개는 애초부터 어려운 것이고 흐름, 전개같은 것들은 후반부로 갈수록 어떻게든 결말을 모두다 챙기면서 매조지하겠다는 의지때문에 어수선하고 정신이 없다. 원래 데뷰작들이 그런거지라며 위로 할 수 있었던 건,  초반부의 신선한 아이디어, 그리고 참신한 전개, 튀는 에피소드와 대화..무엇보다도 기리마 미호시의 매력적인 캐릭터성..뭐 이런 것들 아닐까. 그 좋았던 설정이  점점 먹물을 먹은듯 우려의 어두움이 몰려오더니 그만 흠뻑 소나기를 쫄딱맞고 이건뭐지..왜 이렇게 결말이 가는거지라고 좀비처럼 되뇌이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아 작가님께서 의욕적으로 데뷔하셨지만 여기까지 온 것만해도 다행이다 싶다. 뭐 그럭저럭 나쁘지않은 수준이나 아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닌터라 일일히 거론하기는 어렵다. 차기작에서 향상시켜주세요 라고 좋게 넘어갈수도 있겠지 처음인데 이 정도만 해도 다행이다 싶었는데 우습게도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을 보고 좋게 보려던 마음이 싹 가셔버렸다. 이건 아무리 봐도 비블리아 짝퉁같은데라는 의구심이 스물스물 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런던스타일 책읽기>의 닉혼비는 자기칼럼을 좋아하는 독자 캐롤라인한테 걸으면서 읽다가 가로등에 부딪힐만한 책목록을 알려달라고 하면서 기어코 목록을 받아들었고 그 책을 사서 읽고 한마디했다. '가로등에 부딪힐만큼 대단하지는 않았다'고...탈레랑도 화려한 표지에 못미치는 재미라고 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비블리아 고서당에 비하자면 뭔가 중요한게 빠져버리는 듯한 허전함이 든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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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자체는 나쁘지 않은 이야기들이었다. 그렇다고 여타 일본 추리소설마냥 어느날 주인공이 미호시에게 해결하지 못하는 미궁의 사건을 의뢰하고 그녀는 움직이지도 않고 조용히 커피를 만들면서 사고의 고리를 따라 아오야마에게 숨겨진 사건의 이면을 설명해주고 미궁에 빠졌던 살인사건은 그녀를 통해 모티브를 얻고 이면에 숨겨진 기발하고 놀라운 비밀을 하나둘식 밝혀주는 식었어도 평타수준의 추리소설이 되었을 거다. 좀 에퀴르 포와적이거나 미스 마플적이 된다고 세상에 누구도 캐릭터 재반복이냐고 힐난하지 않는다. 다만 미호시는 비블리아의 시오리코 오마쥬아닌가. 아쉽게도 미스테리한 과거. 조용한 성격. 그리고 치밀한 추리능력. 누가봐도 예쁜 외모. 고서를 다루는 시오리코나 커피를 다루는 미호시나...가히 이정도되면 설정 표절이 되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 든다. 다들 뭐라 안하실려나 모르겠다.  


게다가 읽는내내 의심해봤는데 고우라 다이스케가 시오리코와 묘한 애정관계를 형성하는 것조차 닮아버렸다. 아오야마 마코토가 미호시와 서로 가까워지는 이 플롯의 유사성을 두고 미카미 엔은 뭐라고 할까. 탈레랑의 전략은 나쁘지 않았는데 비블리아 고서당의 레벨과 비교하자니 하자투성이의 소설처럼 느껴진다. 치밀함도 덜하고 캐릭터의 몰입감도 비블리아 쪽이 더 좋다. 아쉽게도 비블리아를 보지 못한 독자들이 탈레랑을 본다고 가정한다면 그나마 좀 나은 평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목까지 이렇게 비슷해서야 동어반복도 어느정도지 비블리아 고서당과 맞붙지 않은게 더 이상한게 아닐까. 그렇다면 비블리아를 봤던 독자들이 탈레랑을 봤을 때 느끼는 기시감은 묘한 불쾌함으로 남을 수도 있다.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것들이 세상에 단 하나뿐이 아닐수도 있겠지만 탈레랑은 아무래도 비블리아를 답습했다는 의혹의 눈초리를 벗어나기 힘들것 같다.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 1

저자
오카자키 다쿠마 지음
출판사
소미미디어 | 2013-07-0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일본 열도를 뒤흔든 커피 미스터리 걸작, 마침내 출간!커피를 좋...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kewell
Review BOOK/소설2013. 7. 25. 23:10


다른 소설을 읽는 기간에 비해선 오롯이 줄기차게 읽어댄 덕에 굉장히 빨리 끝장까지 넘겼다. 천천히 매일매일 분량대로 꾸준히 읽으려고 했는데 의외로 스토리가 지루하지 않게 읽히기도 했고 각 에피소드의 이음새가 산뜻해서 끊어서 쉬엄쉬엄가도 기억이 사라지지 않아서 더 좋았드랬다. 아무튼 호흡으로 보자면 이렇게 읽힌다는 건 재미있다라는 것외에 다른 말로 표현하기도 어렵다.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인 것이다. 


이전에도 몇번 짧게 언급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의 정체성과 핵심을 단 한줄로 요약하라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술계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정도만 이야기해도 독자들은 대충 어떤 내용인지 감을 잡기 어렵지 않을텐데, 특이한 점은 엔딩의 뉘앙스가 이질적이라는 점과 이 책의 저자가 스티브 마틴('헐리웃의 배우로도 알려져있는..'신부의 아버지'였던가..코미디쪽으로 알려져있지 않나 싶다.) 이라는 정도? 그리고 이와 더불어 스티브마틴의 소양이 전문가 수준에 육박해있고 그걸 제대로 묘사하고 표현하는 데 있어서 작가라는 타이틀이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는 점이다. 왜 그런 것 있지 않나. 하나만 공부만 잘해도 우와 하는데 갑자기 예체능도 잘해버리면 슬슬 경이와 찬탄의 대상으로 보이게 되고 그런 점이 슬슬 느껴지기 시작하면 읽는 태도가 갑자기 진지해져서 급평가모드로 돌변하는...(얼마나 잘 쓰는지 한번 보자구라고 혼자 되뇌였던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책의 매력적인 부분은 미술계의 소소한 이야기들은 자세하고도 일일히 묘사해 준다는 것이겠지만, 작가가 은근슬쩍 보여주는 미술계와 관련한 세속적인 느낌들의 정체, 그리고 오랜 세월동안 한자리에서 관찰하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통찰력 같은 가치관 같은 것에서 더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사실 초반부에서 이미 스티브 마틴은 주인공 레이시가 어떤 길을 갈 것인지에 대한 미래적 암시를 흘려놓았드랬다. 그러니까 흥미진진한 전개에 대한 주인공의 특별한 마음가짐이라던가 어떤 변화와 계기에 대한 반전이 느닷없이 등장하지 않을 거라는 점, 그리고  일관된 타락과 유혹의 길목위에서 이미 레이시가 자기의 운명을 행동으로 가늠케 해준다. 읽는내내 우와 이게 뭐야하는 충격은 사실 없었던 것 같다. 


"레이시가 소더비에 자리잡아가는 과정은 잔잔한 배경에 은근히 도드라지는 사악한 디테일이 되는 과정이었다 " (p37)


"수집가가 그림을 쫓는 과정이 표면상으로는 낭만적 구애과정처럼 보이지만 , 그 뿌리에는 시퍼런 욕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레이시는 욕정을 이용하면 남자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레이시는 이 원칙이 아트 비즈니스에도 적용될 거라고 생각했다 (p55) 


이 즈음되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눈치빠른 독자들은 감을 잡는다. 아..우리의 레이시가 이렇게 가는 구나. 드디어 본격적인 음모와 모험의 세계, 그리고 치열한 돈과 상업적 성공을 위해서 맨해튼의 갤러리를 쏘다니고 그러다가 자신의 정체성과 본연의 순수함을 잃게 되고 뜻하지 않는 사건과 그리고 잘못된 생각과 판단으로 곤혹을 치루겠구나라고..그리고 여지없이 그 예감은 헐리웃 영화의 플롯처럼 ...별 오차없이 들어맞는다. 어차피 이 책에서 많은 독자들은 갑자기 레이시가 욕조에서 샤워를 하는데 커튼이 젖혀지면서 스크림 가면을 쓴 괴한이 달려드는 스릴러를 원한 것도 아닐테고 자기 집 한복판 앤디워홀의 '오렌지 마돈나' 밑에서 자신의 애인인 파트리스 클레르가 피를 흘린채 얼음송곳에 찔려 죽어있는 추리이야기를 기대하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적게다나 소더비 경매에서 돌아가는 세상사람들이 생각치도 못했던 이면의 은밀하고도 소소한 에피소드정도만 되도 호기심이란 물에 번진 잉크처럼 서서히 독자들의 읽는 몰입도의 컬러를 진하게 만들어줄테니까...


