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말할때우리가이야기하는것'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3.08.14 사랑을 말할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레이먼드 카버
Review BOOK/소설2013. 8. 14. 18:18



레이먼드 카버의 이야기를 읽으면 '두려움'을 느끼곤 하는데 그 이유는 삶에 뭔가 문제가 생겨서 평온한 상태가 왕장창 깨져버릴 것만 같아서다. 젠장 안좋은 소식이야...라고 누군가가 굳은 얼굴로 이야기하고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뭐 그런 상태가 되는거다. 내 이럴줄 알았어 어쩐지 좋은 날들이 이어지나 싶었는데 기어코 이런 일이.....이렇게 혼자 읇조리면서 말이다. (드라마에서는 비일비재이지만 일상에서 일어나기를 원하는 독자들은 없겠지설마.) 그래서 말인데 카버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편히 즐기면서 읽지는 못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이 아저씨가 도대체 후반부에서 어떤 충격적인 결말을 보여주실려고 이러시나 그러면서 조마조마하면서 책장을 넘겼드랬다. 이윽고 처연하게 마무리되고 나면 씁쓸함이 가슴언저리에서 떠나지 않게 되고, 결과적으로  지구에는 늘 행복한 사람도 늘 기쁜 사람도 있을수가 없으며 슬펐다가 기뻤다가 그러는 반복된 일상이 진짜 인생인거야라는 속삭임만 가슴에 덩그라니 남는다. 이래서야 일부러라도 카버 소설을 집어들고 편안한 휴가를 보내고 싶을까.


대개 영미권의 현대소설, 특히 단편들에 이런 분위기가 많이 깃들어있는데 작품성으로는 깔끔하고 함축적이고 주저리주저리대지 않는 단백함으로 격을 높였다는 평가를 많이 받아왔다. '중산층의 체호프'라니...낯간지러운 타이틀일수도 있겠는데 오죽했으면 카버에게 그런 걸개를 걸어주었을까. 이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미니멀리즘'의 여파라기 보단 '서프라이징 엔딩' 효과 때문인 것 같다. 


평이하게 이야기하다가 느닷없이 반전으로 마무리하는 그런 흐름....'확 찬물을 끼얹으면서 정신차려 친구 이 이야기가 이렇게 끝나지 않는다는걸 눈치채고있었어야지 라는 식으로 말이다. 때론 충격적일수도 있고 그정도가 아니라면 잔잔하게 파도를 일으키며 끊임없는 밀물이 들이닥치는 자극들이 이어진다. 카버의 이 단편집에서도 그렇다.  <정자>에서 드웨인과 홀리 부부가 처음부터 나누는 대화가 뭘 의미하는지 당최 모르겠지만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돌고. 이윽고 드웨인이 하우스키퍼와 11호실에서 지속적으로 섹스하면서 아내인 홀리를 속여왔고 결국 들통이 났다는 중심사건이 드러나면서 씁쓸하게 마무리된다.  


사람들 마음속에는 사실 스토리의 반전만 가지고 '인상깊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보다 임팩트있는 것들은 카버의 소설에는 가슴속을 저미는 대목들이리라.  홀리는 '내 가슴은 돌이 되었어. 나는 아무 쓸모가 없어. 무엇보다도 나쁜 건 그거야. 내가 더이상 아무 쓸모가 없게되었다는 거'라고 말하며 드웨인을 압박하고 드웨인은 이제 그만하라며 홀리보다 더 괴로워한다. 이게 인생인거야 어느 가정에서도 일어날수 있는 폭압적이고 거침없는 일탈들..그런 걸 말하고 싶었나보다. 이외 카버의 단편들에서는 일탈이 묘한 '성적 일탈'로 이어지는 경향들이 있다. 


<봉지>역시 레스의 아버지가 어머니와 이혼하기 전에 있었던 스탠리 프로덕트 회사의 여직원과 불륜을 이어갔고 <미스터커피와 수리공양반>도 화자의 아내인 '머나'가 바람이 나서 가출했다가 돌아오는 아이러니한상황을 연결시켜놓았다. <우리가 아버지를 죽인 세번째 이유>도 뭔가 모자란 '더미'가 바람난 젊은 아내를 죽이고 자신도 몸을 던지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심각한 이야기>에서는 이혼한 가정에서 새롭게 남자친구가 생길려는 아내를 용납하지 못하는 남자의 심리를 묘사했다. 


이중에서 <봉지>는 더 인상적이다. '남자에게는 결혼과 관련된 모든 규칙을 지켜오다가 어느 한순간 그것이 더이상 문제되지 않는 때가 있단다. 운명처럼 말이야' 라고 레스의 아버지가 말한 대목때문이다. 그러니까 삶속에서 규칙처럼 지켜오는 것을 위반하는 일탈의 순간이 '본능적이면서도 운명적'으로 이뤄진다는 변명같은 것들이긴 하지만.... 일부러 '삐뚤어질테다'라고 마음먹고 일탈을 감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겠지?  그저 살다보니 갑자기 운명처럼 느껴지는 순간을 맞닥드리게 되고 그것을 따라가면 결국 기존 삶에서 중요하다는 것들이 다 무너진다는...뭐..그런 것들..불륜과 외도가 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것들을 가지고 있는게 아닌가. (이런걸 옹호하는건 결코 아니다.) 어찌됐든 미국 중산층에서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었나보다. 언제인가 '존 치버<그게 누구였는지만 말해봐>을 읽었는데 묘하게 카버와 오버랩 되었다. 이 더러운 기분이 뭐지라고 데자뷰를 느끼면서 카버의 단편들이 촘촘히 박혀있는 장면을 떠올렸던 것이다.(치버소 설에서는 더 구체적이고 절절하다.)


