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illa Essay2013. 9. 3. 08:41





<이미지 출처 : http://culturacolectiva.com/lo-surreal-en-murakami/>


 


'노르웨이의 숲'을 '상실의 시대'로 읽은 지 대략 이십여년이 흐른 듯 싶다. 그땐 하루키의 문체가 좋다느니 혹은 그의 스타일이 좋다느니 하는 열렬함이 있긴했는데 그렇다고 정서상의 '원심분리기'라는게 있어서 하루키 책을 넣고 스위치를 켜면 45 퍼센트의 우울함과 15 퍼센트의 로맨스, 5 퍼센트의 자기연민, 그리고 35 퍼센트의 재즈가 백그라운드로 깔려있는 연상녀와의 섹스로 구성되어있어요라고 딱 부러지게 말할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냥 모호함과 개인적인 느낌이었을 뿐이다. 어찌됐든 당시 대중의 문학습득 분위기는 지루함을 무찔러라같은 느낌이었다고 기억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때는 바야흐로 밀레니엄을 맞이하며 세기말의 회색빛 암울함을 장식처럼 주렁주렁 매달고 누군가가 돗자리만 펴준다면 이 욕구들을 다  싸질러버리겠다고 마음먹었던 시절이었으니까..'희망'따위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됐고 일탈과 방황과 젊은시절의 타락정도로 질펀한 섹스를 묘사했어도 뭐 그정도 쯤이야라는 젊은층의 배려(?)가 있었드랬다. 


약물에 중독되서 그룹섹스를 벌이는 파격적인 내용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무라카미 류)를  모 당시 유명 작가는 '의미있다'며 자기 부인에게 읽어보라고 추천까지 했다고 들었는데, 사실 난 그 때 그 책을 읽으면서 이런 걸 읽고나서 누군가에 추천해준다는건 '나도 너와 이런걸 해보고 싶어'라고 은밀히 의사표시를 하고 있다는 오해를 피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었다. 욕구 탐닉의 위험수위라는게 이런게 아니면 뭘까라고 이견이라도 말하고 싶었지만 개인이 바라보는 문학의 질감들은 다 다르기에 나같은 속물적이면서도 대중 표피층에 살면서 정도껏 소비를 일삼은 범인들의 입장에선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의 의미를 안다고해도 내 삶은 더 투명해지지 않기를 바랬다.


당시에 읽었던 책들은 다 이런 류의 정서를 광고 카피로 가지고 있었다. 어쟀든 인기를 끌었고.. 시대를 풍미했고.. 살아남을 것들은 살아남고 사라져줄 것들은 침식되고 세월의 퇴적층으로 가라앉아주셨다. 그런데 묘하게 '정서'는 남았드랬다. 하루키 정서가 아직도 꿈틀거린다는 느낌, 이윽고 언론에서 인용한 하루키스러운 이디엄들을 나열했는데 피식 웃음이 나온다. 레이먼드 챈들러, 트루먼 카포티, 스콧 피츠제럴드, 레이먼드 카버정도야 인정해줄만하지만 삿포르 맥주라디오헤드스탠게츠니 하는 것들은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어서다. 물론 그가 라디오 헤드를 듣고 게츠의 음악을 듣기야 했겠지만, 하루키가 '그럼 난 뭐 삿포르 맥주를 먹다가 라디오헤드를 듣고 스탠게츠로 레이블을 돌려가며 듣는 천편일률적인 인간인가'라고 한숨이라도 쉴 판이다.  


그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 핀볼'이래로 수없이 끄적였던 에세이 시리즈, (이를테면 무라카미 라디오)를 보다보면 영미 문학쪽의 조예가 남다르다는 것즈음은 짐작할 수 있으니까 그가 피츠제럴드의 개츠비 이야기를 자꾸 이야기하는 이유를 알게된다.(이 아저씨는 피츠 제럴드를 너무 좋아하긴 한다.) 예전 등단시절, 오에 겐자부로의 초기평에서는 하루키가 '너무 미국문학의 영향을 받아 개성이 없다'라는 평도 있었다. 챈들러를 칭찬하고 카버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카포티의 유려함을 감탄하는 정도는 그의 문학적 스타일로 볼 때, 어떤 모체가 될만한 스타일상의 '목표치'같은 것이었을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카버나 카포티가 되려고 노력했다는 건 아니다.  (가끔가다가 챈들러의 하드보일드가 슬쩍 엿보인다고는 할 수 있어도..) 다만 하루키의 문체가 어떤 독서를 통해서 형성되었는지에 대해 궁금증을 해소해줄만 하다. 그래서 다들 챈들러니, 카버니 카포티니 찾아 읽는거겠지 싶다. 


그런데 왜 이런 것들이 관심거리가 될까 궁금증이 생긴다. 그가 브룩스브라더스의 자켓을 걸치던 윈드 브레이커를 즐겨입던 뭐 특출난 건 아니지 않나 싶다. ...그럼 아침에 조깅을 하고 가끔가다가 커틀릿을 만들어먹고 거품많은 맥주에  튀긴 두부를 한 모이상 먹으면서, 마일스 데이비스와 빌리 할리데이 음악을 잔잔히 듣고, 진구구장 뒤에 누워 푸른하늘을 보면서 '네가 응원하는게 저팀이야'라는 핀잔도 여친으로부터 들어야 하루키를 닮아가는건가라는 생각도 들어버린다. 이런걸 해보면 하루키의 감정상태가 묘한 리듬을 타고 정서에 와서 콱 박히기로 한단 뜻인가... 문학의 싸구려티를 내기위해서라면 주저없이 하루키를 읽어라라고 비아냥 거렸던 비평가들의 입장에서는 이거야말로 무턱대고 추종하는 하루키빠들의 무지함아닌가라고 지적할지도 모르겠다. 