오히려 책 중간에서 의외의 작가의 소양을 가늠하게 되는 문장을 만나게 되는데 오히려 그런게 더 기억에 남는다는 건 이 책이 마냥 스토리에 천착한 에피소드 모음집이 아니란걸 알게 해준다. 레이시가 그림배달을 하는 도중에 그림에 대한 다윈의 진화론적인 해석을 우연찮게 만난 남자에게서 듣게 되는데 그 인물이 또 '존 업다이크'다. 실제 존 업다이크가 어디선가 이런 발언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읽다보면 피식피식 웃음이 나올만큼의 의외성이 있어서 환기가 된다고나할까. 


"그림도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는 겁니다. 두꺼비의 눈이 입체적인 시각으로 진화하는 것처럼, 그림은 돈을 향해 움직여요. 사람들의 탐심을 얻지 못하면 아무리 명작이라도 지하실이나 쓰레기장에서 썩을 수 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스스로를 필효한 존재로 만드는 거죠" (p82) 


게다가 현대미술의 난해함과 젠체하는 현학적인 해석등을 신랄하게 비꼬는 견해도 슬쩍 등장한다. 개념미술에 대해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어려운 미술로 읽히는 이런 것들은 학리적이고 이론적인 미사여구로 치장하지만 결국 1960년대 시작된 '아이러니 미술'의 답습일뿐이라고..일반사람들이 느끼는 묘한 괴리감의 적확한 정체를 전문가적 식견에서 얻게 될줄이야. 그러니까 결국 예술가들이나 일반대중이나 모두가 느끼고 있는 모호함은 같은 것이었나보다. 무식함이 탄로나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애쓰는 딜러들의 애환이 느껴지기도 하고....


아무튼 이 과정에서 레이시는 자신만의 매력을 뽐내면서 스스로의 생존길을 찾는다 싶었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그리고 인생의 '블랙스완' 같은 의외성에 따라 댓가를 치룬다. 물론 여기서 많은 독자들이 현실의 잘나가는 인물들은 이런 행위적 인과에 대한 처절한 '인생학습'같은 걸 안하게 된다고 말할수 도 있겠지만 레이시의 입장에서는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 그녀의 인생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받아들여야할 엔딩이 되고 있다.  서글프지만 애닯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나라도 마찬가지였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어버렸다. 차라리 레이시는 당차고 매력이라도 있었는데 뭐 나같은 범인의 말로는 더 비참하지 않았을까. 의외였던건 진정한 메릴스트립의 빙의버전이라고 생각했던 바튼탤리가 아래와 같은 말을 하면서 레이시의 행적을 정리해줬다는게 놀랍다. 더 세속적일 줄 알았는데...그는 차라리 명인의 범주에서 스스로를 추스리는 현자였을수도 있겠단 생각이..갑자기 든다. 


"아트 비즈니스에 뛰어들면 말이야. 불법적인 지름길이 여럿 있다는 것을 알게 돼.......(중간생략) 그러다 어느날 갈림길에서 서서 내가 어떤 종류의 딜러가 될 지 결정할 때가 오지...똑바로 가는게 훨씬 수월하다는 걸 깨달았지.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뭘했든 잘 끝냈기를 바라네 " p446


레이시가 연옥으로 쫓겨났다지만 그게 오히려 천국일수도 있겠다. 파크스가 은근 슬쩍 이렇게 말했지 않은가. 땅은 현실을 묘사하고 달빛은 꿈과 생각을 표현했고, 물에 비친 달빛은 예술을 표현한 것 같다고..그건 꿈과 현실사이에 있으니까..라고.. 레이시가 꿈과 현실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 뉴욕을 전전하는 동안 독자들은 슬쩍 슬쩍 본인의 속된 욕망과 야망같은 것에 대한 기시감을 느끼지나 않았을까. 모험을 못해서였을 뿐이지..매력이 레이시만큼 없어서 그런게지. 어쩌면 더하고도 질펀한 진하디 진한 소더비의 음모속에서 서서히 침몰해갔을수도 있지 않았을까. 




레이시 이야기

저자
스티브 마틴 지음
출판사
홍시 | 2013-05-0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화려한 미술시장에 뛰어든 여성 아트 딜러의 이야기!뉴욕 미술시장...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kewell
Review BOOK/소설2013. 7. 9. 18:07






서른여섯 살, 다자키 쓰쿠루는 철도 회사에서 역을 설계한다. 역을 만든다는 행위는 그에게 세상과의 연결을 뜻한다. 과거의 상실을 덮어 두고 묵묵히 살아가는 그에게 어느 날, 처음으로 사랑이 찾아온다. 그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은 두 살 연상의 여행사 직원 기모토 사라는 고등학교 시절, 다자키 쓰쿠루가 속한 완벽한 공동체(여기서 공통체란 아카,아오,시로,구로,그리고 쓰쿠루로 이루어진 친구들모임을 의미한다.)와 그 결말(어느날 갑자기 친구4명이 쓰쿠루를 외면해버림)에 대해 듣고 불현듯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한 순례의 여정을 제안하는데... 



'대학교 2학년 7월부터 다음해 1월에 걸쳐 다자키 쓰쿠루는 거의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때라면 삶과 죽음을 가르는 문지방을 넘어서는 일 따위 날달걀 하나 들이키는 것보다 간단했는데...'



'1Q84'가 광풍처럼 불어닥친지 얼마되지 않은 듯 싶은데, 어느덧 '공백기를 깨고 질풍처럼 등장한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타이틀이 다시 이곳저곳에 나부낀다. 이 센세이셔널한 인기야말로 굳이 나서서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지 않아도 될 만한 거장들이 가지는 퀄리티 이팩트겠지만 어찌됐든 하루키가 한국에서만큼은 인기작가라는 사실은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여름휴가때 읽어야 할 추천도서'항목에 이 신작이 자리해주시고 계셨다. 과히 이번 여름은 '진격의 소설계'라고 불러야 할 판이다. 


하루키의 이 신작은 1Q84 이후 느닷없긴 했다. 나름대로는 과거작들을 계속해서 re-reading하고 있는터라 개인적인 공백을 느낄 사이가 별로 없었다. (엊그제 1Q84가 나온 듯 싶었는데..) 반가운 쪽이 더 크다는 점에서는 나도 팬의 몫을 다하고 있는 느낌은 든다. 마음속은 늘 하루키를 읽고 있었다고 아부라도 할 만큼.....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도 그렇고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빵가게 재습격,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 해변의 카프카 같은걸 계속해서 읽는 건 싫지 않은 경험이다. 읽은걸 또 읽었다니 대단한 광팬이로군 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것 보다는 그저 읽었던 시절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게 싫어서였다고 보는게 더 정확하다.  다시 읽어보고 그때 못느꼈던 새로운 뭔가를 발견할 수 도 있지 않을까하는....그 와중에 에세이들도 꽤 많이 출간되어서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재출간이다.) 무라카미 라디오라든지 다수의 잡지들에 연재되었던 것을 연작으로 묶었던 책들도 꽤 많이 읽게되었다. 좋은 시절이다. 구하기 어려웠던 에세이들도 죄다 모아서 출간해주다니... 그러다가 덜컥 <색체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이하 색체없는쓰쿠루)가 나와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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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봐서 초반부를 읽다가 아...이 분께서 또 이원화된 세계를 오가면서 다소 몽환적이면서도 미스테리하게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엮어보실려나보다라고 생각했드랬다. 쓰쿠루가 친했던 친구들로부터 이유도 모를 배척을 당하게 되고 홀로 동떨어지면서 미스테리하게 전개되고 이윽고 친구들이 밝힌 쓰쿠루를 친구들의 모임에서 몰아내게 된 원인을 이야기할 때, 그 기대치가 절정을 치고 올라가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는 '자신의 등장'으로 인해서 유즈가 강간을 당하게 되고 이 세계에는 자신과 다른 똑같은 자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미심장한 쓰쿠루의 의구심과 맞물리면서 점점 '두개의 달'이라도 떠있는 이질적 공간으로 향하는 문이라도 등장하지 싶었는데 그만 모든걸 접고 쓰쿠루가 다 혼자 망상하는 걸로 매조지하셨다. 또는 이렇게 이야기해야겠다. 현실적인 성찰로 돌아서버리셨다고... 아무래도 이 책이 단행본으로 끝나게 된 원인이 이거 때문이었을까. 상중하로 출간되었다면 분명히 고속도로에 등장하는 계단이든, 섹스를 통한 이공간의 접속이라던지하는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이 나왔을 지도 모르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하루키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해변의 카프카',  그리고 '1Q84'로 오면서 더 적확하고 명료한 리얼리티를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원더랜드쪽이 의식을 또 하나의 세계로..그리고 해변의 카프카와 1Q84를 구분하기 어려운 두 사건의 교묘한 접합점에 판타지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를 꾸려가는게 무라카미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신작도 그럴 것이라는 추측을 피할 수 없는 것일테지만...그래서 쓰쿠루가 원인도 모르고 고등학교 시절 친했던 친구들 무리에서 떨어져나오고 나중에 여자친구 사라에 의해서 다시 과거를 돌아가보기로 했다는 지점에서부터 판타지는 다시 시작될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쓰쿠루이야기는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처럼 전개되었다. 주인공의 무덤덤한 허무주의에 가까운 태도하며 굳이 관계회복을 위해서 애쓰려하지 않는 모습도 그렇고... 그런데도 막판에 가면 쓰쿠루는 굉장히 긍정적이고 의미심장한 표현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대목들...


