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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2.12 클라우드 아틀라스(Cloud Atlas)
Review BOOK/소설2013. 2. 12. 18:30

클라우드 아틀라스(Cloud Atlas) - 데이비드 미첼


 

워쇼스키 남매의 걸출 과거작들의 여파만 아니었어도 '클라우드 아틀라스'에 대한 기대는 미미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세계'를 정의하는 그 독특한 감각과 구성은 당시로서는 굉장한 '일탈'이자 '파격'이었으니까, 관객의 입장에서 또 한번의 혁신을 보여줄거라는 믿음, 그리고 자신들의 지적인 갈망을 좀 더 채워줄 수 있다는 문화적 파이오니아로서 워쇼스키를 정의해두는건 당연했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이런 워쇼스키가 '매트릭스'이후로 들고나온 영화가 '클라우드 아틀라스'라니 ….기대가 드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더군다나 데이비드 미첼의 전작 스타일을 볼 때, 묘한 환상과 SF안에 스며든 철학적 편린들은 그야말로 워쇼스키의 눈을 반짝이게 했을 거라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클아우드 아틀라스의 케미스트리에는 어떤 연금술이 사용되었을까. 모두들 관심을 가질 무렵, 정작 이 작품의 원작 소설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총 6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있다. 영화는 굉장한 교차편집으로 이 6개 에피소드의 고리를 현란하게 오가지만 다행히도 소설은 하나의 챕터씩 전개해서 차근차근 1권에서는 '손미 451 오리즌'까지 갔다가 2권에서는 '슬로샤 나루터와 모든 일이 지나간 후' 로 정점을 찍고 다시 거꾸로 1권에 전개된 에피소드를 역순으로 따라간다.

 

아마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을 때, 모종의 의미심장한 다짐같은 걸 가져야 겠다라고 생각하는 지점은 2권 '슬로샤 나루터'를 넘어가면서부터 일 것이다. 여지껏 읽었던 에피소드들의 재반복이 이어지는 순간 '내가 놓친 것은 없는지 , 혹시 암시적으로라도 복선같은 것들이 앞서서 모두 나열되었음에도 이해하지 못해서 화려한 후반부 지적여행을 놓치지나 않을까하는 우려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주욱 읽다가 보면 사실 그렇게 치밀한 설정과 장치들에 대한 필요성은 잊게 된다. 모름지기 소설에서는 설정과 장치보다 오히려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에 의해서 좌우되기 마련이니까..


 

1권. 

[1] 애덤어윙의 항해일지 - 평등.

[2] 제델햄에서 온 편지. - 배려

[3] 반감기-첫번째 루이자 레이의 미스테리. - 희생

[4] 티머시 캐번디시의 치떨리는 시련. - 자유

[5] 손미 ~451의 오리즌 - 존엄성.


2권.

[6] 슬로샤 나루터와 모든 일이 지나간 후. 

[7] 손미 ~461의 오리즌

[8] 티머시 캐번디시의 치떨리는 시련.

[9] 반감기-첫번째 루이자 레이의 미스테리.

[10] 제델햄에서 온 편지.

[11] 애덤 어윙의 항해일지.



이야기의 전개상으로 보면 애덤어윙의 항해일지에서 모험담을 기대하였을 테지만, 어윙의 소소한 일상 외 그다지 드러나는게 별로 없다. 대신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대화속에 원주민격인 '모리오리'족에 대한 '개화'라든지 '평등'에 대한 이해관계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마오리 족으로부터 구타당한 오투아에 대한 모종의 노력등을 보면 어윙은 '평등주의자'이자 '휴머니즘'을 가진 당시로서는 앞선 지식인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윙의 면모가 히어로적이진 않다. 그는 프로피티스호에 타고 항해를 하게 될 뿐 거창한 자신만의 신념을 낭낭히 선원들에게 전파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를 통해서 모리오족의 멸망과 탄압, 그리고 순수했던 종족이 어떻게 비참해지는 지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된다. 어윙이 독자이자 독자가 어윙이 되는 셈이다. 그를 통해서 '개화된다는 것이 어떻게 해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폭력'이란 개념이 어떻게 해서 모리오리족의 머리속에 각인되는지 간접적으로 전달되면서 어윙은 그속에서 '최소한의 인격적인 조력자'의 역할을 짊어진 것처럼 이어진다. 거대한 통념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행동하고 노력하는지에 대한 미세한 실마리를 전달해준다고나 할까... (사실 이 부분은 뒷부분에서 좀 더 명확해지지만..) 