상실의 시대를 읽으면서 옳다구나 카포티도 나왔고 챈들러도 나왔어..카버도 나오고 피츠 제럴드에 개츠비도 나왔으니 이젠 뭐 또 되새김질할만한 하루키적 특성들이 반복되는게 눈에 보인다고 이젠 하루키는 끝장난거라고 밑천이 드러난 교활한 자기복제의 증거들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고 의미심장하게 미소라도 짓는다면 이거야말로 오해하는거 아닌가. 개인적으론 최근의 다자키 쓰쿠루 건도 그렇고 업계가 인기매몰의 포커스가 하루키에게 다 쏠리는걸 못마땅해한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상실의 시대를 읽었던 세대가 현재의 사회주류층이기 때문이라는 부분에 생각이 미치면 이해못할 것도 없다.  어차피 지나가는 세대고 흐르고 나면 다시금 기억하려고해야 생각나는 이미지들에 불과하다. 하루키가 아니었어도 조정래의 정글만리나 히가시노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 알랭드 보통의 세대가 온다. 다만 하루키적 정서라는것도 알고 보면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이나 그리스인 조르바와 같은 대중성을 갖지 말란 법이 없으니 좀더 족적을 남기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나쁠 건 없지 않을까. 아무리 그래도 그의 스타일상 하루키가 뭘 했다고 해서 그걸 따라하거나 그게 그의 스타일이라고 하는건 좀 웃음이 나온다. 



cf. 하루키는 삿포르 맥주보다는 거품이 많은 맥주라면 뭐라도 좋다고 했고, 특별히 스탠게츠보단 두루두루 재즈음악을 좋아하며 라디오헤드외에도 역시 레드핫칠리페퍼등도 많이 등장한다. 블레이저 코트야 그렇다치지만 슬리퍼에 가벼운 차림으로 나다니는 걸 좋아하고 다만 야쿠르트 스왈로즈를 선호하긴한다. 이 정도는 각자 다 있는 취미들이다. 이게 하루키여서 생겨난 뭔가 스타일리쉬한건 아니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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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illa Essay2013. 8. 16. 17:36



책을 사고 읽는 패턴이 아무 생각없는 멍청한 놈이 장님 꼬끼리 만지듯 느껴질 때가 많았드랬다. 그 만큼 무작위이고 기분내키는대로이고 제멋대로란 이야기다. 혹시나 '그냥 무턱대고 읽는다고 해서 활자중독일까라고 의심도 해봤지만 가당치도 않는 이야기다. 가끔 매체에서 이런 말씀들을 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활자중독이 있어서 뭐든 읽어야만 하는 병이 있다고...개인적인 경험을 놓고볼 때 , 이런 말을 하시는 분들 중 활자중독이 제대로 뭔지도 모르는 분들 태반이었다.  진짜 활자중독 못봐서 그러시는 거지..다들...


활자중독 왠만하면 없다. 내가 기억하기론 너무 읽을게 없어서 항공기 좌석에 꽂혀있는 메뉴얼과 광고 전단지를 몇번이고 읽으면서 오셨다는 분 말고는 그 증세를 실제 체감하기도 어렵다. 세상에 그렇게 읽고 싶어서 안달나신 분들의 책 목록들을 보면 '애개 겨우' 수준이다. 활자중독 정도면 어마머마하진 못해도 '오호라 과연' 정도는 되야 하지 않겠는가. 활자중독이라고 하면 책 좀 읽는다는 느낌을 줄 수 있어서일거다. 유명인들이 주로 이미지 포장할 때 주로 쓰는 뭐 그런 것들 아닐까. 그게 뭐 꼭 나쁜건 아니다. 전 클럽에 가서 그 날밤 하얗게 불태울 여자사냥 하는걸 즐기구요. 전 내몸을 뜨겁게 달궈줄 기가막힌 꽃미남을 원해요라고 고백하는 것보단 약간이나마 더 그럴 듯해보이니까..뭐 오히려 쳐박혀서 책읽는게 더 궁상맞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서도..


아무튼 나도 활자중독은 아니다. 나도 책을 꽤나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중독까지는 근처에도 못갔다. 읽는게 다른 취미보다 좋다는 건 인정한다. 그저 우왕좌왕 이것저것 막 읽어대는 머리없는 닭같아서 문제지..책은 기본적으로 좋아한다. 문제는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기준'이 없었다는 거다. 그걸로 허송세월 보냈다고 생각하면 좀 아둔한 뭐마냥 씁쓸할 뿐이다. 에휴 그냥 막 읽으셨구료 어쩌면 좋아 그렇게 읽으면 읽어도 읽은게 아니란걸 모르시나..그렇게 스스로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을 정도다. 


세월이 아까워서라도 요즘에 그렇게 읽지 않는다.  읽을 때 도그 이어(Dog's ear : 책 귀퉁이를 접는 행위) 조물닥거리고 과감히 줄을 죽죽 긋고 형광팬으로 기억해둘만한 부분들 떡칠을 하기도 한다. 어차피 내책이다 걸레를 만들어도 내꺼고 찟어져도 할수없는 거지라고 마음먹고 에디터마냥 책에다 지랄을 떨고 그런다. 가끔 한권의 책을 다 읽고 나면 책이 무슨 원고 교정한 것마냥 개차반이 되기도 한다. 그 책 나름 좋은 내용들이 많아서였겠지..그렇지 않으면 아무 줄도 없고 귀퉁이도 멀쩡하단건 재미 더럽게 없단 뜻이니까...


가끔 주변분들이 책장에서 빌려가시는데 (다 읽은 책들은 거실책장으로 다 옮겨버림) 책장들추다가 내가 한 짓을 보고 혀를 차신다. 책이 귀한 줄 모른다고..혹은 뭐 인상깊다는 것들 자랑하는거냐는 둥, 좀 쪽팔리지 않으세요 자기생각이 막 이입되는거 ...각양각색의 의견들 고맙게도 더럽게 많으시다. 그럼 그냥 공공장소 도서관 가서 금가고 김칫국물 흘린 책들 빌려서 읽으시든지 하시지 뭐하러 제 책을 읽으셔가지고 그 고생을....애초에 난 책은 빌려줄게 못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책이란 자기가 댓가를 지불하고 사서 봐야 진득히 읽게되고 읽고나서도 어떻게저떻게 유지가 된다. 빌려읽는 것도 해보긴 했다. 해봤는데 답답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 


일단 줄을 칠 수가 없다. 내 책이 아니니까..줄을 못치면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뭐가 중요하고 뭘 기억해야하는지 애매하다. 나도 내가 레인맨 더스틴 호프먼처럼..혹은 보르헤스의 픽션에 등장하는 푸네스같았으면 기뻐 날뛰겠다. 100페이지짜리도 읽고나면 어느 순간 메멘토 저리가라 할 정도로 '휴지통 비움' 상태가 되버리곤 해서 문제이지.. 그러니까 난 적어도 뭔가를 기억할 '포인트'들이 필요하고... 필요하고 또 필요하다.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빌려서 읽게 되면 이런 것들을 읽으면서 실시간 처리해야 하는데 사람이 어떻게 읽으면서 옆에 노트를 놓고 쓰나..버스를 탈 때도 있고 지하철에 서있을수도 있건만...한손으로 손잡이 붙들고 한손에 책들고 ..언제 노트 꺼내서 쓰고 다시 책보고...이건 스파이더맨을 상대하는 옥토퍼스나 가능한 일이다. 


