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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1.23 품절과 절판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Vanilla Essay2013. 11. 23. 11:37

책을 제때 제때 사서 읽어야 여러모로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늘 형편과 상황이 그렇게 딱 좋게 전개되는게 아닌지라 구매하고 싶은 책이 떡 하니 눈앞에 진열되어도 그저 몇 장 읽다가 주머니 사정을 떠올리고 뒤돌아선 적이 한 두번이 아닌게 문제지... 책이란 원래 읽고 싶을 때 구매하지 않으면 그 마음가짐이 변해버려서.. 안 떠올리면 안사고, 안 사면 서서히 잊게 된다. 그러다가 온갖 지명도로부터 그 컬러가 희미해질 무렵, 책 스스로가 '이젠 나를 안찾는군' 이라고 힘없이 중얼거리고, 가출하듯 잠적한다. 그야말로 이건 완전한 잠수이자 세상과의 매몰찬 단절인 것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기 전에 어떻게든 생각난 책은 근시일내에 수중에 품어야 한다는 절박함같은 게 생긴다. 나중에 후회하기는 너무 싫으니까..물론 구매하지 않고 자꾸 미루어둬도 계속해서 마음속 한구석에서 '빨리 나를 읽어줘'라고 종용하는 책이 있긴하다. 이런 경우엔 이런 끊임없는 외침에 굴복하듯 결국 어떻게든 나중에 책장에 가서 꽂히게 되지만,  대개의 경우엔 '언젠가는 읽어주리라'는 모호한 다짐의 게으름속에서 하염없는 위시리스트로 떠돌 뿐이다. 더우기 그때 주머니 사정이 안좋을수록 그 책이 가지는 경제적 지위는 너무나 우월해서 결국 '자본주의의 폐혜'와 어떤식으로든 관련이 있을거라는 말도 안되는 핑계도 댄다. 


그럼 어떤 분들은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다. 체계적으로 차곡차곡 계획하에 정기적으로 구입하면 될 거 아니냐고...경제적인 스케줄, 그리고 적절한 분배...뭐 다 좋은 이야기다. 하지만 책 구매란 적어도 나에겐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불현듯 나타나는 로맨스와도 비슷하다. 우연의 고리에서 어느날 문득 다가오는 충동적인 독서욕구는 랜덤에 가깝고 운명적인 만남스럽다. 스케줄 따위는 다 무용지물이고 쓸데없는 '사서고생'쪽에 가까워지곤 했드랬다. 야심차게 준비해도 정작 구매 직전에 가게 되면 마음이 바뀌고 그 책도 온데간데 없고..그러다보면 계획이란건 좀 더 즉각적이어야 했음을 깨닫고..뭐....그러는 편이다. 계획목록에 넣어야 하는 책들도 너무 수시로 자주 바뀐다. 


책이란 읽고 싶을 때 읽어야 하는 법, 따라서 그날 필을 받은 책이 있다면 위시리스트의 상단부는 그런 책들도 다 물갈이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 책을 읽다가 불현듯 레이먼드 카버를 읽고, 트루먼 커포티를 읽었다가 업다이크를 읽는다. 디킨즈의 무게감이 그리워 그리고 기어갔다가  브론테 자매의 드라마를 몰아 시청하듯 읽고, 동종의 제인 오스틴 작을 두루두루 읽어본 다음 맬빌의 다큐, 모비딕 이야기로 빠진다. 아르투로 페레즈에서 뒤마클럽, 그리고 삼총사로 갔다가 사바티니를 뒤져서 기어코 스카라무슈와 캡틴블러드, 그러다가 갑자기 환상문학의 로저 젤라즈니에다가 홈즈시리즈, 러브크래프트에다가 뭐...줄줄이 이런식으로 상대를 바꿔가며 애정행각을 벌인다. 어장관리하듯 로맨스의 대상이 하루아침에 휙휙 바뀐다. 이 우연을 가장한 피치못할 욕구들은 언제나 번개처럼 다가오고 식전과 식후다르듯 소리없이 소멸된다. 문제는 대면했을때의 욕구가 너무 강한 나머지 잠시동안의 참을성도 마비되는 거다.  