 

 

'제델햄에서 온 편지'는 이에 비하면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을 가졌지만 방탕한 생활과 거만한 태도가 몸에 배인 몰락한 귀족의 자기 독백적 구성으로 이루어져있다. 로버트 프로비셔는 친구인 '식스 스미스'와 편지를 주고 받는 식으로 자기이야기를 하는데 아마 이 이야기의 근간은 '성적 소수자' 즉 동성애에 대한 세련된 자기변호같은 대목도 상당히 등장한다. 워쇼스키는 아마 '이 부근에서 굉장한 만족감을 가지고 어떻게든 액자식으로 구성해서 도드라지게 연출하고픈 욕구에 사로 잡히지 않았을까.  사실 제댈햄 이야기가 애덤어윙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라고 골몰히 생각하면 머리만 아플따름이다. 유일한 연결고리는 책을 쌓아둔 반침을 뒤지다가 표지도 떨어져버린 책자를 프로비셔는 발견하고 그것이 1849년 부근에 쓰여진 애덤어윙의 항해일지라는 것을 알아내는 부근이다. 프로비셔는 이에 대해서 묘한 집착을 보이지만 이를 두고 어윙으로부터 어떤 영감을 얻었다던지 그리고 데자뷰가 일어났다던지하는 흥분감 같은 건 전혀없다. 그런데 아마 전체 작품을 두고 묘한 연결고리로 등장하는 상징이 없지는 않은데 바로 어깨위 '혜성모양의 모반' 자국이 각 에피소드를 두고 등장인물에 공통적으로 설정되어있다는 점이 그렇다.  


3번째 에피소드는 1974년, 루이자 레이의 거대 조직에 맞서 진실파헤치기 모험담이다. (모험담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심각하고 잔인하고 다이나믹한 구성들이라 당황스러울지도..) 물론 여기서도 이전 에피소드에서 언급한 '제델햄'의 프로비셔가 편지를 주고받았던 '식스 스미스'가 박사가 에피소드 연결고리로 등장하긴 하지만 제델햄에 관련된 큰 암시적인 복선으로 보이지 않는다. (루이자 레이가 클라우드 아틀라스 6중주 음반을 손에 쥐는 내용이 더 의미심장할 수도 있겠는데 이건 전체 에피소드를 아우르는 지도같은 느낌인지라..) 이 에피소드의 가치는 '진실'과 '희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싶다. 진실을 파헤치는 언론인들의 말로가 죽음내지는 희생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죄책감에 대한 비장미서린 결말까지 이어질때면 꽤나 격한 수위로 테마의 가치를 위로 끌어올리는 느낌이다. 


그리고 4번째 에피소드, 2012년 티머시 캐번디시의 치떨리는 시련은 약간 뜬금없다. 출판사사장이 우여곡절끝에 요양원에 강제수용되면서 세상과 단절되고 탈출하기위해서 안간힘을 쓰지만 쉽지 않다는 내용으로 위트있고 약간 비딱하며 명랑하기까지한 노회한 지식인 캐번디시의 자태가 꽤 유쾌하게 전개된다. 캐번디시도 전 에피소드의 루이자 레이 이야기를 출판할 후보 책으로 등장시키는 점이 약간 재미있고 역시 모반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전생의 루이자 레이를 이어받는 모양새도 역설적이다. (약간 진부하고 따분하다는 평가를 루이자 레이 미스테리에 엮어놓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양원을 탈출하는 스펙타클 만큼은 압도적으로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마치 '쇼생크 탈출'의 카리스마를 엮어놓은 듯한 스릴로 땀을 쥐게 만들어주고 결국 '자유'를 맞이하는 달콤하고도 기쁜마음을 잔잔히 지는 노을 처럼 누리게 해준다. 


" 사람을 좀비 대열에 끼게 만들기도 하고, 구해주기도 하는 것은 세월이 아니라 태도이다. 젊은이들의 영토에도 좀비의 정신을 가진 자들이 우글거린다. 그런 상태로 흘러가면서 수십 년간 내부에서 진행되는 부패를 감출 뿐이다. 바깥에는 눈송이가 슬레이트 지붕과 화강암 벽위로 내려앉고 있다. 뉴욕에서 일하는 솔제니친처럼, 나도 내뼈를 엮은 도시에서 멀리 도피해 와 부지런히 일할 것이다. 솔제니친처럼, 어느 맑은 날 해 질 녘에 돌아갈 것이다. " 245p.


