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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8.19 스카라무슈 - 라파엘 사바티니
  2. 2014.03.12 파인딩 솔드아웃 북스 (Finding sold-out books)
Review BOOK/소설2014. 8. 19. 10:10


라파엘 사바티니의 '스카라무슈'를 며칠 전 다 읽었다. (이 책은 현재 절판 상태다. 재주껏 구해서 보셔야 함.) 책 두께는 어마무시할 정도지만 일단 읽기시작하면 이 두께를 의식하는 일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책장이 마구 넘어가서 이윽고 정신차려보면 반절이 후딱 지나가버린다. 사실 두께가 두꺼운 책들의 대개는 별 내용 아닌 것들이 자리잡는 경우가 많다.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는 넘쳐나지만 그 이야기가 그렇게 중요해서 꼭 알아야만 하는 것들도 아니어서 사실상 생략해도 무방한 경우도 있다.  별개로 스카라무슈 같은 경우엔 쓸데없는 내용때문에 두터워진건 아닌듯 싶고, 워낙 주인공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기때문에 상황을 바꿔가며 활극 나열을 하다보니 책 두께는 어쩔수 없는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두께가 별 문제가 안되는 이유로 전반적인 분위기가 '무협지'적인 뉘앙스를 품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우리가 무협지를 읽을 때 그 엄청난 분량의 활자를 감내하는이유는 바로 가벼운 문체와 이해하기 쉬운 스토리와 어떤 걸 탐구할만한 사유의 늪에 깊이 빠져들 필요가 없어서다. 굉장한 에너지의 소모가 없이도 술술 읽히는 활극모험소설이라면 분량 따위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유럽판 무협지를 방불케하는 이 '스카라무슈'에는 통속적으로 국내 '아침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우여곡절과 꼬이는 인연과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삶이 엄청난 속도로 전개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적 역사적 격랑으로 빨려들어가게 되고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에 반하는 어떤 상황을 만나면서 생각과 마음도 변화를 일으키며 주위의 인물들로부터 부단한 부대낌을 겪고 위험에 휩쌓이고 기어코 복수의 길을 가게 되는 식이다. 주인공의 마음가짐이라든가 어떤 행위에 대한 정당성은 이 소설의 배경에서 그 조짐을 느낄 수 있다. 프랑스 혁명의 전야. 


만약에 스카라무슈가 어떤 권선징악의 단순구도만을 추구했다면 앙드레 루이가 그저 복수와 검객과 정치코미디의 수사에 불과하다고 결론을 내버릴 수는 없다. 거기에는 일단의 역사가 흐르고 있고, 이야기를 지탱해주는 커다란 함의가 깔려있으니까. 사실 귀족, 민중충돌과 프랑스혁명사에 격동기에는 우여곡절이라는 운명의 실타래를 배경으로 로맨스와 모험을 찔러넣는 소설들이 꽤 있어왔다. 인생의 소용돌이란건 그곳에 자신이 빠지지 않은 채 경험해보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 마련이니까..사바티니의 이 소설은 독자들의 이런 대리만족을 이해한다는 듯이 적재적소에 활극을 심어주었다. 지면을 휙휙 뒤로 넘기고 앞으로 전속력 질주를 감행하게 되는건 어쩌면 사바티니가 노린 코스식 요리가 아니었을까. 준비들 되셨나요 이제 막 전채요리가 끝났을 뿐인걸요 메인디시는 아직이랍니다 라고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 앙드레 루이의 파란만장함을 뒤늦게 돌아보자면 사실 몇 권으로 나뉘어 출간되었어도 수긍했을 것이다. 1부 변호사와 복수심, 2부 배우 스카라무슈로의 변신, 3부 검의 마스터, 루이 돌아오다, 4부 소용돌이치는 인연과 운명의 늪..뭐 이런식으로 그럴듯한 제목으로 4부작 시리즈로 적당히 폰트를 키우고 적절한 삽화와 각권의 표지와..등등 이렇게 상업적인 고려를 감안해서 출간이되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상상이 들곤 한다. 팔릴지 안팔리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정도 실패하지는 않았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이 책은 중간중간 끊어도 될만큼 각 스토리사이의 분절이 탁월히 칸막이 쳐져있어서 이제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는걸요 조금만 있으면 우리의 주인공 루이는 사랑하는 알린을 다쥐르 후작에게 내주고 처절히 몰락해가며 찌질한 인생을 살게 될거예요. 그러다가 다시 복수의 칼을 들게 되죠. 다음 이야기는 제2권에서...뭐 이런식으로 독자들의 심리를 꿰뚫어본다면 그럭저럭 분절 출간되었어도 좋았을 것이다. 


