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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1.15 언더그라운드 맨 - 믹 잭슨
Review BOOK/소설2013. 1. 15. 14:00

<언더그라운드 맨> : 믹잭슨.

 

 

 

 

<뼈모으는 소녀>를 통해서 '고딕소설'의 재미에 맛을 들인 독자들은 믹잭슨의 또 다른 걸작 <언더그라운드맨>을 어떻게든 접하게 되어있다. 마치 집으로 가기위해 정해진 노선을 자연스럽게 갈아타듯이 필연적으로 언더그라운드맨에 도달하는 식으로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뼈소녀'에서만큼이나 '언더그라운드맨'에서 엄청난 흥미를 느꼈으리라는 보장은 별로 없다. 언더그라운드맨은 그야말로 '언더스러운' 주인공의 외로움과 쓸쓸함, 자아성찰, 기묘한 자기탐구를 통해 세상을 보려는 운둔자의 행로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은둔자로부터 느끼는 뉘앙스들은 폐쇄적이거나 자기탐닉적이고도 복잡한 내면 탐구의 영역으로 옮겨가기 일쑤고 그렇게 되면 독자들은 독백의 바다에서 홀로 이성의 돗단배를 펴고 지루함의 풍랑을 견뎌야한다. 어디로 갈지..행여 모호하고 이해할 수 없는 연민에 휩쌓인 채 표류하는 자신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뼈소녀의 기묘한 모험담을 뒤로하고 이런 내면탐구의 시절로 돌아간다는 건, 대중 통속소설의 매니아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쉬운일이 결코 아닌 것이다. 더우기 이건 믹잭슨이란 작가에 대한 신뢰성에 대한 기준이 될 테니까..(언더그라운드맨이 문학적으로 훌륭하다는 사실이 뼈소녀에 대한 환상을 그대로 유지시켜준다는 보장은 결코 없다.)  위안이라면 그래도 이 작품은 영국의 휘트브레드상을 받은 '수상작'이란 점.

 

문학적인 재능과 스토리 텔링에 관한한 믹잭슨의 노력을 감안한다면 뼈소녀보다는 더 진지할테고 더 고형적일거라는 믿음같은게 자리잡을 테고....그 기대감을 가지고 본다면 초반부에서는 캐번디시의 삶도 뼈소녀처럼 꽤 미스테리하고 괴이스럽기에 드디어 믹잭슨의 고딕재능이 힘을 발휘하는 구나라고 쾌재를 부르실수도 있겠다. 하지만 점차 스토리가 진행 될수록 독자들은 그런 흥미거리로부터 멀어지는 플롯을 보게된다. 읽는 내내 느끼게 된 유사유형의 인물..'쥔스키의 '좀머씨'? 호밀밭의 파수꾼? 세상에 대한 자기만의 시선, 자기를 평가하는 세속적인 기준으로부터의 탈피, 스스로 돌아보며 세상과 벽을 쌓았지만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인연의 고리들. 결국 무엇인가 쓸쓸하고도 처연한 느낌 (공작의 표현대로 가을이 남겨두고 간 시체들로 가득찬 거리를 보는 듯한)에 둘러쌓이게 된다. 이윽고 아마 공작의 말로가 결코 행복해지지 않으리라는 모종의 안스러움이 서서히 발밑에 밀려들오는 바닷물처럼 잠식한다. 좋은 쪽으로 기대보자면 말이 없지만 숙고적이고도 친절한 주인공이 세상을 더 살아볼만한 무엇으로 인식하여 약간의 소통을 사소하게 시작하는 식으로 결말이 났었어도 꽤 좋은 동화이야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마음 한켠에 뿌듯함을 가지고 캐번디시의 새로운 사랑을 기대하면서...클레멘트와 어깨동무라도 하고 슬며시 미소지으면서 스케이트 신발을 다시 신으면서 그렇게 마무리를 했더라면...

 

악몽이 침대보에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겨놓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무명천이 고독의 찌꺼기를 빨아들였을 수도 있었다. 최근 들어 심해진 잠을 설치는 현상은 완전히 떨어진 줄 알았던 나쁜 감정이 내 몸에 의해 다시 덥혀지면서 또다시 강해진 결과가 아닐까? (38p)

 

우리가 살면서 쌓는 경험은 기억이라는 귀중품실에 안전하게 보관된다. 우리는 이곳에다가 우리의 과거를 넣어둔다. 우리가 보관하는 기록이란 그때그때 모아들인 기념품, 즉 삶의 사소한 성공과 가슴 아픈 실패,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과 (운이 따라준다면) 우리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전부다. 잘 살았다는, 삶이 다했을 때 이정도면 괜찮게 살았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마음이라는 거대한 바위턱, 즉 우리의 기억속에 얌전히 보관되어 있는 그 많은 증거들이다. 하지만 귀중품실의 입구가 파손된다면 ? 틈새 어딘가로 비바람이 들어온다면 ?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는 희망이라곤 없이 영원히 떠돌아다녀야 할지도 모르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53p)

 


 외로움과 쓸쓸함의 농도가 더 진해지는 건, 외부요인이라기 보단 스스로에 대한 결정때문이라고 믿는 편인데, 노환과 지루함과 달라지지 않는 일상과 재미와 활력을 찾기엔 공작에게 너무 '연인'과 '지인'과 '친구'들이 부족했다. '책상'과 '인체지도'와 '터널'같은 건  정을 터놓을 존재들이 아니다.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는 것들이라고 할까. 몇 십년동안이나 계속된 지루함의 결정체이거나 변하지 않을 법한 일상사 따분함, 외로움과 고독을 더 강하게 만들어줄 담금질에 필요한 촉매제 같은것이겠지 아마.. 물론 생각하시기 좋아하는 많은 분들이 세상과 이별하지 않기 위해 자기만의 방법으로 터널을 뚫고 주유했다고 생각할테지만 나는 터널도 폐쇄적인 자기 기만처럼 보였드랬다. 왜 그는 터널에 흥분했을까. 한발자국이라도 은밀하게 조용히 방해받지 않고 '나다닐 수 있어서?'


공작은 패니 아들레이드와 결혼했어야 했다. 그렇게 되었다면 유년시절의 쓰라리게 아픈 존재감상실에 대한 은밀한 슬픔을 위로 받을 수 있었고 '스노'와의 이별도 덤덤히 인정했을 것이다. 범람하는 유년시절의 잊혀졌던 아픔과 상처에 대한 보호막따위는 그저 공작이 혼자 되뇌였던 독백들로 치유될만한 것들이 아니었던 셈이다.  소설에서 유난히 별처럼 빛났던 건  적나라한 현실인식이 아니라 순수하고 참신했던 그의 표현력들인데,  육체와 영혼을 연결시킨 실, 연을 띄우듯 꿈을 꾼다고 했던 말들. 애들레이드가 자신의 청혼을 거절하고 얼마 안있어 생선조각에 목숨일 잃게된 아이러니함따위에 연연하지 않듯 덤덤히 버텻지만. 사실 그건 버틴게 아니라 계속해서 외로움에 침식당하고 있었으리라.

 

 

내 생각에는 아주 가느다란 실이 닻 역할을 하는 텅 빈 육체와 영혼을 연결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 실을 통해 별들 틈에서 노니는 영혼의 진동이 전달되는데, 잠이 든 우리몸은 이를 꿈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자면서 연을 날릴 경우 우리는 연을 날리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연이기도 하다. (78p)


 


언더그라운드 맨

저자
믹 잭슨 지음
출판사
생각의나무 | 2009-07-17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어느 기이한 귀족의 흥미진진하고도 애잔한 초상!뼈 모으는 소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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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