"그렇지만 그것은 올바른 가슴아픔이며 올바른 숨막힘이었다. 그것은 그가 확실히 느끼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앞으로 그 차가운 중심부를 스스로의 힘으로 조금씩 녹여내야 한다.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동토를 녹이기 위해서 쓰쿠루는 다른 누군가의 온기를 필요로 했다. 자신의 체온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일단 도쿄로 돌아가자. 그것이 첫걸음이다 " (p388) 


"인생은 복잡한 악보같다고 쓰쿠루는 생각했다. 16분 음표와 32분음표, 기묘한 수많은 기호, 의미를 알수 없는 표시들로 가득차 있다. 그것을 올바르게 해독하는 것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고, 설령 올바르게 해독했다하더라도, 또 올바른 음으로 바꿔냈다하더라도 거기에 내포된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평가해주리란 보장이 없다. 사람의 행위는 왜 그렇게 복잡하게 엉켜야만 하는 걸까 " (p404) 


"우리는 그때 뭔가를 강하게 믿었고, 뭔가를 강하게 믿을수 있는 자기자신을 가졌어. 그런 마음이 그냥 어딘가로 허망하게 사라져 버리지는 않아 " (p437) 


그리하여 쓰쿠루는 오랜시절 겪었던 방황으로부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려고 애쓴다. 물론 중간에 등장해버린 하이다와 미도리카와 에피소드때문에 굉장히 혼란스럽긴 했다. (이 즈음에서 기묘한 판타지로의 장치라고 여기지 않았다면 하루키 팬이라고 할 수 없지 않나싶다.) 그건 어쩌면 그가 방황하고 충격적으로 버림받았던 과거로부터 연유한 죽음성찰이었나보다. 그래서 스스로 표현했던 것처럼 '근본적인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 지도 모를...정신의 자연스런 흐름이 장애물을 만나 어딘가에서 멈추고 그때문에 자기라는 인간이 뒤틀리게 되었다고' 생각한 그 지점에서 돌파구를 찾았던 게 아닐까.  아카, 아오, 시로, 구로 사이에서 벌어졌던 묘한 절제와 균형의 관계들...결국 이런 이상적인 관계가 언제인가는 깨질것이라는 두려움은 쓰쿠루를 희생양삼아서 터져버렸지만 쓰쿠루는 원망도 억울함도 없이 대신 '죽음'을 생각하며 지내왔다. 그리고 모든 걸 받아들이고 다시 자신을 버렸던 친구 4명을 만나고자 도쿄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것들이 전부 다 사라져버릴 그런 '마음'들이 아니었을거라고' 읎조리며 서서히 과거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다. 아마도 그래서 하루키의 이 작품이 '노르웨이의 숲'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적어도 여기엔 현실이 붕괴되어서 의식의 세상으로 불사의 세상으로 가버리는 판타지도...두개의 달이 교차하는 이세계의 조직으로부터 쫓기는 스팩타클도 없었지만 '냉정하면서도 언제나 쿨하게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는' 나의 모습이 녹아져있었으니까, 쓰쿠루는 나였고 나는 쓰쿠루같은 측면이 있었으니까..동질감이란 이런 것 아닐까.


과거의 상처로부터 태연하려고 애쓰고 관계지향적이고 밀접한 소중한 무엇인가로부터의 박탈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하는 본능적인 보호감을 감춘채 사는 현대인들은 많다. 다자키 쓰쿠루적이 아니었다고 항변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어느순간에는 정말 쓰쿠루적이었던 시절이 있었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순례의 해 소곡집의 제 1년 스위스에 들어있는 프란츠 리스트의 <르 말뒤페이>에 '전원풍경이 사람의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영문모를 슬픔'이 일상이던 시절. 슬픔은 나를 지배하고 있었고 잠시동안의 암울함과 끊임없는 어두운 터널을 터벅터벅 걷고 있는 자신을 상상한다.  이 정도되면 나 조차도 다자키 쓰쿠루였던 적이 없었다고 감히 말을 못할 지경이다. 책을 다 읽고 느낀건 하루키스럽지 않아서 오는 허망함보다 나도 쓰쿠루처럼 그랬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라는 기시감이 더 강했드랬다. 묘한 느낌이지 않나..과거에 두고온 들추고 싶지 않은 기억들. 추억들..


그나저나 기모토 사라로부터의 전화는 어떤 내용이었을까. 쓰쿠루는 사라로부터 수요일에 원하던 대답을 들었을까.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3-07-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지금, 당신은 어느 역에 서 있습니까?모든 것이 완벽했던 스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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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BOOK/소설2013. 6. 27. 19:00

빅토리아 여왕의 증손녀, 글렌 게리 래녹 공작의 딸. 왕위 계승 서열 34위. 본명 레이디 빅토리아 조지애나 샬럿 유지니.  1930년대 배경의 영국왕실 배경으로 빅토리아 여왕이 증조 할머니. 이복 오빠이자 무능하기 짝이 없는 빙키의 스코틀랜드성에서 살다가 물고기처럼 생겨먹은 지그프리트 왕자와 정략결혼시키려는 조짐을 읽고 탈출. 런던 래녹하우스에서 스스로 자립하려고 애쓰지만 왕족이라는 출신성분으로 여러모로 제약과 거추장스러운 사건들 발생...이윽고 살인사건에 연루되면서 (오빠 빙키가 누명을 쓰게 됨) 사건해결을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로 구성되어져있다. 그다지 복잡한 구성력도 그리고 엄청난 반전같은게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특유의 재기발랄한 문체와 톡톡튀는 주인공 조지애나의 캐릭터성에 기대어 유쾌발랄한 여러가지 일상을 엿보게 해준다. 


아마도 저자인 라이스보엔이 방송국에서 각본작업을 했었던 이력이 있으므로 정통문학계열의 고지식하면서도 따분한 표현들을 뒤로하고 현대적 색체에 조금이나마 발을 맞추는 듯한 스타일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매력적인 점이라면..아무래도 영국왕실주변의 쏠쏠한 이야기들. 왕족들이 현실적으로 어떠한 상황에서 자신들의 근엄함과 명예를 유지하면서 버텨내는지에 대한 묘사에 있다. 아무래도 왕족으로서 계승의 문제에 직면하지 않는 이상, 화려한 배경들은 결국 아무짝에 쓸모없을거라는 저자의 짐작도 그리 틀려보이지 않고, 그리고 거기에서 벗어나려는 주인공 조지애나의 적극성또한 현대여성의 실리적인 사고를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으니...왕족이라고해봐야 별개 없다는 무언의 유머도 섞여있지 않나싶다. 



'그럴만한 재산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왕족답게 행동해주길 기대한다.....'

'헨리8세가 앤블린에게 맥주한잔 마시러 오면서 하이넥 드레스는 절대 입지 말라고 했을 때, 그녀의 기분이 이랬을까' 


같은 표현은 보자면 라이스보엔의 장기는 실생활에 밀착되어있는 감각적인 표현들을 즐겨쓰고 특유의 문화에 베어있는 정통성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충분히 읽는 재미를 이끌어내줄 만큼 현실적이다. 이게 추리소설이자 미스테리로 완전히 빠져들었다면 저자들의 대개의 과도한 설정과 분위기조성에 힘을 들인 나머지 조지애나의 매력이랄수있는 '브리짓존스'의 소탈함같은 '독백'의 미를 잃어버렸을 것이다. 왜냐면 진지한 미스테리물에서 유쾌한 여주인공의 쾌활함이란건 꽤 어울리기 힘든 요소들일테니까... 어찌됐든 보엔의 표현들은 재미난게 많다. 이를테면 '켈트인다운 블그스름한 금발과 주근깨...마치 푹 삶은 커다란 새우같았다' 라는 표현이나...'마리사는 광택이 나는 자주색 배수관 같았다'라는 표현등은 영국식 유머에 근접해있는 재기넘치는 비유들이었으니까...


아마 이 책을 읽게 되는 이유는 겉표지에서 뿜어져나오는 흥미진진한 로맨스 소설같은 뉘앙스. 그리고 왕실가문 출신의 여주인공이 보여주는 좌충우돌식의 모험담. 그리고 엄청나게 쏟아져나오는 영국식 문화와 기기묘묘한 허세들. 진짜 마음가짐이란 사실 조지애나의 어머니에게나 해당될까 ..다들 격식차리고 체면 중시하다가 자기자신을 어쩌지못해서 수동적으로 전락해버리는 주변인물들에 대한 호기심같은 것이었으리라. 그런게 재미난 부분이지 다른 곳에서 재미난 부분을 찾기는 어렵다고 본다. 너무 의미를 크게 부여해봐야 얻을 건 별로 없을 테지만, 그 정도라면 즐거운 한편의 미스테리 모험담 정도 될려나...




