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BOOK/철학-사상2014. 3. 7. 11:58


"우리는 어떤 편견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말처럼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말도 드물다. 대개의 경우, 개개인의 실존적 관점을 강조하기 마련이고 주체적인 위치에서 능동적인 시선을 더 설득적으로 받아들이기 마련이니까. (당연하지 않은가 '초인'의 지위는 여전히 중독성이 있다.) 상징적 질서와 관련된 '무음'(無音)의 기제들 한복판에서, 인지하지 못했던 '무지'의 영역이 소리없이 '의식'의 영역으로 슬그머니 기어나오게 되면 실존적 자아란는 말이 왜 그렇게 현대의 즈음에서 무기력한지 이해하게 된다. 설령 모호하고 너무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논증으로 둘러쌓여 있다고 할지라도 은근한 무의식조차 '그럴지도 모른다'고 점령당할수 있을만큼의 참신성이 있다. 그걸 알게 될 때의 섬뜩함은 또 하나의 진실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런 이야기들이 어느날 뜬금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진 않았을거라는 추측도 하게 되고 이면의 계보를 쫓다보니 사상의 줄기를 성장해왔음을 알게도 된다. 


<구조주의>는 대중들에게 어려운 지위에 놓여있다. 헤겔과 마르크스가 지녀왔던 대중성은 어느정도의 일반화된 상식의 선에서 읽히지만 이후 소쉬르를 비롯하여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에 이르기까지는 '관심사'의 영역에서 읽히는 대상들이다. 제아무리 유명 철학자가 설파한 몇가지의 논제를 이해한다고해도 이 후의 컨셉을 붙들고 깊이 들어가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실패작이나 다름없던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 (오로지 참고적 측면에서 잠재의식이 거론될때만 등장하는..)이 라캉에 의해서 살아날때, 묘한 호기심이 일었다고 치더라도.., 슬라보예 지젝의 광풍과도 같은 아시안에서의 인기를 감안해도 여전히 그 난이도는 쉬이 내려갈수 없다. 그리하여 '구조주의'는 포스트모너니즘과 여타의 현대미술사를 비롯, 수많은 인문학자들의 '용어'로 남아서 쉴새없이 인용되며 위용을 자랑하는걸 넋놓고 바라만 보는게 일상이 되버린지 오래다. (물론 이건 일반 대중들의 시점이란 점에서..)  대중들은 그저 '그것이 어떤 무형질의 찰떡이라도 되는 것마냥 '그런것이려니'하며 받아들이고 은근히 이해할듯한 말듯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스쳐지나갔을 확률도 꽤 크지 않았을까. 


어떤 인문학자들의 컬럼과 글들에서 바르트와 푸코의 핵심 명제들이 인용되면서 '현 상황'을 설명하는게 유행인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그 비유와 은유가 적절한지 알아채는 건 그렇게 쉽지 않다. 그건 무식의 범주에서 스스로가 그렇게 초라하지 않다는 걸 감추려고 애쓰는 관객들의 묵인과 맞물려서 부풀려지고,  도대체 이 분께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대개 뭐 이런 정도의 말을 하고 싶어서 비슷한 출처를 인용하는 것이겠지 하고 추측정도로 넘어가주신다.  그렇게 내용의 증명은 불가능하며 특히 원전의 타당성과 기본적 컨셉조차 캐치하는건 요원한 일이 된다.  구조주의 계열사에서 수없이 치고 빠지는 용어들의 향연에는 이런 '지적허세'가 과포화된 채 부유하며 평론가들에 의해 과용되어서 일반인으로선 그 범주로 들어갈 용기와 시간이 아쉬워진다고나 할까. 이래서야 또 하나의 지적인 허세 장벽이 세워지는 꼴이다. 뭐 당신은 몰라도 돼. 그런게 있어..정도나 될까? 업계의 전문가들조차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이 현상을 보면서 앨런소칼 처럼 '지적사기'를 내놓는 용기는 거의 혁명적인 일이지 싶다. 일반독서가들로서는 어림없는 수작으로 그들에게 비쳐질 것이다.  


