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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1.10 검의 대가 (El maestro de esgrima)
Review BOOK/소설2013. 1. 10. 13:30

 검의 대가(El maestro de esgrima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김수진/열린책들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Arturo Perez-Reverte)<검의 대가>(El maestro de esgrima)을 아무 의심없이 광풍의 속도로 읽어버렸다. 누가뭐라해도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1990)이나 <뒤마클럽>(1992) 정도가 그의 유명작이겠으나 '검의 대가'는 처녀작만이 가진 임팩트가 있다. (아마도 그리 길지도 않으면서 굉장히 타이트한 스토리때문이었으리라.), 뻔한 미스테리 추리물 느낌이 약간 나주시다가 결말에 이르러서는 독자들의 기대와 환상을 뒤엎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여기서 묘하다고 한 점은 책을 끝까지 읽어보시면 알게 되신다.)


예전 로만 폴란스키의 괴작<나인스게이트>(Ninth gate)를 보고 나서 <뒤마클럽>이 원작이라는걸 알았다.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미스테리한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뒤마클럽을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던 기억이 있는데. 물론 영화와 소설은 괴리감이 있기 마련이고 아르투로 페레즈의 뒤마는 좀더 학구적이고도 좀더 인간적이었다는 느낌인터라 영화의 조니뎁과는 약간 어울리지 않았음에도 묘한 분위기만큼은 매력적이었다.그에 비하면 <검의 대가>는 문학적이란 뉘앙스가 강하게 느껴진다. 혹 역사적 배경과 결합된 서사적 구조때문일까라고 추측 해 볼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보다는 신비함과 미스테리한 초월적 분위기가 판타지적으로 등장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아무튼 <검의 대가>쪽은 스페인의 19세기 정치적 상황이 명료하게 명시되어있는터라 좀더 무겁고 어두운 스페인의 묵직함같은게 소설 전반에 흐른다. 정치적 관점을 가지고 주인공 하이메와 그를 둘러싼 지인들의 격론도 소설의 배경을 차지하고 있으며 초반부 전개를 읽다가보면 혹시 이게 정치소설인가 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킬만큼  굉장한 분량으로 독자들을 지치게 한다. (아마 재미로 이 소설을 집어든 독자는 대실망 예상! )  물론 주인공 하이메 아스트를로아는 이런 정치적 격랑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 철저한 무관심과 자기절제를 보여주면서 서서히 자기 갈 길을 간다.


하이메는 나이가 들면서 뭔가를 이뤄내야 한다는 강박관념같은게 있었는데 아마도 그건 '궁극적인 검술, 즉 최강의 검법을 완성하는 것' 이었던 것 같다. 여기까지 오면 '오호 이건 무협소설일지도..' 라는 착각이 있을테지만 많은 독자들이 기대하는 초식 전개 같은 무협지적 묘사는 흉내만 낼 뿐 포커스가 향해있지도 스토리상 그걸 원하지도 않는다. 물론 다양한 플뢰레 펜싱에 대한 기술용어가 줄을 지어 등장해서 마치 이걸 다 알아야만 하이메의 극강 검술을 상상이라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긴 한다. 아마도 아트루로의 검술용어 나열은 검술가로서의 섬세한 몰입, 정신세계로 향하는 그만의 여정을 구체화 할 수 있는 유일한 지도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뒤돌아서 찌르고, 한발 비켜서 검을 세우고 꼿꼿치 목을 노린채 연속해서 두번찌르고..하는 부연 설명과 화려한 이름들의 나열속에서 하이메는 왠지 모를 이상향 추구를 목매 기대리는 절실함같은게 엿보인다고나 할까.


그런데도 하이메는 '궁극의 경지'로 올라갈 기미같은게 도무지 보이질 않게 되고, 서서히 자신의 나이와 세월의 흐름속에서 다다를 수 없는 실패감과 그에 따른 무기력함을 느끼게 된다. '정의롭고' '굳건하며' '소신을 지키는' 따위의 자세가 허물어질때즈음,  아델 오테로가 찾아온다. 뒤늦은 나이에 젊고 매력적이고 검술까지 잘하는 묘령의 여인이 등장하면서 하이메는 다시 피가 요동치고 삶의 기쁨까지 누리게 된다. 여기까지만 해도 노회한 검술가와 매력적인 여제자사이에서 벌어지는 밀고당기는 로맨스, 그리고 정치적 격랑으로인해 이별과 만남을 반복하면서 기구한 애정행로를 테마로 하는 로맨스 소설의 진면목을 보여줬으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찰스디킨즈'의 두도시 이야기만큼 거대 서사소설로 변신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서 숙명적인 전개를 꾸며놓았다. 독자들도 대개의 경우 결말을 예상하게 되는데 아마 충격의 여파는 하이메가 결말에서 오테로를 어떻게 맞이하는가가 아니라 , 오테로가 하이메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느냐 쪽이 아닐까싶다. 거기서 독자들은 충격까지는 아니어도 작은 탄식을 내뱉지 않을까.


과연 이 여인은 무엇때문에 하이메로부터 검술을 배우려고 했던것인지는 미스테리 소설이 가지는 기본 장치정도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건 그다지 중요한 요소도 아니고...다만 오테로가 스승 하이메로부터 느꼈던 감정의 본질, 그리고 하이메가 오테로에게 쏟았던 관심과 열정의 정체,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역설적인 혼란속에서 전개된 하이메의 궁국의 검술이 드러나면서  하이메가 심혈을 기울였던 이상향을 완성시키게 된다. 독자들은 하이메가 그토록 원했던 궁국의 검법의 현실화를 보면서 어쩌면 이상향이란 냉혹하면서 피할수 없는 숙명적 대면을 극복하면서 나타나는 찰나적 깨달음일 것이다라고 느낄수도 있겠다. 원래의 검술가로 돌아온 하이메에게 뒤늦은 로맨스와 사랑과 회한은 어떤 의미였을까.


cf) 아르투로 페레즈는 <뒤마클럽>을 통해서 스페인의 움베르토 에코라는 명성을 가지게 되었다는데 움베르트의 <장미의 이름>을 읽었던 나는 <뒤마클럽>도 그렇고 <검의 대가>도 그렇고 슬며시 '어디가 비슷하다는 거지?' 라고 되뇌이고 있다. 유사한 뉘앙스라곤 역사적 사실과 서스펜스를 결합시키는'분위기'정도..  아무튼 움베르트 에코와 아르투로 페레즈를 엮는건 좀 비약이 아닐까싶다.

 


검의 대가

저자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2009-12-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검의 대가』고전들을 젊고 새로운 얼굴로 재구성한 전집「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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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