탐정 레이디 조지애나

저자
라이스 보엔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2-04-0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1930년대 영국 왕실을 배경으로 정의감과 독립심으로 똘똘 뭉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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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BOOK/소설2013. 3. 3. 23:37

<페르미나 마르케스>- 발레리 라르보(Valery Larbaud)/시공사

 


" 생토귀스탱에서 맞는 이러한 저녁들. 겁에 질려 도망가듯이 가는 열차들이 멀리서 파리를 향해 신음을 흘리는 소리가 잠들때까지 들려오는 그런 저녁나절들. 파리근교 마을의 이 절망적인 저녁나절들에 담긴 우수에도 더는 흔들리지 않았다." (40p)

 

 

 

청춘소설이 다 아련하게 아퍼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리고 성장했다라는 결론도 너무 뻔하다. 청춘성장소설이란 타이틀을 붙여놓을땐 아마 뻔해서가 아닐가라고 생각했던 적도 많다.  삶이, 혹은 인생이 때론 교훈적이지도 않아서 회상하기도 싫은 괴로운 악몽을 감내할 인내가 굉장히 하찮게 느껴질수도 있다. 그럴바엔 그따위 '성숙'은 포기하고 말지' 라고 되뇌이며...오히려 아름다운 추억이라는 이름아래 세월이 내린 몇십년짜리 진통제가 남겨놓은 치유불가의 후유증으로..트라우마로 남는다. 아픈건 다 사라지고 몽롱하고 나른한 몇개의 따스한 햇볕같은게 내 인생을 내리쬐었다는 기억만을 환영처럼 남겨둔 채.. 아름다웠으니 그것으로 된 것아니냐며 위로한다.  그런가싶다가도 의외로  찌질하고 조잡하고 민망하고 심지어 오글거려서 미칠지경의 대목들이 불쑥불쑥 기억에서 벌떡 일어난다. 아...젠장 내가 왜 그 시절 그랬을까. 가만히나 있을 것이지, 솔직함과 당당함과 순수함이 뭐라고....후회했던 횟수만 꼽아봐도 롤플레잉 게임 중간 죽어버린 캐릭터 갯수보다도 많다. 게임 시나리오야 숙지하고 외워서 다시해보기라도하지. 인생에 그런건 없다. 도중에 킬 당하면 캔슬키 눌러서 not save한채로 뒤로 돌아갈 기회같은건 있지도 않은 구라같은 이야기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라든지, 제임스 조이스의 <젋은 예술가의 초상>같은 작품들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도 유명한 이 발레리 라르보의 <페르미나 마르케스>도 역시 아름 다운 한편의 추억과도 같은 청춘소설이리라 짐작하긴했다. 현실감각 결여된 또 하나의 고전, 그것도 아니라면 약간 로맨스가 곁들여졌다면 '오만과 편견'같은 것이나 '기구한 운명의 '테스'에피소드2 정도 될수도 있겠네싶었는데 점점 후반부로 갈수록 마냥 '소중한 추억'이나 간직할 것'이라는 경구조차 생각나지 않게 만들어버린다. 후기를 철썩같이 공감하기 드문데, 붙어있는 역자의 견해에는 살짝 공감했다. 사랑의 이야기라기보단 '시간의 작용에 대한 이야기'인것 같다고 하는 부분 말이다.


이 소설에는 그야말로 청순과 아름다움의 화신과도 같은 우상 '페르미나 마르케스'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 소녀를 흠모하는 소년셋이 교차하면서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한명은 보잘것 없는 신분이나 타고난 지적능력을 자랑하는 천재적 찌질이 '조아니 레니오' 그리고 반면 잘생긴 외모와 재력의 소유자로 거침없이 상남자로서의 매력을 뿜어내는 미성숙의 질풍노도 소년 '산토스 이투리아', 내성적이고 조용하면서 삶에 무기력증을 유발시키나 마음속으로 페르미나를 흠모하면서 인생의 이유를 찾는 전형적 짝사랑 바보 '카미유' 이렇게 셋이다. 그리고 초반부에서 조아니...아니 중반부까지 조아니의 화끈거리는 지적 허세질, 그리고 콤플렉스를 커버하기 위한 자기위안과 나르시즘의 괴논리을 자기식대로 펼치다가 페르미나의 냉랭한 반응에 자존심이 구겨진 이야기가 등장하고, 이 후 틈을 노리던 산토스 이투리아의 대쉬로 완전히 대세가 역전된다.  중간에 카미유는 그야말로 카메오처럼 순수하게 살짝 등장하고 ...오랜세월 후 그런일이 있었지라고 회상하는 걸로 마무리 .이렇게 해서 얇은 170여페이지의 소설은 그 역할을 다한다.  


청춘 애정 소설같지만 사실은 후반부에서 결정타를 몇개 날려줘서  마냥 아름다웠던 추억 이야기 내지 '해피엔딩'같은 건 개나줘버려리라는 섭섭함을 느끼게 될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허황되거나 그렇진않다. 애궂게 주인공이 훗날 아쉽게 불운을 경험했다고 해서 추억이 어떻게 되란 법은 없으니까. 다만 훗날 스러져버린 교정과 추억들을 간직했던 장소들의 침식들속에서 화자는 달라져버린 현실세계의 차가운 빗줄기를 부슬부슬 맞으면서 회상한다.  화자가 교정을 걸을때 소소하게 내뱉던 감정들을 읽자면 꿈같던 추억이 소중했다고 말하는 걸까. 아니면 그토록 아름다웠던 추억조차도 시간이 지나고 나니 남는게 없다고 말하는걸까 둘다겠지. 아마도...'유리창이 깨지고 창틀은 떨어져 나간채, 그렇게 오늘날의 햇빛과 하늘의 푸르름을 향해 활짝 열려있고,  분주함으로 가득한 파리의 하늘을 향해, 안개와 연기, 전깃불의 빛무리들...둥근 창은 이제 그 모든 것들 가운데 그 어느것도 비추지 못한다는 그 독백들을 읽으면 그저 덧없다란 생각뿐이다. 쓸쓸하고 왠지 아련하다.


철없던 시절의 이야기들정도로 치부하고 살짝 연애소설로 읽어둘걸 그랬나. 그 정도로 읽기엔 조아니의 굉장한 지적허세가 안스럽고 실황중계처럼 절절해서 여기서 약간 몰입되고 이입되는 경우라면 공감을 표하고 싶다.  왜 그렇지 않은가. 연애감정의 당사자로선 '자신의 존재가 상대편에게 의미있는 그 무엇이기를 바라는 그런 기대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 '그렇게 하기위해 매력적인 무엇인가를 표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정작 당사자는 아예 신경도 안쓰는데 상처받은 자존심달래보려고 있는 지식 없는 지식 다 동원해서 최대한 페르미나를 굴욕주려는 조아니의 절절함은 이 소설의 메인테마인 듯 싶다. 어쩌면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애정패턴은 붕어빵같다. 틀만 바뀌었지 찍어내는 것들은 다 붕어카테고리일테니까.. 이즈음 조건적으로 부족할 것 없는 이투리아의 매력에 넘어가는 페르미나의 속물스러움을 도덕적 죄책감으로 대신하려는 건 뭐 대단한 변명거리도 못된다. 이건 마냥 천사와 같은 소녀이야기가 될수조차 없는 거였다. 


정말 이 이야기가 시간의 작용이었다면 조아니는 참 슬픈 인생이었고, 산토스는 지리멸렬하고 페르미나 마르케스는 한계절 피고지는 이름 모를 꽃처럼 처량했다. 굳이 그렇게 조숙하고 고고하고 청순해야할 필요는 없었는데도 라르보는 그야말로 그럴듯한 소년소녀들의 소소한 연애감정을 묘한 강박관념 셋트처럼 캐릭터에 이입했다. 지적인 것과 고고한 것과 당당함과 세속적이면서도 성스러운 묘한 불일치들을 보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다들 너무 성숙해보인다고 잠깐 생각이 들었드랬다. 정말 성장하고도 남을만큼..지나치게 청춘스럽고 애잔하고 쓸쓸하다. 페르미나가 지금쯤 결혼해서 잘 살고 있을 거라는 말은 왠지 피천득씨의 '인연' 말미와 매우 닯아있지 않은가. 한낯 꿈같은 찰나의 추억들이었다.

 


페르미나 마르케스

저자
발레리 라르보 지음
출판사
시공사 | 2011-12-24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소박하고 우아한 필치로 담아낸 청춘과 사랑의 기록!20세기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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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BOOK/소설2013. 2. 27. 18:17

<고독한 시월의 밤>(A Night in the lonesome october) - 로저 젤라즈니/시공사.

 

 

아주 고전적인 무협소설 매니아의 전력(?)이 있었던지라 대여점이나 서점의 미로같은 구획들을 따라 이동하다 보면 눈이 가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코너가 바로 무협소설코너다. (대놓고 무협코너라고 타이틀을 걸어놓진 않지만..) 그리고 요즘의 그 코너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예전' 고풍스러웠던 화산과 전진, 곤륜, 소림의 이야기들이 아닌 다중차원을 오고가는 그야말로 판타지계열의 어드벤쳐로 퓨전된 괴이한 장르 이질감으로 다가온다. '이게 무슨 무협이야..그냥 SF라고 해두지' 라는 정도..SF혹은 판타지가 무협과 접목되었다고해서 나쁘다고 말할순 없지만, 내 추억의 레이아웃들은 SF, 판타지, 무협의 칸막이가 확고하다. 두방을 터는 경우(?)도 없는데다가 둘은 각자의 매력적인 정서와 뉘앙스로 개성화되어있다고 믿기에 엄연히 독립적이었던 것이다. 근래에 이르러서는 완연히 '정통무협물'이 아닌 '무협 판타지'로 전이된 양상이다. 판타지의 유입으로 보자면 시대의 흐름인가싶다가도 과거부터 있어왔던 장르이기에 그다지 특이할 것도 없는데도 무협과 결합해버렸다. 