이유는 단 하나. 이 순간의 충동적인 감정으로 이 책을 읽지 않으면...다음기회에는 이런 느낌으로 이 책을 못 읽을 것만 같은 불안감 때문이다. 이를테면 책을 처음 접하고 책장을 넘겨서 진득한 독서의 세계로 진입하기 위한 마음가짐의 밀도, 그리고 흠뻑 취해버리는 중독 예상의 수치, 끝까지 달려가겠다는 체력적인 부분까지도 완전히 첫번째의 욕망이, 느낌이 다 컨트롤한다. 이 본능이 발동이 걸릴 때 읽는 책들은 몰입의 최강단계를 경험하게 해주고 당위적이거나 잡념이 끼어들어올 틈을 주지 않은 채 새벽녘의 밤하늘을 가로지를만큼 광활한 쾌속질주의 리딩으로 이끈다. 그래서 때가 이르렀을때 책을 집어들고 읽어야 하는 것이다. 유일한 장애물은 간만에 그런 미지의 조우가 이뤄진다고 해도..정신차려보니  그 대상이 이 세상에서 몸을 감춰버렸다는 걸 알게 될 때다. 


난 컬렉터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리고 유행을 따라 출렁이는 뭔가가 되는 것도 별로다. 그냥 한여름 담쟁이 담벼락 위에서 소용돌이 사탕을 빨면서 세상의 7월을 눈감고 느끼는 그저 유치한 독서쟁이가 되고 싶을 뿐이다. 한마디도 제멋대로 읽고 싶을 때 읽을 수 있는 계절이 그리울 뿐이다.  그런데도 그런 계절이 와도, 연인이 문앞에 '지금은 외출중'이라는 문패같은 알림판을 남겨놓은 채 행방불명이라면 그 기분이 어떨까. 때가 와도 모든 것이 완벽해도 정작 제일 중요한 무언가가 없을 때, 과거의 실책과 후회를 들먹이며 자책한다. 책도 그렇다 .책의 유명세와 이름은 인터넷을 주유하는데 실제 하지 않는다니...다들 은퇴하듯 세상에서 책들도 시장에서 다 도망가셨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재고 00 권' 만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이다. 


1900년대까지 가지 않더라도 2000년대 초반 출판 서적들 조차 절판이나 품절의 딱지를 붙이고 아주 미스테리의 심연으로 사라져주시다니..아니 세상에 태어나서 읽고 싶은 책을 읽는데도 이렇게 힘들어야 하다니.. 도대체 이 책들은 왜 일찍 세상을 달리한 요절 천재의 모습을 한 채 사라져주신걸까. 출판사가 돈이 떨어져서 도저히 출판을 할 능력이 못되거나 원 저작자와의 계약만료로 이젠 갱신할 비용이 없어 관두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수요가 너무 지지부진해서 출판할 명분이 안되거나 ...뭐 이러저런한 이유일 것이다. 이유가 어찌됐든 책은 없고 검색은 된다. 검색은 되는데 어디에도 '지금 주문'은 비활성이다. 바야흐로 '절판'의 계절이다. 


얼마 전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보려고 뒤적거리다가 알게 되었는데 생각의 나무에서 내놓은 양장판 율리시스가 절판된 걸 알게되었다. 그때 사뒀어야 하는건데..미적거리다가 이럴줄 알았어라고 혼자 되뇌이고 있었다.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도 그랬지만 이언 매큐언의 '암스테르담'도 이에 못지 않았다. 이 책이 수상작이던 뭐던 간에 일단 손이 가서 몇 장 넘겨보고 괜찮다싶으면 사뒀어야 한다. 지금은 구하기도 어렵고 아무리 욕구가 승천해도 이걸 몇 배씩 주고 사고 싶은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왠지 책가격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분위기가 싫어서일수도 있고 이 정도의 책이라면 언젠가는 다시 재출간해주리라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근본적으로는 책이 언젠가는 나올수 있다는 쪽에는 긍정적이지만 처음 채을 구매하지 못했던 상황에 대해서 끊이없이 후회하는 쪽이라 더 미련스럽다.


길을 가다가 문득 든 생각인데 어쩌면 없는 살림에 쪼개서 몇 권 구매한 내 책장의 책들을 오히려 더 감칠맛 나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뭐 경제적 쪼들림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에너지드링크라도 부은 걸까. 정신은 선명해지고 집중도는 올라가니...그나저나 절판 서적들은 요청이 있을시에 다시 내주었으면 한다. 미련스러운 그 바램들이 다시 희미해져서 아예 기억조차 나지 않게 되면 다시 기억하게 될 우연의 시기는 적어도 몇 십년 후가 될 수도 있으니까..그때 다시 회한을 품는건 정말 미련하기 짝이 없게 된다. 청춘을 그리워하는 노년의 쓸쓸함에 견줄만 할까..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