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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2.04 그 달빛에 도서관이 취할무렵, 풍경은 나를 축복했다는..
Vanilla Essay2013. 12. 4. 14:40




어느날부터인가 나이를 먹더니 불빛, 그림, 그리고 나무, 숲, 이딴 배경들에 묘한 로망을 느끼곤 한다. 무턱대고 모든 경치에 와 하면서 감탄하는건 아니고 그저 예전 기억과 추억에 기대어 몇몇 장면과 흡사한 광경을 만날 때마다 잠시동안 모든 걸 멈추고 풍경을 지긋이 바라보곤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동네 거리에 대한 로망이 있는데 그건 어린시절 학창시절 즐겨다녔던 도서관의 향기, 그리고 길거리. 가로등 아래 부어지는 오렌지색 커튼같은 불빛에 닿아있던 아스팔트. 하늘에는 별빛이 가득하고 (요즘 이런 하늘 보기도 꽤 어렵다면 어렵다.) 달은 엷은 미소와도 같은 샐쭉한 맵시를 뽐내며 덩그러니 걸려있었던 어느 저녁의 풍경. 그런게 가끔 그립곤 한다. 


요즘의 거리와 내 배경들은 온전히 걸작같은게 되기에는 수준미달이시다. 쓸쓸하고 차가우며 뭔가 구성요소들도 불균형적이어서 이 세상의 균열에서 살다가 언젠가는 반드시 이 곳에서, 이 근처에서 세계의 멸망을 볼지도 몰라라고 속으로 중얼거린 적도 있었다. 예전의 그 배경에서 살고 있다고 믿었던 나의 믿음에는 뭔가 결격 사유가 있었던지 아니면 나의 그림책은 이제그만 <끝>을 만났던지 아무튼 더이상의 좋은 배경그림이 내 뒤에 그려져있지 않다고 느끼곤 한다.  적어도 예전 그 시절에는 동네 겨울밤거리조차도 차갑다고 생각지 못했었고 그윽한 솜털처럼 가볍고 버터향보다도 짙게 스며든다고... 불가항력의 향취를 마파람처럼 맞아가며 미소를 지었드랬는데.....


몇년 전, 일본의 도쿄에서 한달넘게 있으면서 이거리 저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예전의 풍경을 만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동경은 아직 그 시절에서 멈춰선 느낌이어서 하이테크놀로지와 사회이슈에 떠밀려서 거리를 레고처럼 부수지도 않았고 정체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무엇이든지 들어엎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어디에도 걸려있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게 의도적이었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어쩌다보니 변화보단 안주를.... 그리고 편리함에 대한 굳이 의심을 품기엔 기회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일본은 ..도쿄는 그 자리에 멈춰섰나보다라고 예상도 되니까..어쨌든 도쿄에서 난 90년대의 향취를 보곤 하는데 아직도 선진국이랍시고 정리정돈을 애써해보지만 모서리에 묻어나는 세월의 찌든때까지 없애지는 못해서 그대로 보면 하드 웨더링된 예술작품들을 길거리에서 대면했다고 믿고 있었다.  


젠장. 이건 내가 그때봤던 그 배경이었어. 그런 정경이 여기에 있었던건가. 속으로 감탄하면서 지면에서부터 하늘까지 파노라마처럼 시선을 옮기며 풍경을 의지의 접착체로 이어붙여 기억하려고 애쓰고 애썼다. 이런 풍경은 어디를 가도 힘들거야라고 외치면서 말이다. 스맛폰이 더 대중적으로 일찍등장했다면 페북과 트윗들에 이런 스틸들을 옮겨가며 친구들과 열광했을 것인데.. 그러나 그땐 귀찮게 사진을 찍어봐야 퀄리티를 보장하기도 힘든 조악한 사진파일들에 불과했고 그렇다고 디지탈 해머와도 같은 거대 DSLR을 짋어지고 거리를 걸을 만큼 멋대가리없게 살고 싶지도 않아서 모든 풍경과 배경은 오로지 머리속 깊은 스토리지라고 믿어의심치않는 '기억력'에 의존했다. 


이제는 도쿄 조차 가기 어렵게되었다. 그 한여름의 찌는 듯한 더위속 눅눅한 공기조차 들이키기힘들만큼 오염되었을까봐 이제 근처에도 얼씬 못하지만 로망은 남아있다. 아직도 이이다바시와 스이도바시 중간 어디즈음 뒷골목에 매여있던 자전거와 나란히 서있는 줄서있었던 토마토 화분들..맨션의 베란다에서 나쁘끼던 빨래들. 그리고 짙은 도쿄 특유의 향기. 오차노미즈 수로에서 은근히 전해오는 세월의 이끼들, 즐비했던 고서점들 주변에서 빈티지의 부스러기가 공중에 먼지처럼 떠돌곤 했다고 지금도 믿는다. 이젠 그런 거리를 어떻게 만나지라고 생각하면 아쉽기 짝이 없다. 그래서 응답하라1994의 그 스틸들이 반가웠나보다. 캠퍼스까지 가지 않았어도 그리웠을 미장센들에 감정까지 담은 듯해서...두고 보면 이건 로망이긴 하지만 때론 주접 궁상이란 생각도 편편히 들어서 후다닥 생각을 줏어담고 현실로 돌아오는 나를 보곤 한다. 나도 이즈음되면 어린 나이가 아니란 소리겠지. 남들시선까지 생각하며 살다니..언제부터 그랬다고....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