빌려서 읽는 건 비상시국에나 하는 짓이다. 또 읽은 책을 오래도록 기억하려면 '메모'없이는 불가능하다. 특히 인문한 서적은 중요한 내용을 어찌됐건 줄을 그어놓아야 하고 나중에 한장에다가 요약할 수 있을 만큼 관계도 및 생각의 레이아웃이 필요하기도 하다. 읽고 난 다음 바로 하는게 좋은데 의외로 굉장히 어려워서..읽고 나면 읽었다는 포만감이 사람의 감각을 굉장히 둔하게 만들고 들뜨게 해서 기록이란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만든다. 마치 점수 그럴듯하게 받은 학생이 이 과목은 더 이상 안봐도 돼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독서가 공부도 아닌데 뭘 읽고 또 요약을 하냐는 분들도 계실텐데..읽고 나서 조만간 기억못하고 다시 읽는걸 상상해보시라..뭔가 되게 바보스럽지 않나. 와...몇 년전에 읽었는데 다시 읽으니까 새책 읽는 것 같다니..이거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당황해할 때가 무척이나 많았다는 걸 솔직히 고백해본다. 기록하면 이런 애처로운(?)상황을 피할 수 있다.  


소설조차도 줄거리가 진행되는 핵심 문장에는 줄을 그어 놓으시는게 좋다. 개인적으론 줄거리 변화가 있는 문장에 줄을 긋고 등장인물 이름에다가 형광팬으로 칠해놓는다. 처음에만 칠하면 그 뒤론 안 써도 된다.그리고 역사관련 서적은 중요한 흐름을 연대순으로 기록해둔다. 유럽사에 관한 책을 볼 때 굉장히 심란했는데 이게 도무지 읽을 때만 기억나고 시간이 지나면 대체 사건들이 언제 어떻게 발생해서 어떻게 인과관계가 발생하고 흐름이 어떻게 되는지 공백이 되곤 했다. 그래서 스스로 연대를 짧게 기록하고 주요사건들을 기록해서 내 생각들을 짧게 써놓았드랬다. 나중에 필요할 때 메모해둔 2~3 페이지 몰스킨을 뒤적거려서 재미 좀 봤다.  


책을 읽고 오래도록 기억하는 방법은 '기록하는 것' 외에는 없다. 뭔가를 쓰지 않으면 절대 기억 못하게 된다. 메모는 독서의 결과를 더 찰지게 만들어주고 오래도록 유지하게 해주는 일종의 보험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해볼만 하다...정말 해볼만 하다. 그리고 한번 하고 두번하고 그러다가 메모 습관이 되면 그게 두고두고 그 사람의 사고로 작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 최소한 추억정도라도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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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illa Essay2013. 8. 8. 20:45


챈들러

레인먼드 챈들러, 무라카미 하루키, 스콧 피츠제럴드, 레이먼드 카버, 트루먼 커포티, 존 치버, 그리고 업다이크까지..우연이라고 말할 수 없는 특별한 이유로 위 작가들의 작품을 읽었다. 슬쩍 눈치빠른 분들은 아셨을 것이다. 선택과 순서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친 사람은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라는 걸... 그가 어디 작품 한 귀퉁이에서라도 이 작가들을 언급안하고 넘어갔던 적이 있었던가. 그는 위의 작가들을 사랑했고 또 열렬히 추종하기도 했었다. 그리하여 하루키를 읽었던 대다수의 독자들에게는 한가지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실마리를 이 작품들에게서 찾게된다. 그는 어떻게 이렇게 군더더기 없으며 세련된 문장들을 구사할 수있는가에 대한 궁금증말이다.  


여타의 기사와 사설과 평론을 몇개 찾아보니까 나같은 경우가 적지 않았나 보다. 죄다 하루키 팬이랍시고 줄줄히 피츠제럴드, 카버, 커포티를 찾아서 읽었다고 고백들을 하고 계셨으니까.. 평론가들은 왠지 그런 하루키팬들에게 거봐 하루키가 소개해주지 않았으면 찾아보지도 않았을텐데 용케 좁은 소양으로 운좋게 명작들을 찾아 읽으셨네라며 은근슬쩍 비아냥거렸다. (지금도 이 현상은 진행 중이라고 본다.) 어찌됐든 좋은 명작이야 두루두루 읽히면 좋다. 아무리 좋은 작품들도 시간에 한번 매몰되면 어떤 계기가 벌어지기전까지는 '무덤속 신세'면할 길 없으니까. 이상한 나라 앨리스도 그랬고 위대한 개츠비도 그랬으며 '그리스인 조르바'도 모두 무덤속 신세들이었다. 


스콧 피츠제럴드

행여 갑자기 조인성이나 소지섭이 나와서 한 손에 <폭풍의 언덕>을 들고 커피한잔들고 읽으면서 혼자 '왜 너는 괴로우면 안되니'라고 읇조리며 연인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이라도 날린다면 그 다음날 서점가에는 에밀리 브론테의 이름이 박힌 책들의 탑을 보게 될 수도 있다. 그게 무슨 죄라고. 민망해야 할 꺼리도 못된다. 찬밥되었던 고전들을 평상시 알아보지 못해서? 어차피 되새김질은 소만 하는 것도 아니고 그 소조차도 과거에 소화불량이었던 시절을 생각하며 다시 억센 풀을 뜯어먹을 절호의 기회가 생긴다고 생각하면  이 보다 더 흥미진진한 모험도 없다. 그래서 다시 읽는 건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가끔 여러 문학계의 글들을 접하다보면 일상에서 김치드시듯 늘 고전을 탐독하지 않으면 당신은 독서가의 자격이 없는거야라고 나무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다. 고전 문학소설을 삼면에 켜켜히 쌓아두고 고전의 숲에 파묻혀 지내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해서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고전명작 몇 권 다시 드는 것도 꽤 의미심장한 일이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닐테니..


트루먼 커포티

어찌되었든 언급한 책들을 주욱 돌아보다가 미처 읽지 못했던 몇 권의 책들을 발견했다. 어..그런데 읽었던 책도 책장을 넘기다보니 이게 또 새로운 거다. 기억도 하나도 안나는데다가 줄거리조차 새롭다고 느껴질 때는 혹시나 오래전 책 사재기만 하고 읽지도 않았던 비운의 책들이 아니었을까 곰곰히 생각하게 된다. 역시 기록이 없으면... 그리고 적용과 응용이 없으면 전부 휘발되어 날아가버리는 걸까. 내 과거의 책탐독의 결과는 실온에 나온 드라이아이스만도 못한 수명이었나보다. 그렇다고 시디나 DVD같은 기억력을 바랬던 것은 아니었는데 이토록 생경하다니..이래서야 책을 읽었다고 할수나있나 푸념만 나왔다. 


