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illa Essay2014. 7. 3. 11:44

김승옥(金承鈺)과 하루키(村上春樹), 그리고 장마비가 오는 날.


-<언어의 정원>-


대낮에도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후드득소리를 내면서 무거운 비의 진탕질이 길바닥에 시작되면 언제나 드는 생각, 조용한 조명아래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 뿐이다. 하늘은 이미 야외의 축복이 없다고 단언하듯 시꺼먼 커텐을 쳐버렸고 땅에는 페인트 튀기듯 물난리가 벌어지면 거의 모든게 성가셔 진다. 남은 건 집구석에 쳐박혀 두터운 이야기의 세계로 들어가는 출입구만을 노리고...구석에 오렌지가 터져서 번진듯한 스탠드를 그윽하게 배경삼고, 적절하고도 눅눅함이 깃든 책한권을 손에 든 채  한장 한창 넘길 때, 이 보다 더 가슴 두근거리는 일은 아마도 없을 거라고...그렇게 혼자 중얼거린다. 사실은 그럴 수가 없을 뿐이지 세상에는 스스로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계기들이 수없이 존재한다. 다들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며,  약간 시니컬하게 말하자면 용기가 없어서 책읽기로 어수선함을 감내하기 어려울 뿐이다. 왜냐면 책을 읽는 동안은 자기가 현실을 도외시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얼마전,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다시 읽었다. 더불어 <서울 1964 겨울>도, <서울의 달빛 0章>도 같이 읽어버린 건 부수적인 행운이었지 아마 . 어쨋든 '60년대의 문학적 성찰'이라는 타이틀로도 이 묘한 기분을 갈음하기는 어렵다. 예나 지금이나 시대적인 소나기가 문장과 글에 내리고 그때였기 때문에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았을까라는 추측들은 다 별로였다. 이게 어디 60년대에 쓴 글이란 말인가 아무리 봐도 2014년 여름이 시작될 무렵에 썼다고해도 하나도 이상할게 없었다. 군더더기도 없고 단호한듯 하면서도 심플하고 그저 단촐한 풍경들이 이어지고 옅은듯 깊은 듯 감정의 도랑을 패이며 지나간다.  모종의 글쓰기 기술이란게 있다면, 아마 이런 문장들이 신의 축복이라고 했던 이유가 너무나도 분명해지는 순간이다. 아 이 분은 어쩌자고 이렇게 글을 잘쓰셔가지고 후대의 문학지망생들에게 두근거리는 도전의식을 심어주셨던가. 근 50년이 지나버렸는데도 아직 기력이 다하지 않은 이 생기발랄함은 뱀파이어 같을 정도다. 무섭기도 하고....평범해보이지만 정작 해보려고 하면 흉내도 내기 어려운 어떤 것들이 되버렸다. 


이렇게 유사한 느낌을 하루키의 글에서도 받았는데 김승옥과 하루키가 왜 비슷하게 느껴지는 거지라며 한참을 생각했다. 둘은 시대적인 연배도 다를 뿐이고 장르적 유사성도 없는데다가 추구하는 세계도 다르다. 그런데도 같은 악보에 있는 프레이징 같은 느낌이다. 혹시 김승옥이 이 글들을 쓰고..하루키가 어느날 챈들러를 읽다가 우연히 <무진기행>을 읽고 그리고 <노르웨이의 숲>을 쓰고....뭐 그러면서 어느날 읽다보니 한국에도 인상적인 소설이 있었어요..김승옥 상이라고...단편들을 쓰셨죠. 업다이크도 좋지만 김승옥씨의 글도 좋았어요. 한번 읽어보세요.....아마 이렇게 추천사를 썼었어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이상하지도 않았을 것만 같다. 둘 사이에는 시간의 교량이 있어서 장마비가 내리는 날에 통로가 연결되고 그 다리위에서 오며가며 같은 감정을 느끼고 둘이 혹시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오호라 당신도 나와 비슷한 부류 구료 서로 인사나 하시죠 라고 악수도 하고 ....그러지나 않을까....



비가 상상을 너무 부채질 한다.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