철학서인건 인문학서이건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쓰여졌는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은 등장하는 '예시'의 질을 보면 안다고 했다. 난해함을 해독하는 길은 저자를 의도를 알고 그것을 이해한 다음 쉽게 풀어서 일반이들의 일상에서 보여지는 실제 상황에 붙여볼 수 있어야 한다. 철학은 더더욱 그런 연관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말인데 학자들의 시선에는 그런 예제는 비효율적 낭비라고 인식되어져서 등장한 용어의 재반복에 더 할애하는 경향들이 보이곤 한다. 책들은 어렵고 원전이랍시고 풀어놓은 소개서조차 이걸 읽어도 모르는데 이 분은 제대로 이해하고 쓴 걸까라는 의구심을 지울길이 없다. 역시 별개 아니라는 걸 간파하려면 아주 쉽게 설명해보시오라는 물음을 저자들에게 던져줘야 한다. 그래놓고 제대로 설명하는지 가만히 들어보면 그 저자의 진면목을 알수 있다. 그래서 이 책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는 정말 괜찮은 책이라고 불릴 수 있겠다. 


뜬금없는 소쉬르의 언어학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지도 않고 그나마 익숙한 헤겔마르크스 이야기를 먼저꺼내주고, 대개의 교과과정에서 들었을 '계급'에 대한 이해와 '노동'으로 인한 존재인식의 차이점, 고지식해보이는 프로이드의 억압 메커니즘을 쉽게 설명해주고 우리는 결코 우리를 이해할 수 없다던 '니체'의 철학을 알기쉽게 연결시켜준다음 소쉬르와 푸코의 단계로 전이 시켜준다. 왜 푸코가 평론가들의 기준점이 되었는가를 알수 있는 몇가지의 깨달음도 등장했고 (근대사회에서 인간의 '표준화'를 목표로 삼았다는 부분을 읽어보면 인식의 기준점이 탈중심화되어가는 과정을 알수 있다.) 바르트의 텍스트이론으로 야기된 비평의 기본 원리도 슬며시 생각하게 해준다. 물론 일반인들로서는 약간 축약적으로 설명된 레비스트로스의 이항대립의 조합이야긴 어렵지만 대개의 경우 많은 사람들의 생각속에는 반드시 레비스트로스적인 추측이 남아있다. "인간이 사회구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가 인간을 만든다' 라는 지적같은 것 말이다.  


라캉에 이르러서도 커뮤니케이션으로 이어지는 부분을 세밀하게 잘 설명해주었다. 라캉은 좀 논란의 대상이다. 이미 수없이 많은 저작들의 난해함과 앞서 이야기했던 지적사기 사건을 통해서 '과학적 논증'의 오류부분을 들먹여 평가절하하더라도 어쩔수 없긴하다. 다만 논증적 방법부분은 제쳐놓고서라도 그의 이론을 슬며시 들어보는건 나쁘지 않는 선택이라고 본다. 이 책의 목적은 아무래도 '구조주의의 쉬운 이해'였다는 점을 볼 때, 일반독자에게 충분한 설명을 간략하고 쉽게 해주었다고 볼 수 있다. 만약에 이 분야에서 더 관심을 가져보리라 마음을 먹었다면 이런 책에서 출발하는게 굉장히 효율적일 것이라고 믿는다. 비록 얇고 너무 성의없어 보일런지는 모르겠지만 대개 이념과 사조, 그리고 철학의 이면에는 과용량의 논술보다는 쉽게 설명된 얇은 가이드 정도로도 의욕에는 부담이 없다. 그래서 말인데 실력자분들께서는 이런 서적을 남발해주시는게 더 낫다. 그래야 지적허세질이 습관이 된 일부 사기꾼들의 허풍들을 알 수 있게되고 그 과정에서 '생각'의 통찰이 생길 것이라고 믿는다.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저자
우치다 타치루 지음
출판사
갈라파고스 | 2010-10-0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2002년 출간 이래 증쇄를 거듭하며 단 한 번도 스테디셀러의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Posted by ke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