의그는 변호사에서 광대로, 광대에서 검객으로..그리고 혁명가였다가 운명의 장난에 의해서 모든 것을 희생해내야하는 전형적인 불굴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대개의 경우, 서사적인 흐름에서는 앙드레 일대기로 묘사되었어도 굉장한 분량의 역사드라마처럼 전개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에게는 활극와 로맨스만으로도 충분한 이야기가 거리가 있었다. 알린과 앙드레 루이와 다쥐르 후작. 세명을 뒤로한 역사의 혼란기에서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종횡할 것인가에 대한 사유가 있었어야 한다고 혹자는 이야기하지만, 그건 이 소설을 너무 진지하게 보는거다. 솔직히 말하자면 대개의 독자는 루이가 알린의 시선을 알아채리고 다쥐르에게 복수할 줄 알며, 불운과 불공평, 불평등의 세상을 헤쳐나가며 먼치킨처럼 우뚝서길 원할 것이다. 거기에는 역사적 깨달음이 없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히려 사바티니가 독자들에게 프랑스 정치사에 있어서 앙드레 루이가 서있는 위치의 타당성과 상징성을 논하려고 지면을 할애하는 순간, 이 소설은 무지하게 따분하게 되었을 것이다. 대중 통속 소설로 시작해서 갑자기 독자들을 가르치려들면 할수록 우원래의 목적은 잊혀지기 마련이다. 자고로 소설은 흡인력이 있어야 하고 여기에는 '재미'란 요소가 빠질 수가 없다. 스카라무슈의 미덕은 바로 이 전형적인 '재미'이 있어서 앙드레 루이가 역사의 굴레속에서 부침을 겪다가 자신의 능력과 재능으로 이 모든 걸 이겨내고 복수하고 사랑을 쟁취하며 구조적인 사회의 분위기에 개의치 않는 '일당백'의 모습을 독자들도 원하게 된다. 만약에 루이가 마지막에서 혁명의 전제조건으로 개인의 행복과 사랑을 포기하고 유치찬란하게 정치계로 진출하고 동지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며 국왕을 페위시키고 시민봉기를 주도하러 앞장서면서 끝을 맺었다면 이 뜬금 마무리에 다들 실소를 금하지 못했을 것이다. 


차라리 이런 식의 결말이라면 번갈아 연습하는 아르투로 페레즈의 '검의 대가'쪽이 그런 분위기에 가깝다. 사바티니의 '스카라무슈'는 완전히 재미가 보장되는 대중소설이다. 아쉬운 것은 '스카라무슈'외 '캡틴 블러드'같은 작품들이 완역본으로 출간되지 못했다는 점이고 나온 책이라고해봐야 아이들이나 보는 해적 모험 소설처럼 격하된 점이 못마땅스럽다. 


