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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3.12 파인딩 솔드아웃 북스 (Finding sold-out books)
Vanilla Essay2014. 3. 12. 21:52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시오리코다자이 오사무<만년>에 불을 붙이는 쇼로 가사이를 충격에 빠뜨릴 때 가사이는 '시오리코가 결코 책에다가 불을 붙일 부류의 인간이 아니었음을 알았음에도 당황했었드랬다. 왜 그랬을까. 좋아하는 책이 소멸된다고 생각해서다. 앞뒤 가릴 것없이 그것만 눈에 들어오는 좁아진 시야를 보면서 한정판의 위력을 본다. 모든 한정판은 가슴을 뛰게 한다던 지인의 표현처럼 어떤 대상이든 그것이 제한적이거나 소멸의 과정에 있다면 남기고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게 마련이다. 책같은 경우에는 좀 다르다고는 생각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책이 불탄다고 상상하면 나도 별반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는 결코 책에다가 불을 불일 수 없는 시오리코 같은 부류가 반드시 존재한다. 그 사람들은 책을 찢을 수도 구길 수도 그리고 불태울 수도 없는... 제 몸이 구겨지고 찢겨질 지언정 책은 보듬어 안고 언제까지나 깊은 자신들만의 서재에 꽂아두고 싶어 하는 쪽이다.  나는 그정도는 아니어서 영원한 소유를 꿈꾸지도 않지만 가끔 읽어야 할 책들이 내곁에 늘 있어서 읽고 싶을 때 언제든 집어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기대하고 바라는게 죄는 아니지 않은가. 단순히 읽고 싶은 순간에 찾아도 찾아도 없는 경우가 문제인거지..가끔 읽었어야 했지만 여러가지 저간의 사정으로 읽지 못했던 회한의 책들을 다시 찾으면서 이번에는 읽어야지 이젠 여유도 있고 시간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때가 무르익지 않았겠어 읽어야 할 때가 도래했으니 나는 읽어야만해 라고 마음먹고 당차게 서점사이트를 클릭하지만...온라인 책 검색결과에 쓰여있는 책의 정보 하단에는 덩그러니 '절판' '품절'이라는 글자가 두둥 하고 불길하게 등장한다. 제기랄 그러게 내가 뭐랬어 미리 사두자고 했잖아. 



오래전 짝사랑하던 연인으로 부터 차갑게 들었던 '거절'의 뉘앙스가 '품절'이라는 글자에 박혀있었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놓쳐버린 그리고 제때에 챙기지 못했을 괴이한 회한으로 자책질의 폭풍이 지나고 나면 현실적으로 이 책을 구할 방법이 없을까쪽으로 선회한다. 요즘은 온라인쪽이 많이 발전하여 어디서든 중고서적의 검색이 자유롭다. 지레 포기할 단계가 아닌 것이다. 우리의 '마술램프'와 '공원'사이트를 뒤지고 저명한 몇 개의 중고서적 사이트를 헤메다가 재고를 발견하게 되면 쾌재를 부르는 거고 그렇지 않아도 때를 모색하며 쥐죽은 듯 인내의 시간을 버티면 된다. 책이란 수요에 의해서 언젠가 다시 검색란에서 재등장할 날이 오니까..그러나 이런 과정을 거친다고 해도 세상에서 감쪽같이 모습을 감춘채 종적이 사라져버린 소멸의 책들도 있긴하다. 그 책은 내가 읽을 인연의 책이 아니었던 거다.


최근에 몇 권의 절판 및 품절 서적을 손에 넣었다. 라파엘 사바티니<스카라무슈>, 그리고 야마다 에이미<슈거 앤 스파이스>, 이언 매큐언<암스테르담>, 레이먼드 카버<대성당>이다. 사바티니의 저작들은 국내에 정말 제대로 등장한지 꽤 되었다. 스카라무슈라 그렇다쳐도 (옛날 고리짝시절 문고판으로 등장하긴 했었다), 불후의 명작 캡틴 블러드 따위는 아예 등장도 안한다. 어린 시절에 보물섬에서 보았던 이현세옹의 만화을 떠올리며 스카라무슈를 기억할 뿐이었다. 활극소설로 사바티니를 능가할 작가도 별로 없다고 보는데.. <스카라무슈> 몇 년전 등장했다가 휘리릭 사라져 주셨드랬다. 물론 중고 서적에 이 책이 등장하기는 했는데 가격대가 후덜덜해서 문제인거지 싶다. 3배 넘는 가격으로 등장해버려서 과연 내가 이 책을 이 가격에 읽어야만 할까로 한참 고민을 안겨주고 있었다. 최근 또 다른 서적상으로부터 적절한 가격으로 번개처럼 검색이 되었다. 후다닥 결제라인을 완료하고 나니 다시 품절로 가버리는 걸 보고 인연의 끝을 마지막에 잡은 느낌이라니...