아마도 당시에는 미사여구와 화려한 만연체 난무하는 고전소설의 페이지속에서 지루함을 이기는 방편으로 그저 '읽기'만 했으리라. 미션 클리어처럼 앞으로 돌진하면서 한 줄 한 줄 해치우는 심정으로...그 의미와 행간의 뜻따위는 어떻게되도 좋다고 생각했겠지 그러다가 맨 뒤쪽 표지로부터 몇 십장 안쪽에 다다르면 아 대충 이렇게 결말이 되는구나라고 신속히 덮어버리고  치워버렸을 게다. 그래서말인데 누가 카버의 단편을 이야기하거나 커포티의 세련된 문장을 인용하거나 하면 속으로 '그런걸 다 기억한단 말이야?' 엄청 감동적이었나보네라며 놀라워했다. 소설의 편린을 기억한다는 건 두고두고 그 사람의 인생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다. 물론 그 대상이 되는 문장이 독을 품고 있을지 아니면 아름다운 로망을 이야기일지 선택하는 독자의 몫이겠지만 책 귀퉁이 아니 메모지 짜투리에 끄적여쓴 글귀조차도 어느날 문득 발견하게 되면 고구마 넝쿨캐듯 당시의 감흥들까지 부록으로 얻을 수 있다. 추억이든 영향이든 이런 것들이 가능하려면 적어도 뭔가를 기억하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레이먼드 카버

아쉽게도 그런 기억의 파편 및 짜투라기 끄적임조차 보이지 않는 내 독서인생이라니..좀 한심스럽고 허무했다. 최근 들어서는 한 권을 읽으면 조그만한 페이지에 단순하게라도 써둔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자만 그래도 쓴다. 그렇다고 뭘 어떻게 활용하겠다는 거창한 생각같은 건 없다. 그저 써둘 뿐이다. 억울하니까. 뭔가 현재의 생생함이 잠재의식으로 가버리는건 너무 매정하고 무책임스러워 보여서다. 뇌는 너무 매정하고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으니 안간힘을 쓰면서 무엇이든 써서 남겨야 겠다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어제 그렇게 많이 읽었다고 자부했던 커포티의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또 다시 읽었고 카버의 단편집 '사랑을 말할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을 다시 꺼냈다. 읽다가 보니 언저리 비슷한 처지의 책들을 죄다 다시 읽고 싶어졌다. 이를 어쩌지 시간이 남아도는 것도 아니고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이 충동적이고도 무책임한 의욕이라니..


존 치버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독서가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가치있을까라고 ..명사들의 서슬퍼런 꾸짖음이 귓가에 들리는 듯 하지만 사실 내가 책을 몇 권 더 읽는다고 해서 내 삶이 윤택해질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경험적으로 보면 감성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좀 더 사색적이 되는건 맞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스타일에 대한 구성요소지 경제적인 구성요소로 작용하진 않는다.  매정하게 이야기해서 내가 고전 몇 권을 더 읽어도 마이너스 통장에 뭔가 입금되는 건 아니다.  무형의 자산. 좋은 소리다. 마음의 양식이 되고 깊어가는 내면의 성찰도 좋고 다양한 인간군상의 간접경험도 사는데 도움이 될테지 그런데도 이 독서가 죽고 못하는 어떤 거만스러움이 될 때가 있다. 가난하고 우울해도 정신적으로 좀 더 깊어질거라는 늘러붙은 자존심마냥 하염없이 비현실적인 어떤 고리타분함 같을 때가 있다. 그런데도 이런 책들을 읽게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존 업다이크

난 아무래도 아무생각없이 그냥 읽나보다. 그래서 오래도록 곁에 두고 읽고 또 읽고..좀 바보스럽고 무의미한듯 하지만 왠지 이야기들이 나와 너무도 달라서 황당해서 그런걸까 것도 아니면 언젠가 경험했었던 유사감정의 기시감때문이었을까. 말로는 표현하기 힘들겠고 어떻게든 좀 공유해보려고해도 누구랑 말해야할지 모르는 막막한 그런 상태에서 맞닥드린 공감대 같은 것들...? 이도저도 아니면 챈들러나 커포티나 카버, 피츠제럴드가 일정부분 추억을 점거하고 있어서일수도 있겠다. 그들이 없었으면 내 청춘의 초상이 존재하지도 않았을 거라는 .....뭐...비스무리한 착각같은 것들인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모든 작가들을 사랑한 덕에 그를 읽었던 대다수의 팬들도 이 작가들의 작품을 따라 읽었다. 어떤 점에 있어서는 그냥 찾아읽었어도 좋았겠지싶다.  우연찮게 도서관을 뒤지다가 문득 '달려라 토끼'를 읽고 '그게 누구였는지 말해봐'를 읽고 '빅슬립'을 발견하고 '위대한 개츠비'를 집어들고 하는 일들이 운명처럼 일어나는것도 흥미진진한 일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고 한들..즉 하루키 아저씨가 소설에 언급하고 에세이에서 칭찬하고 개인적으로 너무좋다 어쨌다고 몇 줄 써놓은걸 보고 호기심에 찾아 읽었다고  한들 그게 부끄러운 책읽기가 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책을 어떻게든 읽게 되었다는 것이고 그렇게 된 이상 이 후 스토리는 읽은 사람의 몫으로 남겨질 뿐이다. 읽었으니 좋은 것이고 좋았다면 더 기쁜일이다. 그게 비록 하루키덕이었지만..그게 아주 친한 친구를 통해서 또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속으로 쾌재를 부를 일이다. 쾌재를 부를 일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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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illa Essay2013. 7. 26. 15:20

1. 러브크래프트 전집 1권 -크툴루 신화-(황금가지) : '크툴루의 부름' 편까지 읽음

2.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동네) : 다 읽었음

3. 저녁무렵에 면도하기 -무라카미 하루키- (비채) : 다 읽었음.

4.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수첩 -오카자키 타쿠마-(소미 미디어) : 30p 정도 읽는 중

5.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시오리코 시와-  (디엔씨 미디어) : 20p 정도 읽는 중.

6. 머니볼 -마이클 루이스 (비즈니스맵) 약 반정도 읽음.