지금도 강하게 믿고 있는데, 판타지나 무협이나 '서사'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이건 일회성의 설정으로 끝날 계제가 아니고 오히려 설정만큼은 리얼리즘에 교묘히 덧입혀져서 '그럴듯한' 내용들과 내러티브로 무장하고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그렇기에 무협같은 '시대'에 들러붙어있는 역사적 두터음에 '탈시대적인 판타지'를 결합하게 되면 상상력의 깊이가 더 강해지고 중독적이 될거라는 추측에 신뢰감을 실어준다. 문제는 내용이다.  마법이 일어나고 독특한 아이템이 등장하며 이에 관한 흥미진진한 뒷배경이 등장할 때 '얼마나 몰입적인가'라는 평가가 남아있다. 그럴듯한 설정, 그리고 그럴듯한 세계관, 그리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 모두의 이야기들이 과거부터 있어왔던 이야기라면, 혹 등장했던 캐릭터이고 무엇보다 관련된 에피소드가 프리퀼처럼 존재한다면 후대의 작가들은 이런 세계관을 그냥 사용만해도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전례에 대한 출처, 깊은 독서경험에서 우러러나오는 '인용'과 '도입', 그리고 오마쥬의 즐거움을 누릴수가 있다. 적어도 생각이 있다면 무엇이든 펼쳐지는 세계관에 한해서는 한없는 상상력의 세계속에서 평행으로 연결되기 마련이니까.


로저 젤라즈니가 <고독한 시월의 밤>에서 사용한 세계관이 이와 비슷하다. 이름하여 '크툴루 세계관'(Cthulhu Mythos). 괴이하고도 기이한 신화적 설정이겠거니하겠지만 창작에 의한 세계관치고 유야무야 사라져버린 유치뽕짝의 다른 여타의 설정들을 뒤로하고 살아남는 설정에 대해서는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고독한 시월의 밤>(이하 고시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이자 개인 '스너프'는 주인과 어느 10월 기이한 게임에 돌입한다. 이 게임에는 다음과 같은 참가자들이 등장한다. 주인인 과 화자인 개 스너프, 미치광이 질과 고양이 그레이모크, 모리스와 메케이브 그리고 올빼미인 나이트윈드, 미친 수도사 라스토프와 검은뱀 퀵라임, 드루이드교 오웬과 다람쥐 치터. 백작과 박쥐 니들, 그리고 유일하게 혼자 다니는 래리텔벗, 그리고 주변을 어슬렁 거리는 '위대한 탐정', 마지막으로 '훌륭한 박사와 쥐 부보' 등이 소설속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들이다. 정보와 재료들을 모아서 '그날'을 준비하고 동물들은 '정탐'으로 주인을 도우면서 둘이 한팀이 되어서 움직인다. 10월의 마지막날 게임 참여자들은 모여서 '개방'과 '폐쇄'에 대한 최후의 대결을 펼친다는 스토리로 전개된다.


이 소설은 로저 젤라즈니의 마지막소설로 1993년 출간, 기존의 전작들과는 약간 달리 경쾌하면서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에 비해선 훨씬 유하고 가볍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위트있으며, 고딕과 추리, 판타지의 결합을 굉장히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마치 이야기 구조만 보면 TYPEMOON페이트 스테이나이트(Fate/stay night)와 흡사한 구조다. 격돌을 전제로 생존게임을 벌이지만 각 참여자에 딸려있는 서번트와 <고시밤>에 서번트처럼 탐색전을 벌이는 동물들도 그렇고...아무튼 스토리의 설정구조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롤플레잉 게임같은 느낌이 들기는한다. 로저 젤라즈니는 여기에다가 묘한 캐릭터의 유명세를 익살스럽게 연결시켰다. 이를테면 스너프의 주인인 '잭'은 <리퍼의 밤>(Night of the Ripper)에 등장하는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를 끌어왔고, 미치광이 질은 '마녀 질'(질드레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훌륭한 박사는 '프랑켄슈타인을 만든 박사', 백작은 '드라큘라 백작', '래리텔벗'은 '늑대인간', 위대한 탐정은 바로 '셜록홈즈'다. 어떻게 본다면 각종 유명한 캐릭터들이 은밀한 게임에 참여하기 위해 모두 총출동하는 이야기 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부분이 있는데 한참 모험담이 펼쳐지는 중간에 갑자기 고양이 그레이모크와 스너프가 이질적인공간으로 빨려들어가는 부분이다. 그레이모크는 이전에도 이러한 장소에 온 적이 있음을 말하며 그 세계를 '드림월드'라고 부르는데 드림월드에 대한 곳곳의 묘사를 아주 세밀하고 생생하게 말하기 시작한다. 앞서 이야기한 크툴루 세계관이 '고시밤'에 깔려있다고 보는 부분은 이것 때문이다. 특히 크툴루 세계관의 창시자로 알려진 러브 크래프트는 자신이 만들어낸 이러한 설정을 메인으로 확장할 의지같은 건 없었다고 알려져있긴 하지만 단편작들에서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인용도구로 사용하면서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해댔다. ( 이러한 패러렐적인 설정요소들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사용하는 측에서 변형을 가해도 무방하다고 한바 있다.)


 

젤라즈니 역시 크래프트의 크툴루 설정을 빌어온 흔적들이 곳곳에 보인다. 우선 그레이모크가 묘사한 드림월드의 내용들은 소설 뒷편 역자 이수현씨가 밝힌대로 '미지의 카다스를 향한 몽환의 추격'에 등장하는 '드림랜드'의 내용과 같다. 또 미친 수도사 라스토프의 무기로 등장하는 '알하즈레드'는 크래프트가 만들어낸 전설의 '네크로노미콘'이라는 책의 저자로 알려져있다. 사람이름을 '성물'로 설정하는 위트를 발휘하긴 했지만 여전히 크툴루의 잔재가 깔려있는 것이다. (부. 1927년 러브크래프트는 <네크로노미콘의 역사'라는 가상의 역사를 기록, 1938년 그의 사후 발표되었다. 책의 원제는 알아지프이며 아랍어로 '바람소리, 기괴한 소리 혹은 소음'을 의미한다. 이 책에 의하면 미친 아랍인 '알하즈레드'가 등장하고 그는 크툴루를 숭배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따라서 미친 수도사로 라스토프가 알하즈레드를 소유한다는 설정은 어느정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셈이다.)


의외로 로저젤라즈니의 이 소설속에는 여러가지 인문학적 요소와 고전 환상문학의 잔재가 깊에 자리잡고 있다. 더군다나 위트있는 대사들과 기발한 전개, 스펙타클한 모험으로 볼 때, 오히려 전작들의 미스테리하고도 무거운 전개보다 쉽게 읽힌다는 장점이 있다. 마치 정말 10월의 세계 어디에선가 이런 캐릭터들이 은밀히 활동하면서 지금도 '폐쇄와 '개방'을 위한 전력 대결을 펼칠 것만 같은.... 그래서 할로윈에는 고독한 시월의 밤을 떠올리면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차라리 서두에 언급했다시피 무협판타지여야 한다면 젤라즈니같은 서사를 배경으로 깔아놓는 정도의 위트와 흥미진진함이 있었으면 하다고 생각한다. 깊이있는 대사와 전개도 그렇고 환상문학의 가치를 이런것으로 갈음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읽는 도중에만 느끼는 긴장감만을 위해서 '책을 집어들 순 없는 노릇이 아닌가.  가끔가다가 굉장히 모호한 장르적인 뒤섞임때문에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줄거리를 계속해서 읽는 고단함은 별로 느끼고 싶지 않다가도  '고독한 시월의 밤'을 떠올리면 정말 이 작품이 얼마나 좋은 작품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의 마지막 소설이 이 패턴으로 몇 권 더 나왔으면 좀더 긴 '시월의 밤'을 누려볼 수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지금도 있다.

