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BOOK/소설2013. 7. 9. 18:07






서른여섯 살, 다자키 쓰쿠루는 철도 회사에서 역을 설계한다. 역을 만든다는 행위는 그에게 세상과의 연결을 뜻한다. 과거의 상실을 덮어 두고 묵묵히 살아가는 그에게 어느 날, 처음으로 사랑이 찾아온다. 그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은 두 살 연상의 여행사 직원 기모토 사라는 고등학교 시절, 다자키 쓰쿠루가 속한 완벽한 공동체(여기서 공통체란 아카,아오,시로,구로,그리고 쓰쿠루로 이루어진 친구들모임을 의미한다.)와 그 결말(어느날 갑자기 친구4명이 쓰쿠루를 외면해버림)에 대해 듣고 불현듯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한 순례의 여정을 제안하는데... 



'대학교 2학년 7월부터 다음해 1월에 걸쳐 다자키 쓰쿠루는 거의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때라면 삶과 죽음을 가르는 문지방을 넘어서는 일 따위 날달걀 하나 들이키는 것보다 간단했는데...'



'1Q84'가 광풍처럼 불어닥친지 얼마되지 않은 듯 싶은데, 어느덧 '공백기를 깨고 질풍처럼 등장한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타이틀이 다시 이곳저곳에 나부낀다. 이 센세이셔널한 인기야말로 굳이 나서서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지 않아도 될 만한 거장들이 가지는 퀄리티 이팩트겠지만 어찌됐든 하루키가 한국에서만큼은 인기작가라는 사실은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여름휴가때 읽어야 할 추천도서'항목에 이 신작이 자리해주시고 계셨다. 과히 이번 여름은 '진격의 소설계'라고 불러야 할 판이다. 


하루키의 이 신작은 1Q84 이후 느닷없긴 했다. 나름대로는 과거작들을 계속해서 re-reading하고 있는터라 개인적인 공백을 느낄 사이가 별로 없었다. (엊그제 1Q84가 나온 듯 싶었는데..) 반가운 쪽이 더 크다는 점에서는 나도 팬의 몫을 다하고 있는 느낌은 든다. 마음속은 늘 하루키를 읽고 있었다고 아부라도 할 만큼.....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도 그렇고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빵가게 재습격,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 해변의 카프카 같은걸 계속해서 읽는 건 싫지 않은 경험이다. 읽은걸 또 읽었다니 대단한 광팬이로군 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것 보다는 그저 읽었던 시절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게 싫어서였다고 보는게 더 정확하다.  다시 읽어보고 그때 못느꼈던 새로운 뭔가를 발견할 수 도 있지 않을까하는....그 와중에 에세이들도 꽤 많이 출간되어서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재출간이다.) 무라카미 라디오라든지 다수의 잡지들에 연재되었던 것을 연작으로 묶었던 책들도 꽤 많이 읽게되었다. 좋은 시절이다. 구하기 어려웠던 에세이들도 죄다 모아서 출간해주다니... 그러다가 덜컥 <색체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이하 색체없는쓰쿠루)가 나와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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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봐서 초반부를 읽다가 아...이 분께서 또 이원화된 세계를 오가면서 다소 몽환적이면서도 미스테리하게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엮어보실려나보다라고 생각했드랬다. 쓰쿠루가 친했던 친구들로부터 이유도 모를 배척을 당하게 되고 홀로 동떨어지면서 미스테리하게 전개되고 이윽고 친구들이 밝힌 쓰쿠루를 친구들의 모임에서 몰아내게 된 원인을 이야기할 때, 그 기대치가 절정을 치고 올라가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는 '자신의 등장'으로 인해서 유즈가 강간을 당하게 되고 이 세계에는 자신과 다른 똑같은 자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미심장한 쓰쿠루의 의구심과 맞물리면서 점점 '두개의 달'이라도 떠있는 이질적 공간으로 향하는 문이라도 등장하지 싶었는데 그만 모든걸 접고 쓰쿠루가 다 혼자 망상하는 걸로 매조지하셨다. 또는 이렇게 이야기해야겠다. 현실적인 성찰로 돌아서버리셨다고... 아무래도 이 책이 단행본으로 끝나게 된 원인이 이거 때문이었을까. 상중하로 출간되었다면 분명히 고속도로에 등장하는 계단이든, 섹스를 통한 이공간의 접속이라던지하는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이 나왔을 지도 모르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하루키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해변의 카프카',  그리고 '1Q84'로 오면서 더 적확하고 명료한 리얼리티를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원더랜드쪽이 의식을 또 하나의 세계로..그리고 해변의 카프카와 1Q84를 구분하기 어려운 두 사건의 교묘한 접합점에 판타지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를 꾸려가는게 무라카미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신작도 그럴 것이라는 추측을 피할 수 없는 것일테지만...그래서 쓰쿠루가 원인도 모르고 고등학교 시절 친했던 친구들 무리에서 떨어져나오고 나중에 여자친구 사라에 의해서 다시 과거를 돌아가보기로 했다는 지점에서부터 판타지는 다시 시작될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쓰쿠루이야기는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처럼 전개되었다. 주인공의 무덤덤한 허무주의에 가까운 태도하며 굳이 관계회복을 위해서 애쓰려하지 않는 모습도 그렇고... 그런데도 막판에 가면 쓰쿠루는 굉장히 긍정적이고 의미심장한 표현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대목들...