이러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들을 다 읽을 듯 싶다. 하루키의 책을 열렬히 좋아해서 반드시 안읽고는 못배기겠다라는 마음가짐은 없는데도 그냥 읽게 된다. 매일 아무생각없이 삼키는 캡슐 비타민처럼 말이다. 아마도 젠체하지 않는 특유의 담백한 문체가 좋아서일수도 있고 정서적으로 환기되는 휴식같은 즐거움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물론 에세이에 한해서지만...(소설은 다른 이야기다.) 문학동네에서 내 준 에세이 시리즈는 검은 하드커버로 그럴듯하게 나와줘서 예전에 시리즈로 구입을 해놓은걸 차례차례 하나씩 조각케익 꺼내먹듯 읽고 있다.  문학동네판 에세이는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그리고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이렇게 2권 읽었고, 비채에서 내놓은 또 다른 에세이 시리즈 3권은 다 읽었다. (저녁무렵의 면도하기,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에세이 8권, 그리고 재즈 리뷰 2권인가 그렇고 단편소설들까지 더하면 꽤나 읽은 건 사실이다.  


레이시 이야기를 다읽고, 하루키 에세이도 다 읽고나니 소설과 에세이가 지루해져서 예전에 읽다가 잠시 둔 마이클 루이스의 '머니볼' 한 챕터를 읽었다. 4장 무지의 필드편인데 의외로 잘 읽혀져서 당황했다는...이유인즉슨, 지난번 읽을 때, 굉장히 따분하고 지루해서 한장 한장넘기는 게 고역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이번엔 굉장히 잘읽혔다. 아마 빌리빈의 천재적인 안목을 반영한 영화적 감동을 이 책에서 기대했었나보다. 그러기에는 너무 다큐멘터리 comment 같아서 (가끔 읽다가 '서프라이즈'의 이야기를 해설하는 걸 글자로 듣는 기분이었다.) 드라마틱한 반전같은 걸 기대하기는 어려웠는데 소설을 읽고난 뒤라 그런지 덤덤한 문체뒤에 기이한 동감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한편, 책을 중간중간 사두는 편인데 라이트 노벨은 왠간해서 집어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비스무리한 두권의 책을 쌓아두었다. (순전히 불량식품 하나 빨아보자라는 불순한 의도였다.) 하나는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 그리고 이번에 신규 등장해주신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수첩. 뭐 이렇게 제목들에수첩들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라며 시니컬거렸는데도 (아마도 일본특유의 라이트소설 네이밍이 아닐까. 판에 박혀버린 일종의 습관성 제목붙이기의 희생양 정도..? ) 의외로 두권의 책들이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두개의 책이 좀 질감이 다른데 하나는 그야말로 호기심을 당기는 라이트 노벨속성, 그리고 탈레랑은 묘하게 문학적 냄새가 슬쩍 풍겨서 놀랐다는...번역을 보아하니 '양윤옥' 여사시다. (1Q84의 그 분...)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전담 번역가인걸로 기억.... 탈레랑도 맡겼나보다. 이 두권은 좀더 읽어봐야 진면목이든 뭐든 알 수 있겠다. 


러브크래프트 전집은 사다놓고 읽지 않아서 큰 맘먹고 읽기 시작한 책이다. 대략 크툴루의 부름까지 읽었는데 플롯은 포기하고 오히려 기괴한 네이밍들이 매력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레이트 원이 나오고 크툴루가 주문으로 불려나오며, 네크로미콘, 미스캐토닉이 등장하면 정신이 바짝 조여드는 기분이다. 사실 로저 젤라즈니의 '고독한 시월의 밤'에서 듣게된 '미지의 카다스를 향한 몽환의 추적'이 궁금해서 크래프트저작들을 읽게 된건데 의외로 그 세계가 깊어서 놀랍고 생생한 묘사가 그럴듯해서 다시한번 감탄하게 된다. 도대체 이런 상상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에드가 엘런 포도 정신착란에 시달렸는데 혹시 러브 크래프트도 기괴한 상상력이 그의 정신을 갉아 먹었던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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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illa Essay2013. 7. 22. 15:48

"나는 서른살이 될때까지 잡문으로 생계를 유지했고 결국 그것 때문에 인생의 낙오자가 되었지만 거기에는 어떤 낭만적인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   


- 폴오스터 '빵굽는 타자기' -



하루키도 그랬지만 문장을 한 줄 쓰려고 발버둥쳐도 안되는 날이 있다고 했을 때, 그의 쉬운 문체가 몸에 배인 언제나 등장하는 달란트가 아니란걸 알기는 했다. 저 위에 써놓은 글만 해도 폴오스터가 오죽했으면 저랬나 싶기도 하고...요즘 제대로 글을 쓰고 싶어서 몸이 달아버린 분들이 한둘이 아니실텐데 간혹 문장정리내 글 잘쓰는 법이네 하면서 책까지 무작위로 등장하고 있나보다. 호기심에 몇 권 읽어보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가이드 잘하시는 양반들은 도대체 어떤 작품들을 썼을라나' 그래서 이력들을 재빨리 살펴보았는데 낯선 이름의 책들 몇 권과 그나마 좀 나은 건 몇 년전 히트했었던 오래된 걸작 한편 덩그라니 ...이윽고 출판한 책들이 다 '글잘쓰는 법'에 대한 교본 비스무리한 시리즈들만 주욱 내셨드랬다. 


나는 그 분들이 문장을 잘 다듬고 세련되게 글쓰시고 주제와 핵심내용을 잘 구성하고 설득력있는 논리와 부수적이면서도 잡스러운 표현들을 잘 거세하고 그야말로 담백한 문장들을 만들어내신다는 걸 믿는다. 잘쓰시겠지...굉장히 단백하고 깔끔하게 ...그런데도 그런 문장실력을 가지고 지속적인 글을 자주 써내려가서 대중들의 인정을 받고 잘 읽히고 하는건 본질적으로 다른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문학이랍시고 굉장한 의미를 내포한 은밀한 은유조차도 자기만족이라는 함정에서 허우적 거릴 가능성이 높다. 글쓰는 방법을 가르치는 일도 이와 비슷한 것 아닐까.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미화하고 난 다음 거기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자기도 못하는 걸 마치 이렇게 하면 가능하다라고 이야기하는 뭐 그런 종류의 것들처럼...


그래서말인데 글쓰는 방법에 대한 여러가지 책들을 내신 분들께서 걸맞는 소설이든 교양서적이든 좀 써주셨으면 좋겠다. 번역은 또 다른 이야기이지만 총체적으로 교본에 대한 응용편을 누릴만한 권리가 그 '글쓰는 방법'에 대한 책을 구매한 독자들에게는 있으니까. 그렇게 되면 책에서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이미지의 '선명한 다듬질'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간결하면서도 쉬운 문체에 대한 예시가 어떤 건지 가늠이 될테니까..자고로 글쓰는 방법이란 남의 글로는 설명이 안되는 법이다. 본인들이 실천에 옮기시면서 이런 거다라고 이야기해주는 편이 더 좋아서 신랄한 예시와 이어지는 대서사로부터 과연 글이란 이래야하는 것이구나라고 자기반성이라도 할 수 있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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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illa Essay2013. 7. 22. 10:08

레이시 이야기 - 스티브 마틴 (~150p까지 읽음)

벨더머 사례의 진상 - 에드가 앨런 포.

