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illa Essay2014. 3. 13. 17:45

오고가는 지하철에서 머무르는 시간만 따지자면 내 전세금의 일부분은 5678 지하철쪽으로 주는게 도리에 맞다. 이게 흔들리지도 않고 주기적으로 어수선하게 누가 왔다갔다하는 환경적인 인터럽트만 제외해준다면 어떤 점에서 하나의 생활공간이 아닐까 의심한 적도 많았으니까. 문이 열리고 난 들어오고 앉고 내 할 일을 하고 한참 후 다시 나간다. 집과 다른게 뭘까. 공간이 좀 좁다는 정도? 


어느날, 고개를 들고 지하철 객실을 스윽 보았는데 통로에 늘어선 사람들이 마치 가로등같다고 느껴졌다. 다들 손에다가 스맛폰 하나씩들고 얼굴에 광선을 맞아가며 제 역할을 하고 있노라니... 스맛폰의 화면이 좀더 크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신경 좀 써주면 다들 액정을 통해서 이계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기능이라도 만들어 줄지 모른다. 그리하여 다들 지하철에 타자마자 스맛폰 액정을 통해서 4차원 공간으로 들어가는거지 거기서 게임과 액션을 즐겨하며 정신줄 놓고 목적지까지 가고 목적지에 다다를 때, 다들 액정에서 튀어나와 유유히 지하철 문을 열고 내리는거다.  뭉그레뭉그레 거리면서 영혼들이 화면으로 빨려들어가고 나오는걸  보는 재미라니..놓치고 싶지 않은 구경거리일텐데...  

  

다 이계공간으로 떠난 지하철에서 난 책을 혼자 꺼내 읽는거다. 다들 자리에는 스맛폰만 번쩍이고 깜빡이고 오프라인 올드보이들만 남아서 책이나 읽고 잠이나 쳐자고 그렇게 말이다. 그냥 책을 좀 편하게 읽었으면 해서 상상해본 쓸데없는 짓이었다. 실상에서 지하철이 책을 읽기에는 나쁘지 않은 장소이긴 한데 최적의 장소라고 격찬할 정도도 아니다. 리얼 월드에서는 위의 망상같은 판타지가 없기 때문에 쳐들어오는 승객들을 우선 다 받아내야 한다. 우라지게 오래되어 색깔조차 고풍스런 몇몇 호선은 그야말로 김말이에 부어진 알밥 알갱이들처럼 꾸역꾸역 쏟아져 들어온다. 지하철공사측에서는 '알갱이들 다 다 타셨어요. 당신들 부대끼다가 터져도 우린 책임지지 않습니다 준비되셨죠 문닫아요 라고 방송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와중에 난 자리에 후다닥 앉는다고 다음의 시련이 오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우선 현대인들의 다이어트 유행을 무시라도 한듯한 어깨들이 자신들의 어깨를 끼어 맞춘다. 레고도 사이즈가 안맞는걸 억지로 끼울순 없듯이 지하철 자리에도 어깨를 무조건 끼우는게 서로 친밀감을 상승시키지 않는다. 때로는 어깨가 끼워지고 나면 밀려들어간 내 어깨의 가로사이즈가 원망스럽기까지하다. 가방도 흘러내려서 짜증나는데 여기서도 밀려버리다니..책을 들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내 옆에 무뢰한은 내  책을 흘긋보고 우람한 근육으로 책따위는 치우시지 라고 무언의 협박을 하는 느낌이다.  


몇몇 정거장에서 들어오는 불청객들은 거대한 고기 공장에서 자신들이 화형식을 거행하고 왔다고 자랑질을 객실전체에 쩌렁쩌렁 자랑한다. 이게 무슨 법이 있어서 불쾌한 냄새 소유자는 탑승 금지 뭐 이런게 있는것도 아닌데 어쩌겠는가만은 온갖 고기냄새와 살냄새와 뜨거운 입김들과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개개인의 통화내용들을 완전 공개로 객실에 쏟아놓으면 책을 읽는건 정신병자들이나 하는 짓이란 생각이 강하게 들 뿐이다. 덮고 그냥 눈감고 이 세상이 잠시간 다른 세상이라고 여기면서 꿈을 꾸는게 더 좋다. 


지하철에 사람이 없기를 간혹 바란다. 

물론 아무도 없으면 공포영화가 생각나서 움찔움찔하지만..너무 빼곡하지만 않다면..

읽으려고 쌓아놓은 책들 몇 권은 이 익스프레스 라이브러리를 통해서 읽혀질텐데..읽고 나서도 노트귀퉁이에다가 몇호선 몇구간을 지나면서 완결이라고 끄적여 놓을수 있을텐데...


말같지도 않은 바램을 한번 해봤다.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