 


고독한 시월의 밤

저자
로저 젤라즈니 지음
출판사
시공사 | 2010-12-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고독한 시월의 마지막 밤, 게임이 시작된다!SF 판타지계의 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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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ewell
Review BOOK/소설2013. 2. 21. 16:00

<달려라, 토끼>(Rabbit, run) - 존업다이크 (John. Updike)

 

 

 

2010년 즈음으로 기억하는데, 토끼해를 맞이해서 컬럼을 수놓던 몇군데의 매스컴에서 '토끼' 연관성을 찾아 헤맨끝에 끄적여 놓은 소스제공으로도 '달려라 토끼'가 몫을 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토끼 해와 달려라 토끼가 뭔 관련이 있다고..굳이 연상도 안되는걸 강제로 엮으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 쓸게 하도 없어서 기어코 '토끼'자가 들어가는 문학작품이라도 인용해야 겠다라고 생각하셨나보다.) 아무튼 토끼라는 뉘앙스에는 아무래도 '동화적' 색채감이 깔려있다보니 분명히 모르고 접하는 <달려라 토끼>에는 불행을 달고 사는 주인공이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역경을 딛고 희망찬 미래를 바라보면서 달려나간다라는 식으로 결말이 마무리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니까 토끼해에 대한 의미를 떠올릴때 달려라 토끼까지 끌어들이는 것 아닌가. 얼마나 거칠고 처참하고 암울한지도 모르면서...'달려라'라는 말은 대체로 '파이팅' '힘내'라는 의미를 품고 있으니까.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에세이들과 그의 작품들 귀퉁이에 업다이크의 책을 들고 어디론가 가서 읽어야만 하는 계절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수시로 써놓은 적이 있다. (1Q84의 신포니에타(야나체크) 한번 인용했다고 음반가게에서 갑자기 돌풍일으키는 것과 유사하게 업다이크 책도 찾는 사람들이 많았으리라. 최근 정리 발매된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에서 1968년의 봄을 업다이크를 읽기 좋은 계절이라고 언급하였다. 이외에도 업다이크는 그의 작품에서 수시로 등장한다.) 적어도 국내에서 업다이크 저작들이 90년대에 하루키의 인용에 의해서 슬쩍슬쩍 고개를 내민건 사실이다. '상실'과 '방황'을 무슨 장신구마냥 달고 고뇌했던  91학번 세대는 절판의 저세상으로 가버린 문학작품이라 할지라도 묘지라도 파헤쳐서 '업다이크 책들을 꺼낼 마음가짐들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하루키에 동조했었으니까. 감동먹은 감수성의 힘이란 그런 것 아닌가. 유행을 달리는 저자들의 유래와 정체성에 대한 탐구. 모든 출처에 대해 조사해보고 싶은 충동, 그러다보면 특유의 감수성이 어디로 부터 유래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만날 것만 같은 기대감. 그리고 업다이크의 대표작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저기...<달려라 토끼> 있나요? " 라면서...


앞서 언급한대로 미국 영미문학의 상징적으로 인용되는 <호밀밭의 파수꾼>, <위대한 캐츠비>에 비하면 <달려라 토끼>는 도대체 언급은 되는데 어디서도 구하기 힘든 책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절판의 회오리가 '토끼'를 오즈의 나라로 데려가버리고 난 후..잠시동안 업다이크는 '인용의 기호'로만 이미지화 되어 숨쉬고 있다가  2011년 문학동네에서 정영목씨의 번역으로 재등장했다. 말로만 듣던 <달려라 토끼>라니..이것이야말로 오래 가뭄 끝, 단비와도 같은 것이지 않나. '이야 이제 달려라 토끼를 읽을 수 있겠어. 그것도 제대로 된 번역으로..'라고 쾌재를 부르던 문학매니아들을 비롯해서 작가 지망생들의 기쁜 얼굴들하며...그렇게 보자면 이 <달려라 토끼>에 걸린 타이틀이 자못 궁금해진다. 도대체 어떤 소설이길래...업다이크의 대표작이 된 것일까라든지, 무슨 내용이었기에 4부작까지 이어지면서 업다이크의 명성을 드높여 주었는지 등의 궁금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달려라 토끼>의 내용은 비 온 다음날 말끔하게 개인 하늘에 살짝 그려놓은 수채화같은 투명함과 산뜻함과는 거리가 멀다. 굳이 비유하자면 덕지덕지 발라진 유화풍의 그림인데다가 알수없는 붓자국, 흘러내리고 번진 그리고 닳다못해 찢어져버린 캔버스쪽에 가깝다. 내용은 거칠고, 폭압적이며 뼈대는 일탈과 방황, 그리고 기어코 독자들의 마음을 화석처럼 차갑게 만들고 난 다음 , 심해의 깊은 곳으로 던져져 무겁게 내려앉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주인공 해리 앵스트롬은 세일즈를 하면서 사는 중산층 20대다.  알콜과 TV중독에 빠진 임신한 부인, 나아지지 않는 생활, 그리고 과거의 촉망받았던 농구선수로서의 자존심등이 한꺼번에 회의감으로 몰려와 무단가출, 그리고 방황하다가 아무 남자하고 자는 '루스'를 만나 외도하고, 부인 제니스는 어떻게 살든 나몰라라로 일관하다가 동네 목사와 주위의 권유에 따라 (출산일이 다가온 부인때문에 어쩔수 없이..) 다시 부인에게 돌아왔다가..다시 반복되는 따분한 일상과 거절된 섹스로 인해 다시 또 가출...(이 부근에 다다르면 래빗에 대한 독자들의 불만이 최고조로 폭등한다.) 여기에 제니스는 딸 레베카를 실수로 익사시키고, 현실의 암울함을 견디다 못해 다시 가출해서 옛연인 루스에게 찾아가지만 거기서도 거절당한다는 뭐 아주 읽다보면 한심하고 미칠것 같은 증오가 일어나는 그런 내용으로 이뤄져있다.

 


페미니스트들이 업다이크를 여성혐오론자아니냐고 힐난했다고 하는데 충분히 이해간다. 등장하는 여인에 대한 몰인정하고도 무책임한 주인공 래빗(해리 앵스트롬의 별명)의 사고나 행동은 충분히 지탄받을만하다못해 '차라리 결혼이나 하지 않았으면'이라는 짜증까지 불러일으키고,  누가 어떻게 되든 현재 자신이 그렇게 느끼는데로 충동적이고 이기적이고 상대방은 생각지못하는 단세포같은 인물이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의 코치로 등장하는 토세로도 비슷하긴 매일반.) 그런데도 미국의 문학계는 이 책의 모든 상황이 다분히 '실존'적이고 중산층의 삶을 대변해주고 있다고하는 평을 걸어주었다. 이 이야기는 요약해서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일상적인 이야기'라는 것이다. 쳇바퀴돌듯 이어지는 무기력하고 나아지지 않는 생활, 옴짝달싹못하는 현실적인 압박, 꿈과 유망함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려서 도대체 내일은 뭘 하면서 살아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 그런 시절이 한동안 지속될 때, <달려라, 토끼>가 그것들을 설명해주고 대변해주고 뭐 그런단 의미아닐까.. 이런 암울한 삶속에서 미국 중산층의 평범한 서민 래빗에게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내면에서는 어떤 갈등과 절망과 암울함들이 스며드는지 아슬아슬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이런 일탈과 방황이 현실세계에서 일어난 버린 래빗으로서는 어떡하다가 이렇게 된 것인지 스스로도 납득하기 힘들어한다.


' 래빗은 진실을 느낀다. 그의 삶을 떠난 것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것. 아무리 찾아 헤매도 되찾아올수 없다는 것. 아무리 날아가도 거기에는 이를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여기에 있었다. 도시밑에 이 냄새와 이 목소리들안에, 영원히 그의 뒤에. 우리가 자연에 몸값을 내면 , 자연을 위해 아이들을 만들어내면 충만함은 끝이 난다. 그러면 자연은 우리와 관계를 끝낸다. ' (322p)


개인적으로 느낀 것이지만 <달려라 토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완벽한 '행복한 인물'들이 없다. 최악이 해리 앵스트롬이라면, 남편에게 의지하고 삶의 무기력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부인 제니스, 딸의 불행을 보면서 애초부터 결혼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스프링어 부인, 아들의 일탈이 '제니스'의 탓이자 스프링어 가문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앵스트롬 부인. 기독교 교인의 문제는 다 자기문제라고 생각하는 동네 목사 에클스. 교인들을 지나치게 돌보느라 가족들을 돌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에클스 부인. 아무렇게나 몸을 굴리다가 드디어 제대로된 온전한 남자를 만났다고 착각한 루스, 래빗을 오랜시간 코치하며 인생을 인도했으나 자기자신과 함께 타락시켜버린 토세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대개 이런 판단을 내릴 것 같다. '이런게 진짜 인생이다' 라고..완벽하게 100% 행복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불행도 같이 가는 것이다라고..그래서 읽는내내 굉장히 힘들다. 부딪히고 넘어지고 이 책장을 넘기면 이보다 더 암울하게 전개될 수 없겠다싶다가도 더 최악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말미에서는 범람하는 암울함을 견디기 어렵게 된다. (베키에 대한 래빗은 절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래빗은 이 모든 절망에 대한 회피를 달리는 것으로 갈음하려고 한다. 아마 '달려라' 라고 하는 부분은 래빗의 암울함을 보는 많은 이들이 내심 관조적으로 내뱉는 탄식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나마 달려야 하지 않겠나 래빗..뭐 이런...그리고 기어코 래빗은 이런 상황을 '상대편이 그가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비두명을 붙이는 바람에 어느쪽으로 돌든 둘중 한명과 부딪히게 되어 할 수있는 일이라고는 패스하는 밖에 없던 때와 비슷하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패스밖에 할게 없다라...인생에서 주도적으로 뭔가를 결정할 수 없다는 그런 의미리라 생각되지만 많은 독자로서는 인정하기 힘들 것이다. 거의 용서보다는 증오를 래빗에게 돌릴테니, 자초한 일이었다고 그때 래빗이 도망치지 말았어야 했다고 혀를 끌끌 차지나 않을까. 그래서 토세로의 마지막 말이 의미심장하다.