 



Posted by kewell
Vanilla Essay2014. 3. 12. 21:52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시오리코다자이 오사무<만년>에 불을 붙이는 쇼로 가사이를 충격에 빠뜨릴 때 가사이는 '시오리코가 결코 책에다가 불을 붙일 부류의 인간이 아니었음을 알았음에도 당황했었드랬다. 왜 그랬을까. 좋아하는 책이 소멸된다고 생각해서다. 앞뒤 가릴 것없이 그것만 눈에 들어오는 좁아진 시야를 보면서 한정판의 위력을 본다. 모든 한정판은 가슴을 뛰게 한다던 지인의 표현처럼 어떤 대상이든 그것이 제한적이거나 소멸의 과정에 있다면 남기고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게 마련이다. 책같은 경우에는 좀 다르다고는 생각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책이 불탄다고 상상하면 나도 별반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는 결코 책에다가 불을 불일 수 없는 시오리코 같은 부류가 반드시 존재한다. 그 사람들은 책을 찢을 수도 구길 수도 그리고 불태울 수도 없는... 제 몸이 구겨지고 찢겨질 지언정 책은 보듬어 안고 언제까지나 깊은 자신들만의 서재에 꽂아두고 싶어 하는 쪽이다.  나는 그정도는 아니어서 영원한 소유를 꿈꾸지도 않지만 가끔 읽어야 할 책들이 내곁에 늘 있어서 읽고 싶을 때 언제든 집어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기대하고 바라는게 죄는 아니지 않은가. 단순히 읽고 싶은 순간에 찾아도 찾아도 없는 경우가 문제인거지..가끔 읽었어야 했지만 여러가지 저간의 사정으로 읽지 못했던 회한의 책들을 다시 찾으면서 이번에는 읽어야지 이젠 여유도 있고 시간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때가 무르익지 않았겠어 읽어야 할 때가 도래했으니 나는 읽어야만해 라고 마음먹고 당차게 서점사이트를 클릭하지만...온라인 책 검색결과에 쓰여있는 책의 정보 하단에는 덩그러니 '절판' '품절'이라는 글자가 두둥 하고 불길하게 등장한다. 제기랄 그러게 내가 뭐랬어 미리 사두자고 했잖아. 



오래전 짝사랑하던 연인으로 부터 차갑게 들었던 '거절'의 뉘앙스가 '품절'이라는 글자에 박혀있었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놓쳐버린 그리고 제때에 챙기지 못했을 괴이한 회한으로 자책질의 폭풍이 지나고 나면 현실적으로 이 책을 구할 방법이 없을까쪽으로 선회한다. 요즘은 온라인쪽이 많이 발전하여 어디서든 중고서적의 검색이 자유롭다. 지레 포기할 단계가 아닌 것이다. 우리의 '마술램프'와 '공원'사이트를 뒤지고 저명한 몇 개의 중고서적 사이트를 헤메다가 재고를 발견하게 되면 쾌재를 부르는 거고 그렇지 않아도 때를 모색하며 쥐죽은 듯 인내의 시간을 버티면 된다. 책이란 수요에 의해서 언젠가 다시 검색란에서 재등장할 날이 오니까..그러나 이런 과정을 거친다고 해도 세상에서 감쪽같이 모습을 감춘채 종적이 사라져버린 소멸의 책들도 있긴하다. 그 책은 내가 읽을 인연의 책이 아니었던 거다.


최근에 몇 권의 절판 및 품절 서적을 손에 넣었다. 라파엘 사바티니<스카라무슈>, 그리고 야마다 에이미<슈거 앤 스파이스>, 이언 매큐언<암스테르담>, 레이먼드 카버<대성당>이다. 사바티니의 저작들은 국내에 정말 제대로 등장한지 꽤 되었다. 스카라무슈라 그렇다쳐도 (옛날 고리짝시절 문고판으로 등장하긴 했었다), 불후의 명작 캡틴 블러드 따위는 아예 등장도 안한다. 어린 시절에 보물섬에서 보았던 이현세옹의 만화을 떠올리며 스카라무슈를 기억할 뿐이었다. 활극소설로 사바티니를 능가할 작가도 별로 없다고 보는데.. <스카라무슈> 몇 년전 등장했다가 휘리릭 사라져 주셨드랬다. 물론 중고 서적에 이 책이 등장하기는 했는데 가격대가 후덜덜해서 문제인거지 싶다. 3배 넘는 가격으로 등장해버려서 과연 내가 이 책을 이 가격에 읽어야만 할까로 한참 고민을 안겨주고 있었다. 최근 또 다른 서적상으로부터 적절한 가격으로 번개처럼 검색이 되었다. 후다닥 결제라인을 완료하고 나니 다시 품절로 가버리는 걸 보고 인연의 끝을 마지막에 잡은 느낌이라니...