 

 

 

이윽고 2144년 서울로 건너띄면서 '손미 ~451 오리진'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무거운 주제이자  순혈인간에 대비되는 복제인간의 처연함과 부조리함을 주제로 삼고 있다. 많은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주제가 아주 생경한 주제들은 결코 아니다. 오래전 부터 SF장르가 고민해왔던 '인간 존업성의 기준을 복제인간에까지 확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녹아있는 부분이 그렇다.  공각기동대에서 심화된 바있는 전뇌화와 사이보그화에 대한 여러가지 철학적 고민들이 재생산됨으로 인해서 약간 진부해질수는 있겠으나 손미가 과정에서 보여주는 '상승'에 대한 여러가지 깨달음, 문화적 충격들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어떤 토대에서 이뤄져있는 지에 대한 실마리를 준다고 생각한다. '상승'(복제인간 내면에 본질추구에 대한 본능들을 억제해놓았으나 어떤 계기로 인해서 복제인간이 이를 넘어서는 사유과 사고를 통해서 복제인간의 범주를 벗어나는 현상)과 거대조직(유니언)에 대한 기존 질서체계 유지방식들은 현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아마도 저자는 현재나 미래나 이런류의 고민과 갈등은 계속해서 있을 것이라고 묵묵히 이야기하는 것 같다. (손미는 거의 이 에피소드에서 2권 초입부까지 '현자'같은 뉘앙스로 철학적 주제들을 관통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손미도 '혜성 모양의 모반'을 가지고 있다. 복제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 환희의 나라는 네오 에도에서 디지털 촬영하여 소니로 생성한 시뮬라크럼입니다. 

  진짜 하와이 열도에는 그런 곳이 없습니다." - 2권. 178p


이즈음 되면 독자들은 '윤회'에 대한 철학적 설정에 대해 깊이있는 재고를 시작한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거대한 '윤회'의 고리속에서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중의적인 시그니쳐라고 생각하게 되고 어윙과 프로비셔, 루이자 레이, 캐번디시, 손미 모두 어깨에 '혜성모양의 모반'자국이 있음을 읽으면서 알게된다. 그렇다면 한 인물이 겪는 이 모든 상황은 결국 세대를 뛰어넘어 모든 영역에서 끊임없이 이어져간다는 거대한 환생이야기로 완성되는 것이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설명하는 '모든 목소리가 조금 다른 하나의 목소리가 된다' 고 말했던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가. 개인적으로는 제델햄 이야기 이후, 루이자 레이 미스테리, 캐번디시의 치떨리는 시련, 손미 ~451의 오리즌 모두 옴니버스 형태의 굉장히 재미있는 단편소설처럼 읽혀졌다. 각각의 소설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있다고나 할까.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각 에피소드를 변주하는 미첼의 문장구사력이다. 에피소드들의 스타일이 완전히 구분되는 이 특징들은 마치 신출귀몰한 설정들과 무지개처럼 산란하는 미첼의 변신술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어윙은 덤덤하고도 묵묵하게 그리고 한편으로 침착하고 고지식한 지식인풍의 어투로…그리고 제델햄 이야기는 끼를 주체하지 못하는 굉장한 천재들의 광기어리고 어디로 튈지모르는 괴팍함과 경박스러움, 그리고 재기발랄함으로..루이자 레이는 열정 폭주로 이어지는 집요하고도 신념의 일환으로 달리는 정의구현자의 절박함, 티머시 캐번디시는 노회한 지식인의 아이러니한 세상풍자, 그리고 말년에 펼쳐지는 모험담, 손미는 예전 공각기동대와 블레이드 런너의 데칼코마니스러운  SF적 설정, 그리고 인간 존재와 가치에 대한 기준. 그리고 고민거리를 안겨주는 냉철하고도 모호한 판타지스러운 설정과 분위기로 등장한다. 그것도 제각각 다른 패턴과 다른 설정과 전개, 질감도 다르고 뉘앙스도 다르다. 

 

 



감탄이 나올만큼 변화무쌍한 저자의 표현력도 감탄이 나올지경이고 이 수많은 줄기의 이야기고리들을 스파게티처럼 꼬이지 않게 잘 정돈하면서 스스로의 길을 가도록 고고하게 이끄는 저변의 생각들도 일관성이 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가 비록 이 6개의 에피소드를 합주하는 6중주의 음악으로 완벽히 연주되었는지 어떤지는 읽는 독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이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6가지의 꿈을 꾸었다. 그리고 그 6가지의 꿈속에서 나는 어윙으로, 프로비셔로, 그리고 루이자 레이, 캐번디시, 손미가 되어서 그들의 생각과 모험을 누렸던 것 같은 인상이다. 소설을 읽는 동안에 누렸던 이 호사스러움을 표현할 길 막막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결국에 한 영혼이 누렸던 이 공통되고도 실질적인 인간과 인간사이에 벌어지는 사랑를 비롯한 이 세월 여파는 세기를 넘나들면서도 수그러들지 않았던 것 같다. 잠시 동안 '혜성모양의 모반'이 나에게도 어디 있지 않을까라는 착각이 들만큼….

 

 


클라우드 아틀라스. 1

저자
데이비드 미첼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0-11-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젊은 거장 데이비드 미첼의 대표작!서로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클라우드 아틀라스. 2

저자
데이비드 미첼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0-11-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젊은 거장 데이비드 미첼의 대표작!서로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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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