야마다 에이미의 작품들은 약간 논란이 있긴 한데 왠지 여성들이 읽는 책이란 선입관과 너무 에로적이고 적나라하다는 속성때문에 대중적으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칭찬하는 부류는 아니었을 거다. 이렇게 보수적인 나라에서 섹스장면이 부지기수로 등장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묘사해대는 과감함은 또 다른 오해를 부르기 딱 좋지 않은가. <설국>도 그렇게 매도된지 오래다. 대중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책을 읽는 사람들의 수준 운운하는 모양인데 요시모토 바나나쿠니 가오리 소설을 닥치는 대로 읽으면서 야마다 에이미를 은근슬쩍 꺼려하는건 이율 배반적이지 않은가. 난 개인적으로 야마다 에이미의 소설을 맹렬히 좋아하진 않았어도 나쁘지 않게 읽는 편이다. <풍장의 교실>같은 건 드물게 정서를 침참시켜서 절구통에 삐죽삐죽한 짜증덩어리를 넣고 돌려대는 느낌이다. 너의 정서란 세상의 그저 한 부스러기일 뿐이야 라고 책망받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에이미의 저작들도 초기작들은 왠간에서 구하기가 어렵다. <슈거 앤 스파이스>가 아마도 나쁘지 않은 작품일텐데도 제대로 읽어볼 기회조차 오질 않았다니...희한하긴 희한하다. 아무튼 이 책도 중고서적에서 건져냈다. 


이언 매큐언<암스테르담>은 사실 주변의 지인들이 열렬히 찾던 책이다. 이 책은 온라인에서 검색해서 구할 수 있긴 한데 역시나 가격이 문제다. 두배이상으로 뻥튀기 되어있기 때문에 약간 망설여지는데 어차피 읽어야 할 책이라면 그냥 마음 편하게 확 구매해서 읽으면 그만이긴 하다. 그나저나 <암스테르담>이 재판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다. <토요일>은 아직도 버젓이 유명 서점에 꽂여 있는데 <암스테르담>의 어떤 점이 절판의 블랙홀로 이끌었는지 감지조차 되지 않을 뿐이다. (하기사 토요일에 비할바가 아니지..매큐언의 소설도 어쩌면 대중적이어야만 했을 거다.)


 마지막으로 카버의 <대성당>. 이건 정말이지 할 말이 많은데, 문학동네측에도 문의했던 데로 아마 이 책은 신판 문학시리즈의 하나로 재출간되긴 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이지 질리게도 시간을 오래끌고 지지리도 진척이 없어서 문제다.  문의한게 작년인데 아직도 나오지 않는다. 대성당의 가격이 미친x 머리칼 나부끼듯 폭주하는걸 보면서 혹시 저 책의 특정 페이지에 카버의 유서라도 들어있는건가 의심하곤 했다. 하지마 이 책은 우연찮게 지나던 중고 서점에서 구했다. 물론 제 가격에...


이런 걸 보면 책이란건 정말 인연이란게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된다. 읽으려고 읽으려고 애써도 손에 안들어오는 책이 있는가하면...한참을 잊고 있었어도 결국에는 손에 들어와 읽히는 책들이 있다. 그 책들과 나와 어떤 운명적인 실타래가 있는지 알수 없다. 때로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던 책들이 오랜 시간 후에 내 손에서 읽히는 날도 많았으니까..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을 순 없다는 걸 안다. 그래도 최소한 눈에 걸리는데로 읽어야 겠다고 다짐한 책들의 일부분 만이라도 나와 같이 숨쉬며 생존해 있기를 바라고 잠시 기억에서 사라졌더라도 언제고 다시 나타나 주길 꿈속에서라도 기대할 것이다.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