런던 스타일 책읽기 - 닉혼비 (2004년 8월분까지 140p) 





내가 경험한 '비내리는 정경'은 하늘에서 누군가가 분무기 개폐장치를 미디엄으로 해놓고 열심히 분사질 하듯 내리는 것들이 대개였다고 한다면 지금은 누가 물호스를 대고 그냥 수도꼭지를 열어버린 것같이 들이붓고 있다. 이거야말로 오랜시절 벌어졌던 제 1 의 심판이었던 노아의 홍수 전초격의 뉘앙스 아닐까싶을 정도로...장마전선이 다시 올라와서 그렇다는데 이 정도라면 우산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없고 그냥 허벅지 아래는 물이 묻어도 상관없는 차림새로 돌아다녀야 한다. 더우기 월요일 출근일이라면 회사오너들이 잠시나마 한량없는 아량을 베풀어서 가벼운 샌들과 반바지를 출근시간 만큼이라도 허용하기를 쓸데없이 공상해본다. 물론 비현실적이란걸 알지만 때로는 개중에 굉장히 즉흥적이고도 인기영합주의가 목마른 인기바닥의 CEO라면 한번 해봄직스럽지 않을까.


나야 집에서 100 미터정도를 걸어서 지하철로 들어가고 한번 갈아타고 회사앞 50 미터 부근에서 나오니까 징그러운 물폭탄을 하반신에 샤워하듯 뿌리고 추적추적 엘리베이터로 들어갈 짜증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좀 덜 할 뿐이지..) 많이 보송보송한 상태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이런 날에 옴싹달싹 안하고 몸끼리 닿치 않으려고 애쓰고 또 애쓴다. 나도 귀퉁이 자리에서 누가 건드릴까봐 이어폰을 꼽고 Zooey Deschanel의 'SUGAR TOWN'Chet BakerTis Autumn, September song을 듣고 있었다. 물론 위의 책들도 간간히 읽으면서...


출근거리가 상당해서 오며가며 얇은 단편정도는 그냥 휙 다 읽어버릴수는 있을 정도인데 가끔가다가 하나의 책으로만 이동하는게 질릴때가 있다. 그러니까 주구장창 앉아서 하나의 책만 몇시간이고 읽는 일은 이제 잘 안되는 듯싶다. 에전에는 흠뻑 빠져서 읽는게 가능했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3~4권의 책을 오가며 읽는 게 더 집중력이 올라가는 경향이 생겨버렸다. 덕분에 가방에 책이 3~4권이 들어있어서 무거워지는 단점이 있다. 이런 날 과다한 업무와 예기치못한 사고라도 터지면 이 책들은 그냥 짐이 될 뿐이다. 읽지도 못하는걸 바리바리 싸들고 돌아다니는 '전형적인 공부 못하는 학생'처럼 될테니까 말이다. 


레이시 이야기는 초반부에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처럼 신참내기 레이시가 빠르게 업무에 적응하는 것처럼 업계의 동향같은 걸 스폰지처럼 습득하나싶었는데 레이시는 여기에 하나를 더 크림치즈처럼 발라 놓았다. 그건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인 섹스스타일, 그리고 불법으로 자행되는 뒷쪽 세계를 왠지 이용해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욕망 아가씨 설정이다. 그래서 크게 잘라놓은 치즈케익 2번째 챕터부터는 본격적인 '스팩쌓기' '인맥넓히기'로 귀의하셨다. 점점 더 타락할른지 묘하게 균형을 잡고 '정신차려 레이시'라고 화자로부터 충고를 받던지 하겠지. 이 소설의 매력을 생각하자니 오래전 '클루리스'의 알리사실버스톤이 생각난다. 외모도 죽여주고 인기도 많고 학교에서 앞서가는 패션 아이콘, 그리고 부유한 집안의 도도한 아가씨처럼 살지만 왠지 채워지지않는 공허함과 내실없는 생활속에서 자신의 무언가를 채워줄 남친이 바로 곁에 있다는 걸 깨닫는 스토리였던 걸로 기억한다. 


알리사처럼 레이시도 그렇게 갈 가능성이 크지 않겠지. 그럼 너무 진부하고 너무 90년대적이니까. 하지만 캐릭터성은 그런걸 기둥으로 삼았나보다 톡톡튀고 아무렇지도 않은듯 남자들을 이용해먹을 줄 알고 야망을 적당히 조절해서 뒤통수를 치고 한걸음씩 재수없는 상사들을 밟고 일어서려는 당돌한 모습들은 다 캐릭터 성이니까. 사건에 대한 전개나 흥미진진함은 아직까지 별로다. 모험담은 없고 그저 미술계, 전시, 소더비에서 얼마나 의미없는 일들이 그럴듯하게 치장되어서 보여지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지적질이 난무할 뿐이다. 중간중간에 레이시가 얼마나 매력적이고 쿨한 여성인지를 인지시켜주기 위해서 남자들에게 적선하듯 허락하는 장면들은 마치 이 정도의 업계에서 살려면 몸정도야 적절히 베풀수 있어야 한다고 눅눅히 이야기 하는 것 같다. 


앨런포의 벨더머 사례의 진상은 몇페이지 안된다. 단편선 정도라 지하철 책읽기 목록 제 2편으로 적합하다. 메인 디쉬들 사이에 곁들여진 디저트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읽다가 느낀 건데 러브 크래프트 뉘앙스가 철철 넘치신다. 혹시 크래프트가 포의 이 이미지를 차용했나 싶을 정도로 크툴루 신화를 읽다가 슬며시 들어버린 건데 아마도 포가 크래프트의 저작들을 보면서 슬며시 씨익 웃지나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런던 스타일 책읽기' 은 줄기차게 읽고 있다. 무자비한 닉의 책들 평가가 피식피식 거리는데 어려운 책을 애써 위로 보호하거나 그럴듯하게 포장해주지 않아서 다행이다. 일관되게 책읽기를 안하면 어떠냐는 비아냥도 애교 스럽게 들리기도하고..


어찌됐든 비는 오고 책은 잘 읽히는 날씨다. 조명이 좀더 눅눅했으면 좋겠지만 그럼 회사가 아니라 카페가 되겠지. 월요일 아침에 침대에서 나오기 싫다는 생각은 이런 날씨에 더 진해지고 샷이 더 추가되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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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illa Essay2013. 7. 21. 17:14

2013.07.21(일)

1.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무라카미 하루키.