"그렇지만 그것은 올바른 가슴아픔이며 올바른 숨막힘이었다. 그것은 그가 확실히 느끼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앞으로 그 차가운 중심부를 스스로의 힘으로 조금씩 녹여내야 한다.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동토를 녹이기 위해서 쓰쿠루는 다른 누군가의 온기를 필요로 했다. 자신의 체온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일단 도쿄로 돌아가자. 그것이 첫걸음이다 " (p388) 


"인생은 복잡한 악보같다고 쓰쿠루는 생각했다. 16분 음표와 32분음표, 기묘한 수많은 기호, 의미를 알수 없는 표시들로 가득차 있다. 그것을 올바르게 해독하는 것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고, 설령 올바르게 해독했다하더라도, 또 올바른 음으로 바꿔냈다하더라도 거기에 내포된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평가해주리란 보장이 없다. 사람의 행위는 왜 그렇게 복잡하게 엉켜야만 하는 걸까 " (p404) 


"우리는 그때 뭔가를 강하게 믿었고, 뭔가를 강하게 믿을수 있는 자기자신을 가졌어. 그런 마음이 그냥 어딘가로 허망하게 사라져 버리지는 않아 " (p437) 


그리하여 쓰쿠루는 오랜시절 겪었던 방황으로부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려고 애쓴다. 물론 중간에 등장해버린 하이다와 미도리카와 에피소드때문에 굉장히 혼란스럽긴 했다. (이 즈음에서 기묘한 판타지로의 장치라고 여기지 않았다면 하루키 팬이라고 할 수 없지 않나싶다.) 그건 어쩌면 그가 방황하고 충격적으로 버림받았던 과거로부터 연유한 죽음성찰이었나보다. 그래서 스스로 표현했던 것처럼 '근본적인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 지도 모를...정신의 자연스런 흐름이 장애물을 만나 어딘가에서 멈추고 그때문에 자기라는 인간이 뒤틀리게 되었다고' 생각한 그 지점에서 돌파구를 찾았던 게 아닐까.  아카, 아오, 시로, 구로 사이에서 벌어졌던 묘한 절제와 균형의 관계들...결국 이런 이상적인 관계가 언제인가는 깨질것이라는 두려움은 쓰쿠루를 희생양삼아서 터져버렸지만 쓰쿠루는 원망도 억울함도 없이 대신 '죽음'을 생각하며 지내왔다. 그리고 모든 걸 받아들이고 다시 자신을 버렸던 친구 4명을 만나고자 도쿄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것들이 전부 다 사라져버릴 그런 '마음'들이 아니었을거라고' 읎조리며 서서히 과거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다. 아마도 그래서 하루키의 이 작품이 '노르웨이의 숲'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적어도 여기엔 현실이 붕괴되어서 의식의 세상으로 불사의 세상으로 가버리는 판타지도...두개의 달이 교차하는 이세계의 조직으로부터 쫓기는 스팩타클도 없었지만 '냉정하면서도 언제나 쿨하게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는' 나의 모습이 녹아져있었으니까, 쓰쿠루는 나였고 나는 쓰쿠루같은 측면이 있었으니까..동질감이란 이런 것 아닐까.


과거의 상처로부터 태연하려고 애쓰고 관계지향적이고 밀접한 소중한 무엇인가로부터의 박탈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하는 본능적인 보호감을 감춘채 사는 현대인들은 많다. 다자키 쓰쿠루적이 아니었다고 항변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어느순간에는 정말 쓰쿠루적이었던 시절이 있었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순례의 해 소곡집의 제 1년 스위스에 들어있는 프란츠 리스트의 <르 말뒤페이>에 '전원풍경이 사람의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영문모를 슬픔'이 일상이던 시절. 슬픔은 나를 지배하고 있었고 잠시동안의 암울함과 끊임없는 어두운 터널을 터벅터벅 걷고 있는 자신을 상상한다.  이 정도되면 나 조차도 다자키 쓰쿠루였던 적이 없었다고 감히 말을 못할 지경이다. 책을 다 읽고 느낀건 하루키스럽지 않아서 오는 허망함보다 나도 쓰쿠루처럼 그랬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라는 기시감이 더 강했드랬다. 묘한 느낌이지 않나..과거에 두고온 들추고 싶지 않은 기억들. 추억들..


그나저나 기모토 사라로부터의 전화는 어떤 내용이었을까. 쓰쿠루는 사라로부터 수요일에 원하던 대답을 들었을까.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3-07-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지금, 당신은 어느 역에 서 있습니까?모든 것이 완벽했던 스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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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ewell