야마다 에이미의 작품들은 약간 논란이 있긴 한데 왠지 여성들이 읽는 책이란 선입관과 너무 에로적이고 적나라하다는 속성때문에 대중적으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칭찬하는 부류는 아니었을 거다. 이렇게 보수적인 나라에서 섹스장면이 부지기수로 등장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묘사해대는 과감함은 또 다른 오해를 부르기 딱 좋지 않은가. <설국>도 그렇게 매도된지 오래다. 대중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책을 읽는 사람들의 수준 운운하는 모양인데 요시모토 바나나쿠니 가오리 소설을 닥치는 대로 읽으면서 야마다 에이미를 은근슬쩍 꺼려하는건 이율 배반적이지 않은가. 난 개인적으로 야마다 에이미의 소설을 맹렬히 좋아하진 않았어도 나쁘지 않게 읽는 편이다. <풍장의 교실>같은 건 드물게 정서를 침참시켜서 절구통에 삐죽삐죽한 짜증덩어리를 넣고 돌려대는 느낌이다. 너의 정서란 세상의 그저 한 부스러기일 뿐이야 라고 책망받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에이미의 저작들도 초기작들은 왠간에서 구하기가 어렵다. <슈거 앤 스파이스>가 아마도 나쁘지 않은 작품일텐데도 제대로 읽어볼 기회조차 오질 않았다니...희한하긴 희한하다. 아무튼 이 책도 중고서적에서 건져냈다. 


이언 매큐언<암스테르담>은 사실 주변의 지인들이 열렬히 찾던 책이다. 이 책은 온라인에서 검색해서 구할 수 있긴 한데 역시나 가격이 문제다. 두배이상으로 뻥튀기 되어있기 때문에 약간 망설여지는데 어차피 읽어야 할 책이라면 그냥 마음 편하게 확 구매해서 읽으면 그만이긴 하다. 그나저나 <암스테르담>이 재판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다. <토요일>은 아직도 버젓이 유명 서점에 꽂여 있는데 <암스테르담>의 어떤 점이 절판의 블랙홀로 이끌었는지 감지조차 되지 않을 뿐이다. (하기사 토요일에 비할바가 아니지..매큐언의 소설도 어쩌면 대중적이어야만 했을 거다.)


 마지막으로 카버의 <대성당>. 이건 정말이지 할 말이 많은데, 문학동네측에도 문의했던 데로 아마 이 책은 신판 문학시리즈의 하나로 재출간되긴 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이지 질리게도 시간을 오래끌고 지지리도 진척이 없어서 문제다.  문의한게 작년인데 아직도 나오지 않는다. 대성당의 가격이 미친x 머리칼 나부끼듯 폭주하는걸 보면서 혹시 저 책의 특정 페이지에 카버의 유서라도 들어있는건가 의심하곤 했다. 하지마 이 책은 우연찮게 지나던 중고 서점에서 구했다. 물론 제 가격에...


이런 걸 보면 책이란건 정말 인연이란게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된다. 읽으려고 읽으려고 애써도 손에 안들어오는 책이 있는가하면...한참을 잊고 있었어도 결국에는 손에 들어와 읽히는 책들이 있다. 그 책들과 나와 어떤 운명적인 실타래가 있는지 알수 없다. 때로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던 책들이 오랜 시간 후에 내 손에서 읽히는 날도 많았으니까..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을 순 없다는 걸 안다. 그래도 최소한 눈에 걸리는데로 읽어야 겠다고 다짐한 책들의 일부분 만이라도 나와 같이 숨쉬며 생존해 있기를 바라고 잠시 기억에서 사라졌더라도 언제고 다시 나타나 주길 꿈속에서라도 기대할 것이다.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