2. 도둑맞은 편지 - 에드가 엘런 포

3. 런던스타일 책 읽기 - 닉혼비. 



가끔 이런 날씨에서는 책읽기 만큼 좋은 '시간보내기'가 없다고 생각한다. 책읽기의 단점이라면 '이걸 누구와 함께 하는 뭐 공유의 활동'이라고 말하기 힘들다는 것과 오래도록 시간을 보내고 나서도 더 읽고 싶은 것들이 많다는 점 정도다. 그렇다고 해서 책을 마냥 읽기만 하고 몇 권 연속으로 읽었다고 해서 내 삶이 윤택해진다던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책을 읽는 건 그저 읽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준다고 스스로 위로하지 않는 편이다. 책은 책일 뿐이니까. 물론 교훈도 좋고 정보도 좋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그냥 읽음으로써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고 새로운 모험을 한다고 생가하는 정도다. 


최근 책을 구입하는데 약간 인색해졌는데 그 이유는 '좋아하는 책'들을 이미 꽤 많이 사 놓았기 때문이다. 읽지 않는 책들이 대략 10권 남짓 되니까 굳이 새로운 책을 구입해서 거기에 더 보탤 필요성이 없다. 그런데도 책이란 묘해서 서점에가면 아직 읽지 않는 '의무감'비스무리한 것들이 vol 1. vol. 2 ... 처럼 구비되어있어도 자꾸 더 사게 되는 묘한 구석이 있다. 생각해보면 약 20권 안밖에서 이 읽는게 다 바닥나지 않도록 무의식중에 조절한다고나 할까. 


하루키의 수필집은 여전히 꾸준히 읽는 책이다. 최근 '저녁무렵에 면도하기'를 비롯한 무라카미 라디오 연작 시리즈는 3권다 재미있게 읽었다. 문학동네에서 내놓은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발렌타인 데이의 무말랭이',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 '해뜨는 나라의 공장'그리고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같은 에세이들도 우후죽순처럼 새발간되었드랬다. 시간이 좀 되긴 했는데 다자키 쓰쿠루 이야기를 듣는 것 보다는 차라리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는게 더 편하고 더 친근감있고 더 담백하고 더 산뜻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 소설보다는 에세이가 더 인기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하루키의 에세이는 감각을 담아서 넘기는 활자많은 잡지 정도의 가벼움이 있어서 부담이 없고 공감도 간다. 아마도 '강요'가 없고 '고집'이 없어서 그런가. 


그리고 에드가 엘런포의 '도둑맞은 편지'는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중 1권으로 보르헤스의 '픽션들'을 읽다가 불현듯 충동에 이끌려 바벨 도서관 시리즈를 무턱대고 다 읽어보리라 맘먹어서 사둔 책이었다. 선구적인 포의 스토리 라인과 정서가 이젠 무감각하리만큼 일상적인듯 되버렸지만 여전히 활자로 읽을 때 느끼는 새로움이란게 있다. 그래서 더 좋다. 어디선가 '우울과 몽상'에 대한 포의 정신분석학적인 내용의 분석서를 본 적이 있었는데 사실 그런 성향이나 배경 따위를 읽으면서 아 그렇구나 그래서 포가 이런 소설들을 쓴 거였어라고 할 필요가 별로 없다. 그저 그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그가 뿜어내는 기묘한 이야기의 매력만으로도 그의 정체성을 대변할 수 있다. 아무튼 포를 비롯한 바벨도서관 시리즈를 줄기차게 읽어볼 작정이다. 얼마나 읽을 지 알 수 없지만...


닉혼비의 런던스타일 책읽기는 그동안 사리라 마음 먹었던 책이었는데도 시간을 미루다가 못샀던 책이었드랬다. 그래서 큰맘이랄것도 없는 굳은 의지를 동원해서 기어코 이 책을 집어들고 집으로 오는 내내 읽었다. 사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책들에서 내가 무슨 편린을 얻는다던지 아니면 책 목록따위를 만들어서 나도 '런던스타일'로 책을 읽어봐야지라고 마음을 다잡는 계기로 삼으려는건 아니다. 그저 닉 혼비가 글을 쓰면서 슬슬 드러내는 그만의 독특한 시각과 책에 대한 마인드..특히나 재미없는 책, 고상한척하면서 읽기도 싫은 두꺼운 책들 폼으로 읽고 다니시는 그런 가식이 없어서 좋다. 다 집어치우고 좋은 책을 읽으라는 그의 권유가 꽤 솔직하다. 책을 읽으면서 자아성찰이니 혹은 내면성숙이라던지 하는 조건부 설정으로 책을 사드는건 좀 아니지 않나싶기도 하고...


아직 다 읽지는 않았지만, 재미도 쏠쏠하다. 3권을 읽고 나면 또 뭘 읽을 지 고민 좀 해봐야겠다. 올해 읽으려고 나두었던 책들 목록에도 있지만, 이걸 알파벳 순으로 읽는다던지 하는 우를 범하고 싶진 않다. 때에 따라서 읽고 싶은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들 뿐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책을 읽는 건 노동이 될테니까...책을 노동으로 읽는건 처럼 바보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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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illa Essay2013. 7. 9. 15:05

어차피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리뷰를 하다가 나올 소리긴 한데 유독 하루키 작품들을 읽으면서 듣는 음악엔 재즈가 제격이란 생각이다. 물론 하루키가 재즈 전문가이기도 하고 작품 곳곳에다가 음악이야기를 써놓아서 연상되지 않는게 더 이상할지도 모른다. 몇 번은 일부러라도 찾아 듣기도 해봤지만 항상 기대만큼 훌륭했던 것도 아닌터라 그저 글은 글이고 작가의 감성은 독자의 완벽한 전유물로 바뀔수 없다는 것만 깨닫긴 했다. 그래도 하루키 작품들에게서 음악을 빼놓을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나 그가 쓴 '무라키미 라디오'시절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재즈음악을 듣는건 굉장히 좋은 앙상블이다. 얼마전에는 무라카미 라디오 제3탄격인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를 읽으면서 야신타의 Autumn leaves도 을 들었다. 'And The Angels sing'을 듣고 연달아 Midnight sun, 그리고 'Moon River' , 'Here's to life'까지 주욱 달렸다. 그 사이에 그 얇디얇은 에세이가 끝나버려서 다행이었다. 