" 옳으냐 그르냐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게 아니야. 우리. 우리가 만드는거야. 불행을 막기위해. 변함없이. 해리 변함없이............. 불행은 그것을 따르지 않는데서 나와. 우리 자신의 불행은 아니지. 처음에는 우리 자신의 불행이 아닌경우가 많아. 그런데 너도 너 자신의 인생에서 그러한 예를 하나 본 거야 " (397p)


래빗의 이야기가 1부로 끝나지 않고 4부까지 이어져서 그나마 다행이다. 제니스도 그렇게 살지 않았어야 했고, 루스도 불쌍하긴 매일반이며 토세로도 안타깝긴 마찬가지다. 에클스도 적당히 가족을 돌봐야하고 무엇보다 래빗도 최소한 잘살아보면서 고민따위를 하는 지지리도 궁상인 중산층 비스무리한 삶에서 벗어도 나야 한다. 때로는 이런 삶이 우리 곁에 있는 듯하지만 다들 마음속으로 생각하길...'난 이정도는 아니야'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난 이정도로 무책임하지는 않아라고 자위하면서 하지만 삶이 어떻게 그렇게 뜻대로 되겠는가. 그 때 래빗이 갑자기 차를 몰고 430번을 타고 포토맥을 넘어가는 그런 순간이 오지말란 법이 어디있는가. 마음속으로는 래빗보다 더 많은 가출과 더 많은 탈출을 꿈꾸며 사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다. 마치 상상속으로만 펼쳐보았던 대탈출의 현실화가 비극적이고 또 처참하게 전개되었지만 마음속으로 '불쌍한 래빗'이라고 읇조릴만할때는 다들 결국 비슷한 것이다. 래빗이나 나나...그리고 이웃들이나...


cf) 그리고 업다이크의 신경증에 걸릴것 같은 현재형 묘사실력때문에 머리가 멍멍하다. 이런 묘사는 어디서도 본 적없는데 때로는 굉장히 천천히 그리고 음미하듯 읽었어야 하는게 아닐까라는 자기반성적인 느낌이 들곤한다. 그런데 이런 암울함을 곱씹으면서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진 않는다. 공부하듯 답습하듯 문장과 문체를 연구한다고해도 <달려라 토끼>를 여러번 읽는건 지치는일이다.

 


달려라 토끼

저자
존 업다이크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1-08-2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물질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20세기 미국문학의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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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ewell
Review BOOK/소설2013. 2. 19. 22:00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1859)/찰스디킨스 Charles Dickens
펭귄 클래식 코리아.

 

 

<다크나이트>시리즈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동생 조나단 놀란'엔터테인먼트 위클리'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힌바 있다. "프리츠 랑의 <메트로 폴리스>(1927), 그리고 찰스 디킨즈의 <두도시 이야기>(1859)로 부터 <다크나이트 라이즈>가 영감을 받았다"말이다. 그래서 궁금했던 것 같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말미에서 느꼈던 거대한 대서사의 위력앞에서 감동먹고 도대체 이런 건 어디서 영감을 받는거지라고 혼자 되뇌이면서..그런데 막상 놀란의 입에서 '두도시 이야기'가 나오다니 이거 한번쯤 읽어볼만한 소설이겠거니하는 막연한 기대 같은게 무럭무럭 솟아나는게 아닌가. 


디킨즈의 <두도시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한번 정도는 들어본 적이 있는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근자에 이르러서 대서사 로맨스로 엮여진 뮤지컬의 상징적인 작품으로도 장기간 흥행에 일조했고 (보이스 오브 키즈의 '윤시영'도 두도시 이야기 출신이다.) 구조상 뮤지컬같은 무대에서 펼쳐질 정도의 드라마틱한 전개를 상상해본다면 소설 원작을 읽어보지 않을 수 없게된다. 막상 이 소설은 의외로 잘 읽히는 편이다. 애초부터 디킨즈가 장편소설 단행본으로 후다닥 써서 선보인게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겠고 (연재형태로 소설이 쓰여졌음) 마치 씬 전개처럼 1막, 2막 끝나듯 절단되어있는 챕터구조도 이런 읽기에 꽤나 도움을 준다. 부담이 없고 기억과 연결을 용이하게 해주며 무엇보다 고전특유의 맺고 끝내는 모양새가 잘 정리된 순서도를 보는 것처럼 치밀하다. 모호한 구석은 없고 모든 묘사들과 전개는 이야기에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어서 요즘 소설같이 시간의 뒤틀림과 반전의 카타르시스를 위해서 수없이 편집되다가 유야무야 아무런 해결도 못하고 사라져버리는 정체모를 미장센들에 비하면 정말 완성도 뛰어나다고 말할수 밖에 없다.


이야기는 알렉상드르 마네트 박사가 오랫동안 감금되어있다가 '자르비스 로리', 그리고 딸 루시에 의해서 석방되는 지점부터 시작된다. 왜 마네트 박사가 감옥에 갇혀있었는지, 그리고 암울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 '구두를 수선'하는 자기분열에 시달려야 했는지는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서서히 드러난다. 이야기 구조는 간편하게 보자면 과거의 은밀한 어떤 사건으로 인해서 현재 진행되는 모든 사건들이 영향을 받게되는 형태다. 물론 근저에는 '음모, 배신, 그리고 복수'라는 격앙된 스토리 구조를 따라가면서 정통적인 복수시나리오, 그리고 역사적 배경에 휘둘리는 주인공의 애처로운 탄식. 이런 것들로 부터 자유롭진 못하다. 게다가 이 소설의 제목처럼 런던과 파리를 오가면서 격동기를 보내는 이 배경에는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프랑스 혁명'이라는 거대 함의가 녹아들어가 있기때문에 신분과 평등에 대한 가치관을 소설속에 투영하게 되면 굉장히 부담스러워질수도 있다.


대충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프랑스의 혁명의 실질적인 피고 '왕정과 귀족들' 그리고 형을 내리는 검찰에 해당하는 '평민'들의 입장에서 어쩔수 없는 귀족신분의 주인공과 평민 신분의 또 다른 주인공을 대비시킨다면 '두도시 이야기'의 구조적 의미와 명확하게 일치될 수도 있겠다고...대충은 그렇게 짐작하기 쉽다. 두도시와 역사적 배경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서사적이면서도 격동기에 휘말린 운명적이고도 딱한 로맨스를 말하기에도 십상이니까. 그런데 두도시 이야기가 이렇게 단선적이지도 그리고 명료하지도 못했던 이유는 복합적으로 엮여있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귀족으로부터 폭압적인 탄압을 받았던 에브레몽드가의 하인들, 그리고 처참하게 죽어간 가족을 바라보는 생존자. 훗날 입막음을 위해서 희생된 마네트 박사, 그리고 박사의 딸이 사랑하게 된 사람은 에브레몽드의 후계자. 자...이 정도면 막장 국내 아침드라마를 방불케하는 구조로 전개된다. 고전도 막장드라마의 패턴을 가지고 있는거다. 여기에 배다른 형재나 자매, 그리고 기억상실이 끼어들면 최강이지만 디킨즈도 거기까지는 오버라고 생각했는지 가지 않았다.

 

다만 이 정도의 이야기에서도 충분히 몰입적이고도 의미있는 이야기들을 전개시켜나간다. 특히나 프랑스 혁명의 시점을 논할때는 그 의미가 가지는 '순기능적이고도 사회기여적인 발전적 태도'의 관점에서 긍정적 이야기를 꾸려나가지 않았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야기는 드라마적이지만 배경도 그 한요소로 충분히 힘을 발휘하니까 그 묘한 배경의 힘을 빌어서 이야기에 파워를 실어다 주는 점은 굉장히 거장답다고나 할까. 먼저 혁명의 그 시기를 '공포적'으로 묘사했다. 그러니까 광기가 스며드는 파리의 전조를 굉장히 디테일하면서 긴장감 있게 부각시키다가 갑자기 폭팔하듯이 몰아쳐버렸다. 그 와중에 대중들이 들고 일어나는 '정의'에 대한 '정의'를 폭압적이고도 불평등했던 귀족들 못지않게 비이성적으로 달려간다고 본 것 같다. 그 대표적 인물은 역시 드파르주. 드파르주 부인라고 해야 맞겠지만 이 부부의 '귀족에 대한 복수극'은 이성의 범주를 넘어섰다. 특히나 드파르쥬 부인의 회고에는 증오와 파멸이라고 하는 광폭한 결말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드파르주 부인은 과거 마네트 박사의 학대를 빌미로 귀족에 대한 최종 복수극을 이어가려고 한다. 마네트 박사는 이미 자신은 귀족을 용서했음에도 불구하고 (딸 루시가 사랑했던 찰스 다네이에 대한 구명운동을 보면 아마도 독자 대부분이 이런 전개를 예상했으리라) 그런데도 정작 드파르주 부인은 복수극을 멈출 기미를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마네트 박사가 감옥에서 절망을 느끼며 기록했던 '귀족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과거 편린을 기초로 찰스 다네이를 기요틴 앞으로 보내게 된다. 아마 후반부에서 펼쳐지는 이 폭력적인 광기의 흐름들에서 독자들은 가슴떨리는 긴장감 ,그리고 드파르주 부인에 대한 반감과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세상은 사랑과 용서를 말할때 존중을 드러내니까 드파르주가 부인에게 이제 그만 해도 되지 않냐고 했을때 드파르주 부인이 했던 ' 바람과 불한테 물어보라'는 냉정한 어조는 그래서 악마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 복수와 증징에는 시간이 필요해요. 번개가 만들어지는데 걸리는 시간이 있죠 " 라고 말했던 드파르주의 증오는 점차 그 이유를 알아가게 되었을 때, 광기로만 치부할 수 없음을 체감하게 된다. 