상세보기

카버나 치버나 둘다 다 비슷한 양반들이로구만 그러고 말았는데 어쩌면 단편에서 임팩트를 주려면 서프라이징은 뻔하지 않을까싶기도 하다. 죽음. 사고. 불륜, 외도. 배신. 이런 것들 말고는 이야기하기 힘들테니까..그런데 불행과 불운이 끼어들어가 있으면 왠지 아..이래야만 하나..뭔가 희망을 말해주면 안되나 싶은 마음이 한구석에서 스물스물 피어오른다. <목욕>을 읽을때 유독 그랬던 것 같다. 아들이 생일을 맞이하고 케익을 주문하고 일상이 유지되나 싶었는데 그만 교통사고를 당하고 식물인간이 되고 깨어나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 부모는 아들을 두고 병원에서 안절부절하다가 몸이 더러워 목욕을 하러 잠시 들른다는 아주 단촐한 이야기다. 그런데 목욕을 하는 자신의 심리상태.그리고 말미에 조용히 울리는 병원에서 온 전화가 이어지면서 독자들은 자신들의 시각으로 이 상황이 불운이 아닐까하는 급작스런 우려을 지울길 없어진다. 


'남자는 운이 좋았고 행복했다. 하지만 이제 두려움이 생기자 그는 목욕이 하고 싶어졌다' 라고 써 있는데...행복했던 가정에 불운이 들이닥친 느낌이지 않나. 이게 무슨 전화일지 상상조차 하기 싫어지는 느낌이다.  


한편 굉장히 히스테릭하고 잠재된 폭력성을 터트리는 일탈도 등장한다. <여자들에게 우리가 간다고 말해줘>같은 경우에는 무슨 일본의 묻지마 살인을 연상시키는 사이코패스 이야기들이나 싶을 정도다. 빌 재머슨과 제리 로버츠. 두사람은 둘도 없는 친구. 그리고 인생을 공유하며 살다가 평범한 결혼에 아이들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남자들끼리 노는 것'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차를 몰고 나가서 유부남들임에도 불구하고 길거리의 '바버라와 샤론'에게 작업을 건다. 두 여자가 시니컬하고 거절의 의사를 표시하자 제리는 숨겨두었던 폭력성을 드러낸다. 너희들이 우리를 거절해 감히..뭐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말미가 이렇게 끝난다. 


'그는 제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결코 알지 못했다. 하여튼 바위로 시작하여 바위로 끝났다. 제리는 같은 바위를 두여자에게. 처음은 샤론이라는 여자에게 그 다음에는 빌리의 몫인 여자에게 사용했다' 라고...



한참동안 고민해봤는데 바위라고 해서 결국에 제리가 유혹해서 억지로라도 두 여자를 강간했다는 소리인지..아니면 기어코 둘과 섹스를 했다는 뜻인지 헷갈렸다. 그러다가 바위에 눈이 가는 순간..이건 두 여자를 돌로 쳐죽였다는 소리도 되겠다 싶었다. 제리가 일을 저질렀군. 이 변태같은 살인마같으니라고 유부남주제에 거절했다고 돌로 쳐서 죽이다니...굉장히 충격적인 결말로 마무리된 거였다. 


카버 아저씨 너무 무서워요 이렇게까지 하셔야 하나요. 잔잔한 감동같은 건 없는거에요 구질구질하게 혼자 주절댔던 것 같다. 더군다나 몇 문장 되지도 않고 행간에는 상당한 공백과 고요와 침묵이 있는 것 같은데 우울한 정서들이 사이사이를 다 매꾸고 있다니... 이것이야말로 더블우울빅맥아닌가. 엄청난 공복감을 달래기위해 이 커다란 인생버거를 우걱우걱 씹어먹는 꼴이라니...달콤한 일상들 사이로 껴들어간 일탈과 우울, 그리고 서글픈 사이드메뉴라니...


아무리 먹어도 허무하겠지. 채우긴 어렵겠지 싶다. 




책을 덮고도 늘러붙은 껌딱지마냥 계속해서 궁금증이 따라붙는다. 

<대중역학>의 그 아기는 솔로몬의 지혜도 필요없어서 결국 분리된 건 아닐까. 

그리고 <그에게 달라붙어 있는 모든 것>..이건 내 이야기가 아닐까..




좀 절절하고 너무 생생해서 문제인거다. 

카버의 소설은....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저자
레이먼드 카버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5-02-24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젊은 소설가들의 번역으로 만나는 단편소설의 진경, 레이먼드 카버...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