어떻게 보면 하루키는 자신의 작품들속에 몇몇의 특유감성들을 음악들로 대체하는 듯 싶다. 이럴땐 이 음악을 깔아주면 아마 독자가 이해해줄거야 라고 생각할른지 안할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에 그대로 따라하는 호기심많은 독자들로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음악이란 그렇게 의도를 알고 분위기를 알고 소개받게 되면 그 때에는 또 다른 감성을 느낄 수 있을테니까. 그러고 보니 최근 글렌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를 들으면서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읽은 기억이 난다. 그 책에는 굴드의 음반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지만 어째 나쁘지 않았던 듯 싶다. 그렇게 보자면 하루키의 작품들은 민숭맨숭 읽어대는 것보단 음악을 잔잔히 깔아놓고 읽는게 정말 좋은 것 같다. 시끄러운 왁자지껄 소음속에서 그의 작품을 읽게 되면 그 특유의 담담하고 정갈한듯한 쉬운 문체가 지루하고도 무미건조하게 느껴져버린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음악을 켜두고 읽는 게 좋다. 재즈면 더더욱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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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illa Essay2013. 5. 28. 09:10

사실은 마음이 바쁜 것이다. 

주위의 사건들이 쏜살같다고 할 때, 세월이나 시간을 그 뼈대로 삼지만 사실은 모든 건 마음속이 부단하여 다시 재변형이 일어나는 것라고 믿는다. 고요한 달밤에도 마음은 조급하여 초초해할만하다면 바쁜거고 한가로이 욕탕에 들어앉아 천정을 보고 있어도 마음속에서 소용돌이 치는 근심 속 분주함을 이겨내기 힘들땐 쉬어도 쉬는게 아니다. 어쩌면 데스크앞 컴퓨터를 켜고 부팅되는 동안 잠시동안 아무런 마우스 포인터가 보이지 않을 때, 행여 이때가 하늘이 내게 준 전쟁같은 세상사에 앞선 소소하고도 유일한 위로의 찰나일지도 모르겠다.


폭주하는 이메일과 쉴새없이 울리는 전화벨, 그리고 앞서가는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는 키보드위의 손가락. 슬며시 부풀어오르는 삶에 대한 허무함과 공허감. 내가 일인지..일이 나인지 모를만한 사건들. 시간이 다 흐르고 이윽고 컴퓨터 파워버튼을 끄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야 다시 인간답게 생각한다. '아 나 오늘 하루 뭐한 거지?' 라고...


사실은 생각하기 나름일 수도 있다. 좀더 삶같은 삶을 산다는 건, 본인의 책임같은 것일 수도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해석도 달라진다고 하니까. 휩쓸리지 않으면서 영향력에 희생되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지킨다는게 얼마나 강력한 능력인지도 알겠다. 지긋하신 노년 선배들도 아마 깨달을 무렵, 인생의 소중한 것을 희생하면서 엉뚱한 것을 쌓았다고 후회나 하지 않을런지...그러다가 돌이켜 엄청난 것을 놓치고 나면 그 뒷감당은 다 자기 몫이겠지..


농담처럼 생각했어도 잔상이 오래간다는...

백년도 못살면서 천년을 살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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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illa Essay2013. 3. 4. 16:39

제아무리 오픈소스의 시대라곤 하지만, 싸질러놓은 배설물이라도 주인이 있는 법이다. 하물며 거미줄같은 웹의 세계라고 해봐야 비스무리한 컨텐츠들을 언제고 '우연의 일치' 또는 '부분 인용'의 범주에서 용인해주길 기대하는건 정도껏이다. 닮아있다는 건 존경의 표시정도에서나 애교있는 뉘앙스이지 무지막지한 표절같은게 '도적질'이 아니면 뭐겠는가. 그래서 말인데 자기복제가 가능하다싶은건 경쟁력이 없다는 소리와도 같다. 세상 만물상에 없는게 없을텐데 글로 먹고사는 작가들만 해도 읽기에 지루한 문체라면 인용하고 갈무리하고 타산지석이상으로 가기 힘들다. 세렌게티에서 어설프게 다대다가 치타의 10초질주에 숨통 끊기기 딱 좋은 케이스아닌가. 넋놓고 뚫어지게 봐봐야 도저히 흉내내기 어려울 것 같은 그런 무형의 창의력정도가 그나마 언터쳐블의 영역이아닌가. 치타도 달려봐야 한순간에 성공못하며 더 배고파지고 힘들어질테니까 이것도 리스크를 감안한 공격인데 오죽하겠는가 따라쟁이도 좋은거 나쁜거 다 구분하는 법이다.  공감도 가고 매력적인데 해보니까 자기는 그런 분위기가 나오질 않는거다 이거뭐야 슬쩍 따라해도 비슷해지지도 않잖아 에이씨 아무나하는게 아닌가봐 이래야 경쟁력이 있는거다. 그럼 밥세끼먹고 놀고 다놀고 잠깐 짬내서 끄적여봤다고 비슷해진다면 그런걸 흉내내는 찌질이나 범인같은 원작자나 한숨나오는게지. 개인적으로도 한심한 부류라 이렇게 이야기할 자격은 없지만서도...


그래도 괜찮다 싶으면 글 같은건 감수성이 어떻고 저떻고 하면서 칸막이를 쳐준다. 당신의 영역 칸막이는 이정도예요 튼튼하죠 영역한번 확실하시네 그러고보니 꽤 괜찮은 디자인과 느낌들인데 한번 일해보시겠어요 댓가는 쳐드릴께요  대충 시나리오는 이래야 구색이 갖춰지겠지만 반면 소리소문없이 펌질에 후딱 털려버릴 리소스 수준이라면 차라리 원대한 아량이나 자랑질하는게 낫다. 맘껏 퍼가세요 저도 여기에 큰 가치를 부여하진 않았어요 라는 정도... 경쟁력이 없으면 사실 다 없는거다. 이 바닥이라고 특별할게 있겠는가. 세상에는 유닉하지않다면 맥도날드 후렌치후라이에 찍어먹는 케찹튜브만도 못한 대접이 기다린다. 그나마 그 튜브는 가서 달라고 말이라도 해야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말도 없다. 좀 쓸게요. 양해를 구할께요. 고마워요 이딴 댓글도 안달리신다. 그야말로 만인에게 베푸는 광야의 외침처럼 메아리조차 없는 네트의 세계라고나 할까. 다시한번 요약하자면 사실 매력적이면서 흉내내지 못한다면 그것으로 다 된거다. 다만 그게 힘들어서 문제지. 이건 체계와 시스템과 인식과 저변에 관한 철학적이고도 고고한 사회전반의 문제로 갈게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말인데 마에스트로의 세계에서 노니시는 모든 프로들을 존경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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