 

사실 이 소설에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하는 치밀한 복수전개 내지는 증오의 표출과는 또 다른 테마가 있다. 이름하여 사랑과 희생. 이 소설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또 하나의 인물 (마치 주인공이 루시와 찰스 다네이라고 착각했던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듯한) 바로 '시드니 카턴'이 그다. 카턴은 파리에 비해 훨씬 '진보적'이었던 런던에서 그저 그런 스트라이버 밑에서 일했던 변호사. 그는 다네이의 석방을 위해서 발로 뛰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순정을 루시 마네트에게 바쳤다. 그런 그가 마지막에 '구세주'처럼 등장해서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고전의 신파극이라고 아무리 치부할지라도 엄청난 감동을 안겨준다. 좀더 현대적인 색채라고 한다면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을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면서 끝까지 모든 것을 주려고하는 사랑의 상징적인 인물로 화했을 것이다. 그래서 카턴의 희생을 보면서 다들 안타까워하고 루시와 다네이에 대한 안도감을 민망해하는 것이 아닐까.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이런 두도시의 후덜덜한 서사를 옮겨왔다고 했다. 아마 '샤를 에브레몽드/찰스 다네이'는 브루스 웨인이자 배트맨으로, 시드니 카턴은 블레이크, (여기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다네이의 귀족신분이자 인격과 무관한 어떤 사회적 지탄에 대한 희생으로 볼때 브루스웨인이라고 생각하며, 어둠의 기사역할을 이어받으면서 다시 자신이 대신 그 짐을 짊어지려는 블레이크가 카턴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 그리고 미스 프로스는 캣우먼, 드파르주는 베인, 드파르주 부인은 탈리아 알굴 정도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그 정도라면 히어로물에 심어둔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을 주기 충분하다. 현대판 두도시 이야기가 다크나이트 라이즈라면 원작 두도시 이야기가 가진 엄청난 위력을 실감할 수 있지 않을까. 세월을 뛰어넘는 듯한 이 세세하고 절절한 묘사, 그리고 눈물 날 것만 같은 마지막 장면들, 그리고 하나하나 심정적으로 동감하지 않을 수 없는 주변인물의 사정들...왜 두도시 이야기가 명작이자 고전중에서도 고전이라고 일컫는지는 한번이라도 이 책을 읽어봐야만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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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ewell
Review BOOK/소설2013. 2. 18. 19:00

치츠랑 소금이랑 콩이랑 

가쿠타 미츠요/이노우에 아레노/모리 에토/에쿠니 가오리.




일부러 그랬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소개하는 많은 곳에서 '에쿠니 가오리'가 저자 앞머리로 등장한다. 하기사 에쿠니 가오리 정도되어야 독자들의 뇌리에 기억된 '유명인' 판타즘이라도 불러올 수 있으니까…어떡해든 어필하려면 에쿠니 가오리라도 전면에 나서줘야 되겠지싶다. (에쿠니 가오리는 '도쿄타워' 그리고 '냉정과 열정사이'로 유명하다. ) 그런데도 난 에쿠니 가오리는 별로다. 특히 이 책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에서 선보인 4개의 단편 소설중에서는 더더욱 '알렌테주'는 평범했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이 그렇듯이 넘치듯 범람하는 감정의 과잉들이 가끔 싫을 때가 있다. 적당했으면 좋겠는데 싶다가도 무미건조해버려서 '앗 이거 수위조절하다가 이도저도 아닌게 되버렸어' 라고 혼자 되뇌일때는 저자에게 좀 미안한 심정이다. (그렇다고 에쿠니가 나 따위의 독자에게 뭐라하거나 사과할리도 만무하지만..) 어찌됐든 마지막 소설이었던 '알렌테주'로 부터 굉장히 따스한 마무리를 읽어버렸다는 감상평에 대해서는 존중한다. 사람마다 느끼는 건 다 다른 법이니까. 


잡설이 길었지만 에쿠니 가오리가 어떻든 그건 개인적인 소견일뿐 아마도 독자들은 4명의 작가들로부터 입맛에 맞는 어떤 취향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왜냐면 이 소설은 아래와 같은 4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있으니까....


신의 정원 (Basque /Spain) : 가쿠타 미츠요.

이유 (Piemonte / Italy): 이노우에 아레노

블레누아 (Bretagne/France): 모리 에토

알렌테주 (Alentejo/Portugal): 에쿠니 가오리.


이 책은 요즘 유행하는 '관계'의 힐링을 전제로 각 에피소드에서 '음식'을 중요한 매개체로 등장시켰다. 음식이야기를 슬며시 하는 것 같지만 점점 깊이있는 이야기를 하다보면 사실은 음식이 이어져있는 결정적인 주인장들에 대한 감정들이 소용돌이 치면서 부대낀다. 갈등이란 자고로 이런 부대낌이 없으면 존재하지도 않을테니까 당연한 것이겠지만 분풀이도 음식으로..그리고 힐링도 음식으로 한다는 지점에 있어서는 묘한 테마설정을 소설의 메인으로 삼았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지방색이 완연한 4편의 소설에서는 마치 그 지역에서 인터뷰를 한 것 같은 생생한 냄새도 풍기면서 묘한 사람냄새까지 섞어놓았다. 


 신의 정원에서는 '만찬의 날'에서 통보된 어머니의 예고된 시한부 인생, 그리고 도망치듯 가족들부터 벗어나고픈 주인공의 회한이 등장하지만 기어코 결말에서는 '힐링'이 된다. 식탁 어딘가에 앉아있을 어머니로부터….'그러는 너는 제대로 밥은 챙겨먹고 있는 거니? " 라는 말을 듣는다. 


'잘 챙겨 먹고 있으니 걱정마세요' (60p) 


눈물 나올 것만 같았던 <신의 정원>편의 마무리를 읽으면서 치열한 삶같은 건 결국 부모세대들이 우려하고 걱정했던 자식들에 대한 사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간다. 혼수상태에 빠진 남편 카를로를 향한 애증의 심정을 보여주고 있는 <이유>편도 그렇고, 브르타뉴 토속의 믿음같은게 운명적으로 연결되는 <블레누아>편도 그렇다.  (특히나 블레누아는 신의 정원과 매우 유사한 뉘앙스를 결말로 택했다. 궁금하신 분은 직접 읽어보시는게 좋겠다. ) 알렌테주에서 루이스와 마누엘이 느낀 일상같은건 오히려 차분하고 잔잔하지만 그것도 역시 '관계'에 대한 복잡한 시선을 단촐하게 추려내고 깔끔하게 정리정돈 했다. 자유분방한 감정들이 난립하면 '미친년 꽃다발'같은 수많은 감정 부스레기들이 이곳저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애쓰는 법인데 요행히 그런 잔가지들이 애초에 다 정리된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 소설에는 그런 지저분함이 없어서 좋았다. 짧지만 명료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솔직한 느낌들. 여행을 해야만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생생한 시골풍경. 지면에서 눅눅히 전달될 것만 같은 음식냄새들. 신경질적으로 펼쳐진 대화체속에서도 가늠할만한 '사랑'과 관심에 대한 표현들. 훗날 이어지는 넉넉하고 잔잔한 미소들. 둘러앉은 식탁에서 풍겨나는 회한, 추억, 그리고 사랑. 모두  음식으로 연결되어 버렸다. '같은 음식을 같이 먹는다는 것은 별개의 인격임을 바꾸지 못하는 두 사람이 매일같이 같은 음식을 몸속으로 집어넣고 있다는' 책속의 표현대로 서로를 바라보면서 하는 식사의 의미가 증폭되는 느낌이다. 아마 차분하게 자근자근 읽어준다면 갑자기 어린 유년시절의 먹었던 음식들의 맛이 궁금해질지도 모르겠다. 원래 음식이란 기억이라는 방부제만큼 유효기간이 있는 법이다. 추억이 있는한 절대 상하지 않는 음식들…그런 거다.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은……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

저자
에쿠니 가오리 지음
출판사
시드페이퍼 | 2011-09-23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일본 최고의 인기 여성작가 4인이 유럽의 시골에서 먹고, 쓴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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